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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라틴어 수업 #06 어떤 나라 사람이고 싶으세요? | 살아가는 힘이 되는 책 2017-08-1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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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입니까?
Coreanus esne?

 

유학 생활의 낙이라면 점심 식사 뒤 카페에 가서 마시는 한 잔의 에스프레소였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8시 반부터 1시까지 수업을 듣고 나면 파김치가 되는데, 기숙사로 급하게 돌아와 점심을 먹고 마시는 에스프레소 한 잔은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동료들과 공부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을 나누는 그 시간 자체가 더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날도 보통 때처럼 점심 식사 후에 늘 가던 카페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한 남자가 다른 동료들은 그냥 두고 제 앞을 가로막더군요. 정확히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시아인인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동남아시아 사람으로 짐작이 됐는데 대낮부터 취기가 가득한 모습으로 저를 보며 아주 분명한 한국말로 이렇게 물었어요.

 

 

한국 사람입니까?(Coreanus esne)”

순간 당황해서 대답을 못하고 있었는데 뒤이어 그가 내뱉은 말이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한국 사람, 나쁜 사람들입니다.”

 

 

 


 

 

로마 한복판에서, 게다가 한국어로 들은 이 말에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그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냐, 한국말은 어떻게 배웠느냐, 한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느냐고 물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어요. 전 그대로 기숙사로 돌아와 방금 전 기숙사로 돌아와 방금 벌어진 일을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이 내가 한국인인 건 어떻게 알았을까?

어쩜 그렇게 분명하게 한국말을 할 수 있었을까?

 

혹시 외국인 노동자로 한국에서 지냈던 걸까?

한국에서 무슨 일을 겪었던 거지?'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한국에서 어떤 일을 겪었고 그 경험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한국인에게 사기를 당했을 수도 있고, 혹은 심한 인종 차별을 겪었을 수도 있어요.

자국에 사는 동안에는 국적에 대해 인식할 일이 거의 없죠. 일상에서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하지만 해외여행 중이거나 타국에 살고 있다면 나는 한국인이라는 사실과 끊임없이 마주하게 됩니다. 외국인들은 저를 통해 한국을 볼 것이고 또한 한국인에 대한 인상을 가지게 될 겁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문제는 바깥보다 안에서 더 많이 일어납니다. 외국에 있을 때는 자연스레 내 나라에 인식하게 되니 언행에 신경을 쓰지만(아닌 분들도 있습니다만) 내 나라에 있을 때는 하던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기가 쉬워요. 그러니 이곳에서 만나는 외국인 여행객, 외국인 노동자나 교포들에게 함부로 굴곤 합니다. 특히 동남아시아인이나 흑인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어 국가나 인종에 따라 차별 대우를 하기도 하죠.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라는 게 있습니다. 자신들의 표준만 고집함으로써 세계 시장에서 고립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보통 경제 경영 분야에서 쓰이는 용어인데 오늘날의 인간관계에도 적용해볼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우리는 저마다 다른 개개인이지만 각기 떨어져 독자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섬이 아닙니다. 물 밑으로 들어가 보면 서로 이어져 있어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는 이 나라와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고, 밖으로 나가보면 그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아래로 파고 들어가 보면 우리는 또 다른 이름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사실이죠.

어떤 사람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간에, 잘 살고 못 살든, 많이 배우고 못 배웠든 간에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우리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겁니다. 너무 뻔한 이야기 같나요? 하지만 이 뻔하고 간단한 진실 하나를 우리는 자주 잊어버리고 맙니다. 이걸 기억하고 내 앞에 선 사람이 나와 같다는 걸 주지하고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나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일은 없을 겁니다.

저는 지금도 문득문득 그 남자가 저에게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순간순간 내가 어떤 나라 사람이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라틴어 수업

한동일 저
흐름출판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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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라틴어 수업 #05 ‘카르페 디엠’ 오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기를! | 살아가는 힘이 되는 책 2017-08-0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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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
오늘을 붙잡게,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만 믿고.


카르페 디엠은 원래 농사와 관련된 은유로 로마의 시인인 호라티우스가 쓴 송가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시구입니다. 카르페라는 말은 카르포(carpo)’라는 동사의 명령형입니다. ‘카르포추수하다, 과실을 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요. 과실을 수확하는 과정은 굉장히 고되고 힘들지만 한 해 동안 땀을 흘린 농부에게 추수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일 겁니다.

그래서 카르포동사에 즐기다, 누리다라는 의미가 더해져 카르페 디엠’, 오늘 하루를 즐겨라라는 말이 된 것입니다. 시의 문맥상 내일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 말고 오늘에 의미를 두고 살라라는 뜻으로 풀이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을 인내하고 절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미래를 지향하는 이러한 삶의 태도는 칭찬받아 마땅하죠. 하지만 우리의 청소년과 청년들을 생각하면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태도가 과연 온당한 일인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우리 사회가 청춘들에게 너무 큰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청년들에게 오늘을 포기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청춘을 송두리째 희생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 같아요.

청소년과 청년들만 그런 게 아닙니다. 부모 세대 역시 마찬가지죠. 자녀의 미래를 위해 오늘을 할애하고, 나중에 돈 벌어서를 되뇌며 오늘을 다 바칩니다. 하지만 젊은이들보다 내일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 부모님들입니다. 노년이 되어서도 쉴 수가 없죠. 청년 세대의 어려움과 중장년 세대의 어려움은 별개이지 않습니다. 결국 누구도 행복하지 않아요.

그런데 또 한 가지 생각해볼게 있습니다. 저는 중간고사 과제로 학생들에게 데 메아 비타(De mea vita)’A4 한 장 분량으로 써오라고 합니다. ‘데 메아 비타’, 이것은 내 인생에 대하여라는 뜻입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에 대해 분석해주는데, 이때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글의 내용이 아니라 바로 시제에 대한 부분입니다.

학생들의 글을 보면 문장의 시제가 대부분 과거시제입니다. 과거시제가 제일 많고 현재시제가 일부분, 미래시제는 극히 드뭅니다. 아마도 지나간 날들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내일은 불명확하고 오늘은 이야기하기 애매한, 그런 생각이 반영됐을 겁니다

인간은 오늘을 산다고 하지만 어쩌면 단 한순간도 현재를 살고 있지 않은지도 모릅니다. 과거의 한 시절을 그리워하고, 그때와 오늘을 비교하죠. 미래를 꿈꾸고 오늘을 소모합니다. 기준을 저쪽에 두고 오늘을 이야기해요. 그때보다, 그 사람보다, 지난 번 그 식당보다, 지난 여행보다 어떠했다고, 나중에, 대학에 가면, 취직하면, 돈을 벌면, 집을 사면 어떻게 할 거라고 말하죠.

재미있는 것은 우리만 그런 건 아니라는 겁니다. 라틴어 동사 활용 표를 보면 그 역시 과거와 연결된 부분이 훨씬 많아요. 그 시절의 로마도 다르지 않았다는 의미일 겁니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불행하게 사는 것도, 과거에 매여 오늘을 보지 못하는 것도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닐까요? 10대 청소년에게도, 20-30대 청년에게도, 40대 중년에게도, 70대 노인에게도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때이고 가장 행복해야 할 시간입니다. 시인 호라티우스와 영화 속 키팅 선생의 말은 내게 주어진 오늘을 감사하고 그 시간을 의미 있고 행복하게 보내라는 속삭임입니다.

오늘의 불행이 내일의 행복을 보장할지 장담할 순 없지만 오늘을 행복하게 산 사람의 내일이 불행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카르페 디엠, 여러분 모두 오늘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라틴어 수업

한동일 저
흐름출판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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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라틴어 수업 #04 로마의 공동묘지 입구에 새겨진 ‘이것’ | 살아가는 힘이 되는 책 2017-07-3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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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아프셔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을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다시 한 번 힘을 내서 버티셔야 해요라고 말씀드렸지만 어머니의 눈빛이 흔들렸습니다. 어머니의 상태는 더 나빠졌고 의식을 잃고 인공호흡기로 숨을 연명하셨어요. 그리고 며칠 후, 어머니는 제 앞에서 마지막 숨을 고요히 몰아쉬시고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간호사들이 어머니 시신을 수습하는 동안 저는 중환자실 밖에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어머니 시신을 수습해 장례식장으로 옮긴 뒤 빈 영안실을 홀로 지키면서 덩그러니 앉아 어머니의 영정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속에서 제 얼굴이 보이더군요. 언젠가는 저 자리에 제 영정이 놓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그 순간 내 몫의 죽음이라는 단어가 실체가 되어 다가왔습니다.

 

"Hodie mihi, Cras tibi"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로마의 공동묘지 입구에 새겨진 문장입니다. 오늘은 내가 관이 되어 들어왔고, 내일은 네가 관이 되어 들어올 것이니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라는 의미의 문구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영원으로부터 와서 유한을 살다 다시 영원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숨이 한 번 끊어지면 그만인데도 인간은 영원을 사는 것처럼 오늘을 삽니다. 저는 그날 또렷이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저의 죽음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마지막 순간까지 어머니를 보살펴주셨던 청원의 은혜의 집을 찾아갔을 때, 원장 수녀님께서 어머니의 유품을 건네주셨습니다. 거기에는 얼마 안 되는 연금의 일부를 수년간 적금으로 부어 마련한, 당신 장례비를 위한 통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마 유학 중에 어머니께 보냈던 손편지와 몇 장의 사진이 있었고요. 어머니는 그 편지를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으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그 유품을 통해 죽은 육신이 아니라 향기로운 기억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때 문득 인간은 죽어서 그 육신으로 향기를 내지 못하는 대신 타인에 간직된 기억으로 향기를 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기억이 좋으면 좋은 향기로, 그 기억이 나쁘면 나쁜 향기로 말입니다.

   

 

 

사춘기 시절, 저는 그리 온순한 아이가 아니었고 제가 처한 현실에 대한 불만과 원망을 부모님께 쏟아내던, 참 못된 아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패악에 가까운 제 언행을 묵묵히 인내하고 저를 믿어주셨습니다. 훗날 그 인내와 믿음이 사랑이었음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철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타인을 통해 기억되는 존재입니다. 어머니는 관이 되어 제게 기억으로 남았고 제 죽음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내일은 저 역시 관이 되어 누군가에게 기억으로 남을 것이고, 또 그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게 할 겁니다. 인간은 그렇게 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 죽음으로써 타인에게 기억이라는 것을 물려주는 존재입니다.

  

이게 거기에서 하나를 더 생각해봅니다. 부모님이 남긴 향기는 제 안에 여전히 살아 있지만 그다음을 만들어가는 것은 제 몫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기억을 밑거름 삼아 내 삶의 향기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신은 저를 통해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그렇게 해서 제 삶은 어떤 기억으로, 어떤 향기로 남게 될까, 하고요. 아마도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야 하는 질문이겠지요. 그런 맥락에서 다음의 말 한마디를 함께 떠올려봅니다.

 

"Si vis vitam, para mortem."
삶을 원하거든, 죽음을 준비하라.
 

 

 


 

라틴어 수업

한동일 저
흐름출판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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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라틴어 수업 #03 지난 시간이 후회되는 날 | 살아가는 힘이 되는 책 2017-07-2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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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가장 훌륭한 재판관이다
Tempus est optimus iudex

 

 

라틴어 속담 중에 시간이 가장 훌륭한 재판관이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시간을 뜻하는 라틴어 ‘템푸스(tempus)’는 시간의 이어짐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s-stem’에서 유래합니다. 여기에서 시간, 시기, 폭풍을 의미하는 또 다른 추상명사 ‘템페스타스(tempestas)’가 나오고, 이것이 이탈리아어 ‘템페스타(tempesta)’ 프랑스어 ‘탕페트(tempête)’, 스페인어 ‘템페스타드(tempestad)’, 포르투갈어 ‘템페스타지(tempestade)’, 영어 템페스트(tempest)’가 됩니다

 

 

아울러 ‘템푸스’와 연관된 많은 속담과 명문들이 있는데, 잘 알려진 영어 속담 타임 플라이스(Time flies)’ 역시 ‘템푸스 푸지트(Tempus fugit)’의 단순 번역에 불과합니다. 이 말은 시간이 쏜살같이 가버림을 나타낼 때 쓰지만 원래는 기회가 왔을 때 기회를 놓치지 말라라는 의미로 로마 시인이었던 베르길리우스가 사용한 표현입니다

 

 

 

 

저는 살아 있는 동안 꼭 하고 싶었던 일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한 가지가 이탈리아의 여러 교회법 사전 중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꼽히는 새 교회법 사전을 옮기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전의 저자는 현존하는 교회법의 최고 대가들이었고, 어떤 교회법 사전보다 보편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분량도 어마어마하지만 본문을 해독하는 일이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결국 번역 작업을 하다 멈추고 다른 일을 먼저 끝내고, 다시 돌아와 시작하고 멈추기를 반복했어요. 이 작업을 시작한 것이 2005년 즈음이었는데 2015년 부처님 오신 날에 초역을 마쳤습니다. 10여 년의 대장정이었습니다. 그러고도 또 2년의 시간이 걸려 올해가 되어서야 『교회 법률 용어 사전』이라는 이름으로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초역을 마쳤을 때, 하나둘 다음 작업들을 계획했었지만 진행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작업 자체가 몹시 힘들기도 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많았어요. 모든 게 순조롭게 흘러가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문제가 자꾸 생기니 참 어렵더군요. 제가 공부만 하다 보니 성격도 유별나서 둥글둥글하지 못합니다. ‘모난 돌이라고 해야 할까요? 힘이 빠지고 괜한 원망만 늘어가더군요.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저 자신을 돌아봤어요. 지나온 일들이 그렇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현실적으로 외부 요인이 제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막기도 했지만, 그 단초가 되었던 것은 제 태도가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어떤 사람의 성취는 그 자체만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죠.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 경우에도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데는 바깥의 문제도 있지만 저의 태도 역시 바람직했다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고 신뢰를 쌓지 못했던 나의 문제도 성찰하고 인정해야 했어요. 그걸 느끼는 순간 제 안에 차 있던 원망과 미움이 잦아들더군요.

 

‘베아티투도(beatitudo)’라는 라틴어가 있습니다. ‘행복을 뜻하는 단어인데 베오(beo)’라는 동사와 ‘아티투도(attitudo)’라는 명사의 합성어입니다. 여기에서 베오복되게 하다, 행복하게 하다라는 의미이고 ‘아티투도’는 태도나 자세, 마음가짐을 의미합니다.

‘베아티투도’라는 단어는 태도나 마음가짐에 따라 복을 가져올 수 있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행복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 단어가 유독 마음에 남는 것은 마음가짐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의미 때문입니다.

살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 가운데는 외적 요인도 많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 자신이 뿌려놓은 태도의 씨앗들 때문인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씨앗의 열매들 중 어떤 열매는 위에서 말한 ‘베아티투도’처럼 기쁨과 행복으로 돌아오겠죠. 하지만 어떤 열매는 고통과 괴로움이 되어 오기도 할 겁니다. 그때 우리는 누군가에 대한, 무엇인가에 대한 원망보다 그저 이제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내가 뿌린 씨앗을 생각해보게 되겠지요. 그때, 시간은 진정 모든 일의 가장 훌륭한 재판관이 될 겁니다. 

 

 

 


 

 

라틴어 수업

한동일 저
흐름출판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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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라틴어 수업 #02 좋은 삶이란 나만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삶 | 살아가는 힘이 되는 책 2017-07-1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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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과 장점
Defectus et meritum

 

 

가끔 어떤 사람은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얼굴은 오른쪽(왼쪽)이 더 예쁘게 나온다며 그쪽으로 찍어달라고 요구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은 어떻게 해야 자기 모습이 예쁘게 비치는지 알고 있구나 싶어요. 그리고 아마도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민했을 거예요. 자기가 찍힌 사진도 많이 들여다봤을 거고요.

요즘 같은 시대에 필요한 일이죠. 자기 단점은 드러내지 않고 장점을 부각시키는 일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사람처럼 무엇이 나의 장점이고 단점인지 알아야 합니다.

 


 

데펙투스와 메리툼
(Defectus et Meritum)


단점과 장점을 의미하는 라틴어입니다. 이 단어의 어원에 대한 설명은 책에 미뤄두겠습니다. 여기에서는 이 단어를 통해 생각해볼 것들을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듯 자기 자신을 관찰합니다. 다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못할 뿐입니다. 특히 자기 단점에 대해서는 더 모르는 척하죠. 단점이나 약점과 맞서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그래서 그것들과 직면했을 때 시선을 돌려 자신의 환경이나 남의 탓을 합니다. 가장 하기 쉬운 선택을 하는 것이죠. 나 자신을 비난하는 것보다는 덜 아픈 일이니까요. 하지만 종국에는 스스로에게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단점에 대해 달리 생각해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단점이라 생각했던 것이 단점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제 경우를 예로 들어볼까요? 저는 몸이 약한 편이라 시험 기간에도 공부를 몰아서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매일 시간을 쪼개 규칙적으로 공부를 하려고 애썼고, 그게 습관이 됐습니다.

 

 

몸이 약한 단점이 공부를 규칙적으로 하는 장점이 된 것이죠.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장점이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데에는 단점이 되더군요. 공부에 몰입하다 보니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드물어졌거든요.

지금도 여전히 개인적인 대화나 관계 맺기는 어렵습니다. 앞에 나서서 강의를 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말이죠. 이 부분이 제 오랜 ‘데펙투스’라는 점을 잘 알고 있어요.
 

Postquam nave flumen transiit,
navis relinquenda est in flumine.

강을 건너고 나면 배는 강에 두고 가야 한다.
혹시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이미 강을 건너 쓸모 없어진 배를 아깝다고 지고 간다면 얼마나 거추장스러울까요? 본래 장점이었던 것도 단점이 되어 짐이 되었다면 과감히 버려야 하는지도 몰라요. 저는 어려움이 닥치고 나서야 한때의 장점이 거꾸로 저를 옭아매는 단점이 되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회는 우리에게 어떤 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 답이 이라고 하기에는 세상은 급변하고 그 속도를 따라가기가 어려워요. 어제의 답이 오늘은 답이 아니게 되고, 오늘은 답이 아닌 것도 내일의 답이 될 수 있는 때죠. 그런 때에 우리의 데펙투스와 메리툼, 단점과 장점도 고정적이지는 않을 겁니다.

어제의 메리툼이 오늘의 데펙투스가 되고, 오늘의 데펙투스가 내일의 메리툼이 될 수 있어요. 무엇 하나 명확히 답을 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살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중요한 것은 무엇이 메리툼이고 데펙투스인가 하는 게 아니에요. 어떤 환경에서든지 성찰을 통해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뻗어나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내 안의 땅을 단단히 다지고 뿌리를 잘 내리고 나면 가지가 있는 것은 언제든 자라기 마련이니까요

 

 

 

"무엇이 나의 메리툼이고 데펙투스인가.
그 안에 숨겨진 가능성은 무엇인가.
혹 강을 건넜음에도 놔두지 못하고 계속 지고 가는 메리툼 아닌 메리툼은 무엇인가."

 

저는 이 순간에도 묻고 답하는 중입니다. 여러분도 스스로 들여다보고 묻고, 답을 찾아보기 바랍니다

 

 


 

 

 

5년간 수많은 대학생, 청강생들을 매혹시킨 명강의!

라틴어 수업

한동일 저
흐름출판 | 2017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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