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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0 개설

나의 리뷰
[ 부당거래] 펜은 총보다 강하다는 풍자 아닌 풍자 by 보헤미안_주소원 | 영화가 왔네 2010-10-2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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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부당거래 (디지털)

류승완
한국 | 2010년 10월

영화     구매하기

 


 

울에서 여러명의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연쇄살인되는 극악무도한 일이 벌어진다.

경찰은 범인을 잡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마침 대통령각하는 경찰청장엘 방문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청장수뇌부는 이 일을 맡을 적임자를 찾아나선다. 바로 '최철기'형사(황정민)로, 경찰대 출신이 아닌 광수대 출신으로 능력은 좋지만 경대 출신이 아니라 빛을 못보고 있던 인물.

 

철기(황정민)는 해동그룹 장석구(유해진)가 태광그룹에게 건물입찰을 빼앗긴 현실을 미끼로 '범인'의 배후-스폰서가 되달라고 한다. 그렇게 그들의 불법, 부당한 거래는 결국 시민들에게 경찰의 대대적인 범인검거 결과로 알려지고 사건은 마무리지어지는듯 했다.

 

 하지만 이 사이에 어쩌다가 끼어든 검찰청 꼴통 검사 '주양'(류승범)은, 자신 역시 대기업 뒤를 봐주고 커미션을 먹는 형편이었지만, 하는 일마다마다에서 거치적거리는 인물, 최철기(황정민)가 못마땅하던 차, 그의 비리를 알고 뒤를 캔다.

 

 

최철기
황정민
 
주양
류승범
 
장석구
유해진
 
강국장
천호진
 
마대호
마동석

 

 

독의 내공, 필살기, 그리고 비장한 연출, 이 세 마디로 압축될수도 있는영화같다.

 나는 평소에 왜 류승완의 정공법적 연출법이, 생각보다 평단에서도 관객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나 하는 의아심을 가졌는데, 아직 많이 접해보진 않았지만, 평단의 압도적인 지지는, 일단 류감독에게는, 그간 절치부심한 노력의 보답같아, 팬으로서 참 좋다.

 

영욱 음악감독은, 스릴러 영화 '썸'(장윤현 연출, 고수 주연) 에서 보여줬던 미스테리 영화의 리드미컬한 음악을 최대한 활용해서, 영화가 정말 '마이크 만'(콜래트럴) 헐리웃 영화를 보는듯 웅장하게 했다.

 


 

 

 이번 단락 스포일러(spoiler) 유(有)

 

하지만 결말에는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있다. 그렇게 복수를 한 것은, 결코 죽은 이가 바랬던 점도 아니고, 동영상 증거가 있는 마당에, (마음이야 이해한다만) 사회나 언론에 알려서 황정민을 처벌받게 했어야 옳다고 본다.

 

스포일러 해제

 


 

 

 

정민, 유해진, 류승범, 그밖의(이 음절로는 사실 부족한 @.) 조연들의 연기 앙상블이 정말 최고였다!

 

리는 추격자 이후 최고의, 그리고 추격자처럼 패배주의적이지 않은,

하지만 씁쓸한 범죄 영화를 드디어 한편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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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th 리뷰

 

 

 

 

 

 

 * 사생결단에서 만났던 두 배우의 불꽃튀기는 연기.

  극중 검사 취조실에서 주양(류승범)이 " 아니 뭐, 저야, 최형사님이 다 차린 밥상에 숫가락 하나 놨는데요"라는 대사를 능청스럽게 한다.

 


 

 최철기 : "니네같이 법 안 지키는 놈들이 잘 먹고 잘 살아"

 

 

 


 

 (해동그룹) 장석구 : "절대 나 혼자못 죽는 거 알죠? "

 

 

 

 

 

 주 양 : "(어떻게,) 한번 까드려야 내가 뭐하는 놈인지 아시겄어 ?! "

 

 

 

 


 생각외의 출연, 송새벽씨. '시라노:연애조작단'에선 최고의 연기였는데 여기선 카메오 정도. ㅎㅎ (앞으로 한국영화는 송새벽 나오는영화, 안나오는 영화로 구분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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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드디어 출현한 여자 김지룡, 목수정의 핫 Hot 한 신작 ! | Basic 2010-10-25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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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꼭 읽어야 할 화제의 도서 리뷰 대회 참여

[도서]야성의 사랑학

목수정 저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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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읽으면서 예전에 쇼킹한 책들을 많이 내셨던 김지룡씨의 책을 보는듯한 데자뷰를 느꼈다. 그리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특히 인터넷에선) 하지 못한 우리 대중문화계에 대한 거침없는 목소리 voice 에 통쾌했다.

 

아무튼 주제는 '사랑', 그리고 사랑의 야성이다.

 

 " 연애는 스펙 쌓기라는 이 시대의 의무로 인해 뒷전으로 밀린다. 스펙만 쌓고 나면, 연애는 저절로 된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현실이 아니다. 스펙만 서로 맞으면 마음이 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펙이 쌓이고, 연애시장에서 내밀 수 있는 카드가 두둑해지면 스펙의 시대가 허락하는 결혼정보회사를 통한 짝짓기는 할 수는 있을 테지. 그러나 그것은 서로의 직관이 순식간에 맞부딪히고 시선이 한순간에 엉켜 버리는, 숨막히는 열정과는 거리가 멀다.

 

 돋아오르는 열정의 뿔을 칼로 계속 베어 내기만 하면, 어느 순간 열정은 자라기를 멈추는 것이다. 그 자라나는 열정의 뿔의 이름은 바로 '야성'이다."

 pp.44 - 45

 

이 책 은 참으로 용감한 발언들을 서슴없이 한다. 예를 들면 이런 문단도 그렇다.

 " 여성의 입장에서 한가지를 더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매력남을 한국에서 찾는 일이 참으로 어렵다는, 아니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생에 대해서 완전한 주체인 동시에 미와 진리와 사랑에 대해서 열려 있고, 끊임없이 세상에 대해 탐구하며, 예술에 대한 감수성도 가진 그런 남자. 자신이 걸친 옷들과 걸음걸이, 그가 머릿속에 담고 있는 사고가 하나의 톤으로, 자신만의 색깔로 정렬되는 사람. 세상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강인하면서도 다름을 충분히 포용할 수 있을 만큼 유연한 그런 인간."

 

목수정의 시각에 따르면, 정말, 특히 30대 한국남성이 매력남이 되는 것은,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워 보인다.

 

 " 한 남자가 유교적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로우려면 독특한 사회적 환경이나 남다른 세계관이 들어앉을 수 있을 만큼의 처절한 독서, 관습을 압도하는 강철 같은 지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남성 독자 동료들이여^^ 너무 놀라진 마시길. 목수정은 여자에게도 그런, 한국 매력남의 희소화에 일익을 담당했음을, 아니 실은 너무도 크게 자신들의 임무를 소홀히 했음을 또 여지없이 지적하니 말이다.

 

 "한국남자들의 매력이 바닥이라면 그들에게 매력 대신 높은 연봉과 번드르르한 스펙만을 요구한 여성들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

 

 그녀는 사랑의 타입을 여러가지로 분류했는데, 어떤 이들은 감정의 황홀경에 휩싸이는것이 두려워 사랑을 난도질하고 달아나는 사람이 있다, 라고 한다. 그리고 얼마전 읽은(리뷰도 올린) '심리학이 연애를 말하다'(이철우)에서 읽었던 대목과 상통하는 말도 한다.

사랑의 시작은 다 다르지만, 사랑이 끝날 경우엔 다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고.

애써 이전 상대와 다른 부류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 다시 사랑을 시작해도 시간이 지나면 연애는 비슷하게 끝난다고.

 

사람은 자기가 잠겨 있는 강물의 색깔 그리고 향은 잘 의식하지 못하고 또 문제점같은 것을 알지도 못한다. 하지만 나를 둘러싼 절대적 환경을 객관화할 수 있을 때 거기서 잠시 빠져나와 생경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때, 비로소 우린 서로가 맺고 있는 관계의 건강성을 알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프랑스적인 삶을 살아온 목수정의 독특한 사랑학 개론은 다분히 의미를 가진다.

 

 목수정은 '접촉'과 '스킨십'의 전도사를 자청한다. 인류에게 사랑과 그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접촉이 한 인간을 성장시키는데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면서, 스킨십을 가능한 한 많은 인류에게 건네시길, 특히 아이들에게, 라고 권유한다. "인류를 구원하는 아주 쉽고 달콤한 방법"이라면서.

 

 우석훈과 마찬가지로, 목수정은 특히 88만원세대의 정서를 걱정한다. 우석훈이 삼촌같았다면 목수정은 누나, 언니같달까? 도서관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 공부하는 한 20대 남이 어느날 같은 공간에서 호감이 가는 20대 여성을 발견했는데 어느날부터인가 여자도 이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호감같은것을 표현했다고 한다. 고민하는 고시준비생은 인터넷에 글을 올렸는데, 결국 가장 많은 인정을 받은 댓글은, "지금은 마음 접어라. 확실히 시험 합격했을때 대쉬하고 연애해도 늦지 않다. 오히려 여자도 안정된 위치의 당신을 확실히 받아줄 것이다"였다고 한다. 현실적이라고 나도 생각하는 답변이었지만, 어쩐지 씁쓸했는데 목수정은 이런 일들을 놓치지 않고 생각해 온 것이다.

 

독재에 항거하던 시절, 프랑스 68혁명의 시대에도 연애, 사랑 할거 다하면서 짱돌을 들고 운동을 해온 선배들에 비해, 목수정이 보기에 현재의 초식남, 건어물녀는 안타깝다못해 이해를 할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도저한 물결 속에서 언젠가부터 어른들, 기성세대들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통탄해 한다.

 

 "자신의 신화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일이 바로 연애다. 모든 탐험에는 반드시 위험과 예기치 않은 변수가 발생한다. 그러나 탐험은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정해진 숙소에서 정해진 관광지를 관람하는 단체여행 상품은 아니니, 연애가 유발하는 예기치 못한 사고들은 도처에 예비되어 있을 수밖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스스로 안 담그면서 초식남, 건어물녀임을 오히려 스스럼없이 주창하는 현재 청춘들이 , 연애 선배 저자로서 도와주고 싶은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연애문제로 고민많은 사람들에게 적어도 같은 연애 동지로서 정보 좀 공유하자고 한다. (ㅎㅎ)

 "내 이야기를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과 견주어 보면서 나의 상처와 아픔과 경험을 객관화할 수 있고, 그 기억들이 오늘 내가 풀어 가는 내 연애사와 맺는 관계망을 어렴풋이 포착하게 된다." (p.99)

 

 어제 뉴스에 보니 20대 여성들 중에 절반이 넘게 결혼은 안해도 된다라는 답변이 있었다. 목수정의 의견은 정확했다. 또한 결혼이라는 제도에 일단 여성이 진입하면 안봐도 비디오인 온갖 고충들을 절절히 열거하며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가부장제 그리고 유교의 망령이 사라지지 않았고, 이것은 알게 모르게 여성들의 결혼관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유교는 여성에게 그들이 만든 세계의 모든 모순을 삼켜 평화로운 가정을 꾸려 주는 너그러운 아내, 아이들을 낳고 지혜롭게 양육하는 아이의 엄마로서 의무만을 부여하고, 세상의 절반인 그녀들이 남자들의 인생을 위한 조력자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 

 

한다는 것. 

 

각종 '--녀 (女)' 신드롬이 있었는데, 이런 말이 생긴것은 잘 따져보면 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이후였고, 무엇보다 청춘인 남성들이 더 이상 거리에서 마음에 꽂힌 여성에게 수작을 거는 이른바 '커피 한 잔 족'이 사라지던 때, 그 때와 정확히 시작이 맥을 같이한다는 목수정의 문장은 나를 감탄케 했다.

 

다시 한번, 젊은 여성들도 진정한 매력을 가꾸는 일을 스펙쌓고 성형수술하는 것만큼이나 신경을 써야 한다고 설파하는 목수정 작가.

 

 "지성과 감성을 경작 cultivate 하는 행위는 소위 말하는 문화 culture 를 가꾸는 일이듯이, 우리가 취하는 정신의 양식이건, 육신의 양식이건, 모두 몸과 마음으로 서서히 다독이고 가다듬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을 살찌우는 것이 되는 법" 이다.

 

개인적으로 2008년 쇠고기 정국 촛불집회 때의 언급이 매우 적확하고 날카롭게 받아들여졌다.

 

 " 여와 남의 다른 성향은 2008년 촛불시위에서 선명히 드러났다.

100일간의 촛불 대장정이 끝나 전 시민사회가 이 촛불을 재평가하였을 때, 신랄한 비판의 목소리들이 기존의 운동권 마초 진영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나 나는 2008년 촛불이 수평적이고 평화적이며, 창의적이고 발랄한 연대의 최고치를 보여 준 역사적 시민행동이었다고 본다. 여성들이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들,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시위 기간 내내 반반으로 유지되지 않았던들, 촛불은 그렇게 발랄할 수도, 수도, 감동적일 수도 없었다"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의 전력등이 좌파임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녀가 부추기는 것은 시위를 하라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겐 '사랑을 하라, 그것도 당장하는게 좋다'는 목수정의 힘차고 커다란 외침이 더더욱 당황스러웠다. 4대강에 대해 다시 촛불들고 청와대를 진격하라고 한다면 차라리 그것을 하겠는데 사랑에 돌입하라는 저자의 명령에는 나로선 무척 당황스러웠다. -_-V

 

 "세상을 변혁하는 가장 정확하고 빠른 방법은 사랑에 빠지는 것.

 사랑 없이 사는 것은 삶에 대한 모독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린 늘 백지가 된다. 연습할 수 없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사랑에 투항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느 순간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며, 그것이야말로 삶이라는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을 최대한 누리는 일이다."

 

접촉을 너무도 사랑하시는 (!) 목수정씨는, 아마 나처럼, 주말 종로길에 2인 1조로 딱 붙어서 다니는 연인 군대가 도보에 지장준다고는 절대, 절대 생각하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오히려 흐믓하게 바라보시겠지?? ㅡ.ㅡ

 

하지만, 목수정이 말한, 사랑하지않는 사람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중독'의 길은 조금쯤은 나도 참조할 만 하다 여겨졌다.

 우리의 너무 많은 시간은 사실 무의식적인 중독의 행위로 채운다. 인터넷 중독, 게임 중독, 일 중독, 문자 중독 

사실 요즘 나는 책 중독이다. --;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와중에 이 책도 만났으니 목수정작가도 그 부분은 용납해주겠지 ^^;

 

목수정은 끝까지, 사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듯, 사랑종교를 널리 널리 전파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으로 끝을 맺으신다.

 

" 한 사람의 마음에 머무는 평화가 주변에 전염되듯이, 한 커플의 마음속에 활활 타오로는 만져지는 듯한 사랑은 사랑에의 욕구를 주변에 일깨운다. 사랑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삶에 집중하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삶은 죽은 삶이므로."

 

 왜 꼭 사랑이 한 남자, 한 여자를 향하는, 이글이글 불타고, 눈에서 레이저광선이 나가야한다는 것인지는, 현재의 나로선 100% 받아들이기 힘들지만,세상 어딘가엔, 특히 프랑스엔 이런 여자분 한분 정도는 있다는게, 아직 이 지구는 훈훈하다고도 느껴졌다. ^^ 그런데 그것이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 그리고 내게 많이 사라졌던 Feminist 세포를 살려주신 (실은 갑자기 많이 증식됐다!) 분장실 목 선생님, Thank You !!

 

하지만 여전히 좀 삐딱하고 (라고 쓰고 능력부족이라 읽는다) 불초한 제자는 선생님의 이 문장으로 항변한다.

 p.271 "사랑이 발화하는건 순간이고 사랑이 시작된 초기의 몇 개월이 걷잡을 수 없는 기적의 연속이라면, 그 사랑을 포근하고 달콤한 삶의 원천으로 오래 유지하는 일은 섬세한 주의력과 부단한 의지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순간때문에, 몇개월의 기적 맛보자고, 기나긴 주의력과 의지력을 요하는 사랑에 섣불리 빠지기, 그거 쉬운 일 아니라고. 더군다나 2010년 한국땅의 30대 여자에겐.

 

 - 리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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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마북스] 유럽의 로맨틱 명소 101 - 유럽 여행을 꿈꾸다 | Basic 2010-10-24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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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꼭 읽어야 할 화제의 도서 리뷰 대회 참여

[도서]유럽의 로맨틱 명소 101

사라 우즈 저/조진경 역
시그마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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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테랑 여행작가(사라 우즈)가 들려주는 그림엽서 속 생생한 이야기 -

유럽의 로맨틱 명소 101 리뷰 (Review)

 

 

주의: 이 글은 책 서평을 픽션(Fiction)형식으로 풀어 쓴 글입니다. (스크롤 압박)

 

 

 

보헤미안은 작가 지망생이다. 그런데 얼마전 응모한 공모전에서 또 떨어졌다.

벌써 몇번째인지.. 기운도 떨어지고 자신감도 떨어진 상태에서 체력도 바닥이다.

무엇으로 에너지를 채충전 할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 친구들에게선 가끔 전해들었지만, 나는 한번도 못가본 유럽. 그곳엘 가는 것은 어떨까! 통장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그 곳으로 떠나기로 했다. 그것도 1년동안.

 

 

1월-스페인, 2월 -그리스, 3월-불가리아,터키 4월 - 이탈리아, 5월 -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폴란드

6월 - 룩셈부르크, 벨기에, 네덜란드, 7월 - 핀란드, 라트비아, 아이슬랜드, 8월 -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9월 - 헝가리, 우크라이나, 세르비아, 10월 - 프랑스, 독일(베를린), 11월 - 영국, 아일랜드, 12월 - 스위스, 독일(뮌헨), 모스크바(러시아)

 

오랫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이제서야 여행을 떠나는 것이 설레이기 시작한다. 기대된다, 나의 첫 365일 유럽 일주.

대한항공을 타고 13시간만에 마드리드 에 도착했다. 아, 정말 세계는 그렇게 멀지가 않구나! 호텔을 체크인하고 시내 관광을 나선다. 살사테카 Salsateca 는 살사 전문 클럽. 그냥 무리에 섞여 구경만 해도 흥이 절로 난다. 몸치인 내가 스리슬쩍 몸을 뒤흔들다 스페인 사람들의 눈초리를 느끼고 민망해서 다시 차렷 자세로 돌아간 소심한 여행녀, 보헤미안.--;

 

하지만 손미나가 말했지 않은가? '스페인, 너는 자유다'라고. 며칠 스페인에서 머무르며 불과 며칠전 대한민국의 평범녀였던 나는 점점 몸도 마음도 자유로와짐을 느끼게 됐던 것 같다. 한국은 얼마전에 10년만의 폭설이 내렸다는데 여긴 참 훈훈하다. 훗.

 

사실 한국에서 있을때 몇달간 공모전 한다고 올빼미족이었다. 쉽게 삶의 사이클은 바뀌지 않고, 피부는 거칠어져만 갔는데 이곳 스페인에 오니, 일단 마음이 자유로와서인지 표정부터가 펴진다. ㅎㅎ 마드리에서 코르도바 Cordoba로갔다. "하루는 밤 10시부터 시작된다"는 이 곳. 나같은 올빼미족에겐 정말 안성맞춤인 도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플라멩코 클럽들이 즐비했다. 왠지 요금이 세보여;; 들어가진 못하고, 길에서 축제나 퍼레이드의 여인들의 플라멩코를 관람했다. 그냥 오렌지 쥬스 한잔 마시면서 보아도 정신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정열의 나라 스페인! 이라는게 정말 실감났다.

 

나에겐 판타스틱영화제로 알고 있던 '산 세바스티안'으로 갈 것인가, '마요르카 섬'에 갈것인가 잠시 고민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유럽인에게 상담(?)하니, 초콜렛을 좋아하냔다. 그래서 (싫어하는 사람 있나?) 당근 좋아한다고 했더니, 그러면 마요르카로 가란다. 그래서 '마요르카 섬 Mallorca'로 고고씽. 비행기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가 환상적이다. 마요르카 섬은 초콜릿 테라피를 하는 곳이 있다고 들어서 그걸 하러 갔다. 기왕 유럽 온거 돈 쓸땐 쓰자 싶은 마음으로..(그러나 이것은 결국 중반부 들어서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게 된다 ;) 소박한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그 귀한 스페인 초콜렛을 온몸에, 아낌없이 언니가 발라주신다. 헤헷. 아, 이 기분.. 한 개의 빼빼로가 된것 같았다. (비유가 저렴하다 ㅠㅠ) 코코아는 영양분이 많아 피부를 아주 부드럽게 할 뿐만 아니라 기분을 좋게 해주는 엔도르핀과 세로토닌 수치를 높여 행복한 마음을 들게 한다고 했다. 사실 그게 초콜릿 때문인지는 잘 몰랐지만^^;;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목욕이니까 기분은 하늘을 나는듯 ㅎㅎ 건강해진 몸과 맘으로 유럽 각지를 향할 것이다 !!

 

스페인의 마지막 방문지는 (아흑..더 가고 싶지만..특히 포르투칼 지못미) '그라나다 Granada'. 그 유명한 알함브라 궁전이 있는 곳이다. 내가 갔을땐 생각보다 관광객이 많지 않았고 기상이변의 영향으로 갑자기 추위가 닥쳐서 사실 생각만큼 많이 둘러보지 못해서 아쉽다. 하지만, 그레이스 켈리가 묵었다는 알함브라, 유럽 본토에선 유일하게 이슬람 건축양식이 있는 그 곳은 난생 처음 본 나의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한달이 훌쩍 흐르고 2월이 되었다. 그리스 로 향한다.

두말할 필요없는 그리스 신화와 관광의 나라 그리스. 수많은 영화촬영지 이기도 하다. 수도 아테네는 학문의 중심지였고, 북부 테살로니키는 비잔틴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아테네에서는 원없이 신전 구경을 하고 박물관을 돌아다녔다. 방학 시즌이라 아시아 관광객이 많았고 간혹 한국인들 목소리도 듣게 되면 기분이 묘했다. 주로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관광 사진을 찍고, 물건을 흥정하는 내 고국의 사람들. 어쩔때는 아테네에 실망했느니, 왜 이렇게 여기가 유명한지 모르겠느니 하는 아저씨 아주머니들 말소리를 심심찮게 들렸다. 그에 비해 일본 관광객은 뭐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 분위기가 확실히 다르다. 그들도 몰려다니긴 하지만 상당한 관찰력으로 유적지에서 오래 머무르고, 보름 동안 있던 내가 아테네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때 골목에서 만난 아시아인들은 거의 일본인이었으니까... 요즘은 중국인도 확실히 늘어났다고 가이드가 얘기했다.

 

 

컨셉없이 아테네를 죽치고 있던 내게 민박집 주인장 이씨 청년이 영화 좋아하냐고 어느날 물어왔다. 영화? 훗, 장난해? 이러면서 그럭저럭 좋아한다고 뻥치며 ㅋ 얘기했더니, 요즘 인기있는 것중에 아테네 야외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있다고 했다. 아니 그런 것을 왜 이제서야 알려주는 거야! 이씨를 빽드랍..하진 않고 무척 반가워하며 색다른 마음으로 외출을 했다. 시내에 두 어 곳이 알려진 영화상영 장소가 있는데 '시네 파리 Cine Paris'라는 곳으로 가서 영화를 봤다. 프랑스는 몇달 후 갈 곳이기도 하고.. 영화 목록은 대중없는데 그 날은 '타이타닉'하고 '로마의 휴일'을 하길래 두 편 다 봤다. 영화 '시네마천국'에서 인상적이던 한 대목의 주인공이 내가 될 줄이야. 영사기가 건물을 프로젝트로 쏴서 보여주는 것이다. 야외이고 사람이 많아 정신사나웠지만, 굉장히 색다른 경험임에 틀림없었다.

 

 

어느 명승지도 권태는 찾아오는 것인가. 수많은 신들의 이름으로 방문을 유혹하는 아테네에도 슬슬 질려가고 있을 무렵 ; '키프로스 섬'을 찾아갈 계획을 하고 이내다시 원기가 충천된 보헤미안. 시칠리아 섬도 가고 싶었지만 요즘 나름대로 유명해진 곳이고, 키프로스는 지금 아니면 언제 가볼까 싶어서 냉큼 비행기 티켓을 샀다. 키프로스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컨츄리틱하다. 요즘은 사람들이 산토리니 에 많이 간다고 한다. 아, 그, 손예진이 원피스 자락 휘날리며 다니던 CF속의 산토리니섬... 손예진과는 거리가 좀 많은 나로선 ;; 소박한 키프로스가 역시 잘 어울린다. ;;

 

몰랐는데 키프로스 Cyprus 는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의 신의 전설의 중심지였다. 그래서 그런가 자연스러운 미 가 이 섬 곳곳에서 느껴진 것도 같다. 따스한 햇살과, 이국적이고 훈훈한 바람.. 살짝쿵 내 나라의 섬 제주도가 떠올랐다. 뭔가 비슷해서. ㅎㅎ 아직은 관광 개발의 바람이 많이 불지 않은 키프로스에는 그래서인지 관광객들도 이 섬을 닮아 편안한 인상이었던 것 같다. 10월에는 포도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그 기간이 되면 주민들은 아프로디테, 에로스 신에게 경배를 표하며 축제를 즐긴다고 한다. 언제, 가을에 다시 이곳을, 기왕이면 누군가와 함께 올 수 있을까? 섬을 떠나는데 유독 친절하고 인정많은, 10여일 동안 정 든 주민들이 아른거렸다. 그리고 그리스를 떠난다. Bye, Greece.

 

 

불가리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데 이번 유럽 여행길에서 가장 아시아인이 적었다. 아무래도 그리스에서 불가리아로 코스를 잡는 일이 많지 않아서인가. ㅎㅎ 불가리아는 굉장히 내게 무지한 국가였다. 하긴 유명 도시 빼놓고는 유럽은 다 낯설긴 했지만 --; 왠지 느낌에 불가리아에 가면 곳곳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꼿꼿이 걸어다니시고 ㅋ 유기농 육류, 큼지막한 치즈가 널려있을것 같다는.. 나만의 상상을 하는 사이 수도 소피아 Sofia 에 도착했다.

 

 

이런 자기 암시, 최면효과? 때문이었을까. 소피아의 공기가 남달랐다. 하악- 저 푸른 하늘과 구름은 내 조국 한국하고 또 어찌나 닮았는지! 그렇지만 확실히 스페인, 그리스에 비해 뭔가 낙후되고 한산한 느낌이 물씬 났고, 이제 여행 3개월차인 내겐 약간의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하였다. 힘내자, 힘!

 

소피아 근교의 도시 '반키아'로 향한다. 그곳은, 역시 불가리아가 고령인구가 많다는 것 답게, 유명한 휴양도시였다. 약간은 한국에서도 자주 보았던, 펜션 형태의 요양소들이 질서정연하게 산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심호흡을 해본다. 차갑지만 말끔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로 들어온다. 여행 책자에 보니 '이곳의 깨끗한 공기와 음이온의 농도가 높아서 기분이 좋아지고 긍정적인 사고를 키워준다'고.

 

요양지 옆엔 역사적인 장소도 있었다. 이것 또한 처음 안 사실인데, 불가리아는 한때 옆 땅 터키의 지배를 받았는데, 독립 전쟁에 큰 역할을 한 영웅 코스타 파니차라는 전투 영웅에게 아예 땅 하나를 헌정했다 는 것이다. 문득, 대한민국의 독립투사들의 현실을 떠올렸다. 땅을 드리기는 커녕, 유해발굴도 못하고, 뉴라이트는 교과서를 왜곡하려고 하고, 김구 선생이 10만원권에 나오는 것은 무위로 돌아갔던 일들..

 

터키로 향하기 전 들렀던 지방 '벨리코 투르노보'에서는 불가리아인들의 역사적인 자부심을 은근히 느낄 수 있었다. 불가리아는 681년에 건국되었는데 이는 유럽 전체에서도 오래된 편이라, 불가리아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한때 공산주의 국가였던 불가리아는 그때의 억압적인 그늘이 남아 있었지만, 터키로부터 스스로 나라를 구한 자신의 역사를 참 사랑하고 잘 보존하고 있는 듯해 부러웠다.

 

터키 (Turkey)

터키는 왠지 유럽에서 가장 익숙한 이름이었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통로 역할을 하는 터키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과 연결되어 있다. 내가 간 3월은 터키의 내륙과 동부는 춥다고 알려져 있어서, 난 수도 이스탄불과 북쪽 흑해 연안 도시들만을 방문하기로 동선을 짰다. 드넓은 터키이기 때문에 따라서 나의 여행기는 결코 터키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듣기로 터키는 성지순례나 여행자를 위한 서비스가 잘 되어 있어서, 장기 여행자가 많다고 한다. 이스탄불과 보드룸에서 정말 스페인보다도 많은 각국의 여행자들을 볼수 있었고 대화도 자주 나누게 된 첫 유럽이어서 뜻깊기도 하다.

 

이스탄불 중심가에 다다른 순간, 바닷가, 항구의 특유의 냄새가 났다. 그것은 불현듯 닥쳐와서 먼 이국땅의 여행자를 갑자기 덮쳤다. 어디선가 아련히 들리는 아랍풍의 단조로운 멜로디의 노랫소리와 더불어 갑자기 길을 잃은 듯 머리가 띵해졌다. 하지만 곧 익숙한 맥도날드, 스타벅스 체인점 상호를 보는 순간 나의 멍함은 현실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미국주도의 다국적 기업들을 이스탄불에서 보고 반갑다니. ㅠㅠ

 

콘스탄티노플 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세계사 책에서 접했던 이스탄불. 역동적인 사람들의 흐름과 관광객들, 바다위를 오가는 거대한 배들, 그리고 무엇보다 화려한 이슬람 사원들의 돔들이 시선을 사로 잡았다. 여기가 이슬람국가임을 체감할 수 있었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고, 터키에 오면 터키법을 따라야 하는 거겠지. 나는 갑자기 중동 국가에 온 양 새삼스레 몸가짐을 달리 하게 된다. 확언할 순 없지만, 이스탄불은 위압적인 웅장함이 지배하는 도시였다.

 

여행책에 나온 바닷가 '보드룸'으로 향했다. 그리스 지중해쪽으로 나 있는 보드룸은 역시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 도시라고 한다. 나는 다시 그리스에 와 있나 싶은 착각이 많이 들었는데 곳곳에서 터키어가 들려서 겨우 터키땅을 자각하게 되기도 했다. 깊고 푸른, 빨아들일 것 같은 바다색깔은, 아마도 이 바다를 설명할 수 없어, '터키 색'이라는 색깔명을 만들었구나 싶었다. 고대 시인 호메로스는 이 바다 색깔로 시를 짓기도 했다.

갑자기 해변에 쭉쭉빵빵 금발미녀들과 부유해 보이는 백인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가난한 배낭여행족인 내겐 참 부럽기 그지없는..^^ 그런데 이 곳이 그 옛날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화려한 애정행각의 바다였다는 설명을 듣고 보니, 그래서 유명한가 싶기도 하고. 안토니우스는 신부 클레오파트라에게 걍 '보드룸' 자체를 선물했댄다. 헉, 역시 로마시대 얘기는 스케일이 장난 아니다 @.@

 

 

기온이 점점 올라가는 게 여행중인 내게도 느껴졌고 어느덧 4월이 다가왔다. 왠지 무척 기대되는 나라 '이탈리아' 나는 지금 그 곳으로 간다.

워낙에 유명한 나라, 가는 곳이 다 관광지요, 보는 것이 다 역사유적이라는 이탈리아 베니스 공항에 내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너무 기대를 많이 하지는 말자'고 왜냐하면 실망이 클까봐 말이다.^^ 그리고 소매치기 등 물건 분실은 특히 조심하자고.

 

이렇게 말하면 욕들을지 모르지만, 베니스에서는 1박만 하면서, 그냥 숙소에서만 뒹굴었다. 여기가 그저 베니스려니~ 나에게 무슨 고딕 양식, 무슨 양식 말해봤자, 하루만 지나면 잊어버린다. ㅠㅠ 그래서 그런 건축 사조는 나중에 귀국해서 책으로 공부하자 생각하고, 작정하고 상당 시간을 그냥 잠만 잤다.

 

그리고 푹 잔 후에 체력 Up 돼서 기대되는 마음으로 피렌체(플로렌스)로 향했다. 역시 듣던대로, 그냥 사진 찍으면 다 화보였다. +__+ 우어 ~~ 사대주의인지 모르겠지만 ㅎㅎ 우리나라나 동남아시아 어디에서 봤으면 '어우 건물 낡았다 쓰러지기 직전인걸' 하겠는 낡은 건축물 앞에서도... 까닭모를 경외심같은게 들면서, 피렌체는 이렇게 역사적 건물을 아끼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가 하는 생각만 들었다. ;;

 

여태까지의 여행길에서 처음으로 사람 구경을 한없이 하기도 했다. 특히 나처럼 혼자 온듯한 아시아 여성들을 보면 괜시리 말을 걸고 싶기도 했지만, 또 그네들의 마음을 모르니 그럴 수 없어, 괜시리 서로 눈치작전만 펼치기도 하고. -_-

 

경비가 빠듯하기도 하지만, 책자에서 설명된 무슨 호텔이니 스파(Spa)니 에는 관심이없는 나였는데, 피렌체의 '빌라 산 미켈레 Villa San Michele'호텔은 남달랐다. 다름 아니라, 호텔인 그 건물은, 미켈렌젤로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건축한 건물이 지금 호텔의 외관으로 쓰인다고 한다. 와, 난 언제 저기 한번 묵어보려나..ㅎㅎ

 

두오모 성당 위에 올랐다. 유난히 커플들이 눈에 띄었다.--; 하여튼 이 곳은 볼게 많으니 커플은 무시하고 ㅋ 피렌체 시를 내려다 보았다. 아- 정말 아름답다. 그리고 행복하다. 제임스 카메론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느꼈던 왕 된 기분이 이런걸까?

 

다음엔 꼭 사랑하는 이와, 또 가족들과 와보리라 다짐하고 피렌체를 떠났다.

 

토디(Todi)와 밀라노(Milano)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했다. 토디는 그야말로 카톨릭 문화가 넘실대는 성당과, 궁전과 광장, 올리브 숲, 시장 등을 한가로이 돌아다녔다. 어느 날은 한껏 기분내보자고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돌아댕기는데 Piazza del Popolo 에서 어느 느끼한 이탈리아남이 말을 걸기도 하고 ㅋ 뭐 하는 놈팽이인지 알수 없어 바쁘다며 엔티크 가게로 들어가버렸다 ;; 아니면 내가 혹시 착각한건가? 그냥 뭐 물어봤을지도 ㅋ

 

하여튼 다음 날부턴 다시 선머슴모드로 돌아가 사람들 많이 있는 데 위주로 구경다녔다. 종소리가 은은히 들리면 숨가쁘던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고, 왜 그렇게 종소리는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던 것인지.. 종소리는 사진에 담아갈수 없어 애석하다. 

 

밀라노는 잠깐 들르는 차원으로 공항을 이용해 다음 국가로 출발하기 위해 며칠 묵게 되었다. 아, 그런데 이게 왠 행운? 4월엔 대대적인 꽃 축제가 열리는 것이었고 내가 있던 월요일에 축제가 시 전체에서 열리고 있었다. 꽃의 도시는 플로렌스인줄로만 알았는데, 밀라노도 4월엔 꽃으로 도시가 온통 뒤덮히는 거였다. 익숙한 백합, 장미부터 온갖 이름 모를 화려하거나 순결한 꽃들이 가는 곳마다 나를 반겨줬다. 당분간은 볼 꽃들을 밀라노에서 다 본 것 같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아름다운 문화의 나라 '오스트리아 Austria'로 드디어 발을 들여놓았다. 5월은 오스트리아에서는 비수기에 속했지만 유명한 몇개 도시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알프스, 스키의 도시 인스부르크 Innsbruck 에서 낭만스런 말 마차를 타고 시내 투어를 하고, 오스트리아 분들과 소소한 담소를 나눌 여유를 누렸다.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 Salzburg'는 이탈리아 저리 가라 싶은 야경과 당도해서 황홀했다. 클래식에 능통한 편은 아니지만, 잘츠부르크 곳곳에서는 음표가 마구 흘러나오는 것 같았던건 나의 과도한 상상력이었을까?

 

남부 그라츠 Graz 는 언젠가 한 일간지에서 자세히 소개한 기사를 보고 로망이었던 도시였는데 번화가는 전차를 타고 스쳐지나가듯 보고 잘츠카머구트로 서둘러 향했는데 그곳은 산과 호수가 있는 곳으로 '사운드 오브 뮤직'의 장소였다.

투어의 일종이라 왠지 생각보다 낭만적이진 않았지만 ㅎㅎ 알프스의 한 자락에 있다는 생각에 왠지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빈 Vienna 로 날아갔다. 그 곳엔 지인이 살고 있어서 꼭 가고 싶었던 데였다. 오랫만에 만나서 빈 한 중심에서 한국어로 두 처자가 수다를 떠니, 어찌나 유쾌하고 색다르던지. ㅋ 우아하게 독일어를 하는 그녀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니, 또 내가 알던 지인의 모습과 달라 보여서 굉장히 존경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ㅁ/

 

빈의 거리에서, 빈의 밤에 오늘도 어디선가 '비포 썬 라이즈'의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청춘의 한 가운데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을까?! 낭만적인 상상은 다음 도시에서도 해도 충분할 것 같았다. 바로 체코 공화국, 프라하가 다음 행선지인 것이다.

 

 

프라하는 유럽을 가는 내가 꼭 가야할 곳이다. 나의 ID '보헤미안' 그 원조 나라이기 때문이다. 하핫. 중앙 보헤미아 지대를 흐르는 블타바 (Vltava) 강가에 위치한 체코 수도 프라하는 '아르누보'와 '바로크' 등 양식의 건축물들의 전시장 같은 곳이라고 한다. 내게는 그냥 '멋진 곳' '멋진 곳' 또 '멋진 곳' 들의 퍼레이드였지만. ^^;; 정말 눈이 엄청 호강했다. 찰스 다리 주변에서는 나처럼 정신줄 놓친 관광객들과 사정없이 몸과 어깨가 부딛히긴 했지만.

 

 

체코 남단으로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쪽에 있는 도시 '브르노 Brno'는 역시 체코의 음악 도시라고 한다. 확실히 중유럽으로 넘어오면서 클래식적인 문화와 많이 접하게 되니, 하나 둘 알아가는 맛이 있었다. 오오, 그런데 이 브루노 시의 '베세드니 둠' 연주회장에, 서울 시 교향악단이 왔다는 게 아닌가! 아히나~ 정명훈 마에스트로를 예서 보는겐가?! 표가 좀 남아서 구입할 수 있었고, 유럽 여행 5개월차에 처음 온 도시에서 서울의 오케스트라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모르는 음악들이 더 많았지만 레알 감동의 도가니였다. 아마 객석의 유럽 관객들은 저 후즐근한 동양 여자가 (좀 초췌했음) 왜 저렇게 오버하나, 음악을 정말 사랑하는가 싶었을 것이다. ㅠ 돌아가면 정말 격하게 서울 오케스트라를 사랑해 주리라 ~ !

 

뜻깊었던 체코 여행을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웃 나라 '슬로바키아'로 간다. 생각해보니 유럽, 특히 동유럽은 비교적 현대라는 80,90년대에 나라가 나뉘고 합쳐지고 하는 좀 신기한 역사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한때 체코슬로바키아였던 나라들이 이렇게 나뉘었다.

슬로바키아는 유황이 풍부하여 치유 효과가 있다는 온천, 그리고 울창한 신비로운 침엽수림으로 유명하다고 적혀 있다. 대표적인 중, 동부 유럽으로서, 인접한 국가들이 무려, 우크라이나, 체코, 헝가리, 폴란드, 오스트리아인 매우 국제적인 나라인듯도 하다. 오스트리아, 체코에서 상당히 바삐 돌아다니고 특히 경사가 심한 곳을 오르락 내리락 했더니 유난히 온 몸이 결리던 차, '피에스타니 Piestany'의 저명한 온천에 갈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수온이 69도 씨 까지 올라가는 이곳의 물은 포바즈스키 이노벡 산맥의 층리 작용에 의해 석고와 유황 성분이 풍부하다고 한다. 과연 2시간 들어가 있다 나왔는대도 온 몸이 개운하다.

 

이 곳이 얼마만큼 많이 사랑받았는고 하니, 제2차 세계 대전때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인들이 쉬어가던 중 이 곳을 이용한 적이 있다고 한다. 헐! 그냥 치열한 전투만 벌어지고 했을 것 같은 군인들이, 이 곳에 와서 유유자적 몸을 풀고 갔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참 어색했다. ^^;

 

맘 같아선 그냥 한달 푹 이 곳에서 온천에서 지내고 싶을 정도로 안락했지만, 갑자기 너무 안일해진 마음에 깜짝 놀라, 서둘러 다음 나라 플란드로 향했다. 폴란드도 오스트리아, 체코 못지 않게 풍성한 문화의 향기가 가득하리라 고대하며..

 

슬슬 6월이 다가오고 여름의 초입으로 다가선 지금이 폴란드의 여행 적기라는 정보에 얼씨구나 하며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장 '마주리아'로 향했다. 이곳은 러시아, 리투아니아, 벨로루시와 국경이어서 굉장히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자랑하고 있었다. 왜 인지모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사랑해 온 나무 '자작나무'가 강 옆으로 펼쳐진 국립공원에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곳엔 여러 동물들이 있고 특히 '비버'가 산다는데 아쉽게도 보진 못하였다. 슬로바키아 쪽에 위치한 '크리니카-즈드로이'는 역시 피에스타니처럼 유명한 온천관광지였다. 슬로바키아에서 뽕을 뽑은 이유로 ^^ 패스했다. ㅎㅎ 그리고 정말 처음 들어보는 도시 '포즈나뉴 Poznan'. 한마디로 이 지역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_< 겨울엔 어떨지 모르지만 여행 성수기인 내가 갔을땐 동유럽 사람들이 놀러 많이 와 있었다. 진정 숲이란 이런 곳이구나,를 느꼈는데 나중에 들으니 포즈나뉴 숲의 면적은 '룩셈부르크' 국토 면적의 5배라고 한다. 역시 비버와 여우가 서식하고, 통나무집에서 자며, 가문비나무, 낙엽수가 많았다. 5월의 며칠을 숲 통나무집에서 행복하게 보냈다. 나와 같이 캐나다, 네덜란드, 일본 여성들이 묵었는데 우리는 돌아가서 꼭 연락하자며 급 친해지고 특히 한국에 꼭 오겠다며 난리들이었다. ㅋ

 

내 사랑, 포즈나뉴여 꼭 나중에 또 보자. 눈물을 머금고 (!) 6월 1일을 맞으며 어느새 비행기에 또 몸을 실은 나를 발견했다. 가자, 룩셈부르크로 !  작지만, 알찬 나라 룩셈부르크의 수도 (동명) 룩셈부르크에 당도하니 또 분위기가 완연히 달랐다. 어느샌가, 뭔가 풍요롭지 않지만 다채로운 자국만의 빛나는 문화의 동유럽에서 슬슬 북유럽으로 넘어온 것일까..? 하여튼 내겐 그 모든 것이 다 경이(驚異) 자체였으니 특별히 변하는건 없었지만. 그래도 다르긴 달라 휘둥그레 하며 도시를 걸어다니는데, 어우 진짜 인종 전시장인가 싶을 만큼 각기의 눈동자와 쏼라쏼라 들리는 언어들.. 얼핏 불어도 들렸다?! 아닌게 아니라, 룩셈부르크는 EU 국가들 중에서 외국인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작지만 수도 룩셈부르크에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유적지도 보유하고 있었다. 언어는 룩셈부르크어, 프랑스어, 독일어.

 

 

왠지 벨기에랑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이 나라는 대충 둘러보고 벨기에로 곧장 향했다. 벨기에는 사실 많이 친숙한듯 하지만 또 알고보면 상당히 내겐 베일에 가린 나라여서 궁금증이 커졌다. 벨기에라... 일단 잘 산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역사를 잘은 모르지만, 스위스처럼 중립국같은, '우린 그다지 근심걱정 하지 않고 산다'는 분위기랄까? 언어는 의외로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란다. 네덜란드어를 쓰는 북부 플랑드르는 미술 도시가 많고, 남부는 프랑스어를 쓴다는데.. 내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진 않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유명한 국제도시 '브뤼셀'에 도착했다. 여러 유럽 지역이 그랬지만 브뤼셀도 참으로 웅장하고 화려했다. 6월이어서일까, 더더욱 활기차고 뭔가 정치 모임이 많은 듯한 분위기는 다른 나라들과 다르기도 했다.

 

 

이번에 가장 놀랐다면 놀랐던 점은 브뤼셀이 Jazz의 도시였다는 것이었다. 뭐, 뉴욕, 런던, 도쿄, 파리 같은 대도시치고 재즈가 없는 데는 없지만, 브뤼셀을 쳐준다는 것은 또 처음 알았다. 특히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주제곡 '문 리버'의 작곡가 틸레망스 라는 분이 벨기에 출신이란다. 그렇구나!! 문 리버 원츄! 하지만 내가 재즈를 듣자고 유럽을, 특히 브뤼셀을 온것은 아니고, 재즈는 서울에서도 언제든 들을수 있기에, 카페같은 데를 찾진 않았다. ^^; 어디를 가면 좋을까 하고 관광안내소에 물으니, '브뤼헤'를 추천받았다.

브뤼헤 Brugge 는 초콜렛의 도시라고 했다. 그냥 잘 모르는 처음 만난 가게에서 초콜렛을 사도 엄청 맛있었다. 그 달콤함과 깊이란 ! 사각 초콜릿, 다크 초콜릿, 밀크 초콜릿, 화이트 초콜릿. 아기자기한 초콜렛 가게들 앞을 지나기만 해도 마치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온것 처럼 즐거웠다. 차마 양심이 찔려, 몇개 샀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가족과 친구들한테 아주 조금씩만 줄수 있을 것 같아 미안하다.

 

 

6월의 마지막 도시는 호감형 나라 '네덜란드'. 역시 그렇게 큰 나라는 아니지만, 해수면보다 낮고 그걸 인력으로 해결한 놀라움으로 우리에게 익히 알려졌고, 여러 상징물들, 예술인들로 매력이 넘치는, 부국이며 선진국. 다른 유럽보다 역사 유적이나 대자연의 메리트는 상대적으로 없지만, 도시에서 특히 강을 중심으로 유람선 타기, 운하를 따라 산책하기 등 자연스런 삶의 여유가 넘쳐나는 곳이었다. -담으로 끝나는 두 도시를 여행했다. 우선 수도인 '암스테르담'은 그야말로 국제적인, 여태껏 들렀던 나라들중 가장 영어가 통용되는 도시이기도 했다. 나도 영어를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다른 데보다 영어가 잘 먹혀서 한결 쇼핑 등에 편했다.

 

동유럽에 다닐땐 볼거리에들에 마음을 빼았겼는데, 네덜란드로 오니 좀 긴장이 풀어진건지, 시각적으로 무뎌졌는지 갑자기 식욕이 마구 돋았다. 뭐 부담스럽지 않으며 맛있는 것 없나? 그런데 리스타펠이라는 쌀 요리를 알게되었다. 인도네시아식 카레요리인데 이게 참 맛났다. 서구 중심에서 느끼는 아시아의 푸근한 맛이라니, 갑자기 아시아가 그리워진다. 흑. 하여튼 금강산, 아니 암스텔담도 식후경이라고 리스타펠을 싹싹 해치우고, 그야말로 '관광'에 나섰는데 나중에서야 식당을 거쳐 반 고흐 박물관을 스쳐 지나왔음을 알았다. 맛있고 배불러서 흡족해 하다 지나친 것이다. --;;;; 다시 돌아갈까 하다가, 영 안 땡겨서 고흐박물관도 패스했다. 흑흑.. 네덜란드에서 이런 아이는 나 뿐일거야.

 

근데 역시 기분이 개운치가 않았다. 언제 또 암스테르담을 온다고, 뭔가 뜻깊은 체험을 해야만 하는데!! 그래서 자전거 인력거 타기를 감행했다. '위엘레 택시'라는 것인데 요금이 꽤 들지만, 고흐를 못봤으니 이거라도 타야지~ 하고 15분여간 아날로그 식 운송도구로 암스테르담 근처 공원을 유람했다. 호호, 마음만이라도 18세기 귀부인인양 암스테르담을 돌아봤다. 스쳐가면서 우연히 골목 쪽에 심상치 않은 사람들과 음습한 동네를 봤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암스텔담에 있다는 마약하는 동네인가 싶다. ;;

 

호텔에 돌아와, 오랫만에 노트를 정리해봤다. 지난 6개월간 간 곳들, 사진 등을 챙기고 편지를 쓰고, 앞으로 갈 곳들을 적었다.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돌았는데, 많은 것들을 보았고 느꼈다. 하지만 성숙했다는 느낌은 많이 들지 않는다. 더 열심히 여행해야지 기도했다.

 

7월이 되어 옷들을 싹 교체하고, 핀란드로 향했다. 한국은 한여름의 시작인데 핀란드는 서늘한 기온이다. 처음으로 한 여름에 최북단 국가로 간다.

헬싱키 공항에서 몇시간 후 '라플란드 Laplan'로 향했다. 라플란드의 사리셀카에는 이글루 빌리지가 있다. 오 마이 갓. 사람이 살것 같기 보다는, 동화속에 동물들이 살던 아담한 이글루 집들이 일렬종대로 몇 열이 벌판에 있었다. 아쉽게도 이 곳은 이글루를 즐기려는 모험적인 사람들을 위해 12월 겨울에 개장하기 때문에 내부에 들어가 볼수는 없었지만, 아니 사실 그 곳에 묵을 자신도 없었고 ㅎㅎ 그냥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맙소사, 저런 것들을 상상하고 또 실현화시키다니. 그냥 관광 숙박업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벤처마킹의 대가 일본 어느 마을에선 스누피가 사는 집에서 자는 상품도 있다고 하니까. (대한민국도 국내도입이 시급하려나?) 에스키모들이 보면 저작권내라고 할 듯한, 멋진 곳에서 내게 압권이었던 곳은 '이글루 예배당'이었다. 이글루안에서도 예배를 드릴수 있다니, 아 놀라워라! 나중에 스웨덴 에서 알아봐서 꼭 한번 가보리라 꿈꾼다.

 

지난번 폴란드의 포즈나뉴처럼 또 마음을 빼앗긴 전원의 도시를 만났다. '폐이옌네 Paijanne'. 특이했던 건 이곳에 머물면서 유독 '따루'가 많이 생각났다. 실제로 닮은 여성들도 많이 보았다. ㅎㅎ 어떤 나라에서 어떤 사람때문에 더욱 끌린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임을 느꼈는데, 특히 책 속 인물이 아니라, 현재의 한국에서만 유명한 인물은 더 신기했다. 미녀들의 수다에 나왔던 따루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그렇게 쿨하고 재미있는 성격을 가지게 된것은 핀란드의 풍요로운 대자연과 더불어서, 재미지게 놀 줄 아는 핀란드 여성들의 저런 영향 아닌가 싶어진 것이다.

 

사티 Sahti 라는 전통 맥주를 마시면서 침엽수림과 부글부글한 온천에서 핀란드 사람들이 주말을 즐기고 있는 모습은 보기만도 므흣했다. 솔솔 풍기는 훈제 고기 냄새, 웃음 소리, 폴카, 왈츠를 추는지 쿵작거리는 음악이 끊이지 않았다. 홀로 유랑하는 동방아시아의 왜소한 이 여인은 왠지 끼어들 틈이 없는듯한 그들만의 평화로운 여가.. 핀란드에는 호수, 섬이 많은데, 왠만한 중산층 가정은 호수나 섬 하나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따루도 호수나 섬 갖고 있으려나?? ^^

 

전인교육, 평등교육을 지향하고 시행하고 있는 핀란드의 교육. 그리고 외국인 포함해 전원 무상으로 교육하는 핀란드의 대학들. 부러워하는 교육은 거저 이루어진게 아니고 삶을 진정으로 즐기고 누리는 것과도 관련있지 않나 하는, 유럽여행길에서 최대로 심오한 생각을 했다. 아주 아주 잠깐만. :D 

 

오래 있으면 계속 부러워질것 같아서, 그냥 눌러 앉고 싶어질것 같아 --; 라트비아로 얼른 향하였다. 발트 해 3국중 하나인데, 발트해 3국은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이다. 라트비아는 오른쪽으로 러시아를 바로 마주하고 있다. 사실은 떠날 당시, 라트비아와 다른 발트해국의 차이를 잘 몰랐는데, 아직도 실은 모르겠다. 그렇지만 무척 아름답고 고즈넉한 나라였음은 분명하게 떠오른다.

 

9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라트비아 수도 리가 Riga 는 북유럽의 파리로 불릴만큼 아름다운 명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간 7월이 이 나라의 관광객의 가장 피크인 때라고 하더니, 정말 리가에 사람들로 북적북적댔다. 저녁에 숙소 근처의 작은 공원 옆의 숲을 갔는데, 온통 반딧불이들이 총총하게 숲을 밝히고 있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둥근 몽환적인 보름달 아래에서 마주친 반딧불들은 한국의 그것과 다를바 없었지만, 너무 오랫만에 봐서 신비로웠다. 아니, 혹시 처음 보는 것인가? 기억이 아련했다.

 

 

30 몇년 동안, 한번도 마음속에 품어보지 않았던 나라 라트비아라는데에 와서 이렇게 깨어있는 정신으로 나를 돌아보고 있다는게 참 놀라웠다. 새삼스런 표현이지만, 정말 얼마나 많은 모르는 나라들이 자신만의 자연과 문화 속에서 경이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살아온 것인지.. 누군가의 말처럼 살아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적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나라, 어느 시골 구석을 가도 관광객이 있었고, 이젠 대충 유형 파악도 되기 시작한 건 이 즈음이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고독'이란 녀석과도 친하게 된것 같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은, 다 뒤로하고 그리운 우리나라로 가고 싶기도 하고, 또 그냥 지난 6개월간 갔던 나라로 되돌아가서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나를 다시 다잡았다. 예전에 세계일주를 하던 여러 사람들도 이런 고비나 마음이 있었겠지?

 

신비의 섬나라, 아이슬랜드로 그래서 꿋꿋이 날아갔다.

 

역시 7월은 비교적 관광 성수기여서 가는 곳마다 관광객들, 특히 서양인들이 많았다. 7월의 평균 기온은 12도 정도이니 연일 20도를 넘는 한국에 비하면, 확실히 피서로는 대박인 것 같다. 영화광인 나도 딱 한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아이슬랜드'영화를 본 적이 있다. 스토리는 전혀 기억 안 나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나라가 아닌가 하는 인상이 기억에 남았는데, 역시 툰드라 지대의 온천 지대는 신비롭고 요정이 나올것 같은 화산지대의 풍경에 연신 카메라를 들이내드라 바빴다.

아이슬랜드 열탕에 있다가 갑자기 옆 차가운 물로 들어가면 심장마비사 할수 있다는 경고문구가 있었는데, 설마 진짜 그런 일이 있었을까나? (후덜덜)

여기가 일본 온천이기만 해도 철면피로 풍덩 뛰어들수 있을 것 같지만, 왠지 동양인도 별로 없을 뿐더러, 굉장히 능숙하게 온천욕하는 서양인들의 기세에 압도당해서 차마 온천에 들어가진 못했다. 이럴땐 나의 용기없음을 절감한다. OTL

 

하지만, 얼마든 자연스럽게 당당히 누릴수 있는 자연현상이 있었으니, 바로 아이슬랜드의 백야, 그리고 오로라였다. 7월은 한날 내내 백야가 지속된다. 분명 밤인데 밤이 아닌, 오묘한 현상이 나를 매일 흥분되게 했다. 한 10여년전에 우리나라에 거대한 유성 쇼가 벌어진 적이 있는데, 그때 느꼈다가 잊어먹은 그 감정은, 얼마후 오로라를 직접 목격하며 전율로 되새김됐다. 그때 깨달았다. 아이슬랜드를 7월에 오길 참 잘했구나. 그 날 난 생일을 맞이했다.

 

나이도 국적도 잊고 정신없이 오로라를 보다가 저쪽에서 동양인 남자를 한명 발견했다. 그도 오로라를 보고 있었다. 유럽 여행에서 처음으로 마음이 풀어진 나는 미소를 건넸고, 그도 인사를 맞아 주었다. 오로라를 함께 볼 수 있다면.. 예전에 직장에서 나를 그렇게 갈궜던 -_- 그, 내 인생의 유일한 원수였던 선배와도 모든걸 용서할 수 있을것 같은데. 그녀는 지금 어디서 무얼 보고 있을까?

그렇다. 오로라는 용서를 생각하게 했다.

 

 

역시 섬이란 고립감을 안겨준다. 백야 덕분에 하루하루를 색다르게 보내며 금방 시간이 흘러가고 어느덧 8월이 다가왔다. 이곳에선 그다지 한 일도 없는 것 같은데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흐르다니 하루하루가 아까웠다. 많이 충전된, 부드러운 마음을 한가득 안고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출발했다.

 

노르웨이의 오슬로에 도착했다. 포근하지만 밤에는 쌀쌀해서 살짝 감기 기운이 있다. 그런데 오슬로가 왜 이렇게 편안한 엄마품처럼 느껴졌는지 모를 정도로 가는 곳들마다 정감이 있었다. 노르웨이는 피오르 해안, 협곡의 장엄함과, 훌륭한 음악가 그리그(Grieg)의 페르귄트 조곡으로 익숙했는데, 노르웨이만큼 생각한 인상과 실제 맞닥뜨린 느낌이 일치한 곳도 없었다. 그리고 여태까지는 여행길에서 음악을 듣지는 않았는데(숙소에서나 비행기에서만 주로 들음) 느낌 좋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는 음악을 들어주며 거닐어야 운치가 더 있을 것 같아, 그리그의 음악을 계속 들으며 다녔다. 특히 호텔에서 아침에 일어나서 눈부신 햇살과 아침 인사를 할때 들은 '아침'은 얼마나 잘 어울리던지! 이래서 고전이란 현대와도 소통하는 걸까 조금 알게됐다. 오슬로를 하도 눈에 하트를 키고 돌아나뎠더니, 눈에 좀 띄었는지, 어느날 유명한 비겔란 조각공원에 출석도장을 찍으러 또 갔는데 한 젊잖으신 할머님이 말을 거셨다. 나는 8개월째 여행중임을 말했고 영어가 유창하신(영국식이었다) 할머니는 이것 저것 얘기하시고, 나도 괜히 기대고 싶어져서, 막 고민 얘기하고 어리광을 부리게됐다. 할머님은 자식들이 다 외국에 나가 사시고 지금은 혼자 사시는데 집으로 나를 초대하셨다. 그래서 훈제 연어도 먹고, 젊었을 때 진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시며 다녔던 얘기와 자식들 얘기 등, 군데 군데 말이 잘 안통할 때가 있었지만 진짜 멋진 할머니였다. 한국에 돌아가면 편지를 쓰기로 했다.

 

 

오슬로 멋쟁이 할머니의 강력추천으로, 게다가 갑작스런 용돈(흐흑 할머니)도 받고 '베르겐 Bergen'으로 향했다. 장대한, 그러나 웅장하지만 결코 위압스럽지 않은 피오르 협곡의 대표같은 '하르당에르 피오르'를 유람선을 타고 구경하게됐다. 이런 멋진풍경은 '관광한다고 하는 말이 부족한데 달리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여튼 좌석에 멀뚱히 앉아 그저 산맥을 보는 것이니, 관광 맞긴 맞겠지. 화이트 레이디 White Lady 호는 건조한지좀 오래돼서 낡고 좌석도 소수정예만 받았지만 그만큼 시끄럽지도 않고 딱 좋았다. 4시간을 도는 여정에서 그리그의 솔베이그 노래가 반복 또 반복되며, 산이란 이렇게 좋은 거구나~ 느끼고 있을 즈음, 배탄지 3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누가 말을 걸었다. "I remember you. Do you remember me ?"

동양인 남자였다. "Oh? Excuse me?" 나는 좀 놀라서 어설픈 영어가 튀어나왔다.

"Are you Chinese?" 남자가 물었다. "NO, Korean"

오 그러자 바로 나오는 한국어. " 어, 그래요? 저돈데."

 

생뚱맞게 노르웨이 피오르 협곡에서 영어로 한국인과 대화를 트다니. 나보다 한참 어려보인 귀여운 이 청년을 보니 일단은 반가웠다. 근데 알고보니 아이슬랜드에서 마주쳤다는 것이다. 후훗. 그때 오로라를 봤던것이다~

 

우리는 배가 내리는 1시간여동안 엄청난 이야기 꽃을 피웠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는데, 그가 몇살이고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고 고민은 뭐고, 왠지 인연같다는 둥, 나이 차에 대해서, 여행한 곳들,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나 로선, 오랫만에 한국어 말문이 트이니, 무슨 금단증세에서 해방된듯 수다를 더 떨었다. --;

 

 

이름을 알려주고, 알게되고, 나는 그의 이메일을 물어봤다. 가방에 로테르담 항구에서 산 기념품 다이어리같은게 있었고 거기에 그는 메일을 적어줬다. 그는 곧 학교 발표가 있어서 돌아갈 거라고 했다. 안녕. 이렇게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만난 처음 알게된 한국인을 오슬로에서 배웅했다. 별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 왜 애틋함 비슷한게 느껴졌던지..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야, 그에게 연락할까?"했더니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뭐하러 연락해~ 하지만 내가 먼저 연락안하면 그가 내 연락처를 모르는데... 하하. 친구는 그럼 하던지~ 하여튼 언제 오냐고 이젠 돌아오라고 조용히 압박했다. --;

 

스웨덴은 유럽에서 다섯번째로 큰 나라였다. 그리고 한때 노르웨이를 다스렸던 적도 있는 강대국이었다. 하지만 인구밀도는 주로 예테보리와 스톡홀롬 이렇게 두 도시에 몰려 있는 것도 특이했다. 북극지대에 해당하는 키루나 Kiruna에는 역시 핀란드에서 보던 이글루 타운이 있었고 문을 열고 있어서 안쪽을 살짝 들여다볼수 있었다. 그리고 얼음 예배당에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두꺼운 자켓을 껴입고, 손을 모으기도 힘겨웠지만, 눈을 감으니 느껴지는 얼음 100프로의 냉기(冷氣). 확실히 이곳에서라면 간혹 피곤할때 예배시간에 졸던 나쁜 습관은 싹 없어질것 같다.

 

스톡홀름은 암스테르담하고 왠지 많이 비스구리 해서 네덜란드가 그리워졌다. 한편 스톡홀롬에서도 마침 백야 시즌이 되어, 숙소에 있다가 새벽 3시에 공원 산책을 나가도 훤한 거리에서 색다른 해방감을 맛보았다. 왕립공원은 훈남, 훈녀들의 만남의 장소인듯 했다. 특히 스웨덴 미녀가 매력이 그렇게 많다더니 역시 늘씬하고 형광 노랑(?)의 머릿결과 에메랄드 눈빛은, 크.

 

노르웨이에서 너무 많이 기간도 애정도 쏟아부어서, 기간도 예상보다 늘어나 스웨덴도 며칠 못 머무르다보니, 덴마크를 갈까 말까 망설여졌다. 하지만 역시 덴마크는 스웨덴과는 또 다른 독특한 문화를 간직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코펜하겐으로 발길을 부지런히 돌렸다. 과연 역동적인 거리 풍경과, 여전한 미남미녀들, 그리고 따뜻한 햇살이 잘 왔다는 듯 날 반겨줬다. 코펜하겐 관광은 포기하고, 오덴세 Odense로 향했다. 이곳은 세계적인 동화작가 안데르센을 기리는 곳이 많은 도시라고 해서 였다. 안데르센이 이곳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은 것인지, 정말 어릴 적 만화책, 동화책에서 보던 안데르센 동화에서 튀어나온 건물, 고성 (古城)이 가는 길목에서 불쑥불쑥 깜짝 등장해 감탄케 했다. 절정은 어둠이 내리고 성들 위로 펼쳐진 불꽃놀이 축제였다. 디즈니 만화의 오프닝인듯, 그 풍경위로 마치 '어린이 명작 동화 다음 시간에 만나요-'라는 어렸을적의 기억이 아로새겨진다.

 

 

가을, 9월이 찾아왔다. 역사, 문화, 낭만의 나라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헝가리', 다시 오랫만에 동쪽 유럽으로 향하니 몹시도 설레인다.

10월부턴 부다페스트가 급격히 추워진다고 하니 9월에 잘 온 셈이다. 슬로베키아 에 면한 수도 부다페스트 Budapest 는 유구한 역사적 격변의 도시였다. 예술이 발전했지만 조용한 동유럽이던 헝가리는 소련의 지배를 받게 되고, 1990년대까지 유럽에서 가난한 쪽에 속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만다. 그러다 자유를 얻게 되고, 시대적으로 암울했던 시대에 음지에서 오고가던 귀족들의 화려한 장신구, 예술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지금도 부다페스트의 동굴에 위치한 상점에서 그 화려한 골동품들이 거래되고 있었다. 동굴에서, 여러 다양한 악세사리를 팔고 있는 현장을 보니 정말 우리나라와는 너무 다른 헝가리만의 문화에 많이 놀라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끔씩 조선시대, 신라시대 유물들이 발굴돼고 알려져 놀라움을 주곤 하는데, 헝가리도 그런 것일까? 또 신기했던 점은 엔티크 골동품을 아예 국유화해 나라 차원에서 파는 '국영 엔티크점'이 부다페스트 중심가에 있었다는 점이다. 나라에서 뭘 팔다니.... ㅎㅎ 잘 하면 싼 값에 보물 수준의 장식품을 건질수 있다는데, 나같은 초짜에겐 어림없을 것이라서, 그냥 가게 앞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나왔다. ㅋ

 

 

예전 문학시간에 부다페스트의 어쩌고 하는 시가 있었던 같은데, 9월에 부다페스트를 홀로 걷자니 시가 막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세르비아, 루마니아 국경쪽의 도시 '푸스타 Puszta'도 시심(詩心)을 자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헝가리 대평원을 일컫는 고유명사 '푸스타'는 면적이 네덜란드 정도이고, 뜻이 '아무도 살지 않는 황량한 초원'이라고 한다. 여행사에서 1일 상품 투어를 신청해서 외국인들과 같이 푸스타를 방문했다. 외국인들도 처음인지 오, 원더플을 연신 외쳐댔다. 분명 헝가리 초원인데, 난 문득 이탈리아의 소피아 로렌출연작이 떠올랐다. 해바라기였나? 그만큼 작열하는 햇살과 파란 하늘, 지평선이 한없이 펼쳐지는...밀밭, 꽃밭.. 단지 꽃밭이 양귀비꽃이어서 다소 당황 ^^; 쇠고기 요리를 오후에 먹었는데, 저 멀리에선 헝가리 집시들이 바이올린 연주를 펼치고 있었다. 뭔가 데자뷰가 느껴진다. 학창시절 심취했던, 유럽의 어떤 영화였는데.......

 

 

이번 여행 계획을 짤 때 날씨에 많이 신경을 썼는데, 잘 들어맞은 적이 많아 감사했다. 다음에 갈 우크라이나도 9월이 여행의 최적기에 속한다고 론리 플래닛에서 밝히고 있다. 가는 나라들마다 작으면 작은대로 크면 큰대로 처음 알아서 놀라곤 했는데, 구 소련 연합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도 무척 커서, 러시아 빼고 유럽에서 가장 큰 면적의 나라라고 한다. 선택할 여지없이 늘 동경해왔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 Odessa'로 부푼 마음을 안고 갔다. 오데사는 여러모로 진정한 예술의 도시였다. 몇년전에 내가 사는 시에 '오데사 소년 합창단'이 공연을 오기도 해서 음악에서 앞서간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쟁쟁한 작곡가들이 활동하고 또 오페라하우스에서 격조높은 공연이 펼쳐지는 도시이다.

 

 

무엇보다, 시인 푸시킨이 활동했던 곳이 바로 오뎃사였음을 알고 또 한번 감탄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푸시킨은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을 남겼고 이것에 영감을 받은, 차이코프스키, 무소르그스키 등의 오페라 opera는 오덷사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렬한 환호 속에 시연되었다.

 

에이젠스테인의 계단을 가보고 싶었지만 어디인지 알수 없었다. 계단을 볼 때마다 저기인가 싶기만 하고 아쉬움은 또 다른 기대로 남긴채 '세르비아'로 마음을 옮겨 놓았다.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 Belgrade'는 생각보다 엄청난 역사적 관계속에 있던 그야말로 폭풍속의 도시였다. 역사에서, 켈트족, 로마인, 슬라브족, 투르크족, 오스트리아-헝가리인들이 번갈아가며 정복하고 다시 건설하기를 반복한 곳이 베오그라드였다. 세르비아는 내륙이었지만 놀랍게 지중해성 기후를 띠고 있는 나라이다. 헝가리, 폴란드만큼 예상 못하게 환상적이고 그야말로 로맨틱한 경험을 제공해준 곳이 바로 베오그라드였다. '로맨티카 Romantika'기차 여행이 그것이다. 베오그라드에서 출발하는 로맨티카는 옛날식 증기기관차로 다뉴브강 지류 사바강을 거치면서, 집시 마을, 넓은 초원, 옥수수, 밀 재배 들판 등을 천천히 운행하는 관광용 열차다. 몇개의 정류소가 있는데 중간쯤에서 내려서 현지의 와인, 공예품, 과자, 꿀, 화초를 파는 시장에 들러 소박한 삶의 현장을 만나고 왔다. 여느 유럽도시처럼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오고, 아코디언을 누군가 연주하는 베오그라드를 보노라면, 발칸의 화약고였다는 이곳의 과거가 느껴지지 않는다.

 

 

슬슬 여행의 끝이 느껴지는 만추의 절정을 맞이하며 10월 1일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사실 여태껏 여행한 곳들에서 수시로 파리와 프랑스를 늘 생각했더랬다. 만약 단 한곳의 유럽을 여행할 수 있다면 프랑스였을 것이기에, 늘 마음 속에서 잊지않고 있던 것이다. 좀 늦은 감은 있지만, 나름대로 여러 경험을 한 지금 떠나도 프랑스는 여전히 새로울 것이다.

 

 

세상의 연인들은 다 모여있을 것 같은 사랑의 도시, 그리고 혁명의 도시, 파리 드골 공항을 나오며 저절로 콧노래로 고음불가 샹송 한소설을 불렀다. 오, 샹젤리제~ 동 블레 메쥬~ 센느 강변에 앉아 질리도록 에펠탑을 바라보고 바게트 빵을 먹고있는 나의 모습은 그러나 사랑도 혁명과도 무관한, 방만한 배낭여행객의 그것이었다. 역시 현실과 상상의 괴리란;; 심지어는 곧 돌아가서 맞이해야 할 만만찮은 상황들을 떠올리니, 머리속은 복잡하고, '달리는 4번 버스에 올라타고 오리를 때려 잡고 철근을 씹는'것처럼 빵을 참 터프하게도 먹고 있었다. 프랑스식 식사는 2시간이라는데, 나는 그걸 할 기회가 있어도 잘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아니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대략 30분 후면 식사완료되고 후식 먹으며 음식에 대한 담소 나눠도 20분이면 되고, 1시간 10분을 무슨 이야기를 할지... 섣불리 정치 얘기를 하면 멱살 잡히기 쉽상이고, 연예인 얘기는 시덥잖고.... 너무 시니컬한가?

 

유리상자의 멤버 이세준씨는 이곳 세느 강변 에펠탑 근처에서, 경치를 바라보며, 아 여기서 세 남자가 구차하게 뭐하고 있는거냐 하며 연인을 위한 기도를 했다는데, 나중에 만난 부인도 알고보니 이세준씨가 있던 곳에 정확히 2주 후에 와서 비슷한 기도를 했더란다. 크... 이거 난 무슨 기도를 해야할지 ㅋ 인연이란 다 남들의 얘기이다.

 

파리에 있자니 괜히 더 심난해져서 서둘러 다른 도시로 향한다.

부르고뉴 Burgundy 에선 피오르 협곡을 떠올리며 운하를 배를 타고 유람했다. 강 옆에는 프랑스 특유의 집들과, 와인 양조장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배에선 음악과 요리가 쉴새 없이 왔다 갔다 한다. 한국에선 4대강을 만들어서 이런걸 하자고 하는 것 같은데, 직접 겪어보니 정말 현실성이 없거나 무리한 계획같다. 프랑스, 독일에서야 옆에 엄청나게 옛날부터 보존해온 건축물, 성들이 휙휙 지나가며 그저 본 모습대로 풍경을 선사해주지만, 우리는 예전부터 계획 개발로, (물론 전혀 없지 않겠으나) 지방의 풍경이 많이 퇴색됐는데, 뭘 구경하라는 걸까? 배를 정박시켜서 외국인에겐 카지노를 시키고 그런다는데, 그건 그렇다쳐도 운하 주변에 뭔가 새로운 걸 건설하겠다는 생각에 영 미덥지가 않다. 프랑스가 와인 제조장이 있으니, 설마 막걸리양조장을 만들려나? ㄷㄷ

 

왜 이렇게 프랑스에서는 유독 한국과의 비교라는 뇌 기능이 많이 작동했는지 모르겠다. ㅠ

 

기차역 근처의 백화점에서 브르타뉴 산 마스크팩을 저렴하게 판다고 해서 구입했다. 브르타뉴가 해변과 낙조가 끝내준다는데 가보지는 못하니, 특산품 차원에서. 프랑스 특유의 봐줄만한 과장으로, 마스크팩이 수초, 진흙, 해조류를 섞고, 브르타뉴만의 청정 해수가 들어간, 마치 피부병이라도 낫게 해줄듯한 광고에 살짝 웃음이 난다. 그치만 왠지 기대가 된다. 집에 가서 발라봐야지 . --;

 

 

프랑스는 왠지 이름만 들어도 가고 싶어지는 Feel의 도시들이 많았다. 노르망디, 깐느, 니스.. 하지만 어찌 이번에 다 가볼수 있으랴. 특히 샴페인과 스펠링이 똑같은 샹파뉴 Champagne 이라는 도시가 있음은 지도를 보다 처음 알았다. 아직 독일을 못가봤고, 오스트리아 밤 거리도 변변찮게 못 느껴봤는데, 독일 국경에 있다는 중세 도시 '리크위르'엘 갈까? 역시 정보가 부족하다. 그 와중에 '보졸레 Beaujolais'라는 지명을 보고 가기로 했다. 보졸레 누보 와인이라도 있겠지, 하며... (사실 와인에도 본인은 심히 무지하다)

 

뜻밖에 프랑스식 집시 문화와 보졸레에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프랑스 사람들이 모험을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의외로 김삿갓처럼 바람따라 구름따라 전국을 유랑하는 그런 것을 동경하던 시대가 있었다고 하는데, 보졸레에는 그러한 보헤이마 집시의 프랑스 전통이 남아 있었다. 원래는 마차, 현대식으로 하면 캠핑카가 돌아다니며 타는 것인데, 관광용으로 정박해서 숙박을 받고 있어 하루 신청했다. 겉은 그냥 캠핑 마차 같은데 들어가니 역시 범상치 않은 인테리어가 나를 시간여행속으로 이끌었다. 특이한 것은 전기, 난방, 수도도 어디서 끌어와서, 숲속에서 집시 마차에서 편안하게 쉬어 갈수 있었다는 것이다. 역시 관광대국 프랑스다. -ㅁ-

 

 

무엇을 해도 아쉬움을 남길 프랑스 여행에서 대미는, 스페인 국경쪽의 포 Pau에서 대미를 장식하기로 했다. 터키에서 탈 수도 있었는데, 광할한 피레네 산맥을 아래 배경으로 영화속에서 보던 열기구를 타는 투어였다. 지상에서 열기구를 타고 조종사가 기구를 작동하면 풍선이 부풀어 오른다. 이윽고 지상과 떨어지고 공기 바람소리를 가르며 하늘로 하늘로 올라갔다. 에버랜드에서 높이올라가는 것은 즐기는 편이지만, 풍선과 탄 곳이 가분수인 아찔한 열기구는 또 달랐다.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와 열기구를 터트리면 어찌 되는건가 하는 쓸데없는 공포심도 들었지만 프랑스어로 말할수도 없으니. 30분여밖에 안됐지만 제대로 아래를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막상 점점 내려가니 많이 아쉬웠다. 더 잘 탈수 있었는데.. 사람들은 아래 장관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 같았는데, 그런 옆사람 흥분으로 만족했다. 예전 산티아고 순례길도 보인다는데, 난 알수가 없었다. 다음엔 정말 제대로 보며 타야지, 그런데 왜 난 이런 성취의 순간엔 우리나라 말이 아니라 '오겡키데스카'가 생각나는 걸까. 뭔가 심각하다;;

 

 

어쩐지 기대보단 실망했던 프랑스를 뒤로 하고(준비가 미흡했다), 독일 베를린으로 향했다. 독일은 프랑스만큼이나 여러 루트로 애정이랄까, 관심을 갖고 있던 나라이고 베를린은 파리와는 많이 다를테니 또 다른 희망을 품는다.

 

베를린은 파리보다 깨끗하고, 뭔가 질서정연했다. 막연히 더 안전하게 느껴지고, 곳곳에 있는 자전거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신나게 지칠 때까지 달리고 싶은, 속도감을 권장하는 도시같은 ? 빔 벤더스의 '베를린천사의 시'같은 흑백의 애잔함은 없었다. 온갖 세계적인 전시, 시민활동, 모임이 몰려왔다 몰려 가는, 한마디로 '쉬크하다'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도시였다. 브란덴부르크 문의 웅장함을 보고 예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곳에서 있자니 서글픔과 알 수 없는 격렬함에 괜시리 울컥함이 밀려왔다.

 

 

규정하지 않았지만, 기나긴 이번 유럽 탐방의 의미가, 점점 더 확연히 내게 다가오는 것을 베를린에서 어렴풋이 느꼈다.

 

이번주는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베를린 시민들이 엄청 겨울스런 복장을 하고 가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이제 떠나야 할 때인 가 보다. 이번만큼은 추운 기후를 작정하고 더 춥게 보내려는 컨셉이어서 영국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입김이 나게 손을 호호 불며.

 

그런데 이거 큰일났다. 경비가 다 떨어져가는 것이다. SOS를 쳐서 엄마에게 송금을 부탁했다. "언제 갚을거냐"는 엄마의 잔소리가 히드로 공항 전화기에서도 바로 옆에서 하시는듯하다. 꼭 하는 일 잘돼서...라고 기어들어갈듯 얘기하고 결국 도움을 받았다. 한국에 돌아가면 또 고생해서 갚아야지... 장담은 못하지만 ㅎㅎ 무엇보다도 영국을 안 보고 가면 너무너무 후회할 것 같았다. (다들 이러면서 빚을 져간다지 ^^;;)

 

 

여태껏 갈 데 다 가고, 누릴것 다 누리고, 하고 싶은건 다 했더니 역시나 앞으로는 거지 여행 테마를 가져야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다. 런던의 쉬크하고 도도한 패션 피플들 앞에서 주눅이 들었지만, 어차피 런던과 나는 많은 갭이 있으니 개의치 않기로 하고 허름하고 배고프게 굳세게 돌아다녔다.

런던 아이도 굳이 탈 것 없다. 멀리서 관람했다. 여전히 아름답고 재미나 보이는 London Eye. 여행객들에겐 잘 알려지진 않은 남서부의 콘월 Cornwall로 갔다. 때가 때인지라 외국인은 드물었고, 내국인도 별로 없는 듯 했다. 철썩철썩이는 파도에 얼굴을 때리는 거친 차가운 바람을 맞고 해변에 서 있는데, 이곳이 전설 속 아더왕으로 유명한 곳이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용맹한 아더 는 이 곳을 말달리며 풍운의 꿈을 꾸었으리라~ 뜬금없이 반지의 제왕속 장면이나 나니아연대기의 해변 전투같은 것도 휙휙 머리속을 지나갔다. 아무 연관없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처연한 풍경은 그보다는 차라리 '피아노'의 홀리 헌터가 쓸쓸한 마음을 애써 달래던 그런 장면인 것이다.

 

정말 궁상맞지만, 이것은 영국 겨울의 궁상인 것이다. 후훗.

 

그래도 혼자 이런건 확실히 아니다 싶어;; 다시 유명도시 순방길에 올라,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로 갔다. 인도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있으면서 지냈는데, 주로 에딘버러 대학 근처를 많이 다니게 되었다. 숙소에서 티브이를 보니 볼턴, 스코틀랜드의 이청용 선수나 기성룡선수 이야기가 빠르게 지나갔다. 워매, 반가운거. ㅋ ㅋ 혹시 에딘버러를 다닐 때마다 그럴리 없지만 기성룡선수나 차두리 선수를 볼수 있을까 하여 동양남자만 보고 다니기도 했다. 

런던으로 돌아오기 전엔 JK 롤링이 '해리 포터' 최종편 마지막 장을 썼다는 호텔 근처의 까페엘 갔다. 조엔 롤링을 꿈꾸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언젠가, 꿈꾸는 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하는데 아주 유용한 장소였다. 

 

다시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여 더블린으로 떠나기전 런던의 유명한 선술집 'Eagle and Child' 앞을 지나가서 사진한방 찍고 바쁘게 돌아왔다. 우상 CS 루이스의 단골집이고 여러 토론의 장이기도 했다는 이글 앤 차일드. 언제 꼭 멋진 모습으로 다시 올 것이다.

 

더블린은 단연 영화 Once의 향기를 느끼며 찾아간 아일랜드의 수도이다.

이동진씨의 책에서 본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곳엔 여전히 '남자'(the guy)가 노래를 부르고 있고, 행복해 보이는 연인들이 끼치는 샤방샤방한 기운이 춥고 습한 더블린의 거리를 화끈하게 데우고 있었으니까.

 

안타깝지만 나의 1년계획 여행은 여기서 마치기로 했다. 무엇보다, 더블린의 자욱해서 앞이 안보이는 안개 속에 있자니 굉장히 막연해지며 내가 있을 곳으로 얼른 가고 싶어졌고 경비를 오바한 점이 컸던 것이다. 그래서 12월의 계획, 스위스, 독일, 무엇보다 모스크바는, 영원한 로망으로 이쯤에서 남겨두는게 오히려 더 살아가는데 활력소가 될것이라고 위안하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뮌헨을 경유해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노선이 마지막 루트였다. 뮌헨에서, 파니 핑크를 연상케하는 공항 직원이 내게 영어로 물었다. '공항에서 앙케이트 중인데, 다시 독일을 오시게 된다면 무엇 때문입니까?"

 

나는 단지 독일이기 때문에 올 것이라고 말했다. (because, just, Germany) 묘하게 웃음짓던 그 직원의 미소가 이번 여행의 모든 것을 축약해줘서 기억에 남았다. 생각하니 참 말도 안되는 대답이었고, 다음엔 맥주니, 축제니 라고 얘기해야지. (울먹)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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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델 (리뷰) | Basic 2010-10-22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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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저/이창신 역
김영사 | 201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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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란 무엇인가>

 

상반기부터 중반기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베스트셀러 상위에 랭크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하버드 대학의 정치철학 강의를 깊이있고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풀어낸 역작이다.

나는 이 책을 언젠가 읽을 계획은 있었지만 기회를 미루고만 있었는데, 한달, 두달, 세달 계속 베스트셀러 1위인 현상을 보며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약 한달에 걸쳐서 깊이있게 읽기를 하게 되었다.

 

 

이책을 통해 새로 알게된 것은, 고등학교때 배웠던 벤담의 '공리주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그 캐치프레이즈가 불완전한 이론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이나 지난지금, 알고 있던 지식체계 속의 오류를 깨달았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내게 갖는 가치는 매우 컸던 것 같다.

 

9.11 이후 미국, 특히 미국 민주주의의 가치와 파워는 외국인들에게 예전만큼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쌓아온 그들의 민주적 정치 체계는 그렇게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 유구한 전통을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실감나게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었던 것도 같다.

 

예를 들면 미국인들은 마이클 조던의 수입, 빌 게이츠의 수입의 공익성에 대한 논란을 한다. 그냥 범인들이라면, 자기 능력으로 부를 쌓았는데, 범죄로 번 돈도 아닌데, 그런 생각 자체부터 하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지극히 미국적인 고민거리들도 많았다. 현대로 오면서 '세계의 경찰'이 되어버린 미국은 군대, 징집 문제가 사회적인 커다란 이슈 중 하나였고 마이클 샌델과 정의론자들은 이 문제도 여지없이 논쟁의 도마 위에 올려 놓았다.

 

미국, 미군은 군인 자원제를 통해서 해외 전쟁터에 군대를 보냈다. 그리고 군인들은 높은 봉급과 풍성한 복지혜택을 받으며 이라크 등지에서 복무했다. 이것은 서로의 공리가 이익을 주고 받으며 합의되었으니 전혀 문제될게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될 수 있었지만, 정치철학을 사고하는 이들에게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즉 시장원리로만 보아도 모든 노동시장에서 기회가 평등,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흑인이나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그래서 대학 등록금을 스스로 벌어야 하는 가난한 계층의 젊은이들이 상당수가 해외 파병에 지원한 것이다. 자유를 중시하는 정의론의 입장에서 이는 공정하고 공평한 상황이 결코 아니다.

 

벤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 공리주의 입장에서도 어찌 됐든 개인의 '자유가 존중받는 것이 정의로운 것'임을 볼 때, 자원한 청년들의 자유는 확실히 강제적인 측면이 많은 것이라고 볼수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돈' 때문에 지원한 것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는 것도 맞다. 조국 미국을 위한 애국심도 분명 무시할 수 없다. 

 

자발적 선택이었지만 그 선택에는 확실히 경제적 압박이라는 요소가 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미국 시민은 전쟁에 군대를 투입해야 할 때면 언제든 납세를 통해 타인을 대리로 투입시킬 수 있으므로, 점점더 전쟁에 대한 참여의식은 희석되어만 간다고 마이클 샌델은 지적한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때는 상류층, 엘리트, 하층민 할 것없이 수많은 이들이 자신이 참전하고, 아들들을 참전시켰지만,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등 전쟁에서는 전혀 자신과 상관이 없어져 가고 있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그렇게되면서, 겉으로야 미국의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고 자부할지 모르지만, 점점더 갖게 되는 생각은, 군인을 마치 물건이나 상품처럼 필요 적절한 곳에 투입시키는 자신들의 경제력만을 의존하게 되고, 이는 칸트가 말한, 인간은 누구든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으며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존중받아야 하는 도덕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될수도 있다. (극단적인 표현이긴 해도 틀리지 않다).

도덕 원칙에 철저히 따르자면 어떤 개인도 타인의 행복에 이용되어선 안되는 것이다.

 

 정의에 대한 몇가지 관점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이렇다. 정의란, 자유와 관련되며, 시장을 규제하는 행위는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기에 부당하다는 것이다. 칸트는 특히 이 관점을 열렬히 지지하며 자신의 도덕률 철학을 전개한 대표적 철학자이다. 칸트의 주장에 따르면, 도덕은 사람들이 특정한 시기에 드러내는 흥미, 바람, 욕구, 기호 같은 경험적 요소에만 좌우될수 없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그를 선하게 만드는 것과는 사뭇 다른 일이라고 봐야하는게 옳고, 이익 추구에 신중하거나 약삭빠르게 만드는 것과 사람을 덕이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그는 주장했다.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1785)에서 칸트는,  도덕을 사람들의 흥미와 기호를 기준으로만 해서 평가한다면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법을 전혀 가르칠 수 없고, 사람들을 계산에만 밝은 사람이 되게 할 뿐이라고도 하였다.

 

제레미 벤담의, 쾌락과 고통이 "우리의 통치권자"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이성이 우리 의지를 통치할 때, 정말 이성적이 된다면, 우리는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욕망에 일방적으로 내몰리지 않는다고 칸트는 보았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은 자유롭게 행동하는 능력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렇다면, 자유란 무엇인가? 칸트에 따르면, 자유,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것은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뜻이다. 이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반대로 생각해보는 것도 도움이 되는데, 그렇다면 타율이란 뭔가? 타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내 밖에 주어진 결정에 따라 행동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타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우리 밖에 주어진 목적을 위해 그 목적에 따라 행동한다는 뜻이다. (156 page) 이 때 우리들은 추구하는 목적의 주체가 아니라 도구가 된다. 하지만,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능력이 있어야만 이 덕에 인간의 삶은 특별한 존엄성을 지닌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의무 동기만이, 즉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가 그것이 옳기 때문이지,유용하다든지 편리해서 라면 최상의 (칸트가 말한) 동기가 아니다. 옳기 때문에 행동할 때, 그 때만이 그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 칸트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이 때 칸트 이론에서 내가 재밌다고 느낀 점은, 옳은 일을 행할때 자연적 혹은 부차적으로 쾌락이 발생할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쾌락의 가치는 저급하다던지 한게 전혀 아니라고 한 점이었다. ^^ 즉, 옳은 일에 따르는 쾌락의 여부에 상관없이, 그 의무동기에 따른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여전히 존재하고 또 여전히 가치가 높다는 것! 다시 정리하면, 중요한 점은 선행의 동기가 그 행동이 옳기 때문이라야지, 우선적 일차적으로 쾌락을 (그 행동이)주기 때문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자유를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내 욕구를 방해받지 않고 추구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칸트는 이러한 생각에 강력한 이의를 제기했다. 애초에 그러한 욕구를 직접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 (나의) 욕구를 추구한다고 해서 어떻게 올곶이 자유롭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부분에서 나는 현대의 광고를 생각했다. 요즘은 광고, 선전에 휘둘려서 상품을 구매할 확률이 높은 시대이기 때문이다.

 

칸트의 정언명령 제 1은 '당신의 행동준칙을 보편화하라'이다. 나는 이 1 정언명령은 다분히 성서적이라고 보았다. 즉 자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것 그것을 타인에게도 절대 당하게끔 하지 말라는 것인것 같았다. 칸트가 자살에 대해서 자신의 원칙에 따라 비판 하는 부분이 나에겐 인상깊게 다가왔다. 즉, 자살은 자신에 의한 자기 살해이다. 타살이나 자살이나 근본은, 칸트에 따르면 같다고 한다. 내가 살인을 저지르면, 내 분노 표출이나 내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인데 자살도 정언명령을 위반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거다. 칸트가 보기에 자살이란, 고통스런 상황에서 빠져나가기위해 목숨을 끊는 것이고 그것은 '나'를 고통 완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OECD 국가중 자살율 1위라는 대한민국이 칸트의 철학에 귀기울여보는건 어떨까? 자살, 결코 정의롭지 않다. (--;)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 즉 자율적 행동하기란 정언명령에 따른 행동과 동의어이다. 칸트는 도덕 그리고 자유에 대한 이와 같은 견고하고 철저하고 일관된 사고방식틀로써 공리주의를 철저히 비판했다. 특정한 이익이나 욕구(그것이 비록 최대다수의 행복이니 공리니 라고 해도)를 도덕의 기초로 삼으려는 노력은 결국에는 실패로 돌아갈수 밖에 없다고 봤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결코 의무가 아니며, 특정한이익을 위해 행동할 필요성이기 때문이다." (칸트 인용)

 

결국에 칸트의 정의론은 개개인의 행복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 "어느 누구도 나더러 타인의 기준에 맞춰서 행복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저마다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조금 허탈했던 부분은 제8강 '아리스토텔레스편' 이었다. 아주 오래전 고대 사상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정의론은 어렵긴 해도 매력적이어서 따라가며 밑줄쳐가며 읽었으나 결말에 이르러선, 이러한 모든 시민들의 정의를 고민하기 위해서 노예란 필요하다라는 부분에서 이건 뭔가 주객이 전도됐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니 필요함을 넘어서서 필수적이라고까지 했다. ㅠ

 

칸트의 탁월하고 수준높은 정의론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존 롤스라는 학자에 의해 계승되었다고, 마이클 샌델 교수는 말한다. 칸트와 존 롤스의 공통점을 정리하면, 사회는 정의를 말함에 있어, 정의, 즉 좋은 삶은 이런것, 저런것이라고 규정할수 없고 해서도안되며, 이성적 능력을 갖춘 인간들은 어떤 도덕적 선입견에 휘둘리지 말고 자유롭게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할 권리를 지닌 자아 라는 것이다.

 

저자가 애국심에 약간의 딴지를 거는 대목은 왠지 흥미로웠다. 매우 아카데믹하고 학술적인 문체이긴 해도 역사적 사건에서 마이클 샌델은 이스라엘의 선행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어떤 일이 있었던고 하니 예전에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잔인한 내전이 벌어지고 엑소더스가 벌어졌을 때 이스라엘은 매우 발빠르게 움직여서 정확히 자기네 유태인들을 구출해 낸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이스라엘과 거리가 떨어진 전쟁중인 나라의 국민들을 고생을 해서 구해낸 것은 칭찬받을 일이지만, 그들은 얄짤없이(이 표현은 내가 떠올렸다) 유태인 출신 에티오피아인만을 도운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말한다. '우리 세계 시민은 어떤 나라든 인권을 존중할 의무가 있으며, 그러려면 기근, 박해, 강제이주 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을 때 능력껏 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또 이런 질문도 애국심과 더불어 매우 신선한 비판의식에 기초한 것이었다. "연대는 우리 사람만 챙기는 편애인가?"

 

하지만 다음과 같은 문제는 굉장히 난해해보이기도 했다. 즉, 현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 우리들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과거에 소속됐던 국가, 민족의 과오에 책임이 있는 것인지, 있다면 얼마나 있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라는 점 말이다. 하지만 결론제시는 단호히 있다는 쪽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과거조상과 전통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만큼이나 그 반대와도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미국 독립선언서, 헌법,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 등에 존경하고 감탄한다. 애국적 자부심을 느끼려면 세월을 뛰어 넘어 공동체에 '소속감'이란 것 자체에 부터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그리고 소속감을 갖는다면 어쩔수 없이 책임감이란 것도 따라오는 것 아니겠는가. " 내 나라의 과거를 현재로 끄집어 내 도덕적 부채를 해결할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내 나라와 역사에 진정한 자부심을 느낄 수 없다."

 

 조금은 어려웠지만 찬찬히 곱씹어 보니, 이러한 저자의 주장에 동조할 수 있었다. 즉 어쩔 땐 투표같은 행위 빼고 정치적인 일들,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갖는 나 자신에게, "그냥 내 할일이나 잘하면 되지, 오지랖 아닌가" 싶을 때가 나이 먹을 수록 많아진 나를 요즘 깨달았다. (+_+) 하지만, 이렇듯 나의 정치철학만 확고히 세워놓을 수 있다면, 나의 관심, 나아가 참여는 간섭이 아니라, 공화국에서 사는 시민의 바람직한 태도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시 책 텍스트로 돌아오면,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지만 않는다면, 가족, 동료,시민처럼 우리와 가까운 (더군다나 남한 사회에선 결코 멀다고 볼수는 없다) 사람들을 도움으로써 타인을 돕는 일반적 의무를 수행할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미국적인, 너무도 미국적인' 이라는 것이었다. 옳긴이는 역자의 코멘트 코너에서 " 이 책은 다양한 문제에 일관되게 적용할 정의의 원칙을 찾도록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미국에 해당하는 말인 것이다. 이렇게 미국이라는 커다란 타깃을 90프로 대상으로 한 책이고 더군다나 이론서에 해당했기에 읽는 것은 상당히 지난한 작업이었고 심지어는 인내도 필요로 했다. 하지만 굉장히 훌륭한 책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는 생각만은 옮긴이와 동일하다. 이제 필요한건 우리나라 사람이 쓴 정의론일 것이다.

 

책장을 덮으며 들은 생각은, 조금 다른 주제인지 모르지만 최근의 타블로와 타진요에 관한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타진요, 상진세도 나름대로는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까페 활동을 했던 것일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 일이 해결되었다고 해서 앞으로 어떤 네티즌도 연예인의 학위를 검증하란 말을 해선 안된다는 법이라도 만든다면 그것도 넌센스일 거라고 난 생각한다. 하지만 타진요는 (자신들 생각에) '정의로운' 일을 너무도 잘못된 핀트로 사용했다고 난 확신한다.

 

그래서.. 까페 매니저가 인터폴의 협조로 법의 심판을 받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면,그것도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한 까페지기의 책임이라고 나는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그 사람은 법적인 댓가를 치르고 언젠가 사회에 복귀한다면, 또 어떤 아이비리그 출신 한국인이 만약 개그맨을 한다고 할때 그걸 의심삼는 까페활동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사실 그의 자유다. 하여튼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 6개월 넘게 벌어졌고 몇몇 인터넷 황색저널리즘 매체는 이를 은연중에 부채질 했던 책임이 있고 그것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타진요 대표의 국적은 미국으로 알고있는데, 어느 곳에서 잘못된 행동의 댓가를 치르게 되는 거지?! 문득 그것을 마이클 샌델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하여튼 '정의란 무엇인가'는 결코 심심풀이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고 집중해서 오랫동안 읽을 가치가 있는, 오랫만에 만나는 묵직한 질감의 교양서적이었다.

 

(보헤미안_주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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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라노;연애조작단 ] 우리에게 더 좋은 날이 되었네 | 영화가 왔네 2010-10-18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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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시라노;연애조작단 (디지털)

김현석
한국 | 2010년 09월

영화     구매하기

 

 

두 번 봤다. 다시 보니 캐릭터들에 대해 또 다른 느낌들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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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공인 강남 얼짱 출신 이민정이 호연한 '김희중'.

그녀는 프랑스 유학 시절, 엄태웅(이병훈)에게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언젠가 강원도 강릉에서 직장다녔을 때 뒷풀이 호프집에 라이터가 있었는데

나중에 직장 짤리고 서울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데 동네가게에 그 라이터가 있더라고.

그 라이터 글자를 자기가 손톱으로 지워놨기 때문에 확실히 알수 있었다고.

 

사랑은, 인연은, 이 정도는 되어야 운명 아니겠냐고..

 

나중에 그녀가 최다니엘(이상용)의 구애를 받아들였을때 영화를 플래쉬백으로, 이병훈의 연애작전장면들을 보여주고, 마치 영화는 김희중이 전 애인 병훈의 도움으로 새로운 사랑을 얻는데 성공한 듯이 묘사한다.

 

그건 과연 그녀의 지론(라이터의 되돌아옴)같은 운명이었을까 ?!

 

영화는 많은 개연성으로 내게 다가왔다. 특히 남자캐릭터들이.. 하지만 따지고 생각해보니.. 나는 여성이고 김희중이나, 박신혜, 하다못해 류현경(조연)의 캐릭터가 더 중요하다면중요할텐데... 다 공감 가는 부분이 그리 많지 않다, 남자들에 비해 ㅠ_ㅠ

 

 

 

 

 

 

누군들, 이민정에 반하지 않으리오. ;;

이상용(최다니엘)의, 그래서 그녀 때문에 눈물 흘리는 장면은 매우 실감났다.

 

하지만 하필 직장에서의 위기로운 상황이, 마침 그녀라는 존재를 알고, 연애를 하던 시기와 맞물리다니, 그리고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는 일까지 생기다니...

 

이 영화를 참 좋아라하지만, 기존의 멜로 영화가 그래서 가끔 욕을 듣는지도 모르겠다.

웬 놈의 우연은 그리도 많은지...

 

--;;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의 마음을 훔쳐갔던 사람들, 지금 내 곁에 있는 친구들, 따지고보면 우연이라면 우연인 일들이 모이고 모여 필연으로 변해서 내게 남은 이들이니...

 

모르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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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들이 아주 좋았다.

특히 박철민씨는 정말...ㅎㅎ

인터뷰, 기사에서 보니, 원래 시나리오에는 이상용역이 40대 노총각이었고 그랬다면 당연히 박철민씨 역할이었단다.

하지만 영화 제작 당시 '최다니엘'이 드라마에서 뜨던 당시였고 심재명 제작자의 강력추천으로 시나리오를 수정해가면서 탄생된,

풋풋한 20대의 사랑이 성사되었다.

 

옥상 노천 대폿집에서 최다니엘과 엄태웅이 거친 몸싸움을 벌일때

박철민이

 

"으이구, 평~생 싸워보지도 않은 것들이 잘 한다.

어쩜 그리 아무런 상처도 하나 안 나게들 싸우고 있니."

 

ㅋㅋㅋㅋ

 

 

그리고 무엇보다 발견은 송 새벽씨!

다시 보니 그의 연기는 정말 명불허전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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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영화 속 장소들을 다 찾아가고 싶게 만든 두번째 감상시간이었다.

 

최다니엘, 이민정이 처음 만난 까페에서부터,

강릉 바다 해수욕장,

이민정이 사는 동네, 버스터미날 옥상 술집,

심지어 시라노 에이전시가 있던 빌딩 지하까지...

 

내년에 이 작품을 다시 보면 지금 이순간이 또렷이, 소중하게 기억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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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4th 리뷰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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