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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따금 자신과 작별하는 여행이 필요하다 - 《리스본행 야간열차》 | 기본 카테고리 2023-02-1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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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저/전은경 역
비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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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가 새로운 표지, 양장본으로 나온 기념으로

예전에 써두었던 독후 기록을 다시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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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따금 자신과 작별하는 여행이 필요하다

-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페터 비에리) 지음 |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2)

 

 

 

페터 비에리라는 이름의 철학자는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이름으로 소설가가 되었다. 인간의 삶과 죽음, 존엄성, 자유와 예속 등의 문제를 다룬 철학교양서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그는 장편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자기 존중의 문제를 다루었다. 소설은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의 생각과 동선을 따라간다. 57세인 그는 교사이자 고전문헌학자다. 제자였던 부인과 5년 만에 이혼한 후, 17년간 과거의 침묵 속에 은둔하며 살았던 남자다. 또 심한 근시인데다 늘 불면증에 시달린다. 머리카락이 몇 가닥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 언제나 낡은 재킷과 자라목 스웨터를 걸치고, 무릎이 튀어나온 코듀로이 바지를 입고 다니는 남자. 하지만 그는 학생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자신이 가르치는 고전어처럼 확고부동한 그의 일상을 뒤흔든 것은 한 여자의 자살기도 사건이었다. 비 오는 날 출근하던 길에 다리 위에서 마주한 우연한 사건으로 그의 세계에는 균열이 생겨났다. 좀처럼 실수하지 않았던 일상에서 벗어나 실수를 하기도 했다. 그는 붉은 가죽 외투를 입은 여자가 남긴 ‘포르투게스’라는 발음의 여운을 기억하며 헌책방에서 책 한권을 집어 들었다. 아마데우 이나시오 드 알메이다 프라두라는 포르투갈 의사가 쓴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이었다. 그레고리우스는 책방 주인이 읽어주는 문장에 이끌려 책을 구입했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28)

 

 

이 문장을 시작으로 그레고리우스의 삶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포르투갈어를 독학하기 시작했고, 포르투갈어 CD를 들으며 고전어에서 느끼지 못했던 ‘해방감’을 느꼈다. 그는 이 작은 ‘일탈’의 정체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엿보기 시작했다. 유럽 지도를 꺼내 리스본으로 갈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망설임 없이 직장을 떠나면서 사직서를 겸한 편지를 교장에게 보냈다. 편지에는 자신이 떠나는 구체적인 이유를 대신하여 로마의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중 한 대목을 인용했다.

 

 

내 영혼아, 죄를 범하라. 스스로에게 죄를 범하고 폭력을 가하라. 그러나 네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나중에 너 자신을 존중하고 존경할 시간은 없을 것이다.”(44)

 

 

여기에 인용한 문장은 소설 전반의 주제와 비교할 때 모호하게 다가온다. 죄를 지으라고 부추기면서 동시에 강 건너 불구경하듯 거리를 두고 이들을 비난하는 모양새다. 이 표현에 주목한 이유는 그레고리우스가 감행한 일탈의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대목을 천병희 교수의 번역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보다 드러난다.

 

 

영혼이여, 너는 학대하고 있구나, 자신을 학대하고 있구나. 그러면 너는 자신을 존중할 기회를 다시는 갖지 못할 것이다. 우리 인생은 짧고, 네 인생도 거의 끝나간다. 하거늘 너는 아직도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타인들의 영혼에서 행복을 찾는구나!”(《명상록》 , 천병희 옮김, 숲, 2005, 34p)

 

 

이 문장은 외부적으로 주어지는 도덕적 의무감과 사회적 역할에 매몰되어 짧은 인생동안 끌려 다니는 인간의 모습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소설에 제시된 역자의 번역보다는 천병희 교수의 번역이 소설의 주제와 잘 어울린다. 아우렐리우스의 인용문은 타인과 사회의 기대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실마리를, 그리고 예속 상태에서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의 미망을 깨달으라는 외침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레고리우스가 불시의 일탈을 감행하게 하는 불가피하고 절박한 이유일 수 있다.

 

 

 

 

삶의 다양한 양태를 보여주는 두 도시 이야기

 

이제 소설의 장면은 그레고리우스를 따라 리스본과 베른을 오간다.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만 해도 기차로 26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그레고리우스는 포르투갈 의사가 남긴 책을 지치지 않고 번역하며 저자의 생각을 탐험했다. 동시에 의사의 지인들을 만나면서 이 남자의 삶 속으로 파고들었다. 따라서 이 소설은 리스본과 베른이라는 두 도시로 대표되는, 서로 다른 삶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그레고리우스의 집과 직장이 있는 베른은 알프스 산맥에 인접한 스위스 내륙의 도시다. 그에게 익숙함과 확실성, 안정감을 주는 도시다. 자신이 가르치는 고전어처럼 느리고 완만하며, 확고한 이성의 통제를 받는 세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레고리우스가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조망되던 삶”(127)을 누리던 도시였다. 언제든 고전어 및 고전문학에서 학생들의 인정을 받으며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었던 장소였다.

 

 

반면 리스본은 그레고리우스가 익숙한 삶으로부터 벗어나 도달한 도시다. 그에겐 삶에서 예기치 않게 마주하는 낯설음과 불확실성, 불안감이 느껴지는 미지의 세계다. 과거에 도시를 강타했던 대지진과 흑사병처럼 말이다. 중세 시대까지 이 도시는 광대한 대서양을 마주한 세상의 끝, 인식의 경계에 자리 잡은 곳이기도 했다. 한편 다리에서 만난 여인의 입에서 나온 단어처럼 빠르고 경쾌하며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 감정과 호기심에 이끌리는 삶이 지배하는 세계에 대응한다.

 

 

여행이란 불확실성으로 떠나는 모험이다. 그레고리우스처럼 한 마디의 단어에 이끌리거나, 리스본의 의사가 남긴 글에 매혹되어 감행하는 한순간의 일탈이기도 하다. 2000년 전의 아우렐리우스가 보았던 것처럼, 소설은 현실의 질곡에 매여 자기를 잃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을 비춘다. 프라두의 부모가 그랬고, 그 역시 이런 환경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기차여행에 대한 열망을 지녔지만, 출발지에서 멀어질수록 강한 향수병을 느꼈던 모순적인 인물이었다. 확고하고 익숙한 습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으나 두려움으로 길을 잃고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독자는 인생의 다양한 가능성을 탐험해보지 못한 채 익숙함과 관성에 머물고 마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도덕과 의무감에 매여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삶을 살아가곤 한다.

 

 

 

죽음이 잉태한 판타지, 시, 상상력의 힘

 

그렇다면 우리가 예속을 벗어나 자유로워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아우렐리우스의 말을 염두에 두면, 이 문제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의 문제로도 읽힌다. 자신을 존중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으로부터 소외되어 부유하지 않는 일이며,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일이다. 이는 자신의 생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삶에 단단히 발을 내딛는 일이기도 하다. 때론 현실의 벽이 두껍고 높기만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의 벽을 뛰어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한다. 떠나고자 하는 열망과 향수병 사이의 어딘가에 머무는 것이다.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었던 갈망을 평생 품고 살았지만, 제대로 시도해보지 않았던 약사 조르지 오켈리처럼 말이다. 삶에서 자유를 찾은 이들은 일탈을 꾀하여 소외되고 부유하는 자신의 ‘상황 전체를 뒤흔들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레고리우스는 뚜렷한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불가피한 일탈을 감행했다. 헌 책방에서 구한 책의 저자가 살았던 도시로 떠났던 것이다. 그가 리스본과 여러 도시에서 프라두의 가족과 지인들을 만나는 행위는 결국 자신의 삶과 존재에 대한 의미 찾기였다. 폐교가 된 프라두의 학교에서 그레고리우스는 오래 전에 꿈꾸었던 도시 ‘이스파한’을 기억해냈다. 그는 과거와 현재 사이에 무수한 가능성이 놓여 있었음을 깨달았다. 현재의 모습은 과거에 자신이 내린 결정이 모여 도달한 결과였다. 프라두는 이 가능성을 탐색하고 과감한 일탈을 감행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상상력임을 깨달았고, 이 상상력이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을 시(詩)에서 찾았다.

 

 

삶의 관성을 뒤흔드는 계획을 실행에 옮길 때, 시적 상상력은 우리가 판타지의 세계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게 한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모든 가능성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적 상상력은 우리가 실패했을 때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힘도 키워준다. 시적 상상력은 프라두와 그레고리우스의 삶이 모두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과 함께, 두 사람을 긴밀히 이어주는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프라두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267)라고 썼다. 인간이 평생토록 두려워하는 죽음의 실체란 살아 있을 때 자신을 둘러싼 경계를 넘지 못한다는 공포가 아닐까. 이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실패했을 때 느낄 수 있는 실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라도 시적 상상력이 필요함을 말한다.

 

 

여행 중에 그레고리우스는 자주 현기증을 느꼈다. 프라두는 자신의 글에서 ‘경고는 바깥으로 향하는 길을 열고, 우리에게 현재를 일깨워준다’(448)라고 썼다. 현기증은 그레고리우스를 찾아온 경고였다. 그에게 현재를 일깨우고, 시적 상상력이 필요할 때임을 알려주는 장치로서 말이다. 베른으로 돌아와 검진을 한 그가 결과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자, 친구 독시아데스는 ‘나에게 처방전이 있다’고 답했다. 이는 두려움을 느낀 친구를 존엄한 삶으로 이끌어주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용감한’ 답변이었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그레고리우스는 ‘인생은 우리가 산다고 상상하는 것’이라고 했던 프라두의 말도 떠올렸다. 확고하다고 믿었던 삶에는 언제든 불확실한 삶이 찾아올 수 있다. 시적 상상력은 우리가 불확실성에 머물 수 있는 여지와 힘을 마련해주며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의 기회를 주기도 한다. 이제 소설은 당신이 자신의 ‘이스파한’을 간직하고 있는지 묻는다. 때론 스스로와 작별하여 일탈을 감행해도 좋다는 메시지와 함께.

 

 

 

 

 

 

[책 속으로]

[1]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의 삶을 바꾸어놓은 그날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똑같이 시작됐다." (10)

- 소설의 첫 문장

 

 

[2]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28)

- 프라두의 글

 

 

[3] "무엇인가와 작별을 할 수 있으려면 내적인 거리두기가 선행되어야 했다." (46)

 

 

[4] "독재가 하나의 현실이라면, 혁명은 하나의 의무다." (93)

- 프라두의 묘비명

 

 

[5] "내 마음의 강물이 방향을 바꿀 정도로 다른 사람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인 적이 있었던가?" (177)

 

 

[6] "우리가 영원토록 우리여야 한다면 어떨까? 우리가 우리인 이 강요된 상황에서 언젠가 벗어난다는 위안은 결코 없다는 뜻인가? 우린 여기에 대한 답을 알지 못하며 또 영원히 알 수 없을 터인데, 이런 무지는 축복이다. 불멸이라는 이 낙원은 바로 지옥임을, 그 한 가지 사실은 알고 있으므로." (220)

 

 

[7]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267)

 

 

[8] "실망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엇을 기대하고 원했는지 어떻게 발견할 수 있으랴? (...) 우린 실망을 찾고 추적하며 수집해야 한다. (...) 자신에 대해 정말 알고 싶은 사람은, 쉬지 말고 광신적으로 실망을 수집해야 한다." (292)

 

 

[9] "타인은 너의 법정이다." (357)

- 프라두의 편지글

 

 

[10] "외관상 음울해 보이는 경고(memento)가 눈 덮인 수도원의 뜰에 우리를 가두어두지는 않는다. 경고는 바깥으로 향하는 길을 열고, 우리에게 현재를 일깨워준다." (448)

 

 

[11] "상상력은 우리의 마지막 성소다." (462)

- 프라두가 늘 했다는 말

 

 

[12] "존엄하게 죽는 것이란 그게 종말임을 인정하는 거야. 불멸에 관한 온갖 유치함을 극복하는 것이지." (481)

- 주앙 에사가 전하는 프라두의 말

 

 

[13] "말은 시(詩)가 되고 나서야 진정으로 사물에 빛을 비출 수가 있어." (529)

- 실업가 실우베이라에게 그레고리우스가 하는 말

 

 

[14] "그때 읽은 신문에서 유일하게 아직 기억하는 단어. 신기루, 환영, 우리 인생은 바람이 만들었다가 다음 바람이 쓸어갈 덧없는 모래알, 완전히 만들어지기도 전에 사라지는 헛된 형상." (537)

 

 

[15] "시적 진지함보다 더 진지한 진지함도 있을까? (...) 이것이 프라두와 그를 묶어주는 고리, 아마 가장 강한 연결 고리였다." (544)

 

 

[16]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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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기술인가를 묻는 뇌공학자의 공학이야기 | 기본 카테고리 2023-02-12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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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

임창환 저
MID 엠아이디 | 202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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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기술인가를 묻는 뇌공학자의 공학이야기

-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

: 뇌공학의 현재와 미래

 

임창환 지음 | [MID] | (2023, 개정판)

 

 

최근 뇌과학, 인공지능, GPT 등에 관한 소식이 큰 화두다. 생명활동을 하는 존재가 스스로 살아가는 데에는 다양한 수준의 지능이 관여한다. 우리가 의식이라는 명칭을 붙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특히 인간의 뇌는 체내의 신체적·정신적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의 20%가량을 소모하는 기관이라고 한다. 단 몇 분이라도 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 곧바로 뇌사에 이르기도 한다. 보다 복잡하게 발달한 생명체들에게는 뇌가 있음으로 해서 움직임을 조절하고 존재가 관여한 사건을 기억함으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해나간다. 뇌는 생명체에 필수불가결한 기관인 것이다. 이제 연구자들이 뇌의 메커니즘을 밝히고 이를 이용하고 있는 시대다. 여기에 뇌공학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눈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 마비를 겪는다고 상상해보자. 나는 상상만 해도 숨이 차고 갑갑한 기분이 든다. 잠수종과 나비의 저자 장 도미니크 보비가 겪은 일이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그가 남긴 기록은 바로 당사자의 입장에서 힘겹게 써낸 글이기에 전 세계의 많은 독자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보비는 세계적인 패션잡지 <엘르>의 편집장이었다. 멋지게 옷을 차려 입을 줄 알고, 문학과 스포츠카를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그에게 닥친 불운은 그가 뇌일혈로 쓰러진 후 3주가 지나 의식을 회복했을 때, 전신이 마비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몸은 예기치 않게 감옥이 되었다. 그의 정신은 말을 듣지 않는 육체 속에 영원히 유폐되어 버렸다. 그가 자신의 투병 기간인 15개월 동안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책으로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한쪽 눈을 깜빡거려 문자를 하나하나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비의 입장을 상상만 해도 아득하고 절망스러운 느낌이 밀려온다. 내가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를 읽으면서 뇌공학이라는 분야를 다시 보게 되었던 것은, 보비와 같은 입장에서 환자가 가족 혹은 다른 사람들과 보다 자유롭게 의사소통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가 뇌의 활동 혹은 뇌파를 이용하여 뇌와 기계, 혹은 뇌와 컴퓨터 사이의 접속 시스템을 개발하면,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의도를 지닌 생각만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상대방과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뇌가 활동할 때 발생하는 미세한 뇌파를 감지하여 활용하여 정신적 타자기와 같은 접속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이다.

 

물론 저자의 말대로 현실적인 제약은 아직 너무나 많다. 여기서 제약이라 하면 인간을 대상으로 검증을 해야 하는 상황과 이에 따른 윤리적 문제들, 접속 시스템을 거치면서 의사 전달의 속도와 정확도가 떨어지는 문제, 나아가 실수요를 고려한 경제적 타당성의 문제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여건 속에서도 끊임없이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아보고자 시도하는 생생한 연구현장의 이야기들을 이야기해준다. 장애를 갖게 된 사람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도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선천적인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장애는 불시에 찾아오기도 한다. 저자가 직접 만나본 루게릭 환자들의 꿈이 환자 스스로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 글을 남겨보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 공감하고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까닭에 저자의 연구실에서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에게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열어주고자 하는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다만 모든 과학기술에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이런 특수한 지식체계가 우리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대해서이다. 예컨대 뇌파를 이용한 뇌 접속 인터페이스는 점차 발달하면서 점점 더 많은 개인의 내밀한 생각들과 상호작용을 매개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정보는 개개인의 고유한 상황을 담은, 혹은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중요한 정보일 것이다. 이때 한 개인을 규정할 수 있는 이런 개인정보의 유출 가능성 같은 문제는 기계와 인간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지 싶다.

 

이와 관련한 또 다른 사례는 저자가 소개하는 거짓말탐지 기술이다. 저자는 책에서 거짓말탐기기가 개인의 사생활 침해 도구로 쓰일 가능성’(153)도 지적하고 있다. 나의 가족이나 애인이 매번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면, 우리의 생활은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진실이 언제나 좋을 것이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경우에 따라 장점과 단점이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언제나 진실을 모두 알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더 행복해질까? 이런 상상을 해보면 나는 아직 이런 기술에 대해 저항감을 먼저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또 만약 거짓말탐지 기술이 99%의 정확도를 가지고 개개인의 거짓말을 정확히 탐지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때 이 기술이 하나의 권위로 작용할 수 있게 되지는 않을까? 예를 들어 범죄에 연루된 누군가의 운명이 이 거짓말탐기기의 판독 결과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면 어떨까? 99%의 진실을 정확히 알 수 있다고 해도, 그 또한 1%의 오류로 인해 무고한 누군가의 삶이 파괴될 수 있는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알고리즘이 아닌 인간이 주목하고 고민해야할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안심인 것은 연구 현장에서 저자와 같은 뇌공학자들은 기술과 더불어 윤리적인 검토와 인간에 대한 이해, 그리고 철학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고 인식하며 이런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소개된 저자의 연구 사례를 보면, 저자가 이끄는 연구팀은 뇌-컴퓨터 접속 시스템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그룹임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특히 기억나는 점은 저자가 고민하는 기술이 경제성이 적어보이는 기술임에도 이 기술이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질문은 뇌공학자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을 다루는 모든 이의 가슴 속에 우선 필요한 요건이 아닌가 싶다. 저자가 소개하는 신기하고 놀라운 첨단 기술과 더불어 그가 고민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 애정이 함께 갖추어진 연구자들이 이 분야에도 많아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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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수학의 대가가 말하는 인류 문명의 정수, 수학의 역할 | 기본 카테고리 2023-02-07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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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수학은 우주로 흐른다

송용진 저
브라이트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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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수학의 대가가 말하는 인류 문명의 정수, 수학의 역할

- 수학은 우주로 흐른다를 읽고

 

송용진 지음 | [브라이트] | (2021)

 

 

누구나 수학이 중요한 분야인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하여 대부분은 학창시절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우선 수학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필요하다. 진학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니까. 상급 학교로 진학한 이후에 전공과목이 아닌 이상 수학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좀 더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학의 혜택을 단 한 순간도 받지 않는 순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 손에서 놓지 않는 휴대폰만 해도 수학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기에 사용되는 물리적인 디스플레이나 소자뿐만 아니라, 운영체제와 알고리즘이 수학의 도움 없이 그 기본적인 지식체계가 정리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편리하게 사용하는 GPS같은 기능을 구현하는 데에도 수학은 핵심적인 연장통이 된다.

 

수학은 우주로 흐른다의 저자 송용진은 위상수학의 대가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영재를 책임져온 교육자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그는 수학과 과학이 우리 문명에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폭넓게 고찰한다. 수학의 역사적 측면만이 아니라 수학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성찰이 책의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중심 화두가 되어버린 인공지능분야는 특히 수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분야다. 저자가 주목하는 수리 자본주의 시대의 핵심이기도 하다.

 

수많은 수학 영재들을 가르쳤던 교육자로서 저자가 제자들에게 수학의 필요성과 수학자의 역할에 대해 묻자 돌아온 답변이 인상적이다. 제자들은 어떤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적용할 것인지, 혹은 개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수학자의 역할이 점점 더 크게 기대된다는 언급도 덧붙인다. 단순히 모델을 기계적으로 실행시키는 작업에서 벗어나 문제점을 파악하고 평가하는 것은 결국 사람, 특히 수학자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결론이었다.

 

이 책은 그 동안 많이 보아온 외국 수학자의 저술이 아니라, 국내 수학자의 저술이기에 우리의 당면 과제와 이슈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우리의 기초과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견주어볼만한 일본의 근대는 이미 이 시기에 상당한 수학 및 과학의 기반을 갖춘 상태였다는 사실을 지적한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일본은 외국의 지식을 받아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일본은 이미 세계적인 수학자 과학자들을 배출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세계 기초과학을 리드하던 유럽 학계에 발을 담고 근대를 준비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안타까운 시간들을 크게 놓친 셈이다. 다행히 수많은 인재들의 노력으로 한국의 수학이 이제는 세계적인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세계적인 수학자인 저자로부터 직접 듣게 되니 비로소 실감이 날 정도다. 나아가 최근 나로호와 누리호의 발사 경험까지 갖추게 된 우리가 아닌가.

 

문명이란 단어는 중립적인 인상을 준다. 인간만이 이룰 수 있었던 성취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한 인류의 미래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가 되기도 한다. 인류의 운명과 관련지어 저자는 과학이 끊임없이 발전할 것이며, 인류는 지금 우리가 마주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낼 것이다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개인적으로 이 견해에 대해서는 수학과 과학에 대한 저자의 긍정론을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왜냐하면 우리의 문명 세계는 현재 수학과 과학에서 필수적인 이성과 합리성을 갖춘 이들이 제시해 놓은 방향을,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이유로 인류의 생존을 위해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수 계층을 위한 자본 논리가 인류 문명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쓸모없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여기에 저자가 주장하는 수학 및 과학의 지속적인 발전에 대한 믿음은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오히려 수학자, 과학자들의 냉철하고 비판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문명의 지속성이 수학자, 과학자들이 마련해 놓은 도구들에 대한 정치적인 활용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더욱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구체적인 수학을 현장에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수학적 사고나 판단력과 분별력은 문명인의 기본적인 소양이 되어야 할 것 이다.

 

결국 저자는 수학의 쓸모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일반인들의 수학적 소양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우리 문명의 생존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훈련된 수학적 사고로 합리적이고 올바른 분별과 판단을 내리게 되면, 우리의 운명을 숙고하고 보다 다양한 선택지를 검토하여 생존가능성이 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하여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교육자로서 저자의 가르침을 받은 우리나라 수학 영재들이 수학 연구자체뿐 아니라 우리 삶의 다양한 모습에도 관심을 가지는 인간적인영재들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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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을 건너 거대한 부조리에 맞섰던 여인 - 《장강일기 長江日記》 | 기본 카테고리 2023-02-0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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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장강일기

정정화
학민사 | 1998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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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을 건너 거대한 부조리에 맞섰던 여인

- 독립운동가 정정화 여사의 회고록 장강일기 長江日記

 

정정화 지음 | 학민사 |  (1998)

 

몇 년 전 정동의 한 극장에서 본 연극 한 편이 기억에 생생하다. 한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모노드라마였다. 그녀의 이름은 정묘희. 20세기가 시작할 무렵 태어난 그녀는 열 살이던 1910, 동년배인 김의한과 결혼했다. 그리고 이 땅의 많은 사람들처럼 나라를 잃었다. 독립운동을 하러 먼저 떠난 가족을 만나기 위해 상해로 건너간 후에는 정정화로 개명했다. 나는 여사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전하는 연극을 통해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녀가 남긴 회고록 녹두꽃(후에 장강일기로 바뀜)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정정화 여사는 처음부터 빼앗긴 조국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집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집안의 며느리로서 시댁 어른을 모시고자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스무 살의 나이에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압록강을 건넜을 때, 26년 간 이어진 그녀의 독립운동은 이미 시작되었다. 독립 자금을 모으기 위해 목숨을 걸고 국내에 잠입했으며, 시댁 식구와 임시정부의 어른들을 모시고 임정의 안살림을 맡았던 여사의 삶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이기도 했다. 장강일기에는 자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임시정부의 속내뿐만 아니라, 이런 여건에도 항일 저항 활동을 이어간 임정 요인들의 인간적인 면모까지 곳곳에 담겨있다. 저자의 기억에는 무장활동을 지휘하던 꿋꿋한 모습의 백범과 후동 어머니, 나 밥 좀 해줄라우?”, 라며 아이와 놀아주던 백범의 격의 없는 모습까지 선명히 각인되어 있었다.

 

정정화 여사의 발걸음을 머나먼 타향으로 향하게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릴 때 어른들은 우리가 미국의 도움으로’, 혹은 일본이 원자폭탄에 항복하여해방을 맞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 곁에는 국내 및 해외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일 활동에 참여했던 이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들이 개인의 안위에 앞서 무엇이 옳고 그른 길인지 먼저 헤아릴 줄 알았던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옳은 길로 향하고자 했던 여사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어디나 저항의 장이자 삶의 장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이 책은 세계사 속의 거대한 부조리에 맞서 치열하게 저항했던 이들을 증언하고 있다.

 

회고록에서 특히 기억나는 부분은, 저자가 이름 없는 영웅들을 기억한 대목이다. 역사책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저항의 장으로 뛰어들었던 이들이다. 양복점을 하며 독립 운동가들의 비밀 연락을 맡은 이세창, 한인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다 전장으로 나간 김철, 학도병으로 징집되었다가 탈출하여 임정을 찾아온 박재희나 고구마라는 별명을 가졌던 윤씨 같은 이들이었다. 저자는 임시정부의 어머니들과 아내들의 이름도 호명했다. 이들은 쫒기는 길 위에서도 임정의 살림을 돕고 서로를 보살폈으며 자녀들을 가르쳤다. 하루하루 살아내야 하는 문제와 싸우며 가족과 임시정부를 지켜낸 이들 역시 독립의 진정한 주인공이었다.

 

장강일기는 우리의 독립이 결코 외세에 의해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었음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저자는 독립은 독립하고자 하는 자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223)임을 몸소 보여주었다. 많은 이들이 일제에 부역하며 변절해갈 때, 어떤 이들은 승산 없어 보이던 거대한 부조리에 맞서 분연히 저항했다. 후자의 존재야말로 우리가 당당히 독립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제 나는 안다.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는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에 묵묵히 나아갔던 이름 없는 영웅들에 빚지고 있음을 말이다.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고 되찾아주는 일은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다.

 

 

 

 

 

[책 속으로]

[1] "첫 아이를 잃은 갓 스물 아낙네의 말 못할 심정, 남편 없는 시댁에서의 고달픈 시집살이, 며느리를 늘 친딸처럼 감싸주시고 귀여워해 주시던 시아버님의 구국이라는 대의를 위한 망명. 이 모든 조건이나 상황은 앞으로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판단을 흐리게 하는 안개였다. 도무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사방으로 둘러쳐진 장막이었다."(45)

 

[2] "이 길은 한 여인의 길이다. 열한 살에 시집와 세상 문을 닫고 규방에 갇히고, 열아홉에 첫아이를 낳아 잃고, 남편을 떠나보낸, 가슴 얼어 오는 그 모든 사연을 십대의 나이에 모두 치른 한 여인의 길이다."(49)

 

"이 길은 모진 풍파로부터의 도피도 아니며, 안주도 아니다. 또 다른 비바람을 이번에는 스스로 맞기 위해 떠나는 길이다."(49)

 

[3] "상해에 발을 붙인지 달포 남짓 지났을 때였다. 좋게 말하면 대담하고, 아무리 잘 봐준다 해도 당돌하기 그지없는 내 기질이 또한번 살아나기 시작했다. (...) 국내에 들어가서 돈을 구해 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55)

 

[4] "열차에 오르기 직전 친오라버니 같은 그분이 미소를 띠며 거센 평안도 사투리로 내게 한 말을 되씹어 볼수록 독립운동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나라의 주인이 과연 누구인가를 되뇌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60)

 

[5] "밤의 강 소리는 사람을 위협한다. (...) 전혀 으르렁거리지 않으면서도 사방에서 사람을 옥죄고 들었다. (...) 방향을 알 수 없는 이 곳 저 곳에서 불쑥불쑥 일어나는 물소리는 좌우편에서 속삭이듯 달려들어 양어깨를 짓누르다가도 어느새 뒷덜미를 파고들곤 했다. 목청 높은 협박이 아니라 사람을 은근히 겁에 질리게 하는 고요한 위협이었다."(64)

- 처음 어두운 밤에 압록강을 건넌 여사의 소회

 

[6] "192412월에 나는 다섯 번째로 본국에 들어오게 됐는데, 이 다섯 번째의 본국행에서는 임정의 공적인 임무는 띠지 않았다. (...) 이 기간 중에도 나는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특히 문학과 역사에 관심을 기울여 책을 늘 손에 잡고 있었는데, 학교 교육의 부족을 메우느라 내 나름대로 무진 애를 썼다."(89)

 

[7] "여기저기 다니다가 배가 출출하면 서너 시쯤 백범이 우리집으로 온다.

후동 어머니, 나 밥 좀 해줄라우?‘

암요. 해드려야죠. 아직 점심 안 하셨어요? 애 좀 봐주세요. 제가 얼른 점심 지어드릴께요.‘"(96)

- 임정의 어른 백범을 가까이 모신 여사가 기억하는 백범의 소탈한 모습

 

[8] "강소성에서 출발하여 안휘, 강서, 호남, 광동, 귀주성을 거쳐 사천성에 이른 장장 5천 킬로미터의 피난길은 중공군이 강서성에서 섬서성까지 쫓겨난 만리장정과 견주어질 만한 것이었고, 사실 우리끼리도 이 피난 행각을 만리장정이라고 부르기도 했다."(168)

 

[9] "상해에서 시아버님을 모시던 일, 독립운동자금을 품에 감추고 가슴조이며 거룻배로 압록강을 건너던 일, 일본군에 쫓겨 아슬아슬하게 상해를 빠져나와 기강까지 허겁지겁 도망왔던 일. 20년은 숨어 산 20년이었고 쫓겨 다닌 20년이었다."(173)

 

[10] "우리의 독립이 세계질서와는 전혀 무관하게 전적으로 우리들의 의지에만 달려 있지는 않다는 것이 냉엄하고 안타까운 현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열강들에게만 의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렇게 되지도 않았다. 결국 독립은 독립하고자 하는 자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었다."(223)

 

 

 

[11] "조국의 독립이라는 절대 절명의 대명제 아래 항일투쟁에 뜨거운 피를 뿌려 식혀 가며 몸을 불사른 혁혁한 이름의 투사들에서부터 성명 삼자도 알려지지 않은 채 어느 이름 모를 낯선 골짜기에서 항일이라는 돌덩이 하나만을 머리에 베고 숨을 거둔 무명열사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장하고 엄숙한 숨은 뜻이 없었더라면 과연 오늘의 이 순간이 있었을까? 이름이 났건 이름이 없건 간에 그들의 의기와 그들의 피가 없었더라면 결코 815일은 오지 않았을 게 틀림없다."(233)

 

[12] "토교로 돌아온 후 중경으로부터 전해 듣는 소식들은 하나같이 안타깝고 가슴 답답한 이야기들이었다. 남쪽에 진주한 미군이 일본의 앞잡이들을 그대로 관리로 임용한다는 말을 듣고서는 울분이 복받쳐 올랐다."(236)

 

[13] "불혹이라는 사십의 나이에 비로소 조국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조국의 이름으로 이역에서 산화한 이들을 동정호 물에 흘려보내면서 조국이 무엇인지를 확연히 깨달았다. 나는 아들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그리고 손끝으로 말해 주었다. 조국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그것을 위해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고. 그러면 조국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255)

 

[14] "간다. 돌아간다. 이제야 나 살던 산천에 간다. 전쟁난민이라고 미군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면 어떠랴. 돼지우리 같은 엘에스티 난민선을 타면 어떠랴. 거룻배라도 좋다. 주낙배라도 좋다. 고향으로 가는 것이라면 일엽편주인들 어떠랴. 우리는 난민이었고 거지떼였다. 그렇게 추방당했다."(265)

 

"바라지도 않았던 일이지만, 우리를 마중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쓸쓸한 귀국이었고, 참담한 귀향이었다."(269)

 

[15] "인간만사 새옹지마. 이 한마디는 아흔 살 가까이 살아온 내가 지금 늘 가슴 한켠에 품고 있는 말이다. 사람의 일이란 잘 되고 잘못되고를 따질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인지 그릇된 것인지를 먼저 헤아려야 되지 않을까."(287)

 

[16] "백범은 갔다.

무릇 난 자는 다 죽는 것이니 할 수 없는 일이어니와, 개인이 나고 죽는 중에도 민족의 생명은 늘 있고 늘 젊은 것이라고 말했던 백범은 갔다."(294)

 

[17] "6.25라는 거목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 너무나 많은 회한의 잔뿌리를 내려 박았다. 그리고 이 나라의 땅덩어리뿐만 아니라 사람과 정신마저도 두 동강 내버렸다. 그런 6.25는 내게 처참하거나 극악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으나 슬그머니 성엄(남편)을 빼앗아 갔고, 맹랑하게 나를 한 달 동안 감옥에 집어넣었었다. 그리고 나를 주저앉게 만들었다."(315)

 

[18] "올해 들어서 갑자기 몸이고 정신이고 예전 같지가 않으니 나이는 속일 수가 없는가 보다. 그래도 그나마 머리 속에 박혀 있고 가슴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남아 있길래 없는 글재주며 부족한 소견으로 원고지를 메웠다."(323)

 

[19] "아범이 성엄의 일지와 사진들, 내가 즐겨 읽는 책들을 따로 정성들여 싸놓았다. 내가 내 손으로 들고 갈 것들이다. 성엄의 일지 안에는 시아버님을 비롯해서 임정에 몸담았던 혁명투사들의 이름이 낱낱이 적혀 있다. 내가 본국을 드나들던 때의 기록도 빼놓지 않았다. 그 일지만큼은 내가 내 손으로 들고 갈 것이다."(325)

 

[20] "비록 셋방이었지만 집안의 흔적이 묻어나는 짐들을 차곡차곡 꾸리는 게 참 보기 좋다. 나도 거들어야겠다. 이 아침에 이사를 가기 위해 짐을 싸는 아들과 며느리와 손자와 손녀에게 내 손길을 주어야겠다. 조국의 타오르는 아침을 맞게 될 그들에게."(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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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알’, 신화가 지니는 힘 - 《신화, 치유, 인간》 | 기본 카테고리 2023-02-0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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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신화, 치유, 인간

신동흔 저
아카넷 | 202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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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알’, 신화가 지니는 힘

- 신화, 치유, 인간를 읽고

: 삶이 흔들릴 때 신화가 건네는 치유의 말들

 

신동흔 지음 | [아카넷] | (2023)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신화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지역과 무관하게 이야기의 보편성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구비설화 탐색자 겸 연구자로 소개하고 있는 신동흔의 신화, 치유, 인간을 읽으면서 품었던 의문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도 호모 사피엔스의 주목할 만한 특징 가운데 하나로 허구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언급한 바 있다. ‘허구’, 곧 만들어진 하나의 서사는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힘이 있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신화야말로 인간의 보편적이고 원초적인 서사다. ‘최초의 인간들을 이어준 보이지 않는 끈이었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동양과 서양의 신화를 아우르며 광대한 인류의 정신세계를 촘촘한 사유로 풀어내었다.

 

저자는 신화가 인간의 실존을 보여준다고 언급한다. 인간의 삶은 그 자체로 미력한 자기를 부여안고 한없이 흔들리는 일”(113)이기도 하다는 것. 바로 나와 세계가 관계하는 일에서 비롯된다. 이는 괴테가 일생동안 수정한 역작 파우스트가운데 한 마디,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파우스트, 전영애 옮김, (도서출판), 2019)란 표현을 떠올리게 한다. 노년의 대문호가 애정과 연민의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았을 법한 구절이라 생각했는데, 신화를 이야기하는 저자의 말에서도 우리 인간의 모습을 비춰주는 표현을 만났다.

 

신화 속에서 인간의 모습, 나아가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은 세계가 나와 만나는 일이다. 이는 자연 만물과 인간이 연결되는 순간이다. (개인)와 사회(집단)서사적 연대를 이루는 접점이 신화라 할 수 있다. 개개인은 신화에서 수많은 를 발견할 수 있다. 신화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면, 저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안에 비슈누와 브라흐마와 시바가 있는 것처럼 티탄족과 외눈박이 거인과 백수 거인과 제우스가 우리 안에 있다.”(42)

 

따라서 저자는 세계의 신화를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 만물과 인간의 생명적 연결성’(72)을 말한다. 지금 전 세계는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기능적으로 지구는 이제 하나의 거대한 조직체나 다름없어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 개개인 점점 더 고립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어쩌면 신화를 잃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계와 나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끊은 것은 바로 인간 자신이다.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명목으로 우리는 우리 안의 자기서사에 주목하는 일을 언젠가부터 소홀히 하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저자는 우리가 세계와 다시금 이어나갈 수 있는 해법이 신화에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저자는 나를 세계와 연결해주는 신화가 치유의 힘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인간이 신화와 만남으로써 신화를 되새기고 나를 발견함으로써 진정한 변혁의 길, 거듭남을 꾀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변혁, 거듭남을 거쳐 결국 나 자신을 확장할 수 있게 한다. 신화는 이 과정에 필요한 역치를 넘어갈 수 있게 한다. 다시 말해 신화는 자기 재탄생을 가능하게 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신화적 상상력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기 전에는 신화가 단순하고 원초적인 이야기의 모음인 줄로만 여겼다. 하지만 이 신화, 치유, 인간에서 저자는 신화의 서사가 지닌 강렬한 생명력, 치유의 힘과 자기 변혁의 힘을 독자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저자는 신화의 사례를 들어 노아의 방주어머니의 자궁태초의 알이라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보니 신화야말로 인류에게 삶을 견디게 해주고 치유의 힘을 건네는 태초의 알이 아닌가 싶다.

  

 

 

 

[책 속으로]

[1] "우리 안에 비슈누와 브라흐마와 시바가 있는 것처럼 티탄족과 외눈박이 거인과 백수 거인과 제우스가 우리 안에 있다."(43)

 

[2] "그 홍수는 태초의 물이며, 방주는 태초의 알이라고 할 수 있다."(55)

 

[3] "결국 신화를 완성해가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이다."(58)

 

[4] "신화는 자연 만물과 인간의 생명적 연결성을 말한다. 무엇하나 귀하지 않는 것들의 신령한 연결이다."(72)

 

[5] "마음 깊은 곳의 신명을 이끌어내서 사람들과의 서사적 연대를 더욱 강화해 가는 것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오래 흘러온 신화가 전해주는 본원적 해법이다."(107)

 

[6] "관계는 존재의 분리로부터 시작된다."(177)

- 사랑의 원형에 대한 언급

 

"존재하는 일이란 관계하는 일이다."(178)

-끝없는 부딪침과 밀어냄의 역학을 신화는 이야기한다.

 

[7] "시바의 파괴는 파괴를 위한 파괴가 아니다. 창조를 향한, 새 생명을 향한 파괴다. (...) 지금의 나를 죽임으로써 시바의 서사로 나아가는 것이 내가 찾아가야 할 서사적 길이었다. 달리 말하면,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변증법적 초극이다."(234)

 

[8] "현실 부정을 통해 스스로를 깊은 동굴에 가둘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의 신화로 읽는다. 그러면서 문득 자신을 돌아본다. 지금 스스로 동굴에 들어와 웅크리고 있지 않은지를."(251)

 

[9] "덧붙여 깨닫는 것은 그러한 살아냄이 제대로 된 죽음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하는 사실이다. 바야흐로 다시 나를 죽여야 할 때다. 일어서서 거듭나기 위하여."(257)

 

[10] "그 우주적 연결의 중심점이 어디인가 하면 내가 있는 지금 이곳이다. 그 연결성을 오롯이 인지하고 구현해낼 때 우리의 삶은 하나의 신화가 될 수 있다.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나 자신의 존재성은 세상 그 누구도 지울 수 없다. 설령 그가 신이라 하더라도!"(270)

- 마지막 문장

 

 

 

#신화치유인간 #신동흔 #아카넷 #신화의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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