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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셀 하케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 쌤앤파커스 | 원숭이의 서재 2020-06-05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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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악셀 하케 저/장윤경 역
쌤앤파커스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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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8. 악셀 하케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 쌤앤파커스

인간으로서의 품위란 무엇인가. 나는 ‘품격’, ‘품위’와 같은 단어를 좋아한다.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을 ‘품격’이라 한다. ‘품위’란 직품과 직위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며,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을 말하기도 한다. 또한 사물이 지닌 고상하고 격이 높은 인상을 아울러 품위라 한다.

저자 악셀 하케가 이 책을 집필하기 전 생각 해온 품위란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 정도에 머물렀다. 조금 더 살을 붙이자면, 자신이 타인을 배려할 상황이 아니더라도 기꺼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품위가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예를 들면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 바쁜 상황에서도 친구의 병문안을 가는 것, 급하더라도 새치기하지 않는 것, 마음이 내키지 않더라도 장례식에서 유족들과 끝까지 함께 하는 것, 이런 단순한 행동을 실천하는 것이 품위 있는 삶이 아닐까, 그는 생각했다.

악셀 하케의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을 읽기 전까지, 내게 품위란 ‘배려’라는 항목이 배제된 것이었다. 이를테면 취향이나 안목 같은 것들이 품위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러한 것들은 품위를 외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책의 시작인 <도처에 널려 있는 천박함>이라는 제목만으로 이 시대의 품격에 공감이 간다. 온라인이 세상을 점령한 이 시대는 얼굴을 가리고 이름을 지운 채 천박함으로 물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환경은 ‘천박함’에 한몫을 더한다. 황사, 미세먼지 같은 기후 문제로 시작하여 최근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바이러스까지, 환경적 요인들은 각자도생 사회를 열며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서도 배려라는 항목을 지워가고 있다.

아쉽게도 이 책을 통해 저자는 ‘품위’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진 않는다. 다만 부제와 같이 ‘차별과 배제, 혐오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한’ 이야기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유럽 전역에서 사랑받는 독일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만큼, 그가 써 내려간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단편소설처럼 쉽고 재미있게 읽히지만 이야기 속에 묻어나는 그의 메시지는 날이 선 칼처럼 예리하다. <품위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에서 말하듯 그는 그 나름대로 정의한 품위라는 개념을 쉽게 내려놓지 않는다. 다만 그가 말하는 품위에는 외적인 것이 아닌 내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만은 변함없다. 앞서 말한 배려라는 항목이 품위에 포함되어야 할 필수 요소라면, 선행되어야 할 조건은 바로 ‘이해’일 것이다. 언제, 어디서 시작된 지 알 수 없으나 우리는 무례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언어는 점점 더 폭력적이 되고, 행동은 그보다 훨씬 더 폭력적인 시대다. 이것은 이슈가 된 특정 인물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평범한 우리 모두가 점차 무례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품위나 품격 같은 것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면, 반대로 천박함이야말로 내가 무서워하는 것들 중 하나다. 악셀 하케의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을 읽으며 품위 있는 사람이 되는 방법을 알았다기보다 각자도생 사회에서 더 이상 무례하거나 천박하지 않은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악셀 하케의 통찰은 지난 시간 나의 수많은 행동들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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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5. 이효원 『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 : 21세기북스 | 원숭이의 서재 2020-06-0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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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

이효원 저
21세기북스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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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5. 이효원 『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 : 21세기북스

인간은 저마다 다른 행복의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산다. 물론 대부분의 인간이 행복한 삶을 지향하며 산다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존엄과 가치를 지닌 존재로서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개인 자유의 보장이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산업화는 각자도생 사회를 열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과 생활방식을 가지는 정치적 동물이자 사회적 존재로서 상대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바로 우리가 평화를 보장받아야 할 이유다. 평화가 없는 상태에서 개인은 자유를 누릴 수 없으며, 인간은 존엄할 수도 없고, 가치로운 존재가 될 수도 없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헌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제시하며 평화주의를 기본 원리로 선언하고 있다.

헌법에 앞서 알아야 할 것은 바로 국가의 존재다. 국가란 일정한 지역에서 정주하는 다수 인으로 구성되며, 통치기관을 가진 권력에 의해 지배되는 통일된 조직체를 말한다. 국가의 성격에 대해서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지만, 법적 관점에서는 사람인 자연인과 구별되는 독립된 법인격체, 즉 법인이라고 파악할 수 있다. 사람이 아니지만 법에 의해 인공적으로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지역적 기반으로서 국가의 통치권이 미치는 공간적 범위를 영토라 하고,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국가의 통치권이 미치는 인적 범위를 국민이라 하며, 국가의사를 결정하는 최고의 통치권력을 주권이라 한다. 우리는 영토, 국민, 주권을 국가의 3요소라 한다. 국가란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집합체이며 동시에 정치권력이 작동하는 일종의 시스템이다.

여기서 정치란 국가에서 발생되는 다양한 가치를 배분하는 방식이다. 즉 국가의 재화나 용역을 누가, 얼마나 가질 것이며, 이를 어떻게 배분하느냐를 결정하는 방식인 것이다. 하지만 가치의 공정한 배분을 둘러싸고 갈등과 분쟁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들은 서로 다른 가치와 이해관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정치의 역할은 공정한 배분을 통해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고 국가를 통합하는 것이다. 정치는 이러한 배분에서 정당화될 수 없는 자의적인 불평등이 없는 상태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이것을 정의라고도 한다.

국가와 정치에 대해 알았다면 권력에 대해서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의사를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을 권력이라고 한다. 상대의 입장에서는 권력자의 의사가 강제되므로 권력은 폭력적인 속성을 가지며, 행사를 위해서는 반드시 이를 정당화시키는 근거가 필요하다. 결국 정치권력이란 국가 공동체에서 다양한 가치를 분배하는 힘이며, 국가는 정치권력이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이해될 것이다. 현실에서 정치권력은 국가를 계기로 국가권력으로 제도화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헌법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헌법은 국가의 기본적인 사상과 비전을 담고 있다. 개인이 어떻게 살 것인지를 철학 하듯이 인공적인 인격체인 국가가 어떻게 유지되고 발전할 것인지를 고민해 규범으로 체계화한 것이 헌법이다. 행복한 국가의 미래상이 헌법인 것이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현실적인 자기이해를 위한 수단이자 기준이다. 대한민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인식하고 헌법을 통해 재인식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서가명강> 시리즈의 열 번째 『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가 출간되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받은, 현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헌법으로 국가의 미래상을 그리는 법학자’ 이효원은 『우리에게는 헌법이 있다』에서 국민주권, 법치국가, 자유민주주의, 평화와 통일 등 대한민국을 읽어내는 4가지 헌법적 가치를 제시하며 ‘개인 ? 국가 ? 헌법’의 상관관계를 고찰한다.

살면서 한 번쯤은 헌법에 대해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나는 현대의 맹목적인 삶이 싫다.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 중 하나는 바로 행복추구권이다. 우리가 올바른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최소한의 단위가 헌법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헌법은 행복한 국가의 미래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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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 : 현대문학 | 원숭이의 서재 2020-06-0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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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

듀나 저
현대문학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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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3. 듀나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 : 현대문학

작가 듀나의 신작 소설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는 태양계 소행성대 이천의 가상 도시 아르카디아를 배경으로 한다. 정기 여객선 테레시코바의 폭발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 배승예는 소행성 이천의 가상 도시 아르카디아 양로원으로 이송된다. 아르카디아의 중심부는 23세기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빌딩 숲이 이어지고 외곽은 20세기 한국의 정서가 그대로 담겨있다. 이전 시대를 그리워하는 미래인의 마음이 담긴 것일까 복각된 가상 도시 아르카디아는 20세기의 미메시스다. 테레시코바의 폭발로 뇌와 척추의 일부분만이 남고 몸의 4분의 3이 날아간 배승예가 재생 치료를 받기에 아르카디아는 꽤나 낭만적인 도시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아르카디아는 배승예가 어릴 적 잠시 살았던 곳이니 그녀에겐 고향과도 같은 정취가 남아있다.

인간다운 정서를 가득 품은 가상 도시 아르카디아를 구성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것들이다. 배승예를 제외한 대부분이 AI인 이곳은 거대 지성 마더에 의해 지배된다. 아르카디아를 이루는 주요 종족 멜뤼진들은 자신들이 허구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정기 여객선 테레시코바의 폭발 당시 배승예를 구출한 연방우주군에 대한 음모가 싹트고, 멜뤼진들의 거센 소용돌이 속에 배승예는 낭만 도시 아르카디아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전통적인 의미의 죽음은 육체의 완전한 소멸에 있다. 때로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는 형태로 육체에 깃들어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한다고 여겨지는 비물질적 실체, 즉 ‘영혼’의 존재를 의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미래적인 죽음이란 무엇인가. 생명공학, 유전학 등이 4차 산업을 만났을 때,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우리는 죽음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다. 작가 듀나가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에서 표현한 죽음은 전통적 죽음과는 사뭇 다르다. 전통적 죽음과 미래적 죽음 사이에는 ‘정신의 지속’이라는 거대한 간극이 발생한다. 인간의 삶 ? 살아 있음 ? 을 육체에 귀속할 것인가, 혹은 정신에 귀속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위대한 철학자들로부터 시대를 앞서간 과학자들까지 수많은 곳에서 수많은 형태의 논쟁으로 남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역시 그것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내릴 수 없을 것이다. 이 논쟁에 대해 작가는 후자로 질문을 던졌다. 몸의 대부분이 날아간 배승예가 뇌와 척추의 일부분이 남은 것으로 비인간이 아닌 인간 대접을 받은 것을 보면 말이다. 또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죽음의 방식에 있다. 미래를 그린 이 소설에서 역시 태양계 대부분에서는 전통적 죽음의 방식인 존재의 소멸 또는 기술을 이용한 영생만이 허용되는데, 소설의 무대인 아르카디아에서만큼은 죽음에 대한 새로운 선택지가 존재한다. 아르카디아를 지배하는 인공지능 마더는 죽어가는 생물체의 뇌 속 정보를 백업하여 일종의 아바타로 변모시킨다. 가상 도시이며 양로원인 이곳을 찾은 이들은 죽음의 또 다른 선택지로서 마더를 통해 자신을 소멸시키며, 관광객들은 아바타로 변모되는 과정을 관람한다.

공상과학이라는 바탕 위에 그려낸 미래적 죽음의 의미는 실존주의로 이어진다. 물론 작가 듀나가 이번 소설을 통해 내비친 실존주의는 19세기의 합리주의적 관념론이나 실증주의에 반대하여,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하는 철학으로 작용하진 않는다. 죽음을 기다리는 양로원을 새로운 개념으로 풀어낸 가상 도시 아르카디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는 인간의 존재와 소멸, 삶과 죽음,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을 통해 사물이 존재하는 그 자체, 본질로서의 실존을 향하고 있다. 때로 작가의 시선이 잘 투영된 비현실적 세계관은 현실 세계 이상으로 깊이 통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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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나의 자서전 | 원숭이의 서재 2020-05-1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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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불과 나의 자서전

김혜진 저
현대문학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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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6. 김혜진 『불과 나의 자서전』 : 현대문학


홍이 다니던 직장을 반강제적으로 퇴사한 이유는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처음엔 홍도 직장 동료들과 제법 어울리는 사이였지만 모두가 외면한 동료를 감싸면서 홍은 동료들과 멀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은근하게 눈치를 주었고 때로 대놓고 그를 감싸지 말라며 언질 했음에도 홍은 그들의 손을 끝내 뿌리쳤고 결과는 퇴사로 이어졌다.


홍이 태어나 자란 곳은 남일동이다. 달산 아래 허름한 그곳을 사람들은남일도 불렀다. 홍의 가족이 남일동을 벗어난 것은 순전히 우연에 기인한다. 행정상의 구역이 바뀌며 홍의 집이 있던 남일동 일대가 중앙동이 것이다. 단지 행정상의 구역 명칭이 바뀐 것뿐인데 어쩐지 홍의 가족들은 중산층이 마냥 반겼고 남일동에서의 모든 기억들을 지우기에 바빴다. 홍의 부모님에게 남일동은 불경한 것이다. 그러한 시선이 비단 홍의 가족만의 것은 아니었다. 남일동은 사회 보편적 기준에 미치는 곳이며, 경계 밖에 있었다. 희한한 일이다. 변한 것이라곤 행정 구역 상의 명칭뿐인데 홍은 언제 그랬냐는 남일동을 잊고 살았다. 퇴사 알레르기가 심해지며 다시 찾은 제일약국이 아니었다면 홍은 평생 남일동을 잊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홍이 주해와 그녀의 수아와 가까워진 것은 제일약국을 드나들면서였다. 홍은 퇴사 이후 관계에 지쳐있었다. 그러다 친해진 주해와 수아에게는 마음속 깊이 묻어둔 이야기들을 훌훌 털어낼 있었다. 남편 없이 수아를 혼자 키우는 주해는 남일동에서도 달산이 가까운 끝자락에 집을 구했다. 무슨 사연인지 타지 사람이 흔치않은 남일동에 주해의 등장이 반가운 것만은 아니었다. 주해는 많은 것들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올라 했던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마주하는 대신 이제는 마을버스가 남일동의 구석까지 들어오게 되었고 밤이면 가로등도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달빛에 위험했던 골목엔 띄엄띄엄 밝은 가로등이 설치되었다. 골목 어귀에 쌓인 쓰레기 더미를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동네 사람들을 설레게 하진 않았지만 주해는 남일동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질 것만 같던 홍과 주해에게 불행이 닥친 수아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였다. 우여곡절 끝에 수아를 중앙초등학교에 보냈으나 문제는 수아가 남일동에 산다는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주해가 전에 살던 동네의 사람들이 남일동까지 그녀를 찾았다. 주해가 남일동까지 이사 이유를 알게 홍은 주해를 외면하며 인물 간의 갈등이 증폭된다.


김혜진 작가는 9번의 일』에 이어 『불과 나의 자서전』에서 역시 사회가 당면한 과제를 첨예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계층 간의 갈등을 그린 문학은 상당히 많다. 그러나 『불과 나의 자서전』은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갈등 대신, 피지배계층과 소외계층(비주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서민층과 극빈층의 대립은 다른 계층 간의 대립보다 오히려 가혹하기만 하다.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그랬고,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이 그랬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보면 상위그룹과 하위그룹의 갈등이 아닌 하위그룹과 최하위그룹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김혜진 작가의 『불과 나의 자서전』 역시 우연한 계기로 행정구역 중앙동이 되어 남일동을 벗어난 홍과 이제 남일동에 자리 잡은 주해의 이야기를 통해 현실사회의 부조리한 면면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홍이 퇴사하기까지의 과정은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에 대해 소설의 시작부터 암시한 대목이다. 이후에 벌어지는 남일동 이야기는 중립 영역인 제일약국의 에피소드들로 채워진다.


불현듯 사회과학서 20 VS 80 사회』에서 리처드 리브스가 말한 사회의 불평등 프레임이 생각난다. 모두가 19 구도로 프레임을 나누지만 사실 상위 10% 90%와의 대립 밖에 있다. 사회 불평등에 실제 책임은 90%들의 대립과 갈등에서 생겨난다.

우리는 중앙동이며 동시에 남일동에 살고 있다. 가치의 크기는 상대적이다. 서민층이 극빈층을 외면하며 스스로의 위치를 승격하는 것은 안일한 자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로 가득하다. 눈앞의 횡단보도를 기준으로 인격과 품격을 어떻게 나눌 있단 말인가. 언론이 담지 못한 말들을 문학이 담아주어 고마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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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하와 칸타의 장 | 원숭이의 서재 2020-05-1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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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하와 칸타의 장

이영도 저
현대문학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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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7. 이영도 『시하와 칸타의 : 마트 이야기』 : 현대문학


XX 하수처리장에서 태어난 그녀를 사람들은 시하라 불렀다. 열아홉의 시하는 쥐라도 잡을 요량으로 덫을 설치했지만 덫에 걸린 쥐가 아닌 요정이었다. 식용이 아닌 요정을 보고 심드렁한 시하는 거주지 헨리 동물원으로 발걸음을 향하고 헨리 동물원의 주인이자 마지막 인류를 보살피는 드래곤 헨리에게 거래를 요청한다. 요정의 힘으로 식용 버섯이라도 재배하려는 시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폐허가 땅은 이상 인간에게 배부름을 허락하지 않는다.

마트 퀸과 마트 무리들은 시하를 초대한다. 인류의 마지막 노래와 시들을 완벽하게 암송할 있는 유일한 인간 시하는 그러나 인류의 부활을 꿈꾸며 오염되지 않은 땅을 찾는 그들의 제안을 거절한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하수처리장에서 발견된 시하는 인류의 존속 따위엔 관심이 없다. 어쩌면 그녀에게 인류 종말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 앞에 나타난 요정은 인류의 끝을 알리고 있다. 요정 데르긴의 출연은 섬망에 빠진 인간의 환각이며 멸종 직전의 인류가 보는 마지막 환상종이었다.

시하와 함께하던 칸타는 기록자로서 존재한다. 마트에서 벌어지는 인간 무리들과 인류의 마지막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헨리 동물원을 떠나 마트에 도착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간다르바의 공격으로 칸타는 위기에 처한다. 칸타를 남몰래 흠모하던 시하는 그를 구하기 위해 요정 데르긴과 여정에 오른다.


국내 문학계에서 환상 문학의 입지는 여전히 좁다. 역사도 짧은 데다 적극적으로 집필하는 작가 역시 부족한 편이 아닌가 싶다. 그나마도 구병모 작가 정도가 떠오르지만, 『아가미』 같은 소설을 보아도 현실과 평행한 세계 속에 환상적 요소와 환상종을 도입하여 이야기를 끌어가니 독자적 세계관을 확보한 작가의 입지는 좁아지고 만다.

이영도 작가는 『시하와 칸타의 : 마트 이야기』를 통해 독립적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환상 문학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은 세계 환상 문학에서 이미 많이 활용된 있으나 인류 멸망 전후를 표현한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 동물원이나 마트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은 꽤나 신선한 설정이다. 게다가 환상 문학에서 표현되는 가장 강력한 마물 드래곤이 자신의 이름을 헨리 동물원의 주인으로 마지막 인류를 보살핀다는 설정 역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대체로 환상 문학의 난관은 세계관의 이해에서 온다. 환상 문학의 시작이라 불리는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보아도 그렇다. 인물과 종족, 배경 세계관의 설명을 이어가기 위해 작가는 엄청난 분량을 할애해야 한다. 이는 다시 말해 독자가 재미를 느끼는 시점까지 오래 걸리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아질 있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영도 작가의 『시하와 칸타의 장』은 세계관에 대한 이해 없이 시작부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장점이 있다. 대신 세계관의 이해를 더할 인물로 요정 데르긴을 해설 장치로 활용한다. 요정 데르긴은 소설의 전반에 걸쳐 주요 인물이기도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때에 해설자로서 종족과 배경, 세계관, 설정 등에 이해를 돕는다.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시하와 해설자 요정 데르긴 그리고 기록자 칸타의 이야기는 마트 무리와의 대립에 이어 간다르바, 갓파 종과의 갈등을 통해 긴장을 배가한다. 여느 환상 문학과 다르게 불친절한 요소들은 위트 넘치는 이영도식 대화를 거쳐 재미와 함께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더한다.


다양한 해석과 해설의 여지가 있는 소설이다. 동물원이나 마트, 환상종의 역할이나 사랑의 묘약 등의 의미에 대해 파고들만한 요소가 적지 않다.

작가는 『시하와 칸타의 : 마트 이야기』를 통해 결코 가볍지 않은 환상 문학의 발자취를 남겼다. 시하가 사랑의 묘약을 마시는 대목과 이어지는 엔딩은 명쾌한 답을 대신해 어려운 질문을 남긴다. 어쩐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라스트 씬이 생각난다. 오랜만에 접한 환상 문학이었는데 기존의 환상 문학에 대한 거부감을 해소한 멋진 소설이며, 나아가 현대문학의 PIN 시리즈에서 『시하와 칸타의 : 마트 이야기』를 선보였다는 사실만으로도 환상 문학계에 의미 있는 행보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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