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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씀] 2020년 3월_29권 | My Story 2020-03-31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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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코로나19가 대유행을 하고 있다.

모두들 건강하시길 기원하고 힘 내시길 바라는 마음 뿐인데...

내 마음만 한 없이 울적하고 있다.

 

2월 마지막주 즈음해서

기분이 다운되기 시작하더니

3월에 들어서는 바닥이 없는 듯이 침몰되고 말았다.

내 생애 최악의 '울증'이려나...

좀처럼 회복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기분전환을 하려고 오전 수업을 마치고 나면

근처 공원을 배회하며 햇볕을 쬐곤 하는데

봄볕이 따뜻하고 꽃들도 만발했는데

전혀 나아지질 않는다.

어쩌면 노총각 히스테리려나...

 

그런 까닭에 책만 읽었다.

독서와 리뷰만이 유일한 탈출구인 마냥...

 

[ 2020년 3월_29권 ]

 

01.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5> 박시백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161597 (Think 5. 독재자의 전형을 보여준 '세조')

 

02. <안녕, 낯선 한글> 유영준, 정유진 / 한글공방 / 2019년 9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168385 (Think 1. 낯선 시도조차 가능한 문자보유국으로서의 자긍심)

 

03.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과학 지식 101> 조엘 레비 / 고호관 / 동아엠엔비 / 2020년 1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168584 (Think 1. 당신의 생각보다 더 가까이에 있는 과학)

 

04. <의학 생명계열 진로 로드맵> 정유희, 안계정, 김채화 / 미디어숲 / 2020년 3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178801 (Think 1. 대학을 가려는 모든 학생들의 필독서)

 

05. <미래가 온다, 바이러스> 김성화, 권수진 / 이강훈 / 와이즈만북스 / 2019년 10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185250 (Think 3. 판데믹을 대비하라! 알아야 막는다!!)

 

06. <80일간의 세계일주> 쥘 베른 / 김석희 / 열림원 / 2007년 1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185761 (Think 1. 과학지식과 사회문제를 동시에 배울 수 있는 교과서)

 

07. <거꾸로 읽는 철학이야기> 강성률 / 글로벌콘텐츠 / 2020년 1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189483 (Think 1. 철학은 어렵지 않다)

 

08.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6> 박시백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192672 (Think 6. 드디어 사림파가 등장한다)

 

09. <과학이 어려운 딸에게> 마리 퀴리, 이자벨 샤반 / 연순 / 자음과모음 / 2020년 3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201551 (Think 1. 100년 전, 마리 퀴리의 목소리를 듣는다)

 

10.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7> 박시백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209204 (Think 7. 연산은 다 계획이 있었다)

 

11. <이순신을 만든 사람들> 고진숙 / 최병대 / 한겨레아이들 / 2004년 10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211408 (Think 1. 지금이라도 임진왜란 바로 보기)

 

12.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홍기빈 / 책세상 / 2020년 2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213137 (Think 1. 경제학 원론을 되돌아보다)

 

13. <군자론> 이한우 / 쌤앤파커스 / 2020년 2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217812 (Think 1. 말만 하는 선비, 일이 되게 하는 군자)

 

14. <눈보라> 알렉산드르 푸시킨 / 심지은 / 녹색광선 / 2019년 12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220145 (Think 1. 푸시킨을 읽어 본다)

 

15. <초등학생이 딱 알아야 할 국어 상식 이야기> 조영경 / 홍나영 / 파란정원 / 2020년 3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225976 (Think 4. 국어 공부를 합시다)

 

16.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8> 박시백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226445 (Think 8. 자리 보전만 한 임금, 중종)

 

17. <정치 이야기, 뭔데 이렇게 재밌어?> 콘덱스정보연구소 / 이은정 / 리듬문고 / 2020년 2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226764 (Think 1. 재밌는데 알맹이는 어디 갔나요?)

 

18. <새는 건축가다> 차이진 원 / 박소정 / 현대지성 / 2020년 3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234706 (Think 1. 둥지는 대자연의 일기장이다)

 

19. <뻔뻔한 우정> 박현숙 / 정경아 / 서유재 / 2020년 2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242279 (Think 1. 아름다운 동화를 읽고 그 '뒷이야기'까지 해볼까나)

 

20. <슈퍼 씽킹> 가브리엘 와인버그, 로런 매캔 / 김효정 / 까치 / 2020년 2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246498 (Think 1. 뭔 말인줄은 알겠는데)

 

21.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9> 박시백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248061 (Think 9. 사화를 딛고 사림의 세상을 만들었으나...)

 

22. <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38> 존 디콘실리오 / 최가영 / 내인생의책 / 2014년 7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252045 (Think 4. 식상하겠지만 '항생제 오남용'은 막아야 한다)

 

23. <프런티어 걸들을 위한 과학자 편지> 유윤한 / 궁리출판 / 2020년 2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256177 (Think 1. 모든 프론티어 걸들을 응원합니다)

 

24. <재밌어서 밤새 읽는 인류 진화 이야기> 사마키 다케오 / 서현주 / 더숲 / 2020년 1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260322 (Think 2. 진화의 방향이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다)

 

25. <사회학 용어 도감> 다나카 마사토, 가츠키 타카시 / 황명희 / 성안당 / 2020년 2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260385 (Think 1. 이 책을 읽는 방법은..)

 

26. <미터 군과 판타스틱 단위 친구들> 우에타니 부부 / 오승민 / 더숲 / 2020년 1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271257 (Think 2. 단위와 친해지자)

 

27. <존리의 부자되기 습관> 존리 / 지식노마드 / 2020년 1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280536 (Think 1. 돈이 당신을 위해 일하게 하라)

 

28. <니체와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양승권 / 페이퍼로드 / 2020년 2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286116 (Think 1. 자신조차 사랑하지 않으면서 남을 사랑한다는 거짓말은 하지 말자)

 

29.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박시백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내 리뷰] http://blog.yes24.com/document/12286482 (Think 10. 선조는 '반면교사'의 교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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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llenge 145. [3/31 야밤독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 | 새벽/야밤 독서 2020-03-3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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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캠페인 참여

1) 읽은 시간과 읽은 쪽수

 - 읽은 시간 : 21:45 ~ 22:30 , 읽은 쪽수 : 12쪽 ~ 52쪽

 

2) 읽은 책 이름과 책 검색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

박시백 글,그림
휴머니스트 | 2015년 06월

 

3) 책 읽은 뒤의 느낌

  [ 11권 제1장 : 왕과 세자 ]

  임진왜란 당시 '분조'를 이끌던 광해군의 활약은 대단했다.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오던 왜적의 기세에 눌려 파천에 파천을 거듭해 의주까지 올라온 선조는 하루 빨리 '압록강'을 넘어 요동으로 들어갈 생각만 했지 조선을 지킬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분조'이고, 분조를 이끌고 떠난 광해는 선조를 대신해서 '떨어진 조선의 자존심'을 다시 세우며 의병을 모으고 난리를 수습해 나갔다. 백성들도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선조에 대한 미움은 숨기지 않았지만 광해군의 의연한 모습에 다시 똘똘 뭉치는 모습을 보이며 안정세를 보일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선조는 명나라로부터 [오는 건 니 마음, 밧뜨!! 대접받을 생각은 마라]는 답변을 받고 요동으로 갈 생각을 접게 된다. 섭섭한 마음을 뒤로 한채 '상황'을 다시 살펴보니, 평양까지 밀고 올라온 고니시는 더는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고(이순신의 활약 덕분), 백성들도 의병을 조직해 왜적과 맞서고 있으며(광해군의 활약 덕분), 자신이 굳이 도망가지 않아도 될 만한 상황이라는 판단이 서자, 신하들과 백성의 마음이 '광해'를 향하고 있는 것에 무서운 질투를 한다(쪼다~)

 

  허나, 이 모든 일은 '자신이 불러온 일'이므로 누구 탓도 하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못된 꾀'를 내니, 바로 '선위 파동'이다. 때마침 올라오는 상소들 가운데 "하루 빨히 선위를 하여 광해로 하여금 무너진 나라를 되살리게 하시옵소서"라는 내용을 빌미로 삼아 은근 슬쩍 선위하겠다는 쇼를 한다. 정승과 도승지 몇 명만 있는 자리에서 말이다. 원래 임금이 선위를 하면 신하들은 만류하는 것이 순서인지라 당시에 참석하고 있던 '윤두수'는 천부당만부당 한 일이니 명을 거두어 달라고 청할 뿐이다. 몇 차례 더 이런 식으로 뜸을 들이다 본격적인 '선위 파동'을 일으키는데, 이로 인해 선조 자신의 왕권을 안정시키는 꼼수를 부렸던 것이다. 이로써 곤란해진 것은 멀리서 '분조'를 이끌며 개고생하던 '광해군'뿐이었다. 못난 애비!

 

  이 와중에 '당쟁'도 벌어졌는데, 임진왜란 당시에 집권당은 '북인'이었다. 애초에 '서인'과 '동인'의 대결이었던 것이 서인세력이었던 '정철'에게 복수하자는 '북인'과 원만히 해결하자는 '남인'으로 가라지더니 이때쯤에는 '서인'과 '북인'의 대결양상이 벌어지게 되었다. 물론 전쟁이 격해지던 때에는 합심해서 난리를 극복하는 기특한 모습도 보여주곤 했지만, 급한 불만 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당쟁'을 일삼았으니 참으로 가관이었다. 사림들의 '성리학적 이념'의 한계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유재란 때 서인이 몰락하면서 '북인'의 세상이 되었고, 이제는 '북인'과 '남인'의 대결양상을 보여주었으나 어차피 같은 '동인' 출신이었고, 또, 남인의 수장으로 불리던 '유성룡'이 대단히 친화적인 인물이었기에 그리 큰 대결은 벌이지 않았다. 그러나 '북인의 집권'은 분화를 낳았으니 바로 '대북'과 '소북'으로 분열하고 만 것이다.

 

  잠시 '대북'과 '소북'을 설명하기에 앞서, 명나라가 조선의 세자책봉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가뜩이나 선조의 '선위 파동'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광해인데, 명나라까지 책봉을 미루고 또 미루는 형국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게 된 셈이다. 더구나 이때를 노려 '선조'도 세자책봉을 서두르지 않게 되고 말았다. 명나라가 이렇게 나온 까닭은 '만력제'도 선조처럼 적자가 없고 서자들만 잔뜩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에 신하들이 '서장자'를 내세워 세자를 삼으려 했으나 '만력제'는 셋째를 좋아해 황세자 책봉을 미루고 또 미루니 명나라 신하들은 조선에서 '첫째'가 아닌 왕자가 세자가 되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당할 것을 우려해 '광해의 세자책봉'을 극구 반대했던 것이다. 전쟁통에는 그렇게나 칭찬하던 이들이 말이다.

 

  이런 와중에 '소북'이었던 유영경이 선조의 맘에 쏙 들어서 파격승진을 거듭했는데, 그의 능력은 '선조의 의중'을 잘 알아내는 것이었다. 선조의 마음에 '광해'에게 없다는 사실을 간파하자 유영경은 광해를 대신해 '영창대군'을 세자로 밀어붙이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대북'은 광해를 지지하고, '소북'은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세력이었는데, 조정에 '유영경'을 따르는 세력이 커지자 이들을 '유영경을 따르는 세력'이라 하여 '유당'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광해군은 사면초가의 상황에 처하게 되어 10년이라는 세월을 '세자 아닌 세자'로 지내게 된 것이다. 이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러 영창대군이 2살이 되던 해에 선조가 쓰러지게 되는데...

 

예스블로그 독서습관 캠페인에 참여하며 쓴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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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10. 선조는 '반면교사'의 교과서다 | 2020년에 쓴 리뷰들 2020-03-3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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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박시백 글,그림
휴머니스트 | 2015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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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조실록>을 읽으면 꽉 막히는 기분이다. 고구마 50개쯤 연속으로 먹은 느낌이랄까? 왜냐면 '선조'가 답답하기 때문이다. 왕조국가에서 임금은 '최종결정권자'다. 비록 신하들에 휘둘리는 임금이라고 할지언정 결정은 임금이 내린다. 그런데 '선조의 결정'이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딴에는 굉장히 똑똑한 임금이다. 명종과 첫 만남에서도 기지를 발휘해 '임금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고, 정통성이 부족했는데도 '왕권 강화'에 성공한 것만 보아도 똑똑할 뿐 아니라 노련하기까지 할 정도다. 그 당시 '사림들'이 얼마나 논리정연한 인물들이었느냔 말이다. 이들의 논쟁은 3박4일을 떠들어도 지치지 않을 정도일텐데 선조는 이보다 더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서분당'이 되어 '당쟁'이 벌어져도 선조는 이를 역이용하면 이용했지 결코 이용당하지는 않는 '난공불락'의 임금이었다. 그런데 '난공불락'까지는 참 좋았는데, 임금치고는 참 가벼운 위인이었다.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것은 다반사요, 불리하다 싶으면 남에게 책임전가하기 일쑤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자식에게까지 매몰차게구는 냉혈안에 철면피가 따로 없었다. 도대체 이런 임금을 어떻게 평가하면 좋겠냔 말이다.

 

  그런데도 '신하 복'은 역대 최고였다. 율곡 이이부터 시작해서 퇴계 이황, 서애 유성룡, 그리고 성웅 이순신까지 인재들이 차고 넘치다 못해 무능하고 무지한 선조가 속절없이 죽이고 또 죽여도 영웅이 또 나오는 복을 타고난 임금이기도 했다. 그 덕분에 '망조가 든 나라'가 망하지 않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물론 '망조'라는 것이 못난 임금과 인면수심의 몰지각한 기득권층에 한해서 천만다행이었고 말이다. 만약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몽땅 '망조'가 들었다면 왜적의 침입에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광해군'이라는 정말 뛰어난 세자가 있었기에 천만 다행인 셈이다. 만에 하나 광해가 아닌 '임해군'이 세자에 올랐더라면 아무리 천운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홀랑 말아먹었을 것이다. 그만큼 뛰어난 재능을 타고난 세자가 바로 '광해군'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뛰어난 세자를 '선조'가 망치고 만다. 자신이 못난 임금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곱게 물러나 상왕에 올랐으면 그나마 낳았으련만 왜란이 끝난 이후에도 '10년'이나 더 해먹으면서 광해를 괴롭혔던 탓에 끝내 광해는 '앙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원래 '실리적인 위인'들이 한 번 돌아서면 칼 같은 데가 있는 법인데, 광해는 누구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군주였다. 이런 군주가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주위를 조용하게 하고 탄탄한 지지를 갖출 수 있도록 해야 하건만, 선조는 아예 작정한 듯 애초부터 없던 '정통성 컴플렉스'를 되찾겠다는 심보로 '선위파동'을 일으키며 광해를 신경쇠약에 걸리게 만들었다. 마치 영조가 '사조세자'를 죽였듯 말이다.

 

  암튼, 선조는 욕을 바가지로 먹어도 싼 임금이다. 왜란이 끝나고 '공신'을 책봉할 때도 옹졸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나라를 위해 하나 뿐인 목숨을 바친 장수와 의병들에겐 '공신 작위'는커녕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따라 호종한 정승과 판서 이하, 당하관은 물론 내시까지 챙기며 공신에 올려놓았고, 전쟁에서 승리한 모든 공은 '명나라'에게 떠넘겼다. '재조지은(다시 건국하게 한 듯한 은혜)'을 갚겠다며 명나라에 납죽 엎드린 꼴이란 몰염치를 찬란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행태가 당장은 자신을 욕보이지 않게 하는 수단이 될 수는 있어도 오랜 뒤에 후손들이 당당히 욕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는 미치지 못한 모양이다. 차라리 '선조'가 인정하지 않았던 영웅들이 있어 우리는 조상들의 빛나는 업적을 기릴 수 있고, '국난극복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선조와 같은 못난이들'을 골라낼 수 있는 안목을 갖추게 하였으니 '반면교사'로 삼을 좋은 본보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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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1. 자신조차 사랑하지 않으면서 남을 사랑한다는 거짓말은 하지 말자 | 2020년에 쓴 리뷰들 2020-03-31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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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니체와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양승권 저
페이퍼로드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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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첼 나오미 레멘이 지은 <할아버지의 기도>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란에서는 화려한 무늬로 촘촘하게 짠 카펫에 일부러 흠을 하나 남겨놓는다고 한다. 이것을 '페르시아의 흠'이라고 부른다. 또한 인디언들은 구슬 목걸이를 만들 때 완벽한 구슬들 틈에 깨진 구슬을 하나 꿰어 넣는다고 한다. 전혀 흠결이 없는 목걸이에는 영혼이 담길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돌담을 살펴보면, 돌과 돌 사이를 촘촘이 메우지 않고 일부러 엉성하게 빈틈을 둔채 그 틈새로 바람이 지나가게 한다. 겉으로는 금방 무너질 것 같지만 이 돌담은 여간한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 이책, 87쪽 -

 

  '니체 철학'의 핵심 키워드는 니힐리즘, 위버멘쉬(초인), 영원회귀이고, '장자 철학'은 무(無), 진인(眞人), 만물의 순환이다. 이 둘은 2000년이라는 '시간적' 제약과 동서양이라는 '공간적' 제약까지 꿰뚫고서 서로 맞닿아 있다. 그러나 비슷한 듯 다르고, 안 닮은 듯 닮은 두 사람의 철학을 깊이 파고들면 파고 들수록 머리만 아프다. 원래 철학이라는게 가볍게 지나갈 때는 '우와~'하며 탄복을 하게 되지만 깊이 파고들수록 머리만 아플 뿐이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잘 웃지 않는다. 특히나 서양철학자들은 말이다.

 

  하지만 다른 철학에 비해서 '니체'와 '장자'는 읽기에 수월한 편이다. 철학의 정수까지는 잘 몰라도 '한편의 재미난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과 장자의 <장자>는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 '철학의 진수'를 담았기에 읽다가 보면 저절로 탄복하는 책이기도 하다. 책을 덮고 나면 그게 뭔지 잘 몰라도 말이다. 그럴 땐 이것 하나만 기억하면 좋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자신조차 사랑하지 않으면서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이다' 니체와 장자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다.

 

  이처럼 니체와 장자 철학의 밑바탕에는 '자기애(自己愛)'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읽다보면 흐믓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그리고 어떤 문제든 '직시하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죽음'조차 '삶'이니 '죽음'을 회피하려는 자는 '자기 삶'에서 도망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왜냐면 누구나 죽기 때문이라는 당연한 이유 때문이다. 그렇기에 '죽음'을 회피하지 말고 죽음 앞에 '마주서기'를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삶'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까닭은 '내일 죽을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늘 하루'가 너무나도 소중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죽음'을 망각하는 순간 자신을 함부로 하며 건강을 해치는 행동도 서슴없이 하다가 끝내 건강을 잃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빈틈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빈틈을 매꾸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진정 아름다운 법이라고 말한다. 니체의 '위버멘쉬'나 장자의 '진인'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다. 초능력을 갖춘 완벽한 사람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멋진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흠결'이 있는 사람이 되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도 말한다. 사실 완벽을 추구하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 모자란 구석이 있어야 '사람 냄새'가 나기도 하고, 간혹 실수도 해야 '정감'이 가는 법이다. 그런데 세상 모든 철학은 '완벽'을 말한다. 이게 다 플라톤의 '이데아'론 때문인데, 그래서 플라톤이 재수탱이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런 사람에게 <국가>를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말이다. 또한 '공자'도 밥맛이다.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면서 자신은 칠순이 넘도록 살았다. 그러면서 정작 공자가 '노장사상'을 비판하는 대목을 들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현대인은 철학자들도 아닌데 너무나 '완벽한 삶'을 꿈꾸곤 한다. 10대에 완벽한 스펙을 쌓아 20대에 명문대에 입성하고 30대에 대기업에 안착해서 '고수익'의 안정적인 삶을 계획함 40대에 완벽한 가정을 꾸려 50대에 은퇴를 하고 60대 이후부터는 안락한 삶을 꿈꾸는 이상적인 삶을 지향한다. 그러기 위해서 초등학생 때부터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도록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바쁜 일상을 살아간다. 20대에도 취직과 알바, 그 사이의 간극을 초월하기 위해 청춘을 허비하고 30대에 안정된 삶을 꾸려가려고 자신의 건강까지 해쳐가며 애쓴다. 40대가 되어선 파김치가 되어 건강마저 잃어버리고서는 50대가 되기도 전에 자녀들 사교육비와 대학등록금으로 '노후대책'은 마련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60대에 손주들 뒤치닥거리나 하며 '빈곤한 노후'를 맞이하게 된다.

 

  도대체 왜 이러고 사느냔 말이다. 결국 이러기 위해서 그렇게 바쁘게 살아왔냔 말이다. 니체와 장자가 말한다. '완벽'하려 하지마!! 사람은 누구나 '빈틈'이 있기 마련이야!!! 그러니 '노력'은 하되 매달리지는 말란 말이야!!!! 그리고 그 '노력의 방향'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이를 테면, '봉사하는 삶'은 어때? 세상엔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곳이 많다고. 너만이 가진 '재능'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이 반드시 있을 거란 말이야~ ...이렇게 말이다.

 

  철학은 절대로 '경전'을 달달 외우려 들 필요는 없다. 그저 읽고, 깨닫고, 실천하면 그뿐이다. 행동하지 않는 철학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니체와 장자가 말한다.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완벽하지 못함을 인정하라고 말이다. 그러면 적어도 스트레스는 사라질 것이다. 부담을 덜고 인생을 즐기라고 말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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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llenge 144. [3/30 야밤독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 새벽/야밤 독서 2020-03-30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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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캠페인 참여

1) 읽은 시간과 읽은 쪽수

 - 읽은 시간 : 22:00 ~ 23:05 , 읽은 쪽수 : 248쪽 ~ 303쪽

 

2) 읽은 책 이름과 책 검색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박시백 글,그림
휴머니스트 | 2015년 06월

 

3) 책 읽은 뒤의 느낌

  [ 10권 제7장 : 정유재란과 그 뒤 ]

  임진왜란은 7년간 벌어졌는데, 햇수로 초반 2년과 후반 2년에만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고, 가운데 3년여 간은 명나라와 왜의 '강화조약'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허나 이 시기에도 왜적은 '부산포'를 거점으로 남해일대에 견고한 '왜성'을 쌓고 인근 지역을 '분탕질'하며 조선백성들을 괴롭히며 수시로 왜국을 드나들었는데도, 명나라군은 방관했고, 조선군은 분통을 터뜨렸다. 허나 조선 조정은 하루빨리 '강화'를 해서 전쟁이 끝나기만 바랄 뿐,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은 오직 '주둥이'만 놀릴 뿐이었다.

 

  이 와중에 강화협상을 주도하던 '심유경'과 '고니시'의 거짓 합의문이 들통나서 협상은 깨졌고, 다시 '정유재란'이 일어나게 된다. 이에 주동자였던 '고니시'는 벌을 받는 대신 전쟁에서 공을 세우라는 협박(?)을 받았고, 심유경은 명으로 돌아가 죽임을 당했다. 한편, 고니시는 공을 세우기 위해서 '조선 수군'을 무너뜨려야만 했는데, 조선에는 '이순신'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난공불락'의 성앞에 이도저도 못하는 듯 애만 끓이고 있었다. 그러다 조선의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정탐하게 되는데...

 

  문제의 핵심은 '선조의 뻔뻔함'이었다. 후안무치도 '선조' 앞에서는 두손 두발을 들고 패배를 인정할 것이다. 어찌어찌 한양으로 환궁을 하게 된 선조는 지지부진한 강화협상으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졌는지 애꿎은 의병장과 공신들을 역모로 의심해 죽이더니 끝내 이순신에게조차 불만을 털어놓았다. 하긴 이순신도 답보 상태이긴 마찬가지였다. 명나라의 개입으로 왜적을 눈앞에 두고도 쳐부수지 못하게 하더니만 끝내 견고한 '왜성'을 버팀목 삼아 꼼짝하지 않고 나오질 않으니 '수군의 단독작전'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더구나 '무적 신화'를 쓰고 있는 이순신이었기에 '이순신의 깃발'만 보이면 그저 내빼버리는 왜적을 어찌할 수 있겠냔 말이다. 방법은 육군과 수군의 '합동작전'뿐이었는데, 조선군의 초라한 육군만으로는 수군을 지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더구나 선조가 의병장을 역모로 몰아 죽여버리니 의병들도 뿔뿔이 흩어져 버렸는데 어찌 할 수 있겠냔 말이다. 명나라군은 밥만 축내다가 돌아가버린 상황이었는데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원균'이 나대기 시작한다. 이유는 딱 하나다. 이순신이 자신보다 높은 '상관'으로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이다. 어처구니 없는 것은 '자신의 공'이 보잘 것 없는데도 부풀려 잘난 체를 하는 것이고, 이순신의 공은 깎아내리기 일쑤였으니 '시기심'이고, '질투심'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런데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원균의 뇌물'을 받아먹은 고관대작들이 이런 '원균'을 두둔하며 '선조'의 후안무치와 짝짜꿍이 맞게 되었다는 점이다. 고니시는 이런 정황을 눈치 채고 원수 같은 '가토'와 꾀를 낸다. 조선에 이러이러한 정황이 포착되었으니 '거짓정보'를 흘려서 '이순신'을 모함해서 수군에서 몰아내자는 작전이었다. 원수 같은 '고니시'의 꾀라 씁쓸했지만 적을 기만하는 작전은 맘에 들었는지 가토는 군말없이 작전에 응수했다. 그래서 가토가 이끄는 병력이 이미 부산포에 도착했는데도 아직 출발전이라며 오는 길을 막아 기습을 한다면 능히 가토를 섬멸할 수 있을 것이고, 가토가 죽으면 왜군의 전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조선에 남아있던 왜군도 모두 철수하게 될 거라는 '거짓 정보'를 교묘히 흘린다.

 

  이에 홀랑 넘어간 것이 다름 아니라 '선조'다. 선조는 내심 이 기회를 몰아 왜적의 예봉을 꺾으면 전쟁이 하루 빨리 끝날 수 있을 것이란 조바심을 내며 이순신에게 섬멸할 것을 명하지만, 매사에 조심스럽고 완벽한 작전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 이순신은 자신들의 척후를 이용해 정탐한 결과 '가토'가 이미 부산포에 도착했고, 주위의 왜성들에서 조선 수군의 움직임을 낱낱이 정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출정을 거부하게 된다. 이에 선조는 불 같이 화를 내며 '원균'이었다면 당장 출전해 왜적을 소탕했을텐데 '이순신'이라서 좋은 기회를 허투루 날렸다며 당장 이순신을 붙잡아 죽이라고 명을 내린다. 이에 정탁이 "전시에 장수를 바꾸는 법은 없다"며 극구 말리지만 동네 엉아였던 류성룡마저 이순신을 벌 주라고 나서며 '선조'의 비위를 맞추기 바빴다. 이에 이순신은 파직 당해 고문을 당하며 죽을 고비를 맞았고, 원균은 이순신의 '자리'를 차지해 당연한 결과라며 연일 자축을 벌였다.

 

  그러나 원균은 이순신의 위치에 올라서고 나서야 '정황'을 알아챘다. 이순신의 말대로 왜적은 견고했고, 함부로 나서다간 '조선 수군'만 궤멸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에 원균은 자신의 호언장담을 바꿔 '이순신이 말한대로' 육군이 먼저 싸워 왜적을 바다로 내몰아준다면 내가 가서 섬멸하겠다'는 보고를 올리며 미적댔다. 이에 선조는 '조선 수군'이 나가 싸우기만 하면 승리를 거두었으니,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원균'에게 당장 나가서 공을 세우라고 밀어붙이기까지 한다. 그래도 미적대던 원균은 도원수 권율이 불러 '나가 싸우라'고 말해도 듣지 않으니 곤장까지 쳐버렸다. 육군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수군이 나서서 '해결'하라고 밀어붙이는 꼴이었다. 이 당시의 권율도 꽤나 용렬한 짓을 하고 만 것이다. 죽을 것을 빤히 알고서도 부하 장수를 아끼기는커녕 죽음으로 몰아대는 격이었으니 말이다.

 

  이에 열 받은 원균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전군을 이끌고 출정을 하지만 애초부터 '스타일'이 달라도 너무 달랐기에 '무적'이던 조선 수군은 '칠천량'에서 맥없이 전멸하고 말았다. 원균은 막무가내로 들이받는 방법밖에 모르던 장수였고, 그런 방법이 육지에서는 먹힐지 몰라도 바다 위에서는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순신이 직접 키운 함대라해도 '장수'가 바뀌니 손발이 맞지 않았고, 조선 수군은 거북선 3척을 포함해 판옥선 160여척이었고, 왜적 수군은 1000여척이었으니 애초에 맞붙어 싸워서는 승산이 없는 전투였다. 그런데 이번엔 왜적들이 육지와 바다에서 협동작전을 펼쳤고 조선 수군을 살살 몰아 끝내 '칠천량'에서 몰살을 시켜버린 것이다. 조선 수군의 첫 패배다.

 

  뻔뻔한 선조는 '원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고문을 받고 백의종군하러 내려가던 이순신에게 다시 복직을 시켜주었다. 허나 이순신은 어머니와 아들의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이 마르지도 않은 상태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며 맞서 싸울 장졸과 무기를 수소문해 모은다. 이때 배설이 빼돌린(?) 판옥선 12척도 되찾는다. 이때 뻔뻔한 선조는 고작 12척으로 무엇을 하겠냐면서 수군을 해체하고 모두 육지에 와서 싸우라고 명하지만,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해볼만 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그리고 이순신은 자신의 말을 '증명'한다. 이는 애초부터 조선의 조정이 얼마나 무능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뻔뻔한 선조부터 자신의 목숨이 붙어 있는 까닭은 오직 '이순신'에게 달렸고, '수군의 활약'이 없었다면 전쟁은 일찌감치 '패배'했을 거라는 정황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암튼, 이순신은 울돌목에서 왜선 300척 중 200여척을 쳐부수며 '천운'이었다는 말을 남긴다. 겨우 한숨을 돌린 수군은 충청도 앞바다로 후퇴해서 다시 재건에 성공했으며, 이때 재건한 수군으로 훗날 노량해전에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암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유재란'을 일으키며 명나라 정복이란 목표를 수정해서 조선의 4개 도를 점령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특히 '전라도'를 집중공략하며 조선왕의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심보로 더욱더 잔혹한 살상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퇴각했던 명나라군도 다시 증강해서 파병하였으며 그 결과, 명나라군과 조선군의 합동연합작전을 실시한다. 이에 울산, 사천, 왜교로 쫓겨들어간 왜적들은 '조명 연합군'의 맹공을 맞아 분전했는데, 어이없게도 가토가 울산성을 지켜내더니 나머지 사천성과 왜교성으로 진격했던 조명연합군도 맥없이 패배해 후퇴하고 말았다. 결국 피해가 더 커지는 것을 막을 심산으로 명나라군은 '왜적의 퇴로'를 열어주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는데, 이를 결사반대했던 인물이 바로 '이순신'이다. 이순신이 간곡히 말하길 "왜는 믿을 수 없으니 이대로 돌려보내면 반드시 다시 쳐들어올 족속들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멸족시켜야 합니다"라고 주장했기에, 명 수군도독이었던 진린이 이순신의 충정에 감복해 따랐고, '노량해전'에서 빛나는 전공을 세웠다. 허나 눈먼 총탄 하나가 장군의 가슴을 꿰뚫으니 빛나는 승리에도 온백성이 울고 말았다.

 

  여기서 끝맺었으면 좋으련만, 뻔뻔한 선조는 '선무공신'에 원균을 올리고 '의병장'들은 단 한 명도 올리지 않으면서 '호성공신'에는 내시들까지 포함시키는 후안무치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는 '자신의 못난 모습'을 애써 감추기 위한 모략이었으며, 그런 못난 임금을 따라 도망만 다녔던 '사대부'들이 면죄부라도 받은 양, 못난 임금을 옹호하였기에 나올 수 있었던 결과였다. 그나마 '이항복'만이 자신은 공이 없다면서 '공신'을 반납하려 하자 선조는 눈물까지 흘리며 "경이 이렇게 하는 것은 진심으로 충장에서 나온 말이니 못난 임금을 탓하지 말고 공을 사양도 하지 말시오. 공의 덕이 없었으면 어찌 오늘이 있을 수 있었겠소"라며 울먹였다고 하는데, 하나뿐인 목숨 바쳐 싸웠던 장수와 의병들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이렇게 눈물을 보인 적이 없다고 전하니 참으로 뻔뻔한 임금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는 영웅은 뻔뻔함을 보여준 이들이 아니라, 진정 나라가 어려울 때 용감하게 일어나 '행동'하는 분들이었으니. 지금의 우리는 이런 조상을 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할 따름이다. 이렇게 잘난 조상을 둔 우리는 두 번 다시 이런 위기를 맞이하지 않도록 똑똑히 공부해야 할 것이며,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는 자세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예스블로그 독서습관 캠페인에 참여하며 쓴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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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1. 돈이 당신을 위해 일하게 하라 | 2020년에 쓴 리뷰들 2020-03-3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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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존리의 부자되기 습관

존리 저
지식노마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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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서도 '투자'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은 참 알쏭달쏭할 따름이다. 대한민국의 근대화가 '대한제국'에서 비롯되었지만 '경제근대화'는 2000년 이후 IMF를 극복한 시점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제강점기부터 우리는 전세계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를 시작하였지만 일제의 수탈과 억압으로 인해 제대로 된 자본주의를 경험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해방 뒤에 혼란을 겪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하며 자본주의 사회를 구축했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여전히 '자본'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었다. 한국전쟁을 마치고 난 뒤에는 '경제성장'보다 급한 불이 '배고픔 해결'이었고, 미국의 원조 등으로 먹거리가 해결되자 곧바로 '산업역군'이 되어 온국민이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근면성실만 외치던 시절이었다. 80년대에 들어서 경제는 좀 나아졌지만 '군사독재의 끝자락'에서 정치는 여전히 깜깜한 상황이었기에 자본주의는 제대로 정착하기 힘들었다. 90년대 들어서 군사독재를 청산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OECD 회원국'의 위상을 갖게 되었지만 곧바로 찾아온 IMF 금융제재는 그동안의 경제적 호황이 '구조적'으로 문제점이 많았음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고, 이를 통해 온국민은 또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돈을 버는 부류는 따로 있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보여주듯이 '주식투자'의 방법을 꿰뚫고 있는 이들이 그 위기 사태에서도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올바른 방법은 아니다. 이는 국가가 온국민을 상대로 '주가조작'을 해서 일부 특권층에게만 이득이 돌아가게 하고 온국민은 '휴지조각'만 챙기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행태는 절대 좌시할 수 없으며 국민으로서 절대 용납해서도 안 되는 부정부패한 행태이다. 또다시 국가가 국민들을 우롱하는 이딴 짓을 하게 만들어서는 결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금융경제 공부'를 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방법 말고도 '돈이 열심히 움직여서 돈을 버는 방법'을 깨닫게 해주어야 한다. 돈은 '돌고 돌기' 때문에 돈이라고 부른다는 개념과 같은 이치다. 이 책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부자가 되려면 예금이 아니라 투자를 해야 한다'이고, 둘째는 '돈을 위해 일하지 말고 돈이 당신을 위해 일하게 해야 한다'이다.

 

  첫째 이유를 설명하면, '예금이자'보다 '주식이나 펀드로 얻는 이득'이 더 크기 때문이다. 30년을 예금했다면 원금 100만원의 이자는 연평균 2%로 잡아도 해마다 2만원씩 30년을 모아봤자 60만 원이 늘어난 160만 원밖에 안 된다. 하지만 유량기업의 1만 원 상당의 주식을 100만 원어치 100주를 사서 30년을 간직했다면 LG전자의 주식의 수익률로 계산을 하면 15배 올랐으므로 1주당 14만원의 이득을 보게 된 셈이므로 1400만 원의 이득을 얻게 된다. 물론 단순비교이므로 세부적인 손익계산은 현저히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투자의 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사실만 깨달으면 된다.

 

  둘째 이유를 연이어서 설명하면, 소중한 자녀의 10살 생일에 1만 원어치 주식이나 펀드를 선물하는 예를 들 수 있다. 부모를 비롯해서 친척이나 친구들까지 모두 10명에게 1만 원어치씩 받았으니 총 자산은 10만 원이 될 것이다. 그렇게 10년이 지나 20살 생일이 되면 그 주식이나 펀드가 올라가 있을 것이다. 앞의 예처럼 몇십 배까지는 아니어도 몇 배는 오를 것이다. 5배만 올라도 한 주당 5만 원의 가치가 될 것이며, 1주씩이었으면 50만 원의 자산이 되고, 10주씩이었으면 500만 원, 20주씩이었으면 1000만 원의 자산이 모아졌을 것이다. 그 돈으로 대학등록금을 내서 더 좋은 공부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사업자금으로 써서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돈이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열심히 수익을 내기 위해 움직였던 것이다.

 

  눈치가 빠른 분들은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금방 알아채셨을 것이다. 유대인의 금융공부법에 많이 소개된 내용이기도 하며 '주식투자'의 귀재인 워렌 버핏의 투자 방법을 설명한 내용이기도 하다. 유대인과 워렌 버핏은 전세계적으로도 상당한 자산가들이며 '투자의 귀재'로 소문난 분들이라 익히 아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경제 후진국'도 아니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공부마저 학생들에게 하지 않는 실정이다. 왜일까? 그건 아마도 '돈'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정서는 '돈 자랑'을 하면 재수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청렴한 삶'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아이들에게 돈을 준다는 것을 금기시하는 사회분위기도 한 몫하고 있다.

 

  그런데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돈 많이 버는 일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 방법이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범죄가 아니고, 부도덕한 일도 아니며,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이로운 방법이라면 마다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건전한 방법을 하지 말라고 극구 말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곤 한다. 그 일이 바로 '투자'이기 때문이다.

 

  '투자'란 돈을 던진다는 뜻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익이 날 수도 있지만 손실이 나서 원금을 되돌려 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자'로 얻은 이득에는 별다른 세금을 붙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뜩이나 '위험부담(리스크)'을 안고서 하는 일인데 수익에 세금을 떼어가도 기분 나쁘고, 손실에 세금을 떼어가면 엄청 기분이 나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투자'가 원활히 이루어지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세금'을 거의 붙이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이런 '투자'가 경제를 원활하게 돌아가게 만든다. 스마트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도 자신의 자금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투자금'을 받아 만들었고 대박을 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차린 '빌 게이츠'도 마찬가지다. 주식회사를 설립해서 받은 투자금으로 사업수익을 내고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배당금'과 '수익률' 올려준 것이다. 따라서 '투자'가 없었다면 경제는 마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늘 대박이 나는 건 아니기 때문에 '투자'인 것이다. 대박난 사례가 있다면 쪽박이 난 사례도 많다. 그런 까닭에 '투자'에는 위험부담이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안전빵'으로 '투자'를 안 하게 된다면 그런 사회의 경제는 멈춰버리게 되고 폭망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다. 부동산 거품이 한창이던 90년대 일본은 경제대국 미국을 제치고 선두로 우뚝 설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엔고 현상'이 일어나자마자 거품은 꺼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일본경제는 시름시름 앓게 되었다. 더구나 일본국민들은 '부동산'과 '예금'에만 몰두할 뿐, 새로운 사업에 '투자'를 하지 않아서 결국 전자산업의 메카였던 '소니(SONY)'가 망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현재에도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인데도 투자는커녕, 여전히 부동산과 예금에만 돈을 집어넣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라서 조금씩 '원금손실'을 보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런 모습은 우리 경제에서도 비슷해 보인다. 여전히 '아파트 투기'에 몰려들고, 투자에 대한 거부감과 과도한 위기감 조성으로 인해 여전히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투자'는 단기적인 안목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봐야 한다. 적어도 30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투자'는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다. 일찍 시작하려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투자'를 해서 묻어두는 것이다. 그 아이가 자라서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꺼내면 '황금 노다지'가 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이를 실감할 수 있는 상품이 바로 각종 '연금 상품'이다. 10년 만기나 20년 만기, 그 이상인 경우도 있는 '연금 상품'은 매달 일정 금액을 꾸준히 납입하고서 만기 이후에 '일시금'으로 받거나 '연금형'으로 되돌려 받는 상품이다. 이때 '원금 보장형'이 아니라 좀 더 '공격적인 상품'에 투자를 했다면 수익률이 대박나는 경우도 꽤나 많다. 물론 근래에 터진 '대형은행'의 금융사고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가장 기본적인 '투자 공부'를 어릴 적부터 체계적으로 배워 나가야 하는데, 그런 내용은 고사하고 '경제 공부'조차 하지 않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 책을 쓴 존 리는 '메리츠'에서 일을 하면서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직설적으로 짚어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아이들 사교육비로 수백만 원씩 쓰면서 정작 자신들의 '노후 생계'에 대한 대비는 전혀 하지 않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닌게 아니라 '사교육비'는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한 달에 40만 원도 많다. 발품을 팔면 정말 소신껏 자녀들을 잘 가르치면서도 값싼 비용으로 대체할 수 있는 '교육자' 분들도 참 많다. 일찍이 이쪽으로 크게 공감한 바가 있기 때문에 이 금액보다도도 '절반'으로 낮춰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물론 그 덕분에 가난한 삶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사교육비를 아껴서 '노후 자금'을 챙기시는게 더 현명하며, 그 돈으로 아이들 책 한 권 더 사줘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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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llenge 143. [3/29 야밤독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 새벽/야밤 독서 2020-03-29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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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캠페인 참여

1) 읽은 시간과 읽은 쪽수

 - 읽은 시간 : 22:00 ~ 22:50 , 읽은 쪽수 : 200쪽 ~ 247쪽

 

2) 읽은 책 이름과 책 검색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박시백 글,그림
휴머니스트 | 2015년 06월

 

3) 책 읽은 뒤의 느낌

 [ 10권 제6장 : 퇴각하는 일본군 ]

  조선은 확실히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초반에 임금이 '삼십육계 줄행랑'을 칠 정도로 수세에 몰렸지만 왜적과 싸우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왜적이라고 마냥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초반에 무능한 '문반 출신 관료들'이 알아서(?) 물러나고 실력을 갖춘 장졸들이 관군과 의병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자 왜적들과 한판 승부를 벌여도 승산이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조선은 착착 '홈그라운드 이점'까지 살려서 초반의 열세를 스스로 극복하려 하고 있었건만...때마침 명나라 원군이 도착하게 된다.

 

  특히, 조선의 힘을 보여준 전투는 '1차 진주대첩'와 '행주대첩'이다. 1차 진주대첩은 명나라 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거둔 대승으로 관군과 의병, 그리고 백성들이 똘똘 뭉쳐 단결한 힘이 어마어마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진주 목사 김시민은 마지막날에 적의 총탄을 맞고 죽었지만 말이다. 명나라 원군이 도착하고 난 뒤에는 '평양성 탈환' 이외에 별다른 공을 세운 것이 없다. 어설프게 왜적을 공격하다 '벽제관'에서 대패를 거둔 이후에 몸을 사린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왜냐면 이들은 남의 땅에 와서 남의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마키아벨리'가 '용병'과 '원군'은 무용지물이고 오직 '상비군'만이 내 나라 내 땅을 지킬 수 있다고 지적하였는데, 딱 들어맞는 대목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양 탈환'을 위해 권율 장군은 조그마한 행주산성에서 2300여명의 병력으로 명나라 군이 한양을 공격하면 협공을 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도리어 일본군이 후퇴하기 전에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심산으로 이 조그마한 행주산성을 치기 위해 3만 명의 대군을 보냈다. 하지만 조선의 우수한 화포와 신기전, 그리고 웅치와 이치 전투 이후에 단련된 '호남 정예병'들은 물러설 줄을 모르고 싸웠다. 왜적은 일곱 차례나 행주산성을 몰아붙였지만 끝내 함락시키지 못하고 물러가고 말았다.

 

  이에 왜적은 부산포로 전군 후퇴를 하였고, 명나라는 강화를 한답시고 왜적의 안전한 후퇴를 보장해주었다. 그러나 왜적은 지난 '1차 진주대첩'의 복수를 하겠다며 '2차 진주성 전투'를 벌였고, 명나라는 어이없게도 '강화협상'을 무사히 마무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만 내세우며 왜적의 '보복전'을 그냥 묵과하고 만다. 전작권을 명나라에 넘겨준 상황에서 조선군만 따로 원군을 보내려 했으나 이마저도 허락하지 않으니 '진주성'의 관민들은 홀로 남겨져 왜적의 보복을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렇게 왜적 10만이 진주성으로 몰려들었다.

 

  당시 진주성에는 진주목사 서예원과 관군, 김천일 의병 300명, 의병장 출신인 경상우병사 최경회 500명, 충청병사 황진 700명, 고경명의 아들 고경후 의병 400명 등 대략 1만 명의 군사가 있었지만, 중과부적이었다. 여기에 곽재우에게 합세하라는 명이 내려졌지만 곽재우는 정세가 불리한데도 자신과 정예 의병을 몰살 당하라는 명은 받들 수 없다고 하였다. 이에 많은 장수들이 진주성을 찾아가 잠시 몸을 피했다 후일을 도모하자고 하였으나, 우리의 태세가 1차전 때와 마찬가지로 만반의 준비를 다하였고 사기 또한 높으니 한바탕 싸우다 죽는 것이 더 낫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1953년 6월 22일에 시작한 왜적의 공격은 6월 29일까지 낮에 세 차례, 밤에 네 차례씩 매일 공세를 펼쳐서 성을 함락한 다음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보복 명령'에 따라 관군과 의병, 그리고 성 안 백성들까지 모조리 살육하였다. 전투 마지막 날에는 성문이 무너지며 적들이 들이닥치자 적에게 잡혀 수모를 당하느니 자결을 하겠다며 마지막 힘 닿는데까지 싸우다 남강에 투신하는 이들이 늘어났고, 김해부사 이종인은 적 두 명을 양팔에 끼고 강물로 뛰어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수많은 여인들도 남강에 뛰어들었는데, 논개도 왜장을 끌어안고 투신했다고 전해지나 <실록>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이처럼 조선의 기록에는 '여인들의 영웅적 행보'를 찾아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 나라 독립운동사에서도 수많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많은 것처럼 임진왜란 당시에도 수많은 여장부들이 등장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조선의 사대부들은 이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편향성'과 '선택적 게으름'을 피우고 말았다.

 

  이렇게 왜적의 '보복전'에도 명나라의 허락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던 무능한 조선은 다시금 위기를 맞게 된다. 그렇게나 많던 의병들이 하나둘 사라지게 된 것이다. 더구나 '내 나라 내 땅'을 지키기 위해 일어선 의병들을 역모나 작당한 무리로 오판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일이 벌어지자 두 번 다시 '의병'을 일으키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대표적인 의병장인 이산겸과 김덕령이 그런 식으로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삽시간에 의병은 와해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 와중에 선조는 '광해군'에게 쏠리는 신하들의 기대와 광해군이 헤쳐나가는 '분조'의 모습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양상을 선보이게 되는데, 이때 선조가 '선위 파동'을 벌이며 광해군을 몰아붙이는 상황은 이후에 벌어지는 인목대비 유폐와 영창대군 살해, 그리고 '인조반정'이라는 결말을 낳게 되니 참 못난 임금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선조는 평화시에는 명군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전란이 벌어질 때에는 그저 못난 임금에 불과했다. 그 똑똑하던 임금이 어찌 그리 멍청한 짓을 연속적으로 저지르고 마는지...'질투심' 때문에 그런 일들을 벌였다고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비극적인 일이었다. 차라리 선조 같은 임금은 없었더라면 참 좋았을 것 같을 정도다.

 

예스블로그 독서습관 캠페인에 참여하며 쓴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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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llenge 142. [3/28 야밤독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 새벽/야밤 독서 2020-03-28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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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캠페인 참여

1) 읽은 시간과 읽은 쪽수

 - 읽은 시간 : 21:30 ~ 22:10 , 읽은 쪽수 : 174쪽 ~ 199쪽

 

2) 읽은 책 이름과 책 검색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박시백 글,그림
휴머니스트 | 2015년 06월

 

3) 책 읽은 뒤 느낌

  [ 10권 제5장 : 올려라, 구국의 깃발 ]

  조선의 지배자는 '사대부'다. 하지만 이들은 '의무'는 거의 없고 '권리'만 무한했다. 그런데도 난리가 일어나자 제 목숨부터 살자고 도망가기 일쑤였다. '관군'도 적과 싸우기는커녕 무기도 버리고 도주하기 바빴다. 이런 버러지 같은 사대부들이 대다수였으나, 자신들의 명예를 지키고 의무를 다한 이들도 있었다. 바로 '의병장'이었다.

 

  특히 '경상도 의령'에서 일어난 '홍의장군 곽재우'는 적과 싸워 승리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또한 자신을 '천강홍의장군(하늘에서 내려온 홍의장군)'이라 지칭하며, 자신과 똑같은 옷을 입은 10명의 부하들을 지휘하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신출귀몰한 작전으로 왜적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등 '관군' 못지 않은 실력을 보여주었다.

 

  이런 '홍의장군 곽재우'가 제대로 활약할 수 있게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던 이가 역설적이게도 '김성일'이었다. 전쟁 따위 일어나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하던 그가 막상 전쟁이 벌어지자 목숨을 내던지고 동분서주하며 '구국활동'에 앞장 섰던 것이다. '전쟁발발의 원흉'이자 아무 준비 없이 맞은 전쟁으로 처참한 패전을 거듭하던 이때에 참으로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인물이 이렇게나 열심히 하였으니 난감할 따름이다. 암튼 '김성일'은 임진왜란 와중에 죽고 만다. 암튼 관군도 아니고 관직도 없던 '곽재우'가 의병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었던 것은 '김성일의 공'이 크다.

 

  곽재우가 '의병'으로 성공을 거두자 이곳저곳에서 의병이 분연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곽재우와 같이 '남명 조식'의 제자인 '김면'은 경상도 거창과 고령에서 창의하고, 조식의 수제자인 '정인홍'은 경상도 합천에서 창의한다. 김성일은 이들에게도 권한과 병력을 나눠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까닭에 '의병'은 점차 '관군의 빈자리'를 대신하며 수천 명의 정규군 못지 않은 화력을 갖추게 된다. 한편, 만석꾼이었던 '김면'은 전재산을 의병활동에 내놓자 처자식은 문전걸식을 해야 했는데, 이런 가족들을 돌보지도 않고 '구국활동'에 전념하던 그는 이듬해인 1593년 3월에 '과로사'하게 된다. 김면이 죽기 전에 남긴 시가 있다.

 

   只知有國     다만 나라가 있는 줄만 알았지

   不知有身     이 한 몸 있는줄 알지 못했노라

 

  전라도에도 의병은 있었다. 전쟁 초기에는 한양과 평양을 치기 위해 '북진'에만 신경을 쓰던 왜적들이었으나 이순신의 해상봉쇄로 '수륙병진 전략'이 수포로 돌아가고, 경상도 의병들에게 '육로 보급'마저 차단이 되자 '곡창지대'인 전라도 공략에 들어갔던 것이다. 이에 왜적 제6군은 호남으로 진격하게 되는데, 전라도 웅치는 김제군수 정담이, 이치는 권율과 황진이 막았다. 그러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김제군수 정담과 장졸들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우다 패배를 하였고, 권율과 황진도 패색이 짙어질 정도로 악전고투를 면치 못했다.

 

  그런데 이치로 돌진하던 왜적들이 돌연 후퇴를 하고 말았다. 권율은 나중에 알았지만, 의병장 고경명이 6000명의 의병을 이끌고 제6군의 본거지인 '금산성'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비록 실패하고 말았지만 고경명과 그의 아들 고인후가 전사했고, 장남 고종후는 아버지와 동생의 시신을 찾아 피했다가 다시 의병을 모아 '진주성 전투'에 참여하여 끝내 전사하고 말았다. 고경명과 함께 '금산성 전투'를 벌였던 최경회는 61세의 나이로 금산성 전투 뒤에 잔여 병력을 모아 경상도 의병들과 함께 싸웠고, 김천일도 노령의 나이로 나주에서 창의한 뒤에 '근왕'을 위해 북상하다 강화도에 거주하며 의주와 호남 사이에서 연락을 담당하다 훗날 '진주성 전투'에서 결사항전으로 싸우다 전사하였다.

 

  또한 일본의 침략 가능성을 미리 점쳐 임금에게 '전쟁준비'를 해야 한다고 '지부상소(도끼를 짊어지고 상소를 올림)'를 하다 임금이 들어주지 않자 그 자리에서 머리를 들이받아 자결할 정도로 과격(?)한 선비였던 '조헌'은 의병을 모았으나 가난한 선비였던 탓에 제 때에 의병을 모으지 못해 '고경명'이 함께 금산성을 치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었다. 이에 가슴 뜨거운 '격문'을 써서 다시 의병 1000명을 모아 깃발을 한껏 올렸다. 한편 공주에서는 승려 '영규'가 승병 1000명을 모으니 조헌과 힘을 합해 왜적과 용감히 맞서 싸워 본때를 보여준다. 비록 승리를 하지는 못했어도 왜적에게 혼쭐을 내줬던 모양인지 다음날로 성을 비우고 도주했던 것이다. 이 기세를 몰아 '고경명'이 실패한 금산성 탈환을 위해 발길을 돌리는데, 이 때 '중과부적'을 우려한 승려 영규가 조심스레 다음 기회를 엿보자고 신중을 기하니, 조헌은 "임금을 욕되게 한 신하는 죽어야 합니다"라는 말로 발길을 멈추지 않았고, 이에 승려 영규도 승병들과 함께 "한바탕 싸워 봅시다"라고 대답을 한 뒤 금산성에 틀어박힌 왜적과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니 열 배 가까운 왜적들을 상대로 하루 온종일을 마지막 한 명까지 장렬하게 싸우니, 비록 왜적의 승리로 돌아가긴 하였으나 왜적들이 자신들의 시체를 치우는데만 사흘이 걸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한 달 뒤에 왜적 제6군은 호남을 포기하고 경상도로 철수하고 만다.

 

  이처럼 영규 이외에도 많은 승려들이 '승병'을 조직해 왜적들과 맞서 싸웠는데, 유명한 이가 '서산대사 휴정'과 그의 제자인 '사명대사 유정'이 있다. 이들은 왜 '유교의 나라'에서 천대를 받다가 국난을 맞아 의롭게 싸우다 죽었던 것일까? 비록 조선의 승려들은 팍팍한 세상살이에 속세를 떠나 불교의 귀의하였지만 이땅에서 나고 자란 백성이었던 것이다. 왜적들이 죄 없는 백성들을 핍박하고 굶주림에 고통스러워하자 분연히 일어나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한 셈이다. 조선 이전에도 '호국불교'의 성격을 강하게 내보였던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신천지'를 비롯해 '개독교'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종교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잘못 배운 탓일게다. 예수님은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온누리에 사랑을 퍼뜨리라고 했지 '목사의 호주머니'를 빵빵하게 채우라고 하지 않으셨다. 장담하거니와 '개독교 신앙'을 믿어 의심치 않은 이들은 이땅에 국난이 벌어지면 분연히 일어나 싸우기는커녕 '혹세무민'하며 사이비종교처럼 굴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절대 '진정한 종교인의 자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전 이조참의 이정암은 의병 500명을 이끌고 연안성으로 들어가 왜적 5000명과 싸워 이겼으며, 북도 병마사 정문부도 잠시 몸을 피해 있다가 지역 유력자들이 의병을 조직하고 그를 추대하자 '경성부'를 공략해 승리를 이끌었으며, 길주성을 포위해 왜적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곤 했다. 그밖에도 평안도의 임중량, 깅기도의 홍계남, 경상도의 권응수, 충청도의 이산겸 등이 '구국의 깃발'을 높이 든 의병들을 모아 활약을 하니 '바다엔 이순신, 육지엔 의병'이 있어 임진왜란의 양상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이 와중에 선조의 아들인 임해군과 순화군은 각각 함경도와 강원도 등지를 돌려 백성을 위무하고 근왕병을 모집하라고 일어 두었건만, 가는 곳마다 민폐를 끼치고 왜적들보다 못한 패악질을 멈추지 않으니 끝내 백성들이 잡아가 가토 기요마사에게 홀랑 넘겨버리고 말았다. 더구나 함경도는 태조 이성계가 왕업의 기반을 다진 '흥왕지지'였던 곳이었는데, 조사의의 난, 이시애의 난을 겪으면서 '역모의 기운'이 모인다는 둥, '반역의 기질'이 있다는 둥 '괄시받는 지역'이 되어 백성들을 이중삼중으로 고달프게 하니 임진왜란을 빌미로 백성들의 불만이 표출되었던 것이다. 이런 지역을 위무한답시고 나간 왕자들이 백성들의 식량과 재물을 빼앗는데 앞장을 섰으니 '민심'이 돌아서는 것은 당연지사였을 것이다. 혹여라도 선조가 의주가 아닌 함경도 방면으로 피란을 갔으면 선조가 직접 왕자들 꼴을 당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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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2. 단위와 친해지자 | 2020년에 쓴 리뷰들 2020-03-28 17:35
테마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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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터 군과 판타스틱 단위 친구들

우에타니 부부 저/오승민 역/박연규,일본계량표준종합센터 감수
더숲 |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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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공대출신인데도 '역학'에 꽤나 자신감이 없는 편이다. 공대시절에는 '구조역학'과 '열역학', 그리고 '재료역학' 등을 전공하였는데도 '개념이해'에 웬지 자신감을 갖지 못했더랬다. 물론 지금도 그런 편이다. 이런 저런 '과학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계산'은 되는데 얼추 '이해'가 되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해보고자, 이 책 <미터군과 판타스틱 단위 친구들>을 뽑아 들었다.

 

  이 책은 길이, 시간, 질량, 온도, 전류, 광도, 물질량 등 7가지 '표준단위'를 재미난 만화와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각각의 단위의 유래부터 세세한 단위들까지 소개하고 있어서 '개념'을 잡기에 좋은 책이다. 다행히 '일본의 표준단위'는 우리 나라에서도 지금 쓰고 있는 '국제단위계(SI, Le Systeme Intenationa d`Unites)'를와 똑같기 때문에 읽는데 큰 문제점은 없다. 다만, 일본책이다보니 '일본식 표현'이 종종 나오고, 일러스트 또한 '일본식 그림체'를 사용하고 있어서 살짝 걸러가며 읽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애초에 '단위개념'을 목표로 책읽기를 시작한 독자에게는 큰 부담이 되지 않으니 걱정할 것은 없겠다.

 

<다양한 길이의 단위들>(출처: yes24)

 

  길이의 단위는 '미터(기호: m)'다. 18세기 말에는 '지구 자오선의 길이(북극에서 적도까지의 길이)를 1000만 개로 나눈 것 중의 1을 '1m'로 삼았다. 하지만 지구가 변한다는 사실을 깨닫자 1889년에 백금 90%와 이리듐 10%를 섞어서 '국제미터원기'를 만들었지만, 이 역시 조금씩 변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1960년에 크립톤 원자 빛 파장의 165 0763.73배를 1m로 삼았고, 1983년에는 '빛이 진공 중에서 2 9979 2458분의 1초 동안 이동한 거리를 1m로 삼아 현재까지 쓰고 있다.

 

  정리하면 '자연물'에서 '인공물'로, 또다시 '자연현상'으로 기준을 바꾼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자연물과 인공물이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결과다. 하지만 과학의 발달로 인해 '정밀한 측정'을 할 수 있게 되자 '자연현상'을 기준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정확한 '단위'를 갖게 된다는 것은 미세한 '차이'까지도 찾아내어 '오차'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차가 줄어든 만큼 '정확도'는 더 높아지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더 정확한 사실을 '관찰'할 수 있게 되어 '과학적 이해'에서 실수를 줄일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시간의 단위는 '초(기호: s)'다. 처음엔 '지구의 자전'을 이용해 정해서 '1/86400'을 '1초'로 삼았다. (하루 24시간) X (60분) X (60초) = 86400초가 되므로 하루를 86400으로 나눈 값이 1초였던 셈이다. 하지만 자전속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자, '지구의 공전'으로 다시 정했다. 그래서 1년을 3155 6925.9747로 나눈 값을 1초로 정했는데, 공전속도 또한 일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자 '세슘-133 원자'를 이용해 기준으로 삼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는 '진동수 91 9263 1770Hz의 전자파'를 쐰 '세슘-133 원자'가 에너지 준위의 전이를 보여주는데 걸리는 시간을 '1초'로 삼았다.

 

  왜 이렇게 복잡한 '숫자'를 기준으로 삼았느냐고 묻는다면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고 느끼는 '1초'와 가장 근접한 시간에 '해당'하는 원자와 진동수를 골랐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간단한 수'로 딱 떨어지는 수를 기준으로 삼게 된다면 그동안 써왔던 '1초'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측정기구'와 '측정기술'이 발달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에도 있는 '미터원기'와 '킬로그램원기'>(출처: 나무위키)

 

  질량의 단위는 '킬로그램(기호: kg)'이다. 원래는 '그램(g)'을 표준으로 삼았는데 크기가 너무 작아서 '기준단위' 가운데 유일하게 '접두어'를 달고 있는 단위이기도 하다. 1795년에 1기압, 0℃의 물 1㎤의 질량을 '1그램'으로 정의했다가, 1799년에 '킬로그램'으로 바꾸면서 아르시브 킬로그램원기의 질양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 뒤 1889년에 더 정확한 '킬로그램원기(위 사진)'를 만들어 썼다가 현재는 '플랑크 상수'로 정의를 바꾸었다.

 

  온도의 단위는 '켈빈(기호: K)'이고, '열역학'에서 주로 쓰이는 단위다.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온도는 '화씨'와 '섭씨'가 있는데, 이는 각각 '파렌하이트 씨'와 '셀시우스 씨'로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파렌하이트는 중국말로 '華倫海'가 되어 우리 말로는 '華氏(화씨)'과 되었고, 셀시우스는 '攝爾修斯'가 되어 우리 말로는 '攝氏(섭씨)'가 되었단다. 하지만 온도의 기준은 '절대영도 K'로 삼았다. 이는 '물질의 온도'를 극한까지 내리면 열에너지가 0이 되는 순간이 생기는데, 바로 '물질이 멈추는 온도'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전류의 단위는 '암페어(기호: A)'다. 사실 가장 개념이 헷갈리는 단위가 '전류의 단위'다. '전류'는 전기의 흐름을 말하고, 다시 말해 '전자의 이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땐 '전류'로 말하고, 어쩔 땐 '전자의 이동'으로 표현할 뿐 아니라 '전류(암페어, A)', '전압(볼트, V)', '저항(옴, Ω)'이라는 세 개의 단위를 하나의 세트로 움직이는 싶더니 '전기량(쿨롱, C)', '전력(와트, W), '일률(줄, J)' 등등 고만고만한 '단위'들이 쏟아져 나오다가 자석이 합류하면서 '전자기학'이 등장하면서부터는 '오른손법칙'이니 '왼손법칙'이니.. 비슷한 법칙과 공식까지 홍수가 범람하듯 넘쳐나서 나를 헷갈리게 만들어서 정말정말 싫어하는 단원이다. 그래서 지금도 '전자제품'은 딱 질색이다.

 

  광도의 단위는 '칸델라(기호: cd)'다. 칸델라는 '촛불(캔들) 한 개의 밝기'가 1cd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LED 전등'의 밝기를 '루멘(기호: lm)'으로 나타내고, '조도(照度)'를 뜻하는 '럭스(기호: lx)'를 혼용해서 쓰고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여 설명하자면, '칸델라'와 '루멘'은 광원 자체의 밝기이고, '럭스'는 빛이 비춘 면의 밝기다. 이를 위한 복잡한 설명이 뒤따라오는데 과감히 생략하련다.

 

  마지막으로 물질량의 단위는 '몰(기호: mol)'이다. 몰은 간단히 '개수'를 뜻한다. 다시 말해, '묶음 수'라는 인데 '연필 1타'는 12자루인 것처럼 1몰은 '아보가드로 상수'로 나타낸다. 이를 숫자로 쓰면 원자의 개수가 602214076000000000000000개 다. 이를 간단히 '6.02 X 10의 23제곱'으로 나타낸다. 원자가 워낙 작기 때문에 이렇게 '묶음 수'로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과학을 공부하다보면 수많은 '단위'를 마주하게 된다. 이런 '단위'들을 친근하게 맞이하지 못하면 문제를 풀고 답을 맞춰도 '개념이해'는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처음에 조금 어렵더라도 조금씩 '단위'와 친해지길 바란다. 일본책이라 아쉽긴 하지만, '단위'를 이처럼 친절하게 소개한 책이 드물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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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llenge 141. [3/26 야밤독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 새벽/야밤 독서 2020-03-26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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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캠페인 참여

1) 읽은 시간과 읽은 쪽수

 - 읽은 시간 : 21:30 ~ 22:10 , 읽은 쪽수 : 148쪽 ~ 173쪽

 

2) 읽은 책 이름과 책 검색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박시백 글,그림
휴머니스트 | 2015년 06월

 

3) 책 읽은 뒤 느낌

  [ 10권 제4장 : 이순신과 무적 수군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순삭시키고 명나라 점령 후에 인도까지 접수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을 두고 '과대망상'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당시의 '세계관'으로 중국과 인도까지가 세계의 전부였으므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목표는 '세계정복'이었던 셈이다. 감히 알렉산더와 칭기즈 칸에 맞먹다고 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보면, 도요토미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실패를 거듭하고서 수명을 다 하였으니 '정복자'라는 이름을 올릴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오직 '이순신' 때문이었다. 그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수륙병진 전략'을 원천적으로 막아내고, 수전에서 '이순신'과 싸워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는 참패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이순신은 누구인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는 일본도 몰랐고, 조선도 진가를 몰랐던 '영웅'이었다.

 

  이순신은 인종 원년(1545년)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났다. 건천동은 오늘날 서울시 중구 을지로역 근처에 있는 '인현동'으로 인쇄소 골목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순신은 동네 형인 '유성룡'과 함께 지내다가 10대에 외가가 있는 충남 아산으로 이사했다. 문과에 지원했으나 급제는 하지 못했던 모양이고 장인어른의 권유로 무과에 도전해서 비교적 늦은 나이인 32살에 급제를 하였고 함경도 건원보 권관(종9품)으로 첫 부임을 하였다. 35세에 훈련원 봉사(종8품)이 되었으나 상관인 병조 정랑 서익이 '원칙'에 어긋나는 인사를 지시하였으나 따르지 않았다. 이순신의 '강직한 성품'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훗날 충청 병사 군관을 거쳐 고흥의 수군 만호(종4품)로 승진하였으나, 서익이 군기 경차관으로 와서 트집을 잡아 파직되었다가 다시 건원보 권관으로 제자리 걸음을 하였다. 여기까지가 6년 동안의 '이순신 관직 변천사'다.

 

  이때 이순신은 '여진족 추장'을 사로 잡는 공을 세웠으나 상관의 시기로 '죄도 없고 공도 없다'는 결론이 나고 말았으나 워낙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기에 '아버지 3년상'을 치루고 돌아와 종4품인 함경도 조산 만호에 기용된다. 이때는 녹둔도 둔전관을 겸했는데, 여진족의 기습을 받아 백성 60여 명이 사로 잡혀 갔다. 즉시 반격하여 적장 4명을 죽이고 납치 되었던 백성과 재물을 되찾아왔지만 아군도 10여 명이 전사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으며 이순신도 허벅지에 화살을 맞는 부상을 당했다. 허나 상관인 북병사 이일은 '경비 소홀'을 이유로 이순신의 목을 벨 것을 청했고 이순신은 자기 변호를 했으나 끝내 파직에 곤장형, 그리고 백의종군을 명 받았다. 이는 모두 상관인 이일이 '이순신의 공'으로 자칫 자신에게 책임 소홀로 벌을 받을까 두려워 이순신을 모함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어쨌든 이순신은 그해 겨울에 공을 세워서 다시 원래 관작을 되찾았다.

 

  이렇게 이순신은 10년 동안 종4품 '만호'의 관직을 되찾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의 재주와 세운 공으로 보았을 때 더 높은 관직을 받았다고 해도 모자랄 판이었으나, 이는 이순신이 '승진'을 위한 노력이 아니라 '구국'을 위한 노력만 시종일관 유지했던 탓이다. 다시 말해, 조선이라는 '그릇'이 이순신이라는 영웅을 고스란히 담을 수 없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200여 년의 평화와 '문관 위주'의 관료체계가 낳은 비극이었다. 이순신의 강직함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참 많다. 율곡 이이가 '이조 판서'로 있을 때에는 "이순신이 덕수 이씨라고 들었다"라며 만나길 청하자 "대감께서 인사권을 갖고 계신 동안은 찾아뵐 수 없다고 전하라"며 출세길을 뻥 걷어찼고, 파직을 당하고 활터에 나가 화살을 쏘고 있을 때 정승이 찾아와 "자네, 전통(화살통)이 참 멋지구만, 이 늙은이에게 줄 수 없겠는가?"라고 묻자, "죄송합니다, 대감. 이까짓 전통 하나로 대감과 저의 이름을 더럽혀서야 되겠습니까?"라고 무안을 주었단다. 뇌물을 주지 않는 것까지는 승진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 아닐테지만, 자신의 이름을 정승과 함께 거론한 것으로 정승에게 무안을 주었으니, 제발로 찾아온 승진기회도 하이킥을 해버리는 이순신이었다.

 

  허나 이런 이순신이라서 서애 유성룡의 '천거'가 제대로 먹힌 모양이다. 45세이 전라 감사 군관이 되는 것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더니 왜란 발발 1년 전에 '전라 좌수사'에 제수된다. 아직 조선이 망하지 않을 운명이었나 보다. 정말 '운명'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원래 이 자리는 '원균'의 몫이었다고 하니 말이다. 원균이 이전에 부임했던 고을에서 성적이 형편 없었던 게 원인이라고 전한다. 몇 달 뒤에 '경상 우수사'로 제수된 원균이었다.

 

  조선 수군 최초의 승전은 '옥포 해전'이다. 이는 이순신의 '무적 신화'를 첫 신호탄임과 동시에 조선을 구할 소중한 승리였다. 이후로 연전연승을 하며 일본 수군을 궤멸시켜버렸고, 일본 수군의 자존심인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한산도에서 '학인진'으로 쳐부수니 '조선의 3대 대첩' 가운데 하나인 한산도 대첩이다. 이로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수륙병진 전략'은 대실패가 되었다. 허나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예스블로그 독서습관 캠페인에 참여하며 쓴 포스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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