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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퍼디컴,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 | 인문사상 2020-03-15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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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

앤디 퍼디컴 저/안진환 역
스노우폭스북스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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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을 하면 세상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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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명상

- 앤디 퍼디컴,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

 

 

 

명상은 무언가를 지켜보는 것이다. 무엇을 지켜보건 상관없다. 나무를 지켜볼 수도 있고, 강이나 구름을 지켜볼 수도 있고, 뛰어노는 아이들을 지켜볼 수도 있다. 지켜보는 게 곧 명상이다. 무엇을 보느냐 하는 것은 핵심이 아니다. 핵심은 관찰의 대상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관찰이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깨어 있는 자각의 상태, 그것이 명상이다. 깨어 있는 상태로 사물을 보면 사물 또한 지켜보는 사람을 간섭하지 않는다. 근대 사회는 언제나 보는 사람이 보이는 대상을 제 마음대로 다스리려고 하지 않는가. 명상은 바로 대상을 지배하려는 이 마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 자체가 완벽하게 보인다. 아이들은 아름답다. 순수한 에너지가 춤추듯이 사방으로 흘러나간다. 아이들의 행동을 깊이 관찰해 보라. 아이들은 현재에 집중한다. 놀 때는 열심히 놀고, 잠을 잘 때는 열심히 잔다. 항상 문제의식에 빠진 어른들과는 다르다. 문제의식을 느껴야 할 아무 이유도 없다. 무언가에 집착하는 마음이, 무언가를 소유하려는 마음이 늘 문제를 일으킨다. 마음은 명상을 하는 사람에게 지금 너는 무엇을 하느냐고 자구만 따진다. 명상이 잘 돼도 따지고, 안 돼도 따진다. 명상은 이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래서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한 와 만날 수 있다.

 

명상은 깨어 있으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을 하건 깨어 있는 의식으로 한다면 모든 것이 명상이 된다. 어떤 행위를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는 행위에 어떤 특성이 깃들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주의 깊게 걷는다면 산책도 명상이 된다. 주의 깊게 앉는다면 그 또한 명상이 된다. 새들의 노랫소리를 주의 깊게 듣는 것도 명상이다. 산속에 앉아 시냇물 흐르는 소리를 듣는 것도 명상이고, 푸른 하늘을 말없이 바라보는 것도 명상이다. 길가에 핀 꽃송이 하나에 집중하는 것도 명상이다. 명상은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그 사물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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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은, 『대입 어휘의 신』 | 인문사상 2020-03-1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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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대입 어휘의 신

김송은 저
공명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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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으로 가는 문을 여는 어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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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은, 『대입 어휘의 신』

 

 

 

어휘력은 모든 학문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어휘력이 풍부한 사람이 이해력도 좋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대학의 문은 배경지식이 있어야 열린다고 이야기한다. 이 말을 단순히 수능 시험에 대입할 필요는 없다. 면접이나 논술 시험을 제대로 보려면 전공 학문에 대한 배경지식을 약간이라도 갖추고 있는 게 좋다. 그래야 말이든, 글이든 잘 하고 잘 쓸 수 있을 테니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정말로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같은 상황을 다양한 어휘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래도 상대를 설득하는 힘이 있다. 어휘력은 단순히 단어를 많이 아는 게 아니라, 그 어휘가 사용되는 분야를 잘 알고 있다는 맥락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사전에 나오는 단어를 설명하고 있는 책이 아니다. 각 분야의 전문 용어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인문학, 사회학, 법학과 행정학, 경제와 경영, 교육, 예체능, 공학, 자연과학, 의학 보건 등 다양한 분야의 전공 어휘들을 망라하여 설명함으로써 수능 면접과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기호를 충족시키고 있다. 중간 중간에 그림도 집어넣어 학생들의 이해를 돕는다. 다양한 예시를 중심으로 어렵지 않게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대입 분야의 전문가답게 지은이는 학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듯싶다. 교양을 쌓는 셈치고 두루두루 읽으면 전공을 선택하는 데 분명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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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순, 명리심리학 | 인문사상 2020-03-1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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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리심리학

양창순 저
다산북스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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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학은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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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命理)로 보는 자본주의

 

  

지금 우리는 무한경쟁의 시대를 살고 있다. 경쟁이 없는 사회가 있느냐고 물을 수 있다. 물론 어느 사회에나 경쟁은 있다. 신분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도 벼슬을 얻으려면 과거에 급제를 해야 했다. 과거 시험 자체가 경쟁의 장이 아닌가. 하지만 이것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펼쳐지는 무한경쟁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조선 사회는 신분제도가 명확했고, 같은 신분이라고 해도 가문의 위상에 따라 사회적 대우가 달랐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명리 이론은 이러한 시대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상관이 발달한 여자 명을 명리 이론은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상관은 무엇보다 관을 깨뜨리는 성분이기 때문이다. 여자에게는 남자가 관이다. 여자가 상관성으로 남자의 삶을 단속하면 어떻게 가부장제 사회가 유지될 수 있겠는가.

 

가부장제 사회의 권력은 남자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가부장(家父長)은 오로지 남자만이 할 수 있다. 아버지가 죽으면 아들이 권력을 물려받는다. 아버지에게 의지하던 엄마는 이제 아들에게 의지를 해야 한다. 그래도 아들을 낳은 엄마는 대우를 받는다. ‘가 강조되는 사회였으니까. 가부장제 논리로 세상을 보면 그 피해자인 여성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다. 여명에 식상이 많으면 가부장제라는 관성을 치니 부정적으로만 판단한다. 식상을 잘 사용하는 여성은 엘리트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식상이 많다는 이유로 가부장제에 근거한 명리는 여명을 남편을 망치는 사주로 몰아붙인다. 가부장제에 근거한 명리를 지양해야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명리 역시 그 이론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는 상대를 이겨야 살아남는 사회이다. 원칙적으로 공존이 힘든 사회이다. 타자를 타자로 인정할 수 없는 사회이고, 인정욕망이 들끓는 사회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주인이 되려는 사회라고나 할까. 모든 사람이 갑이 되고 싶어 하지만, 사회는 늘 갑과 을이 나뉘는 사회로 나타난다. 갑이 되려면 을을 이겨야 한다. 을만 이기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갑들을 이겨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들이미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돌아갈 몫은 한정이 되어 있고, 그 몫을 챙기려는 사람의 마음은 끝이 없다. 서로 힘을 합쳐 나눌 몫을 크게 하면 좋은데, 무한경쟁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무엇보다 그런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눌 몫을 크게 하기보다 그들은 적은 몫이라도 자신이 모두 차지하려고 한다.

 

자본주의는 돈이 중심이 되는 사회이다. 명리로 따지면, 재관(財官)이 중시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재는 재물을 말하고, 관은 재물을 지켜주는 제도를 말한다. 관은 재를 지키기 위한 것이므로 재물이 있는 사람들이 관의 제도를 만들 수밖에 없다. 재물은 한정되어 있고 재물을 원하는 사람은 많다. 겉으로는 개인 능력을 중시하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한경쟁이 조장된다. 조선 시대에는 신분이 사람의 성장을 제약했다면, 자본주의 시대에는 돈의 유무가 사람의 성장을 제약한다. 돈이 있으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고, 돈이 없으면 성공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 개인 능력을 중시한다는 사회가 정작 개인 능력을 돈에 종속시키는 사회로 실현된 것이다. 돈이 능력을 이긴다. 재물이 제도를 만들고 움직이는 기반이 된다.

 

자본주의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빌딩들로 대변된다. 양이 번성하는 시대라는 얘기다. 번성하는 양을 견제하려면 음이 필요하다. 양은 사방으로 확산하는 성향을 띤다면, 음은 사방으로 뻗치려는 성향을 안으로 갈무리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뜨겁게 타오르는 불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소멸된다. 음이 작용한 결과이다. 현행 자본주의 사회는 이러한 음의 작용을 어떻게든 부정하려고 한다. 화려함에 도취되어 끝없이 뻗어 나가는 불길에 현혹되어 있다. 열심히 일을 하면 마땅히 휴식을 취해야 한다. 일이 양과 이어져 있다면, 음은 휴식과 이어져 있다. 자본주의는 이 휴식마저도 레저라는 이름으로 상업화한다. 휴식마저도 돈을 사용해야 하는 양의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오행으로 따지면 양은 목화(木火)에 해당된다. ()는 중정을 유지하고, 금수(金水)는 음을 형성한다. 목화 기운이 강하면 확산하는 힘이 강하고, 금수 기운이 강하면 수렴하는 기운이 강한 것이다. 이로 보면, 자본주의 사회는 목화의 기운이 한없이 드높아진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목은 위로 발진하는 힘이 강하고, 화는 그 힘을 받아 화려한 꽃을 피워낸다. 목 기운이 강하면 호기심이 강하다. 어린아이들을 생각하면 된다. 어린아이들은 늘 미래를 향한 꿈을 꾼다. 무언가를 유지하기보다는 무언가를 깨뜨리고 새로이 형성하려고 한다. 목이 강한 사회는 그래서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바꾸려는 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밑바탕에서 꿈틀거리는 목 기운은 수() 기운을 타고 지상으로 올라와 화려한 불꽃을 피운다. 수 기운은 목 기운을 북돋는 힘으로 작용하면서, 동시에 목화 기운을 조절하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물이 없는 목은 힘껏 자라날 수 없고, 물이 없는 화는 지속적으로 불타오르기 힘들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는 무엇보다 이러한 수의 기운을 무시한다. 목화 기운을 받아 화려한 사회를 이루었지만, 그것을 조절할 만한 수 기운이 부족하기에 상당히 혼란스러워 보인다. 목화는 확산하는 기운이고 금수는 수렴하는 기운이라고 했다. 봄과 여름에 새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면, 가을에 열매를 맺고 겨울에 씨앗을 저장하는 삶이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봄과 여름에 다시 싹을 틔울 수 있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화려한 꽃을 피우는 봄과 여름에 집중할 뿐, 열매를 맺고 씨앗을 저장하는 가을과 겨울의 삶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상품들은 끊임없이 바뀌고, 사람들은 그 유행에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소비를 한다. 소비를 위해 사람들은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앞서 말한 대로, 휴식조차도 상업화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일이 양의 작용이라면, 휴식은 음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사람들은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휴식을 한다. 그것도 양이 많은 유원지에 가서 억지로 휴식을 한다. 휴식을 했는데도 왜 몸은 더 피곤해지는가? 휴식을 하면서 음을 섭취한 게 아니라 양을 섭취했기 때문이다. 몸에 양이 쌓일수록 몸은 더욱 더 불타오른다. 소진(消盡)이다. 피로 사회 증후군은 음이 사라진 사회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양이 과도한 사회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당연히 음에 해당되는 활동이 필요하다. 양은 육체적인 활동을 중시한다면, 음은 정신적인 활동을 중시한다. 물질문명이 발달한 서구 사회에서 왜 명상과 같은 정신적인 활동이 중시되겠는가? 양이 극단에 이른 자리에서 음이 비롯되는 법이다. 음이 비롯되는 자리에서 양이 비롯된다고 말해도 좋다. 계절적으로 한겨울에 해당되는 절기인 동지에 이르면 양 기운이 생기고, 한여름에 해당되는 절기인 하지에 이르면 음 기운이 생긴다. 극단에 이른 기운은 반대 기운을 낳는 힘으로 작용한다. 물질문명이 극에 이른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신 활동이 중시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살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자본주의는 그러한 정신 활동마저도 양 기운으로 상업화하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음 활동의 산업화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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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 인문사상 2020-03-08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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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 저/박문재 역
현대지성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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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와 에토스와 파토스가 어울린 설득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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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 에토스, 파토스의 수사학

-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2400년 동안 서구 수사학 이론의 중심에 서 있던 이 책은 말 그대로 다른 이를 설득하는 방법을 쓴 책이다. 근거가 없는 말로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는 없다. 설득이라는 명확한 근거를 통해 듣는 사람을 이해시키는 작업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변증학과 윤리학, 정치학을 기반으로 대중을 설득하고, 법정에서 상대를 설득하는 기술을 논한다. 기술은 방법을 의미한다. 설득의 기술을 명확히 인지해야 우리는 다른 사람을 무난하게 설득할 수 있다. 토론보다는 우격다짐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지은이가 제시하는 설득의 수사학은 지금의 한국문화에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보여준다.

 

한국인은 정에 약하다고 한다. 정에 휩쓸려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말이다. ‘우리라는 울타리로 사람들은 이쪽과 저쪽을 나눈다. 당연히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 편이고, 울타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 편이 아니다. 지연, 학연에 얽매인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사람들은 어떻게든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울타리 바깥으로 내쫓긴 사람들은 경쟁조차도 할 수 없다. 울타리 안에서 어떻게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울타리 바깥으로 내쫓기지 않으려면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 군대처럼 상명하복의 체계가 한국사회를 좀먹고 있는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로 사람들은 인연과 학연에 치우친 사회를 자꾸만 합리화하려고 한다. 우리 편이 저지르는 불법은 합법으로 가장되고, 다른 편이 저지르는 합법은 불법으로 선전된다. 대중을 설득하는 기술은 언제나 상대를 비방하는 데서 비롯된다. 정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시급한 민생 사안을 다룬 정책을 미뤄두는 국회의원들을 보라. 그들은 정당의 논리로 대중을 설득하려고 한다. 그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생각도 없이 그것을 따르고, 그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정책을 무조건 반대한다.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양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힘에 밀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기술을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가 연결된 과정으로 설명한다. 로고스는 논리를 의미한다. 인연이니 학연이니 하는 것은 논리가 아니다. 상대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려면 누구나 인정하는 보편타당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에토스는 윤리를 의미한다. 윤리가 배제된 로고스는 차가운 이성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사는 윤리만이 차가운 이성의 구렁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파토스는 감동을 의미한다. 대중을 감동시키려면 연설가는 진심을 말해야 한다. 진심이 통하면 대중들은 감동하게 되어 있다. 이 세 가지가 모여 상대를 설득하는 수사학의 기본이 마련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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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 『루쉰의 광인일기, 식인과 광기』 | 인문사상 2020-02-2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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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루쉰의 광인일기, 식인과 광기

이주노 저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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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의 근대인과 광기의 탈근대인이 벌이는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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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과 광인 사이에 서 있는 근대인의 초상

- 이주노, 『루쉰의 광인일기, 식인과 광기』

 

 

 

이 책은 식인광기를 키워드로 하여 루쉰의 「광인일기」를 분석하고 있다. 전체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이 소설의 다양한 맥락을 문학 안팎의 다양한 문제들을 통해 이끌어내고 있다. 광인을 다룬 세계문학을 통해 이 작품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문학 연구자들을 위해 이 소설의 연구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 작품이 발표된 역사적 상황을 재구함으로써 작가가 왜 광인식인에 주목했는지 정리하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광인일기?를 전방위적으로 분석한 책이라고 하겠다.

 

지은이가 키워드로 삼은 식인광기는 근대사회의 탄생과 이어져 있다. ‘식인은 무엇보다 근대의 야만적 폭력성을 나타낸다. 식인이라고 해서 실제로 사람을 먹는 게 아니다. 식인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근대인의 위상을 에둘러 표현한다. 즉 역사책 속 인의도덕이라는 기표는 새로운 세계 인식에 눈을 뜬 에게는 식인의 기호로 읽히지만, 타인에게는 글자 그대로 인간이 지켜야 할 행위규범으로 받아들여진다.”(36)라는 언급에 드러나는 대로, 지은이는 식인을 근대를 나타내는 기호로 풀이하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광인의 입장에서 보면, 인의도덕이니 하는 것이 식인을 의미하는 기호가 될 수 있다. 누군가를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식인이라는 기호는 이 지점에서 인간의 삶을 억압하는 모든 것을 상징하게 된다. 자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라면,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의 불행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 또한 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개발을 위해 폭력적으로 자연을 파괴하는 것 또한 근대인의 식인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의 광인은 이러한 폭력적인 세계와 거리를 두려고 한다. 돌려 말하면 폭력으로 이 세상을 지배하려는 권력자들과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식인을 비판할수록 는 그래서 세상 바깥으로 내쫓길 수밖에 없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제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우리는 광인이라고 하지 않는가.

 

관점에 따라 광인은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사회에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공하는 선지자로도 볼 수 있다. 지은이는 말한다. ?광인일기?의 광인은 결코 루쉰의 관념적 세계에서 돌연 뛰쳐나온 산물이 아니다. 광인은 바로 루쉰의 오랜 독서 경험, 국민성 개조 및 인간 확립이라는 사유체계, 그리고 당시의 문화담론이 결합하여 빚어낸 독창적인 예술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57)라고. ‘광인이나 광기라는 기호 자체에 이미 반사회성이 내포되어 있다. 광인은 세상 밖에서 세상을 보려고 한다. 당연히 세상 안에서 세상을 보려는 사람들과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아내를 애도하는 장례식장에서 장자는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슬픔을 표하지 않는 장자를 욕했다. 장자를 미치광이로 판단한 것이다. 장자는 왜 슬픔을 드러내지 않은 것일까? 장자는 삶과 죽음에 연연하지 않는다. 삶이 끝난 자리에 죽음이 있는 게 아니라, 삶이 끝난 자리에서 죽음이 새로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죽음은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지점인 셈이다. 이것을 명백히 아는데, 어찌 아내의 죽음을 슬퍼할까. 아내가 아니라 자신이 죽어도 장자는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진리를 광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실천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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