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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김선욱 피아노 리사이틀 | 공연 2016-07-25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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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 환상곡 d단조, K.397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8번 G장조, D.894

베토벤, 디아벨리 변주곡, Op.120

 

 

이날의 공연은 나를 피아노 학원을 다니던 어린시절로 데려갔다. 피아노 학원에 방이 세개 있었는데 방마다 문 위에 모짜르트, 슈베르트, 베토벤의 연필 소묘 액자가 걸려 있었다. 김선욱의 연주를 들으며 나는 모짜르트, 슈베르트, 베토벤이 각각의 문에서 나와 음악을 들려주는 듯한 환상에 빠졌다.(어딘가 일본 드라마 같은 환상이었다.) 각자의 방문을 열고 나올만큼 그들의 음악은 서로 다른 개성과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모짜르트가 공기의 소리를, 슈베르트가 물의 소리를, 베토벤이 땅의 소리를 들려주었다.

 

 김선욱은 티켓 파워가 있는 듯 하다. 예매 주간 랭킹 1위에 올라있는 것을 보았다. 진중하고 신뢰감이 느껴지는 외모에 연주 스타일도 또한 그러하다. 역시 그는 베토벤! 길고 복잡한 연주곡이라는데 그의 연주는 거침이 없다. 다이내믹하고 당당하다. 언제나처럼 음의 마지막까지 매달려있는 그의 지극함에 관객은 박수칠 타이밍을 잡느라 호흠을 멈추어야 했다.

 

시시한 연주를 기획하지 않고-젊은 연주자들이 청중을 위한답시고 가볍고 캐주얼한 크로스 오버 연주를 열고 지들끼리 흥 내는 연주를 하는게 싫다.-크게 음악을 싸안고 가는 그의 연주가 좋다. 그를 믿을 수 있어서 좋다.

 

 

 

 

피아노: 김선욱

2016.7.20

예술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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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스페인 내셔널 오케스트라 첫 내한 공연 | 공연 2016-07-2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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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리나, 환상적 무곡

파야, 스페인 정원의 밤 (백건우 협연)

라벨, 피아노 콘체르토 G장조 (백건우 협연)

파야, 삼각모자 모음곡 1&2

 

 

우리나라에 처음 온다는 '스페인 내셔널 오케스트라'. 프로그램도 '스페인의 밤'이다. 하지만 난 스페인 작곡가 투리나나 파야는 처음 듣는 이름이고, 프로그램의 곡들도 처음 듣는 음악들이다. 어, 그런데 '스페인의 밤'에(공식적으로 스페인의 밤이라 명칭된 건 아니지만) 왜  라벨이? 라벨은 스페인과 국경을 마주한 '시부르'라는 마을 출생이고 그의 어머니가 스페인계였다고 한다. 스페인 클래식계는 다소 빈약한가보다. 그래서 라벨이 들어간 거라면....ㅎㅎㅎ '개방적이고 정열적'이라는 스페인적인 기질이 무엇일까... 음악을 들으면서도 나는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그것 보다는 뭔가 이국적이고 무어적인 느낌이 살짝 있다. 프랑스적인 비애보다 더 멜랑꼴리하다고 해야할까.....

 

이 공연은 백건우 선생의 협연이라 예매를 했다.(작년 가을 나는 그의 리사이틀에 갔다가 뒤늦게 그의 열열 팬이 되었다. 나를 뻑 가게 만들었던 그 연주는 2015년 예술의 전당 '올해의 공연'에 선정되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1악장 절정에 길게 길게 울린 핸드폰 벨 소리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연주는 역시 좋다! '그가 스페인 정원의 밤' 첫소절을 연주하자마자 마음이 울렁거린다. 좋은 연주는 첫소절부터 듣는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은 더 좋았다. 이 곡은 경계를 허무는 곡이다. 경계의 성벽을 와르르 무너뜨린다기 보다 경계를 가비얍게 훌쩍 넘어가는 느낌이다. 대담하고 풍부하면서도 명쾌하다. 1악장과 3악장은 재즈 리듬이 강하고('랩소디 인 블루'나 '파리의 아메리카인' 영화 음악을 생각나게 한다.) 그와 전혀 다른 2악장은 극히 프랑스적 선율이 넘친다. 아름다운 곡이다. 선생의 연주는 편하면서도 무르익고 조용한 카리스마가 있다.

 

'스페인 정원의 밤'에서 피아노와의 앙상블이 좀 아쉬웠지만(오케스트라가 너무 강했다.) 삼각모자 모음곡은 훌륭했다. 특히 타악기(작은북, 캐스터넷츠, 트라이앵글) 연주가 섬세하면서도 선명해 아주 인상적이었다. 지휘자 안토니오 멘데스의 지휘는 날렵하고 세련되다. 동시대 지휘자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지휘자라는데(그는 1984년생) 이런 젊고 유능한 지휘자를 보면 부럽다. 지난번 루체른 심포니의 지휘자 제임스 개피건도 그렇고, 젊고 재능이 뛰어나며, 자기가 속한 지역사회에 공헌하며 함께 가겠다는 그들을 보면 나날이 우울해지고 있는 서울 시향이 생각나 저절로 부러워진다.

 

마지막 곡 '삼각모자 모음곡'이 끝나고 관객의 열화와 같은 환호에 앵콜곡이 무려 세곡이나 연주되었다.

Chapi / Interclude from  La Revoltosa, Bizet / Carman Suite NO.1 Los Toreros,
Gimenez / La BOoda De Luis Alonso

왠만한 음악회 1부 공연 정도 되는 연주였다. 다 같이 행복했다. 열광하는 관객도 기쁘게 연주하는 악단도. 

 

 

 

 

지휘: 안토니오 멘데스

스페인 내셔널 오케스트라

피아노: 백건우

2016.7.17. 예술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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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프러제트 | 영화와 책들 2016-07-08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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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집집마다 살고있고, 인류의 반은 여자에요. 우릴 전부 막을 순 없어요

 

 

세탁공장 노동자 모드 와츠는 우연히 거리에서 여성 참정권 시위에 휩쓸려 시위와 진압을 목격하고, 공장의 동료 바이올렛을 본다. 그날 이후 바이올렛의 인도로 모임에 참가하고, 그저 구경만 하러 갔던 모임에서 점차 자신의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에 눈 뜨며 여성 참정권 운동의 열열한 투사 '여성 참정권 운동가' 서프러제트(Suffragette)가 된다.

 

1912년, 영국의 남자들은 말한다. "여성은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고 균형 감각이 없어서 정치적인 일을 잘 판단하지 못한다." "여성이 투표할 경우 사회 근간이 흔들린다. 아버지, 남자 형제, 남편 놔두고 왜 자기들이 나서는가" "일단 여성이 투표권을 가지면 이를 멈추는 건 가능하지 않다. 여성은 국회의원, 정부 관료, 판사가 될 권리를 또 요구할 것이다." 

 

여자들은 말한다. "오십년 동안, 우리는 여성 참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조용히 노동을 해왔어요. 우린 조롱당하고, 구타당하고, 무시당해왔죠. 이제 우리는 깨달았어요, 행동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요.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소녀들이 자신의 남자형제들과 똑같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싸우고 있어요. 여성에게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절대 얕보지 마세요. 우린 법을 어기는 자가 되고싶은게 아니에요. 우리는 법을 만드는 자가 되고 싶은 겁니다...... 나는 이 모임과 영국의 모든 여성들이 반란군이 되길 원합니다! 나는 노예가 될 바에는 반란군이 되겠어요!"

 

가난과 고된 노동의 대물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모드는 여성 참정권 운동의 시위와 모임에서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듣는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 단명하고, 모욕과 막말을 감수하고, 성추행을 당하며 사는 자신의 삶이 세탁 노동자로 살다 죽은 자신의 엄마의 삶과 다르지 않고, 딸이 있다면 또한 똑같은 삶을 살게된다는 현실에 절망하여 그 절망에서 용기를 낸다. 하지만 그 용기는 큰 희생을 요구하여 그녀는 남편에게 버림받고 아이를 빼앗긴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뭘까, 인간은 그걸 지키기 위해 무엇을 얼만큼 내놓을 수 있는 걸까. 모드는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자신의 존엄성을 위해, 자신의 여성 동료와 동료의 딸, 자신의 자식을 위해, 짓밟히고 처박히고 조롱당하는 여자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작은 행복(가정)을 버린다. 1912년 영국의 남자들이 했던 말은 지금 내가 사는 이 시대에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모드와 그녀의 동료들이 절규가 마음에 와 사무쳤다.

 

신사의 나라 영국 경찰에 '신사'는 없고 무자비한 '폭력'만이 있었다. 여자들의 배와 얼굴을 있는 힘껏 가격하고, 경찰봉 무자비 구타는 1700년대 프랑스 대혁명 때 바스티유로 가던 시위대가 폭력 진압을 피하기 위해 여장을 했던 시대에서 도리어 후퇴되어 보인다. '여성'에 관한한 역사는 다른 부분에 비해 얼마나 상대적 진보를 이뤘는가 돌아보면, '여성'은 여성으로 때로는 어린이, 장애인, 난민...모든 힘없는 사람들로 그 대상이 수시로 변경되며 배타와 폭력의 금자탑을 쌓았다. 나는 여성으로서 내 정체성과 또한 다른 이름의 약자들을 생각하며 권력자와 지배자들의 폭압에 분노하고, 강자들이 거저 갖는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흘린 피와 눈물에 존경과 슬픔이 차올랐다. 분노가 나도 모르게 현재진행형 절망이 되지 않기를 소망했다.

 

1913년 6월 4일 런던 남부 엡섬다운스에서는 133년 역사의 더비 경마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오랜 전통에 따라 국왕 소유의 말 엔머도 참가했다. 말들이 결승점을 앞두고 코너를 돌 때 엔머는 끝에서 세 번째로 달리고 있었다. 갑자기 관중석에서 “앗!” 하는 탄성이 들렸다. 한 여성이 울타리 밑을 지나 경마코스 안으로 들어가더니 전속력으로 질주하던 엔머 앞으로 몸을 던진 것이다.
여성은 충격으로 바닥에 나동그라졌고, 엔머의 기수인 존스는 말에서 떨어졌다. 사람들은 그녀가 말들이 다 지나간 것으로 착각하고 경마코스에 나갔다가 사고를 당한 줄 알았다. 일단 말들이 다 통과한 뒤에는 관중이 경마코스로 다 함께 나와 결승점까지 걸어가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목격자들은 그녀가 말 앞에 뛰어들기 전에 “여성에게 투표권을!”이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이름은 에밀리 데이비슨이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여성 선거권 운동가였던 데이비슨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사고 발생 4일 후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영국에서 여성에게 완전한 참정권을 준 것은 1928년, .....스위스 1971년, 이집트 2005년.....약자의 역사는 참으로 더디게 흐른다.

 

모드와 세탁공장 동료들의 옷차림은 메리 포핀스 같다. 그 영화에서 뱅크스가의 엄마는 첫 장면에 여성 참정권 시위를 하다 남편 몰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 시절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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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 공연 2016-06-28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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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간격으로 두개의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들었다. 서울시향(지휘 한누 린트)과 함께 한 '보리스 길트버그'의 연주와 루체른 심포니(지휘 제임스 개피건)와 함께 한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의 연주이다.

 

길트버그는 84년생, 이스라엘 출신의 남성 피아니스트고, 부니아티쉬빌리는 87년생, 조지아 공화국 출신 여성 피아니스트다. 같은 곡의 공연을 이렇게 연이어 가는 건 드문 일이고, 먼저 들은 길트버그의 연주가 너무 좋아 곧이어 다른 연주자의 연주를 들으러 가는게 부담이 되었다.

 

둘은 남성 여성의 기본 성부터 다르고, 외모와 연주의 스타일도 완전히 달랐다. 길트버그는 작고 왜소한 체격에 섬세하고 서정적인 연주를 하고, 부니아티쉬빌리는 엄청난 글래머 몸매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나와 정열적인 연주를 펼쳤다.

 

팀파니와 오케스트라 사이로 튀어나오는 그 유명한 그리그 사인(Grieg's sign) 도입부의 연주가 시작되자 마자 나는 대박이구나! 하면서 쾌재를 불렀다. 보리스 길트버그는 음악에 완전히 젖어들어 음악에 자신을 슬라이딩하는 타잎의 연주자다. 나는 담백하면서도 힘 있는 연주와 이렇게 음악에 완전히 젖어드는 타잎의 연주자들을 좋아한다. 그의 연주는 섬세하고 유려하면서도 선명하고, 그렇다고 힘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힘이 놀라웠다.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의 아름다움에 가장 잘 맞는 연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기 전에 몇 연주자의 연주를 들었는데 나는 루빈스타인의 연주보다도 좋았다.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는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놀랐다. 정말 굉장한 몸매(엄청난 콜라병 몸매다)에 딱 붙는 진홍색 인어라인 드레스를 입었는데 내가 이제까지 본 연주자들의 드레스 중에 가장 아름다웠다. 젊고 예쁘고 압도적인 몸매의 여성 연주자라니....! 연주가 시작되자 멀리서 보기에도 엄청 긴 팔로 굉장한 파워로 연주를 한다. 머리는 음악에 맞춰 락가수들 처럼 헤드뱅잉을 해서 그녀의 흑발 머리가 미친년 산발이 되었다.ㅎㅎㅎ 피아노를 잡아먹을 듯이, 음악과 목숨을 건 싸움을 하듯이 연주를 한다. 공연에 들어가기 전에 본 팜플렛에 그녀의 연주는 비평가들 사이에 호불호가 갈린다 해서 왜 그럴까 궁금했는데 과연 그랬다. 나는 굳이 말하자면 不好. 그녀의 자유로운 루바토도 나는 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인상적이고 개성있는 연주였고, 그녀의 연주 스타일에 맞는 곡에서는 굉장한 매력을 터뜨리지 않을까 했다.

 

나는 예전에 꽤 오랫동안 그리그의 이 피아노 협주곡을 차이코프스키의 곡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도입부가 어딘가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상시켰던 것 같다. 직접 비교해 들으면 그렇게 비슷하지 않은데도. 인상적인 1악장 뿐아니라 2악장, 3악장 모두 정말 아름답고, 길지도 않고, 아름다운 만큼 광고 음악에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공연장에서도 상당히 인기있는 곡으로, 듣는 사람을 열광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초여름 밤에,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두 남녀 연주자의 판이하게 다른 연주는 곡의 매력과 함께 청중을 열광하게 했다. 나는 또 행복해져서 "아, 이래서 공연을 끊을 수가 없어!"

 

신포도면 모를까 단포도를 어떻게 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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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영역 | 이야기들 2016-06-24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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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즈'나 '빅뱅 이론' 같은 미드에 가끔씩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 얘기는-늘 친구들이 모이는 아지트에 한 친구가 심난한 얼굴로 들어온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엄마(혹은 부모)가 온단다. 다음날 다시 그 친구가 큰일 난 얼굴로 들어온다. 왜 그러냐 또 물어보니 엄마가 자고 간단다. 엄마가 온날 밤, 엄마와 딸, 혹은 엄마와 아들은 옛날 얘기가 나와 묵은 감정이 폭발해 싸운다. 싸우고 울고 다시 화해하고, 엄마는 아침에 집으로 돌아간다.

 

아들애 졸업식 때문에 미국으로 떠나기 전, 친구들과 만났을 때 내가 킬킬 웃으며 했던 이야기다. 그런데 그 얘기는 남 얘기도 아니고, 그저 드라마일 뿐이 아니었으며, 드라마란 역시나 현실의 이야기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었다. 공항에서 반갑게 껴안고 첫날 밤 이야기 꽃을 피운 아들애와 나의 정다운 시간은 끝나고, 우리는 두번째 날부터 서로 으르렁거렸다. 엄마에게 잘해주고 싶었던 아들애는 엄마라는 벽에 부딪치고, 사랑하는 아들이 보고 싶었던 엄마는 아들이라는 벽에 부딪쳤다. 무엇보다 '아들의 영역에 들어가 아들에게 의지해야 하는 엄마'라는 낯선 상황이 우리의 스트레스 지수를 높혔다. 사일째 되는 날, 결국 대판 싸우고 인연을 끊을 뻔하기도 했다.(졸업식 다음날부터 아들애 친구들의 단체톡방은 부모 때문에 못살겠다고-다들 졸업이라 부모들이 와있으니- 와글와글 난리가 났다. 한 친구는 아버지가 운전하는 달리는 차에서 내리기까지 했단다.) 

 

아들애는 거의, 대체로 내 카톡을 씹고, 영상 통화는 설날이나 돼야 겨우 해준다. 그런데 방학하자마자 고향으로 돌아간 여친과 매일 아침 저녁으로 영상통화를, 그것도 한시간 두시간씩 한다. 질투가 나는 건 아니지만 어이 없어 "엄마한텐 그렇게 인색한 영상통화를 여친이랑은 자주, 길게도 한다." 했더니, 녀석이 "좋아하니까!"라고 대답한다. "그럼 엄마는 안 좋아해?" 하고 물으니, 엄마는 사랑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단다.(헐, 명언이구나!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명언 이래 최고의 명언이다.) 반면 여친은 좋아하지만 아직 사랑하지는 않는단다.

 

아들애는 한국말도 좀 부족한데 촌철살인의 발언을 쏟아냈다. 아빠는 자기에게 이유 없이 시비를 걸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급 흥분하며 화를 낸다.(너무 정확한 표현이다!) 엄마는 잔소리가 많고, 한 말을 하고 또 한다.(나는 아니라고 우겼다) 내가 나도 모르게 남을 judge하는 교묘한 습관도 날카롭게 찾아내어 야단을 쳤다.(아, 얄미운 놈!) 이제 다 컸다고-'이제 다 컸다'는 경제적으로 독립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를 가르치려든다 벌써. 그러면서 우리의 조언(!)은 딱 거절한다. 자신을 조정하려 하지 말란다.

 

이 여름 아들애는 루비콘강인지 요단강인지 두만강인지....확실히 강을 건너갔다, 경계를 넘어갔다. 이제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다고 우리에게 선명하게 영역 표시를 했다. 피 튀는 경쟁의 세계와 친구들과의 우정, 연인의 사랑으로 이뤄진 자신만의 왕국이다, 자신만의 우주다. 나와 남편은 녀석의 머나 먼 고향별에 남아있는 가끔 그립지만 만나기 힘든 부모가 되었다.(남편은 비장하게 자신의 시대는 가고 녀석의 시대가 왔음을 선포해서 나를 빵 터뜨렸다.)

 

우리의 세계는 드디어 둘로 갈라져 각자의 갈 길을 가게 되었는데 녀석이 돌아가고 며칠만에 두 세계가 완전히 갈라진 것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비상시에 쓰라고 준 아빠 크레딧 카드 사용 메일이 떴기 때문이다.ㅎㅎㅎ

 

Stay humble and Good luck!(졸업식에서 학장 연설의 마지막 인사였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나는 감히 이 말을 인용한다.) 

 

아들아, 너의 영역을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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