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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단 모집]『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 이벤트 2020-01-3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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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 저/박문재 역
현대지성 | 2020년 02월

신청 기간 : 210 24:00

서평단 모집 인원 : 5

발표 :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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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설’에 관한 가장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저서
    2,400년 동안 읽히고 연구되어 온 ‘설득의 기술’


    수사학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언어기법을 연구하는 학문의 한 분과이다. 정의를 현실 세계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관점에서 보자면, 『수사학』은 그 정점에 있는 저술이다. 왜냐하면 수사학은 그가 제시한 변증학을 기반으로 자신의 윤리학과 정치학을, 대중 연설과 법정에서 현실 정치로 구현해내는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논증 수사학, 문예 수사학, 기호론적·언어학적 수사학에 의한 담론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새로운 수사학이 관심 받고 있으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2,400년 동안 수사학 체계에서 ‘논증’ 이론에 관한 성찰의 기본서가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로마의 키케로와 퀸틸리아누스를 거쳐 중세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빼놓고 새로운 수사학을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시 소피스트들은 정의와 윤리를 다 배제한 채로 오직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여 자기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학적 기초 위에서 어떤 것이 국가에 이롭고 정의로우며 훌륭한 것인지를 개연적으로 증명해내는 수사학이야말로 ‘설득의 기술’로서 가장 좋은 수단이 된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에서는 전체적으로 내용을 개관한 후에, 연설가가 사용해야 할 설득 수단이자 수사학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 중 논리적 추론에 해당하는 ‘로고스’와 관련한 전제들을 집중 설명한다. 제2권에서는 ‘에토스’와 ‘파토스’를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제3권은 연설가가 신경 써야 할 추가 문제, 즉 문체와 배열, 그리고 전달의 문제를 다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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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린, 『황진이 2권』 | 소설 읽기 2020-01-27 16:17
    http://blog.yes24.com/document/12030349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황진이 2

    전경린 저
    이룸 | 2004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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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몸으로 마음이 가는 길을 열다.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황진이는 어떻게 자유를 얻었을까?

    - 전경린, 『황진이 2권』

     

     

     

    그래도 사랑은 시작되고

     

    진은 뭇 사내의 정인이 되는 길에서 가부장제를 벗어나는 길을 찾으려고 한다. 가부장제는 여자를 한 사내의 정인으로 자꾸만 묶으려 한다. 여인이 뭇 사내의 정인이 되면 가부장제를 세우는 틀은 뿌리부터 흔들린다. 진을 마음에 품은 사내들은 그래서 진을 독점하려고 한다. 가부장제의 바깥으로 뛰쳐나가기 위해 기생을 선택한 진은 사내들의 이러한 독점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욕망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녀는 더 이상 가부장제의 바깥에 있을 수 없게 된다. 아무 남자에게도 얽매이지 않아야 비로소 가부장제에 매이지 않는 이 상황을 진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내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그녀 스스로 억제하기는 힘들다는 점에 있다. 양반가 서자로 태어나 방랑을 하는 이사종을 진은 바로 이런 마음으로 대한다. 한 사내에게 얽매일 수는 없다는 데서 진은 이사종을 뭇 사내와 같이 대해야 한다. 그와 즐기는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지 않고 그와 다른 삶을 사는 시간=미래를 꿈꾸면 기생이라는 신분은 진에게 속박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한 사내를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어떻게 다른 사내의 품에 안길 수 있을까? 게다가 마음에 품은 사내를 기생인 진은 언제든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진은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이사종이 떠날 것이 두려웠고 자신이 길가의 꽃인 것이, 아무도 잡아둘 수 없는 길가의 꽃인 것이 두려웠다.”(2, 57)

     

    두렵기는 진을 마음에 품은 이사종도 마찬가지다. 그는 기생인 진을 사랑하는 게 아니다. 뭇 사내와 연인을 공유하고 싶은 남자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그러면서도 그는 야밤에 다른 사내의 품에 안기는 연인을 두 눈 뜨고 바라봐야만 한다. 겉으로는 한없이 정답고 평온해 보이지만, 두 사람은 언제 터질지 모를 한 아름의 폭탄을 안고 사랑에 빠져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부임한 송도 유수가 조정 대신의 접대를 부탁한다. 진은 망설인다. 연인인 이사종이 신경 쓰이는 것이다. 진이 사랑 놀음에 빠진 사이 명월관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진은 기생이 된 이유를 잊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려면 이사종에 대한 마음을 어떻게든 정리해야 한다. 진은 단호하게 관계를 끊는 방법을 선택한다.

     

    진은 연인 관계는 끊되 이사종이 객사에 머물길 바랐지만, 진의 마음이 뜬 마당에 이사종이 객사에 머물 이유가 없다. 애초부터 객사에 머물라는 진의 말이 어불성설인지도 모른다. 사실 진은 이사종을 떠나보낼 마음이 없다. 그저 연인 관계만 끊어지길 바란다. 연인이었던 사람들이 연인 관계가 끊어져서도 같은 집에 사는 게 가당키나 한가. 진이 처한 상황을 잘 아는 이사종이 집을 떠나자 진은 아득한 절벽에 누운 심정이 되어버렸다. 한 유수와 헤어질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슬픔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밀려온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사그라질 줄 알았다.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사종을 잃은 마음은 칼이 되어 진의 몸을 쳤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만, 길고도 긴 그 시간을 견딘 사람에게만 통할 말이었다.

     

    명월관을 떠난 지 닷새 만에 이사종은 돌아왔다. 그는 진이 만 사람의 연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했고, 진은 그와 함께라면 지옥이라고 마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오랫동안 아팠던 몸은 그의 몸에 안기는 순간 씻은 듯이 나았다. 하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다. 진을 만인의 연인으로 인정한다고 외쳤지만, 진이 다른 사내와 동침을 할 때마다 이사종은 술로 마음을 달래야 했다. 화를 참지 못하고 손님방에 뛰어들어 상을 엎기도 했고, 진을 끌어내 대문 밖에 팽개치기도 했다. 말이 사랑이지 사실은 집착과 다르지 않았다. 진은 다시 선택을 해야 했다. 이전처럼 아무 조건이 없는 이별을 하기는 싫었다. 진은 이사종에게 5년 후에 만나자고 말했다. 기생 신분을 벗고 자유로이 만나고 싶다고 했다.

     

    5년 후면 현재를 사는 게 아니라 미래를 사는 것이다. 현재를 살기로 다짐했던 진은 왜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그것만이 서로를 잃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대로라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지쳐 누구든 이별을 통보할지도 모른다. 그러느니 멀리 떨어져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게 낫다고 진은 판단한다. 현재를 위해 미래를 버리는 게 아니라, 미래를 위해 현실을 충실히 살자는 계획인 셈이다. 진의 이 선택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진은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 기생이 된다고 했다. 한데, 지금 진은 이사종을 얻기 위해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그녀가 그토록 부정했던 한 남자의 소실이 되는 길이 아닌가?

        

    자유로운 인간으로 사는 길

     

    이사종이 떠난 자리에 양곡 소세양이 들어선다. 마흔다섯에 이조판서에 오른 이 인물은 시와 서화에서도 명성을 얻은 풍류객이다. 그는 아무리 절세가인이 있는 곳이라고 해도 한 달 이상 머물지 않는 것을 자기 기율로 삼고 있다. 그런 그가 진이 있는 송도에는 얼마나 머물지 내기까지 걸렸다. 수많은 기생들과 어울리면서도 언제나 거리를 지키던 소세양도 진 앞에서는 결국 거리를 허물려고 했다. 그는 거리를 허물려고 했지만 진은 끊임없이 거리를 두려고 했다. 소세양이 거리를 두는 이유를 묻자 진은 아득한 우주 가운데 있는 저마다의 자리를 이야기한다. 그 자리를 버리고 흔들리는 마음을 한곳에 의지하면, 남는 것은 흘러버린 시간밖에 없다. 진은 그 시간에 매이느니 그 시간을 뚫고 가려고 한다.

     

    진은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이 마음을 화담 서경덕을 만나면서 비로소 체험한다. 진은 화담이 자신을 바라볼 때 그 눈빛의 새로움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어떤 색깔도 닿은 적이 없는 듯 순결한 흰빛의 시선이었다. 그가 진을 직시하는 순간 진 자신도 모든 색을 넘어 하얗게 남는 듯했다.”(2, 132) ‘순결한 흰 빛의 시선은 감정이 묻지 않은 시선을 가리킨다. 이사종이 진을 바라보고, 진이 이사종을 바라볼 때는 이런 시선이 개입할 수 없다. 욕망에 물든 시선이니까. 화담은 진을 격물(格物)하듯 바라본다. 젊은 여자라는 선입견이 없이 그저 한 사물로서 그녀를 대한 것. 지금까지 진은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에서 숱한 욕망을 보아온 터였다. 화담은 무엇보다 욕망에 물들지 않은 시선으로 자신을 봐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담담하고 편안하게 다만 진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화담의 시선은 처음으로 진의 존재를 긍정하고 있었다. 피해 의식도 없고 가해의 죄책감도 없는 화평을 느낀 것이다. 심지어 여자들조차 그녀 앞에서는 비굴해지거나 시기하며 외면하지 않았던가. 진은 화담의 공활하고 따뜻하고 명쾌하고 자유로운 시선으로부터 구원의 가능성을 감지했다. 그러나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그는 화곡의 초당에 은둔하는 학자였고, 진은 저자거리의 꽃인 기생이었다. 이틀을 지내는 동안 이따금 진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을 뿐이었다. 진은 오직 예를 다할 뿐, 어떤 표정이나 말이나 몸의 교태로 화담을 향한 공경심을 내색하지 않았다. (2권, 137)

     

    소세양에게 거리를 둔 것처럼, 진은 화담에게도 거리를 두었다. 거리를 두지 않으면 상대에게 얽매이게 된다. 진과 거리를 두려 하지 않는 소세양이 진을 욕망에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면, 진과 거리를 두는 화담은 욕망이 없는 눈으로 진을 바라본다. 상대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는데, 어떻게 그 앞에서 어떤 표정이나 말이나 몸의 교태로 반응을 보일까. 진은 그저 스승을 기리는 마음으로 화담을 대우한다. 그녀는 화담의 시선에서 자신을 그 자체로 긍정하는 마음을 느낀다. 아름다운 몸을 욕정이 그득한 시선으로 탐하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몸 자체를 관조하는 시선을 화담은 내보이고 있다. 저 시선을 지닌 이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보면, 이 세상과도 자연 거리를 둘 수 있지 않을까?

     

    사내의 몸을 받아들이되 그 사내에게 예속되지 않는 마음을 진은 화담의 시선에 담긴 무욕에서 이끌어낸다. 진은 이 마음으로 이사종과 헤어진 5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관아에 종을 하나 사 넣고 기적에서 이름을 뺐다. 5년 전 그녀는 기생이 아닌 신분으로 이사종과 만나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기생의 신분을 벗던 바로 그날 진을 돌보던 옥섬이 명을 달리한다.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생명은 없다. 진 또한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절대 타자와 마주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새로운 인생을 함께 한 옥섬의 죽음을 쉬이 받아들일 수는 없다.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몸이 내버려두지 않는다. 시간이 약이라는 것은 이럴 때도 쓴다. 시간이 흐르면 몸에 새겨진 기억이 흐려질 테고, 그러면 자연히 마음 또한 제자리를 잡을 것이다.

     

    풍덕 군수가 되어 돌아온 이사종을 진은 바로 이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무예가 뛰어났던 그는 무과 시험을 거쳐 선전관이 되었다가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외직으로 나왔다. 진은 진대로 그녀의 삶을 살았고, 이사종은 이사종대로 그의 삶을 산 것이다. 다만 어머니가 정한 혼처를 물리지 못해 그는 3년 전에 혼인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진은 통곡을 했다. 그리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통곡을 했다. 이사종에 매이는 눈물이 아니라,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눈물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탐을 낸 사내를 진은 그렇게 떠나보냈다. 그녀는 풍덕에서 3, 한양 본가에서 3, 도합 6년을 이사종과 살기로 했다. 아무리 이사종의 품이더라도 담 안에 묶여 생을 마치고 싶지는 않았다. 기생이 됐을 때 스스로 서약한 일이기도 했다.

     

    풍덕 3년을 보내고 한양 본가로 올라간 진은 이사종의 부인이 지정한 부엌 곁방으로 들었다. 사랑채에서 심정적으로 가장 먼 곳이었다. 이사종은 당장 사랑채 손님방으로 진의 처소를 옮기려 했지만, 진 스스로 부인이 내준 방으로 들어갔다. 집안에서 쓸데없이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를 낮추어 집안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싶었다. 딱 한 번 위기가 있었다. 소세양이 보낸 편지가 사람들 손을 거쳐 본가로 온 것이다. 이를 문제 삼는 부인에게 진은 자신은 이 세상 무엇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다.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으니 평생을 두고 이어갈 귀한 인연들과 교류를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 다행히 부인은 진의 진심을 받아들였다. 더불어 3년 뒤에 이 집을 떠날 여자라는 사실을 굳게 믿었다.

     

    다시 송도로 돌아온 진은 이사종에 대한 그리움을 춤과 노래로 풀어냈다. 거문고가 바깥에 있는 사물이었다면, 춤과 노래는 몸속에서 저절로 나오는 마음이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몸으로 진은 춤을 추었고, 그로써 어디든지 당장 떠날 수 있는 몸을 만들었다. 화담 선생을 찾아 배움을 청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송도의 거상인 백고정의 정실 자리도 마다했다. 화담의 말마따나, 진은 전 생애를 걸고 자신의 절대고독을 지키려고 했다. 절대고독이란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는 자리를 의미한다. 인연에 매이고, 돈에 매이고, 권력에 매이면 절대고독의 경지에는 결코 이를 수 없다. 진은 몸으로 들어오는 그 숱한 욕망들을 춤으로 녹여내고, 노래로 녹여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온몸으로 길을 만든 여인

     

    몇 해 동안 세상을 떠돌고 송도로 돌아온 진에게 스승인 화담이 네게서 몸은 무엇이더냐?”라고 묻는다. 그동안 전쟁터에 나간 이사종이 죽었고, 아버지인 황 진사가 죽었다. 남편과 아이를 잃은 동생 난을 명월관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중국으로 떠난 줄 알았던 수근이 지족사에서 등신불이 되는 사건을 겪기도 했다. 수근을 그 길로 내몬 지족선사가 진의 미모에 반해 세속으로 흘러들어 진을 찾아 여기저기를 들쑤시기도 했다. 벗으로 지낸 이생과 금강산 여행을 떠나서는 온몸으로 세상을 떠돌았다. 문둥이 가족의 배를 채우기 위해 몸을 팔아 곡식을 사기도 했다. 하루를 기약한 삶이 석 달 동안 이어졌다. 온몸으로 세상을 어루만진 여인에게 스승은 몸에 대해 묻는다. 진은 어떤 대답을 했을까?

     

    진은 몸은 곧 길이라고 말한다. 걸어온 길을 버려야 새 길을 걷는다. 지나온 길에 집착하면 새 길로 들어설 수 없다. 몸도 그렇다. 지나온 몸에 집착하면 새 몸을 얻을 수 없다. 사내들이 진의 몸을 지나 제 길로 갔듯, 진 또한 제 몸을 지나 자기 길로 끊임없이 왔다. 길은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받아들인다. 권력이 높은 사람이 걷는 길을 권력이 없는 사람 또한 걸을 수 있다. 길을 가기 위해 그녀는 기꺼이 제 몸을 팔았다. 제 몸을 팔아 더 많은 길을 만들어냈다. 화담은 진이 걸은 이 길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그는 올 여름이 되면 하늘로 돌아갈 것이라며 줄이 없는 거문고를 보여준다. 줄이 없는 거문고가 소리를 낸다. 그 소리를 들으려면 소리를 들으려는 그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몸을 버려야 비로소 몸길이 보이듯이.

     

    온몸으로 길을 만든 여인이 있다. 그 길은 가부장제의 바깥으로 나가는 길이면서, 동시에 가부장제를 만든 남자들을 맞아들이는 길이었다. 가부장제의 안과 밖을 유유히 오가며 황진이는 바람처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려고 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을 욕망처럼 붙들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려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려는 마음까지도 놓아야 한다. 화담이 순결한 흰 빛의 시선으로 젊은 진을 바라보았듯, 사욕이 없이 사물을 바라보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진은 온몸의 욕망을 내려놓음으로써 이 마음에 이른다. 진흙탕 연못 위에서 꽃을 피우는 연꽃처럼 온몸을 세속의 진흙탕 속에 기꺼이 내던졌다. 그것뿐이다. 바로 그것으로 진은 온몸으로 난 길을 서슴없이 걸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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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린, 『황진이 1권』 | 소설 읽기 2020-01-26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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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황진이 1

    전경린 저
    이룸 | 2004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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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의 길로 자유를 얻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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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진이는 어떻게 자유를 얻었을까?

      - 전경린, 『황진이 1권』 

     

     

    천한 기생의 딸로 태어난다는 것

     

    조선 사회는 신분제가 명확한 사회였다. 신분이 높으면 대우를 받았고, 신분이 낮으면 대우를 받지 못했다. 아비의 신분이 높아도 어미의 신분이 낮으면 대우를 받지 못했다. 판서 아버지와 노비 어머니를 둔 홍길동을 생각해 보라.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다. 아버지의 신분이 높아 노비는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신분이 노비여서 노비가 아닌 것도 아니었다. 노비면서 노비가 아닌 이 모순을 온몸으로 품고 살자니 홍길동의 가슴은 당연히 분노로 들끓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홍길동은 그 누구보다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능력 있는 이로 태어나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된 홍길동은 결국 나라 밖에 율도국을 세워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에게 조선의 왕은 병조판서를 제수했지만, 그것은 홍길동의 역심을 다스리기 위한 고육책일 뿐이었다.

     

    얼자(어미가 노비)로 태어난 홍길동은 그래도 남자였다. 능력만 있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살 길을 도모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자에게는 그런 길마저 막혀 있었다. 양반의 서녀(庶女)로 태어난 여자는 양반 첩이 되거나, 양반의 후처로 들어가 살 길을 도모해야 했다. 시댁 식구들이 신분이 낮은 여자를 어미로서 인정할 리가 없었다. 아이를 낳아도 서자나 서녀를 낳은 격이니, 신세가 바뀔 리도 없었다. 숨을 죽이고 살면 그나마 목숨을 붙일 수 있었지만, 남편의 사랑을 등에 업고 안방을 노리기라도 하면 몰매를 맞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조선 사회에서 처첩 갈등이 왜 일상사로 일어났겠는가? 처는 집안에서 자기 권위를 지키려고 했고, 첩은 어떻게든 그 권위를 빼앗아 신분을 높이려고 했다. 남자들이 만든 가부장제 하에서 여자들은 살기 위해 이런저런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황진이는 바로 이런 시대에 기생의 딸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거문고에 빼어난 실력을 보인 진현학금이었고, 아버지는 젊은 시절을 한량으로 보낸 황 진사였다. 기생이면 칠천(七賤) 중의 하나다. 가장 천한 신분이라는 말이다. 정절이 중시되는 시대에 뭇 사내를 상대로 몸을 파는 기생이니 냉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진현학금은 폭군 연산의 여자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눈이 머는 약을 먹었다. 기적에서 풀린 여인은 금강산에 들어가 6년 동안 거문고를 연마했다. 다시 2년이 지나 송도의 젊은 한량이 현학금을 사랑했다. 황 진사였다. 그들 사이에 아이가 생겼고, 현학금은 황 진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이를 낳았다. 어미는 딸을 낳으려고 했고, 아비는 어떻게든 딸을 지우려고 했다.

     

    황 진사의 정실인 신씨 부인이 진을 데려가 키웠다. 서녀가 아닌 적녀(嫡女)로 키워 대갓집에 시집을 보낸다는 약속을 받고 현학금은 기꺼이 황 진사의 곁을 떠났다. 부인은 틈이 날 때마다 진에게 <여교(女敎)>를 읽혔다.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게 중심 내용이었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진은 답답함을 느꼈다. 양반 남자들이 갈 길은 참으로 무진한 듯한데, 양반 여자들이 갈 길은 사대부가의 안방을 차지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것도 아들을 낳아 집안의 대를 이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진은 다른 생의 가능성을 찾고 싶었지만, 가부장제가 공고한 사회에서 다른 길을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꿈이었다. 부인은 진을 사대부가의 정실로 들여보내려고 했지만,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 했다.

     

    부인이 죽자 이내 진은 집안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부인이 죽기 전 정한 혼처가 동생인 난에게로 돌아가면서, 부인이 그토록 숨겼던 출생의 비밀이 밝혀졌다. 진은 남자들이 만든 가부장제의 바깥으로 속절없이 내몰렸다. 이제 가문은 그녀를 보호하지 않는다. 가문의 보호를 받지 않고 어떻게 자기를 지킬 수 있을까? 진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황씨 집안에서 정해주는 혼처를 아무 말 없이 받거나, 그것을 거부하고 홀로 사는 길을 걷는 것. 진이 후자를 선택하면 집안에서는 난리가 날 것이다. 가부장제를 어기는 일이니까. 실제로 황 진사는 부잣집 후처로 가라는 말을 진이 거부하자 나랏법을 들먹인다. 남자들도 나랏법에 매여 있는데, 여자가 어떻게 나랏법을 벗어날까? 가부장제에 매이면 가부장제를 벗어나지 못한다. 진은 황 진사와 얽힌 끈마저 끊어냄으로써 가부장제의 바깥으로 스스로 뛰쳐나간다.

     

    지독한 사랑은 죽음을 부르고

     

    진은 기생의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벼랑으로 내몰렸다. 기생의 딸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다. 태어나 보니 기생의 딸이다. 신분이란 이런 것이다. 정승판서의 딸로 태어나고 싶다고 그리 되는 것도 아니고, 천민의 딸로 태어나기 싫다고 그리 되는 것도 아니다. 운 좋게 양반으로 태어난 이들은 그 운으로 운이 나쁘게 태어난 사람들을 천한 자들이라고 구박한다. 신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누가 천민으로 태어나고 싶을까? 인간이 만든 신분이 정작 인간의 삶을 갉아먹는다. 인간은 제도를 만듦으로써 같은 인간을 귀하고 천한 신분으로 나눈다.

     

    사랑 또한 이와 비슷한 점이 있지 않을까? 사랑하고 싶다고 사랑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사랑하기 싫다고 그 사랑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것도 아니다. 사랑에 한이 맺혀 죽은 젊은 선비의 상여가 진의 집에서 멈추었다. 진이 절에서 요양을 할 때, 병에 걸린 노모를 돌보던 선비가 있었다. 그는 처음 본 날로부터 진을 마음에 품었다. 병든 노모가 죽어 더 이상 절에 올 필요가 없는데도, 그는 야밤에 불쑥 별채에 나타나 사람들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진에게 편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요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 진은 진관 스님에게서 이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사랑에 빠져 이도저도 못하고 말라가는 한 남자의 슬픔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뒤늦게 편지를 본 진은 아무것도 아닌 여인에게 목을 매는 선비가 참으로 서글펐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마음속에 이는 미묘한 아픔을 떨쳐내기 힘들었다.

     

    그 선비가 망령이 되어 진의 집 앞에 멈춘 것이었다. 상여꾼들은 여인의 속곳으로 망자를 달래야 한다고 말한다. 천출 소생이라고 해도 진은 엄연히 황 진사의 딸이다. 양반가 정실이 되기 힘들 뿐이지, 진을 첩이나 후처로 원하는 남자들은 많은 터였다. 그런 여인에게 속곳을 내어달라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때는 여름이다. 이대로 시신을 방치하면 언제 고약한 냄새를 풍길지 모른다. 거기다 굵은 비까지 내린다. 진은 선택을 해야 한다. 황 진사가 구한 장정들과 상여꾼들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복을 입은 진이 대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계집종인 연두 손에 진의 흰 속곳이 들려 있다. 진은 속곳을 제 손으로 상여 위에 올려놓는다.

     

    나와 남이 다르거늘, 저마다의 목숨이 다르거늘, 홀로 사랑하고 내 잔에 피를 쏟아 붓고 간 이시여, 어찌 이런 사무친 일이 있단 말이오. 빌고 또 비나니, 맺힌 것을 푸소서. 이승의 일은 까맣게 잊고 훨훨 극락왕생 하소서. 정녕 혼자 못 가겠거든, 내 넋까지 거두어 가소서. 정녕 혼자 못 가겠거든, 내 넋 속에 둥지 틀고 원 없이 살고 가시오.’ (1, 170)

     

    속곳을 상여에 올리는 순간 진은 죽은 사내와 통정한 것이 된다. 그녀는 죽은 넋을 위로하기 위해 이 일을 벌인 것이지만, 가부장제에 물든 사람들은 정조를 잃은 여인으로 진을 판단한다. 만약 진이 아니라 적녀인 동생 난이 이런 일을 벌였으면 어떻게 됐을까? 소문을 들은 한양 집에서는 당장 혼인을 물릴 것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황 진사는 진에게 통혼을 넣은 상대가 이 일을 알기 전에 시집을 가라고 말한다. 진은 그럴 생각이 없다. 시집을 가지 않으면서 양반가에 머물 수는 없다. 시집을 가지 않는 것도 나랏법을 어기는 것이니까. 사람이 곧 재산이 되는 사회였으니, 혼기가 찬 여인이 시집을 안 가는 것은 곧 나라의 재산을 좀먹는 일이기도 했다.

     

    여인이 시집을 가지 않으면서 나랏법을 어기지 않는 길은 무엇일까? 진은 어미인 진현학금이 걸은 길을 선택한다. 기생의 길이다. 기생이 되면 시집을 가지 않아도 된다. 한 사내의 여인이 되지 않고 뭇 사내의 여인이 되는 삶. 당대 사회에서 보면, 여자로서는 가장 비천한 삶을 사는 길이었다. 상여에 속곳을 얹는 순간 진은 제 몸속에 남아 있던 경계를 무너뜨렸다. 경계를 세우면 분별이 일어난다. 분별이란 나와 너를 나누고, 나와 사물을 나누는 것이다. 처녀 몸으로 속곳을 죽은 시신에 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면서도 진은 기꺼이 그 일을 했다. 죽은 사내와 자신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 여인을 그리워하다가 사내는 한이 맺혀 죽었고, 출생의 비밀을 안 진은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다가 간신히 현실로 돌아왔다.

     

    몸도 마음도 잊어야 기생이 된다

     

    기생이 되기로 결심한 진은 어미인 현학금과 친했던 퇴기 옥섬을 찾는다.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진에게 옥섬은 어미 원한을 풀기 위해 기생이 되는 것이냐고 묻는다. 진은 어떤 대답을 했을까? 그런 거 없어요. 어머니가 죽어간 그 자리에서 나는 거꾸로 살려고 하는 거예요. 그 자리가 저라는 씨앗을 떨어뜨린 자리이니, 그곳에서 꽃 피울 수밖에요. 진흙 연못의 연이 어디 다른 곳으로 가 꽃을 피우는가요? 세상 바깥에서 온몸을 더러운 물에 담그고 천하게 살겠지만 내 생은 길고 짧거나, 천하고 귀한 세상의 이치를 벗어나 자유로울 거예요.”(1, 191~192) 진은 자유를 말하고 있다. 천하고 귀한 것으로 세상 이치를 나누는 세상을 벗어나 그녀는 더러운 물에 발을 담그고 천하고 귀한 것을 따지지 않는 삶을 살려고 한다.

     

    가부장제는 남자를 구속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여자를 구속하려고 한다. 남자의 대를 잇는 일은 여자를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쥔 남자는 자신의 권력을 여자가 낳은 아들에게만 물릴 수 있다. 참으로 묘한 제도가 아닌가. 권력은 남자가 쥐고 있는데, 그 남자를 낳는 이가 여자라는 것이. 여자가 자식을 낳으니 가부장제는 어떻게든 여자의 삶을 통제하려고 한다. 여자들이 제 뜻대로 살면 아들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권력 체계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는 여자를 어머니와 창녀로 나누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집안의 대를 잇는 아이를 낳는 여자, 곧 아내=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순결해야 했다. 아내를 숭고한 자리에 남겨둔 남자들은 기생을 통해 아내에게서 얻지 못한 즐거움을 얻으려 했다. 기생은 그러니까 가부장제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당대 사회에서 맡고 있었던 셈이다.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포기한 진은 쾌락을 원하는 남자들을 몸과 마음으로 사로잡아야 했다. 사대부 남자들은 기생에게 몸을 원하는 동시에 기예 또한 원했다. 기예는 악기를 타는 솜씨나 시와 글씨를 다루는 솜씨를 가리킨다. 진은 옥섬에게 잠자리 기술을 배우는 한편으로 뛰어난 기예를 익히는 데 힘을 쏟았다. 기예가 탁월해야 사대부 남자들과 담론을 즐길 수 있다. 잠자리 기술만으로는 그들의 사랑을 오랫동안 받기 힘들었다는 얘기다. 그녀를 거쳐 간 남자들은 무엇보다 그녀가 내보이는 기예에 탄복한다. 사대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진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나 할까. 몸을 통해 뭇 사내들을 받아들인 여인은 이렇게 기예를 통해서는 제 뜻을 펼치는 길을 새로이 연 것이다.

     

    열다섯에 동기(童妓)가 되어 송도 관아의 교방에 들어간 진은 2년여 만에 기예와 행실과 예법과 시서 교육을 마치고 머리를 올리게 되었다. 머리를 올린다는 건 남정네와 첫날밤을 보내는 걸 말한다. 거액을 내놓은 신청자가 있어 그 돈으로 별채와 난간 두른 대청마루와 연못까지 달린 호화로운 집을 마련했다. 거액을 낸 신청자는 그러나 약속한 날, 진의 방에 나타나지 않았다. 진에게 연정을 품고 있던 유기장 정씨의 아들 수근이 벌인 일이었다. 돈을 댄 사람이 천한 신분의 수근이라는 게 알려지면 사람들이 어찌 생각할까? 게다가 진은 기생에게는 당치 않은 정()에 제 뜻과는 상관없이 얽매인다. 기생이 되면서 진은 지금까지 제 몸속에 새겨진 모든 내용을 비운다고 다짐했다. 여기에는 물론 연정 또한 포함되어 있다.

     

    수근 문제로 혼란스러운 와중에 송도 유수가 진을 부른다. 송도 바닥이 명월이라는 이름으로 들끓으니 그 또한 보고 싶었으리라. 성은 한, 이름은 일규, 호는 묵지인 송도 유수는 진의 첫 정인이 된다. 정인(情人)은 말 그대로 정을 나누는 사람이다. 진은 세상 남자들과 몸으로 부딪치면서, 그들을 기예로 다스릴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녀에게 정인은 몸으로만 부딪치는 남자가 아니라, 그녀의 기예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인 셈이다. 이를 따른다면 송도 유수 한일규(묵지)는 정인이 맞다. 낮 잔치 자리에서는 진의 기예만 보던 유수가 늦은 밤에 다시 진을 부른다. 첫날밤을 치를 날이 다시 다가온 것이다. 큰돈을 주고 떠난 수근이 자꾸만 진의 마음을 얽어맨다. 자신을 비우기로 한 맹세가 처음부터 깨질 판이다.

     

    옥섬은 마음에 매이지 않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 진 또한 그리 생각한다. 하지만 어디 마음이 제 뜻대로 움직이던가. 송도 유수의 명령이니 거부할 수도 없는 자리이다. 기생으로 살려면 무언가를 하려는 마음을 자꾸만 버려야 한다. 그래야 무언가를 할 수 있다. 진은 보름 동안 유수와 낮밤을 같이 했다. 그 사이에 유수를 모시던 기생 죽선이 소복 차림에 머리를 풀고 방으로 뛰어들어서는 은장도로 제 손목을 긋는 일이 일어났다. 기생 일이란 이런 것이다. 남자의 시선이 다른 여인에게로 옮기면 이전 여인은 속절없이 버림을 받게 된다. 유수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박차고 방을 나간다. 진은 자신이 모욕을 받은 듯 마음이 가라앉았다. 남자의 정에 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마음이 없이 어떻게 몸으로만 다른 남자의 몸을 받아들일까? 남자들은 기생에게 마음이 없이 몸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 기생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뿐이니까. 죽선은 이 마음을 잃고 그만 유수에게 정을 주었다. 언제 떠날지도 모를 남자에게 정을 주었다. 진은 몸도 정도 마음도 제 것이 아니라는 옥섬의 말을 인정한다. 애초부터 그녀는 자신을 채운 모든 것을 비우려고 했다. 남자의 정에 연연하면 기생의 삶을 선택한 이유가 사라져 버린다. 이 때문일 것이다. 진은 소실로 들어오라는 한 유수의 청을 거절한다. 그녀는 소실이 되지 않기 위해 기생이 되었다. 이 뜻을 버리고 소실이 되면 그녀는 한 남자의 품에 갇힌 삶을 살게 된다. 자유를 잃게 된다는 말이다.

     

    한양으로 떠나는 유수와의 이별 자리에서 진은 몸도 정도 마음도 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유수가 그것들은 그럼 누구의 것이냐고 묻는다. 강의 것이고, 바람의 것이고, 소나무의 것이고, 백학의 것이고, 작은 풀의 것이고, 모래 것이라고 진은 말한다. 한마디로 진은 이 세상 모든 사물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비로소 자유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면 제 몸을 완전히 비워야 한다. 조금이라도 무언가에 매이면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한 유수는 진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안다. 그래서 그는 진과 함께 있고 싶으면서도 진을 떠난다. 다만 묵지라는 백마를 남겨 제 마음을 표현할 따름이다. 진은 한 유수와 첫날밤을 보냈다. 그에게 첫 정을 주었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매이지는 않았다. 첫 정인과 무사히 만나고 무사히 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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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상원, 죽기 전에 한 번은 심리학을 만나라 | 인문사상 2020-01-2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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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죽기 전에 한 번은 심리학을 만나라

    서상원 저
    스타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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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마음을 얻는 심리 기술을 익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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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을 비워야 타인의 마음을 얻는다

    - 서상원, 『죽기 전에 한 번은 심리학을 만나라』

     

     

     

    심리학은 인간 심리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간 심리를 왜 연구하는 것일까? 이 세상에 나밖에 없다면 굳이 인간 심리를 연구하지 않은 것이다. 이 세상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곳이다. 내가 상대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상대가 나를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지은이는 그래서 인간관계를 탐구하는 데서 이 책을 시작한다. ‘각인imprinting’이라는 말에 드러나는 대로, 인간은 머릿속에 각인된 그림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성인이 된 인간의 행동을 규정한다. 이것은 그만큼 어린 시절에 겪은 일들이 몸과 마음에 각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은이의 말마따나 인간관계의 기본은 모자관계로부터 시작(23)되는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타인을 내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지은이는 동기가 있어야 마음이 움직인다고 이야기한다. 아이가 열심히 공부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아이에게 적절한 동기 부여를 한다. 물론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지만, 아이를 그저 방치하는 것보다는 아이에게 적절한 자극을 주는 게 아이 입장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헤론이 실시한 감각 차단 실험에서도 나타나는바, 인간은 욕구가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행동하는 존재이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지 말라고 해도 밥을 먹는다. 자격이 필요하면 공부를 하지 말라고 해도 공부를 한다. 말년을 편하게 보내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열심히 일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때는 미래가 현재의 삶을 다그치는 자극이 된다.

     

    이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자기효능감이 높아야 한다. 자기효능감은 어떤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제대로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기 확신을 일컫는다. 앨버트 반두라가 창안한 이 개념은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이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걸 명확히 보여준다. 이를테면, 일을 하면서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이 있다.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니 아무래도 불안할 것이다. 이 사람이 자기효능감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은이는 성공한 사람의 케이스를 알아보거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격려를 받거나, 일단 시도해 보는 방법을 제시한다. ‘격려가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라면, 성공한 사람의 케이스나 일단 시도하는 일은 자기 스스로 해야 할 것들이다. 자기효능감을 높이려면 스스로 움직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겠다.

     

    이 책은 사람을 아는 기술, 사람을 읽는 기술, 사람을 얻는 기술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을 알아야 사람을 읽을 수 있고, 사람을 읽어야 사람을 얻을 수 있다. 다양한 이론과 기술이 이 책에 서술되어 있지만, 지은이가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그 사람을 감동시키고 즐겁게 하라는 내용으로 모인다. 남을 잘 웃기는 것보다 자신이 잘 웃는 게 좋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타인을 감동시키는 것은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겠다. 사소한 일 하나만으로 타인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법이다. 그 사람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그 누가 싫어하겠는가? 이 책에서 말하는 심리학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려면 이러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사람을 알고, 읽고, 얻는 기술은 다른 사람을 마음을 헤아리는 사소하지만 거대한 발걸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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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오도르 준 박, 『참선』 | 인문사상 2020-01-1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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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참선 세트

    테오도르 준 박 저/구미화 역
    나무의마음 | 2019년 11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삶을 긍정하면 마음의 결 또한 움직인다. 이것이 바로 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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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긍정하는 즐거운 마음 수련

    - 테오도르 준 박, 『참선』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참선이란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마음을 들여다보려면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어떻게 보란 말인가? 마음을 본다는 건 그 마음이 흐르는 길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내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생각이 들끓는다. 글을 쓰면서도 이 생각, 저 생각을 쉴 새 없이 떠올리는 게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글을 쓰려면 집중을 해야 한다. 집중을 해도 한 줄 한 줄 글을 쓰기가 어렵다. 천방지방 떠오르는 이 생각, 저 생각에 매이다 보면 글을 쓰면서도 글을 쓰지 않는 것 같은 미묘한 상황에 빠져든다. 글 쓰는 일을 일상에 대입해 보라. 일상을 살면서도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각에 빠져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 무수하게 빠져버린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이 책을 쓴 환산 스님(테오도르 준 박)은 성장하면서 왜 나는 저기가 아니고 여기 이런 환경에 살고 있을까?’, ‘왜 미국인들은 대부분 풍요롭게 사는데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까?’, ‘왜 세상은 이토록 불평등하고 불공평한 걸까?’ 등과 같은 생각들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 인종차별적인 놀림을 받고는 어머니에게 한국인의 외모를 가진 우리가 미국에서 사는 이유를 묻기도 했단다. 홀로 세상을 살 수 없으니, 살면서 우리는 무수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들은 우리와 같기도 하고 동시에 다르기도 하다. 같다고 해서 좋고, 다르다고 해서 꼭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나와 똑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아닌 이상, 우리는 살면서 다른 이들과의 갈등을 피하지 못한다.

     

    세상이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과 다른 곳으로 뻗어 갈수록 우리는 지금 사는 현실에 절망을 한다. 절망에 빠진 사람은 현실이 바뀌길 원한다. 현실이 바뀌면 마음 속 절망 또한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돈을 버는 데 매진하고, 어떤 사람은 명예를 높이는 데 매진한다. 돈과 명예가 있으면 자신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질 거라는 생각이 이를 더욱 더 부추긴다. 마음 속 절망을 이기기 위해 세상이 원하는 길로 나아가서 성공까지 했는데, 어느 날 문득 이 사람은 마음 깊이 새겨진 절망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이상하지 않은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얻었는데도 왜 절망은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은 더 답답해진다.

     

    지은이라면 이 사람에게 어떤 말을 들려줄까? 한 포교원의 국제 법회에서 지은이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CEO를 만난 적이 있다. 60대 초반의 이 사람은 사회적인 성공과 마음의 행복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남들이 부러워할 사회적 성공을 거둔 사람들 가운데 끔찍할 정도로 불행한 삶을 사는 이들이 많다고 그는 우울한 어조로 말한다. 돈이 없는 사람이 돈이 생기면 기분이 좋아진다.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온갖 것들을 할 수 있으니까. 시간이 흐르면 그것은 지루한 일상이 된다. 말 그대로 일상이 무감각의 지옥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화려한 삶을 살지만, 정작 이 사람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지옥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 성공한 CEO는 삶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건 참선일 뿐이라고 말한다. 지은이가 하고 싶은 말을 스스로 얘기한 것이다. 참선은 어떻게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는 묘약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마음을 들여다보는 게 참선이라고 했다.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번 CEO는 목적을 이루었는데도 여전히 내면적인 공허감에 시달린다. 그렇다는 것은 돈이 마음을 채우는 양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돈은 사회적인 가치를 얻는 한 방편일 따름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곧 돈이 많은 사람들을 우대하는 사회가 아닌가. 돈이 없는 사람들이 하기 힘든 일을 돈이 많은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다. 남들보다 열심히 일했으니 남들보다 더 화려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도 여전히 마음 속 절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고? 정작 제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불행은 언제나 자기 마음으로부터 온다

     

    지은이는 성공한 CEO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오래전에 경험했던 일을 떠올린다. 미국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지은이는 친구의 아버지로부터 무슨 일을 하든 결국에는 다 똑같다는 말을 듣는다. 지은이가 이해를 못하자, 그는 네가 무슨 일을 하든 의사가 되든 변호사가 되든 록스타가 되든 제임스 본드가 되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야. 무슨 일을 하든 염증을 느끼게 돼. 그냥 더 이상 즐겁지가 않아.”(1, 168)라고 풀어서 말한다. 앞에 나온 CEO가 한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다. 일이 즐겁지가 않은데도 그 일을 포기할 수는 없다. 돈을 벌어야 일상이 유지되니까. 그러면서 친구의 아버지는 말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고. 돈을 벌어야 일이 싫증이 날 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성공한 CEO가 이 사람의 말을 들었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돈을 많이 벌어놔도 마음 속 절망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을 들려줄까? 그럴 것도 같다. 어쩌면 CEO는 참선을 통해서만 싫증을 없앨 수 있다는 말을 들려줄지도 모른다. 이 두 이야기에 곁들여 지은이는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 하나를 덧붙인다. 스님 생활을 하면서 경험한 권태와 무감각, 절망과 무의미함, 그리고 좌절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은이도 사람이니 어찌 이런 상황을 겪지 않았을까? 승려가 된 지 5년 째 되던 해, 지은이는 스님으로 사는 게 싫증이 나 스승인 송담 스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싫증이란 말이 오롯이 보이는가? CEO도 싫증을 말했고, 친구의 아버지도 싫증을 말했다. 스님인 지은이도 싫증을 말한다. 스님이라면 당연히 이런 싫증을 넘어서야 하는 것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스님도 사람이다. 사람은 욕망을 지니고 있고, 그 욕망이 실현되지 않으면 삶 자체에 싫증을 느낄 수 있다. 문제는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이다. 친구의 아버지는 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돈을 많이 벌어놓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CEO의 경우에 나타나듯,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싫증이라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건 힘들다. 송담 스님은 스님 생활에 싫증을 느낀 제자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었을까? 스님은 생활이 힘들다는 제자에게 뜬금없이 매일 목욕하느냐고 묻는다. 제자가 매일 샤워를 한다고 하자, 이번에는 매일 이를 닦느냐고 묻는다. 닦는다고 하자 하루에 몇 번 닦느냐고 묻는다. 그리고는 예전 사람들은 머릿니 때문에 고생했다는 말까지 들려준다. 목욕을 하고, 이를 닦고, 머릿니로 고생한 일이 스님 생활이 힘들다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우리 때는 목욕도 그렇게 자주 안 했어.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목욕을 정말 자주 하지. 몸을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정말 노력을 많이 해.”

    스님은 매우 나직한 목소리로 계속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나를 바라보셨다.

    하지만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아. 마음보다는 몸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이지.” (1, 181)

     

    우리는 날마다 얼굴을 씻고 몸을 씻는다.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말을 들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다. 식사를 하면 어김없이 이를 닦기도 한다. 그 어느 시대보다 우리는 열심히 제 몸을 깨끗이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몸을 닦는 만큼 마음을 닦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오늘 못한 일을 내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일을 한다. 남들보다 앞서 달리면 뿌듯함에 온몸을 떨고,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처지면 절망에 몸부림을 친다. 하루하루 마음속에 욕망을 불어넣고 그 욕망이 실현되지 않으면 자신의 능력을 탓한다. 몸은 점점 깨끗해져 가는데, 마음에는 점점 먼지가 끼는 이 상황을 송담 스님은 다른 말을 하듯이 냉철하게 짚어낸 것이다.

     

     남자가 시궁창에 빠졌다. 남자를 끌어내려고 하니까, 그는 좀 더 안에 있고 싶다고 말한다. 송담 스님이 묻는다. 이 남자는 정신적으로 건강한가? 정상적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송담 스님이 빙긋이 웃으며 또 다시 가슴이 뜨끔한 말을 던진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시궁창보다도 훨씬 더 더러운 정신 상태에 빠지거든. 그런 감정들이 시궁창보다 더 더럽고 고약한데 말이야. 우리가 정말로 시궁창에 빠진다면 옷이나 피부 같은 껍데기만 더러워지겠지. 옷은 빨면 되고 몸을 씻으면 해결되잖아. 하지만 우리가 탐욕과 화, 망상에 빠지면 내면이 더러워지고 병이 생긴단 말이여. 마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몸까지도 그렇게 돼.”(1, 182) 탐욕과 화와 망상은 마음속에 때가 묻은 것이다. 옷에 묻은 때를 우리는 쉽게 보지만 마음속에 묻은 때를 우리는 전혀 보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을 포함한 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지은이가 말하려고 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는 세 사람 모두 자신의 불행을 직업 탓으로 돌렸다고 지적한다. ‘직업은 외부에 있는 것이다. 외부에 있는 것이 원인이므로 외부를 제거하면 일은 해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탓할수록 마음은 더욱 더 황폐해진다. 외부에 있는 모든 것을 없애지 않는 한, 마음을 아프게 하는 원인은 끊임없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외부로 향한 마음을 내부로 돌린다. 내부에서 원인을 찾은 것이다. 외부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는 한, 우리는 영원히 바깥에 있는 사물들, 곧 원인들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송담 스님은 수행 생활로 방황하는 지은이에게 기둥 같은 신심을 세우고 어서 돌아오라.”(1권, 185)는 깨우침을 내렸다고 한다. 어디로 돌아오라는 것일까? 밖으로 나간 마음을 다시 안으로 돌리라는 얘기리라. 그래서 바깥에 집착하는 자신의 마음을 지그시 들여다보라는 얘기리라. 지은이는 이 말을 자기 안에 믿음을 심으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신으로서 부처를 믿으라는 게 아니다. 흔들리는 마음속에 굳건한 기둥을 세워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만들라는 것이다. 참선은 바로 이 기둥을 세우는 과정을 의미한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어느 경우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세상 욕망에 물든 범부들은 느끼기 힘든 마음의 평화를 그들은 항상심(恒常心)으로 유지한다. 참선을 통해 이런 마음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항상심으로 들어가는 미묘한 문

     

    어린아이가 송담 스님에게 깨달으면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다. 스님은 잠시 생각하다가 깨달음을 얻으면 마음이 하늘처럼 맑고 깨끗하고 한없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행복은 맑고 깨끗한 마음에서 나온다. 지은이는 왜곡되고 망상으로 가득한 마음 상태를 몰아내고 맑고 행복한 본연의 상태를 회복하는 게 참선이라고 이야기한다. ‘본연의 상태라는 말이 참으로 중요하다. 행복은 바깥에서 가져오는 게 아니다. 행복은 이미 마음 안에 있다. 마음 안에 행복을 두고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 여기저기를 헤맨다. 돈을 벌고, 명예를 얻으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럴수록 마음속은 더욱 더 허해진다. 돈과 명예가 마음의 본연이 아니라는 말이다. 돈과 명예에 매일수록 마음의 본연으로 가는 길은 그만큼 멀어진다.

     

    이 말을 돈과 명예는 필요 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먹고 살려면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이것이 일상이다. 일상을 부정하고 어떻게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문제는 돈과 명예라는 수단을 마치 목적인 듯 갈망하는 데서 비롯된다.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명예로 사람을 평가하면, 사람 위에 돈과 명예가 서는 사회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돈과 명예가 있으면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지고, 돈과 명예가 조금이라도 흠집이 나면 마음이 우울해진다. 사람들은 그래서 돈과 명예를 추구한다. 더 많은 돈을 벌어 더 많은 명예를 얻으려고 한다. 밑이 깨진 항아리에 끊임없이 물을 붓는 격이라고나 할까. 돈과 명예를 중시하는 사회에 대해 더 이상 의심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참선을 하면 왜 의미 있는 삶이 가능해질까? 참선은 삶을 완전히 다르게 인식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 삶은 사건의 연속이고, 우리는 그 사건들로 인해 산만하고 속상해진다. 과거의 일이나 미래를 떠올리면 현재의 생각과 감정이 불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관심을 되돌려 이뭣고?” 하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대의심을 일으킬 수만 있다면 고통은 한순간 사라질 것이다. 동시에 관심이 자연스레 현재에 맞춰지면서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내적 변화와 주변 상황을 좀 더 명확히 인식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현실 직시력, 이것이 참선을 삶의 방식이라 부르는 첫 번째 이유다. (1, 253)

     

    대의심이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경상도 사투리인 이뭣고이것이 무엇인가의 줄임말이다. ‘이것은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대상이다. ‘이것은 밖에도 있고, 안에도 있다. 동시에 이것은 안에도, 밖에도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검기도 하고 희기도 한 이것은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다. 우리는 돈과 명예를 이것으로 생각하며 그것들을 얻기 위해 온몸을 불태운다. 돈과 명예가 주는 쾌락에 빠져 그에 대한 의심을 품지 않고, 당연히 질문도 던지지 않는다.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살면서도 아무것도 잃어버린 게 없다고 생각하는 이 마음을 향해 지은이는 이뭣고라는 대의심을 일으키라고 강조한다.

     

    이뭣고라는 질문은 자연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의심을 품는 순간, 우리는 이 삶을 살아온 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 마음 깊은 곳에서 밀려온다. 질문을 던졌는데도 아무 대답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오면 송담 스님은 지은이에게 마음이 속상할 때는 몸으로 가라는 말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몸을 곧추세우고 호흡에 집중하며 참선에 들면 마음을 괴롭히던 온갖 것들이 찬찬히 가라앉는 느낌을 받는다. 지은이는 종교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참선을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살다 보면 속상할 일이 있기에 우리는 참선을 해야 한다. 내 마음속의 악마들, 그러니까 불안이나 외로움, 우울함, 화와 같은 매서운 감정들을 다스리는 데 참선만큼 좋은 방법도 없다는 것이다.

     

    참선의 치유력

     

    참선을 하는 사람은 마음속 악마들을 선입견 없이 그 자체로 바라보려고 한다. 악마들은 죽여야 할 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야 할 조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지은이는 이 상황을 참선은 망원경이 아니라 정반대로 현미경과 같은 것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망원경은 현실 너머를 가리키고, 현미경은 현실 속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현실을 보기 위해 참선을 한다고 하지만, 지은이는 보이는 현실을 더 정확히 보는 게 바로 참선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참선을 하는 동시에 요가 수련에 전념한 것은, 어찌 보면 몸이라는 현실을 통해서만 새로운 차원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깨달음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송담 스님의 초기 법문에 이런 가르침이 있다고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수행하라.’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건 짊어져야 할 짐이 없다는 것과 같다.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이 사람은 삶이 끝난 것처럼 수행할 수 있다. 삶을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욕망의 짐을 차곡차곡 몸속에 쌓는다. 몸은 점점 무거워지는데도 사람들은 더 많은 짐을 얻기 위해 뛰고 또 뛴다. 현미경으로 현실을 보는 삶이 아니라, 현실적인 욕망에 완전히 매인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환상임을 인지하고 참선 수행을 하려면,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내려놔야 하는 것일까? 지은이는 오랫동안 머물러 살아온 이 몸이 우리의 진짜 육신이 아닌 것처럼 수행하라.”(2, 112)고 일갈한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다는 말을 저절로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참선은 삶을 긍정하는 즐거운 가르침이자 수행법이다.”(2, 125)라는 말로 지은이는 우리가 참선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다. 사람들이 선망하는 돈과 명예를 얻은 사람들이 마음속 외로움을 호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이 살아온 삶을 긍정하지 못해서다. 외부에 있는 대상을 욕망하는 것으로는 결코 삶에 대한 긍정에 이를 수 없다. 삶을 긍정하려면 무엇보다 마음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지은이가 참선의 치유력을 사랑과 연결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적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적과 친구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적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지닌 장점을 보면 된다. 부정해야 할 적을 긍정하는 순간 적이 친구로 바뀌는 원리. 이 원리가 바로 참선이고, 이 원리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지은이는 그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바깥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내 욕망을 끊임없이 들여다보려고 했다. 바깥에 초점을 맞추면 안에 있는 것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원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명예를 원한다. 바깥에 있는 그것들로 우리는 마음의 행복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지은이 말마따나 마음의 행복은 이미 안에 스며들어 있다. 바깥에서 아무리 채워놓아도 행복의 깊이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차라리 안에서 행복의 깊이를 발견하면 바깥이 더욱 풍부해지는 미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아낌없는 사랑을 베푸는 사람은 몸과 마음도 행복해지지 않는가. 참선이 곧 사랑이라는 지은이의 말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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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1-19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