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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용.(3) | 4. 고.소.용. 2012-10-05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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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단편소설

『총통각하』

 

 

 

고. 소. 용.

 

(고양이와 소와 용의 나라로부터)

 

 

<3회>

 

   

 

 휴가를 내고 그 여자를 만나러 날아갔었어. 내가 한 건 공존이 아니라 숭배였거든. 충격 없이 조용히 받아들인 게 아니라,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괜히 호들갑을 떨면서 충격으로 받아들였다는 거야. 그 사람을 만나고 연락을 하고 한 마디 한 마디 소식을 주고받고, 그 모든 것들이 나한테는 내 삶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릴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니까.

 

 

 뭐가 그렇게 좋았냐고? 몰라. 지금 생각하면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때는 정말 말 그대로 사건의 연속이었지. 매일매일.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데 별다른 이유가 있겠나 싶긴 한데, 아마 잠들어 있는 소를 가운데에 두고 길 양편에 둘 다 거의 똑같은 폼으로 멍하니 서서 그 소가 꾸고 있을 꿈을 상상하고 있었던 장면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나한테는 꽤 경이로운 순간이었거든. 시바신의 마음에 닿은 것도 같았고 말이지.

 

 

 뭐 사실 따지고 보면 별일도 없었지. 그냥 이메일이 오가고, 가끔 사진을 주고받기도 하고. 그렇게 별것 아닌 일에도 나 혼자 어마어마한 의미를 부여해 가면서 거의 반년을 바보처럼 기다렸어. 다음 휴가를 받을 때까지. 그리고 결국 그 여자를 찾아갔지.

 

 

 그 나라는, 아무튼 재미있는 나라였어. 인구가 50만 명쯤 되는 작은 도시국가였는데, 자연물이라고는 그렇게 높지 않은 산이 다섯 개, 강이 하나, 조그만 호수가 두 개밖에 없는 소박하고 한적한 나라였어. 뭐 팔아서 그렇게 잘 사는지 모르겠는데 소득수준도 꽤 높고 말이야. 왜 그렇게 잘 사는 걸까, 그런 작은 나라들은? 뭐, 힘없는 도시국가들은 벌써 다른 데 다 흡수돼 버려서 잘 사는 데들만 살아남다보니 그래 보이는 걸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도심 구조가 좀 희한했는데, 그런 작은 나라들은 원래 주권을 인정받은 지방 영주의 영지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거든. 그런데 여기는 뭔가가 좀 이상했어. 도심 구조가 중세 타운 형태가 아니라 무슨 제국 중심부처럼 생겼지. 일단 구시가라는 게 딱히 없었어. 빽빽한 골목길로 이어진 구시가지가 아니라 아주 널찍한 광장이 옛 도시 구역 한가운데에 떡하니 들어서 있었거든. 그런 넓은 광장은 왕권을 상징해. 큰 도로들이 방사상으로 쭉쭉 뻗어 있고, 그 중심에 아주 넓은 광장이 들어서는 식으로 말이야. 보는 사람을 질리게 만들 만큼 압도적인 무언가를 연출하고 싶을 때 하는 짓인데, 이유야 어쨌든 쪼끄만 도시국가 치고는 옛 도시가 차지하는 영역이 엄청나게 컸어. 마치 무슨 제국의 수도라도 되는 것처럼.

 

 

“이 지도 이거 맞게 그린 거예요? 저게 다 구도심이라고 돼 있는데.”

 

 그 여자에게 물었어.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잠깐 나를 만나려고 시간을 내준 그 여자한테 말이야. 그게 맞대. 그래서 다시 물었지.

 

“그럼 사람 사는 데는 어디였어요? 옛날 주거지라고는 광장 주변에 조금 붙어 있는 게 단데.”
“다 거기 살았어요. 활주로 생각하시면 돼요. 가운데는 다 비워놓고 주변에 건물 몇 개 갖다 놓고 좁은 데 모여서 살잖아요, 사람들은.”

 

 

 그래, 그런 식이었어. 광장이 아니라 활주로였던 거야. 용이 혼자 사용하는 거대한 활주로. 그 나라는 말 그대로 용이 지배하는 나라였으니까.

 

 

 물론 정말로 그 나라 사람들이 용의 지배를 받는 건 아니었어. 사실 용은 보이지도 않았지. 나라를 다스리는 건 사람들이었어. 어느 나라 정치인이든 다 그렇듯 적당히 탐욕스럽고 적당히 뻔뻔스러운 정치인들이었지. 다만 이 나라 정치인들은 정당성을 얻는 방법이 좀 희한했어. 지배자인 용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었거든. 형식상.

 

 

 그게 뭐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야. 캐나다 같은 나라는 분명히 민주주의 국가지만 형식상으로는 아직도 영국 여왕의 지배를 받는 나라거든. 국가원수는 아직도 영국 총독으로 돼 있고 말이야. 그런데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잖아. 아무도 신경을 안 쓰니까.

 

 

 마찬가지였어. 그 여자의 나라도 실제로는 그냥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였는데, 형식적으로는 용의 대리인들이 지배하는 나라였지. 절대주권을 가진 용의 권한을 위임받은 일종의 신관들이 법률을 제정하고 세금을 걷고 전쟁을 선포하고 공무원들 월급을 챙겨줬다는 말이야. 형식상. 물론 국민들은 그런 거 별로 신경을 안 썼겠지. 그 여자도 그러더군.

 

“그냥 관광 상품인가보다 생각하고 있을 걸요, 정부 구조 같은 건.”

 

 

 응? 그래서 그 여자하고는 어떻게 됐냐고?

아니, 자네 지금까지 뭘 들었어. 이건 그 여자 이야기가 아니라 고양이 이야기라니까. 고양이와 소와 용에 관한 이야기라고. 뭐 그 여행도 그랬어. 그 여자하고는 마지막 날까지 거의 진전이 없었는데, 용에 관해서는 확실히 운이 좀 좋았거든. 좀 좋은 게 아니라 엄청 좋았지. 무슨 일이 있었냐고? 그 주 금요일에 용이 내려왔거든. 그 광장에.

 

 

 7년 만이라고 그러던가. 5년 전엔가 한번 북쪽 하늘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금방 다시 사라져버린 이후로는 처음 나타난 거라고 하더라고. 호텔 투숙객들이 아침부터 내내 떠들썩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 호텔 자리가 좀 명당자리였거든. 광장 바로 남쪽에 42층 높이로 솟아있는 엄청나게 전망 좋은 건물이었으니까. 물론 호텔 사람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어. 왜냐고? 말했잖아, 공존. 공존하는 생명체의 크기가 아무리 커도 충격을 받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가 딱 그 나라였을 거라고.

 

 

 일찌감치 아침 식사를 끝내고 광장으로 내려갔어. 용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서였지. 사람들이 바글바글 할 줄 알았는데 그 전날하고 별로 다를 게 없는 거야. 평일 아침답게 한산한 거리였지.

 

 

 용은 생각보다 온순했어. 한 40미터는 돼 보였는데, 어쩌면 50미터나 60미터였을지도 몰라. 눈으로만 봐서는 정확히 몇 미터쯤 되는지 알 방법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광장에 내려와 있는 내내 몸을 둥글게 말고 잠만 자고 있었으니, 허리를 곧게 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힘들었어. 나는 그곳 사람이 아니어서, 날아가는 용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눈을 감고 있었는데, 얼굴 표정이나 인상에서 위압감 같은 게 느껴지지는 않더라고. 세상의 지배자 치고는 꽤 인심 좋아 보이는 얼굴이었거든. 용이 보통 얼마나 사는지 모르겠는데, 최소한 중년은 넘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어. 몸매는 꽤 날렵해 보였지만, 그렇게 위엄 있고 근엄한 자태로 잠들 수 있는 생명체라면 이미 꽤 많은 일들을 겪은 게 틀림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 용의 일상을 짐작할 수는 없지만, 생명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운명에 관한 일들이 있지 않겠어? 연륜이란 건 그런 운명과 관련된 사건들이 쌓이고 쌓였을 때만 가질 수 있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는 용이나 우리나 비슷하지 않을까. 서로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는 거지. 뭐 딱히 내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하하.

 

 

 아무튼 어딘지 완만한 곡선 같은 게 잔뜩 엿보이는 그 붉은 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어. 야생의 품위란 무엇일까, 그것과 반대되는 인간의 문명이란 도대체 또 어떤 걸까, 하는 생각들 말이야.

 

 

 긴 목을 지나, 거대한 날개가 달려 있는 등을 타고, 저 멀리까지 늘어져 있는 꼬리 끝까지 시선을 뻗곤 했지. 그러고는 역순으로 다시 머리까지 돌아오기도 하고. 용의 붉은색 피부에서 기품이 느껴졌는데, 색깔 자체는 그렇게 화려한 색상은 아니었어.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엄청 고급스러운 색이었거든. 그런 게 불을 뿜으면서 하늘을 누비면 그 위압감이 정말 굉장했을 거야. 그 아래 서 있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그냥 움츠러들었겠지. 사자나 곰도 마찬가지였을걸. 고래 정도나 정면에서 눈을 마주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잠들어 있는 용의 옆모습에서는 그 모든 강인함과 사나운 기세 혹은 위압감 같은 것들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어. 대신 다만 완만한 곡선으로 잘 마감된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가구 장식처럼 관절 하나하나 주름 하나하나에서 세련된 기품이 철철 넘쳐흘렀지.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

 

‘아, 저런 게 바로 연륜이구나. 멋지게 늙어간다는 건 바로 저렇게 늙는 걸 말하는 거구나!’

 

 

-<4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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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 단편소설

『총통각하』

 

 

 

고. 소. 용.

 

(고양이와 소와 용의 나라로부터)

 

 

<2회>

 

   

 

 그 여자 말로는, 그 나라 소들은 운이 좋은 거라고 하더라고. 시바신이 타고 다닌다는 난디라는 소가 있거든. 그 난디 때문에 다른 소들이 다 영물로 대접을 받는 거야. 어디 그 소들이 다 영물이기야 했겠어. 그냥 소였겠지. 그런데도 그냥 난디에 묻어가는 거야. 사실 난디 자체도 시바신한테 묻어가는 거긴 했지. 게다가 그 시바신이라는 신이 힌두교에서도 좀 오래된 주신이거든. 주신 자리 내준 지가 수천 년은 됐을걸. 지금도 중요한 신이긴 한데 주신은 어디까지나 브라흐마니까.

 

 

 소를 숭배한다는 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요란한 일은 아니야. 소들이 길거리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사람이 소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거나 그런 건 아니거든. 그런 광경을 본 적 있어. 식료품 가게 주인이 잠깐 한눈 파는 사이에 소 한 마리가 가게 안으로 고개를 쓱 집어넣어서 양파를 덥석 집어 가니까 주인이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말아서 소 주둥이를 냅다 후려치는 거야. 그러니까 소가 깜짝 놀라서 그 큰 눈을 꿈뻑거리며 뒤로 슬슬 물러나는데, 무안해하는 표정이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 인상적인 거야. 신성모독이 아니라 그냥 민망한 거였지.

 

 

 바닷가였어. 그 소를 본 동네가. 거기 소들은 그냥 큰 개 같았어. 집에서 키우는 개들이랑 똑같았거든. 아침에 주인이 문을 열어 주면 이집 저집 소들이 줄지어서 바닷가로 나가요. 거기서 하루 종일 이것저것 주워 먹다가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또 줄을 지어서 각자 자기 집을 찾아가는 거야.

 

 

 응? 개가? 개는 당연히 그러지. 그런데 소도 똑같이 그렇게 한다고. 바닷가에 가면 그늘에 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는 개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소도 그래. 똑같이 그러고 있어. 그러니까 크기에 상관없이 집에서 키우는 가축 취급을 받는 거지.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가축들보다는 훨씬 더 대접을 받는 게 분명하지만 말이야. 특히 공존이나 존중이라는 차원에서.

 

 

 뭘 존중하냐고? 뭐긴, 잠이지 잠. 동물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라에서는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일들이야. 절대로 잠자는 동물을 깨우지 않는다는 것!

 

 

 그런 식이었어. 어느 날은 번잡한 도로 한가운데에 커다란 소가 잠들어 있었지. 품종이 뭔지 모르겠는데 진짜로 커다랗게 생긴 소였어. 특히 머리가 아주 이만한 게, 머리 때문에 영물 취급을 받나 싶을 정도였다니까. 그런데 그 소가 잠들어 있는 데가 진짜 차들이 우글거리는 도로 한가운데였거든. 릭샤도 있고 오토바이도 있고 자전거도 있고 버스도 있고. 그런데 그 많은 차들이 전부 길 한쪽으로 돌아서 가는 거야. 소 한 마리 때문에. 경적도 거의 울리지 않더라고.

 

 

 알까 모르겠네. 그 나라 도로 본 적 있어? 엄청 시끄럽잖아. 그 여자 설명으로는, 차선도 없고 신호등도 없는 데가 더 많고, 도로체계가 딱 갖춰진 게 아니니까 운전자들이 각자 체계를 내면화해야 돼서 그런 거라나. 규칙이 잘 세워져 있는 나라에서는 그 규칙에 따라서 조용히 운전하다가 그걸 어긴 사람이 발견되면 그때만 빵빵거리는 거거든. 모두가 따르고 있는 규칙 안으로 들어오라고. 그래서 경적소리가 짜증으로 들리는 거고.

 

 

 그런데 아직 규칙 자체가 안 세워져 있는 나라에서는 그렇지가 않다는 거야. 하루 종일 빵빵거리고 있는 택시 기사들 얼굴을 보라는 거지. 그냥 무덤덤하거든. 경적이 짜증이 아니라는 거야. 그냥 ‘너 너무 가까이 왔어’ 하는 일상적인 신호인 거지.

 

 

 아무튼 그 나라 도로는 어딜 가나 그 모양이었거든. 시끄럽고 혼잡스럽고 위험해 보이고. 그런데 잠자는 소 앞에서는 안 그랬다니까. 그 광경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가 그 여자를 만났어. 길 건너편에서 한참이나 그 모습을 보고 있었거든. 그러다 카메라에 서로의 모습이 담기는 순간,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게 된 거야. 우리 둘 다 그렇게까지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었는데, 그 광경이 워낙 신기해서 그랬어. 뭔가 벽 하나를 허물어버릴 만큼 신기한 광경이었거든. 잠자는 소와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사람들.

 

 

 그건 단순히 숭배 같은 게 아니었어. 어쩌면 숭배보다 더한 무언가였을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겠어? 늘 가던 길이라는 거, 사람한테 그건 꽤 중요한 거잖아. 특히 도로 위에서는 더. 예정에 없던 무슨 일인가가 발생해서 늘 가던 길이 막히고 새로운 길을 찾아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건, 그런 수십만 명이 쓰는 길 위에서는 정말로 짜증나는 일이 아닐 수 없거든. 그런데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거야. 아무 충격도 발생하지 않는 거지. 덤덤하게 새로 생긴 우회로를 찾아갈 뿐이라는 말이야.

 

 

 그게 숭배 아니냐고? 숭배는 그렇지 않지. 숭배는 충격의 연속이잖아. 갑자기 뭔가가 발생하면 그 현상을 대단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숭배의 방식이라고. 그렇잖아. 별것 아닌 변화도 되도록 크게 떠벌이는 게 종교니까.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는 똑같은데 그 받아들이는 과정이 굉장히 충격적인 방식이라는 점에서, 이 나라 사람들이 잠자는 소를 대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는 거야. 그러니까 이건 숭배라기보다는 공존에 가깝지 않겠어? 사람들이 공존을 허락하는 이유를 찾다 보면 또 숭배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겠지만, 그 숭배하고 그 숭배하고는 좀 다른 숭배니까.

 

 

 몰라서 그렇지, 그런 큰 것들이 인간들의 문명과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하는 나라들이 좀 있어요. 코끼리들이 도로를 걸어 다니는 나라들도 꽤 있다니까. 서너 마리씩 줄지어서 길을 가고 있다가 저 뒤에서 버스나 트럭 같은 게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주인이나 조련사가 시키지 않아도 길옆으로 슬슬 피해서 걸어가고 막 그래. 고개 한 번 옆으로 돌리지 않고 말이야. 그러니까, 공존하는 존재의 물리적 크기가 인간들의 문명에 충격을 주지 않는다는 거지.

 

 

 바꿔 말하면 인간의 문명이란 그런 희한한 불순물들이 슥 들어와도 생각만큼 큰 충격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낼 수 있을 만큼 노련하고 성숙한 무언가라는 소리야. 볶음밥에 피망 몇 개 섞여 들어갔다고 밥상을 엎어버리는 애송이가 아니라는 거지.

 

 

 얼마나 거대한 것까지 받아낼 수 있냐고? 글쎄 아마 그 여자가 살던 나라만큼이 아닐까? 아까도 말했지 왜, 용이 지배하는 나라라고.

 

 

 

-<3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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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통각하』

 

 

 

고. 소. 용.

 

(고양이와 소와 용의 나라로부터)

 

 

<1회>

 

   

 

 사상이라고 부를 만한 건 별로 없었어, 그 여자는. 무슨 위대한 철학 같은 걸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그냥 공무원이었지. 게다가 좀 이상한 나라 공무원이었어. 뭐 다 조사해온 게 있으니까 끄집어내는 이야기일 거 아니야. 그 나라 어떤 나라였는지 몰라? 순전히 문서상으로만 그렇게 돼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 나라는 헌법상 분명히 용이 지배하는 나라였다고. 그러니 내가 뭘 배우고 말고 할 게 없었지. 적어도 사람들끼리 하는 정치에 관해서는 말이야. 그 여자 본인도 뭘 가르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어. 그냥 어쩌다보니 영향을 받게 되긴 했겠지. 안 그럴 수 있나. 그래도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었을 거야. 그다지 오래 간 사이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고 들어. 이건 그냥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야. 갑자기 무슨 고양이 이야기냐고? 무슨 고양이냐면, 비 맞은 고양이야. 어제 내가 요 앞 골목길에서 비에 흠뻑 젖은 고양이 한 마리를 봤거든. 뭔가를 찾아서 두리번거리고 있다가 내 발소리가 나니까 갑자기 어디론가 휙 사라져버리더라고. 그렇게 도망치는 모습을 보니까 그 생각이 났어.

 

 

 한 20년쯤 됐나. 고양이들이 대접받는 나라에 간 적이 있었거든. 아, 물론 그때는 혼자였지. 거기는 말이야, 아마 지금도 그럴 거야. 2천 년 넘게 쭉 고양이가 대접받는 나라였을 거라고. 바스텟이라고, 사람 몸에 고양이 머리를 한 이집트 여신이 있어요. 그 많은 신들 중에서도 꽤 사랑받던 신이었거든. 그 시절 그 동네에서는 고양이가 수호신이었어. 뱀이나 쥐 같은 것들로부터 창고를 지켜주곤 했으니까. 물론 사자같이 폼 나는 맹수도 있었지만, 사람들이랑 같이 어울려 살면서 진짜로 사람들의 삶을 지켜주는 건 사자가 아니었거든. 고양이였지. 야생의 풍모를 간직한 고양이들.

 

 

 그런 거 본 적 있어? 사람이 나타나도 길을 비키지 않고 당당하게 가던 길을 걸어가는 고양이들. 차가 와도 마찬가지야. 물론 도로에서는 그러지 않지. 하지만 적어도 골목길 같은 데서는 절대 길을 비켜주거나 머뭇거리는 법이 없어. 놀라서 후다닥 모습을 감추는 일 같은 건 상상도 못하지. 그냥 ‘이 길이 내 길이다’ 하는 식이야. 아마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겠지. 이 길이 내 길이다. 이 도시가 내 도시다. 그러고는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냥냥거리는 거야. 이 집이 내 집이니 밥을 내놓거라. 원하는 걸 얻지 못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았어. 쫓겨나는 일도 없었고 말이야.


 

 

 그런 고양이들 중의 한 마리가 길 한가운데에 잠들어 있는 광경을 본 적이 있었어. 그 동네에서 볼 수 있는 다른 모든 고양이들처럼 우아하고 품위 있고 고상한 자태였지. 물론 지저분하다는 생각 같은 건 전혀 들지 않았어. 누군가 부지런히 씻겨주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아마 동네 사람들 전부가 시간 날 때마다 보살펴주는 거겠지. 일부러 시간을 내서 보살펴주는 건지도 몰라.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넘어서 숭배받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으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배려해 주지 않으면 인간들이 만든 수천 년 된 도시 한가운데에서 고양이가 야생의 품위를 그대로 간직한다는 게 가능했을 리가 없지. 안 그렇겠어? 고양이를 해충으로 취급하는 나라에서는 지저분하게 비에 젖은 고양이가 사람을 피해 어디론가 후다닥 달려가다가 그만 어딘가에서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허둥지둥 벽 긁는 소리를 듣게 되기가 일쑤거든. 품위라는 걸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지.

 

 

 그런데 그 동네 고양이는 달랐어. 고양이뿐만 아니라 고양이가 꾸는 꿈마저도 애지중지 보호받는다는 느낌이었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고양이를 피해서 길옆으로 돌아가는 광경이란! 그런 거 본 적 있어? 혹시나 고양이가 잠에서 깨기라도 할까봐 발소리마저도 조심조심 신경 써 주는 모습을 말이야. 어른들만 그러는 것도 아니었어. 천방지축으로 온 동네를 뛰어다니던 꼬맹이들도 그 앞에만 가면 발소리를 죽였다니까. 왜냐고? 고양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라였으니까.

 


 그래, 그건 정말 마법 같은 순간이었어. 시간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흐르기 시작하는 지점이었지.
이상하다고? 직접 못 겪어봐서 그래. 그리고 그게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
야. 생각보다는 보편적인 현상이지. 뭐 그런 데도 있어. 좀 더 유명한 동네가 있지. 소를 숭배하는 나라 말이야.

 

 

 

-<2회>에서 계속-

 

 

 

배명훈 [총통각하] 연재를 사랑해주시는 독자분들께 안내드립니다.

현재 예스블로그 연재분에 대해 스크랩 이벤트를 진행중입니다.

대부분의 독자분들께서는 퍼가기 이벤트로 연재를 홍보해주셔서 많은 도움을 주시지만

일부, 정말 일부 몇몇 분들은 연재된 내용을 불펌으로 출처없이 사용하고 계셔서

부득이하게 이번 회부터는 스크랩을 허용하지 않음을 널리 이해 부탁드립니다. 

단편소설인지라 불펌으로 돌아다니는 작품이 치명적일 수 있음에 이렇게 부탁드리오니

다시 한 번 널리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꾸벅)

 

기존 스크랩 이벤트에 응모하셨던 분들께 감사 말씀드리며

여전히 이벤트 응모에 유효하다고 말씀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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