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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 우리의 행복 - 합리적 비혼주의자는 존재하는가 | 생각 나누기 2020-07-0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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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리적이라는 말은 여러모로 사용할 수 있는 편리한 단어인것 같다. 어떠한 사안에 대해서는 A라는 답변으로 반대로 이러한 사항에서는 B라는 답변으로 취할 수 있으니 말이다. A와 B라는 서로 반대적인 입장의 글을 쓰더라도 모순적이지 않다고 말 할 수 있는 방법이랄까.

  합리적 비혼주의자라는 말은 다시 생각해보면 비혼주의자는 합리적이다라는 생각을 갖게 해준다. 이를 다시 생각해보면 결혼하는 사람들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결론까지 다가간다. 혼자 사는 것만이 합리적인 것인가.

  개인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이 곳에서 살아가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 좀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비혼주의자와 연애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자신이 비혼주의자임을 밝히면서 연애를 시작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숨기고서 하는 사람은 예의 없는 사람이기에 말이다. 아니, 남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말로도 표현이 되며, 공동체를 일구어 가며 살아가는 존재이고, 사회라는 안전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호모 사피엔스의 삶을 영위해 갈 수 없다. 혼자라서 좋을 수 있지만, 그 안에서 나타나는 외로움은 어떻게 할까.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그 외로움을 해결하려고 결혼을 선택해서는 안 될 것이고, 연애조차도 나쁜 일이다. 그 외로움의 원인을 찾아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앞으로 정진해 나갈 때에야 비로소 연애를 할 수 있고, 결혼이냐 비혼이냐는 선택을 올바르게 할 수 있다.

  요즘은 비혼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예전 표현으로 하자면 독신으로 사는 것은 그만한 가치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이다. 홀 몸이라는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아니, 결혼하지 않음이라는 의미를 갖는 비혼을 생각해 보아도 좋겠다. 결혼하지 않음, 자녀가 없음, 노후 대책만 준비하면 됨으로 귀결되어지는 삶이니까 말이다. 물론, 요즘처럼 욜로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메멘토모리는 생각하기 싫은 지혜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비혼주의자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의 행복 그리고 너의 행복은 따로 있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기에 서로에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자연인처럼, 홀로 산 속에 들어가 사는 것이 아니면 모를까. 남을 의식하고 살 수 밖에 없는 존재이지 않은가. 멋진 인생이라는 스스로 보기에 부족함 없는, 그리고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삶을 살다가는 것이 아닐까.

  참,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대한민국인으로서의 글이라면 비혼주의자로 안내하는 글을 읽어도 괜찮을지 모르겠으나, 우리의 삶의 터전을 벗어나서 다른 곳에서 그저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여주며 자신의 소득원으로 생각하려는 사람의 글은 설득력도 당위성도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왜나하면 우리는 지금 이 곳에서의 삶을 살아가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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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추억들 | 생각 나누기 2020-06-3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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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참여

안녕 나의 추억들

 

  어느 시간부터였을까. 음악을 들으면서 행복감에 빠지는 것으로 멈춘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며 CD를 모았던 시절. 그 시절 나의 용돈은 그 소리를 갖게 됨으로 행복하게 만들어줬다.

 

  하나 둘씩 쌓아가던 CD들은 나의 책장을 CD장으로 변화시켜나갔다. 어쩌면 원피스나 드래곤볼 같은 만화보다 나를 이끌어간 원동력이지 않았을까. 꿈 많고 호기심 많던 소년과 청소년의 시절의 나를 이끌어주던 음악들이었기에

 

  어느덧 훌쩍 커버린 나에게는 추억의 한쪽으로 머물고 있던 그 음악들이 사라져 버렸다. 고향집에 들이닥친 빗물의 빌런들이 휩쓸고 가버린 것이다. 더욱 더 안타까운 것은 그 음악들은 다시금 살 수 없는, 추억들이 담겨 있고 손 때 묻은 것들이기 그럴 것이다. 물론, 제품 자체도 다시는 나오지 않기에,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이기에 그렇지만 말이다.

 

  하나하나 손수 떠나보낸 친구들이 아니라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버린 추억들이라서 그런지 더 서글프다. 용돈을 모아 마련한 그 아련함도 아르바이트로 샀던 그 시간들도 없어진 것이 되었기에 말이다. 선물 받았던 것들도, 추천받아 구매하였던 것들도 흔적 하나 없기에 더 아쉬워진다.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나름의 핫 플레이스는 오밀조밀하게 가게들이 몰려있었다. 특히, 나를 이끌던 그 음반 가게는 강산이 2번이나 변하는 시간이 흘러서 없어진지 오래이지만 아직도 생각이 난다. 이문세라는 시대의 뮤지션을 어린 나이에 알게 해줬으므로

 

  음악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고 듣게 해줬던 그 매장이 없었더라면 나의 고등학생 시절도 다른 추억으로 쌓여 갔을 것이다. 피아노를 8시간씩 연습하게 만들었던 시간들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난 음반 매장에서의 뮤지션과의 만남을 슬퍼한다. 내 또 다른 추억이 남지 않았기에 말이다.

 

  이제는 공감하기 힘든 오프라인에서의 음원 구매. 이런 활동이 추억으로 남았던 그 시절처럼 새로운 만남의 접점이 사라져가는 지금은 슬프다.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 진심어린 대화로 이어지는 채팅방 등을 경험해 볼 수 없고, 번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없을 테니까.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하고 웃음꽃 피우던 시간들과 같은 노래를 이어폰을 나눠 끼고 듣던 시간들이 없어져간다. 청음해볼 수 있던 매장의 CD 플레이어도, 헤드폰의 스펀지가 닳아버려서 살짝 아프게 하던 그 촉감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이제는 커다란 서점의 한 코너에 불과한 곳에서 아이돌과 트로트 위주의 음반만이 놓여있다. 그 시절의 그 때처럼 음악을 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진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나의 추억들과 작별한 것 같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그 아련한 시간들이 그립다. 아니 미워진다. 내가 왜 그렇게 음반을 만났기에 아직도 생각나게 만드는 거냐고 묻고 싶을 만큼

 

  대세를 따르기 원하는 세상에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글의 제목처럼, <거리의 중심에서 노래를 부르다>라고 말하고 싶다.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계절의 아름다움이겠지만 말이다.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면 시내에 나가봐야겠다. 시내에는 아직 남아 있는 음반 매장에 가서 노래 한 곡 음미하며 CD를 사야겠다. 언젠가 세월의 흐름 속에 사라질지 모르는 이곳에서의 기억을 눈으로 한 번 더 담아두기 위해서 말이다. 아내는 무슨 음악이냐며 말하겠지만 데이트이기에 좋아할 것이니

 

  이제 곧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변하겠지만, 안녕 나의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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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처럼 | 생각 나누기 2020-06-2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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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처럼


나의 삶이 곤고함으로 그들을 용서치 못하네

나의 맘이 가난함으로 그들을 돌보지 못하네


요나처럼 도망가기엔 요나처럼 후회하기엔


모자란 나이기에 주 은혜 감사하네

부족한 나이기에 주 사랑 감사하네


나의 찬양 온맘다하여 주님의 사랑을 찬양해

나의 찬양 온맘다하여 주님의 은혜를 찬양해


요나처럼 도망가기엔 요나처럼 후회하기엔


모자란 나이기에 주 은혜 감사하네

부족한 나이기에 주 사랑 감사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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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를 기억하며 | 생각 나누기 2020-06-0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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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에세이스트 참여

8월의 크리스마스를 기억하며

 

  나의 몸을 지속적으로 달궈놓는 그가 다가오고 있다. 바로 여름이다. 여름이면 누구나 바다나 계곡으로 혹은 섬으로 저 멀리 외국으로 간다. 메신저에는 ‘부재중’이라는 표시를 달아놓고 싶어 한다. 아, 요즘에는 메신저의 대화명이나 SNS에 ‘나, 여행중’이라고 자랑하는 것이 대세이긴 하지만

 

  그렇게 철이 든 나이가 아닌데, 인생을 무념무상으로 바라볼 나이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느 샌가 집이 좋다. 어딘가를 돌아다니기보다 집 안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누워있고 싶은 나를 만나게 된다.

 

  나의 최고 피서는 시원한 방에서 빔으로 방 안을 밝히며 보는 영화가 아닐까. 특별히, 8월의 크리스마스를 좋아한다. 한 여름에 웬 겨울이야기 같은걸 좋아하냐고 물으신다면, “여름이니까”라고 답하련다.

 

  그리움으로만 아련하게 다가오는 그 시절 그 때의 느낌을 화면을 통해서 볼 수 있기에 그런 걸까. 유난히 생각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다른 무엇보다 청개구리 심보를 가진 나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름엔 겨울이 그립고, 겨울엔 여름이 그리운 나이기에

 

  그 때에 난 어떻게 지냈었을까. 지금처럼 시원한 바람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에어컨도 없었던 때였는데. 더운 것이라면 질색하던 나였기에 더욱 더 의문이 든다. 아, 좋은 피서지였던 은행이 있었구나. 그 때엔 할 일 없으면 농협 의자에 앉아 있던 내가 떠오른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아직은 모르던 그 시절에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 영화. 클래식과 로맨스의 정석으로 남게 될 영화를 발견했던 것은 우연치고는 행복한 우연이었을까. 이 영화를 필두로 <클래식>, <봄날은 간다>, <연애소설> 등을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화면에 담긴 것만이 아닌 글자로 남겨진 <천년의 사랑>은 구구절절한 사랑을 깨닫데 해준 시간이었다.

 

  지금은 또 사랑을 만들어가고 있는 두 아이의 아빠이기에, 사랑이 무엇인지를 크게 배워가는 시간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계절인 여름이 오면 <8월의 크리스마스>가 생각난다. 아이들이 좀 더 무럭무럭 자라나면 보여주고 싶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사랑이란 건 간직할 수 있도록 아름다운 추억임을 알려주고 싶기에 말이다.

 

  예전처럼 예쁜 매미 소리가 아니라 중국에서 온 매미의 울부짖음을 듣곤 있지만, 그래도 매미가 울면 여름이구나 싶다. 그리고 모든 이들의 옷차림이 짧아지기에 아니, 핫하게 변해가기에 나도 동시에 핫하고 싶다.

 

  이번 여름에는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져본다. 자전거를 타서 불태워볼까. 아니면 런닝 머신 위에서 좀 달려 볼까. 운치 있는 자전거도 좋지만, 나에겐 다이어트를 위한 자전거이기에 그 멋짐은 포기하게 될 것이다. 배 나온 아저씨에서 배 들어간 아저씨로의 변신을 위한 몸부림일 테니까

 

  어쩌면 시한부 인생의 삶을 살아가던 영화 속 그를 보며 느꼈던, 오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전해져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밝게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오래 있어야 더욱 즐겁게 지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그렇게 만드는 걸까.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을 상시 떠올려 보는 나이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생각이 나를 이끌어가고 있기에 말이다.

 

  잠든 아이들과 아내를 뒤로 하고서 거실로 나가야겠다. 안방이 아닌 거실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영화를 봐야겠다. 그리고 돌아오는 주말에는 그 사진관 앞을 다녀와야겠다. 그러면 다시금 찾아온 여름을 맞을 준비가 되는 것 아닐까. 가족이 내 삶의 울타리의 전부이기에, 진짜 사랑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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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지 못한 안부 - 아버지를 기억하며 | 생각 나누기 2020-05-15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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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지 못한 안부

 

  생각해본 적 없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막연히 나이가 들면 결혼은 할 수 있으리라는 신기루와 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살아갔던 순간이 차곡차곡 쌓여왔다. 어느덧 내 옆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존재하며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되새김질하게 만들어 준다.

 

  젊은 나날을 보내며 겪어왔던 이런저런 기쁨과 슬픔 중에서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들도 존재한다. 그 중에서 가장 슬프게 다가오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다. 치열한 삶을 살다가보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드물었고, 그 시절을 살아오던 남자들의 세계에서 아버지는 멋짐으로 존재하기 보다는 왠지 모를 두려움의 대상이었기에 그럴까. 그 무엇보다도 대화를 하며 서로의 속내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의 부재가 더욱 컸던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야 무언가 공감할 수 있는 나이와 공간의 조화가 이루어져 감에도 불구하고 전하지 못한 안부는 남아돌아서 나를 휘감는다. 먼저, 저 어딘가에 존재하는 하늘나라로 가버리셨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잘 지내시죠?”라고 묻는 나의 인사말은 들으실 수 있는지 궁금하다. 어느 대중가요의 제목과 같은 안부라는 것은 더욱 더 가까이 있을 때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 내 옆에 존재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안부일 것이다. 저 멀리 떠나간 뒤에 묻는 것은 안부가 아니라 어쩌면 한풀이와 같은 종류로 남기에 말이다.

 

  벌써 5월의 중순을 흘러가고 있다. 아버지의 흔적을 기억할 수 있는 날이 다가온다. 아이들이 조금 더 마음과 몸이 자라난다면 나눌 수 있을 추억들, 그들에게는 아득히 먼 옛날이야기와 같겠지만 나에게는 현존하는 순간의 사진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나도 추억의 대상이 되고 말 것이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것은 추억할 수 있는 생각을 지닌 사람의 특권이다. 사람이 있기에 사랑이 남는다. 그리곤 다시금 물어본다. “잘 지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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