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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조동진 | 이야기들 2017-08-28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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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노래들을 오랜만에 듣는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겨울비, 진눈깨비.....

더위가 꼬리를 감으려는 지금 마음은 갑자기 겨울,

내리던 비가 진눈깨비로 변한 낮고 어두운 겨울날이 된다.

 

내 이십대의 우울을 함께 한 그의 노래들

쓸쓸하고 외로운 그의 노래들

호주머니에 손 넣고 혼자 강가에 서있는 것같은 호젓하고 담백한 슬픔이 느껴지던 그의 노래들

 

그의 노래를 듣던 내 마음은 사랑을 잃은 마음이었다.

이십대의 생기와 에너지를 먹던, 젊음의 뒷모습 같은 우울

웃다가 뒤돌아서면 눈물이 날 거같은 북받치던 시절

'시절의 우울' 곁에 그의 노래가 있었다.

그의 노래가 있어 고인 눈물을 닦고 다시 돌아서서 웃을 수 있었다.

 

"겨울비 내리던 날 그대 떠나갔네...."

사무치고 그리운 노래들이여, 내 이십대의 우울이여!

굿바이 조동진!

사무친 나의 시절이여!

 

잘 가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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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열 | 영화와 책들 2017-07-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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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원하는 영웅이 돼줘야지!"

 

 

영화 처음에 '이 영화는 고증에 충실한 실화'이며, 등장인물 역시 모두 실존 인물이라는 자막이 뜬다. 허구가 들어가지 않아도 영화적으로 충분하다는 얘기가 아닌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서운할지 모르지만 실제 얘기에 들어간 허구가 너무 크거나 중요할 때 나는 사기당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드라마 <허준>의 사제지간 유의태와 허준이 사제지간이 아니었을 뿐더러 같은 시대에 살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황당했었는지.....내가 무지해서 농락당했구나 분한 생각이 들곤 한다. 영화의 분명한 자신감 기대된다!

 

아나키스트 항일 단체인 '불령사'의 멤버인 박열과 그의 연인 후미코는 관동 대지진 은폐를 위한 조선인 학살을 피해 일부러 감옥에 들어가고, 일본 황태자를 암살하려 했다는 조작 누명을 도리어 이용하여 대역죄인 재판을 이끌어나간다.

 

유쾌하고 쿨한 영화다. 등장 인물들(실제 인물들)이 그러하니 영화 또한 그러한 것이다.' 애국'이 이토록 유쾌하게 행동되고 표현된 걸 이제껏 본 적이 없다. 박열과 후미코의 영혼과 정신은 시대나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세련되고 자유롭다. 젊음과 열정, 권력과 억압에 대응하는 박애와 존중, 진정한 평등. 2017년 지금의 우리는 아직 그들만큼 진보적이고 세련되지 못하니 더욱 놀랍고 경탄스럽다.(나는 이 영화를 '독립운동'에 관한 영화가 아닌 한 인간의 당당한 정신과 자유에 관한 이야기로 읽는다.)

 

박열과 후미코와 그의 동료들은 조선이 일본을 침략해 억압하는 상황이었다면 일본의 민중들을 위해 싸웠을 것이다. 민족주의나 애국심은 그에 비하면 얼마나 촌스럽기까지 한가! 감옥에서 그들이 부르는 인터내셔널가가 가슴을 울컥하게 한다.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차온다....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해.....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 자유 평등 그 길로 힘차게 나가자...."   

 

예심판사 다테마스가 감옥에서 박열과 후미코를 만나게 해주고 가족에게 보낼 사진도 찍게 해준다.(영화속에서 촬영된 사진이 실제 사진과 똑같다.) 이 사진 한장은 엄청난 회오리를 몰고와 다테마스는 파면되고, 일본 내각이 붕괴되고 물갈이 되며 치안유비법도 대폭 강화되었다고 한다. 언론과 일본 내각을 조롱한 시대의 돌아이 박열. 그는 영화 속 이석 기자의 말처럼 허황한 이상주의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고 논리정연한 그의 신념과 이상은 '인간'의 정신이 가진 가치와 아름다운 생명력을 보여주며 시대와 시절을 관통하여 오늘 우리의 가슴까지 꿰뚫는다. 

 

"....억세고 못 박혀 굳은 두 손 우리의 무기다
나약한 노예의 근성 모두 쓸어 버리자
무너진 폐허의 땅에 평등의 꽃 피울 때
우리의 붉은 새 태양은 지평선에 떠 온다"

 

청년 박열과 후미코가 우리에게 외친다. 나약한 노예 근성을 모두 쓸어버리라고!

 

포스터가 멋지다. 사람 얼굴에 글씨를 덮는, 금기를 깬 파격이 박열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같아 인상적이다. 박열 역을 어딘가 샌님같은 이제훈보다 류승범이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 보았다. 이제훈이 훌륭하게 해내었지만.... 

 

 

   

 

2017년, 한국, 이준익 감독

출연: 이제훈, 최희서, 김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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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바이에른 캄머 필하모니 | 공연 2017-07-1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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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짜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9번 'Jeunehomme'

모짜르트, 교향곡 29번

 

모짜르트는 언제나 옳다. 겨울에 들으면 따뜻하고, 여름에 들으면 상쾌하고, 봄에 들으면 새싹 올라오고, 가을에 들으면 향 갚은 커피 한잔 하게 한다. 우울할 땐 속살거리고, 기분 좋을 땐 하이파이브를 해준다. 귀청을 때리지 않아도 충만하게 하고, 철없다가도 아련한 슬픔을 느끼게 한다.

 

'바이에른 캄머 필하모니' 18명 단원의 연주가 짱짱하다. 부드럽고도 풍미가 있는 현악기 소리가 정말 기분 좋았다. 모짜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은 또 얼마나 기분 좋은지!  바이올리니스트 타티아나 사무일은 단순하고도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나와(여성 연주자들이 세련되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나오면 얼마나 보기 좋은지!) 섬세하고도 믿음직한, 언제나 믿어도 될 것 같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피아노 협주곡 9번의 별명은 죄놈 'Jeunehomme'. 나는 늘 '젊은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당시 유명한 여성 피아니스트 죄놈을 위해 쓰여진 곡이란다.(사람 이름이었구나) 그래도 나는 이 음악을 들으면 스무살의 시절로 돌아간다. 특히 2악장은 스무살의 순결한 한숨, 달콤한 비애를 느끼게 한다. 나도 그때 겪었던 바로 그 느낌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1악장은 시작이 재미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하면 피아노가 성급하고도 당당하게 끼어들어 잠깐 연주를 하다 또 오래 침묵을 지킨다. ㅎㅎ 귀엽다. 

 

지휘자 가보르 혼트바리는 거의 춤추듯 음악을 어우르다 갑자기 또 정색하고 단호하게 지휘를 한다. 웃다가 진지하게 표정 돌변하는 유쾌한 사람 같은 지휘였다. 마지막 마무리 지휘에 애교있는 팬 서비스로 우리를 웃게 하고, 몇번의 앵콜 끝에 악단원들이 포옹하며(보통 단원들이 포옹하면 끝이라는 뜻) 관객들도 일어나려는데 지휘자가 또 나와서 모두를 살짝 당황시켜 또 웃게 만들었다.

 

언제나 브라보 모짜르트!

 

 

 

 

바이에른 캄머 필하모니

지휘: 가보르 혼트바리

바이올린: 타티아나 사모일

피아노: 안가영

2017.7.9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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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카르미나 부라나 | 공연 2017-07-08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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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ff, Carmina Burana 카를 오르프, 카르미나 부라나

Fortune, Empress of the World

1. In Springtime

2. in the Tarvern

3. Court of Love

 

 

이 곡은 듣는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음악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지푸라기 하나도 들어올릴 마음이 없음'을 애써 극복하고 이 리뷰를 쓰게 되었다.ㅎㅎㅎ

 

'카르미나 부라나'는 '보이렌의 노래'라는 뜻으로 총 250여 편에 달하는 중세시대 노래와 운문들이 수록된 시가집의 명칭이다. 이 시가집은 1803년, 뮌헨 근교 보이렌 지방의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두루마리 사본의 형태로 발견되었는데, 이것을 1847년에 바이에른의 문헌 학자인 요한 안드레아스 슈멜러가 편집한 후 현재의 명칭을 붙여 처음 책으로 출판했다. 라틴어를 중심으로 중세 독일의 방언, 옛 프랑스어 등으로 작성된 이 시가집에는 중세 유럽 전역에 살았던 대학생, 수도승, 방랑학자, 골리어드(편력시인) 등이 지은 시가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 내용은 풍자적이고 교훈적인 시, 사랑의 노래, 술과 도박의 노래, 성직자의 재담 등으로 다양하다.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라는 말(발음)이 어떻게 '보이렌의 노래'일까? 나는 이 제목을 들을 때면 늘 엉뚱하게 <백년보다 긴 하루>에 나오는 전설의 낙타, 지칠 줄 모르는 힘센 짐승 '부란니 까라나르'를 떠올렸었다. 유일하게 익숙한 제 1곡 '운명의 여신이여'를 들으면 또한 이 지칠줄 모르는 낙타가 떠올랐다. 이번에야 알았다. 카르미나(Carmina)는 Carmen(라틴어로 '노래'라는 뜻)의 복수형이고, 부라나(Burana)는 보이에른(Beuren)의 라틴어 이름이란다. 즉 보이에른의 시가집 Song of Beuren이란 거다, 뜻도 발음도.

 

이 시가집에는 250편의 노래가 실려 있는데 전체는 네 부분 1)도덕적 풍자시, 2)연애시, 3)술자리의 노래, 유희의 노래, 4)종교적인 극시로 이루어져 있다. 오르프는 여기서 20여편의 시를 발췌하여 총 25곡으로 이루어진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를 만들었다. 13~14세기에 만들어진 가사에 현대 음악!!! 이 곡은 3명의 독창자(소프라노, 카운터 테너, 바리톤)와 어린이 합창단을 포함한 대규모 합창단, 다양한 타악기가 들어간 대편성 오케스트라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시냇물까지 다양한 음악을 표현해 낸다. 하지만 묘하게 선율이나 리듬은 단순하고 반복되고, 의외로 난해하지 않다. 다채롭고도 다이내믹한데다 노래의 가사는 인생의 비애에서부터-비애와 해학이 함께-사랑의 달콤함과 관능, 심지어 음탕하기까지....듣는 사람 정신을 홀딱 빼놓는다.(오, 진정 다크 중세인들이 쓴 거 맞는거야? ㅎㅎㅎ)

 

가장 유명한 '운명의 여신이여'는 서곡으로 그리고 다시 마지막에 대미를 장식한다. 운명의 여신의 횡포에 희롱당하는 가련한 인간의 무기력함을 한탄하는 노래다. "오, 운명이여. 마치 달처럼 변하는구나. 언제나 차올랐다 이지러지는구나. 이 지긋지긋한 삶은 내키는대로 처음에는 억눌렀다 다음에는 달래주네. 가난도 권력도 얼음처럼 녹여버리네....잔인하고도 허무한 숙명이여, 너 돌아가는 수레바퀴여...." 이 장엄하고도 강렬한 합창은 피할 수 없는 흑마술처럼 듣는 사람을 전율시키고 마비시킨다.

 

봄을 맞은 환희와 자연의 신비에 대한 감탄, 젊은이들의 설레임.-'봄날에' '풀밭에서'

선술집에서 인생의 실패를 경험한 사내가(바리톤) 자신의 무기력함을 탓하는 노래 '분노의 마음 달랠길 없고'- 하지만 노래는 내용과 달리 박진감 넘치고 흥겹기만 하다.

화로 위에 걸려 회전하며 구워지고 있는 백조가 부르는 노래 '지난날 나의 살던 호수'-"한때 나는 호수에 살았지. 내가 백조였을때 나는 정말 아름다웠지. 시종이 꼬치에 궤어 나를 돌리고 있네...나는 이제 접시에 누워있다. 더 이상 날 수도 없다...." 카운터 테너가 팔세토로 부르는 웃픈 풍자의 노래다.

타락한 성직자가 부르는 '나는야 대수도원 원장님' -술취한 성직자(바리톤)는 반주도 없이 중세 그레고리안 성가에서 따온 선율을 즉흥적으로, 낭송조로 노래한다. 익살과 해학이 넘친다.

술집에 모여든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부어라 마셔라 하는 합창곡도 있고, 한쌍의 남녀가 사랑이 싹터 연인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이 애교있게 그러다 낯 부끄럽게 관능적인 노래도 있다.-아가씨의 처녀성을 허물어뜨리고 싶은 청년, 사랑과 정절 사이에서 자신을 저울질 하는 아가씨, 그러다 처녀 총각이 작은 방에 함께 있으면 다리 사이와 팔, 입술에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놀이가 시작된단다. -.-;;  

 

<카르미나 부라나>는 종교와 운명의 수레바퀴 밑에서 살던 중세 사람들의 내면의 욕구와 갈망이 오르프의 음악을 만나 화려하게 폭발하는 음악이다. 실제 연주 공연의 압도적인 합창과 연주는 스크린의 가사를 동시에 읽으며 들어 더욱 완전하게 즐길 수 있었다.(외국어 가사가 있는 모든 노래가 그렇다.) 에너지와 감성 모두를 장대비처럼 맞으며 관객들은 열광했다. 마법과 환상, 무거움과 가벼움, 비애와 익살, 수줍음과 관능 이 모든 것이 마력처럼 휘몰아쳤다. 뜨겁고도 뜨거운 여름밤, 뜨거운 공연이었다. 

 

서울시향의 연주도 좋았고, 세명의 가수들도 훌륭했다. 메트의 오페라 <가면무도회>에서 보았던 캐슬린 킴은(오스카 역) 꾀꼬리 소프라노.(가면무도회에서는 남장을 하고 콧수염을 붙여 잘 몰랐는데 날씨하고 예쁘기까지한 '완벽 콜로라투라'의 연주자다.) 백조의 노래는 그냥 테너보다 카운터 테너의 노래가 월씬 맛이 났다. 세 가수 중에 가장 혹사해야했던 바리톤-높은 음역으로 노래하고, 술주정꾼 처럼 노래하고-의 노래도 즐거웠다.  

 

합창 음악이 이토록 흥미진진할 수 있을까! 중세의 독일,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을 위한 위대한 축배같은 음악이었다. 

 

오르프의 나치 은근 부역설이나 기회주의자 처세는 오늘은 생각하지 말자! 

 

 

 

 

지휘, 이브 아벨 Yves Abel, conductor

서울시립교향악단
소프라노, 캐슬린 킴 Kathleen Kim, soprano
카운터테너, 김강민 Kangmin Justin Kim, counter tenor
바리톤, 마르쿠스 브뤼크 Markus Bruck, baritone

합창 Choir
국립합창단 The National Chorus of Korea
안양시립합창단 Anyang Civic Chorale
서울모테트합창단 Seoul Motet Choir
평화방송소년소녀합창단 The PBC Boys & Girls’ Choir of Seoul

 

 

2017.7.5 예술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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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스페인에서 열흘 | 이야기들 2017-04-22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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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까보다로까, 바다가 나를 품다.

리스본에 관한 내 키워드는 '리스본 대지진'과 '리스본행 야간 열차'다. 하지만 단체 관광에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자취는 느낄 수가 없고(내게 '리스본행 야간 열차'는 테주강가를 걷던 그레고리우스와 프라두가 걷던 리스본 뒷골목이다.), 리스본 대지진을 겪어냈다는 '제로니모스 수도원'과 '벨렘 탑'만 있다. 뜻밖에 나를 감동시킨 건 건축물이 아니라 바다였다.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곳 '까보 다 로까'. 그지없는 수평선은 180도 시야를 넘어 200도 더 돼보이는 동그란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바다가 나를 품고 나를 불렀다. 비가 오다 개는 들쑥날쑥한 날씨 덕에 바다에 난생 처음 보는 크고 아름다운 무지개까지 걸렸다. 나는 이곳에서 출항한 바스코 다 가마에 빙의되어 완전히 바다에 매혹되었다. 같이 간 친구는 아무것도 없는 바다에 넋을 잃은 나를 신기해 했다.

 

파티마, 오, 성모여!

올해는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98주년이나 99주년이었을 때와 변한 건 없겠지만 100주년일 때 이곳에 와 무릎 꿇고 기도하는 내 마음은 특별하고도 특별했다. 가족과 세월호 아이들을 위해 촛불 한자루 밝히며 비오는 파티마에서 내 마음은 적막했다.

 

세비야, 오페라의 도시

세비야에 들어오니 이발사 피가로의 '나는야 이 거리의 일인자' 노래가 귓가에 맴돈다. 카르멘의 담배 공장이라는 흰 건물을 지나가니 내 머리 속에 또 그녀의 아리아가 자동 플레이 된다.(시도 때도 없는 편리한 시스템!^^) 세비야 대성당, 스페인 광장, 황금의 탑...아름다운 건축물도 좋지만, 나는 세비야의 가로수 오렌지 나무에 반해버렸다. 오렌지가 주렁주렁 달린 과실수가 가로수라니! 둥그렇게 잘 정리된 오렌지 나무야말로 "나는야 이 거리의 일인자!"라고 노래할만 하다. 밤에 플라맹고 공연을 보았다. 서러움이 그토록 강력한 에너지로 발산되는 춤이라니!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공연이지만 무용수들은 온 근육을 불사르듯 춤추고 노래한다. 올레~!

 

그라나다, 이슬람의 숨결

흑백 tv를 보던 어린시절, 본 프로그램이 시작하기 전, 화면보정 화면에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기타 음악이 흘렀다.(그 유명한!) 음이 묘하게 떨리는 그 음악을 들으며 알람브라 궁전은 어떤 곳일까 무척 궁금했었다. 어린 내가 듣기에도 백설공주나 신데렐라와는 완전히 분위기가 다른 음악, 다른 궁전이라는 느낌이 들었었다.

안달루시아에 남아있던 마지막 이슬람 왕조는 1492년 스페인 카스티야 왕조에게 패해 그라나다를 떠나며 '스페인을 두고 가는 것은 슬프지 않으나 알람브라를 다시 못보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눈물지었다. 알람브라를 파괴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항복하겠다고 했다는데 무어인들의 섬세한 손길과 아름다움이 신비롭다. 물을 사랑하고 숭배한 그들이 만든 정원은 정말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 흐르는 듯 하다. 하지만 아쉽게, 시간을 다투는 단체 관광은 궁전 내부를 보지 못하고 서둘러 나와야만 했다. 너무나 실망되고 안타까워 알람브라를 떠나야 했던 이슬람인들과 같은 마음으로 자꾸 뒤돌아 보았다. 입구의 기념품 가게에서 산 이슬람 문양의 열쇠고리를 들고 다니며 알람브라를 다시 볼 날을 기다린다.        

 

톨레도, 그림 한 점 가슴에 담다. 

아름다운 중세의 도시 톨레도. 카톨릭 대국답게 이 곳의 대성당도 아름답다. 세비야 대성당보다 조금 규모가 작지만 더 우아하고 경건한 아름다움이 있다. 하지만 이 곳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오,오,오! 엘 그레코의 그림 한 점이다. 우리는 세계 3대 성화의 하나라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을 보기 위해 산토토메 교회를 찾았는데, 색채와 인물이 휘몰아치는 그의 그림을 직접 본 나는 감격! 그러나 나는 그 그림보다 El expolio de cristo(그리스도 옷 벗기심을 당하시다)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아름다웠다! 그냥 압도적으로 아름다웠다! 스토리도 화풍도 종교도 역사도 그 어떤 것에도 상관 없이 신비한 힘으로 마음을 사로잡아 눈과 마음을 뗄 수 없었다.(엘 그레코는 필리페 2세의 후원을 받아 그림을 그렸는데 그의 그림은 규정에 맞지 않아 공개적으로 걸어놓을 수 없었지만 왕이 그의 그림을 무척 좋아해서 자신의 방에 걸어놓고 보았다고 한다. 필리페 2세의 그 마음이 나와 같았을 것이다.) 톨레도에서 나는 아름다운 그림 한 점을 영원히 마음에 담았다. 영원히! 

 

마드리드, 20대 끝자락의 나를 추억하다. 

오래전, 20년도 더 전에 마드리드에 왔던 적이 있다. 그 때 보았던 스페인 궁전과 마요르 광장이 희미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다. 나는 그때 왜인지 스페인 궁전을 보며 묘한 애조를 느꼈었다. 근거 없는 감정이라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다시 본 스페인 궁은 파리의 베르사이유를 본떠 만들었다는 화려한 궁전이다. 마요르 광장에 오니 타임머신을 탄 듯이 그 곳에 앉아 음악을 듣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으며 광장에서 연주하는' 아이네 크라이네 나흐트무지크'를 들었다. 무슨 음식을 주문해 먹었던가?.... 올리브유가 흥건한 음식이었던 것 같다.ㅎㅎㅎ(올리브나 올리브유를 즐겨 먹기 전의 시절이었다.) 오래전 그때, 마드리드에 여러날 있었는데도 프라도 미술관을 못갔다. 다시 가면...이라 생각하며 30여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버려 그게 천추의 한이 되었는데 드디어! 프라도 미술관을 갔다. 30여년의 세월을 잘라 붙이는 편집을 하여 나는 세월을 건너 뛰어 프라도 미술관에서 그림들을 보았다. 명불허전! 아름다운 그림들이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는데는 너무나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 화가의 영혼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실물 그림들은 언제나 해일 같은 감동을 준다. 특히 나는 고야의 말년의 그림들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그의 고뇌와 슬픔이 온 마음으로 느껴졌다.

마요르 광장에서 30여년 전처럼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셨는데 서빙하는 청년이 잘생기고 친절하고 영어도 잘했다. 친구와 나는 그 청년이 귀여워 커피값만큼의 팁을 놓고 나왔다. 우리는 아름다운 청년에게 팁을 많이 주는 아줌마인 게 즐거웠다.

 

사라고사, 성모 마리아와 눈맞춤하다.   

아라곤 왕국의 수도였던 사라고사. 성모강림의 전설이 내려오는 그곳 성당에서 때마침 미사가 있어 참석하고 영성체까지 했다. 사제의 복식이 엄청 화려하고 클래식한데다 스페인어 기도문은 마치 라틴어 같이 느껴져 나의 상상력은 또 타임머신을 탔다. 미사 후에 성당을 둘러보는데 성모강림 교회이어서일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은 옆 쪽에, 중앙에 성모상이 있는데 사람들이 성모상 발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한다. 나도 같이 해보는데 기도하다 고개를 들어 성모상을 바라보니 오, 세상에! 멀리서 보기에는 그저 눈을 내리뜬 모습이었는데 아래서 올려다 보니 성모의 빛나는 눈동자와 눈이 딱 맞추게 되어있다. 가슴이 철렁한다. 영혼을 꿰뚫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Peace be with you! 사라고사여!  

 

몬세라트, 영감의 절벽

깍아지른 절벽 위의 수도원. 이곳은 스페인인들에게 우리의 백두산이나 한라산 같은 마음의 성지이다. 이 기암괴석의 절벽을 보니 마음이 짚힌다. 가우디 건축물들의 영감이 여기서 온 것이다. 가우디를 보러 가기 전, 이 절벽 산을 본 것이 기뻤다. 마을사람들이 자신들이 직접 만들어 온 치즈나 화분(꽃가루)을 팔고 있어 치즈를 샀다. 한국에 돌아간 날 첫 아침, 이 치즈와 하몽과 올리브로 아침을 먹으며 스페인을 다시 추억해야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가지고.

이곳 수도원에 유명한 성모마리아 상이 있다. 루카 성인이 나무로 조각한 것을 베드로가 스페인으로 가지고 왔다는 '검은 성모상'이다. 12세기에 성모 발현과 기적의 소문이 퍼져나가며 이 성모상은 더욱 유명해져 카탈루냐 지방 성모 신심의 구심점이 되었는데 전쟁 중에도 신자들이 목숨을 걸고 지켰다고 한다. 만지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구슬만이 유리벽 밖으로 나와있어 나도 유리구슬을 만지며 기도. 오, 스페인 여행은 명승고적지를 돌며 기도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ㅎㅎ 나는 그날 아들애에게 "엄마가 온갖 영험한 곳을 다 돌며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카톡을 보냈다. 

 

바르셀로나, 천재의 기념비

"바르셀로나여, 나는 그를 만나러 왔다!" 구엘 공원,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 그리고 성가족 성당. 나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천재의 창조물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너무나 특별하고 아름다워서 놀라고 감탄하다가 급기야 알 수 없이 마음이 슬퍼지기까지 했다.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사진이나 TV에서 많이 보았으나 실제를 보기 전에는 보았다고 말 할 수 없었다. 성가족 성당의 스테인드 글래스를 통해 들어온 햇빛이 성당 안에 여러가지 색으로 오로라처럼 너울거릴 때 나는 이곳이 지상의 장소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성당의 천정을 올려다 보며,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처럼 우리가 우리를 만든 신들의 문명 세계를 찾아온 것만 같았다. 가우디의 성당은 신에 대한 경외가 넘치면서도 유럽 다른 성당들과 다르게 인간과 자연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가득하다. 그 교회 건물은 땅이면서 하늘이고 신이면서 인간이었다.

십년 후면 성가족 성당이 완성된다고 한다. 십년 후의 어느날 나는 알람브라 궁전과 가우디의 성당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사람들.....

공항에서 처음 모인 우리 여행팀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30여명 되는 여행객이 거의 모두 5,60대 아줌마들이었다. 우리 팀 뿐이 아니라 스페인에서 만난 다른 한국 여행팀들도 또한 거의 아줌마들이었다. 나는 이런 단체 관광은 처음인데다 활달하고 여행 경력이 화려한 이 아줌마 부대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 대한민국은 진정 아줌마 공화국인가보다!

여행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십년전쯤만 해도 영어가 안되는 한국인들은 여행지에서 쭈삣쭈삣 음식을 주문하거나 물건을 살때 진땀을 빼곤 했었는데 이제 영어를 못해도 다들 당당하다. 60대 후반의 아저씨 한분은 뭐든지 한국말로 하며 물건도 사고, 커피도 주문해 마시고 하시더라. 역시나 여행에서 중요한건 언어가 아니라 경험!

우리나라 아저씨들 너무 무례하다. 한국에서 새는 바가지 외국 나와도 샌다. 아줌마들 사이에 60대 은퇴 커플이 세쌍 있었는데 그 아저씨들이 참~ 아저씨들이었다. 무례하고 사과할 줄도 모른다. 그 중에도 특히 한 아저씨가 내 미움을 받았는데 나중엔 그 아저씨 뒷꼭지만 보아도 미운 마음이 들었다. 가이드가 설명을 시작하면 갑자기 저 뒤에서 맨 앞으로 나오는데 사람들을 막 밀치고 나와 나도 몇번이나 밀리니 화가 치밀었다. 어깨가 획 돌아가게 밀쳐진 스페인 아줌마는 너무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는데도 사과 한마디를 안하고 가버렸다. 여행 후반에 또 밀쳐진 나는 나도 모르게 "아니, 이 분이 정말!" 하고 큰소리를 냈는데 흠찟한 그 아저씨 역시나 사과 안하고 갔지만 놀란 거 같았다.ㅎㅎ 친구가 자기는 커피 주문하려고 줄 서있다가 그 아저씨한테 새치기도 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참 우스운게 그 아저씨, 자기 마누라한테는 엄청 다정하게 잘한다는 거다. 다행이라 해야할지, 더 괘씸하다 해야할지.....ㅎㅎㅎ 

연세 많으신 부부도 두쌍 있었는데, 당신들은 일년에 해외여행 서너번씩 다닌다고 자랑하시지만 체력도 흥미도 둔해져 이런 고된 관광은 안오시는게 나을 듯 싶었다. 후반에 할머니 한 분은 다리가 아파 버스에서 내리지도 않으셨고, 또 다른 할머니 한 분은 돌바닥이 미끄러워 다정한 내친구가 팔을 잡고 다녔다. 그러다 급기야 복잡한 프라도 미술관에서 최고령 할아버지와 할머니 한 분이 길을 잃고 사라져서 난리가 났었다. 촉박한 시간에 팀원 전체가 아무것도 못하고 기다리고, 가이드는 사색이 돼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 다녔다. 나는 새삼 결심했다. 여행은 지금! 더 늙기 전에 지금! 돈도 시간도 부족해도 지금! 

 

'최약체팀' 친구와 나. 친구는 여행 후반에 아파서 하루를 아주 힘들어했다. 나는 자유시간 끝나고 모이는데 좀 늦어 뛰는데 힘들어 영 뛰지를 못했다. 우리는 서로 상대를 최약체라고 우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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