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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소리를 들어라...잊지 않기 위하여' | 기본 카테고리 2021-08-1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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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소리를 들어라...잊지 않기 위하여'

 

 

"바람이 분다! ...... 살아봐야겠다!

광활한 대기가 내 책을 펼쳤다가 덮고

파도가 바위에서 솟구치며 산산이 부서진다!

날아가라, 나의 현혹된 페이지들이여!

부수어라, 파도여! 흥겨운 물살로 부수어라

돛배들이 모이를 쪼고 있던 저 평온한 지붕을!

 

- 폴 발레리 '해변의 묘지' 중에서

 

 

정신 없이 새로운 달이 시작했다가, 어영부영 지내다보니 벌써 8월의 한가운데에 있다. '갑작스럽게' 맞이한 광복절이 되니 언젠가 읽어보려고 생각만했던 책들이 생각나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정리해보려고 한다. 

 

몇 달 전에 우연히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제작한 <바람이 분다>(The Wind Rises)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보았던 것인데, 어린 시절에 '비행기'만 나오면 뭐든지 좋아했던 터라 미야자키의 <붉은 돼지 Porco Rosso>를 좋아했었다. <바람이 분다> 역시 비행기가 나오는 영화였지만 전작 <붉은 돼지 Porco Rosso>만큼 마음 편히 볼 수 없었던 것은 이 애니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공군의 주력 전투기 '제로센'의 제작을 담당했던 인물 호리코시 지로의 생애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전쟁을 배경으로 한 많은 영화들처럼 전쟁의 실상과는 거리를 둔 채 전쟁을 '낭만화'하는 분위기가 짙기 때문이다. 

 


 

 

두 영화 모두 헐리우드 영화처럼 '전쟁'과 '사랑'을 결합하며 결과적으로는 전쟁 자체로부터 거리를 두어 애니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전쟁에 대한 생각을 마비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일제 강점기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우리로서는 결코 마음편히 보고 끝나게 되지 않는다. 내가 비행기를 아주 좋아한다는 사실이 모순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말이다. 학창 시절에 내가 비행기를 좋아했던 것은 하늘로 날아오르려고 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어서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헬리콥터 및 비행체 설계도를 비롯해서, 라이트 형제와 같이 하늘로 오르려고 했던 이카루스의 자손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바람이 분다>는 주인공이 한 소녀와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객차 앞으로 나와 풍경을 보던 주인공은 앞 객차의 뒤로 나와 풍경을 바라보던 소녀의 모자가 날아가자 잡아주는 것으로 두 사람이 만난다. 주인공이 모자를 건네주자, 소녀가 말하는 대목이 바로 위에 인용한 폴 발레리의 싯구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그러자 주인공은 폴 발레리의 싯구라는 것을 깨닫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알아본다'. 여기까지는 상당히 낭만적이다. 

 

전투기 제작자, 엔지니어 였던 호리코시 지로를 한국인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20만 명 이상을 사망하게 만든 원자 폭탄 제조 및 개발을 지위한 과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를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자신들이 한 작업의 의미를 깨닫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긴 했다. 물론 맨하탄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에 이 일의 의미를 파악하고 행동에 옮겼으면 더 나았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나는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폴 발레리의 문장을 알게 되었고, 이어서 일본 비행기 엔지니어 호리코시 지로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최근에 출간된 <폴 발레리의 문장들>을 보고 다시 이 애니메이션과 발레리가 50여 년 간 남겼던 아포리즘을 엮은 책이 나온 것이다. 발레리의 작품이 특히 어렵다고 알고 있는데, 특히 이런 작품들을 대중적으로 잘 포장하여 문화상품으로 만드는 일을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사람이 아닐까 싶다.

 

폴 발레리의 문장들

폴 발레리 저/백선희 편역
마음산책 | 2021년 07월

 

 

오늘은 언젠가 읽을 책들을 정리하려다가 갑작스럽게 '광복절'을 맞아 특별히 아직 읽지 않은 책 중에서 조만간 읽어보려고 생각했던 책을 정리하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주제의 연장선에서 떠오르는 또 다른 책은 <들어라 와다쓰키의 소리를>이란 책이다. 이 책은 일본전몰학생기념회에서 엮은 책으로, 인간어뢰, 카미카제(자살 특공대)의 일원이었던 일본 청년들(여기에는 분명히 재일 조선인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이 전쟁에 나가기 전에 쓴 일기 겸 소감을 쓴 기록을 모은 것이다. 소감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의 유서이기도 했던 셈이다. 

 

이 책은 22세의 육군특별공격대원으로 오키나와에서 미국 기동부대로 돌진해서 전사한 청년이 '출격 전야'에 남긴 소감문으로 시작한다. 현실에 대한 애착과 고뇌 속에서도 조국 일본을 위해 '특별공격대원'으로 뽑힌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영광스러워하는 대목, 죽음에 대한 예감을 비장하게 기록해놓았다. 전투기를 몰고 진주만을 습격하면서 돌아올 기름과 낙하산이 없었던 이들은 바다 위로 떨어져 끝을 맺느니 진주만에 정박해있던 전함과 공항 시설에 마지막까지 피해를 입히고자 했다. 이 책은 '제로센'을 설계하고 제작하여 일본을 구하고자 했던 호리코시 지로와 이 비행기에 올라 삶을 함께 마감하고자 했을 일본 청년들의 심리를 함께 떠올리며 읽을 수 있는 사료가 될 것이다. 

 

들어라 와다쓰미의 소리를

일본전몰학생기념회 편/한승동역
서커스출판상회 | 2018년 08월

 

 

또 이 이야기의 연장선에서 읽어보려고 사두었지만 계속 읽지 못하고 있는 책 한 권을 더 가져와본다. 소설가 정혜주가 쓴 <날개옷을 찾아서>다. 이 책은 한국 최초의 여성비행사 권기옥의 삶을 바탕으로 쓴 '평전 소설'이라고 한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은 '공공의 적'이 된 검찰 만큼이나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집단이 되어버렸다. 이어서 계속 터져나오는 '성추행/성폭행' 사건으로 이 집단은 정신을 못차리는 모양새다. 문제는 의식이 있고 뜻있는 군인들이 많이 있어도 실질적인 권한을 쥐고 있는 일부 고위직 군인들의 도덕불감증과 관행이 이러한 사건을 계속 양산해내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까 싶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의 추락한 위상을 떠올려보면 권기옥 비행사의 삶이 더욱 두드러진다. 

 

대한민국 공군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권기옥 여사의 일대기에 요약된 활동만 봐도 한 사람이 이렇게 다양하고 과감한 일을 해낼 수 있었나 싶을 정도다. 송죽결사대, 3.1운동, 평양도경 폭파, 임시정부 독립군항공대 조국진공작전 등등... 이 책에 나오는 인물의 대화는 소설형식을 빌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책의 기본적인 뼈대는 권기옥 여사의 행적을 기반으로 했다. 책에 있는 띠지에는 조종사라는 직무에 어울리지 않은 '안경'을 쓰고, 다부지게 입을 다물고있는 권기옥 여사의 사진이 담겨 있다. 

 

<날개옷을 찾아서>의 뒷부분에 실린 사진 자료 중에는 권기옥 여사가 1924년 7월 첫 단독비행에 성공한 후 도산 안창호 선생에게 보낸 사진과 편지가 실려 있다. 권기옥 여사의 단호하면서도 짧은 편지는 다음과 같다. 

 

"20여 년 구속받던 아픈 마음과 

쓰린 가슴 상제주께 호소하고

공중여왕 면류관을 빼앗으려 가나이다.

 

길이 사랑하여 주심 바라

삼가 이 꼴을 눈앞에 올리나이다.

 

사랑하시는 기옥 올림

4257년 7월 5일 운남에서"

 

날개옷을 찾아서

정혜주 저
하늘자연 | 2015년 08월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독립운동가 중에서 독립 운동에 참여하고, 머나먼 중국땅에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살림을 도맡으셨던 정정화 여사의 회고록과 일대기를 담아온다. 정정화 여사는 몇 년 전에 우연히 보게 된 한 연극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연극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아 검색해보니 '달의 목소리'였던 것 같다. 무대 위에서 일인 연극을 했던 분은(검색해보니) 원영애 배우가 아니었나 싶다. 나레이션과 정정화 여사의 목소리를 번갈아가며 정말로 대단한 연기를 하셨던 기억이 난다. 감동적이었던 연극이었다. 

 

정정화 여사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 망명했고, 망명 27년 간 임시정부의 살림을 맡아 뒷바라지 하신 분이다. 국내에 자금을 전달하다가 일본 순사에게 발각되어 고초를 겪기도 했던 분이었다. 연극을 통해서나마 정정화 여사의 삶을 접하고 놀라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이 연극을 보고 나는 바로 정정화 여사의 회고록 <장강일기>를 구매하여 읽었지만 다 마치지 못했다. 하지만 잠시 읽으면서 내내 원영애 배우의 연기가 계속 떠올랐다. 

 

정정화 여사의 삶과 행적을 잊지 않고자 여기에 여사의 회고록 <장강일기>를 비롯하여 '독립운동가 100인 만화 프로젝트'로 나온 <정정화: 정화>을 추가해본다. 

 

장강일기

정정화
학민사 | 1998년 08월

정화

최인선 글,그림
광복회 | 2020년 08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안살림꾼 정정화

신명식 저
역사공간 | 2010년 11월

 

 

군복무 시절에 읽었던 책으로 아직도 기억나는 책은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가 있다. 장준하 선생은 일본군에 징집된 후 목숨을 걸고 탈출하여 7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쉬저우에서 충칭 임시정부까지 6천리 이상의 거리를 도보로 찾아갔던 분이다. 일본군과 만날 위험 속에 낮에 숨어 있다가 밤에 이동하기도 하고, 일념 하나로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모습, 그리고 이후 전개되는 안타까운 한국사의 장면들이 담겨 있다. 특히 이 책은 근현대사를 처음 알기 시작했던 나의 학창 시절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었다. 언젠간 나도 장준하 선생이 걸었던 길을 따라 가보고 싶단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오늘은 광복절을 기념해서 그동안 읽어두려고 생각했던 책들을 몇 권 모아보았다. 나는 아직 한국근현대사를 잘 알지 못하다. 나에게 항상 아쉬움과 결핍감으로 느껴지는 이 분야는 앞으로도 계속 스스로에게 주는 숙제가 될 것이다. 

 

돌베개

장준하 저
돌베개 | 201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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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과 생(生)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끊임없이 부유했던 한 인간의 고백록’ | 기본 카테고리 2021-08-13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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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귀향

D.H. 로렌스 저
열화당 | 2014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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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과 생(生)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끊임없이 부유했던 한 인간의 고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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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 D.H. 로렌스의 자전적 에세이

D.H. 로렌스(D.H. Lawrence) 지음 | 오영진 옮겨엮음 | [열화당]

 

()과 생()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끊임없이 부유했던 한 인간의 고백록

 

D.H. 로렌스의 에세이 귀향을 읽는다. 제프 다이어의 미루고 짜증내도 괜찮아를 읽고 로렌스라는 인물에 좀 더 관심이 갔다. 다이어의 설명에 따르면 로렌스 자신도 뭔가를 결정하는데 애를 먹곤 하고, 오랫동안 폐렴과 같은 증상으로 상당히 성마른 성격을 가진 예민한 인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자전적인 성격이 강한 로렌스의 소설만으로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기에 여전히 제한적이고 파악하기에 쉽지 않다고 느꼈다.

 

귀향은 영문학 전공인 번역가가 그의 에세이 중에서 자전적 요소가 강한 글을 뽑아서 번역한 에세이 모음집이다. 로렌스라는 인물에 대해 좀 더 궁금하지만 부담스럽게 시작하고 싶지 않은데다, 로렌스가 어께에 힘 빼고 쓴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말하자면 로렌스가 '문학적 기교나 표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밝히는' 수필집인 셈이기에 지금 로렌스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관심사와 잘 맞는 다고 생각한다.

 

다이어의 미루고 짜증내도 괜찮아는 저자가 주로 로렌스의 '서간집'을 기반으로 로렌스의 면모를 들여다본다. 다이어가 언급한 사항과 귀향의 연보에서 내가 다르다고 느낀 사항은 '서간집'을 출간한 주체가 다르다는 점이다. 귀향의 연보에는 로렌스의 '서간집' 출간이 1962년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기로는 미루고 짜증내도 괜찮아에서 다이어는 로렌스가 자비로 7권짜리 책을 출간한 것으로 언급해 놓았다. 이 부분은 다시 확인해봐야겠다.

 

내가 처음 접한 로렌스의 소설은 무지개. 앞부분 일부만 읽었을 뿐이지만, 귀향에서 로렌스는 1915년에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무지개가 발매 금지되는 사건을 겪었다. 이 때의 충격과 환멸이 컸던 모양인지 자신의 에세이에 마치 제 3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신이 "그러고는 언론과 출판, 그리고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저 부르주아 세계로부터 외떨어졌다는 느낌이 더욱 강해 졌다."(41)라고 건조하게 설명하고 있다.

 

읽고 쓰는 것이 자유롭지 못했던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열두 살 때 장학금을 받고 영국에서 가장 좋은 통학제 학교(노팅엄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로렌스는 이곳에서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부르주아 친구들을 만났다. 철저한 계급사회였던 영국의 모습을 처음 접하고 그 실체를 체험했던 것인데, 자신의 에세이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무지개의 발매 금지 사건) 이후로 그는 영국의 부르주아 독자를 상대로 '성공'해 보겠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걷어치우고 외따로 지냈다."(41)

 

로렌스는 스스로를 마치 제3자에 대해 진술하듯, 자신을 ''라고 지칭하면서 에세이를 쓰고 있는데, 애초에 계습사회에 놓여 있는 사다리를 타고 오르려는 시도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장면 같다.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에 등장하는 바틀비의 선언처럼 말이다. 로렌스는 이 지독한 계급사회에서 뭔가를 해보려는 생각은 아예 걷어치우고, '나는 내 방식대로 살기를 택하겠다'고 선언하는 대목처럼 느껴졌다. '너희들이 만들어 놓은 이 담벼락에서 바둥거리지 않겠다'고 외치는 듯했다.

   

"나는 가난한 집 자식이다. 난 분명 지금처럼 얼마 되지 않는 수입과 매우 미심쩍은 명성의 작가가 되기 전에 환경의 무서운 손아귀에 붙잡혀 발버둥 치며 우연의 괴롭힘을 겪는 것이 마땅했으리라. 그러나 난 그러지 않았다. 일은 모두 그냥 저절로 일어나서, 난 고통의 신음 소리를 낼 일도 없었다.

그건 유감스러운 일인 것 같다. 왜냐하면 난 틀림없는 전도가 불확실한 노동계급의 가난한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지금 난 어떻게 되었나?

(...)

나는 노동계급으로 태어나 그 속에서 자랐다." (43-44)

   

솔직하지만 좌절감도 묻어나는 자기 인식의 고백이다. 로렌스가 문필 수입만으로 살아가기 시작했을 때, 초등학교 교사 수입보다 적을 때도 있었지만 스스로를 한 번도 가난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고 고백한다. 한 번도 굶은 적도 없고 말이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사람은 아주 적은 돈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48) 결국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끼는 존재는 자기 자신뿐일 테다.

 

하지만 그는 전업 작가였고, 내면의 어디선가는 '상승'의 욕구 또한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세상과 잘 지내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라고 평가한다. 세속적 의미에서, 인간적 의미에서 그는 자신이 '성공'적이지는 못했다고 여겼던 것이다. 무엇이 그를 끊임없이 고립시키고 가두었을까. 내게는 이 또한 일종의 편집증을 동반하는 우울증세로 보였다. 그는 세상과의 접촉에 익숙하지 않은 듯싶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단절감이 점점 깊어지는 눈빛을 통해 드러나는 것 같았다.

 

어쩌면 현실의 벽과 상승의 욕구 혹은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가 내면에서 충돌한 것이, 어쩌면 어느 문제 하나를 결정하고 끝맺으려고 해도 언제나 내게는 '분열증적'이고 성마른 성격으로 드러나게 된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로렌스가 처음 '문예지'에 실린 자신의 시와 단편소설을 사람들이 읽어보고 이야기해줄 때 로렌스는 '당황스럽고 화가 나기조차 했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 감정을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어떤 마음인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단서는 로렌스의 다음 고백에 있지 않을까 싶다. "노동계급 출신으로서 나는 중산계급과 함께 있으면 그들이 나의 살아 있는 생의 맥박을 단절시켜 버리는 걸 몸으로 느낀다."(49)

 

로렌스는 45년의 길지 않은 삶을 살면서 그는 전 세계의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부유했다. 아이 셋과 대학교수인 남편을 포기한 뒤 로렌스를 선택했던 여인 프리다와 결혼하고서 말이다. 17살 때 심하게 앓았던 '폐렴' 증상으로 그는 일정 부분의 폐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 이따금씩 폐렴 증세로 고통을 받았던 로렌스. 이 책 귀향에 소개된 유년시절부터 사망에 이르기 전까지 사진을 보면서 몸은 점점 말라가고 눈빛은 점점 날카로워지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 모든 연령대의 사진에 나온 남자가 바로 로렌스임을 알고, 그가 삶의 이른 시기에 사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독자는 사진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로렌스의 작품을 읽는다면 아들과 연인 Sons and Lovers을 먼저 읽기 시작할 것 같다. 자신의 에세이에서 언급한 바에 따르면 이 책의 첫 부분이 모두 '자신의 자서전'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45년의 삶을 살았던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사망하기 4년 전인 41살 때(1926)부터다. 이 해에 로렌스는 여동생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아내 프리다와 심하게 다투었고, 화가인 도러시 브렛과 정사를 가졌다고 한다. 아마 로렌스가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로렌스를 흠모하던 귀족 출신의 화가 브렛과의 만남에서 받은 영향이 컸을 것 같다.

 

로렌스가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에 관심이 간다. 아들과 연인을 읽은 다음에 아마도 로렌스의 그림이 들어간 화집 Painting of D. H. Lawrence를 구경해보고 싶다. 말년의 그가 바라본 세계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 있을까 궁금해진다. 찾아보니 로렌스가의 책이 꾸준히 번역되어 나오는 것 같지만 여전히 속도는 느린 것 같다. Painting of D. H. Lawrence책도 번역되어 나오면 좋겠다.

 

지금 로렌스의 연보를 보니 1919년에 '독감'을 심하게 앓았다고 나와 있다. 아마도 이 독감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인 1918년에 대유행을 시작했던 스페인 독감이 아니었나 싶다. 이 독감을 앓던 시기에 로렌스는 영국에 있을 때로 보인다. 병약했던 그는 이 당시의 독감으로 폐에 더욱 손상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았고, 가을에 이탈리아 피렌체로 가서 아내 프리다와 재회하여 카프리 섬에 정착했다.

 

'스페인 독감'하면 언젠가 알게 되었던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 에곤 실레의 삶을 떠올린다. 에곤 실레와 그의 아내가 바로 스페인 독감으로 191810월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실레의 아내가 3일 먼저 사망했는데, 아내는 임신 6개월이었다고 한다. 에곤 실레, 스페인 독감, 실레의 솔직하고 적나라한 그림들, 로렌스의 사람과 외설 시비에 휘말렸던 그의 작품 등등을 떠올리면 귀향의 역자가 사용했던 표현 '()과 생()의 공존'이라는 표현만큼 잘 어울리는 표현이 있을까 싶다. 여기에는 언제나 '죽음'이라는 녀석이 이 둘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20대 후반에 아들과 연인을 출간한 직후 즈음 찍은 청년 로렌스의 모습은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에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표정을 한 콧수염의 사내다. 30세 즈음,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당시에 구레나룻을 기른 로렌스의 모습은 보다 조심스럽고 예민해 보이며, 20대 당시 보다 눈빛이 깊어지고 신중해져 보인다. 잔혹한 세계와 인간에 대한 분노와 좌절을 느꼈던 것일까. 그의 모습은 언제든 폭발할 듯 예민한 상태에 있는 것 같다. 사망하기 1년 전인 1929년의 모습은 훨씬 수척해 보인다. 눈빛은 훨씬 부드러워졌지만, 다소 초점을 잃은 모습으로 보인다. 줄곧 폐렴과 폐결핵 등으로 '()'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점차 죽음을 직감했으리라.

 

그는 짧은 생에 동안 끊임없이 무언가에 연결되고 안착한 것이 아니라, 단절되고 부유하는 삶을 보여주었다. 노동계급에도 중산계급에도 자신이 잘 맞지 않으며 이로부터 배제 혹은 단절되어 있다는 근본적인 감각이 그에게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 전업 작가로서, 또 다른 의미에서 부유하는 삶의 한 가운데 있었다. 로렌스에게는 이러한 단절감과 부유하는 삶이 태생적인 조건이 아니었나 싶다. 그가 지녔던 ''(그리고 '')에의 열정만큼이나 컸던 단절감과 부유하던 삶을 다시 떠올려보니, 그는 지독히 외로운 사람이기도 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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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D.H. 로런스 연구서를 써야만 한다' | 기본 카테고리 2021-08-0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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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고 짜증 내도 괜찮아

제프 다이어 저/이한이 역
주영사 | 2021년 07월

Out of Sheer Rage: Wrestling with D. H. Lawrence

Dyer, Geoff
Picador USA | 2009년 11월

Out of Sheer Rage: In the Shadow of D. H. Lawrence

Geoff Dyer
Canongate Books | 2015년 03월

 

 


"요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만의 D.H. 로런스 연구서를 써야만 한다. 절대 출판하지 못할지라도, 절대 완성하지 못할지라도, 몇 년 후에 손을 떼고, 몇 년간의 노력이 끝을 맺지 못하고, 처음 가졌던 야망을 끝까지 밀어 붙이지 못하고 실패했다는 기록이 된다고 할지라도, 자신만의 D.H. 로런스 연구서를 약간이라도 진척시켜야 한다. 타오스에서 타오르미나까지, 우리가 찾아갔던 곳에서부터 절대 발을 들이지 못할 나라들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신만의 D.H. 로런스 연구서를 진척시키도록 애쓰는 것이다." (308)

 

 

장의 구분도 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글이 수다스럽게 느껴지면서도 제프 다이어만의 솔직함이 잘 드러난다. 하지만 두서없이 생각이 가는대로 글을 써가는 특징은 이번에 읽은 미루고 짜증내도 괜찮아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묘사되는 로런스의 모습은 다이어가 로런스의 서한집(로런스는 무려 7권짜리 서한집을 자비로 출판했다)중 여러 곳에서 인용한 부분에 근거하는데, 로런스가 얼마나 성마르고 예민한 면모가 있는 인물인지 잘 보여준다. 책을 읽다보면 로런스가 제프 다이어와 닮은 구석도 많은 듯하다. 다이어도 온갖 질병을 달고 다니고, 어께가 좁다는 콤플렉스를 비롯해서 끊임없이 셀프 디스를 하며 자책하기도 하고 독자를 웃기기도 한다. 물론 다이어가 쓴 말의 절반은 정말로 진지하게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회만 되면 로런스 연구서 쓰기를 미룰 핑계를 찾아내는 '재능'을 가진 작가의 면모가 유감없이 들어있다. 다이어는 태어나기 전부터 뭔가 모범적이고 반듯한 것에 두드러기가 나는 인물 같다. 알레르기 치료약에도 알레르기를 가진 인물이니 말이다. 뭔가 하고 싶어서 실행으로 옮기고 나면 시간 낭비했다고 자책하는 자신에 대해 고민하지만, 또 하려고 했던 일을 하지 않으면 '하지 않은 일'에 대한 미련과 후회로 고민하는 사람이 제프 다이어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은 예상 외로 '교훈적'이다. 왠지 '제프 다이어스럽지 않은' 마무리이지만, 이 또한 그가 D.H. 로런스의 흔적을 찾아다니고 그의 서간집을 읽고 좋아하면서도 그에 대해 연구서를 쓰지 않은 여정의 기록이기에 마음에 든다.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로런스 연구서를 써야만 한다'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는다. 우울증세로 세상에 대한 모든 관심과 열정을 잃었을 때, 제프 다이어가 다시 무언가에 대한 열의와 열정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자기만의 로런스 연구서 쓰기 프로젝트'같은 것들이 있어서일 거다. 바로 현대인들이 잃어가는 것, 현대인의 우울증을 완화하고 삶을 새로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이런 대상을 각자 하나씩 갖는 일이 아닐까 싶다. 누구에겐 하루에 단 30분 정도만 주어지는 독서 시간일 수도 있다. 나만의 프로젝트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  

 

 

[책에 대한 생각]

*이 책은 장의 구분 없이 저자의 생각들을 이어붙이듯 쓴 글이기에 독자에 따라 읽다가 지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이어의 솔직한 수다와 은근한 유머가 이런 점을 상쇄해주는 면이 있다. 제프 다이어는 이 책에서 로런스에 대한 연구서를 완성하지 않는다. 그 '변명'을 책의 마지막에 다소 '교훈적'으로 써놓은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이유가 나름 인상적이다.  

 

**전자책이 아니라면 물성으로서의 책 역시 독자에게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표지가 일반적인 소프트커버에 비해 얇아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항상 거슬리는 더스트 커버가 같이 나오지 않은 점은 좋다. 

 

***미주에 대한 방식이 독자에게는 불편하다. 본문의 해당 문장 일부를 미주란에 가져와 참고문헌을 기록해두었는데, 원서에 번호가 없었더라도, 번역서에는 본문에 일련번호를 달아 혹시나 찾아보고 싶은 독자가 활용하기 쉽게 배려해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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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방랑하고 방황하며 로런스에 다가가는 작가의 고백 | 기본 카테고리 2021-08-08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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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루고 짜증 내도 괜찮아

제프 다이어 저/이한이 역
주영사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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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고 짜증내도 괜찮아》

: Out of Sheer Rage

제프 다이어(Geoff Dyer) 지음 | 이한이 옮김 | [주영사]

 

 

‘끊임없이 방랑하고 방황하며 로런스에 다가가는 작가의 고백’

 

몇 년 전에 《우연히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를 읽고 나서 단번에 제프 다이어(Geoff Dyer)라는 작가가 마음에 들었다. 이 에세이에 나오는 한 장면인 고대 유적지의 한 복판에서 폐허를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에 매료되었더랬다. 그리고 묘사가 무척이나 ‘사진적’인 느낌을 준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제프 다이어는 《지속의 순간들》에서처럼 본격적으로 사진에 대해 글을 썼던 작가였다. 이후 《지속의 순간들》를 비롯하여 제프 다이어의 책을 더 찾아보았고, 재즈에 관한 글을 파격적인 형식으로 써내려간 《그러나 아름다운》과 같은 책도 만났다. 다만 《내가 널 파리에서 사랑했을 때》와 같은 소설은 인상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문학에 대한 감수성이 아직 부족해서이리라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영국 문학의 르네상스인’, ‘국가적인 보물’이라고 불리는 이 작가의 지적이고 자유분방한 에세이를 좋아하게 되었고 기회가 될 때마다 다이어의 책이 나오길 계속 기다린다.

 

이번 여름에 만난 다이어의 책은 《미루고 짜증내도 괜찮아》다. 제프 다이어는 영국 소설가 D.H. 로런스에 관한 연구서를 쓰기로 마음먹지만 도대체 언제 시작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다이어의 글쓰기 과정을 보여주는 일종의 에세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내가 이 책에 끌렸던 이유는, 로런스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언젠가 읽다가 멈추었던 《무지개》의 처음 몇 페이지를 읽으면서 대단한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후에 제대로 로런스를 읽어본 적은 없는데,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읽을 때 로런스가 쓴 《미국 고전문학 강의》라는 책에 수록한 《모비 딕》 서평을 읽어본 것이 다였다. 로런스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견해가 강하게 배어 있는 《모비 딕》비평을 읽으면서, 이 책에 대해 비판하기도 하면서도 그가 《모비 딕》과 멜빌을 얼마나 대단하게 생각하고 주목했는지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제프 다이어는 로런스가 《미국 고전문학 강의》에 쓴 비평문에서 ‘상상력 있는 문장을 썼다’고 극찬하기도 한다.

 

코로나 유행만 아니었다면 여름 휴가지에 《미루고 짜증내도 괜찮아》을 들고 갔어도 무척 재미있게 읽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 이유는 다이어가 로런스 연구서를 쓰는 과정이 독자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무척 재미있고 때론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이 남자는 무척이나 산만하고 한 곳에 진득하니 머물러 있질 못한다. 끊임없이 연구서를 쓰기 위한 완벽한 장소를 찾아다니지만, 지금 살고 있고 단지 ‘거쳐 가는’ 아파트를 나갈지 말지도 결정하지 못하는 지독한 결정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지인이 자신의 별장에 다이어를 초대하지만, 풍경이 너무나 완벽해서 글쓰기에 좋지 않다고 불평한다. 그래서 결국은 멍 때리다가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내거나, 애인과 차를 타고 다니다가 차 사고를 내기도 하면서 결국은 회복하느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 책은 장의 구분 없이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마치 다이어의 산만한 머릿속 상태를 그대로 글로 옮겨놓은 것 같다. 연구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지만, 또 끊임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글을 쓰는 대신 다른 일로 그 시간을 채우면서 정작 해야 할 일을 미루는데 선수다. 휴가지에서 혹은 집에서 여름을 보내면서 제프 다이어가 어떻게 시간을 낭비하고 소일하는지를 마치 옆에서 보는 듯 재미가 있다. 여기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다소 수다스럽다고 느껴지는 작가의 변명과 엉뚱한 생각들이 쉬지 않고 지면으로 침투한다. 이것이 영국식 유머인지는 모르겠지만, 빌 브라이슨이나 마이클 부스가 보여주는 식의 유머도 보이긴 한다. 무엇보다 읽는 데 크게 부담이 없어서 좋다.

 

또 다이어의 독특한 ‘로런스 연구서 쓰기 프로젝트’에 관한 기록이 참신하게 다가오는 것은 다이어가 로런스의 작품들을 바탕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는 태리 이글턴 같은 문학 비평가들의 ‘이론’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기도 한다. 이들의 문학 이론을 ‘쓰레기’라고 말할 정도로 다이어는 문학에서 이론을 앞세우는 행태에 거부감을 갖는 듯하다. 대신 그는 로런스의 서간문을 무척이나 좋아하기에 여기에서 상당한 문장을 인용한다. 따라서 다이어는 작품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로런스 연구서를 쓰는 것이 아니라 로런스라는 인물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기반으로 사람에게 점차 다가가는 방식을 취한다.

 

로런스 역시 끊임없이 살 곳을 옮겨 다녔다는 점, 가구는 살 곳에 맞춰 매번 새롭게 고치거나 만들어 썼다는 점도 언급한다. 다이어는 로런스의 생가와 이탈리아에서 잠시 살았던 집 등을 방문하면서 로런스라는 인물에 조금씩 다가간다. 어떤 면에서는 다이어가 심지어 로런스를 점차 닮아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인상마저 준다. 아니면 다이어과 로런스에는 공통점이 많았거나. “나는 어디서든 이방인이고, 오직 ‘모든 곳이 내집’이다.”라고 했던 로런스처럼 말이다. 특히 다이어나 로런스 모두 노동자 가족의 자녀로 다이어는 아마도 귀족 출신의 작가들보다 더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다이어와 로런스 모두 노동자 집안 배경에서 나온데다, 끊임없이 글쓰기를 미루고, 살 곳을 찾아 부단히 옮겨 다닌 것을 보면 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진다. 극심한 결정 장애가 있는데다 ‘부단히’ 글쓰기를 미루면서도 로런스 연구서를 쓰기주변을 방황하듯 맴도는 모습에다 불쑥 밀고 들어오는 생각들을 새로운 기대와 함께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로런스라는 인물에 좀 더 가까이 가게 되어 그를 보다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이게 다이어의 글쓰기가 지닌 장점이 아닐까 싶다. 내가 다이어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렇게 산만한 와중에도 그가 어쩌다 던지는 한 마디에 주목하게 되기도 한다.

 

 

“타오르미나에 앉아 있는 것, 이것이 내가 사랑하는 내 인생이었다.” (84)

 

 

“인생은 사실 자신이 좋아하는 따뜻한 음료를 찾는 것이다.”(98)

 

 

코로나로 여행 가기 힘들어졌지만 로런스 연구를 위해 끊임없이 방랑하고 방황하며 좌충우돌하는 제프 다이어. 그의 발자국을 따라가며 아쉬움을 대신해본다.

 

 

[책 속으로]

[1]

"타오르미나에 앉아 있는 것, 이것이 내가 사랑하는 내 인생이었다." (84)

 

[2]

"인생은 사실 자신이 좋아하는 따뜻한 음료를 찾는 것이다." (98)

 

[3]

"글쓰기란 그런 장면에 흠뻑 잠기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거리를 두는 일이다." (125)

 

[4]

"나는 어디서든 이방인이고, 오직 ‘모든 곳이 내집‘이다." (129)
- D.H. 로런스의 말

 

[5]

"읽을 만한 로런스의 편지가 더 있기를 바라는 진짜 이유는 그것들이 로런스 연구서를 쓰고 있지 않는 것에 대한 완벽한 핑계가 되어서였다." (144)

 

[6] 

"이 문제를 생각하면 할수록, 이 책의 진짜 주제, 내가 쓰는걸 회피하고 있는 그 주제는, 바로 절망이라는 생각이 든다."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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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빌 탄생 202주년: 멜빌의 의식 내면을 들여다보기 | 기본 카테고리 2021-08-0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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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저/하비에르 사발라 그림/공진호 역
문학동네 | 201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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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Street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지음 | 공진호 옮김 | [문학동네]

 

멜빌 탄생 202주년: 멜빌의 의식 내면을 들여다보기

 

더위의 한 가운데에 새로운 달이 시작되었다. 81일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모비 딕의 작가 허먼 멜빌. 181981일 생이므로 오늘은 그의 탄생 202주년 되는 날이다. 매년 한번 씩은 모비 딕을 읽어보려 한다. 작년에는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일러스트 모비 딕을 읽어보았고, 올해는 다시 작가정신에서 출간한 아셰트 클래식 모비 딕을 읽어볼 계획이다. 오늘은 중단편 소설 필경사 바틀비를 다시 읽고 정리해본다.

 

몇 년 전에 필경사 바틀비를 읽고는 난감하다는 느낌을 받았더랬다. 이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자 하는 걸까, 짧은 소설임에도 도저히 접근이 불가능해 보였던 소설이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번역자 공진호의 해설을 우연히 펼쳤다가 눈에 들어온 부분이 있었다.

 

이 소설은 읽는 사람에 따라 프로테우스처럼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을 원하느냐에 따라 얻는 것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이 각종 이데올로기를 표방할 잠재성을 품고 있지만, 어느 한 가지를 주장하며 그것이 전부인 양 취급하면 곤란하다.”(106)

 

번역자의 도움말을 읽는 순간 아차 싶었다. 모비 딕에서도 독자들이 각자 나름의 읽기로 해석하고 발견한 수많은 상징과 알레고리들이 있지 않았던가 싶었다. 멜빌이 글을 쓸 때는 한 단어 한 단어를 음미하듯다루었다는 역자의 설명과 함께 용기를 내어 다시 필경사 바틀비를 읽어보았다. 그래서 다시 이 책을 읽으며 내 해석이 옳고 그름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 다만 나의 이해와 해석이 유일하다고 생각하지는 말 것을 기준으로 읽기로 했다.

 

이 소설의 배경은 뉴욕 맨해튼의 월스트리트(Wall Street)이다. 말하자면 벽이 둘러쳐진 거리인데, 지금의 뉴욕은 과거에 유럽에서 이주한 네덜란드 인들이 뉴암스테르담으로 불렀던 곳이다. 그리고 이들이 미국 원주민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세운 방벽이 바로 지금의 맨해튼의 다운타운을 동서로 막았던 장벽이었던 셈이다. 19세기에 인종 문제/백인 우월주의적 시각을 예민하게 감지했던 허먼 멜빌이 이 소재에 주목했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소설의 화자는 스스로를 초로에 든’ 60세 가량의 변호사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바틀비는 화자가 고용한 필경사였다. 문제는 바틀비가 필사 작업을 시작한 지 사흘이 지나면서 고용주인 화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기 시작하면서 표면화되었다. 바틀비가 필사한 필사본을 검증하는 작업에 바틀비가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

 

화자가 심부름을 부탁하거나 다른 직원의 의견을 들으며 바틀비를 압박해도 얼굴은 아무 생각 없는 듯 태연했고, 회색 눈은 흐릿하게 가라앉은상태로 모든 지시를 거부하고 있었다. 화자를 비롯한 사무실의 직원들도 당혹감을 느끼며 충격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도대체 왜?’냐고 물으면 대답은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로 돌아올 뿐이다. “소극적인 저항처럼 열성적인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없다.”(38) 도저히 합리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길이 없는 상황이다.

 

화자인 변호사는 쓰라린 당혹감으로 바틀비의 거부를 무시하거나 심지어는 바틀비를 피해 본인이 나가기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사무실을 이사하고 나서도 여전히 이전 사무실 건물에 나타나 배회한다는 건물주의 불평을 들으며, 화자는 손을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급기야 건물주는 바틀비를 부랑자로 몰아 맨해튼의 유명한 교소도인 툼스구치소로 보낸다. ‘툼스(tombs)'는 구치소의 별칭이었는데 섬뜩하게 무덤을 의미한다. 곧 이 구치소의 이미지는 죽음과 이어지고 있었다.

 

바틀비가 구치소에 수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화자는 바틀비를 면회하러 구치소로 간다. 다소 속물적이기도 했던 화자는 바틀비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 구치소 조리장에게 돈까지 쥐어주며 좋은 식사를 대접해달라고 부탁까지 한다. 하지만 바틀비의 대답은 나는 오늘 식사를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며 구치소에서 식사까지 거부한다.

 

화자가 바틀비를 또 다시 방문했을 때, 그는 굉장한 두께로 둘러친 벽에 갇힌 안마당에웅크리고 누워있었다. 식사를 거부하던 바틀비는 눈을 뜬 체 사망한 상태였고, 면회간 화자가 바틀비의 눈을 감겨주며 성경 구절을 중얼거린다. 화자는 바틀비가 항상 벽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그가 결국 죽어간 구치소 안마당의 잔디밭을 영원한 피라미드의 심장인 듯 했다라고 언급한다.

 

이 대목과 관련하여 번역가의 지적이 눈에 띈다. 1851년 말, 32살의 청년 작가 멜빌이 너대니얼 호손에게 보낸 편지의 대목을 언급하는 다음 내용이 흥미롭다.

 

저는 불과 몇 년 전에야 발육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씨앗과 같습니다. 삼천 년 동안 한 알의 씨앗에 불과했지만, 영국 땅에 심겨 발아하여 푸른 초목으로 성장하고는 죽어 흙으로 돌아간 씨앗 말입니다. 스물다섯 살까지만 해도 저는 땅에 심기기 전의 그런 씨앗처럼 발육하지 못했습니다.”(99)

 

이 대목에서 청년 멜빌의 고뇌를 일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1850년 여름, 집 근처로 이사 온 호손과 급격히 친해진 멜빌은 셰익스피어를 재발견하게 되고 모비 딕 초고를 비극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전면 개정하기에 이른다. ‘영국 땅에 대한 언급은 셰익스피어 문학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당시 미국은 여전히 문학적으로 척박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문학적으로 큰 영향을 준 전통을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중요한 건 이 편지의 대목에서 이집트의 피라미드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피라미드가 다름 아닌 무덤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바틀비가 수감되었던 구치소 깊은 곳에 두터운 벽 속에 갇힌 잔디밭을 피라미드의 심장으로 보는 것이 이해가 된다. 역자의 표현대로 바로 구치소의 잔디밭은 죽음의 잠재성과 생명의 잠재성이 혼재한 공간으로서 이해할 수 있겠다.

 

여기에 더하여 모비 딕의 출간(1851) 이후 평단과 대중 독자의 외면을 받은 이후 2년 반 후에 출간된 필경사 바틀비를 보면 멜빌이 느꼈을 불안과 두려움을 조금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를테면 작가로서보다 집안의 가장이자 생활인으로서 허먼 멜빌을 들여다보면 필경사 바틀비를 수긍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멜빌이 모비 딕을 출간한 해에 그는 이제 결혼 4년차에 장남을 둔 가장이었다. 아직은 혈기 왕성하고 초기 두 편의 소설이 큰 성공을 거두었기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비 딕이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고, 이듬해에 차남이 태어났고, 다시 2년 후에는 첫딸도 태어났다. 생활인으로서 멜빌은 거듭되는 작품의 상업적인 실패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실제로 멜빌이 호손에게 보낸 편지에는 돈이 나를 저주하네요!’라는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도 있었다.

 

여기에 185312월에 모비 딕을 출판했던 출판사 건물에 화재가 발생하여, 초판 300부마저 전소되는 사건이 있었다. 나는 이 사건이 가장으로서 큰 책임감을 느꼈을 멜빌에게 상당한 심리적 타격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모비 딕이 출간된 후 2년 남짓 지난 시점에서 필경사 바틀비가 수록된 단편집이 출간되었고, 이 소설의 뒷 부분에 바틀비의 과거에 관한 소문을 덧붙인 대목을 주목해본다. 바틀비가 워싱턴의 사서(, dead letter) 우편물 담당 부서의 하급 직원이었다는 설정이었다. 번역자의 주석에 따르면 여기서 말하는 사서배달 불능 우편물을 말한다. 주소가 잘못되어 전달할 길이 없거나, 보낸 이와 받는 이 모두 이사를 가거나 사망한 경우 반송도 되지 못하는 우편물을 매년 대량으로 모아서 불에 태운다는 것이다.

 

옮긴이의 설명에 따르면 당대의 평론가들은 바틀비의 모델로 워싱턴 어빙, 에드거 앨런 포, 랠프 월도 에머슨등의 동시대 작가를 언급했다고 하지만, 나는 바틀비가 멜빌이 가치관뿐만 아니라 그가 다른 시기에 겪었던 다양한 체험이 녹아 형성된 캐릭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틀비가 처한 상황은 벌이가 변변치 않은 가장으로서 받는 심리적인 부담감과 자신의 이상과의 불일치, 모순적이고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반감과 모비 딕과 같이 야심차게 준비한 작업에 대한 사회의 냉대에 대한 좌절감 등이 응결된 멜빌 자신의 내면 풍경이 아니었던가 생각해본다.

 

물론 바틀비가 바로 허먼 멜빌이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필경사 바틀비의 화자인 변호사가 바틀비에게 동정심을 느끼면서 그가 우주에서 철저하게 혼자라 느꼈을 법하고, ‘대서양 한복판의 난파선 조각이라고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목은 바로 멜빌 자신의 고립감을 표현해낸 듯하다. 23세가 되던 1842년에 그는 포경선을 탔는데, 이 고립된 공간에서 폭압과 격무로 고통을 받다가 마르키즈 제도에서 탈주한 경험을 떠올렸을 법하다. 포경선을 탈출한 멜빌은 골짜기에서 생활하다가 다시 오스트레일리아 포경선을 타고 섬에서 나오게 되는데, 여기서 직무수행을 거부한 죄로 짧게 구금된 적이 있었다. 나는 특히 이 점에 주목해본다. 이 당시의 경험을 모아 보면 바틀비가 바로 멜빌이 아니었나 싶다. 불합리하고 모순된 공간에서 합리적이고자 선택한 행동으로 그는 수감된 당시의 경험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는 필경사 바틀비의 한 대목과도 상통한다.

 

뭐라고! 꼼짝도 하지 않으려는 그가 부랑자요 방랑자라고? 그가 부랑자가 되지 않으려 한다는 것 때문에 너는 그를 부랑자로 치부하려는 거로군.”(74)

 

결국 바틀비는 해석에 따라 이기적인 자본주의’, ‘억압적인 법률과 질서’, ‘합리주의를 대변하는 변호사 화자의 지시를 거부하기로 선택한 인물이다. 그런 이유로 바틀비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지금은 좀 더 합리적인 사람이 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54)

 

결국 바틀비는 사회가 강요하는 합리주의적 규범을 따르지 않기로 선택하고, 이 선택을 고집스럽게 긍정했을 뿐이다. 물론 그 결과 이집트의 피라미드 같은 무덤교도소에 갇히게 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따라서 나는 필경사 바틀비가 무엇보다도 허먼 멜빌의 내면 풍경을 표현해낸 작품이라고 보고 싶다. 구치소의 벽에 갇혀 있던 바틀비는 멜빌 내면에 있는 자아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당시에 멜빌이 처했던 상황까지도 고려해서 읽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번역자가 제공한 것이므로 이번에 다시 소설을 읽으면서 정리하게 된 사항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결국 작가가 처한 상황과 경험들을 이해하고 상상함으로써 작품에 보다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사항]

 

그리고 한 가지 흥미로운 단어에 주목해본다. 바로 부랑자라는 단어다. 멜빌은 28세이던 1847년에 첫 소설 타이피의 속편으로 오무: 남양 모험기 Omoo: A Narrative of Adventure in the South Seas를 발표하는데, 이 오무(omoo)라는 표현이 바로 타히티어로 부랑자라는 의미라고 한다. 내가 주목한 지점은 단테의 신곡 연옥편에 OMO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 단어와의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 것이다. 그 이유는 이 단어가 라틴어로 사람을 뜻하는 homo를 가리킨다는 역자의 설명 때문이었다.

 

눈구멍은 보석이 빠진 반지 같았으며

사람 얼굴에서 OMO를 읽는 자는

거기서 손쉽게 M자를 알아볼 것이다.”

(신곡 연옥, 김운찬 옮김, 열린책들)

 

여기서 번역자의 설명이 이어지는데, ‘중세의 속설에 따르면 조물주가 사람 얼굴이 이 글자를 새겨 넣었다고 한다. 좌우의 O는 두 눈, ‘M은 코와 눈썹 언저리를 가리킨다고 설명하고 있다. 중세에 사람을 가리키던 이 말이, 근대에 들어와 유럽에서 들어온 이들이 타히티에 전파한 단어가 아닐까 상상해보았다. 타히티를 방문한 유럽인들이 오모 omo라는 단어를 쓰는 광경을 타이히 원주민들이 보았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아닐까. 배를 타고 꾀죄죄한 몰골로 들어와서 거들먹거리던 유럽인들이 타이티 원주민의 눈에는 부랑자로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말하자면 중세에 omo라는 단어는 조물주가 빚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면, 근대에 들어와 타히티에서는 omoo라는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로 사용된 것은 아닐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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