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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단 모집]『문명과 물질 : 물질이 만든 문명, 문명이 발견한 물질』 | 새소식 2021-05-16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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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물질

스티븐 L. 사스 저/배상규 역
위즈덤하우스 | 2021년 05월

 

신청 기간 : 5월 16일 까지

모집 인원 : 10명

발표 : 5월17일

신청 방법 : 댓글로 신청해주세요!

* 신청 전 도서를 받아 보실  기본주소를 꼭 확인해주세요.

 

 

물질은 어떻게 문명을 형성하며 이어져왔을까
돌부터 실리콘까지, 세상을 바꾼 차가운 것들의 역사


인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물질은 문명과 함께 진보해왔다. 천연자원이나 농산물만으로 인류는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또는 더 편리한 생활을 위해 우연히 발견한 물질, 그리고 물질을 가공하고 응용하는 기술이 있었기에 인류는 생존뿐 아니라 하나의 문명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처럼 고대 인류를 움직였던 동기는 현대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저자는 돌, 점토, 구리, 청동과 같이 고대에 발견한 물질부터 시멘트, 실리콘, 폴리머 등 비교적 현대에 발견한 물질까지, 문명과 물질이 함께 진화해온 방식을 하나씩 살펴본다. 각 물질은 끼니를 해결하고, 무기를 만들고, 건축물을 짓는 기초적인 역할을 뛰어넘어 한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한편, 첨단 기술의 최전선에서 세상을 바꾸는 중요한 재료로 쓰여왔다. 이 책에서 역사와 과학을 잇는 흥미진진한 물질의 연대기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물질은 인류의 문명을 어떻게 형성했을까
문명과 물질의 상호관계에 주목한 독특한 역사 교양서


역사에서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등 특정 시대를 지칭하는 용어에 물질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 물질과 인류의 문명사는 서로 맞물려 있다. 예컨대 철의 발견은 가마 온도를 높이는 기술을 개발하게 했으며, 가마 온도가 높아지자 유리를 다루는 기술도 같이 개발되었다. 유리는 희귀품에서 일상품이 되었고,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에 창문을 선사했다. 한편 그리스는 아테네의 은광 덕분에 페르시아가 에게해로 진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으며, 로마의 알렉산더 대왕은 트리키아에서 추출한 금으로 전대미문의 제국을 건설했다. 중국에서 발명한 종이, 나침반, 화약은 무역과 탐험이 가능한 세계로 전환시켰다.


이 책은 “물질은 인류의 문명을 어떻게 형성해왔나”라는 물음에 여러 가지 답을 제공한다. 인류가 발명 혹은 발견하여 사용하고, 변용하고, 남용한 물질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다이아몬드, 금, 백금 등의 물질은 풍요로움과 신비로움을 담고 있고, 철이나 고무는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와 얽혀 있다. 16세기 남아메리카는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차지하려던 스페인의 정복 활동에 최적지였다. 근대의 영국은 천연자원이 부족했는데, 이 사건은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금세기에 일어난 물질 혁신의 중심지이자 실리콘, 광섬유 기반의 컴퓨터 및 정보혁명의 본거지로 거듭났다. 이처럼 인류를 더 높은 곳에 오르게 하는 문물이 탄생할수록, 물질과 문명은 더 복잡하고 정교해졌다.
 

 

* 서평단 여러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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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를 위한 짧은 변론 | 기본 카테고리 2021-05-12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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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

앤 드루얀 저/김명남 역
사이언스북스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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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

앤 드루얀(Ann Druyan) 지음 |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를 위한 짧은 변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를 모두 읽어본 한 지인은 앤 드루얀의 책이 전작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을 나에게 했다. 나는 아직도 칼 세이건의 이 유명한 책을 읽어보진 못했기에 지금 두 권을 비교해서 평을 할 입장은 되지 못한다. 다만 나는 앤 드루얀의 신간을 읽고 마음에 들었던 점들을 독후기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칼 세이건의 저작은 이미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베스트셀러인데다, 많은 독자 팬을 두고 있기에, 후속작이 전작을 능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거다. 내가 앤 드루얀의 책을 읽으면서 주목했던 부분은 이 책이 공식적이든, 개인적이든 전작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이 책 나름의 자리가 있다는 점이었다.

 

앤 드루얀은 이미 여러 권의 책과 다큐멘터리 영상 <코스모스> 작업 등을 오래 해온 베테랑 작가이자 감독이다. 애초에 그녀는 자신의 책이 남편의 작업이자 전작을 넘어서기를 목표로 경쟁했던 것이 아니다. 책 끝부분에서 저자는 조심스럽게 독자를 감탄시키려고 애쓰기 보다는, 그저 독자와 소통하고 이어지길 바랐다’(423)는 고백을 하고 있다. 어느 작업이 더 훌륭하냐를 따지는 것은 물론 독자 마음에 달려 있는 문제이고, 이 문제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다만 나는 앤 드루얀의 책이 그 나름의 장점과 주목할 만 한 점이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과거 칼 세이건의 주요 저작(물론 앤 드루얀과 공저한 작업을 포함하여)은 주로 미소 냉전이 한창일 시기에 나온 결과물이다. 따라서 두 사람은 과학기술에 힘입어 만들어진 원자 폭탄과 같은 가공할만한 무기로 인한 인류 공멸의 위험을 절실히 체험했고, 이를 꾸준히 경고했었다. 냉전 시대가 저문 후, 앤 드루얀은 같은 맥락에서 이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환경문제,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우려와 경고의 메시지를 책에 절실히 담고 있었다. 이 점에서 앤 드루얀은 과거 두 사람이 인류에 대해 걱정하고 염려하던 전통을 변함없이 이어받아 적극적으로 세상의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풍부한 화제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장점이자 단점으로 볼 수도 있다. 많은 이야기를 하는 대신 보다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기 힘들기 때문이다. 앤 드루얀의 책은 아주 깊이 있게 내용을 파고드는 책은 아니다. 과학과 관련된 다양한 삶의 문제를, 마치 스몰토크를 하듯 가뿐히 다루면서도 과학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메시지를 놓지 않는 다. 나는 이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과학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편안한 자리에서 듣고 의견을 나누는 것 같아 독자의 접근성이 좋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도 분명 독자의 호불호가 나뉠 것이다.

 

물론 책에는 저자가 칼 세이건과의 만남과 사랑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은 익숙하게 다가오진 않았지만, 이는 문화적 정서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앤 드루얀의 공식적인 작업이 결국은 칼 세이건과 함께 했던 시간들로부터 비롯된 것이기에, 나는 이 책이 한 사람에 대한 꾸준한 사랑과 상실에 대한 애도의 작업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외부로 나아가 전 세계 독자의 삶에 닿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인간에 대한 앤 드루얀의 염려는 저자가 인용한 스피노자의 한 마디에서, 시인 윌리엄 예이츠의 한 마디, 그리고 생물 다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세계 종자 은행 개념을 제안했던 식물학자 바빌로프의 행적에서, 지구의 재앙이 임박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마나베 슈쿠로의 논문 등에 관한 이야기들에서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었다.

 

써놓고 보니 꽤나 일방적인 칭찬만 있지 않을까 싶지만,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를 두고 지인이 남긴 평에 대해 내가 좋았던 점을 정리해보고자 했다. 진부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저자가 후대인들이 선대의 업적을 기반으로 혹은 이 업적을 개선함으로써 선대의 지적 성취를 딛고 올라설 수 있었던 인류사의 장면들을 흥미롭게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 책이 풍부한 화제를 담고 있는 만큼 각각의 화제는 또 하나의 씨앗이 되어 더 깊은 배움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앤 드루얀이 1939년 세계박람회에서 아인슈타인이 했던 연설을 인용한 대목이 인상적이어서 남겨보고자 한다.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그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26)

 

우리가 흔히 과학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이야기할 때, 아인슈타인은 대중에게도 그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묻고 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 과학과 관련해서 말이다. 이 문장은 환경문제와 지구온난화 문제가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감안할 때, 여전히 귀담아 들을 말이라고 생각한다.

 

 

 

 

[책 속으로]

[1]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그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26)

- 1939년 세계박람회에서 한 아인슈타인의 연설 재인용

 

[2] "사람들의 마음은 무력이 아니라 사랑과 이성으로만 정복할 수 있다."(76)

- 바뤼흐 스피노자 <에티카>에서 재인용

 

[3] "꿈에서 책임이 시작된다"(126)

-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처음 사용한 말 재인용

 

[4] "바빌로프와 동료 식물학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미래가 그토록 손에 잡힐 듯하고 귀중한 현실로 느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171)

 

[5] "우리는 모두 똑같은 도구 상자로 만들어졌고... 똑같은 유전 물질로 만들어졌으며,... 다만 서로 다른 진화의 길을 밟아 왔을 뿐이다."(266)

 

[6] "양자세계의 무법적 카지노에는 객관적 현실이라는 것이 없다."(325)

 

[7] "우리가 예측력을 발휘하는 과학을 개발하더라도, 결국 손 놓고 앉아서 그 예측이 현실로 실현되길 기다리기만 할 거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414)

 

[8] "나는 더 이상 독자를 감탄시키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저 독자와 소통하기를, 독자와 이어지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리고 <코스모스> 이후의 내 모든 작업은 매일 칼에게 바치는 사랑의 선물이었다."(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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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독후기 - ‘아무튼, 하루키’ | 기본 카테고리 2021-05-09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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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무튼, 하루키

이지수 저
제철소 |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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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하루키》

: 그만큼 네가 좋아

이지수 지음 [제철소]

 

짤막한 독후기 - ‘아무튼, 하루키’

 

아무튼’ 시리즈는 특정 소재에 대한 애정을 지닌 저자가 해당 주제에 대해 글로 쓰는 프로젝트다. 연필 혹은 떡볶기 같은 일상의 소재들도 대상이 된다. 다만 이런 주제로 책 한 권을 써 내는 일은 대상에 대한 애정이 아니면 쉽지 않을 것 같다. 덕후가 된다는 것은 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아무튼, 하루키》를 읽어보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무겁고 버거운 주제의 책을 읽고 난 후 집어든 책이었다.

 

하루키와 관련하여 한 권의 분량으로 에세이를 써낸 저자는 하루키 덕후다. 학창시절에 하루키를 읽었고, 원서로도 읽고 싶어 일본어를 전공한 사람. 물류회사, 책과 관련한 직업을 거쳐 번역가로 일한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라는 표현 그대로, 하루키의 작품들은 저자의 삶(공부와 일)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셈이다. 하루키의 모든 작품을,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그의 문장이 입에 맴도는 정도라면 진정한 ‘하루키 덕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책으로 삶의 방향이 결정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할 테다.

 

저자는 불타던 학창 시절의 연애담도 솔직하고 담백하게 풀어놓았다. 나는 “슈뢰딩거의 파스타”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과 전공자의 비애다. 대학을 졸업한지 오래되었건만.. 이런 부분에서 웃다니...(그래서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만 웃는다.) 내가 처음 하루키를 만난 것은 대학시절일 텐데, 아마 《상실의 시대》였을 것이다. 책 전반을 흐르는 묘한 정서가 꽤 오래 남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하루키를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몇 년 전에 읽은 달리기에 관한 에세이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하루키는 성실하고 노력하는 작가다.

 

《아무튼, 하루키》에서 저자가 반려묘와 사별한 부분을 읽을 때, 한 달 전 세상을 뜬 우리 집 반려견도 생각났다. 한 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집에 온 녀석은 17년을 우리 가족과 함께 했다. 나이가 들어서 대소변을 잘 가리던 녀석이 집 안 아무데나 누기 시작하고, 걷다가도 주저앉기도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항상 녀석의 소변을 밟을까 조심하던 때가 바로 어제 같은데, 우리 가족을 떠난 지 벌써 한 달이 다가온다. 식구들이 집을 나가거나 올 때면 항상 현관에서 맞아주던 반려견이었다.

 

번역가로서 자신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저자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번역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통해 다져진 직업의식을 보여주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매일 번역의 세계와 반려묘의 세계, 그리고 하루키의 세계를 넘나들며 분주하지만 순간순간 정성껏 살아가는 저자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밋밋할 수 있는 우리의 삶 속에서 때론 바둥거리면서도 특정 대상에 대한 애정이 먼저인 사람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있었다.

 

누군가가 특정 대상에 대한 덕후라면, 그 대상은 이미 삶의 일부가 되어있는 상태일 것이다. 그리고 대상에 대한 잡다한 지식 이전에, 그에겐 대상에 대한 사랑이 무엇보다 먼저일 것이다. 대상의 좋은 점과 부족한 점 모두를 속속들이 알고, ‘그럼에도’ 그 대상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판단기준에 그 대상이 중심이라는 것. 만약 덕후의 조건이 이런 것이라면, 저자야말로 ‘하루키’ 덕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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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작가의 작업 노트와 철학: '인간은 치유하며 성장 한다' | 기본 카테고리 2021-05-0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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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의 작은 화판

권윤덕 저
돌베개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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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화판》

: 권윤덕의 그림책 이야기

권윤덕 지음 [돌베개]

 

 

그림책 작가의 작업 노트와 철학: '인간은 치유하며 성장 한다'

 

 

최근에 그림책에 대한 관심이 생겨 아내와 함께 읽게 된 책이다. 권윤덕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자세한 정보 없이 손에 든 책이었지만 인상 깊게 읽었다. 저자는 1995년 아이와의 일상을 소재로 그려낸 《만희네 집》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25년 이상 그림책 작업에 전념해온 작가다. 특히 작업 전반을 보다 편리한 디지털 작업이 아니라 수묵화나 불화와 같은 전통적인 도구와 방법을 계속 활용하며, 각 작업마다 표현 기법을 새롭게 탐구하면서 제한적인 조건들을 극복해왔다.

 

 

《나의 작은 화판》에는 1995년에 출간한 첫 책부터 2016년에 펴낸 《나무 도장》까지 20여년의 작업을 대상으로, 작가의 삶과 작업에 대한 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다. 특히 아이가 어렸을 때 아이를 눈높이에서 지켜보면서, 아이의 삶 속으로 들어가 함께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울러 일상에서부터 거대한 역사에 이르는 폭넓은 주제를 표현해내기 위해 새로운 표현 기법을 시도하고 연마하는 모습도 책에 녹아있다. 물론 그 과정 자체는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어린 아들과 1년 간 헤어져 중국에서 수묵화를 배우거나, 노동 현장을 취재하다가 냉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진행 과정에서 부딪히는 양상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사람들과의 연결됨을 고민하며 어려움을 극복해나갔다.

 

 

그림 한 장을 완성하기까지는 만만치 않게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림은 내가 익히고 느낀 만큼 그릴 수 있고, 내가 애쓴 만큼 표현할 수 있다. 내 능력과 노력을 넘어 기대하면 곧 허영이고 헛붓질이다.”(183)

 

 

저자는 50페이지 전후의 그림책 한 권을 만들어 내려면 관련 자료를 공부하고나 취재하고, 이를 소화하여 그림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만들어내는 데 최소 2-3년이 걸린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작업에 맞는 새로운 그림 기법(표현 방법)을 연구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또 여러 권의 더미북을 제작하며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고 대화하며 만들어나가는 과정도 거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림책이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무지와 편견을 깨는 기회였고, 새롭게 배우는 점이 많았다. 이건 작업의 어려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을 포함한 다양한 독자가 어떻게 읽을까, 메시지가 어떻게 전달되고,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일까도 고민하는 과정도 포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은 작업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반드시 고려해야 하며 넘어야할 단계였다.

 

 

책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예기치 못하게 13년이라는 긴 호흡을 필요로 했던 《꽃할머니》작업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한중일 세 나라의 그림책 작가들이 평화의 연대를 위한 공동작업으로 시작되었다. 저자는 한국 그림책 작가로 참여했고, 이 작업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에 주목했다. 이 주제는 수많은 분들이 국가의 폭력으로 고통을 받으며 인권이 유린된 역사이기에, 그만큼 많은 고민을 요구하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어떻게 하면 개인의 일과 역사적 맥락을 연결할 수 있을까 계속 질문”(203)하며, ‘폭력을 직접 묘사하지 않고 폭력을 이야기’하기 위해 고민하며 작업의 방향과 나아감을 결정했다. 10년이 넘는 지난한 작업의 경험은 저자에게 ‘50년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던 경험’이었다.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재능, 혹은 천재성이란 말은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재능은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글쓰기든 창작이든) 쉽게 포기하지 않고, 창작에 대한 열정이 고갈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 예술가의 재능은 단지 작품의 시장성만을 기준으로 판단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일이다. 예술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여기에 공감하는 자다. 나아가 이러한 인식을 자신의 삶 속에 녹여 각자에게 익숙한 매체를 통해 이를 구체적인 대상으로 재현해내는 이들이다. 사회의 규범 속에서 살아가는 대중들이 외면하기 쉽거나 미처 인지하지 못한 삶의 진실들을 캐어내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대중은 그 속에서 보편적인 경험과 진실을 발견하고 공감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의 역할을 그대로 보여준다. 저자의 삶 자체가 이미 하나의 예술작업이라고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자가 아이들과 책읽기 수업을 할 때, 만나게 되는 아이들에 대한 시선이 좋아 이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마음이 아픈 어린이 뒤에는 상처로 가득한 부모가 있었고, 그 가족 뒤에는 개인의 힘으로 뛰어넘기 어려운 사회구조가 막아서고 있었다.”(250) 고통과 상처를 경험했던 사람이 다시 타인, 특히 자녀에게 이러한 고통을 전가하는 사례는 흔히 발견된다. 이런 문제가 개인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회구조적인 문제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데 저자는 주목한다. 그 역시 작업을 하면서 본인의 아픈 과거를 새롭게 마주한다. 더불어 개인과 사회의 관계, 개인과 개인의 새로운 관계를 발견하고 이를 형성해나가기도 한다. 이 점은 넉넉하지 않은 부모의 노동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해 방치되다시피 하는 아이들, 그리고 이 상황에 죄의식을 항상 갖고 살아가야만 하는 부모들을 만나 함께 이야기와 고민을 나눈다. 이 때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데, 서로가 이어지는 모습이 푸근하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그림책은 이렇게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나 역시 어른이 되어 늦게나마 그림책이 지니고 있는 힘을 새롭게 배워가는 중이다.

 

 

 

 

[책 속으로]

 

"어린이는 나름 나름의 기질과 재주를 가지고 태어난다. 각자 그것을 밑천 삼아 사회 안에서 서로 보완하고 어울어지면서 저마다의 행복과 의미를 찾아간다. 사회의 기존 가치나 질서와 끊임없이 갈등하고 화해해 가면서, 새롭고 다양한 삶의 형태가 만들어진다." (96)

 

 

"사실 그런 주제를 끌어가는 힘의 원천은 나의 간절함 외에 다른 것은 없다. 달리 말하면, 이 사회에서 나가떨어지지 않겠다는 절박함이 내게 있었다." (156)

 

 

"처음에 그림책을 구상할 때는 소박한 발상에서 출발한다. 취재와 스케치를 거듭하면서 종종 그 발상이 너무 보잘것없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도에 포기하지 않으려면 거듭해서 질문하고 좀 더 깊이 탐색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187)

 

 

"그림책은 어린이는 물론, 어른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는 매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217)

 

 

"사람이든 동물이든 누구나, 사랑받으면 덜 아프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248)

 

 

"‘저 사람만 없애 버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자신과 타자를 폭력적으로 구분 짓기 시작한다. (...) 그리고 없애야 할 적이 만들어지는 순간, 사람들은 그 대상에 대해서라면 아무리 잔인한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91)

 

 

"가해자임을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일은 부단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자기가 놓인 구조를 의심하고 되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해자성‘을 인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계를 새롭게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이제껏 당연시되어 온 폭력을 멈추게 할 힘이 깃들어 있다." (326)

- 심아정,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 자료집>, 2018, 61-62면에서 재인용

 

 

"법은 긑이 없고, 법은 한 곳에 집착되어 있지 않으니, 이미 집착된 법과 기술을 깨트려 나가야 한다." 전통으로 이어져 온 법을 익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지만, 그 법을 깨트리는 단계에 이르러야 새로운 그림, 자신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뜻이다. (68)

- 중국 화가 자유푸(1942- )의 화집 서문의 글귀에서 재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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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르레기 무리의 움직임 패턴으로부터 인간의 본성과 대량 학살을 모형화할 수 있을까’ | 기본 카테고리 2021-05-05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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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신, 만들어진 위험

리처드 도킨스 저/김명주 역
김영사 |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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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들어진 위험 (Outgrowing God)

: 신의 존재에 대한 의심이 시작된 당신에게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지음 | 김명주 옮김 | [김영사]

 

찌르레기 무리의 움직임 패턴으로부터 인간의 본성과 대량 학살을 모형화할 수 있을까

 

이 책의 마지막 문장(“나는 우리가 과감하게 용기를 내어 성장함으로써 모든 신을 단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52)은 신이란 인간이 만든 허구적 개념임을 끊임없이 설파해온 리처드 도킨스의 요점을 한 마디로 정리한 것이다. , 만들어진 위험은 수십 년 동안 신의 부재와 종교의 허구성을 지적해온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입문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도킨스는 진지하고 집요하게 논점을 파고들기 보다는 몇 가지 사항에 집중하여 대체로 가볍게 자신의 생각을 제시한다는 느낌을 준다. 다만 나는 이 책의 핵심적인 주장(‘신은 뻥이다’)보다는 인간에 초점을 맞추어서 생각해보고 싶다.

 

도킨스가 다루고 있는 여러 논점 중에서 5장의 선해지기 위해 신이 필요할까?’라는 주제를 우선 불러와본다. 흔히 서양의 3대 종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로 여겨지고, 이 종교들은 아브라함의 종교라는 근원에서 나왔다고 한다. 도킨스는 종교를 이야기할 때 기본적으로 본인이 잘 알고 익숙한 기독교를 염두에 두고 논의를 전개한다. 다만 5장의 주제에 대해 저자는 흥미로운 통계자료를 제시한다. ‘신이 우리를 언제나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종교를 가진 인간은 더 선하다는(도킨스의 표현에 따르면, ‘하늘의 거대한 감시 카메라 이론’) 암묵적인 전제를 다음의 사례로 검토한다.

 

20137월에 조사된 미국 연방교도소의 기결수에 관한 조사다. 자료에 따르면, 수감자의 28%가 개신교 그리스도인, 24%가 카톨릭 그리스도인, 5%가 이슬람교였다. 나머지는 불교도, 힌두교도, 유대교, 아메리카 원주민 등이었다. 여기서 도킨스는 50%이상의 재소자가 종교를 갖고 있다고 언급하며, 종교가 사람을 선하게 만든다는 전제는 설득력을 잃는다고 주장한다.

 

그의 논증에는 대체로 동의는 할 수 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다. 예컨대 종교와 무관하게 미국의 백인과 흑인의 재소자 비율을 보면 실제 인구 구성비율과 크게 차이가 날 정도로 흑인의 비율이 높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점은 흑인들에게 결함 혹은 문제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단순히 결론을 내리기 쉽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법이 제정되는 배경 혹은 기준에 대한 내막을 좀 더 들여다봐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백인들과 흑인들의 마약 사범들이 주로 손을 뻗는 마약의 종류가 인종별로 뚜렷이 나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만일 흑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마약에 대한 처벌 규정이 백인 마약 사법에 적용되는 규정보다 비관용적이고 더 엄격하게 제정되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흑인 마약 사범이 백인 마약 사범보다 더 많이 검거될 여지가 발생하며, 이들이 더 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 점은 여러 사람들이 이미 지적해오고 있으므로 새로울 것은 없다.

 

달리 말해보자면, 법은 개인의 존재를 보존하는데 기여하는 인간의 사회적 장치다. 판단의 기준을 인간이 만들고 제시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복잡한 인간 사회 속에서 절대적 기준이 되기에 법 자체는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다. 또 한편으로 모든 사람은 죄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한 사도 바울의 원죄 개념’(이제 보니 이 원죄 개념은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먼저 제시한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인 것 같다)처럼, 어떤 죄가 규정된 순간, 사회적으로 범죄자가 양산되기 시작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 마디로 법이 그 땐 문제없었지만, 지금은 문제다라는 특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 시대와 사회에 따라 법이 다르다. 인간이 라고 규정한 항목과 기준이 상대적이란 의미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 도킨스의 기결수와 종교 분포 비율만 가지고 선함과 악함의 정도와 종교와의 관계를 판단하는 증거로 쓰기에는 여전히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시 말하면, 2013년 자료를 조사할 당시의 죄에 대한 관념과 법 규정에 대한 인식이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인지도 검토해야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정부의 불합리한 정책에 종교인들이 거리로 많이 나와서 시위를 하다가 범법자가 되어 수감된 것인지 자세한 내막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혹은 미국 내 이슬람 교도들에 대한 조롱과 차별에 분노한 나머지 일부 이슬람 교도들이 범법 행위를 하고 수감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일단 통계숫자는 대략적인 방향을 지시하는 인덱스로 사용될 수 있겠지만, 개별적인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도킨스의 주장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제시하는 자료가 보다 설득력 있는 것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타성,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도킨스의 논증에 대해

 

이 책에서 나의 흥미를 자극한 부분은 생명 탄생의 설계 방식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에는 DNA가 있다. 그리고 DNA는 흔히 생명체를 만드는 청사진이 담겨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도킨스는 표현이 주는 모호함과 왜곡가능성을 지적하고, 보다 정교하게 이 DNA의 역할을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DNA청사진이란 표현은 매우 잘못된 표현으로, 오히려 생명체를 만드는 방법에 관한 지시 세트’(271)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아기의 DNA를 고려할 때, 아기의 신체 각 부분은 DNA와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DNA에 아기의 각 부분을 만들어내는 모든 암호는 이미설계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DNA는 오히려 케잌을 만드는 레시피와 비슷하다. DNA의 정보는 어떤 의미로든 아기의 지도가 아니다라고 의미를 밝힌다. 여기서 두 가지 흥미로운 생명 탄생의 설계 방식을 제시하는 데, 하나는 하향식 설계, 다른 하나는 상향식 설계를 언급한다.

 

도킨스가 이야기하는 하향식 설계는 생명체 구성의 모든 암호가 이미 구체적으로 완성되어 있다는 청사진을 이야기한다. 나이가 들어 내 얼굴 어딘가에 점이 나타났다면, 이건 이미 내 DNA의 어딘가에 묻혀 있던 부위가 어느 시점에서 기능을 발휘하여 내 얼굴에서 발현된 것이다. 이 하향식 설계(혹은 청사진 개념)는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생장하고 변화하는 생명체를 만들어가는 데 매우 비효율적인 생명 설계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상향식 설계는 애초에 모든 것이 결정되고 지정된 청사진이 아니라, 전체 움직임이나 행동이 국지적 규칙만을 따라 출현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도킨스는 상향식 설계 방식의 예로 흰개미 언덕과 찌르레기 떼의 군무를 언급한다. 그 중에서 거대한 찌르레기 떼의 사례가 더 흥미로운데, 이 새의 무리는 수만 마리의 개체가 무리를 이루어 함께 날면서도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정밀하게 조정하고 일사분란하게 방향을 바꾸며 대형을 구성한다. 이를 레이놀즈라는 프로그래머가 이 움직임의 패턴을 재현해 냈는데, 그 방법은 단지 각 개체에게 옆에 있는 새를 주시하고, 그에 따라 움직이도록 규칙을 정한 것뿐이었다.

 

여기서 잠시 옆길로 빠져본다. 나는 찌르레기 집단의 움직임 패턴에 적용된 상향식 설계 기준을 인간의 대량 학살(genocide)에 관한 사례에 적용하여 모형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 역사에 기록된 의도적인 대량 학살의 양상을 들여다보면, 애초에 그 주동자를 악한 인간으로 단정해버리기 쉽다. 대량 학살을 자행한 히틀러와 스탈린을 악의 화신이라고 규정해버린다면, 우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하향식 관점(‘그들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악한 인간이었다’)을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반면 우리가 대량학살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때, 찌르레기의 군무를 설명할 수 있는 상향식 관점을 적용하면, 대량학살을 효과적으로 모형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학계에서 이미 이런 시도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나는 단순한 아마추어 독자일 뿐이므로 이런 연구에 대해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길...) 다시 말하면, 대량학살에는 이 작업을 지시한 지도자가 있고, 이를 숭배하는 측근과 대중을 위협하는 수단이 있으며, 그 결과 아무도 이들을 저지할 힘을 지닌 상대 집단이 없다면, 대량학살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찌르레기 군무 패턴을 프로그램할 때 적용된 규칙(‘국지적 규칙만을 따르면 된다’)은 대량학살을 모형화 할 때, 전범 재판장에 섰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업무 수행 규칙(‘나는 공무원이므로 명령에 따르기만 했을 뿐이다’, ‘나는 내가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했을 뿐이다’)만을 적용하면 된다. 결국 600만 명의 유대인이 최종 해결책으로 스러져갈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는데, 히틀러나 아이히만 그 자체를 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그리고 독일군 집단이라는 시스템이 돌아가는데 필요한 능력(지시에 따르기)만으로도 집단 학살이 가능하다는 점을 찌르레기의 움직임 패턴을 설명하는데 활용했던 상향식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히틀러의 인종주의(유대인 혐오/반유대주의)나 스탈린의 이데올로기가 더해지면, 그 구성원들은 심리적 단결과 함께 인류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덜어버리는 상황이 된다.

 

잠시 옆길로 샜는데, 다시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는 도킨스의 논점으로 돌아온다. 도킨스는 인간이 이타성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하면서 참고할만한 사례로 굶주린 박쥐를 소개한다. 야행성인 박쥐는 매일 밤 먹이를 구하러 다니지만, 언제나 성공하진 않는다. 따라서 운 좋게 먹이를 구한 개체는 그날 허탕치고 먹이를 구하지 못한 같은 동굴 출신의 박쥐에게 자신의 먹이를 나누어 준다고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다른 동굴에 있는 박쥐에게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았다. 그 결과로 도킨스는 친절에 대한 진화적 압력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다’(315)고 언급한다. 아직 명료하게 밝혀진 사항은 아니지만, 진화라는 개념이 성공적인 유전자가 유전자풀에 점점 많아진다는 것’(306)을 의미한다는 것을 상기한다. 이 점이 친절의 진화적 바탕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이타심에 대한 개념 역시 언제나 이타적/이기적행동이 함께 언급된다는 점에 주목해본다. 굶주린 박쥐의 경우도 먹이를 구한 개체의 호혜적이타주의행동이 다른 동굴 출신의 박쥐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타심이 적용되는 경계가 분명히 있다는 점을 언제나 고려해야 할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어느 개체의 이타심의 발로라고 부를 수 있는 팔이 안으로 굽는 행동은 이 집단의 경계 밖에서 봤을 때 언제나 이기적 행위로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이타심’(곧 다른 집단에게는 이기심에 해당)의 발로가 곧 집단과 의 생존 확률을 더 높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생각은 비전공자이므로 내 마음대로 펼쳐보는 상상에 불과하다.

 

도킨스는 책에서 자연선택은 우리 뇌에 제한된 친절의 바탕을 심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선택은 불친절의 바탕도 심는다. (...) 인류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은 그 균형이 이동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6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친절한 방향으로.”(306)라고 언급했다. 앞서 언급한 나의 생각을 여기에 적용해보자면, 친절의 바탕을 심는 것은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해서이며, 불친절의 바탕을 심는 것은 타 집단에 대해서라고 생각하면 이해할만 하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 이 균형의 이동이라는 도킨스의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이 점에서 도킨스는 인간이 점차 친절한 방향으로 진화해왔다는 논리로 주장하는 듯하다. 나는 이 논리가 인지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저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주장했던 논지와 유사하다고 본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스티븐 핑커는 이 두툼한 책에서 인간이 폭력성이 역사 이래 줄곧 감소해왔음을 엄청난 데이터와 자료들을 제시하며 논증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의 생각은 인간이 본성에 대한 스티븐 핑커의 논점은 자기기만적이라고 보았다. 그 이유는 스티븐 핑커가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본성을 이미 하향식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그의 관점은 인간이 폭력적인 존재이지만 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역사의 교훈과 교육을 통해 선한 존재로의 교정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이 지점이 도킨스의 인간에 대한 이타심혹은 친절 행위의 진화적 바탕을 이루는 생각과 같은 맥락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앞서 찌르레기의 움직임 패턴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인간을 어떠한 존재로 규정하지 않고도 인간의 본성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시 말해 인간이 선하다거나 악하다혹은 본래 폭력적이다라고 규정하는 대신, 어떤 특정 조건에서 인간은 어떤 행동도 할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단지 이 논리를 대량 학살을 모형화할 때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 인간의 친철에 대한 진화적 바탕을 도킨스도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이 부분은 앞으로의 연구결과가 더 밝혀줄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오늘은 도킨스가 이 책 , 만들어진 위험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앞선 조상들의 지적 용기에 영감을 받아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341)는 것과 모든 신을 단념해야 한다’(352))보다는 겨울철 찌르레기 군무에 관한 사례를 흥미롭게 읽다가 잠시 딴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전공자분들이 보시면 나의 엉터리 이야기에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 저자가 의도한 부분만 배운다면 재미없지 않은가. 책을 읽다가도 가끔은 엉뚱한 생각도 필요하다. 도킨스가 책에서 언급한 용어를 빌리자면, 우리는 종종 지적 용기를 내어 생각의 골디락스 존(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갑지 않은, 생명의 출현에 적당한 구역)’을 벗어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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