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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로 속 남자"가 된 기분... | 서양 미스터리 2019-11-1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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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미로 속 남자

도나토 카리시 저/이승재 역
검은숲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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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지금 리뷰를 쓰면서도 어안이 벙벙하다. 내가 과연 뭐를 읽은 거지? 마지막 장의 반전과 충격으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럼 앞의 이야기는? 여태까지의 줄거리는? 바로 첫 장으로 돌아와 박사와 사만타의 이야기를 다시 읽어도 도통 그 진위와 실체를 모르겠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혼동의 세계에 빠져 있는 내가 정말 <미로 속 남자>가 된 기분이다.

개인적으로 이탈리아 범죄학자 출신 소설가인 도나토 카리시의 작품은 네 번째이다. 타인의 잠재된 악의를 부추켜 살인을 선동하는 천재적 살인마가 등장하는 <속삭이는 자>, 과거에 실종된 사람들이 돌아와 연속해서 살인을 저지르는 <이름없는 자>, 폐쇄된 알프스 산악마을을 배경으로 실종된 소녀의 행방을 추적하는 <안개 속 소녀> 그리고 이 작품 <미로 속 남자>이다. 옮긴이의 말을 빌리면 이 책이 속삭이는 자의 세 번째 시리즈라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외전격으로 보는게 맞는 것 같다.

15년 전, 열세 살의 나이로 실종되었던 소녀가 살아 돌아오자 처음 사건을 수임했던 사립 탐정이 그녀를 납치, 감금한 범죄자 일명 '버니'를 추적하는 얘기이다. 그녀가 박사에게 들려주는 미로 속 이야기부터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립 탐정이 아픈 몸을 이끌고 악전고투하며 사소한 단서로부터 조금씩 범인의 실체에 접근해 가는 일련의 수사 과정이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그렇게 범죄자 버니의 체포로 일단락될 것 같은 이야기가 마지막 장에서 혼을 빼놓을 정도의 대반전이 일어난다. 마지막 장과 첫 장을 다시 읽어도 그 유기적인 연결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머릿속 세상인지 그리고 게임과 실체의 경계가 어디인지...누구라도 붙잡고 이 책의 정확한 스포일러에 대해 묻고픈 심정이다. 어쨌든 독자를 놀래키는 재주가 있는 작가다. 마침 올해 10월경 작가가 직접 메가폰을 잡아 영화로 개봉한다고 하니 나중에 기회되면 제대로 확인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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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트릭이 돋보이는 본격 미스터리 | 한국/일본 미스터리 2019-11-12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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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나무가 우는 섬

송시우 저
시공사 | 2019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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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우 작가는 예전 여름추리학교에서 얼핏 본 기억이 있다. 자그마한 체구에 안경 낀 얼굴, 그리고 조용히 강의를 경청하며 필기하는 진지한 모습... 이게 그녀를 기억하는 전부이다. 송 작가의 장편은 못 읽어봤지만 단편은 여러 편 읽었다. 그중 <아이의 뼈>, <누구의 돌>같은 작품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수작이다. 주로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사회성 짙은 미스터리물을 발표하는 여성 작가가 본격 추리물을 썼다니... 호기심이 동한다. 이 책을 집어든 가장 큰 이유이다.

경남 통영에서 뱃길로 한 시간 거리의 외진 섬 호죽도... 서로 알지 못하는 초대받은 여덟 명의 손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주최자, 돔 형태의 특이한 구조물, 외부인의 접근을 거부하는 폭풍우 몰아치는 험한 날씨 그리고 기다란 죽창에 꽂혀 공중에 전시된 기이한 사체... 그야말로 클로즈드 서클의 본격 추리의 막이 오르는 순간이다.

호죽도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스토리는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고 추리 과정은 지극히 논리적이다. 특히 살해 방법에 관한 다양한 가설을 물리적으로 검증하는 장면과 피리 소리로부터 암호를 풀어가는 과정은 자못 흥미롭다. 거기에 사건의 단초가 되는 40년 전 살인사건의 숨겨진 진상까지 덧붙여져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밝혀지는 두 건의 대나무의 특성을 이용한 살해 트릭은 만화에서 나올법한, 그 실행 및 성공 여부에 현실감은 의심스럽지만 제법 참신하고 기발하다. 작가가 트릭의 완성도에 많은 공을 들인 느낌...범행의 동기나 규모 면에서 조금 의아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어차피 본격 추리는 비현실성에 기초하니 넘어가기로 하고...그나저나 아이돌 댄스를 취미로 삼는 탐정역의 젊은 여성 물리학도가 꽤나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여성 작가 특유의 감성적 문체나 곁가지 없이 본격 추리의 정석에 따라 힘있게 쓴 덕분에 몰입해서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40년 전 살인사건의 진상이 정말 그렇다면 사건의 최초 발견자 오배춘이 현장에서 보인 반응과 행동은 도저히 납득이 안간다. 이야기의 흐름상 그렇게 전개되어야 하는 것은 알겠지만서도... 제법 재미와 완성도를 잡은 이 책에서 유일한 옥에 티이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의 역량이 충분히 검증된 만큼 또 다른 본격물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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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노 쇼고, 란포의 명작을 되살려내다. | 한국/일본 미스터리 2019-11-02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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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

우타노 쇼고 저/이연승 역
한스미디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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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에도가와 란포는 내가 최애하는 일본 추리작가 중 한 명이다.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우타노 쇼고도 마찬가지. 그래서 두 작가의 국내 번역작들은 대부분 읽고 소장중이다. 그런 두 작가가 만났다. 그야말로 환상의 만남이요, 꿈의 콜라보레이션이다.

<D의 살인사건, 실로 무서운 것은>은 2000년대를 대표하는 우타노 쇼고가 1920~30년대 일본 추리소설의 정착과 부흥을 이끈 에도가와 란포의 주옥같은 단편 여덟 편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 새롭게 변주한 단편집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예습 차원으로 - 물론 오래전에 모두 재밌게 읽은 작품들이지만 - 책장에 꽂혀있는 란포의 해당 작품을 다시 찾아 읽었다. 과연 우타노 쇼고는 어떠한 소재와 트릭, 스토리로 란포의 명작들을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려냈을까.

한 남자의 망상과 광기, 변태적 사랑을 섬뜩하게 그려낸 란포의 대표작 <인간 의자>가 현대판으로 부활했다. 버림받은 한 남자가 잘나가는 예전 여자친구인 여류 작가에게 복수의 칼을 들이민다. 그 선공은 역시 푹신한 대형 소파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이용한 교란 작전을 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예상치 못한 비극이...

환상 문학의 걸작으로 꼽히는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에서는 몽환적인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단편에서는 오시에 액자 대신 스마트폰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여자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며 혼자 여행을 하는 남자. 근데 모든 행동이 수상하다.  영상 속 여자 친구의 정체도 미심쩍고 이 남자 역시 예사롭지 않다. 원작이 환상적인 사랑 이야기라면 이 작품은 뒷골이 서늘할만큼 섬뜩하다.

<D 언덕의 살인사건>은 란포가 창조한 명탐정 아케치 코고로가 최초로 등장하는 본격 추리물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우타노 쇼고는 원작을 현대 버전으로 완벽히 재현해 낸다. 의문의 사체와 명확한 동기 그리고 반전을 거듭하는 추리...과연 표제작으로 선정될 정도로 완성도가 뛰어나다. 분량상 제일 마지막으로 읽은 보람이 있다. '실로 무서운 것은'이라는 부제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오세이 등장>에서 요부이자 악녀는 실수로 궤짝에 갇힌 남편을 못 나오게 힘으로 눌러 죽이는 냉정한 살의를 보여준다. 이 단편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 우연히 실수로 궤짝에 갇힌 남편을 멀리 프랑스로 출장 와 있는 부인이 원격 살해한다. 그 방법은 둘의 유일한 연결 수단인 스마트폰. 현대판 악녀다운 수법과 발상이다. 궤짝에 갇혀 힘겹게 스마트폰을 조작하며 탈출에 안간힘을 쓰는 남자의 노력이 블랙 코미디를 연상시킬 정도로 웃기면서도 애처롭다.

자신이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아흔아홉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그린 란포의 원작 <붉은 방>이 재연되는 연극 무대에서 실제로 총기 발사에 의한 사고가 발생한다. 경찰과 감식반이 출동하고 무대와 객석은 아수라장이 된다. 하지만...관객이 진짜로 자극을 받는 것은 따로 있다. 반전에 반전이 있는 블랙 코미디물.

엿보기 신공, 1인 2역 트릭 등 란포의 주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본격 추리의 걸작 <음울한 짐승>을 현대에 되살려 낸 이 단편은 시작부가 원작과 동일하게 "나는 당신을 24시간 훔쳐보고 있다"는 협박 메일로 시작된다. 훔쳐보는 기법과 범인의 의외성까지는 좋았으나 살인의 동기가 석연치 않다. 마지막 문장은 그래서 잘 이해가 안 된다. 

<비인간적인 사랑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에서는 란포의 원작 두 편이 합쳐져 있다. 남편의 엽기적인 행각에 대한 복수가 비극으로 이어지는 <비인간적인 사랑>과 갈라진 2전짜리 동전에서 나온 암호로부터 은행 강도가 숨겨놓은 5만 엔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2전짜리 동전>이 그것이다. 이 단편에서는 AR(artificial reality)을 통해 연인의 죽음을 목격하고, 현실에서는 살인죄로 감옥에 다녀와 노인에게 여생을 의지하는 한 여자의 기구한 삶이 펼쳐진다. 그 와중에 수십 년 전 숨겨진 보물(증권)을 찾아가는 암호 풀이가 이 단편의 백미이다. 가장 공을 들인 단편이 아닌가 싶다.

정말 문장 하나, 단어 하나까지 아껴가며 읽었다. 그만큼 모든 단편들이 밀도와 짜임새가 좋다. 에도가와 란포와 우타노 쇼고. 내가 좋아하는 두 작가를 한 작품에서 만나니 재미도 두 배, 기쁨도 두 배다. 원작을 미리 읽고 비교해서 이 책을 읽으니 원작을 현대적 감각으로 변주하는 우타노 쇼고 작가의 의중과 노련한 테크닉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재밌게 읽은 것 같다.

작가는 거의 모든 단편에서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은 기본이고 홀로그램, VR(virtual reality), AR 등 최첨단 IT 기기와 기법을 서술과 트릭의 소재로 사용한다. 그것은 작가가 현대물에는 그 시대와 상황에 맞는 현대 문명을 사용해야 한다는 철학 때문이다. 거기에 원작과 현실을 조금씩 비트는  블랙 코미디 같은 전개와 결말이 때론 옅은 실소를 자아낸다.

작가는 이 작품을 끝으로 더 이상 란포와 연관된 책을 쓰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걸까...이 작품을 통해 에도가와 란포의 명작들을 다시 한번 회상하고, 동시에 우타노 쇼고 작가의 재기발랄한 필치를 감상할 수 있어서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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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초 | 서양 미스터리 2019-10-1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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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29초

T. M. 로건 저/천화영 역
arte(아르테) | 2019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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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만약 내 인생의 걸림돌이 된다면? 누가 만약 내 앞길을 가로막는다면? 누가 만약 나의 승진을 방해하고 나의 업적을 자기 것으로 가로챈다면? 그 누군가가 나의 직속상관이자  자신만의 TV 쇼를 포함 사회적으로 온갖 유명세를 타며 학계에서 절대적으로 추앙받는 저명한 교수라면? 거기에 여자인 나와의 잠자리를 끊임없이 요구하며 거부할 경우 인사적 불이익은 물론 더 이상 학교에 머물기 어렵다고 협박한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그의 요구를 거절하자니 지금까지 쌓아올린 내 경력과 향후 미래가 날아갈 정도로 그의 권력과 위세가 너무 절대적이고, 그의 요구를 따르자니 애 둘 딸린 유부녀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추악한 직속 상관의 끊임없는 갑질로 인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가는 시간강사 세라는 어느 날 우연히 길가에서 납치될뻔한 여자 아이를 구해준다. 알고 보니 여자 아이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러시아 마피아 두목의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 마피아 두목은 은밀히 그녀를 불러 커다란 빚을 졌다며 답례로 "사라지길 원하는 한 사람의 이름을 대라."고 제안한다. 기회는 단 한 번이요, 일단 입에서 나오면 되돌릴 수 없다. 세라는 이 악마의 거래를 수용할 것인가. 그것은 통화하는 운명의 29초에 달려 있다.

여기까지는 재밌다.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고 스릴감도 제법이다. 하지만 이후부터 조금씩 실망스러운 부분이 보인다. 교수를 납치해 태우고 가던 부하가 우연히 불심검문에 걸려 경찰에 체포되면서 교수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 심각하고 진지하게 제안한 마피아 보스가 "재수가 없었소. 일을 하다 보면 꼬일 때도 있는 법이오." 달랑 이 한마디하고 철수하는 태도 역시 어안이 벙벙하다. 정작 교수 납치미수 사건으로 인해 경찰의 수사망은 평소 교수에게 불만을 품어온 세라 쪽으로 급격히 좁혀오고 있는데 말이다.

결국 진퇴양난에 빠진 세라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청부 납치의 죄를 인정하고 감옥에 갈 것인가 아니면 정면 돌파할 것인가. 그녀는 믿을만한 친구와 아버지 그리고 마피아 두목의 도움을 받아 국면을 역전시킬 최후의 작전을 수립한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모르고 잠자리의 쾌락에 한껏 기대에 부푼 교수의 집으로 용감하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사실 라스트신에서 좀 더 통쾌하고 스릴감 넘치는 화끈한 역습을 기대했는데 그런 작전이었다니 조금은 애교스럽다. 전작 『리얼 라이즈』에서 보여주었던 반전이나 스릴감에 비해 조금은 약하지 않았나 싶다. 그나저나 남성 작가가 여성 주인공을 내세워 섬세한 여성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도메스틱 스릴러를 쓴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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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씽 인 더 워터 | 서양 미스터리 2019-08-22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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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썸씽 인 더 워터

캐서린 스테드먼 저/전행선 역
arte(아르테)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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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도입부가 충격적이다. 혼신의 힘으로 힘겹게 구덩이를 파는 아내...그 옆에는 몇 시간 전에 죽은,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는 남편의 시신이 누워 있다. 이 엽기적인 장면은 도대체 뭘까.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고 암매장하려는 걸까... 이 의문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들 부부의 평온하지만 드라마틱했던 3개월 전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큐멘터리 감독 에린과 금융업 종사자 마크는 결혼을 앞둔 사랑하는 예비부부이다. 에린은 만기 출소하는 범죄자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는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지만 마크는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둘은 결혼식을 마치고 지구 반대편 보라보라 섬으로 2주간의 달콤한 신혼여행을 떠난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며 신혼의 단꿈에 젖어 보내던 부부는 보트를 타고 다이빙을 즐기던 어느 날 망망대해 바다 한가운데에서 의문의 가방을 습득한다. 그 안에는 무려 100만 파운드의 현금과 그에 버금가는 다이아몬드 그리고 총과 usb가 들어있다. 불법적인 냄새가 물씬 나지만 심사숙고 끝에 돈과 다이아몬드를 갖기로 결심한 부부는 재빨리 호텔 리조트에서 자신들의 모든 흔적을 지우고는 무사히 런던 집으로 돌아온다.

돈을 스위스 비밀 계좌에 입금하고 다이아몬드를 현금화하려는 행복감에 젖음도 잠시.... 그들이 머물렀던 리조트에서 한 부부의 석연치 않은 사망 소식을 뉴스로 접하고는 패닉에 빠진다. 그들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여기서부터 남녀의 생각과 역할이 갈린다. 남자는 이성적이지만 여자는 감성적이다. 남자는 "설마 우리를 찾겠어?"라며 느긋하지만  물리적, 신체적으로 약자인 여자는 초조감에 휩싸인다. 그런 초조감이 섣부른 생각과 행동을 낳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간다. 꼬리가 잡힐 정도로 두서없이 행동하는 그녀의 막무가내식 위험천만한 행동을 보고 있자니 내가 다 불안하고 답답하다.

남편은 현금화가 힘든 다이아몬드는 버리자고 제안하지만 여자의 탐욕은 그칠 줄 모른다. 실직한 남편의 재기를 위해, 곧 태어날 아기의 미래를 위해, 우리 부부의 더 나은 삶을 위해...라고 애써 자기 합리화한다. 거기에 다큐멘터리 제작 관계로 알게 된 전직 범죄자의 전격적인 도움이 그녀의 행동에 전문성과 대범함까지 부여한다.

그녀가 남편 몰래 usb 교환으로 거액을 놓고 일전을 벌이는 라스트 신은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쥘 정도로 흡입력이 대단하다. 여러 의문이 동시에 풀리는 이 장에서 놀라운 부분도 있지만 어느 정도 예견된 부분도 존재한다.  안 그러면 도입부의 상황이 설명이 안되니까.

책을 다 읽으니 역시 중요한 건 부부간의 신뢰이다. 피묻은 돈이 재앙을 불러오고, 탐욕은 파멸을 낳는다는 평범한 진리 역시 마찬가지이고. 만약 그들 부부에게 <썸씽 인 더 워터>가 아니고 '너씽 인 더 워터'였으면 어땠을까. 더 행복해졌을까 아니면 더 불행해졌을까. 어찌 됐건 지금 상황보다는 나았으리라...여성 주인공의 섬세한 심리 변화를 통해 이렇게 재미난 데뷔작을 쓴 배우 출신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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