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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 [언어의 온도] | 원숭이의 서재 2018-03-1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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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언어의 온도

이기주 저
말글터 | 201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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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우고 읽기 좋은 휴식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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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넘게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 칸을 꾸준히 채우고 있는 이기주 작가의 에세이 <언어의 온도> 이제야 마쳤다.

나는 독서를 할때에도 장르나 작가, 분위기, 내용 등에 따라 읽는 방법을 달리한다. 어떠한 책은 쉬지 않고 빠르게 읽어내려가야 맛이 사는 책이 있으며, 어떤 책은 읽은 문장을 읽고 읽으며 곱씹는 맛에 읽는 책도 있다. 어떤 책들은 마치 공부를 하듯 진중하게 이해해야하며, 어떤 책들은 수양의 자세로 마음을 비우고 새롭게 채우는 느낌으로 읽어 나간다.

이렇게 서로 다른 방법으로 읽는 독서 습관에 더해 읽는 공간(상황) 역시 구분을 하는 편이다.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잠들기 직전에 읽는 책이 있는가하면, 서재의 책상에서 읽는 책이 있고, 일을 하며 중간중간에 읽을 있도록 회사 책상에 놓인 책이 있는가하면, 모든 것을  비우는 화장실에서 읽는 책이 있다.



<언어의 온도> 나의 독서법(습관)에서 보자면 화장실에서 일을 때에 수양을 하듯 힘을 빼고 마음을 비운채 읽은 책이다.

취미 독서를 즐기며 서평을 남기는 또한 하나의 즐거움인데 내가 서평을 남기는 이유는 재독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특히 좋은 책들을 읽고 서평을 남긴 , 나중에 시간이 한참 지나서 재독을 하고 전의 서평을 읽어보면 느끼는 바가 많다. 20대에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이나 배운점 들이 30대에 들어서 재독을 하면 완전히 달라져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때문일까 서평을 남기는 책들은 대체로 소설로 분류되는 책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에세이인 책을 읽고 서평이라 만한 뭔가를 남기기가 쉽지 않음이 당연하다. 에세이 치고도 개인적으로는 난해한 책으로 읽혔다. 그저 빼고 읽으면 그만인 책일텐데 너무 오랜시간 베스트셀러에 남아 있기 때문일까. 나름의 기대감이 있었던것 같다.



에세이란 장르는 개인적으로 인문학의 중심에 가까운 장르라는 생각을 한다. 인문학이 단순히 말하자면 인간을 탐구하는 학문인데 우리에게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삶의 경험에서 오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기 위한 값싼 행위 정도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신도 하나, 영혼도 하나, 몸도 하나 뿐이다. 때문에 짧은 생에 경험할 있는 것은 많든 적든 유한하고 유한한 경험을 조금이라도 늘려보기 위해 인문학을 접한다. 그런의미에서 <언어의 온도> 같은 책들은 보다 경험에서 오는 깨달음과 깨달음을 통한 성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 잘쓰는 사람의 끄적임 정도로 읽혔다.

수년 전에 읽었던 #이어령 교수님의 #디지로그 비슷한 임에도 깨닫고 성찰하는 바가 컸는데 <언어의 온도> 쉬이 읽힌다는 장점이 있지만 배움은 적었던 같다.



베스트셀러가 이유는 아마 누구에게나 쉽게 읽혔기 때문인 같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짜게 점수를 주는 편인데 그런면에서 이기주 작게에겐 미안한 마음이 든다. 분명 쓰인 책이니 이렇게 오랜시간 베스트셀러에 머물텐데 명성에 비해 남는게 적은 책이다.



<언어의 온도> 읽는다면 역시 나처럼 마음을 비우고 읽는 쪽을 권한다. 시작부터 기대도 없었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워낙 기대 없이 보아서 그런가보다. 그렇게 빼고, 마음 비우고 읽으면 돈이나 시간이 아까운 정도는 아니다. 또한 독서를 취미로 하며 쉬어가고 싶을 때에 읽기 좋은 책이다. 너무 많은 실용서라든가 어둡고 깊이 있는 고전들을 많이 읽었다면 <언어의 온도> 통해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가끔 이런 휴식이 필요한 독서인들에게 책을 추천해 본다.



이기주 <언어의 온도> [6/10 : S2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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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82년생 김지영] | 원숭이의 서재 2018-03-1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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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저
민음사 | 2016년 10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여자보다 오히려 남자가 읽고 이해해야할 필독서.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오늘 올릴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내가 쓴 모든 서평 중에 가장 씁쓸한 서평이 되겠다. 서평에 앞서 미리 경고 문구 정도는 올려야겠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흔치 않은 수컷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다. 상당히 페미니즘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자칫 많은 남성분들이 눈살을 찌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서평은 보수주의적 또는 권위적 시점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남성분이라면 과감히 패스해 주시길 바란다.



지금의 대한민국, 그 안에서도 딱 중간에 머무는 나이대가 아마도 80년대 초반생들이다. 때문일까 이 책은 10대부터 70대까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함일지 82년생이며 여성인 김지영씨를 주인공으로 그려냈다. 내가 남성이긴 하지만 81년생이기 때문일까 책을 읽는 내내 깊은 공감을 하며 시작부터 내달렸다. 또한 비슷한 환경을 경험했기에 그 공감은 배가 되었다. 학창 시절과 그 이후의 사회 생활, 그리고 이어지는 결혼 생활을 하며 거미줄처럼 이어진 주변의 이야기들을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로 엮어 100년 전이나 혹은 100년 후에도 변함 없을지 모를 저급한 성차별에 대하여 써내려간 책이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며 느낀점이라면 주인공 김지영은 이 시대의 여성 그대로를 표현하고 있으며, 언니 김은영은 작가의 메신저 역할을 한다. 이 책에서의 언니 김은영은 매우 중요한 나침반 역할이라 할 수 있겠다. 반대로 그의 남동생의 경우는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으며 아버지 역시 그 존재감은 여성 캐릭터들에 비해 많이 묻혀 있는 모습이다.

<82년생 김지영>의 내용은 줄일 것도 없이, 가감이 전혀 없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줄거리는 이쯤에서 마친다.



오늘은 책의 내용에 더하여 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하여 말해보고자 한다. 위에서 말했듯 나는 페미니스트다. 굳이 따지자면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에 가깝다. 한국의 보편적 사회에서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치를 떤다. 대체로는 그 의미를 정확히 모른채 떠올리는 것이 ‘여가부’ 정도일 것이다. 정확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는 여성 해방 운동가도 아니요 여가부를 옹호하는 입장은 더욱 더 아니다. 단지 뜻도 모르고 유교 사상을 외치거나 보수주의, 권위주의 또는 기원도 모른채 마초 문화에 빠져 있는 이 사회의 부조리가 적어도 앞으로는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김지영씨가 겪은 일들은 나 역시도 겪어온 일들이다. 20대에 들어 중소 기업에서 중견 기업으로, 다시 대기업으로 사회라는 계단을 오르며 마주친 수많은 성적 차별과 그 보다많은 희롱들은 나를 내부고발자에 이르게 만들었다. 그때가 20대 중후반 무렵이었는데 이때부터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러한 이야기들을 아주 조금 나눠보고자 한다.

페미니즘은 단지 여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그것은 소외되고 불평등한 이 세상에서 남성과 여성의 구분 없이 평등한 위치에 바로 서고자 하는 여성 해방 이데올로기다.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이 문제 삼는 것은 생물학적 의미에서의 ‘성’이 아닌 사회적 의미에서의 ‘성’이 되겠다. (그러니까 내 몸에는 달린 아보카도가 그녀의 몸에는 없다거나, 그녀가 한 달에 한 번쯤 행하는 행사를 나는 치루지 않는다는 등의 생물학적인 부분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워낙 다양한 페미니즘이 존재하고 있기에 모두 다 설명을 할 수는 없겠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이 공존하는 사회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같은 조건에서도 수많은 기회를 놓치고 같은 결과값을 내도 그 대가는 평등치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뿐만일까 남성들은 그들의 기준에서 - 대부분은 나름의 수위가 있다 - 치는 농이 상대 여성에겐 치욕감이나 모욕감, 불쾌감을 줄 수 있고 더 나아가 성희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채 한다기 보다는 전혀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이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알면서 그런다면 처벌을 강화하면 되는데 대체로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 그러니 우리나라엔 여전히 사회적 교육이 필요하다.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도록 교육하라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이 올바르게 여성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갈 부분은 남성들이 말하는 사회적 역차별에 대한 부분이다. 우리는 역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기 이전에 ‘차이’와 ‘차별’이라는 두 단어를 정확히 구분해서 사용할 줄 알아야한다. 아무리 세상이 평등해저도 생물학적인 부분마저 평등해 질 수 는 없는 노릇이다. 이게 바로 ‘차이’가 되겠다. 반대로 사회적인 부분에서의 불평등이 바로 ‘차별’이 된다.

‘차이’와 ‘차별’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한다면 이 사회는 성차별로부터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다. 그러니 이 두 단어가 정확히 구분이 안 된다면 지금 당장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차이’와 ‘차별’에 대한 정의를 보고 ‘페미니즘’에 대한 간략한 검색을 해보기 바란다. 그것이 성차별에 대한 이해의 첫걸음이다.



이제 우리 사회를 둘러보자. 역사적으로 수탈과 침략을 지속적으로 당해서일까, 아니면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한국 사회는 늘 먹는 것에 허덕인다. 우리는 남녀 관계에 있어서도 먹을 것을 대하듯 표현해 마지 않는다. 남성들은 여성과의 잠자리 후 그것을 폄하 하거나 혹은 자신을 조금더 우월한 대상으로 만들 때, ‘먹다’ 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조금 더 보태자면 마치 잘 익은 사과처럼 사실주의 표현을 덧붙여 ‘똑 따...’라는 표현을 쓴다. 우리 모두는 사랑을 나눈다. 때로는 정신적인 사랑을, 때로는 육체적인 사랑을 그 둘은 분명히 분리될 수 있다. 적어도 현대 사회에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후자인 육체적 사랑에 대해 살펴보자.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간혹 사내 연애 또는 사내에서의 이성관계가 잠자리로 거듭났을때,  그리고 그 결과가 그리 좋지 못한 경우에 해당하는 사례를 보자. 남성의 경우 우월한 입지에 있다. 그 숫자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영웅에 가까워진다. 심지어 주변 동료들은 그런 그를 부러워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반대의 입장인 여성을 보자. 같은 상황에서 같은 행동을 했을 뿐인데 더럽고 불쾌한 그리고 찝찝한 표현들이 따라붙는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불평등이다. 같은 기회를 거치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에 놓이게 된다. 누군가는 훈장을 달고 누군가는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기게 된다.



내 주변에서 일어난 실제 경험담을 들려주고 싶다. 어느날 나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자랑스럽게 자신의 외도에 대해 말하는 친구와 깊이있는 대화를 나눈적이 있다. 그는 결혼을 했으며 슬하에 자식을 몇 둔 - 너무 자세한 정보를 올리지 않기 위해 그저 몇 이라 해둔다 - 그러니까 보편적인 가정의 가장이다. 그는 결혼 전에도 그랬고 결혼 후에도 그랬으며 자녀가 늘어남에도 꾸준히 외도를 이어왔다. 나는 그 친구에게 아내가 저리 힘들게 육아와 살림을 맡아 하는데 외도를 하면 미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다. 친구는 가장이기에 괜찮다고 했다. 이렇게 힘들게 가정을 건사하는데 술과 여자라도 없으면 버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 반대로 네 부인이 가장이 되어 집안을 먹여살리고 네가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 한다는 가정하에 네 부인이 외도를 하면 어쩔래? 라고 물으니 친구가 단호하게 말했다. “년놈들을 다 잡아 죽일거야.” 참으로 궁금했다. 너는 되는데 아내가 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이냐? 라고 하니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그냥 안 된다고 한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방법론에 대한 첫걸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성차별을 없앨 가장 단순한 방법, 그 첫걸음은 상대의 입장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된다. 내가 상대가 되어 기분 나쁠 행동이라면 혹은 조금이라도 머뭇거려지는 행동이라면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러한 방법이야 말로 애초에 분란을 없앨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한 번만 더 생각하자. 우리가 상대를 대할 때, 그것이 어떠한 경우이든 한 번만 더 생각하자. 그리고 행동하자. 이것이 기분 나쁠 행동인가? 뭔가 찜찜하고 고개가 갸우뚱 거려지는 행동인가에 대해 한 번만 생각해 보면 대체로 많은 문제들은 증발해 버리고 만다. 그것이 사회에서의 성차별이건 명절때 마다 이루어지는 고부간의 갈등이건 간에 단 한번만 더 생각해도 우리 사회는 매우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요즘 미투 운동의 바람이 거세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바람직한 운동이라 생각한다. 문화적 시각을 보수주의에 입각하여 연착륙 시키려 한다면 100년은 더 걸릴 것이다. 차라리 이참에 순풍에 돛단듯 이땅에 부조리들을 들어내어야 한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82년생 김지영>은 미투 운동 덕분에 더 큰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기회가 참 좋다고 생각한다. 이 기회에 많은 남성들이 조금이라도 여성에 대해 이해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고, 이땅에 남은 저급한 성차별 문화가 조금이라도 개선되기를 바란다.



끝으로 <82년생 김지영>에 대해 한 마디 더 하자면, 이 책은 이 땅에 태어난 여성들이 공감하며 흐느끼며 볼 책이 아니다. 내가 읽어본 <82년생 김지영>은 남성들이 특히 읽어야 할 책임에 분명하다. 보다 바른 이해를 위하여 읽어야 하고 공감해야한다. 그 공감만으로도 많은 부분이 바뀔 수 있다. 모든 변화와 혁신은 ‘이해’에서 시작된다. 오늘 글이 길었고 쓸 때 없는 말들만 가득했을 지라도 끝까지 한 마디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남성들이 모두 잘못한게 아니고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이 나라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기에 이해를 못 하는 것 뿐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누구의 잘못으로 떠넘기기 보다는 여성, 남성 할 것 없이 미투 같은 운동에 동참하고 여성은 더 용감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남성은 조금 더 여성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문화가 바뀌어가기를 바란다.



이 책은 결코 9점이나 줄 만한 책은 아니라 생각한다. 솔직한 점수는 7점대 정도가 딱 맞을 것 같다. 그럼에도 9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준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좀 더 공감하고 교류하고 이해하고 변화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내 생각을 옮긴 글이고 워낙 글도 잘 못 쓰는 내가 쓴 글이기에 자칫 논쟁이나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못마땅히 여기는 분이라도 그저 못난 사람이 쓴 그저그럴 듯한 글로 여기고 특별히 논쟁이나 시시비비 하지 않았음 하는 바람이다.

건강한 대한민국, 건강한 사회를 위해 한 걸음 나아갔음 하는 바람으로 씁쓸한 글을 마무리한다.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9/10 : B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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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원숭이의 서재 2018-03-19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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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영하 저
문학동네 | 201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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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작가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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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할 책은 1996년에 발표하여 1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한 김영하 작가의 장편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이다. 제목에서부터 습하고 음침한 느낌이 부족함 없이 전달되고 있다. 책을 주문할 때의 습관 하나가 반드시 서평을 찾아보거나 대형 서점에 들러 원하는 책들을 잠시 만나본 주문을 하는 것인데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제목이 너무 끌려 간단한 줄거리도 모른 카트에 넣고 말았다. 물론 이미 내게 김영하 작가는 믿고 보는 작가이고 뿐만아니라 모든 책을 읽어보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뭐랄까. EBS에서 나올법한 교양 프로그램을 보는 것과 같은 시작은 나름의 신선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책의 첫장이 시작되기도 전에 보여지는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이나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1> 등의 그림이 실려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했고 목차에서 역시 <마라의 죽음>이나 <사르다나팔의 죽음> 등의 제목으로 미루어 처음에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금세 삶의 끝을 스스로 정하고 선택하게 도와주는 주인공의 직업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삶의 시작을 선택할 없다. 원해서 태어난 사람도 없고 싫다고 태어나지 않은 사람도 없다. 하지만 끝이라면 누구나 스스로가 정리할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물론 그것을 단어로 표현하자면자살이라는 좋지 않은 어감으로 이어지고 만다.



자살을 도와주는 일을 업으로 행하는 주인공,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끝을 준비하는 여인 유디트와 미미. 여인의 이야기 인물이 C K. 내가 김영하 작가에게 특히 빠져든 것은 바로 소름돋는 인물 묘사에 있다. 자연주의 작가들에 비해 배경에 대한 묘사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지만 - 적어도 지금까지 접해온 김영하 작가의 책들을 보자면 - 인물 묘사 만큼은 전혀 부족함이 없다. 대사를 많이 넣지 않아도 인물들의 심리 상태가 고스란히 느껴질만큼 인물들의 묘사를 깊이 있게 표현하기에, 특히 죽음을 다룬 이번 작품에서는 날카로운 묘사가 작품을 살리고 있다.



장편 소설치고는 분량이 적은 편에 속하지만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난 후의 여운은 배는 것이다. 워낙죽음’, ‘자살등에 관심이 있던 나이기에 보다 몰입해서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주위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잊을만 하면 몇몇 지인들이 자살을 했고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겐 아마도 꽤나 충격이었던 같다. 때문일까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스스로가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다. 자신의 삶을 추한 상황까지 몰고가기 보다는 가장 완벽한 상태에서 원하는 컨디션에 적당한 옵션을 붙여 죽는 것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을 생각치 않는다면 이만큼 아름다운 죽음도 없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책에서의 죽음은 위의 그것과는 조금은 다른, 일종의 휴식과 안식으로 몰아가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죽음이 감히 우리에게 찾아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비밀스런 죽음의 집으로 달려들어간다면 그것은 죄일까?” 위대한 극작가 보다 훨씬 후대에 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걸음 나아간다. “피의 분출은 시이다. 그건 막을 도리가 없다.” 시를 그녀는 가스오븐의 밸브를 열어놓고 자살했다. 고객들도 실비아 플라스 같은 문재를 지니지 못했을 , 삶의 마지막을 그녀만큼의 아름다움으로 장식했다.

책을 읽으며 특히 기억에 남는 대목이다.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생을 상징하는 봄이 오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온지도 모르겠다. 그런 어느 봄날에 나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읽으며 다시금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조금은 산만한 느낌이 들었던 이번 책은 <오직 남자> 비하여 부족한 부분도 많았지만 주제와 소재가 없이 좋았고 초기작 임에도 유려한 문체와 캐릭터들간의 심리 묘사에 반하여 재독 리스트에 올렸다.

아무래도 점점 김영하 작가의 팬이 되어가는 같다.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8/10 : B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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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라쇼몬] | 원숭이의 서재 2018-03-1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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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라쇼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저/서은혜 역
민음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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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다. 붙일 것도 뺄것도 없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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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취미로 하는 이에게아쿠타가와라는 이름은 전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역시 이번 <라쇼몬> 통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문학 세계를 처음 경험했으나 일본의 젊은 문학가들에게 문학인으로서의 발판이 되어주고 등단의 지름길이 되어주는아쿠타가와 대해 알고 있기에 작가의 이름은 친근했다.

그럼에도 이제야 접하게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문학 세계는 삶의 과정에 이어 성찰에 이르기까지, 옛날 할머니께서 들려주시던 전례 동화나 민담, 신화처럼 쉽게 읽히지만 평범한 산문의 형태에서 전혀 새로운 환상 문학 특정 장르에 구분 되지 않고 써내려감에 감탄을 하지 않을 없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라쇼몬>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집으로 유명한 <라쇼몬(나생문)> 비롯하여 열네 편의 단편 소설을 모은 단편선이다.

<노년>이라는 단편으로 등단길에 올랐으며 이어 발표한 <> 일본 문학의 아버지인 나쓰메 소세키의 극착을 받으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일본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작가들이 연이어 자살을 하던 시점이어서 일까, 아쿠타가와 역시 지독한 30대를 보내며 신경쇠약과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1927 35세라는 짧은 생을 스스로 마감하였다.

일본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문하였으며 향후 일본 근대 문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문학계의 거름이 아쿠타가와는 역사, 종교, 자연주의에서 신비 문학, 환상 문학에 이르기까지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독자적인 작품 세계로 문학인들을 이끌었다.



상황에 따른 선과 악의 구분에 대해 깊이 성찰한 <라쇼몬>, 인간의 본능과 본성을 다루는 <>, <마죽>, 본인이 겪은 막연한 불안감을 그대로 표현한 <다네코의 우울>, <> 이어 아이를 잃은 엄마의 이야기 <엄마> 읽으며, 인간의 추악한 내면으로 깊이 빨려 들어갈 있었다. 3자가 되어 어느 누군가의 마음을 훔쳐본다기 보다는 스스로의 내면을 깊이 바라볼 있는 자기 성찰이 강한 작품들이다. 인간의 내면이란 때로는 자신이 컨트롤한 방향대로 움직이지 못한 , 정처 없이 어딘가로 흘러가버리곤 한다.



뿐만아니라 마지막 단편 <갓파> 마치 <반지의 제왕> 처음 접했을 누군가처럼 전혀 경험하지 못한갓파 세계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아쿠타가와는 환상 문학에서 조차 상상치도 못한갓파 삶을 보여주며 속에 넘치는 우리의 부조리에 대해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문장은 - 우리의 삶에 필요한 사상은 삼천 전에 떨어졌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오래된 장작에 불을 댕기고 있을 뿐이리라. - 과학과 문명이 초단위로 발전하고 있는 21세기의 우리들은, 어쩌면 선대에서 이뤄놓은 수많은 본질들을 잊고 그저 겉만 핥아대며 서로가 잘났다는 아우성을 치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사회가, 국가가, 역사가... 우리는 점점 그렇게 부조리 속으로 빠져드는 지도 모르겠다.



불편함을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본질을 보게된다. 그리고 본질을 마주해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나아감이 있다. 올바른 나아감을 위해 이런 문학들을 접하고 생각하고 경험하다보면, 잔인하리만큼 건조한 시대 속에서도 삶의 본질을 이해하고 유물론자의 시선이 아닌  관념론자의 시선으로 물질적 이상의 정신적 풍요로움을 자유로이 누리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이건 독서 취미와는 관계 없이 누구나 번쯤은 위대한 고전을 읽으며 삶에 대한 성찰을 이루고 본질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음 하는 바람이다.

끝으로 어쩌면 잊고 지나칠 <라쇼몬(나생문)>이란 위대한 고전을 내게 소개해준 친구 미주 @ 에게 다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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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연애의 행방] | 원숭이의 서재 2018-03-19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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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연애의 행방

히가시노 게이고 저/양윤옥 역
소미미디어 | 201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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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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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가 연애 소설로 돌아왔다. 무려 ... 이다. 워낙 로맨스쪽에는 관심이 없는데다 특히 남성 작가의 로맨스라면 처다도 보고 싶지 않은 임에도 머리 비우기 분야에선 세계 최고로 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이기에 그것도 로맨스로 돌아온 작품이기에 고민 없이 책장을 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도 아니요, 로맨스라면 절레절레하는 나지만 보는 내내 역시 히가시노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가 쓰면 로맨스도 미스터리가 되고 만다. 이걸 장점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단점이라고 해야하나. 확실한 그만의 스타일이 확실하다는 것과 이제는 히가시노가 작가 이름이라기 보다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렸다는 . 그것만으로도 그가 성공한 작가임에는 틀림 없겠다.



이상하게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도 아닌 나는 어쩌다 보니 그가 펴낸 수십권의 책들을 모두 - 최근 신작 2권을 제외하면 - 읽었다.

어쩌다라는 것은 아마도 특정 상황에서 그의 글이 계속 생각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종의 중독성일게다. 커피에 중독된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 처음으로 하는 행동은 아마 에스프레소 머신에 전원을 넣는 일일 것이다. 내게는 히가시노의 책들이 그런 편이다. 물론 매일, 매번은 전혀 아니고 여러 고전이나 산문, 실용서 같은 것들을 읽다 지칠 쯤이면 생각나는 것이 쾌속 질주 미스터리의 대가 히가시노인 것이다.



<연애의 행방> 설원에서 펼쳐지는 쌍의 연인 - 혹은 연인이 되려하는 - 이야기다. <백은의 >, <눈보라 체이스>, <질풍론도> 이은 설산 시리즈의 신작이기도 <연애의 행방> 기존의 미스터리, 범죄, 추리물에서 벗어나다 못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접근한 제목 그대로의 연애 소설이다.

단숨에 엔딩을 보고 생각은 히가시노가 쓰면 연애 소설도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통의 연애 소설이 주는 풋풋함이나 달콤함 따위를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만 히가시노의 그것은 그것 그대로 나름의 맛이 있다. 설레임 보다는 두근거림 쪽이 어울리는 책이다. 두근거림이란 녀석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의 설레임과 같은 두근거림이 아니고 당장에라도 어떤 사건에 휘말려 버릴 것만 같은 그러니까 사랑보다 공포에 가까운 긴장감이라 하겠다. 연애 소설을 읽으며 처음 느낀 감정이라 그런지 내겐 상당히 신선했다.



몇개의 장으로 쓰여진 <연애의 행방> 장편이 아니라 단편 소설 같은 느낌을 많이 준다. 장에서의 짧은 단편으로 이루어진 커플이 다음 또는 다다음 장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커플을 이어주는 식의 연결 시나리오로 일종의 옴니버스 형태라 보아도 좋을 같다.

앞서 말했지만 책은 온전한 의미에서의 연애 소설이 아니다. ‘살인프로포즈라는 사건으로 바뀌었을 , 내가 느낀 것은 전혀 로맨스 같지 않고 오히려 미스터리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사실 그래서 좋았다. 기욤 뮈소의 로맨스가 민들레스럽다면 히가시노의 로맨스는 완전히 새로운, 그러니까 자체에 비유할 없는 그런 느낌이다.



로맨스에서도 쾌속질주. 우리가 히가시노에 열광하는 이유 하나라면 역시 쾌속질주를 빼놓을 없다. 다른 책을 대여섯 페이지 읽을 시간에 히가시노의 책은 이미 서른 페이지를 넘어갈 만큼 빠르게 읽힌다. 이런 장점을 살려 이번 <연애의 행방> 역시 무지막지한 속도감으로 책의 시작부터 엔딩까지 호흡 제대로 시간을 주지 않고 단숨에 내쳐 달려버린다.

속이 시원하다. 최근 읽은 고전 명작의 깊이감은 느낄 없지만 먹먹함에서 벗어나 간만에 즐긴 히가시노 드라이브의 개방감은 막힌 속을 뚫어 주기에 충분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라면 권하지 않아도 읽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생각을 해봐야 한다. 책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결코 보통의 로맨스가 아니다. 보통의 로맨스를 기대한 사람이라면 책은 우습지도 않은 유치한 색채의 책이 되어버리고 만다. 때문에 가급적 미스터리를 조금 읽어봤고 재미를 아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의미에서 접했으면 좋겠다. 만약 그래도 <연애의 행방> 읽고 싶다면 정말 로맨스 소설은 잊기를 바란다. <연애의 행방> 결코 당신이 생각한 로맨스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연애의 행방> [7.5/10 : B2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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