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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성스러운 검은 밤 上 - 시바타 요시키 ★★★★★ | 예전리뷰 2017-05-03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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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성스러운 검은 밤 상

시바타 요시키 저/김은모 역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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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BL물(Boy's Love)이라 불리는 장르가 있다. 남성의 동성애를 소재로 한 여성향 소설이나 만화를 일컫는 말이다. 시바타 요시키의 <성스러운 검은 밤>이란 작품도 넓게 본다면 'BL물'이라 할 수 있다. 선호하는 장르는 아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때문에 이 책을 펼쳐 들었다. (물론 책표지의 아름다운 일러스트가 한몫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 단순한 BL물이 아니다. 평소 내가 즐겨 읽는 장르소설의 다양한 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범죄소설이나 추리소설을 구성하는 미스터리적 요소나, 서스펜스적 요소뿐만 아니라 일본소설 특유의 감성적 요소도 두루 갖춘 다채로운 성격의 소설인 것이다. 또한 <리코 시리즈>, <하나사키 시리즈>에 조연으로 등장하며 독자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얻은 '야마우치 렌'과 형사 '아소 류타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이번 작품 <성스러운 검은 밤>에선 '두 남자의 과거'가 그려져 기존 독자 팬들에게 유례없는 열렬한 지지를 받은 작품이라 한다.


소설 속 시대적 배경은 <95년 현재>와 <80년대 과거>를 주축으로 교차서술된다. 등장인물들도 꽤 많은 편인데, 책을 읽어가면서도 누가 누군지 헷갈려서 <주요 인물 소개>부분을 몇 번이나 펼치면서 읽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대방을 부를 때 보통 '이름'을 부르지 '성'으로 부르진 않는다. 그에 반해 일본에선 상대방을 '성'으로 불렀다가 '이름'으로 불렀다가 하니, 일본소설을 읽으면 항상 애먹는 부분이긴 하다. 특히 등장인물이 많을 땐 더더욱.


책띠지의<천재 형사와 아름다운 용의자, 두 남자의 매혹적인 미스터리>라는 문구처럼 천재 형사 '아소 류타로'와 아름다운 용의자 '야마우치 렌'의 이야기가 중심축을 이루며 이야기는 흘러간다. 처음 과거시점은 '야마우치 렌'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리고 다시 현재의 '야마우치 렌'과 '아소 류타로'의 이야기로 펼쳐진다. 책 속 주된 사건은 가스가 파의 핵심 간부였던 '니라사키'가 호텔 욕조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 것인데, 경찰 조직 내부에선 조직 간의 항쟁사건이냐 아니냐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수사1과와 수사4과는 합동수사를 진행해 나간다. 수사1과 경시청 계장 '아소 류타로'는 항쟁사건으로 보지 않고 '니라사키'의 주변 인물들을 탐문수사하던 중 '야마우치 렌'을 만나게 된다. 그 자신이 잊고있었던, 10년 전 사건의 용의자와 형사가 10년 후 다시 용의자와 형사의 신분으로 재회한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된 몇 가지 사실은 '아소 류타로'를 혼란스럽게 한다. 첫째, '야마우치 렌'과 '니라사키'의 관계인데, 렌이 살해당한 니라사키를 사랑했다고 고백한 것. 둘째, 10년 전 사건에서 렌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새롭게 인생을 시작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2년이라는 실형을 살았고 지금은 조직폭력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 무엇보다 그때와 너무도 달라진 '렌'의 모습에 '아소'는 당혹스럽기만 한데. 도대체 10년 전 그 사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당시 관할서에서 근무했던 아소는 사건종료 후 진급과 동시에 본청으로 왔다. 그리고 잊었다. 형사에겐 늘 새로운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왜 떠오르지 않았을까. 그때는 그 청년의 앞날이 그렇게나 걱정됐었는데. 자신은 야마우치가 말한 대로 차가운 인간이다. 결국은 다 업무였을 뿐이다. 체포된 사람이 그 후에 어떤 인생을 살든 형사가 관여할 바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만약 내가 더 오지랖이 넓어서 그 청년이 지금쯤 어떻게 됐나 싶어 세타가야 서에 전화 한 통만 걸었다면 실형을 받고 복역했다는 것과 출소하여 불량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냈을 것이다. 니라사키가 죽기 전에 전화 한 통만 걸었다면.>

​<성스러운 검은 밤>은 '니라사키'를 죽인 범인을 추적하는 '아소 류타로'의 시선을 좇으며, 독자 역시 도대체 '범인'이 누굴까? 생각하고 추리하는 재미가 있다. 책 속에 흩어져 있을지 모를 단서들을 조합하고, 주변 인물들을 의심해보지만 범인의 윤곽은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아무래도 1권, 2권으로 나누어져 있으니 범인의 윤곽은 2권에서나 나타날 것 같다. 그리고 '야마우치 렌'. 어쩌면 빛나는 미래를 가질 수 있었을지 모를 유약하지만 섬세하고 아름다운 청년이었으나... 형 외에 다른 가족은 안중에도 없던 엄격했던 아버지, 계집애처럼 생겼다며 놀림당하던 어린 시절, 어느 순간 알게 된 자신의 성 정체성, 자신의 몸을 탐하고, 탐했던 수많은 남자들. 언제부턴가 삶의 저편으로 다시 기어오르려는 마음을 버린 남자, 야마우치 렌. <부유하며 천천히 바닥까지 떨어져 내리는 감각은 그렇게 나쁘지 않아. 바닥에 닿으면 그대로 썩어서 흙으로 되돌아가면 그만이야.>그의 이 말이 가슴속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런 그를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게 된 남자 '아소 류타로'. '렌'과 이야기를 할수록 알게 모르게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자신의 욕심이었을까? '렌'은 '아소'를 위험 아닌 위험에 빠뜨리고, '아소'는 '렌'의 누나로부터 10년 전 사건의 진상에서 손을 떼라 하는데... 미우라 시온(소설가)의 <인간의 내면을 격렬하고 심오하게 그려낸 걸작>이라는 말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체감하지 못했는데, 읽고 난 후에 체감하게 됐다.


마지막, <외전>에선 어쩌면 그들의 첫 만남이었을 그 순간이 머릿속에 아련하게 그려졌다. 한 청년의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욱신거림과 슬픔, 그리고 첫 여름을 장식하는 아지랑이처럼 새롭게 시작될 미래를 꿈꾸었던 청년의 모습도...

 


<책 밑줄>


아소는 차창으로 밖을 바라보다 하늘로 눈을 돌렸다. 니라사키는 이 하늘을 영원히 보지 못한다. 하지만 24시간 전에는 니라사키도 자기가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인간의 운명은 그런 법이다. 아소 역시 24시간 후에 다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57page>


그 남자는 일부러 침을 튀기며 그렇게 말했다. 때로는 진짜 침을 뱉을 때도 있었다. 왜 그 남자가 자신을 그렇게 싫어하는지 렌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렌이 그 남자에게 무슨 실수를 한 기억은 전혀 없었고, 폐를 끼친 적도 없었다. 반항하며 말대꾸한 적조차 없었다. 결국 그 녀석은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증)였으리라. 동성애자와 동성애적 행위전반을 증오한다기보다 두려워하는 것이다. (...) 참 불합리한 이야기라고 렌은 생각했다. <218page>


돌아갔을 때 누군가가 '어서 와'하고 반겨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어디 가고 싶고 혼자 있고 싶다는 바람이 생기는 것이다. 지금 도미코는 어디에 얼마나 나가 있든 아무도 걱정해주지 않고, 돌아간들 반겨줄 사람도 없다. <304page>


영원히 지속되는 연심은 없다. 사람의 마음은 변하는 법이다. 분한 걸까. 그래, 분하다. 니라사키는 그 여자에게 사랑받으며 살다가 죽었다. 그 여자뿐만이 아니다. 사쓰키도 그랬다. 이것만 보더라도 니라사키의 인생은 자신의 인생보다 나았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생이 이렇게 불공평해도 되나. 아소는 지금까지 대놓고 법률을 위반한 적 없이 최소한의 사회 규칙을 준수하며 살아왔다.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남을 불합리하게 괴롭힌 적도없다. 그런데도 여자에게 배신당했다. 니라사키는 어떤가. 그렇게 제멋대로 굴며 수많은 사람들을 울려놓고도 사랑받았다. <341page>
 

서쪽 하늘로 떨어져 내린 달 옆에서 별 하나가 아주 밝게 빛났다. 아소는 왜 그 별이 이렇게 흐릿해 보이나 궁금했다. "그래서 가게가 끝나고 기숙사에 돌아가지 않고 여기로 왔지. 나 자신과 내 인생에 정이 뚝 떨어졌거든. 첫차가 오면 다 끝난다는 생각으로 선로에 누워서 잤어." <388page>


달이 예쁜 밤이었다. 웬일로 윤곽이 선명했다. 달이 꽉 차려면 아직 좀 더 있어야 하나, 아니면 이지러지기 시작한 걸까. 배가 불룩한 방향을 보고 달이 차오르는 중인지 이지러지는 중인지 구분하는 방법을 과학 시간에 배웠는데 이제 다 잊어버렸다. 잊어버린 게 너무나 많다.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것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면서 잃은 기억은 무수히 많다. <48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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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그림의 곁 - 김선현 ★★★★★ | 예전리뷰 2017-04-29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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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림의 곁

김선현 저
예담 | 2017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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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참 좋아했다. 생활기록부의 장래희망란에는 항상 '화가'라는 직업을 써놓곤 했으니. 대학도 미대 진학을 꿈꾸었지만 엄격했던 아버진 '예술 분야'로 진학을 하게 되면 소위 '피죽도 못 끓여 먹는다'라는 말씀으로 극구 반대를 하셨다. 기술 및 컴퓨터와 관련된 분야로 진학을 해야 후에 취업도 되고 밥벌이도 할 수 있다면서, 결국 반강제적으로 '공과대학' 원서를 넣게 되었다. 당시 나는 '그림에 대한 열정'만으로 아버질 꺾을 배짱도 용기도 없었다. 시험기간 대학 도서관에선 학과 공부 대신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곤 했다. 재미없었던 학과 수업이었으니 졸업도 겨우 했고. 비록 '화가'라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아쉬운 대로 컴퓨터그래픽 분야에 매료되어 웹 디자이너로서의 길을 걸었고, 이 직업으로 밥벌이를 했다. 솔직히 지금은 그림보단 책 그리고 독서에 더 많은 관심과 꿈을 갖고 있다. 다만, 이루지 못했던 오래전 꿈을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인지 여전히 마음 한구석엔 그림에 대한 갈망이 남아있다. 손그림을 다시 그려보고 싶다, 제대로 멋진 디지털 아트를 제작해 보고 싶다,라는 꿈.

그런 가운데 만나게 된 김선현 작가님의 <그림의 곁>. 이 책은 온전히 '그림과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책이다. 어려운 미술 용어도 등장하지 않고, 복잡한 그림에 대한 설명들도 최소화하였다. 그저 책 속에 등장하는 80여 점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느껴지는 감정들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80여 점의 그림들은 세 가지 테마에 맞춰 구성되어 있다. 첫째 장은 설렘, 연애, 결혼 등 사랑에 관련된 그림들을 다루었고, 둘째 장은 친구, 가족, 동료 등 관계에서 나를 지켜낼 그림들을 담았다. 마지막 셋째 장에는 나, 그리고 '내 안의 나'와 둥글게 살아가기 위한 그림들이 실려있다. 에두아르 마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클로드 모네, 앙리 마틴, 구스타프 클림트, 타마라 렘피카 등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컸지만, 내가 전혀 알지 못했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작가들의 작품들을 알게 되고 감상하는 즐거움도 무척 컸다. 그중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몇 점 찾아 첨부해 보았다. 물론 책 속 이미지를 촬영하여 첨부할 수도 있었으나, 책의 특성상 그림이 약간 휘어질 수 있기에 위 방법을 활용하였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사무엘 루크 필즈>

: 평화로우면서도 낭만적인 그림이라, 마음이 잔잔해지고 고요해짐을 느낀

사무엘 루크 필즈의 그림

:)

 

 

 

<알렉산더 에버린>의 작품들

: 아름다운 엄마와 귀엽고 작은 아이가 주로 등장하는 알렉산더 에버린의 작품들은

알게 모르게 가슴이 찡해진 그림들이다.

이루고 싶은 또 다른 꿈이랄까?

:) 


 

 

 

윌리엄 존 헤네시 <완벽한 사랑>

: 당당하고 여유로운 여인의 뒷모습에 매료된 그림

그리고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보는 남자의 얼굴, 정원은 고요하고 어디선가 작은

새소리도 들려오는 것 같다. 꽃들도 연인의 모습을 사랑스레

바라보는 것 같다.

:)

 

김선현 작가님의 <그림의 곁>은 이렇듯 아름답고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넣어진 질문들을 읽어보고, 직접 작성해보면서 스스로의 내면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다만, 책에 직접 쓰는 것은 어쩐지 아까워서 별도의 노트에 작성해 보기로 했다. 또한 그림과 글이 연결되는 곳에 마음을 매만질 명언들도 실려있다. 여러 번 곱씹어 보면서 마음속에 새겨두었다가 언젠가 힘이 들 때, 위로가 필요할 때 꺼내보면 좋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동안 아름다운 그림들을 보면서, 힘이 되는 글을 읽으면서 내 내로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이사 후 정신없이 정리하고, 치우고 하느라 살짝 여유가 없긴 했는데, 이젠 어느 정도 정리도 되었고, 이 봄이 가기 전에 우리 집 거실 벽에 걸어 둘 그림 하나 장만해야겠다. 가만가만, 조용조용 그저 바라만 보아도 내 마음을 안아주고 위로해 줄 그런 그림으로.

 

<사람은 아무도 다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고 아무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만들어 줄 수 없다.>

- 그레이엄 그린​

 

<삶의 무게와 고통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은 단 하나다. 바로 사랑이다.>

- 소포클레스

 

<이별의 아픔 속에서만 비로소 사랑의 깊이를 알게 된다.>

- 조지 엘리엇

 

<그대 자신의 내면을 읽지 않는 한 휴식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은 없다.

휴식이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가 사라져버린 상태다.

휴식이란 다름 아닌 '행위의 부재'를 의미한다.>

- 오죠 라즈니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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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 아야세 마루 ★★★★★ | 예전리뷰 2017-04-29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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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아야세 마루 저/이연재 역
소미미디어 | 2018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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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리를 가득 메운 벚꽃 무리, 그 벚나무 아래를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던 순간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하얗게 반짝이는 작은 꽃송이들을 숨죽여 바라보곤 했었는데. 이젠 연초록 새싹을 틔워낸 벚나무들. 아쉽지만, 찰나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며 펼쳐든 아야세 마루의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읽는 내내 봄의 싱그런 향기가 나고, 머리 위에선 꽃잎이 바람에 흩날려 떨어졌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찾아오면 꽃을 찾아 여행을 시작하는 나비처럼 어디론가 떠나고픈 마음이 든다.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속의 다섯 가지 이야기도 신칸센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다섯 사람의 이야기가 향기롭게 그려진다.


소설 속 배경이 되는 곳은 일본 토호쿠 지방이다. 도쿄 위쪽, 일본 동북부 지역으로 신칸센 노선도를 따라가면 <우츠노미야>, <후쿠시마>, <센다이>, <하나마키>가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다른 지역들에 비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해졌지만, 사고 이전엔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었으며 누군가에겐 여전히 소중하고 아름다운 고향이자 일상을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다. 벚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나츠이의 센본자쿠라>, 옛 지방 영주의 묘지인 <즈이호우덴>, <호빵맨 박물관>, 미야자와 켄지를 기념하는 <동화마을> 등등. 책 속에 등장하는 이곳들을 각 이야기 속 주인공들과 함께 떠난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직접 가보고 싶어졌다. :)


첫 번째 이야기 <목향장미 무늬 원피스>. 토모야는 <우츠노미야>에 살고 계신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 일찍이 남편을 떠나보내고 홀로 지냈던 할머니에게 뒤늦게 찾아온 두 번째 사랑. 예쁘다는 말에 소녀처럼 얼굴이 빨개졌던 할머니. 그 사람을 따라 이곳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 했을 때 가족들은 찬성과 반대로 다툼이 심했는데, 결국 반대를 무릅쓰고 낯설지만 이곳에 정착한 할머니. 그럴 용기가 어디서 났을까? 궁금하기만 한 토모야에게 할머니의 한 마디는 마음속에 잔잔한 울림을 준다. "새로 산 예쁜 원피스를 입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거, 오랫동안 생각조차 해 본 적 없단다." 어느 순간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뒤치다꺼리를 당연시했다. 부모라는 단어는 희생의 또 다른 말인 것처럼. 새로 산 나의 옷을 당신의 몸에 대면서 아이처럼 좋아했던 엄마. 그 시절 나는 나 자신을 꾸미기에만 급급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엄마를 위해 예쁜 원피스 한 벌 사준적이 없었다. 이제와 후회하고 눈물 흘려도 예쁜 원피스를 입을 엄마는 없다. 사랑받고 싶고, 예뻐보이고 싶은 마음은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

'사방을 둘러싼 봄의 산이 부드럽게 자신을 향해 흘러오고 있었다.

다리 건너편은 꽃이 핀 화창한 공원이었다.

토모야는 발길을 되돌려 이제 막 건너온 다리를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푸른 산을 등지고 있는 듯 보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노란 꽃이 그려진 원피스가 팔랑거렸다.'


두 번째 이야기 <탱자 향기가 풍기다>. 약혼자인 유키토와 함께 그의 부모님을 뵈러 <후쿠시마>로 떠나는 리츠코. 원전사고가 났던 곳이라 그들의 삶은 어떨까? 걱정과 두려움이 앞선다. 대화를 나눌 때에도 미리 공부해 간 방사능 수치에 대해 얘기하지만, 어딘가 가라앉은 분위기이다. 생선초밥을 먹을 때에도 주저하게 되는 리츠코. 그러다 집안 어딘가에서 부드러운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집 뒤편 산울타리에 하얀색 꽃이 피는 탱자 향이다. 매스컴을 통해 듣는 후쿠시마의 안 좋은 소식들과는 대조적으로 유키토의 가족은 탱자 향이 가득한 평온한 일상을 살아간다. 관광명소 이야기를 할 때 어제보단 한결 밝아진 분위기를 보면, 그녀 혼자 너무 의식한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이번 유키토네 집에 가 보니......... 뭐랄까, 다들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고, 상냥하고,

그러면서도 우리 일가친적들과 마찬가지로 귀찮은 부분도 있는 거야.

그게 당연한 거지만. 내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후쿠시마의 피해자들'같은

이상한 모습과는 전혀 달랐어."

세 번째 이야기 <유채꽃의 집>. 어머니의 기일에 맞춰 고향을 방문한 타케후미. 한때 어머니가 살았던 집이지만, 이제는 큰형 부부가 살고 있다. 어머니가 가꾸었던 일본식 정원은 형수의 손길로 유채꽃 밭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들이 조금씩 변하듯, 자신의 기대대로 어머니가 변할 줄 알았는데 그전에 돌아가실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오래된 마을 풍경과 마찬가지로 어머니 또한 흘러 지나갔다. 화해도 결론도 없는 희미한 혼란만을 남기고. 어머니 살아생전 느꼈던 감정과 기억들을 떠올리는 타케후미. 진정 어머니가 무엇을 원했는지, 무엇에 힘들어했는지 이해하려 하기보단 귀찮아하고, 피하기만 했던 자신이다. '어머니'니까 당연시했던 것들...


'어머니도 불단 위에서 시들어 버린 동백꽃을 안타까워하면서 이것을 먹었음에 틀림없다.

앞으로도 우리 가족은 이런 방식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미워하기를 반복해 가리라.

언젠가 열반의 길에 들어 만날 때까지'

 

 

 

 


네 번째 이야기 <백목련 질 때>. 함께 어울렸던 학교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마음속에 큰 상처와 두려움을 갖게 된 초등학생 치사토의 이야기. 어린 치사토의 심리묘사가 강한 인상을 준 작품이며, 다른 이야기들과는 다르게 꿈, 환생과 같은 환상적인 요소가 가미된 작품이다. 어린 나이에 겪은 누군가의 죽음은 슬픔과 아픔보단 어쩌면 큰 트라우마를 동반한 두려움이 더 클지 모른다. <치사토는 사실 자신이 미도리의 아픔을 위로하고 있는 게 아니라, 미도리처럼 되어 버리면 어쩌나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치사토가 꾸는 꿈속 다양한 생물로 태어나길 반복하는데, 이는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좀 더 강한 생물로 태어나길 갈망하는 치사토의 내면을 반영한 것이리라. 피어 있는 시간이 짧아 더 소중하단 백목련을 좋아한다는 할머니, 부모님과 함께 방문한 동화마을, 그곳에서 어머니가 읽어준 여동생의 죽음을 기리며 썼다는 켄지의<영결의 아침>이라는 시를 통해 치사토는 조금씩 마음 속 상처와 두려움을 극복해 간다. 어둠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하얀 꽃 백목련의 모습에서, 무섭고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눈앞의 반짝임을 절대 놓치지 않고 확실히 붙잡아 끌어안은 켄지의 시에서... 


 

 


마지막 다섯 번째 이야기, 책의 제목이기도 한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앞서 네 편의 이야기 속에 잠깐씩 등장한 신칸센 차내 판매원 사쿠라의 이야기다. 어렸을 적 늘 다투던 부모님. 불안한 환경속에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사쿠라와 남동생 슈지. 급기야 성인이 되자마자 이혼한 부모님. 사쿠라 그녀에겐 따뜻한 가정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신칸센 열차를 타고 고향을 오고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과 모습들을 보며, 그들의 고향에 대해, 가정에 대해 상상하면서, 그녀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가정을 그려볼 뿐이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있는 슈지 또한 불행한 가정사로 인해 그 자신이 따뜻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지 두려워하는데, 그런 슈지에게 사쿠라는 말한다.


"내가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보다는, 편안하게 해 줄 테니

누군가가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

저 먼 곳에서 신칸센을 타고 와 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발견한 예쁜 것을 함께 보고 즐겨 주었으면 좋겟어.

그런 걸 해 보고 싶어서 가족이 가지고 싶은 걸지도 몰라."




책도 얇고 이야기는 길지 않았지만 긴 호흡으로 읽어나간 <벚꽃 아래서 기다릴게>. 다섯 편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처음 벚꽃이 만개했을 때 느꼈던 소소한 감동이 가득 차올랐다. 특별할 것 없는, 열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그들의 섬세한 감정선에 닿아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열차 창밖으로 스치듯 지나가는 풍경들은 복잡한 도심 속 빌딩에 가려 보지 못했던 것들로, 지금 당장이라도 열차에 몸을 싣고 떠나고 싶게 만들었다. 지금은 벚꽃이 지고 없지만 순간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며 다시 돌아올 벚꽃의 계절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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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속임수 - 샤를로테 링크 ★★★★★ | 예전리뷰 2017-04-2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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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속임수

샤를로테 링크 저/강명순 역
밝은세상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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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선 한 아이가 사고를 당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며 소설은 시작된다. 세월이 흘러 2014년 퇴직 경찰 리처드 린빌은 자택에서 의문의 남성에게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되고 스카보로 경찰서 케일럽 반장은 전담반을 구성해 수사에 착수한다. 과거 리처드 린빌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면서 복수를 다짐했던 데니스 쇼브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면서 케일럽 반장 역시 그를 중심으로 사건을 풀어나간다. 몇 달 후, 런던경찰국 강력계 형사로 재직 중인 리처드의 딸 케이트는 휴가를 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가 살해된 지 2개월가량 지났지만 사건은 여전히 답보상태이고 데니스 쇼브 역시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케일럽 반장은 선배의 딸인 케이트에게 사건 정보를 제공해 주며 도움을 주지만, 관할구역이 아닌 곳에서 직접적인 수사는 할 수 없게 한다. 결국 독자적으로 사건을 수사해 나가던 케이트는 아버지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며 큰 충격을 받는다.


오랜 세월 동안 모범적인 공직생활을 해왔던 리처드 린빌은 존경받는 경찰이자 가족에겐 자애로운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평범하고 단란한 가정에서 자란 케이트는 런던경찰국 강력계 소속 형사지만 심약하고 왜소해 보이는 외모로 늘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지극히 낮은 자존감으로 동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고 제대로 된 데이트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녀에게 아버지는 경찰로선 스승이었고, 인생에선 삶의 조력자이자 유일한 벗이었다. 어쩌면 그녀 삶의 전부였던 아버지. 그랬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그녀 자신이 아버지를 잘 안다고 생각해 왔는데...

어느 날 케이트에게 아버지의 연인이었던 멜리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리처드 살해 사건과 관련해 꼭 할 얘기가 있다는 것이다.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사건의 진전을 기대한 케이트. 그러나 멜리사 역시 아버지와 비슷한 방법으로 잔혹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수사팀의 수사 방향과는 달리 살인사건이 아버지의 사생활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의심한 케이트는 탐문수사 중 또 다른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아픈 어머니와 자신을 위해 아버지가 멜리사와 결별한 것이 아니었던 것. 상처와 혼란 속에서도 아버지와 멜리사의 급작스럽게 끝나버린 결별 사유에 무언가 있음을 직감한 케이트는 유일하게 그 사연을 알고 있을 아버지의 옛 동료이자 파트너였던 노먼을 찾아가지만 그 역시 살해된 채 발견되고 수사 방향은 전환되며 급진전된다.


샤를로테 링크의 <속임수>는 리처드 린빌의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과 케이트의 시점 그리고 용의자로 지목된 데니스 쇼브가 벌이는 범죄행각이 주를 이루며 교차 서술된다. 소설 중반부쯤 읽다 보면 독자는 더 이상 데니스 쇼브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는 분명 악한 범죄자지만 실제 살인사건의 범인은 보다 치밀하고, 잔인하며, 계획적인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쨌든! 교차 서술되는 두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사건 해결을 위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란히 달리는 평행선처럼 그 어떤 접점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후에 알게 된다. 누군가 사건에 혼선을 주기 위함이었고, 이는 작가가 설치한 장치였으며 독자들은 그 플롯에 저항 없이 따라갔음을. 그럼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두 사건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고, 그들 내면에 감춰진 심리를 읽을 수 있었는데, 그만큼 작가가 그려낸 캐릭터들이 입체적이고, 그들이 간직한 사연이 매력적이라는 것을 충분히 입증한 것이니 :)

 

케이트 그녀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에게 감춰진 또 다른 모습이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평소 마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 그 이면에 감추어진 많은 것들이 (예를 들면, 욕망, 분노, 증오, 트라우마, 고통, 슬픔 등등) 어디서부터 비롯되어 인간 내면에 스며들었는지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심도 있게 그려낸 스릴러 소설 <속임수>. 또한 점차 개인화되어가는 세태 속, 인간이 낳은 이기심으로 타인의 고통과 고뇌는 쉽게 외면받고 잊힌다. 무역감소로 쇠퇴일로를 걷고 있는 영국 리버풀 황량한 도시 속에 방치된 사람들, 한 사람의 인생을 단편적인 면만 보고 판단하고 재단하려는 사람들의 몰이해... 등에 대한 묘사는 많은 것들을 시사함과 동시에 구제받을 길 없던 고통에 시달린 사람들의 상처와 증오가 얼마나 끔찍한 비극적 결말을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다. 


나무벤치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며 햇볕을 쬐었고, 강에서 풍기는 수초 냄새를 들이마셨다. 부드러운 미풍이 갓 베어낸 풀에서 나는 상긋한 냄새를 실어왔다. 케이트는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처음으로 긴장을 풀어헤치고 세상과 일체감을 이루었다. 머지않아 또다시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공포와 슬픔이 엄습해올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과 좀 더 친밀해질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리버풀의 머지 강변에 혼자 앉아 돌아본 자신의 삶에 엄청난 진전이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인생의 버팀목이었던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마침내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사람을 향해 첫발을 내디딘 느낌이 들었다. <340page>

그녀는 아버지 곁에 있는 동안에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시시하고 별 볼일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웃을 수 있었다. 아버지한테는 그녀가 맡은 사건들에 대해서도 언제나 마음 편히 털어놓을 수 있었다. 런던경찰국에서는 도저히 털어놓을 수 없었던 아이디어들을 아버지 앞에서는 스스럼없이 다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그녀의 아이디어가 시시하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항상 그녀가 하는 말에 집중했고,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 아버지는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주었고, 생각을 존중해 주었다. <452page>

 "사람들은 항상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지.

인생이 완전히 망가져갈 때조차도 어두운 실상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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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는 너를 본다 - 클레어 맥킨토시 ★★★★★ | 예전리뷰 2017-04-17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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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너를 본다

클레어 맥킨토시 저/공민희 역
나무의철학 | 2017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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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과의 소통의 공간으로 자주 활용되는 SNS, 안전을 위해 설치된 수많은 CCTV 그런데, 누군가 '다른 목적'으로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면? 더불어 당신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반복된 일상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모두 습관의 동물이야. 당신도 다르지 않지.

당신은 매일 아침 같은 코트를 걸치고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선호하는 좌석이 있어. 어떤 에스컬레이터가 가장 빠른지, 어떤 개찰구로 통과해야 하는지, 어떤 매점 줄이 가장 짧은지 정확히 알지. 나도 당신의 그런 점들을 알고 있어. (....) 반복되는 일상은 편할 거야. 친숙하고 안정적이겠지. 안심하게 만들겠지. 하지만 그런 일상이 당신을 해칠 수도 있어.  

어린 나이에 매트와의 사이에서 딸 케이티와 아들 저스틴을 낳고, 이혼 후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조 워커'. 어느덧 중년이 되어버린 그녀지만 삶은 여전히 팍팍하고, 현실은 녹록지 않다. 딸 케이티는 배우로서의 꿈을 키우며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아들 저스틴은 조의 친구인 멜리사의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아이들은 독립할 나이가 되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조와 함께 살고 있다. 성인이 되어버린 아이들을 다루는 것이 예전 같진 않지만, 그래도 매일 얼굴을 볼 수 있기에 조의 마음은 편하다. 그리고 그녀의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사이먼이 곁에 있기에, 힘들지만 조는 행복하다. 물론 사이먼과 아이들의 사이는 데면데면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믿는다. <나는 너를 본다>는 이처럼 여느 평범한 가정(약간의 균열은 있을지라도)의 배경을 갖고 있는 조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른 아침 바쁘게 하루를 시작하는 도심 속 대다수의 직장인들. 조 역시 매일 같은 시간, 출퇴근하는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런던 지하철을 이용해 출근하고 퇴근한다. 목 뒷덜미에서 원치 않는 타인의 뜨거운 입김이 느껴질 만큼 지하철은 만원이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흔들리다 문이 열리면 썰물이 빠져나가듯 쏟아지는 사람들. 겨우 플랫폼에 발을 딛고, 개찰구를 통과해 무사히 사무실로 들어선다. 하루하루가 전쟁이고, 하루하루가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 몸을 실은 조. 손에 들고 있던 신문 <런던 가제트>를 펼쳐들다 데이트 광고 속 여성의 사진을 보게 된다. 광고 속 여성의 사진은 흐릿하지만 분명 자신의 사진임을 알고 놀란다. 걱정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조는 가족들에게 신문을 보여주지만, 그저 그녀를 닮은 사람일 뿐이거나, 누군가 장난을 친 것이거나,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조 역시 중년의 여성인 자신을 그런 데이트 광고에 내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겠냐고 생각한다.


소매치기 전담팀의 마지막 날 캐시 태닝의 도둑을 추적하며 보낸 후 지구 치안팀으로 복귀한 순경 켈리는 한 통의 제보전화를 받는다. 캐시 태닝이 소매치기를 당하기 전 그녀의 사진이 <런던 가제트> 광고 속에 실렸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제보자인 자신의 사진도. 이와 같은 사실을 제보한 사람은 다름 아닌 조 워커. 켈리는 더 이상 자신의 소관은 아니지만, 사건의 연관성을 깨닫고 수사를 시작한다. 한편,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 준비를 하는 조. 아침 뉴스에 한 여성의 살인사건이 보도된다. 그런데 어딘가 낯이 익다. 바로 전날 <런던 가제트> 광고에 실린 여성임을 알고 조는 큰 두려움을 느낀다. 최근들어 여성들에게 일어난 각종 사건, 사고 속엔 항상 <런던 가제트> 속 데이트 광고가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도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타인의 사진을 도용하여 광고를 내는 것인가? 이젠 예전 같지 않은 일상의 균열을 느끼며, 자신 또한 <런던 가제트> 속 데이트 광고에 한 차례 사진이 실린 이상 언제 자신의 차례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의 두려움과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뒤돌아보았지만 인도는 사람들로 붐볐다. 주위가 인파로 가득했으나 특별히 의심스러운 사람은 없었다. 횡단보도에 서 있으니 상상 속 눈동자가 너무 뜨겁게 쳐다봐서 등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뒤돌아보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눌렀다. 양 떼처럼 한데 뭉쳐 길을 건넌 사람들이 반대쪽에 도착할 때쯤 그들 사이에 숨은 늑대가 없는지 살폈다. <341page>


​그럼 이 남자들은 누굴까? 당신의 친구, 아버지, 형제, 친한 친구, 이웃, 상사들이지. 당신이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사람들이야. 직장과 집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 당신은 충격받을 거야. 그들을 더 잘 안다고 생각했을 테니. 하지만 당신이 틀렸어.

<나는 너를 본다>는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보내는 일상의 틈을 파고 들어와 서늘한 공포를 선사한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주는 익숙함과 편리함은 패턴화 되어 어느덧 누군가의 표적이 되고 만다. 특히 그 표적의 대상은 주로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가장 흔한 범죄 유형으론 스토커가 있는데, <나는 너를 본다>는 단순한 스토커 물은 아니다. 그보다 한층 더 진화했다고 해야 하나? 무엇보다 이 소설이 '무서운 이유'는 지금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고 있다는 현실 때문이다. 초반부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 및 사건의 진행과정들이 나열되어 살짝 지루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은 고조된다. 불쑥 불쑥 드러나는 각 인물들의 수상쩍은 행동에 독자들은 혼동할 수 있다. 혹시 이 사람이 범인인가? 아니면 이 사람? 그러나 의외의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지면서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그 의도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렇게 소설은 끝나는가 싶더니 하, 다시 한 번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마지막 반전! 세상에 진.짜.범.인은 따로 있었던 것인데, 그 정체가 대단하다면 대단하다. 결국 끝난게 아니니까!!!


이겼다고 생각하겠지.

다 끝났다고.

아니, 틀렸어.

이건 시작에 불과해.


(...)

날마다 똑같은 일상을 사는 수많은 당신.

나는 당신을 보지만 당신은 나를 볼 수 없어.

당신이 나를 보도록 만들지 않는 한.



스토리상 오류로 생각되는 부분 : '로라 킨'을 살인한 자는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 '캐시 태닝'을 살해한 용의자 역시 아직 붙잡히지 않았다. <468page> 그러나 <352page ~ 353page>를 보면 캐시는 열쇠만 도난당했고 이후 증인으로 증언하기로 했지만, 사건을 잊고 싶어서 켈리한테 다른 곳으로 이사하겠고 말한다. 켈리가 설득하려고 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을 생각해 그냥 고맙다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여기까지가 캐시 태닝의 이야기다. 책 속에서 직접적으로 살해를 당한 여성은 '타냐 베켓'과 '로라 킨'일 뿐. 캐시 태닝은 살해당하지 않았는데, 그녀를 살해한 용의자를 추적한다는 건 스토리상 오류인 것 같다.

책 속에 등장하는 단어의 뜻

백기사 신드롬 :  백기사는 위험에 처한 상대를 찾아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상대에게 필요 이상으로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이것은 나를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백기사는 파트너에게서 칭찬이나 확인, 사랑을 받길 원하지만 결국 스스로를 속여 감정적으로 건전한 관계를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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