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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역시 퇴마록 | 기본 카테고리 2019-07-29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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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퇴마록 국내편 1

이우혁 저
엘릭시르 | 201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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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은 박신부, 승희, 현암, 준후라는 가끔 속터질정도로 정의로운 캐릭터 4인방이 각자가 지닌 뛰어난 능력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과 싸우는 이야기다. 국내, 해외라는 공간적 구분과, 혼세와 말세라는 시간적 구분의 큰 틀 안에 네 가지 파트로 나눠져 19권의 책으로 출판되었었다. 나름의 세계관이 존재하며 각자 다른 능력을 지닌 중심인물 외에도 심연의 눈을 지닌 연희, 높은 권력을 가진 백호 등 부수적 캐릭터들의 활약도 더해져 읽는 재미가 쏠쏠한 한국 판타지 소설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눈에 보이는 인간과의 전쟁으로 이어져 나름의 교훈을 담고자 노력한 흔적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영과 기의 싸움이라는 기본 환타지적 요소는 변하지 않고 이어진다.

 

영국에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이, 미국에 마블이 있다면 한국에는 퇴마록이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환타지 시리즈물이 영화로 나올 때마다 '아, 퇴마록도 영화로 만들면 정말 재밌을텐데' 언제나 혼자 궁시렁 거려본다. 몇 해전까지만 해도 영화제작 소문이 돌았는데 무산이 되었는지 조용하다. ㅠㅠ

무튼 개인적으론 초,중딩 시절 동화책을 벗어나 두꺼운 책을 읽도록 많은 활자와 가깝게 만들어준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중학교 졸업이후 퇴마록을 읽지 않았었다. 그런데 대학원에 들어가고 여름방학 고향에 내려왔다가 필요한 자료를 찾으러 들린 지역 도서관에서 옛기억을 더듬다 퇴마록을 다시 손에 잡게 되었다(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던 덕분). 그때 다시 한 번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다. 무려 스무권에 가까운 책이었지만 일주일안에 여전히 재밌어, 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릴 때보이지 않던 억지스러운 문체나 때론 오글거리는 문장력을 발견하는 것도 재미를 배가 시키는데 한 몫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접어두고 어릴 때 미쳐 깨닫지 못했던 작가의 엄청난 지식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람은 도대체 이런 것들까지 어떻게 조사한 걸까 싶을만큼 방대한 자료수집의 토대 위에 쌓아올린 가상 세계는 장르를 뛰어넘어 인정받아 마땅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그 이후로 나는 여름 방학 집에 내려올 때마다 퇴마록을 읽었다. 그동안 논문이나 복잡한 글들에 치어있었던 터라 말랑말랑하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철저한 재미위주의 글을 읽는 시간이 개인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고 변명해본다. (재밌으니까 읽지 사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영화로 보기엔 귀신 이야기는 막상 개인적으로 부담이 되지만 세계 각국 종교와 미신, 설화들을 배경으로 귀신과 맞서 싸우는 주인공들을 상상하며 읽으면 무섭지 않은 납량특집 이미지가 머릿속에 펼쳐진다. 거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장마철 에어컨을 틀어놓고 생라면을 하나 뿌셔놓고 와그작와그작 씹으며 퇴마록을 읽다보면 더위는 어느새 잊혀진다. 

 

이것이야말로 열대야에 어울리는 힐링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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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시각으로 영화를 바라볼 때 보이는 것들 | 기본 카테고리 2019-07-29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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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팝콘 먹는 페미니즘

윤정선 저
들녘 | 2019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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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언제 처음 들었던가에 대한 기억마저 가물가물한 지금.

페미니즘이라는 명명을 알지도 못했을 때부터 나는 할머니와 페미니즘 논쟁을 해왔던 듯 하다.

우리집안은 딸이 귀한 집안이라고들 했는데 그 말 속에는 아들은 한 집에 반드시 한명 이상은 꼭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렇지만 그 중 유일하게 우리 어머니는 며느리들 사이에서 아들 없는 며느리였고, 할머니는 그런 어머니를 구박아닌 구박을 하셨다. 그러던 중 어머니 말에 따르면 내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할머니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할머니 아들 못낳는다고 우리 엄마한테 뭐라고 하지마요."

다행히 할머니는 그런 어린 손녀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으셨고 어머니에게 그동안 미안했다고 사과하시며 금반지를 선물했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지금도 가끔씩 회자되곤 한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어릴 적부터 페미니스트로 태어난 것인가. 페미니스트로 만들어진 것인가.

 

'팝콘먹는 페미니즘'은 영화 속 줄거리 소개와 함께 페미니즘 시각에서 영화를 설명해주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여자이자 영화광인 나로썬 이 책에 강한 끌림을 느낄 수 밖에 없었고 그 느낌 그대로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책은 술술 잘도 읽혔다. .

 

 

작가는 글로 미루어봤을 때 비혼여성이자 페미니스트이며 이원론적 기독교의 태도에 환멸을 느꼈으며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아마 보수라고 지칭하는 이들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작가는 그들과 완전히 다른 부류이며 세상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존재로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작가는 영화 또한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해석하고 독자들에게도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길 권유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일종의 타인의 시선을 전제로한 자기검열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말았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행여 누군가 내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수근거리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책을 쓰고 이런 책을 읽는  행위가 왜 자유롭지 못한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불편해 하게 되었는가.

 

이 책에서 작가는 여성의 불평등을 고발하는 단순한 논리를 고집하고자 함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페미니즘이 단순히 여성들이 이기적인 권리만을 주장한다고 생각해 폄하하고, 과격한 표현방식을 채택한 이들을 페미니즘의 대표이자 일반적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책에서 작가는 영화 속 인물들과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진정한 페미니즘은 남성중심적 성차별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자면, '남성은 울어선 안된다, 남성이 아닌 여성은 운다.' 라는 남성을 기준으로 한 일반화된 행위들에 담긴 차별들을 모두 비판하는 것이다. 남성또한 울수 있고, 여성 또한 눈물이 없을 수 있다. '남성이기에 어떠어떠해야 하는데, 남성이 아니기에 그러므로 여성은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전제로부터 모두 자유로워져야 함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라는 존재 그 자체의 정체성,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에서 소개하는 영화 중 하나인 [내일을 위한 시간]이나 [모아나] 등을 통해 작가는 다시 한 번 그러한 주장을 확인한다.

 

 

 

 

인간은 물론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차이점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인간을 구분하는 차이점이 생식기 뿐만은 아니다. 서로 다른 모두의 생김새를 보라. 우리는 단순한 남성과 여성으로 모두를 구별짓고 동일성의 원리에 따라 집단을 혐오하기에 앞서 모두 다른 특징을 지닌 개별적 존재다. 그것이 때로는 미쳐버릴 것 같은 고독함으로 밀어넣기도 하지만 그런 고독마저 개별적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 남자가 아닌 여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또다른 이원론적 폭력에서 벗어나 어쩌면 인구의 수만큼 존재할지 모르는 다양성을 이해하려는 자세와 모두 지구인이라는 세계시민의 포용성을 지녀야 할 때는 아닐까. 물론 그 길이 매우 멀고 험난해 보이지만.

 

 

그렇기에 예술가들이 존재한다고 책에선 말한다. 원제[모드Maudie]이자 [내사랑]으로 개봉한 영화는 실존인물인 화가 모드 루이스의 삶을 다루고 있다. 몸은 비록 불편했지만 모드는 자연 개별에 담긴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그것을 화폭에 표현할 줄 아는 예술가였다. 그녀의 아픈 과거와 상처는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치유되었다. '세상의 모든 예술은 치유의 씨앗을 품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의 말을 인용하자면 '미처 다 토해내지 못한 울음을 누군가는 대신 울어줘야 함을, 그 일을 하는 존재들이 바로 예술가임을.' 기억해야 한다.

예전에 여성의 화장행위에 대한 정체성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오래전이라 기억은 정확치 않지만 그 글의 결론 또한 이와 비슷했었다. 수많은 사회적 맥락에 따라 그에 맞는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여성은 화장을 해왔고 그 안에는 공통적으로 가부장제에서 강요되어온 여성 정체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에  집중하기보다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화장하는 건 어떨까하는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리뷰의 끝맺음으로 책을 요약하고자 한다. 

 

진정한 페미니즘이란 세상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부정당해온 이들을 찾아내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며, 이원론적 구분에서 벗어나 개별적인 자신(타인)만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는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봄으로써 가능해진다. 작가는 여러 영화 캐릭터들을 통해 그 가능성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으며, 예술가들에겐 대신해서 우리에게 생각과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를 끊임없이 제공하기를 주문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페미니즘을 알고 싶은 사람, 자신의 성 정체성에 강요된 억압들로부터 위로가 필요한 사람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의 끝부분에 덤으로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도 소개하고 있으니 영화와 책을 통해 페미니즘에 대한 감성과 이성을 함께 충족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읽어봐도 좋을 거 같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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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하루키의 본질일수도 있는 일부분을 읽으며 | 기본 카테고리 2019-07-23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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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장수 고양이의 비밀

무라카미 하루키 저/안자이 미즈마루 그림/홍은주 역
문학동네 | 2019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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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에세이집은 호흡이 짧아서 빨리 읽게 되는 책들 중 하나다.

그래서 간만에 장거리로 어딜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겨 버스에서 읽을 책을 고르다 미쳐 읽지 못한 '장수 고양이의 비밀'을 손에 들고 버스에 올랐다.

덕분에 갈 때 절반, 올 때 절반 책을 모두 읽을 수 있었고 뿌듯한 여행길이 되었다.

 

 

 

장수고양이의 비밀은 하루키가 95년부터 약 1년 넘게 신문에 연재했던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그래서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하루키의 말랑말랑한 글들이 엮여져있다. 책 속에 하루키는 자신이 거짓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에세이를 읽으며 나는 거짓말하는 하루키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말인즉 그는 자신이 소설속에서 거짓말을 잘한다고 했기 때문에 독자로썬 하루키의 거짓말인 소설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다는 뜻이다. 나또한 습작으로 소설이랍시고 이것저것 긁적여본 경험이 있어서 아무리 이야기를 지어낸다하더라도 그 안에 자신이 담길 수밖에 없음을 안다.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을 거짓말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 그의 일부가 들어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키의 말랑말랑한 에세이는 소설로 성공해 부족할 것없는 유명작가의 안락함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이것이 그의 '본질일지도 모를' 일부에 불과할 수 있다지만(책에서도 밝혔듯) 나는 왠지 상실에 대한 아픔과 기묘한 상황을 헤쳐나가는 쿨한 캐릭터들이 춤추는 또 다른 하루키의 일부가 더욱 정이 갔다. 이런 경험은 사실 일상다반사로 일어난다. 예를 들어 멀리서 너무 선망하던 인물을 만났을 때 그도 나와 같은 인간이거나, 어쩌면 기대했던 것보다 못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실망하는 것과 마찬가지. 물론 하루키가 못난 인간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즉, 우리가 간과하는 인간의 다양성을 또한 번 경험했다고나 할까. 누구나 내 기준에 완벽한 인간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을 함부로 평가해선 안된다. 그것이 좋은 평가이든 나쁜 평가이든 그 사람은 분명히 내가 모르는 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무튼 에세이 속 하루키는 서양을 동경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고, 특이한 러브호텔의 이름을 찾는 수집가, 세상 물정 모르는 멍청이, 그 속에 확고한 주관을 가진 정체성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있다. 나는 그것이 이 작가의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면서 내가 어떤 인간으로 보일까를 두려워하며 자체적으로 검열해서 쓰기보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쓰는 것. 이것이야말로 작가등리 가장 지녀야할 덕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지만 중간중간 소설의 문구처럼 생각의 고리를 건드리는 문구들이 있다.  

 

"건강 자체가 반드시 선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굳이 정의하면 건강은 선의 시작을 알려주는 한 가지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가슴을 찔러 발밑이 우르르 무너지는 심정이 된적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름대로 고달픈 나날이었다... 그러나 괜찮다.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나이가 들면 그렇게 처참할 정도로는 상처받지 않게 된다."

 

"이런일도 생기는 법이다, 라고 그 때 문득 생각했다. 형체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요즘 연일 악화된 한일관계에 대한 뉴스가 쏟아져나온다. 이럴 때마다 국경없는 예술가들은 범주화에서 벗어나 무엇이 평화를 위한 길인가를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가지고 따지고 올라가다보면 진실과 정답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비치는 법이다. 그 때 예술가들은 흔들리지 않고 소신을 정직하게 밝혀야 한다. 왜냐하면 "비판받고 험담을 듣는 일이 즐겁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속는 건 아니기 때문(p286)"이다. 에세이집에는 하루키가 일본사회의 내재된 획일성을 강요하는 문화를 비판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현재 일본 극우 정치에 대한 획일성을 그 역시 오래전부터 우려하고 경계했던 것은 아닐까. 

무튼 하루키의 어떤 정체성도 인정하고 받아드릴 마음이 있는 팬이라면 읽어봐야할 책임에 틀림없다.

개인적으로 좀 더 처절한 하루키가 좋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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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고 깔끔한 연주 | 기본 카테고리 2019-07-23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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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에 담긴 곡은 총 다섯 곡으로 쇼팽의 피아노 콘체르토 1번과 피아노 발라드 4곡이다.

다섯 곡 모두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친숙한 곡들이라고 할 수 있다. 쇼팽이 피아노 콘체르토 1번을 발표했을 때 비판한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피아노 콘체르토 중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콘체르토 2번과 더불어 이 곡을 가장 사랑한다. 사람은 아니지만 사랑한다고 표현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만큼 이 한 곡을 들으며 설렘과 두근거림과 벅참과 동시에 비애까지도 느껴진다.

 

몇 년 전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쇼팽 콩쿨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감동은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기억들 중 하나다.  쇼팽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인데다 우승자가 없을 때도 있다던 그 유명한 콩쿨에서 한국인이 우승을 했다는 소식을 살아생전 듣게 되어 정말 신기했었다. 세대도 다르고 생김새도 정서도 다른 민족과 환경, 무엇보다 '서로 다른' 인간인 쇼팽과 조성진이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 그는 어떻게 너무나도 다른 사람의 작품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해석해 연주할 수 있었는지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당장 우승 당시 콩쿨 영상을 찾아보았고, 둔감한 막귀를 가진 내가 듣기에도 조성진의 연주가 그 어떤 누구보다도 깨끗하고 정확하다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여린 유리판 위를 두드리듯 때론 조심스러우면서, 때론 청아하고 섬세했다. 

 

중학교 때 아루트르 루빈스타인의 쇼팽 연주곡 CD를 들으며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멜로디가 존재할 수 있을까 감탄했었다. 그 이후 나는 주욱 루빈스타인의 쇼팽 연주곡만을 들어왔다. 그의 연주가 내게 기준이 되었고, 왠지 다른 연주자들의 쇼팽을 들으면 다른 곡을 듣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뭐든 첫경험이 이래서 중요한 법이다..

어쨌든 루빈스타인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가본적 없는 폴란드 어느 광장에 홀로 서서 바람을 맞는 기분이 들곤 했었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쌓여 있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의 풍부한 연주에 빠져들어 있노라면 눈물이 날 때도 있었고, 사랑해본 적 없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데 조성진의 연주를 들으며 루빈스타인의 연주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루빈스타인의 연주와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을 정도로 테크닉적으로 흡사 완벽했고, 아름다웠다.

어떻게 아시아의 작은 국가에서 온 청년이 어떻게 쇼팽의 곡을, 루빈스타인이라는 위인과 같은 피아니스트의 연주처럼 풀어낼 수 있었을까.

물론 시간이 지나 다시 LP속의 조성진의 연주를 들으면 그 역시 루빈스타인이 아닌 그만의 감성으로 쇼팽을 연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지만.. 뭐랄까 루빈스타인보다 조금더 여린 마음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그역시도 마음에 든다. 넘실대는 LP판 위에 흐르는 조성진의 쇼팽 연주는 다른 일들을 멈추고 그 속에 빠지게끔 만드는 힘이 분명히 있었다.

 어찌 이러한 연주를 듣는데 기꺼이 돈을 지불하지 않을 수 있으랴.

 

 

위대한 예술이란 역시 시공을 초월하는 힘이 있다.

슬픔이 감도는 감성과 건반위에서 터져나오는 맑은 환호들은 조화롭게 얽혀 작곡가와 연주가와 또 다른 젊은 연주가와 감상하는 모든 이를 연결시킨다. 그 앞에선 인종과 이념과 자본 따위의 분쟁을 안고 다니는 단어들이 힘을 잃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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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우리들의 이웃 스파이더맨 | 기본 카테고리 2019-07-2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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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존 왓츠
미국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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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앤드게임이 웅장한 협주곡이었다면 그러한 연주가 끝난 뒤 여운을 다스리기 위한 가벼운 앵콜이 필요한 법이다.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라는 근 10년 간 우리 곁을 맴돌았던 걸출한 캐릭터의 퇴장과 마블페이즈 3의 여정을 닫기 위한 시원하고 달콤한 후식 같은 영화라 할 수 있다.

 

실로 거대한 우주전쟁을 마친 후 일상으로 복귀한 피터(스파이더맨)는 지친 몸과 마음을 자신의 본분을 잠시 접어둠으로써 달래고자 한다. 짝사랑하던 MJ에게 고백하기로 결심하며 소소한 계획을 차근차근 세우며 설레어 한다. 감초역할을 톡톡히하는 우리의 '의자에 앉은 사내'는 그 계획을 말리지만 결국 자신은 베이비를 사귀는 에피소드가 중간중간 삽입되어 웃음포인트가 되어준다. 그렇지만 평범함을 찾아가던 스파이더맨은 결국 '미스테리오'라는 아이언맨을 대체할만한 영웅의 등장으로 흔들리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 엄청난 반전이 숨어있지만 스파이더맨은 다시금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재정비하는 계기를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하며 맞이한다.  

 

스파이더맨을 보면서 이제 정말 아이언맨과 안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언맨은 등장하지 않지만 그가 남겨둔 흔적의 여파는 여전히 스토리를 전개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으며, 그가 남긴 유산은 스파이더맨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가상의 캐릭터지만 피터가 그를 그리워하듯 앤드게임 이후 마블 팬들의 마음 또한 그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아있는 아이언맨의 흔적을 팬과 피터는 함께 느끼며 빌런을 대적하며 극복해내는 편이 이번 스파이더맨의 목적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아쉽게도 스파이더맨은 아직 어리고, 경험도 부족하며, 로다주라는 사연많은 배우의 눈빛을 기대하기엔 갈길이 먼 느낌이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과연 아이언맨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이번편을 보면서 해소되지 않았다. 순수함과 용기만으로 대체 할 수 없는 연륜과 깊이를 채워줄 캐릭터가 또 다시 등장할 수 있을까.

 

스파이더맨이 가을에 개봉했더라면 좋았을뻔했단 생각도 든다. 얼마전 마블페이즈4에 만나게 될 새로운 시리즈들이 발표되었다. 한국배우도 동참한다고 하니 더욱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왠지 2021년은 너무 먼 기분이 든다. 누군가는 그 때까지 또 다른 살 이유가 생겼다고 하지만. 그 동안의 아쉬움은 여전히 아이언맨을 보며 달랠텐데 그 시간동안 아이언맨을 대체할만한 캐릭터나 스토리가 만들어질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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