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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1. 난 정답을 원하지 않는다 명쾌하길 바랄뿐 | 2018년에 쓴 리뷰들 2018-08-19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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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젊은역사학자모임 저
역사비평사 | 2017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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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흡사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의 대결>을 보는 듯 하다. 미국을 주무대로 전세계에 퍼져있는 이 대결의 승자는 아직 없다. 과학계의 중론은 이를 <과학과 종교의 대결>이 아닌 <과학과 비과학의 대결>, 즉 '사이비과학'인 지적설계론의 허구성에 주목해서 공격하고 있다. 그 선두에 선 과학자가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다.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에서 이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는데, 이에 만만치 않게 '지적설계론'이 당당히 과학임을 밝히려는 지적설계론자들도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허나 이 대결의 승자는 어차피 '과학'일 수밖에 없다. 그 까닭은 '창조론'이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더는 '믿음', 그 이상의 것이 될 수 없었던 것처럼 여전히 '믿음'의 영역에 의지해서 자칭 '과학적 논거(증명)'을 한다고 한들 결국 자가당착에 빠질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종교는 종교의 역할이 있는 법인데, 종교를 과학으로까지 둔갑을 시켜서 대중을 '믿게' 만들려는 사이비과학은 어쩔 수 없이 대결에서 질 수밖에 없다.

 

  우리 나라 역사학계의 대결양상도 이와 흡사하게 진행중이다. 이 책에 근거한다면, '강단사학자'로 불리는 과학자, '재야사학자'로 불리는 사이비과학자 들이 허구헌날 제 주장이 옳다고 다투고 있는 모습이 말이다. 강단사학자들은 주장한다. "자신들을 식민사학자라고 매도하는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은 근거도 없는 터무니 주장일 뿐이다. 우리는 철저히 실증적 증거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논리로 역사를 연구하는데 비해서 그들은 실체도 없는 허황된 주장만으로 적절한 증거도 없이 우리를 공격한다. 이에 우리는 그들의 주장을 100%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받아들이지도 않을 뿐더러 그들의 주장이 오늘날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발전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 사이비집단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이에 반해 재야사학자들은 "이른바 우리 역사의 주류를 장악한 강단사학자들이 죄다 '친일사학자'를 옹호하고 그들의 그릇된 식민사관을 신줏단지 모시듯 하며, 그런 식민사관을 금과옥조처럼 맹신하는 바람에 우리 나라의 역사가 날조되고 축소되었다. 심지어 그들은 우리의 찬란한 역사조차 부정하며 일본과 중국의 입맛대로 재단하길 서슴지 않아서 일본우익의 역사왜곡과 중국당국의 동북공정에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찬란한 우리 역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려내려는 우리의 노력을 '사이비'라며 깎아내리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이쯤되면 일반독자들은 이 둘의 대결을 흥미롭게 바라보긴 하지만 정말로 우리의 역사를 '객관적'이며 '제대로' 그려내고 있는 것인지, 다시 말해,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인지 슬슬 헷갈리기 시작한다. 왜 이런 대결양상의 역사학이 펼쳐지는 것인지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답답할 지경이다. 누구 하나 속시원한 대답은 하지 못한 채, 자기들의 주장만 옳다고 씨부리는 작것들을 볼작시면...흠흠. 자기 주장만 옳다고 주장하는 기본도 안 된 짓거리를 보고 있으면 고놈의 주둥이 뿐만 아니라 싸다구를...흠흠. 때찌해주고 싶을 뿐이다. 당췌! 누구 말이 맞는 거냐고???

 

  각설하고, 난 '진리'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명쾌하다고 본다. 재야도 강단을 매국노라고 비판하고, 강단도 재야를 음모론이라 비난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서로서로 비판과 비난의 강도를 높이면서 싸우고는 있지만, 이쪽도 저쪽도 모두 '사실(史實)'에 근거해서 자기가 유리한 쪽으로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한 점이다. 즉, 거의 90%의 사실을 바탕으로 제 주장에 유리하게 근거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도 헛점은 있다. 상대방이 유리한 내용은 거의 99%의 비율로 감추거나 언급하지 않은 채 제 주장에만 열을 올린다는 사실(事實) 말이다. 이를 잘 들여다보면 대충 감이 잡힌다. 어느 쪽의 주장이 완벽하게 들어맞지는 않지만 '믿음'이 가는지 말이다.

 

  사실, 이쪽도 저쪽도 한 가지 간과하는 것이 있다. 바로 '독자'들이 대단히 똑똑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미디어와 대중매체의 발달로 '팩트 체크' 같은 건 거의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자기 논리의 '근거부족'은 생각지도 않고서 제 주장에만 심취해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의 빈틈만 찔러대며 '네 주장은 틀렸다'고만 나불대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만다. 더구나 자기 주장의 결론에 해당하는 '자기 역사관'조차 내세우지 못하면서 상대 주장만 깎아내리는 사학자는 '구관조'로밖에 인식할 수 없지 않을까. 거인의 어깨 위에 앉아 남의 말만 따라하는 사학자라면 말이다.

 

  물론, 젊은사학자의 한계일 수도 있겠다. 주류(강단/식민/친일)와 비주류(재야/민족)들이 아직도 팔팔하게 싸우고 있는데, 새롭게 주류로 발돋움하고 싶은 젊은 '강단사학자'들로서 이 다툼의 틈바구니 끼어들 명분이 마땅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 까닭 때문인지 이 젊은역사학자들은 '식민사관'도, '사이비역사학'도 모두 비판하고 있다.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인지 은근히 주류사학계를 옹호하는 논리는 베이스로 깔고 있다. 정리하면, 자신들은 강단사학자이지만, 수구세력(뉴라이트 등등)과는 확연한 차별을 두고 비난도 확실히 하고 있으나 사이비역사학자들의 인기 많음을 시기한 탓인지 그들에게도 적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겉으로는 '올바른 한국사 정립'을 이야기하고 있지만...이 책을 읽어보아도 알 수 있다. 젊은역사학자들의 참신한 주장과 비판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저 남들 다하는 '식민사관 비판'과 재야사학자들에 대한 '냉소적 비판' 뿐이다. 마치 자기 밥그릇 빼앗긴 강아지마냥...

 

  앞서 이 책의 내용이 흡사 <과학 vs 비과학(지적설계론)>을 닮았다고 이야기했다. 또, 이 대결의 결과는 '주류의 승리'로 끝맺을 거라고도 했다. 시대가 흐르면 더 명확할 것이다. 지금이야 친일파의 잔당들이 아직도 남은 탓에 주류가 강단사학자이고 비주류가 재야사학자처럼 보일 테지만, 조금 더 시간이 흘러 진정한 적폐청산이 완수되는 순간 주류가 뒤바뀔 것이다. 또, 진리는 복잡하지 않고 명쾌하다고도 말했다. 진리는 감추려해도 오롯이 빛나기 마련이다. 아직은 그 진리의 빛이 찬란하지 못한 현실이지만, 결국엔 찬란하게 빛을 발할 때가 올 것이다. 그 때는 모진 바람에 누웠던 풀들도 다시 일어나 춤을 출 것이다. 난 그 날이 오리라 믿는다.

 

  물론 재야사학자들의 이야기를 모두 믿는 것은 아니다. 역사학에 정답은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의 이야기도 '해석'일 뿐이다. 그 해석은 언제든 다시 바뀔 수 있다. 그래서 난 역사를 '맹신'하지 않는다. 그리고 재야사학자들의 주장과 근거에 늘 비판적 잣대를 들이댄다. 이는 강단사학자들의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렇게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 결과가 언제나 강단은 복잡했고 재야는 명쾌했다. 그래서 그런다. 그러나 난 역사를 즐기는 독자일뿐이므로 내 '결과'를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건 전문가들에게 실례이고, 대중들에게는 무례한 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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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1. 오징어의 궤변 | 2018년에 쓴 리뷰들 2018-08-17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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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박씨전 : 결국 예뻐야 하는 걸까?

박진형 저/이현주 그림
아르볼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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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술쌤으로 활동했던 탓에 <교과서에 수록된 책>이나 <고전소설>을 자주 접해야 했다. 그 가운데 여학생들의 필독서가 바로 <박씨전>과 <홍계월전>이었다. 간혹 <장화홍련전>이나 <숙향전>, <운영전>, 그리고 <사씨남정기>를 다루기도 했으나 '여성'이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려 제 능력을 맘껏 펼친 고전작품은 여성영웅이 등장하는 <박씨전>과 <홍계월전>이 으뜸이었다. 개인적으론 <박씨전>보다는 <홍계월전>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이번에 읽게 된 '고전문학시리즈'에는 수록되지 않은 듯 싶어서 살짝 아쉽다.

 

  각설하고, 여성은 아름다워야만 할까? 살짝 변주를 넣은 질문으로는, 여성은 능력보다 외모일까? 여성의 능력은 외모에 비례하는가? 등등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고자 하는 질문이라면 어떤 형식으로도 고쳐 물을 수 있을 정도로 흔한 질문이다. 물론 교과서적인 답변으로는 '아니다'이다. 그러나 현실은...안타깝게도 '그렇다'이기에 풀기 어려운 숙제를 던져주는 질문이다.

 

  '박씨'의 재주는 외모와는 상관없이 출중했으나 외모가 흉측한 탓에 시아버지도 멈칫하고 아들은 외면하며 시어머니는 괴롭히고 하인들은 무시한다. 심지어 박씨의 뛰어난 재주는 임금조차도 '인정'하였으나 조선의 여인은 재주를 인정 받아도 '쓰임'은 없는 존재였다. 결국 박씨의 재주는 가족의 외면을 받고 나라와 시대에 '버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박씨가 외모를 되찾은 뒤에도 '버림' 받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시대였으나 적어도 가족의 외면은 뒤바꿀 수 있었다. 집안 하인들과 이웃들의 무시와 조롱도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다. 위의 질문의 시작은 여기부터다.

 

  오늘날에도 예쁜 여성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은 상당하다. 심지어 예쁜 남성이 더 많은 관심을 받는 시대가 되었을 정도로 오늘날에는 '외모'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성형의술의 발달은 이를 더욱 심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성형괴물', '성형중독'과 같은 반작용도 심화되었지만 그래도 못생긴 남녀보다 잘생기고 예쁜 남녀를 대하는 관심과 사회적 척도는 '하늘과 땅 차이'에 빗댈 정도다.

 

  그럼에도 언제나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겉모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면'이라는 교과서적인 답변은 모범답안처럼 거의 맹신 수준으로 되뇌고 있다. 마치 빨간 신호등을 밥 먹듯이 어기며 무단횡단을 일삼는 어린이가 도덕시험을 풀 때는 정답을 고르고 마는 것처럼 진정성이 없는 데도 말이다. 이렇게 겉으로만 도덕군자인 것처럼 구는 것이 인지상정인데도 '모범답안'은 좀처럼 바뀔 생각을 않는다. 오히려 외모지상주의의 긍극적인 문제점은 바로 이런 '겉과 속이 다른' 우리의 양심이 아닐까? 외모에 끌리고 흔들리는 현실을 애써 부정하고 아닌 척(!)하는 부조리한 슬픈 자화상 말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랬다. 능력과 재주가 비슷하다면 덜 예쁜 여자보다 더 예쁜 여자에게 끌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데도 억지로 원리원칙을 만들고 그 원칙에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비난을 일삼는 짓이 더 한심할 따름이다. 이를 테면, 성형을 해서 예뻐진 것을 반칙이라도 한 것처럼 비난일색인 것도 문제다. 예쁜 연예인에 환호를 보내면서 예뻐지려고 노력한 연예인에게 레드카드를 남발하고 자연산이 아님을 밝혀내는 우매한 대중뿐 아니라 자연산임을 증명하려 애쓰는 연예인 또한 안쓰럽긴 마찬가지다.

 

  '복명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주었다. 가수의 덕목은 가창력이 으뜸일 것이다. 그 가창력이 파워풀한 음량인지, 다채로운 음색인지, 귀를 맑고 청량하게 해주는 톤인지, 그리고 화려하거나 즐겁고 깜찍한 퍼포먼스인지는 그 가수의 역량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얼굴만은 가면으로 가렸기에 가수의 실력을 온전히 '노래'로만 평가하는 것이 신선했던 것이다. 왜냐면 '아이돌 가수'가 화려하게 등장하면서는 가수에게도 외모는 아주 중요한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외모가 노래실력을 앞질러서 '노래는 못해도 예뻐서 인기가수'가 된 아이돌도 배출되기도 한 탓이다.

 

  정리하면, 아름다움이 주는 즐거움을 애써 외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허나 아름다움에 지나친 특권과 혜택을 당연시 하는 의식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또, 겉모습이 추한 것만으로 제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사회풍토도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외모지상주의의 폐해를 들어서 외면의 중요성까지 애써 폄하하려는 어리석음도 더불어 버려야 할 것이다.

 

  내 외모가 공유만 못한 까닭에 연기자는 될 수 없을지 몰라도 훌륭하고 멋진 선생님은 되었다. 선생인데도 공유를 닮았다면 '플러스'가 될 수는 있으나 선생님으로서의 자질까지 부당한 평가를 받는다면 억울한 일일 것이다(")난 억울하다~    by 오징어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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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리뷰어 모집]『알고 싶은 마음에 단숨에 읽는 철학 대화집』 | Wish List 2018-08-1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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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은 마음에 단숨에 읽는 철학 대화집

신창호,남정미 공저
나무발전소 | 2018년 08월


신청 기간 : ~8 19일 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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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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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1 팔로워십, 직장인들의 목숨줄 또는 부장님의 농담 | 2018년에 쓴 리뷰들 2018-08-15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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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군주의 남자들

양선희 저
나남 | 201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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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더십은 많이 들어봤는데 팔로워십은 처음 듣는다. <삼국지>에는 수많은 리더가 등장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신하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간과했었는데, 팔로워십이란 단어를 보는 순간 그 수많은 신하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신하들의 처세'라고 글쓴이는 풀이하였지만, 나는 왠지 '목숨줄'로 읽혔다. 아무래도 숱하게 읽은 <삼국지> 소설 속 인물 개개인의 사실보다는 헬조선을 살고 있는 요즘 직장인들이 이 책 속 신하들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삼국지>의 인물들에 빗대어 풀어낸 책이다. 이 책은.

 

  헌데, 글쓴이는 신하가 취해야 할 바람직한(?) 처세에 더 큰 관심을 둔 모양이다. 제갈량을 제외하고서는 죄다 바람직하지 못한 처세로 때론 제 목숨을 앞당기고, 때론 출세길을 망치고, 신세를 망치는 신하들 이야기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글쓴이는 특히 자기 신념과 다른 주군을 섬긴 순욱과 진궁을 많이 아쉬워했다. 한왕실에 충신이고자 했던 둘은 조조를 한왕실을 되살리려는 만고의 충신으로 여기며 섬기다가 결국 죽임을 당했다. 또, 방통은 제 능력을 다 발휘하기도 전에 눈먼 화살에 맞아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허나 그 죽음을 맞이하게 된 계기는 친구였던 제갈량을 질투하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다분하다.

 

  난세에 영웅이 나는 법이라지만 유비, 조조, 손권 또래의 책사들에 비해 제갈량과 같은 또래 책사들은 출세길이 꽉 막힌 편이다. 요즘도 젊은이들이 원하는 대기업이 있어도 취업과 승진에서 번번히 밀리는 까닭과 마찬가지다. 제갈량과 방통 또래의 젊은 책사들은 잘나가는 조조나 손권 세력 속에서는 명함조차 제대로 내밀기 힘든 시기였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제갈량은 변변치 못한 유비를 따라 나서서 '2인자'의 자리까지 오르는 출세를 하였다. 다른 어떤 젊은 책사들보다 부러워했던 인물이 제갈량의 친구였던 방통이었을 것이다. 그런 방통이었기 때문에 큰 공을 서두르다 안타깝게 생을 달리했다는 해석 말이다.

 

  허나, 그런 아쉬움을 뒤로 하고 글쓴이는 다시 '신하의 처세'에 집중한다.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 '주군의 역린'을 건드려서는 안 된단다. 아무리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할 수 없는 짓을 주군이 하려고 하더라도 바른말을 앞세워서 주군에게 함부로 충고해서는 안 된단다. 설령 주군이 늦게나마 자기 잘못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주군에게 미운털이 박힌 뒤이기 때문이란다. 그래 갖고는 출세하기 힘들다.

 

  또, 조직 내에서 홀로 정의로운 척해서는 안 된단다. 마찬가지로 저만 잘난 체해서도 안 된단다. 조직이라는 생리상 '같은 목적'을 위해서 모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같은 목적'으로 모였다고 해서 도덕적 가치와 양심의 잣대까지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곽가나 주유처럼 주군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는데도 똘똘한 척하는 건 다른 동료들을 적으로 돌리는 어리석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런 어리석은 대표적인 인물로 예형을 들고 있지만, 공융과 양수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모두 주군보다 더 도덕적이고 더 똑똑하다고 잰 체 하다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조직에 몸을 담은 이상 빠르게 출세하고 오래도록 살아남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라고 할 때, 예형이나 공융, 양수는 차라리 조직에 몸을 담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좀 씁쓸하다. 조직에 몸 담는 신하를 오늘날에 빗대어 '취직'으로 묘사하면 할수록 그 신하들의 신세가 참으로 처량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조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치는 '직장인'고 묘하게 오버랩이 되는 면이 없지 않지만...'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몸부림 치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살아남은 직장인들이 행복할 수 있을까? 시대가 달라진만큼 행복의 기준도 달라졌기 때문에 <삼국지> 속 인물들의 모습을 오늘날에 그대로 투영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니 이 책을 너무 심취해서 읽으면 지나칠 수 있다. 그런 점만 요주의하면 재미난 책이다. 딴에는 이 책의 인물들 이야기가 '부장님의 농담'처럼 읽히는 건 나뿐이려나.

 

[오탈자] 253쪽

원문: 조직에서 월급 받으며 한 지나간 고생을 조직에 대해 빚을 준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자신은 인생으로부터 배신당할 것이다.

수정: 조직에서 월급을 받는데도 지나간 고생을 조직에 대해 빚을 준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자신은 인생으로부터 배신당할 것이다.

 

원문: 이때 조정에서 이 문제를 두고 의론하는 과정에서 장완은...

수정: 이때 조정에서 이 문제를 두고 의논하는 과정에서 장완은...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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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2. 왕의 이야기 | 2018년에 쓴 리뷰들 2018-08-06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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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오노 후유미 저/추지나 역
엘릭시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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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판타지의 세계관이 복잡하기 나름이지만, <십이국기> 속의 세상은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제'라는 통치체계이다. 아주 극단적인 모습으로 좋은 왕이면 나라가 풍요롭고 평화로우며, 그 반대면 온 나라가 피폐하고 황폐해진다. 이렇게나 왕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인가? <십이국기> 속에서 군림하는 왕들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수백 년을 살 수도 있는 '신' 또는 '신선'이란 개념의 '신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또 요상한 것은 '신적인 존재'인 왕이 애초부터 신적인 존재로 태어나지는 않는다. 왕은 보통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지만 천제에게 '선택'을 받음으로서 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신에 해당하는 천제가 '실존'하는 건 아닌 까닭에 '기린'이 천제를 대신해서 선택하는 방식을 택하였으나, 이 '기린'에 대한 이야기는 2권에 다시 나오기 때문에 뒤로 넘기련다. 암튼 왕은 하늘의 선택을 받아야만 왕이 될 수 있는 존재이며, 왕의 자식이 왕위를 잇는 그런 방식은 아니라는 점! 이것이 <십이국기>의 세계관 중 일부이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왕은 '선택' 받는 순간부터 '영원히 살 수 있는' 신적인 존재가 된다. 그러나 <십이국기> 속에 열두 나라나 있지만, 그 가운데 '영원히' 나라를 다스리는 왕은 없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영원히 살 수도 있는 왕이 왜 영원히 나라를 다스릴 수 없는 걸까? 책 속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란다. 이른바 실도(失道)를 하기 때문이라는데, 아무리 신적인 존재라도 원래부터 신은 아니었기에 '도덕적인 결함'이 생기거나, 어리석게도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할 경우에는 왕은 '자격'을 잃게 되어 다음 왕이 새롭게 '선택'되어 진다. 이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여러 왕조가 흥망성쇠를 겪는 까닭과 아주 흡사하다. 이 때문에 이 책은 '판타지소설'이면서도 가볍게 읽히지 않고 자못 철학적 고민도 해야만 해서 흥미로웠다. 그렇기에 이 책은 인문학 고전도 아닌 판타지소설을 읽으며 <왕도>를 논할 수 있는 책이라고 소개해야 하려나...

 

  암튼, 기왕에 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썰 좀 풀어보련다. 나는 이 책을 '촛불혁명' 이전에 읽었을 때의 느낌과 이후에 읽으면서 느낌이 사뭇 달랐다. 이전에 읽었을 때에는 그저 '동양풍 판타지소설'에 불과하였으나 이후에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의 무게감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왕이 될 사람이 아무런 고난과 역경, 하다 못해 나라를 다스릴 철학적 고민조차 없을 경우에 그 나라가 겪게 될 운명이 결코 순탄치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역사를 돌이켜봐도 훌륭한 성군이라고 평가를 받은 왕들은 왕위에 오르기까지 순탄하게 오른 경우가 드물다. 반대로 폭군이나 차라리 폭군이라면 내칠 핑계라도 있어서 좋았을 혼군이라 평가 받는 왕들은 바로 이러한 점들이 없거나 부족하거나 그릇된 방향으로 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책은 판타지소설이기에 민주적 방식으로 지도자를 잘 뽑아야 한다는..그런 이야기는 담겨 있지 않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십이국기> 세상속에서는 왕은 '선택'받는다. 아무리 백성이 원하고 능력이 출중하여 왕으로 뽑히길 간절히 바란다고 해도 '하늘(천제)의 선택'이 없으면 고작 '가짜왕'이 되어, 재앙과 요물이 등장해서 온 나라가 황폐해질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왕으로 뽑히기 위해서는, 또는 왕으로 선택 받고 나서도 '백성을 위한' 마음씀씀이를 배우고 단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주인공인 '요코'가 비록 왕으로 선택 받았는데도 왕으로서 '자각'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안타깝지 않고, 당연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촛불혁명' 이전에 읽었을 때에는 '요코가 겪는 고행'을 보면서 안타깝기 그지 없었는데 말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읽으니, 왕이라면, 한 나라를 이끌 지도자라면 더 힘들고 아픈 상황일지라도 극복하고 이겨내서 권좌에 어울릴 권력과 권능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기보다는 만 백성을 위해, 당연한듯이 아픔을 겪는 불쌍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성군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읽게 되었다.

 

  고작 소설을 읽으면서 감정이입이 과했나? 딴에는 요즘 내 관심사가 '여러 나라 지도자들의 행보'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국제적인 관계속에서 '자국이기주의'를 으뜸이라고 내세우는 각 나라의 지도자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심상치 않은 요즘이라서 그런 거라고 변명하겠다. 책 속 이야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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