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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단 모집]『중국 공산당 100년의 변천』 | 새소식 2021-07-1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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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 100년의 변천

이희옥,백승욱 편
책과함께 | 2021년 06월

 

 

신청 기간 : 7월13일 까지

모집 인원 : 10명 

발표 : 7월 14일

신청 방법 : 댓글로 신청해주세요!

신청 전 도서를 받아 보실  기본주소를 꼭 확인해주세요.

 


 

혁명과 건설, 발전의 시대를 지나 ‘신시대’로
다양한 관점과 맥락으로 들여다본 중국공산당 100년사

2021년, 중국공산당은 창당 100년을 맞이했다. 중국공산당은 당과 홍군이 국가와 군대를 만들고 운영한 특이한 경험을 가지고 탈냉전 속에서 소련과 동유럽이 몰락했음에도 살아남아 집권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향후 중국의 지속적인 부상과 미국 패권의 상대적 하락에 따라 국제질서의 판도가 흔들릴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공산당의 성취를 평가하면서 축제와 선전의 열기가 고조되었다. 특히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사회주의 정체성의 정치’를 강조하는 한편 ‘중국특색’이라는 교조를 주입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의 역사는 비단 일국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세계와 동아시아 지역 그리고 한반도에도 각기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즉,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국가의 의미, 세계 자본주의에 깊게 포섭된 중국의 미래, 중국 사회주의체제의 원심력과 구심력, 한반도 분단체제와 평화체제에 대한 중국의 역할 등 다양한 토론의 주제가 공론장에서 대기하고 있다.
이 책은 중국공산당 100년의 역사를 비판적이고 주체적 시각에서 검토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각 분야에서 관련 연구 성과를 쌓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온 한국의 중국 연구자들이 참여했고, 여러 차례의 공동논의 속에서 하나의 체계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같은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을 바라보는 국내 연구자들의 다양한 관점과 견해가 있고, 필자들 사이의 상충되거나 논쟁이 될 수 있는 입장들을 하나의 관점으로 무리하게 통일시키려 하지 않았다. 중국을 보는 서로 다른 시각이 열린 토론을 가능하게 하고, 더 풍부한 논의를 이끌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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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는 왜 그토록 다양할까? 《굿 이너프》의 머리말을 읽고 든 생각들 | 기본 카테고리 2021-07-11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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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굿 이너프

다니엘 S. 밀로 저/이충호 역
다산사이언스 | 2021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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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이너프 (Good Enough)

: 평범한 종을 위한 진화론

다니엘 S. 밀로 (Daniel S. Milo) 지음 | 이충호 옮김 | [다산사이언스]

 

이 세계는 왜 그토록 다양할까?

굿 이너프의 머리말을 읽고 든 생각들

 

 

나는 머리말이 긴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 머리말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가 지쳐서 본문을 읽을 때 이미 흥미를 잃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범한 종을 위한 진화론이란 부제를 달고 출간된 굿 이너프는 처음부터 나의 흥미를 끌었다. 특히 저자가 이어지는 페이지에서 나는 다윈주의와 신다윈주의가 신자유주의와 공통점이 많음을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15)라는 부분에서 단번에 낚였다. 본래 리뷰란 책을 다 읽고 쓰는 글이니까, ‘머리말만 읽고 쓰는 이 글은 프리뷰내지는 본격적으로 읽기 위한 워밍업 단계의 글쓰기라고 할 수 있겠다.

 

머리말을 읽으면서 다소 혼란스러웠던 점은 자연 선택개념을 비판적으로 보는 듯한 저자의 태도였다. 최근에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자연사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 여기에서 알게 된 신다윈주의적 해석과 더불어 이 책을 좀 더 읽어보면서 분명해지는 것은 저자가 자연 선택개념 자체를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선택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양상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저자는 진화를 설명하는 메커니즘에는 적응적 메커니즘인 자연 선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비적응적 메커니즘이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저자가 언급하는 비적응적 변화 메커니즘에는 유전적 부동’, ‘지리적 격리’, ‘창시자 효과를 들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본문에서 살펴볼 예정이다. 중요한 것은 자연 선택개념이 적응을 통한 적자의 선택이라면, 비적응적 변화 메커니즘의 중심 원리는 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실제 이야기에 미천한 개체들도 살아남아 번식한다”(19)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저자의 목적 내지는 의도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는 종 내 다양화를 설명하는 것’(26)이 책의 목적이라고 밝힌다. 그러고보니 진화를 이야기하는 많은 책들이 진화의 메커니즘을 보편적으로 설명해낸 다윈과 월리스의 공으로 자연 선택을 들면서도, 어느 종 내에 있는 개체들의 다양성에 대해서 주목한 책이 있던가 싶다. 그러므로 저자는 자연 선택으로 설명되기 힘든 개체의 다양성에 주목해보겠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학창 시절에 한 반 내에 있는 학생들의 키가 상당히 다양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여기에 누가 생존에 유리한 적자’(the fit)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스티븐 제이 굴드는 판다의 엄지에서 발끈하듯 이렇게 말한 대목이 나온다. “우리는 (나처럼 키가 작은 사람들은) 높은 지능이 키가 큰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판다의 엄지, 212)고 말이다. 굿 이너프의 저자 다니엘 밀로 역시 이 현상(개체 내 다양성)자연 선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밀로에 따르면 개체의 크기 차이는 적응적인 것이 아니다. 그 역시 자연 선택과 적응을 실재하는 원리로 인정하지만, “개체에서 나타나는 변이는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관용을 통해 허용되는 것”(47)이라고 정리한다. 이를 위해 저자가 주목하는 개념이 바로 과잉중성’, ‘평범성이다. 이 개념들에 대해서는 역시 본문을 좀 더 읽어가면서 정리해야 할 듯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연에서 선택되지 않고 남겨지는 존재들에 대해 관용지대가 있으며, 여기에 다양한 존재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굿 이너프이론의 핵심이라고 이해한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판다의 엄지13장에서 뇌의 크기와 지능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을 언급한다. 19세기 중반 유럽 사회에 출몰한 이 망령은 머리 큰 사람이 높은 지능을 갖는다는 추정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활동으로 이어졌다. 당대의 지식인들이 뇌의 크기에 주목하여 그 크기를 비교해보았던 것이다. 지금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지만, 수십 년에 걸쳐 유명 인사의 뇌 무게를 측정한 자료를 보고 나서야 개체 사이의 차이와 지능과의 관계가 모호하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보다 자극적인 자료를 언급하면, 1883년에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의 시신이 해부되어 그의 뇌가 측정되었는데, 뇌의 무게가 2,000그램으로 나왔다. 반면 1924년에 해부된 아나톨 프랑스의 시신에서 나온 뇌의 무게는 1,017그램이었다. 그 사이에 월트 휘트먼의 뇌 무게는 1,282그램이었다. 우리는 투르게네프의 지능이 아나톨 프랑스의 지능보다 2배 높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질문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지만, 내가 볼 때 이 사례는 다니엘 밀로가 비판하는 자연 선택혹은 적응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이 개념이 탁월함이란 개념으로 불행하게 연결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밀로는 이 사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며, ‘굿 이너프이론 혹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며 개체 간 차이를 설명하는 진화론에 주목한다.

 

다니엘 밀로는 다윈이 1859년에 종의 기원을 발표한 이후, ‘변화를 동반한 계승이라는 개념은 큰 문제없이 받아들여졌으나, ‘자연 선택개념은 거센 반발에 부닥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굴드는 다윈 이후에서 자연 선택 이론이 1940년대에 와서야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고 했다. 아마도 이 개념은 물리학의 여러 법칙처럼 예외 없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예외 사례, 혹은 다르게 설명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밀로에 따르면 내생공생설혹은 세포 내 공생설’(endosymbiosis) 개념을 처음 주장하고 도입했던 린 마굴리스 역시 자연 선택 개념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마굴리스는 자신을 변화를 동반한 대물림의 지지자인 동시에 그것의 주요 행위자로 일컬어지는 자연 선택의 적’(43)이라고 정의했다. 이쯤 되면 자연 선택개념에 어떤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을까 자문하게 된다.

 

저자가 우려하고 비판하는 지점은 자연 선택 개념에 대한 집착이 지나치게 되면 우리의 삶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데 있다. 곧 적응을 통한 생존, 완벽한 종, 최적화된 종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자본주의적, 경쟁적, 비용-편익적 해석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왜곡된 다윈주의가 이미 우생학과 같은 분야에 적용되었다는 점이다. 나아가 과학적 방법이라는 명분 아래 조직적으로 제기된 인종 및 성차별적 주장들을 떠올릴 수 있고, 우리는 인간우월주의적, 인간중심적인 시각이 굳어지도록 한 영향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도 알고 있다. 또 다른 예로 동물에 대한 데카르트의 기계론적인 관점(동물은 영혼이 없고, 그저 자동으로 움직이는 기계라는 관점)이 다양한 맥락으로 확대되고 왜곡되어 어떻게 인간중심적인 동물관을 낳게 되었는지 떠올려보아도 좋을 것이다.

 

오늘은 본문을 읽고 리뷰를 작성하기 전에 느낀 것들 위주로 정리해보았다. 오래간만에 흥미로운 머리말을 읽었다. 저자가 던지는 새로운 시각과 문제의식을 만날 때마다 멈춰서 내가 이해하고 있던 개념들을 다시 떠올려 보기도하고, 저자의 의도를 파악해보고자 했다. 저자의 접근 방식을 이렇게 역사가의 서술 방식에 비유해서 이해해보면 어떨까. 말하자면 저자가 이 책에서 접근하는 방식은 역사의 주체를 누구로 볼 것인가의 문제에서 토마스 칼라일이 영웅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방식에 대해, 하워드 진이 민중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고자 한 접근방식과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진화 메커니즘에는 목적이 없다고 말한다. 우연히 생존한 개체들(혹은 적자)이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아마도 밀로의 관점에서 현대 사회가 자연 선택을 통해 적응한 개체들은 일종의 영웅중심 서술에 치우친 결과에 비견되지 않을까 싶다. 그에 반해 저자는 자연을 구성하는 수많은 보통의 존재들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보는 셈이다. 이들은 결코 완전하거나 최적화된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그 자체로 충분한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고 자연의 수많은 개체의 종내 다양성을 갖는 이유에 대해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진다. 머리말만 읽고도 단번에 저자의 팬이 되어버렸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머리말을 읽고 나름대로 이해한 사항을 정리하면서 워밍업을 끝내야겠다. 이제 본문을 읽을 준비가 된 것 같다. 본문에 대한 리뷰는 다음 기회에.

 

 

 

[덧붙이는 말]

[1] 저자가 머리말에서 언급한 세 대륙에서 다섯 인종 집단을 대상으로...”(30)라는 대목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저자가 왜 다섯 인종이라고 표현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구상에 인종은 하나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생물학적으로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은 하나다. 우리가 흑인, 백인, 황인 등으로 구분하는 인종개념은 정확히 말하면 틀렸다고 지적할 수 있다. 스티븐 제이 굴드가 이 문제를 자신의 에세이에서 여러 번 지적하는데, 그에 따르면 종(species)이란 종은 생물 다양성의 기본 단위로, 자연 상태에서는 서로 교잡하지 않고 영구적으로 격리된 개체군들이다.”(플라밍고의 미소, 216)라고 언급한다. 반면 우리가 이야기하는 인종사이에 자녀를 낳을 수 있으므로, 이 각각의 인종은 다른 종이 아니다. 굴드에 따르면 오히려 이 인종은 지리에 따른 변이를 나타내는 아종’(subspecies)라고 이해해야할 것 같다. 물론 굴드는 이 아종 개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데, 결국 우리가 언급하는 인종개념은 아종에 가깝고, 결국은 편의상의 분류라는 점이다. 저자는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인종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 역시 서양인들이 타 민족에 대해 품어온 오랜 우월주의적 시각의 잔재라고 이해한다. 특히나 생물학의 맥락에서 언급하는 저자의 경우, 인종이라는 용어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인종이라는 용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2] 본문에 나오는 그림의 설명이나 캡션의 텍스트 크기가 너무 작아서 읽기 고통스럽다는 점이 이 책에서 발견한 단점이다. 아마 이 책을 편집하신 분은 독수리 시력 3.020-30대 편집자가 아닐까 싶다. 몇 년 전까지 나도 작은 글자를 읽는데 큰 문제없었지만, 최근에 갑자기 작은 글씨를 읽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림에 제시된 설명을 읽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다. 특히 본문 텍스트와 그림의 텍스트의 폰트 크기에 균형을 맞춰 주셨으면 좋겠다. 반면 미주이 폰트 크기는 더 작아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책 읽듯이 읽는 부분이 아니니까.

 

[3] 계속해서 스티븐 제이 굴드를 언급하는 점을 양해부탁드린다. 현재 굴드의 책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새로운 독서 활동이란 끊임없이 이미 읽은 책을 떠올리고, 비교하면서 상호작용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지금은 밀로의 책을 굴드와 많이 견주어가며 읽고 있지만, 훗날 다시 이 책을 읽게 되면, 또 다른 맥락에서 이해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다니엘 밀로의 글쓰기 전략이나 시각이 굴드의 시각과도 닮은 부분이 보이는 지점이다. 실제로 저자는 본문에서 다윈의 책을 제외하고는 굴드의 책을 다수 언급한다. 또 아직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저자가 리처드 도킨스를 비판적으로 언급하는 대목이 나오는 데, 이런 관점은 도킨스의 저서를 비판적으로 읽는 활동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킴 스티렐리는 자신의 책 유전자와 생명의 역사에서(원제가 Dawkins vs. Gould: Survival of the fittest .) 도킨스와 굴드의 논쟁을 비교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도킨스의 영향력이 상당한 반면, 안타깝지만 굴드가 빨리 사망해서 그런지 보다 주목을 덜 받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다니엘 밀로의 굿 이너프는 굴드 이후 도킨스와 대척점에서 그의 서적을 비판적으로 읽는데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머리말 발췌문]

[1] "나는 다윈주의와 신다윈주의가 신자유주의와 공통점이 많음을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 (16)

 

[2] "실제 진화 이야기에는 미천한 개체들도 사아남아 번식한다." (19)

 

[3] "이 책에 실린 주장 중 어느 것도 확고하게 입증된 자연 법칙인 변화를 동반한 대물림이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어느 주장도 자연 선택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으며, 단지 자연 선택이 널리 보편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부정할 뿐이다." (36)

 

[4] "나의 불경한 성배는 진화생물학이 등한시하고 진화윤리학이 경멸하는 특징인 과잉과 중성과 평범성의 기원이다. 나는 다윈주의의 편향을 뒤집어 탁월성 추구를 자명한 원동력이 아니라 문제점으로 바라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40)

 

[5] "자연 선택은 실재하고 적응도 실재한다. 하지만 개체들을 서로 구별하는 속성들, 특히 크기 차이는 적응적인 것이 아니다. 이러한 변이들은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관용을 통해 허용되는 것이다." (47)

 

[6] "탁월성에 크게 집착하며 살아가는 나는 그것을 추구하는 노력의 무용성과 마조히즘적 성격을 잘 안다. 비록 자본주의 제도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자연은 사실 생존과 생식 외에는 아무 보상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최적 상태보다 훨씬 못하더라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안전망이 생존과 생식을 보장해준다."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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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에서 다시 발견한 책 -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 | 기본 카테고리 2021-07-04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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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

김명호 지음 | [돌베개]

 

책꽂이에서 다시 발견한 책 -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

 

조선 후기를 무대로 등장하는 북학파와 관련해서 정리해본다. 북학파의 거두라고 불리는 연암 박지원 선생이 남긴 유명한 열하일기(김혈조 옮김, 돌베개, 2017, 개정신판) 외에 연암의 면모를 보다 심도 있게 파악할 수 있다고 알려진 문집이 바로 연암집(신호열, 김명호 옮김, 돌베개, 2007)이다. 그리고 이 연암집 번역에 참여했던 김명호 교수가 북학파에 속하는 홍대용의 북경기행의 면모를 보다 면밀히 연구하여 펴낸 책이 오늘 소개할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김명호 지음, 돌베개, 2020). 공교롭게도 모두 돌베개 출판사의 작업물이다. 이렇게 한 분야에 대해서도 꾸준히 책을 번역하고, 책을 내는 사명을 지닌 출판사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무엇보다 나는 열하일기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한국사에 대한 무지를 탈피할 실마리를 이 주제/분야에서 얻었다. 블로그와 서재에서 사용하는 내 닉네임 초란공역시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정진사라는 인물의 별명이다. 연암 선생은 청나라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러 떠나는 북경행 사신 행렬을 따라가는데, 여기에 새로운 문물의 이면을 보지 못하고 마음을 닫은 채 음식은 볶음계란만 찾던 정진사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연암은 정진사에게 볶을초’()자를 사용한 초란공(炒卵公)’이라는 별명을 지어준다. 정확하게 어떻게 하는 요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부추와 같은 채소를 넣은 계란 스크램블같은 간단한 요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튼 초란공은 연암 선생이 열하일기에서 희화화한 인물이면서도, 나에겐 세상에 대해 보다 호기심을 갖고 나를 세상에 던져 넣어 보라고 주문하는 반면교사인 셈이다.

 

이렇게 열하일기를 읽은 경험이 연암 선생과 북학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이덕무와 박제가, 그리고 홍대용이란 인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물론 아직 제대로 읽은 저작은 거의 없다. 앞서 언급한 3권짜리 연암집860페이지(본문550여 페이지 + 주석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을 소장하고 있지만, 아직 읽어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뭐 언젠간 읽겠지상태). 열하일기를 읽을 때, 특히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연암 선생이 북경에서 청나라 문인/학자들과 글을 써서 대화를 나눈 필담장면이다. 이 필담은 연암 일행이 청나라 강희제의 여름 별장(이 시골에 있는 황제의 별장은 세계 최대 수준이다. 역시 중국의 스케일은 남다르다.)이 있는 열하(현 지명은 승덕)에서도 이어진다.

 

열하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필담에는 엄성, 반정균, 육비라는 청나라 선비의 이름도 등장한다. 이 책은 연암 선생이 연행을 다녀온 1780년 이후 3년 간 메모해둔 종이 뭉치와 고증작업 등을 거쳐 탄생한 책이다. 홍대용은 연암이 처음 청나라 땅을 밟기 15년 전인, 1765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반년 간 이미 중국의 문물을 보고 새로운 체험을 하고 돌아온 상태였다. 이 때 홍대용이 과감하게접근하여 대화의 물꼬를 텄던 청나라의 학자가 바로 위에 언급한 세 사람이었다. 이들의 인연은 이후에도 계속된 이어져 연암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나이는 연암이 위였지만, 홍대용은 정말 혈기왕성할 시기에 청나라를 경험했던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에 출간된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은 바로 홍대용과 청나라의 세 선비가 만남에서부터 서신으로 교류를 지속하고, 나아가 대를 이어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졌던 양국 지식인의 국제 교류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그동안 이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가 다시 꺼내들게 된 것은, 우선 이 책의 가치에 비해 주목을 많이 받고 있지 못한 것 같아 나의 생각을 기록해두고 또 소개를 하고 싶어서였다. 또 결정적으로 마침 계간지 창작과비평 191(2021년 봄)에 울산대 노경희 교수가 기고한 서평에서 다시 이 책과 만났기 때문이다. 세심한읽기와 대담한해석 이라는 제목의 서평에서, 노경희는 조선 후기 조선과 중국 지식인의 교류사에 대한 연구 결과물의 의의와 맥락을 개인적인 경험과 더불어 짚어주었다.

 

사실 열하일기에서 묘사되는 필담 에피소드에서 상황을 관통하며 대화 사이에 흐르는 뭔지 모를 긴장감은 당시 청나라에서 시행했던 문자옥때문이었다. 이 문자옥은 청나라에서 공식적으로 한족과 관련된 어떤 말이라도 했을 때, 당사자 본인을 포함하여 일가친적 9족을 멸하는 징벌이 따랐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티벳 불교를 받아들이고 타민족에게 포용력있는 모습으로 비춰진 청나라의 이면에는 한족 지식인들에 대한 억압/탄압 정책이 함께 적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에서 간 선비들이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비난하면서, 한족 지식인들을 만나 자꾸 이들로 하여금 한족의 역사나 정신과 관련한 문제를 묻고 대답을 요구하는 상황(특히나 증거나 남는 필담 과정에서)은 한족 선비들에게는 목숨을 건 아찔한 상황 속에서 몰래 나누는 대화였던 셈이다. 그러므로 서평에서 저자도 지적했듯이 청나라에 간 조선사신이 한족 선비와 만나 대화하는 일 자체가 단순한 교류를 넘어서는 역사적 사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노경희의 서평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저자가 일본에 유학하던 시절에 교토대 후마 스스무 교수와의 개인적인 인연과 이 책이 놓여 있는 맥락을 짚어준 점이다. 그는 후마 스스무 교수의 연구를 이렇게 평한다. “한국 학계에서는 그(후마 스스무 교수)의 풍부한 자료 활용 능력과 근거를 중시하는 엄격한 학문 태도를 인정하면서도, 18세기 조선 학계가 보이는 복잡다단한 현상의 이면보다 남겨진 기록에만 집중하는 모습에 당혹감을 느꼈다.”(454) 곧 저자에 따르면 후마 스스무 교수가 바라본 조선 후기는 주자학만 신봉하는 단선적이고 평면적인’(454) 조선이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노경희는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에서 저자 김명호가 양국 지식인 교류의 모습을 홍대용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보다 다면적이고 역동적인 국면으로 과감하게해석한 점을 지적한다. 당시 조선의 지성계에 존명배청사상이 강력하게 지배하던 상황이었지만, 저자는 홍대용이 청나라에 다녀온 이후, 특히 엄성, 반정균, 육비로 지칭되는 청나라 지식인들과의 교류로 이 존명배청사상이 흔들리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하자면, 당시 조선 지식인의 입장에서 중화란 명나라의 계보를 잇는 강남 한족의 역사와 문화에만 해당할 뿐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문물을 보고 돌아온 여행 이후 홍대용의 입장에서는, 중화가 조선도 될 수 있으며, 같은 논리로 청나라 또한 중화가 될 수 있다는 논리로도 이어졌다는 것이다(창작과비평, 455). 그러므로 저자 김명호는 조선 지식인들의 세계관에서 존명의식에 균열을 겪고, ‘존명의식과 북학사상 사이의 모순사이에서 고민하고 자신의 논리를 찾아갔던 이로 홍대용을 호명하고 있다(창작과비평, 455).

 

끝으로 서평에서 노경희는 김명호가 책에서 지적하는 후속 과제에 주목한다. 귀국 이후 항주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통해 홍대용의 후반기 사상이 어떻게 변모해가는가’(창작과비평, 456)라는 문제다. 이 부분은 저자 김명호와 후학들의 연구 활동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되길 바란다. 나를 비롯한 일반 독자들에게도 궁금해지는 지점일 것이다. 노경희는 국내 학계에 대해 다소 아쉬운 상황(보다 자주적인 해석이 필요하다는 견해)과 이 책의 의의를 정리했다. 현재 우리 역사 연구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의 학자들이 자신들의 배경과 관심사, 세계관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인정받는 상황에서,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는 일본 및 중국의 학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우리 나름의 준거를 마련해주었다고 평가한다. 서평자가 이 책에 대해 짚어주는 의의를 들으니 이 책의 가치가 새롭게 보였다.

 

노경희는 저자 김명희가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에서 시도한 해석을 대담하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사실 학자의 일이란 다른 학자들의 주장 혹은 견해에 공감하고 동의하는 일을 훨씬 넘어선다. 저자처럼 후마 교수의 연구를 인정할만한 점과 비판할만한 점을 지적하면서도, 다양한 차원에서 주제에 접근하여 우리 나름의 시각을 마련하는 일은 당연히필요하고, 또 요구되는 일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노경희 교수의 서평을 통해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의 이해를 위한 실마리 내지는 책을 읽으며 지닐 만한 화두를 얻은 셈이다. 이 책이 지니는 의의에 대해 공감을 하게 되니, 앞으로 애착을 갖고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

김명호 저
돌베개 | 2020년 10월

열하일기 세트

박지원 저/김혈조 역
돌베개 | 2017년 11월

연암집 전3권 세트

박지원 저/신호열,김명호 역
돌베개 | 2007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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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 위 공부? - 인문학 공부를 위한 세미나 지침 《세미나책》 | 기본 카테고리 2021-06-2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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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미나책

정승연 저
봄날의박씨 | 202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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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책

정승연 지음 | [봄날의박씨]

 

 

쉘 위 공부? - 인문학 공부를 위한 세미나 지침

 

필사’, ‘발제란 표현을 알게 된지 몇 년이 되지 않았다. 독서모임이나 세미나 모임에 참여도 해보고 나서야 나는 이 용어를 접하게 된 셈인데,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세미나책을 읽기 직전까지도 발제의 개념을 제대로 몰랐다. 1년에 3-4권 정도 읽으면 이미 포만감을 느꼈을 정도로 책읽기를 힘들어 했던 내가 책 읽기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공부를 위한 책읽기는 혼자 못할 이유도 없지만 세미나를 통한 공부는 네트워크가 함께하는 공부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미나는 외부를 이어주어, 지금까지의 나를 벗어나게 해주는 접속구이기도 하다.

 

책 읽기에 보다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방법론적인 책을 여러 권 본 기억이 있다. 원래 매뉴얼 같은 안내서를 가까이하지 않았지만, ‘1만권 읽기와 같은 제목을 단 책들의 저자는 과연 책을 어떻게 읽는지 궁금했었다. 속독과 다독의 비결을 알려주는 책을 여러 권 읽어보았지만, 대부분의 책에서 소개해주는 책읽기의 방법론은 인문학 공부에 크게 도움이 안 되는 독서법이었다. 어느 자기계발서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며 이 방법은 인문학 서적에는 적절하지 않습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이 경우는 저자가 솔직한 경우였다. 내가 관심 있는 인문학 공부의 책읽기, 공부하기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책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책들을 몇 권 읽고 내린 결론은 내 관심사를 파악해서 내 속도대로 읽어나가자는 것이었다.

 

세미나책은 나의 경험에 비추어 크게 기대하고 읽어 나가지는 않았지만, 의외로 저자의 인문학 세미나 경험과 공부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를 많이 던져주어서 만족스러웠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해서야 비로소 처음 인문학 공부를 시도했다. 이 때 처음 경험해보았던 것이 세미나식 공부였다. 다만 나를 괴롭혔던 것은 다소 기계적인 측면이 있는 내용 요약하기가 아니라 발제문 만들기였다.

 

내가 관심있게 읽은 부분을 중심으로 간단히 정리해보자. 저자에 따르면, 발제란 질문을 던질만한 문제를 찾는 일’(140)이다. 따라서 발제자는 세미나에서 고민할 문제를 만들어오되, 형식적으로는 이 문제를 만들기까지 고민했던 전후 맥락을 기록’(141)한다. 이것이 발제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과연 발제문이 무엇인가하는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이전에 내가 만들어간 발제문은 마감에 급급하여 끄적거린 요약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정작 중요한 질문을 곁가지취급을 했고, 이 질문은 내용 이해를 위한 요약과도 따로 놀았던 셈이다. 물론 그런 점에서 과거에 우왕좌왕하며 고민하던 경험이 전혀 쓸모없지는 않았다는데 위안을 삼는다.

 

발제와 발제문 만들기는 이 책에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었고, 나 스스로 발제란 무엇인지 납득할 수 있었다. 저자 역시 지속적으로 참가하는 세미나 공부를 통해 이 부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정리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밖에 이 책은 세미나 구성과 읽기, 발제문과 에세이 쓰기, 말하기와 같은 공부의 뼈대가 되는 방법론을 이야기하되, 다른 방법론 책과 달리 인문학 공부란 무언인가라는 저자의 공부론을 접할 수 있어서, 이 부분이 좋았다. 이를테면 인문학 공부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의식적 차원의 공부’(6)이며, 그런 의미에서 세미나/공부란 말로 바뀐 내 지식과 정서를 타자와 만나게 하는 장소’(161)이면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발굴해 내는 작업’(202)이라는 견해에 공감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의 공부는 어떠해야 할까 생각해본다. 저자가 학창시절 참여했던 운동권 공부얻은 지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공부였다면, 이 책의 (인문학) 공부는 나를 바꾸는 공부가 되어야 한다는 언급도 인상 깊다. 저자는 공부의 주제로 삼을 만한 것이 마음이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87)이라고 말한다. 어떤 책을 읽을 때 납득이 가지 않거나 생경하게 다가올 때, 바로 이 지점에서 이 문제를 파고들어야 내 삶에 무언가를 남길 수 있다고 전한다. 그러므로 내가 품고 있던 문제, 내가 결핍감을 느끼는 지점, 나의 욕망이 무엇인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문일 테다. ‘나의 공부역시 이 지점을 향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고미숙 작가의 어느 글에서 공부’(工夫)는 중국 무술 쿵후’(功夫)와 발음이 같다는 언급을 읽은 기억이 난다. ‘쿵후는 공부의 ’()에 힘쓰기()가 더 들어간 셈이니, 몸을 중심으로 익히는 공부라고 볼 수 있겠다. 마찬가지로 선인들의 공부(工夫)는 단순히 지식을 머리에 넣는 행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익히고 숙달하는 과정을 전제한다. 말하자면 몸과 머리에 역사를 담고 쌓아가는 개념이라고 볼 수도 있다. 들어온 지식이 내 안에서 겉돌지 않고, 나의 삶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어야 공부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부는 인문학 열풍의 정체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공부라고 진단한다. 이를 나의 말로 표현하자면, ‘인문학 열풍의 원인은 지식이 스펙 쌓기처럼 물신화되어 버린데 있다고 생각한다. 요즈음 뉴스를 보면 경제력뿐만 아니라 지식을 가진 이가 경쟁력을 가진 존재가 되고, 이것이 하나의 권력이 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공부’(工夫)란 무엇인가를 묻는 일은 의미심장하다. 나의 공부가 어떠해야하는지를 묻는 일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스스로에게 묻고 점검해야할 물음이 되어야 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미나책은 세미나를 통한 인문학 공부의 지침을 알려주는 것뿐 아니라, ‘공부란 무언인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해준 책이다. 이 책은 많은 책을 읽기 위한 테크닉과 같은 일방적이고 기능주의적인 시각에 충분히 보완이 될 만한 견해와 시각을 담고 있다. 이제 내 삶을 들여다보고 나를 바꾸는 공부를 할 때다. 쉘 위 공부?

 

 

[책 속으로]

[1] “(인문학 공부는) 좀 더 의식적인 차원의 공부입니다.” (6)

 

인문학 공부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다른 관점의 획득입니다. (...) 그것은 곧 자기 갱신이기도 합니다.” (20)

 

“(인문학 공부를 통해) 그 과정을 반복하는 사이에 바뀌는 것은 나의 일상이고, 일상이 바뀌면 욕망’, 그러니까 원하는 게 바뀝니다.” (23)

 

[2] “‘마음이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피해서는 안 되는 공부의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파고들어야 내 삶에 무언가 남길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87)

 

[3] “발제문은 무엇일까요? 그 시간에 고민한 문제와 발제자가 그 문제를 만들기까지 고민했던 전후 맥락을 기록한 글입니다.” (141)

 

세미나에 있어서 발제문은 읽기말하기사이에서 그 둘을 이어 주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 내가 정말 문제라고 생각하는 바에 대해서도 납득 가능한 설명을 붙여 주어야 합니다.” (142)

 

[4] “세미나는 말로 바뀐 내 지식과 정서를 타자와 만나게 하는 장소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내 말의 한계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한계를 봅니다. 그리고 잘만 한다면 내 존재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언가로 변환시킬 수도 있습니다.” (161)

 

[5] “텍스트에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들이 잠재되어 있는데, ‘읽기, ‘세미나, ‘공부란 바로 그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들을 발굴해 내는 작업인 것입니다.” (202)

 

[6] “공부는 내 인생과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나 자신과 함께 공진화해 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매번 새롭게 주사위를 던져 보는 것뿐입니다.” (205)

 

[7] “‘공부로 인생역전한다는 건 공부를 발판 삼아 출세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인생의 성질을 바꾸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어떻습니까? 공부, 하고 싶지 않으신가요?”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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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당신은 이 삶의 여행자인가? 아니면 방랑자인가? | 기본 카테고리 2021-06-2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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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헤르만 헤세 저/안인희 역
창비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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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Baume)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지음 | 안인희 옮김 | [창비]

 

 

당신은 이 삶의 여행자인가? 아니면 방랑자인가?’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유리알 유희의 작가 헤르만 헤세가 자연에 대해 쓴 산문과 시를 엮은 책이다. 자연에 대한 명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주 대상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나무들이다. 손주를 둔 할아버지 헤세가 말년에 쓴 글들이 많은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실린 글에는 고향과 그리움에 대한 기억이 자주 소환된다. 이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대상이 바로 나무다.

 

노년의 헤세에게 나무는 어떤 존재였을까? 그에게 나무는 우선 그 자체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자연의 무구함을 내세우는 존재’(36)였다. 인상적인 유일무이함으로 영원성을 드러내는 존재’(10)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나무 안에는 신이 깃들어 있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이제 나무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 존재이자 존재의 비밀을 품고 있는 존재’(10)인 셈이다. 헤세에게 나무는 존재의 비밀이 발현된 증거이자 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대상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

 

하지만 자연의 모습이 계절에 따라 바뀌듯, 나무도 자신의 모습을 달리한다. 나무는 불변의 영원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순환적인 생명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존재다. 저자가 이 깨달음은 환기하게 된 계기는, 나무가 몇 개월 동안 꼭 붙들고 있던 잎들을 바람 잔잔한 어느 날 한 순간에 떨구는 모습을 본 사건이었다. 게다가 비바람에 늙은 고목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헤세는 나무가 주는 아름다움과 죽음, 괘락과 무상함까지도 성찰한다. 이 책은 헤세가 자연, 특히 나무에 대한 관찰을 통해 자연과 삶의 역사와 진실에 대해 써내려간 시와 산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가 나무로부터 배운 삶의 진실은 노년에 이른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숲에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떨리는 소리를 내면, 헤세는 늘 방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방랑자에게 모든 길은 집으로 데려가는 길, 모든 발걸음은 탄생이고 죽음이며 모든 무덤은 어머니”(11)였음을 가르쳐 주기도 했을 테다. 떠남과 돌아옴이 삶의 순리인 것처럼, 나무도 자연의 질서를 묵묵히 따른다. 나무 역시 상실과 죽음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저자는 발견하고 이를 받아들인다. 생명체의 죽음은 개별적이었다. 헤세는 스러진 늙은 나무를 애도하고, 상실에 대해 작별 인사를 한다. 젊은 시절의 세상이 친구로 가득했었다면, 안개 속을 걸어가듯 만년의 그는 홀로 걸어가는 자신을 자각했을 듯싶다.

 

만년의 헤세가 자신의 글에서 한 가지 바람을 얘기한 부분이 인상 깊다. “한번만이라도 다시 젊어져서 아무것도 모르고 구속받지 않은 채 뻔뻔하게 호기심에 차서 세상으로 떠나고, 배가 고파 길가에서 버찌로 식사를 하고, (...) 한번 더 숲의 새, 도마뱀, 풍뎅이와 조화롭게 어울려 지내는 방랑의 시간을 갖고 싶다!”(83)고 언급한 대목이었다. 그에게 방랑은 떠돌이들과 도제들의 여행방식이었다. 방랑자는 소유하는 자들이 아니다. 길 위에서 즐거움을 맛보되, ‘모든 즐거움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다. 떠나온 장소, 집 혹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결핍, 그리고 불안마저 함께 하면서도 말이다. 방랑자는 길 위의 모든 것을 섬세하게 감지하고, 순간의 즐거움을 맛보면서도 이 즐거움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조급해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헤세에게 방랑의 묘미는 낯설음을 동반한 달콤함이 깃든 맛이었을 테다. 노년의 헤세는 이 방랑의 기쁨을 추억하고, 길 위에서 숲의 향기와 꽃을 누리는 경험을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어 한다. 언제나 방랑자로 남고 싶었을 테다.

 

이와 달리 헤세는 여행자의 면모를 이야기한다. 여행자란, 방문했던 장소를 해마다 다시 찾고 아름다운 광경과 작별하면서도 언젠가 또 다시 오리라고 다짐하는 수집광적 면모를 지닌 자들이었다. 향기에 취해 보리수꽃을 따는 여인들처럼 말이다. 저자의 설명이 와 닿지 않는다면, 전시회나 미술관 풍경을 상상해볼 수도 있겠다. 설치되어 있는 모든 작품을 카메라에 담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헤세의 관점에서 이들은 미술 애호가라기보다는 이미지 수집가다. 헤세가 보기에 수집광적인 여행자는 방랑자처럼 진지하게 즐거움을 만끽하면서도 작별할 줄 아는이들이 아니다. 아름다움의 유한성과 상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여행자들은 잃어버린 것 혹은 잃게 될 것에 대한 조바심을 갖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순간순간의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하고, 방랑자들처럼 가장 섬세한 것을 얻지도 못하게 된다.

 

이 책을 천천히 읽으면서, ‘나는 여행자일까 아니면 방랑자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헤세가 이야기하는 여러 특징들을 고려하면 나는 영락없이 여행자였다. 순간순간 느끼는 아름다움과 행복을 붙들고자 했다. 이내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착실한 여행자처럼 언젠가 다시 그 즐거움을 느끼겠노라 생각했다. 나는 조용한 방랑의 감각을 지니지 못한 여행자였던 모양이다. ‘다시 젊어진다면, 방랑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하던 헤세는 노년의 자신을 회상하면서, 이내 젊은 시절의 방랑자보다 이제는 고독하고 어두우며 고요한 길’(84)을 걸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나에게 이 장면은 자연의 섭리를 인정하고 나이듦을 받아들이는 헤세의 모습으로 읽힌다. 그러므로 이 책은 헤세가 노년에 이르러 나무와 꽃을 바라보고 추억을 회상하며 아름다움과 죽음을 성찰함으로써 삶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책이기도 하다. 방랑자 헤세는 신의 선물을 맛보고 즐거움을 만끽했던 추억을 되살리면서도 언젠가는 작별하게 될 자신의 삶도 직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한 방랑자가 걸어온 길에 대한 예찬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걸어갈 고독한 길을 준비하는 글로도 읽힌다. 이처럼 상실에 대한 작별인사를 준비하는 그는 여지없이 조용한 방랑의 감각을 지녔던 방랑자였다. 그럼 당신은 인생이란 길의 여행자인가, 아니면 방랑자인가?

 

 

[책 속으로]

[1] “한 그루 나무는 말한다. 내 안에는 핵심이 있어 불꽃이, 생각이 감추어져 있지. (...) 인상적인 유일무이함으로 영원성을 드러내고 보여주는 것이 나의 직분이다.” (10)

 

[2] “나무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뿐 아니라 건축물로 자신을 표현하는 인간에 맞서 자연의 무구함을 내세운다.” (36)

 

[3] “글을 쓰거나 어떤 일을 할 때, 다시 한번만 더 그렇게 바보처럼 즐겁고 진심으로 행복해지고 싶다.” (43)

- 헤세가 습작으로 시를 쓰곤 하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4] “손주들아, 뻐꾸기 소리를 잘 들어라, 녀석은 아는 것이 많으니 녀석에게서 배워라! 뻐꾸기에게서 즐거움으로 떨리는 대담한 봄의 비상을 배워라! 구애하는 따스한 유혹의 외침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방랑의 생활을...” (66)

 

[5] “보리수꽃의 향기처럼 그것(기쁨)은 누구에게나 무료로 주어지는 신의 선물이다.” (79)

 

[6] “방랑자는 모든 즐거움 중에 최고의 것, 가장 섬세한 것을 얻는다. 즐거움을 맛보는 것 말고도 모든 즐거움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79)

 

[7] “함박꽃도 난쟁이나무도 낙관론자도 비관론자도 옳다. 다만 나는 낙관론이 조금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낙관론의 성급한 만족감과 배부른 웃음에서 저 1914년을, 이른바 건강하다던 그때의 낙관론을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 비관론자들의 일부는 조롱당하고 또 일부는 총살당했다.” (104)

 

[8] “아름다움과 죽음, 쾌락과 무상함이 서로를 얼마나 요구하고 제약하는지 경이롭구나! (...) 자연적인 생명의 모든 움직임은 그렇듯 무상하고 아름답다.” (145)

 

[9] “신이 인도인이나 중국인들에게서는 그리스인의 경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표현된다고 해도, 그것은 결함이 아니라 풍성함이지요. 신적인 것이 드러나는 이런 모든 현상방식들을 요약하려고 하면 떡갈나무나 밤나무가 아니라 나무라는 말이 가장 좋습니다.” (164)

- 1955, 헤세가 독자의 편지에 답한 내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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