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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한강-김세영,허영만] 역사는 꼭 교과서로 만 배우는 게 아니다 | Memento 2020-05-2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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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세트] 오! 한강 (총5권/완결)

김세영,허영만 저
가디언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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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꼭 교과서로 만 배우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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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역사를 배울 것인가. 우선 교과서가 가장 안전하고 무난한 방법이다. 상황마다 다르지만 교과서만큼 가장 논쟁적이지 않고 합의된 역사서는 드물다. 하지만 재미가 없다. 왜 그럴까. 역사 수업시간을 떠올려보자. 시험에 나온다고, 꼭 외워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들 중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이야기는 무엇이 있을까. 하나도 없다. ? 살아 있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논쟁을 피하기 위해 맥락을 지웠고, 애매하거나 중의적인 사항들은 삭제된다. 진실보다는 사실을 전달해야 하며, 그래야만 세상에 나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잠을 부른다.

반면, 야사나 비화들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 지지 않는다. 시험에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강조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뇌리에 박혀서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잠자던 학생도 웃음소리를 듣고 일어나기 마련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그렇게 현실이 된다.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임을 깨닫고, 과거의 망령이 아닌 현실의 고뇌를 담고 있음을 아는 순간. 역사는 단순히 기록을 넘어서 현재에 되살아난다.

모두가 역사를 전문적으로 배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역사에 재미를 느끼고 편하게 생각해야 한다. 최소한 시험과목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역사도 인문학의 한 분야다. 사람을 위한 학문이지, 사람의 뇌를 고통 받게 하는 학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정통 역사서가 아닌, 하지만 정통 역사서만큼 시대를 관통하는 만화들이 많았으면 한다. 역사에 흥미를 얻고, 시대에 관심을 가지기 위해서 이만큼 대중적인 재료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한다. 이렇게 역사를 배우게 되면 잘못된 정보를 가지게 되어 왜곡이 심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기우다. 관심이 커지면 배움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그 배움의 과정에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사실을 통해 진실에 다다르려는 노력은 지속될 것이다. 오히려 영화, 드라마, 만화 등의 팩션을 지나치게 경계하는 것은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는데 대한 불쾌감이 아닐까 싶다. 도서관 안에 먼지만 쌓이는 연구서 100권 보다 때로는 핫한 드라마 한 편이, 이러한 만화책 시리즈가 더 없이 중요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연구서가 없다면, 2차 가공물이 나올 수 없음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한강>은 분명 역사서는 아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대변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 일부를 가장 쉽고, 가장 사실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인지 모른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을 일부나마 볼 수 있는 기회지 않을까. 아직은 완결이 나지 않았지만, 어쩌면 나 역시 그 후반부에 일부일지 모르는 이야기가 어떻게 채워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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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 없는 놈은 맞아서도 작살나지마는, 때리서도 작살나는 법이요. 그것을 참고 살아야지 잉. p.190

짐성들은 속고 속이도, 땅하고 식물들은 속이지 않어. 뿌린 대로 거두는 벱잉께. 니는 니 헐 일이나 디지도록 해라. 묵을 거시 없으믄 땅이라도 받아 묵을 참으로. p.202

 

[2]

먹어야 한다는 게 또한 근본적인 죄악이었다. p.121

콩 볶는 소리에 눈을 뜨니/숲속은 아직도 악몽에 푸르도다./하늘은 본디 검고/땅은 본디 누른 것을/누구는 붉다 하고/누구는 푸르다 하도다./입 다물고/한결같이 새끼 치고/살아가면 될 것을/서로서로 이쁜 꽃을 피운다고/무참히 꺾어버리도다./눈망울이 고운 여인/고백 한 번 못 해본 채/내 청춘/짙푸른 녹음 속을/헤매도다. p.140

원래 똥 속의 구더기 같은 거지.

그보다 낫다고 믿는 건 안 되는 건가요?

믿는 건 구역질 나는 자존심에 불과해...

이런 인간들이 어찌케 문화랑 역사를 창조할 수 있었는지...

역사 자체가 인간의 피와 살과 똥으로 이루어진 거니까...

근디 끝긑내 포기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니오? 절망이 곧 타락이고 죄악 아니오?

아직도 혁명에다 희망을 걸고 있나?

그 수밖에 더 있겠소?

부럽군. p.188

 

[3]

사람은 누구나 맛있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으려 애를 쓴다카이~ 허무한 일이지. 그래 봐야 전부 똥으로 나올 뿐 아닌가베~ 철학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들도 똑같은 걸세. p.99

나는 대통령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대통령과 싸울 사람조차 없다는 국민이 너무 불쌍하다. 독립투사로서의 이승만은 존경하나 행정 수반으로서는 적격이 아님이 드러났다. (조봉암) 143p.

단일화가 되건 안 되건 이번 선거는 이승만이 이기게끔 돼 있는 거요.

어차피 질거믄 구 형은 뭣땀시 그리 열성이었지?

그게 바로 민주주의니까... p.178

 

[4]

우리 집 가난은 너무 전형적이고, 드라마틱해요. 안 그래요?

냉소적이군.

그런 건 아닐 거에요. 가난해서 고통스러운 일이 많지만 가난한 사람만 알 수 있는 인생의 기쁨 같은 것도 있거든요. p.8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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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여행자를 위한 파리x역사-주경철] 나와 파리는 안 맞는 듯 | Memento 2020-05-1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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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도시여행자를 위한 파리x역사

주경철 저
휴머니스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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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둘 다 맞을 것이다.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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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치 않은 기회로 독일과 프랑스를 여행할 기회가 생겼다. 주로 독일의 주요 도시 몇 군데와 파리를 묶어서 다녀오는 코스였다. 첫 해외여행이다 보니, 모든 게 새로웠다. 애석하게도 새로움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길도 모르고, 문화도 모른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은 가장 큰 난관이었다. 부딪혀 보는 수밖에 다른 길은 없었다. 게다가 당시 유럽은 테러 문제로 민감한 시기였다. 심지어 한 달 뒤에 내가 갔던 장소에서 무장테러가 일어났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회사의 직원은 여행은커녕, 공포의 순간을 벗어난 다음날 바로 귀국했다고 했다. 유럽은 지상 낙원은 아니었다. 기차역에는 영어로 테러를 조심하라는 배너를 보았다. 경찰이나 군인에게 달려오지 말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내가 겁에 질려 달리다가 총에 맞는 상상이 떠올랐다. 심심치 않게 무장경찰(혹은 군인)이 총을 들고 관광지에 상주하기도 했다. 우리가 북한의 도발을 무심히 넘기듯, 그들도 그랬을까. 당시 (아마도) 유로파가 한창이어서 여기저기 흥분한 사람들이 넘쳐서 더욱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악재들이 겹쳐서 일까. 2일 정도 짧게 파리를 경험했지만, 긍정적인 기억이 없다. 지하철은 더럽고 정말로 찌릉내 가득했다. 한국의 지하철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내 눈 앞에서 중국인의 가방을 소매치기하는 장면을 보았고,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몽마르트 언덕에서는 야바위꾼이 넘쳤고, 가게는 일찍 닫았으며 불친절했다. 여기저기서 알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지만 (아마도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나 행동으로 추정했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두려움에 질려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공원에서 연인과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 서로 속삭이며 사랑을 나누는 게이 커플들, 아름다운 건축물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문화재들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하긴 했다. 일주일만 더 주어진다면 좋겠다는 생각과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연일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혼란스럽기에 아름다운 것일까. 혁명, 혼돈, 이것들이 파리가 아름다워진 원동력일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부지런히 걸으며 눈보다는 머리만 바쁘게 움직였다.

사람들은 파리는 정말로 멋진 텍스트’(p.519)”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번성하는 도시라 칭송한다. 파리를 동경하고, 찬양한다. 하지만 루소처럼 나에게 파리는 더럽고 악취가 나며 시커먼 집들이 흉한, 냄새나는 걸인들과 가짜 차를 파는 여인들로 가득한 곳처럼 느껴졌다. “아마 둘 다 맞을 것이다.(p.259)” 무엇보다 내가 파리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더 그러할 테다. 모른다는 것은 두려움을 낳기 마련이다. 그나마 한국의 위대한(?) 파워블로거들이 없었다면, 같이 간 동료들이 나를 떠안고 가지 않았다면 절대로 가지 못했을 여행지이기도 하다. 아는 만큼 보는 법. 딱 나는 블로거들이 올려준 정보만큼 파리를 보고 왔다.

주경철 교수의 <도시 여행자를 위한 파리x역사>는 이런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 준다. 파리 시내 곳곳에 있는 유적들의 역사와 이야기를 찬찬히 설명해 준다. 내가 걸었던 그거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무심히 지나쳤던 그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걷기에 지쳤던 그 장소에서 위대한 혁명이 일어났었다. 시간상 들르지 못했던 그곳은 한 번쯤 들어가서 구경을 했어야 했었다. 주경철 교수의 안내대로 내가 갔던 길을 되짚어 본다. 공포와 피로는 늘 그렇듯 시야를 가리고, 이성을 마비시킨다. 게다가 아는게 하나도 없었던 그때를 돌아본다. 파리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된 지금, 다시 한 번 파리를 가게 된다면 무엇을 할까. 그래도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었으니, 알차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갈 시간과 돈이나 있을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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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강은 그 차이가 훨씬 적고 일 년 내내 강물이 풍부한 덕분에 강을 통한 운송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 프랑스 동부 및 남부 지역과 북해 연안 지역을 연결하는 교역이 발달하기 좋은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는 파리가 성장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소다. 파리시 문장에 배가 그려져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문장에 함께 쓰인 슬로건은 흔들리더라도 가라앉지 않는다 Fluctuat nec mergitur’이다. p.24

원래 파리 주민의 세련된 문화유산과 야만족이 가지고 온 강건한 문화 요소가 합쳐지며 프랑스 문화가 형성되어 갔다. p.55

성당은 그 자체가 중요한 텍스트다. 글을 못 읽는 서민에게 건물과 그 조각은 교리를 가르쳐주는 교과서와 다름없었다. ... 초기 신학자들은 읽기보다는 보기로 신의 충직한 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감각의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영적인 원리는 지성보다는 감각을 통해 받아들일 때 우리 영혼은 더 튼튼하게 할 수 있다. <성서>보다도 <성서> 내용을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p.85

당대 주류 신학자나 종교인의 관점에서 신앙은 그냥 절대적인 것이지, 거기에 모호함과 부조리함이라고는 아예 없었다. 믿음으로 산을 움직일 수 있다 하지 않는가. 부조리? 부조리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다 cerdo quia absurdum,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인간의 머리로 헤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지만 아벨라르의 새로운 철학은 완전히 다른 견해를 내놓는다.(p.103)

마치 어둠이란 빛이 있어야 할 곳에 없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듯이, 죄란 존재가 아니라 부재에 있기 때문이다.(p.104)

파리 시내에는 말 동상이 많은데, 여기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다. 말이 앞다리를 모두 들고 뒷발로 서 있으면 그 말을 탄 사람은 전사한 인물이다. 앞다리를 하나만 들고 있으면 암살당했거나 전투 중 부상을 입은 후 사망한 인물이다.(에티엔 마르셀이 그런 경우다.) 네 다리 모두 땅에 붙어 있으면 침대에서 눈을 감은 분이다. 그렇지만 이 규칙이 엄격히 적용된 건 아니다. p.157

프롱드의 난은 기이한 방향으로 끝났다. 처음에는 귀족부터 서민까지 모든 사람이 국왕에게 저항했다가 끝판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국왕에게 복종을 약속하는 이른바 복종의 전염병사태가 벌어졌다. 모든 권위가 실추한 가운데 왕권만이 홀로 강력해졌다! 이른바 절대주의는 루이 14세의 작품이기 이전에 국민이 원하는 바였다. p.225

당시 파리는 엑스피이 수도원장이 보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번성하는 도시였고, 루소에게는 작고 더럽고 악취가 나며 시커먼 집들이 흉한, 냄새나는 걸인들과 가짜 차를 파는 여인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아마 둘 다 맞을 것이다. p.259

사회가 바뀌어야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고,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사회가 바뀐다. 다시 말해 사회와 의식은 함께 변화한다. p.261

(볼테르)는 실로 엄청나게 많은 글을 썼다. 글을 쓰는 이유는 행동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홀로 깊은 사색에 빠지는 부류가 아니라, 문제의식을 가진 현실 참여적 지식인이었다. 그야말로 당대의 모든 문제에 대해 논쟁을 벌였고, 그것을 글로 남겼다. p.264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사에서 실로 의미 있는 사건이다. 유럽 사회, 더 크게 보면 인류 사회가 공통으로 안고 있던 신분의 문제, 불평등의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과감한 해결책을 찾아보려 했기 때문이다. 18세기 프랑스는 가난한 사회가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였다. 이 문제가 결국 국가와 사회를 뿌리째 흔들었다. p.276

역사는 두 번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한 번은 비극, 한 번은 코미디. -카를 마르크스 p.369

파리는 정말로 멋진 텍스트이다. 서구 문명이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폭력적으로 분출되었다가 누적된 중심점이다. p.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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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김누리] 역으로 지금 이대로면 불행은 당연한 것이다. | Memento 2020-05-0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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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김누리 저
해냄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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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니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는 저자의 책 제목은 오히려 역으로 읽힌다. 지금 이대로 우리가 살아간다면,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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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내 삶은 왜 이럴까? 살면서 한 번쯤은 고민해 본다. 이다지도 열심히 일하고, 번 돈도 아껴서 가치 있게 쓰고 있건만, 행복한 삶은 항상 먼 꿈일 뿐이다. TV에 나오는 막장 뉴스들을 보며 도대체 우리 사회는 왜 이럴까? 고민해 본다.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많이 일하며, 손꼽히는 경제 강국임에도, 가장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사회적으로 불행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몇 번의 투표,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바뀌는 것은 없다. 점점 포기할 것만 늘어간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헬조선이라고 말한다. 불행은 우리의 일상이다.

여기에 저자는 책 제목으로 답한다.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급변하는 세상에 잘 적응하는 것 역시 생존에 중요하다. 하지만 늘 적응하기만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지금의 세상은 적응만으로 생존할 수 없다. 방법은 새로운 상황을 창출해내고 주도해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상황을 만들고, 잘못된 상태를 바꿀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 필요한 것은 단지 그것을 실행에 옮길 용기와 비전이 없을 뿐(p.345)”이다. 저자는 그 용기와 비전을 68혁명과 분단체제 극복에서 본다. 여기서부터 우리나라의 잘못된 현실을 인식해나가야만, “현대사회의 초등교육을 거쳐 새로운 상상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상상력은 무엇으로 이뤄질까. 아마도 민주주의가 아닐까. 촛불혁명도 이뤄낸 대한민국에서 무슨 민주주의를 운운하냐고 할지 모르겠다. 이미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고 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적 민주주의에 국한된다. 저자의 평가대로 대한민국은 정치 민주화가 잘 이뤄진 나라다. 반면 사회, 경제, 문화 민주화 영역은 여전히 후진국이다. 우리 사회의 여러 병폐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저자는 독일과의 비교를 통해 여러 예시까지 제시해 준다. 우리의 일상에서는 아직도 민주주의는 요원하다. 민주주의는 직장 앞에서 멈춰서고, 약탈적 시장논리 앞에 무력하다. 노조는 악의 축으로 취급받고, 이견을 내고 질문하는 것에는 여전히 인색하다. 파시즘적인 병영문화가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고 스스로를 검열하고 착취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68혁명의 부재와 분단체계의 한계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68혁명의 영향권에 있지 못하다. 이 시기에 한국은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은커녕 가장 억압이 강력해졌다. 분단체계를 골자로 한 반공주의 강화, 독재를 기반으로 한 파시즘적 병영문화는 해방보다 억압의 내면화를 주었다. 주민등록법, 국민교육헌장, 예비군 훈련, 교련 수업들은 한국인들에게 내 안의 파시즘아주 일상적인 파시즘을 내재시켰다. 그리고 이것들이 한국의 가장 근본적인 생활 문화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까라면 까라. 이런 상명하복의 문화가 여전히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도 누구나 한국 사람이라면 그렇게 행동하거나 할 수 있다.

이것이 해결 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다. 바로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87체제의 성립이다. 하지만 변화의 주역이었던 86세대는 세대적 한계에 따라 이상 사회에 대한 비전과 상상력의 지평이 협소했고(p.133) 정치 민주화, 즉 지배 세력의 교체만 이뤄냈다는 한계를 지닌다. 분명 그들 탓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아쉬울 따름이다. 사회 전반의 권력을 장악한 채, 개혁보다는 정치 게임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386 세대유감>에서 평가한바, 독재를 끝냈지만, 독재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았고, 독재와 싸우다 가장 독재와 닮아버린 세대. 우리는 3김 시대가 결국 두 사람이 대통령을 하고 나서야 종료된 것처럼, 386 시대가 그들끼리 돌아가며 마지막까지 버티는 것(<386 세대유감> p.424)”을 기다려야만 하는 걸까.

저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우리의 능력은 충분하다고,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비전이다. 이는 개개인이 민주주의자가 되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이는 개개인이 강한 자아를 가질 때 가능하다. 그래야 비로소 우리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그래야만 우리 일상에서의 민주주의를 이끌어내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인 상상력, 비전을 획득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누구보다 정치적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이란 단어는 매우 위험한 단어다. 심지어 욕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정치는 우리의 일상과 매우 관련이 깊다. 현대 사회에서 삶 자체가 정치적이다. 내가 사는 생산품, 내가 보는 글, 내가 말하는 이야기. SNS에 올리는 그 어떤 사진들조차도 정치적이지 않은 게 없다. 다만 우리가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책을 덮고 나니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는 저자의 책 제목은 오히려 역으로 읽힌다. 우리가 비정치, 탈정치를 주창하며 민주주의자가 되기를 거부하고, 분단체제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 없다면. 우리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상황을 외면한 채 버티기에만 급급하다면, 지금 이대로 우리가 살아간다면,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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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는 <죽음의 스펙터클>에서 한국 사회의 특징을 네 가지로 짚었습니다. ‘끝없는 경쟁, 극단적 개인주의,(p.6) 일상의 사막화, 생활 리듬의 초가속화가 그것입니다. p.7

우리가 이룬 이 엄청난 정치적, 경제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나요? ...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p.7

인간 존엄은 불가침하다라는 근대 사회의 상식을 헌법 제1조로 가진 나라가 바로 독일입니다. 저는 우리가 헬조선을 벗어나 유토피아로 진입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존중(p.8)하는 상식적인 나라가 되기를 소망할 따름입니다. p.9

촛불집회가 보여주는 것은 이것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위대한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취약한지,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p.35

이 나라에서는 광장 민주주의일상 민주주의가 괴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충분히 민주주의자가 되지 못한 거지요. p.37

사회 민주화 ...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사회 각 영역에서 개별 조직 내의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까지 자치적인 운영을 하고, 자율적인 결정을 하느냐 하는 정도를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p.43) ... 구성원들의 의사가 어떻게 민주적으로 모아지는가 하는 것, 즉 조직(p.44)의 지배구조가 어떻게 조직 내부에서 형성되는가 하는 것이 사회 민주화의 요체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사회 민주화의 기본 원리는 구성원들의 자치입니다. p.45

경제 민주화 ... 기본적으로 경제 기구, 특히 기업 안에서 과연 어느 정도 민주적인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가를 경제 민주화의 기준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 가장 민주화가 안 된 곳이 어디일까요? 바로 기업입니다. ... 한국 기업에서는 그 소유자가 그야말로 전제 군주처럼 행동합니다. p.50

우리 시민들은 국가시민으로서는 의회와 정부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주권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나 경제시민으로서는 노예로 산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볼프강 미슈니크(1976년 노사공동결정제 법안을 대표 발의, 자유민주당(FDP) 원내대표)가 법안을 발의하면서 한 연설 p.57

문화라는 건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들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 민주화란 바로 이 관계들의 민주적 변화를 뜻하지요. 남성과 여성, 교사와 학생,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이런 관계들이 수평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p.61

베트남전쟁을 보면서 도덕적 충격을 느끼고, 미소 간의 핵무기 경쟁을 보면서 부조리한 세계를 체험한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 전체를 부정하고 기성 가치 전체를 회의하는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그들은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가치 질서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기성세대가 이루어 놓은 것은 기실 거대한 억압의 체계이고, 이것을 혁파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여기서 모든 형태의 억압(p.72)으로부터 해방이라는 68혁명의 핵심 구호가 탄생하게 됩니다. p.73

권력을 비판하지 못하는 개그가 약자를 공격하는 형태는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병리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p.89

모든 지배적인 지식은 지배하는 자의 지식이라고 보기 때문에 지식 그 자체보다는 특정 지식이 지배적인 지식이 된 경로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 p.90

많은 미래학자들이 동북아시아가 21세기에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동북아시아의 현실은 어떤가요. 지금 이 지역은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봅니다. 일본의 과거, 한반도의 현재, 중국의 미래가 그것입니다. / 일본은 많은 장점을 가진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묶여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아시아에서 어느 나라도 일본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과거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현재란 금방 이해하시겠지요. 한반도의 분단으로 인해 동북아시아 전체가 물리적으로 소통이(p.107) 안 되는 형국입니다. 중국의 미래가 뜻하는 것은 미래의 중국이 패권주의로 나아갈 것이라는 공포를 주변국들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p.108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베르볼트 브레히트 p.130

결국 문제는 민주화 이후 86세대가 보인 행보입니다. 그들은 정치 게임에 능한 반면, 사회개혁에 무능했습니다. 이것이 한국의 86세대와 독일의 68세대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p.135) ... 한국 사회가 질적으로 새로운 사회로 변화하지 못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86세대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도덕적 우월감입니다. ... 그들의 상대는 언제나 외세에 기대어 기회주의적으로 사적인 이익만을 탐하는 수구 보수들이었습니다. ... 항상 도덕적으로 우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p.137

68혁명의 부재 때문에 지금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시대착오적인 현상들 ... 첫 번째는 인권 감수성의 부재(p.141) ...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정말 부족 ... 두 번째 현상은 소비주의 문화(p.143) ... 소비를 해야 일자리가 생기고, 경제가 발전하고, 잘사는 나라가 된다는 논리 ... 소비주의와 물질주의 논리만이 전면적으로 지배하는 참으로 놀라운 사회 p.146

민주주의 최대의 적은 약한 자아 ?테오도르 아도르노 p.148

성 정치학이 탄생 ... 깊은 죄의식을 내면화한 인간일수록 약한 자아를 갖게 되고, 약한 자아를 가진 인간일수록 권력에 굴종적인 인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 죄의식이라는 성적, 심리적 문제가 권위주의라는 정치적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지요. / 이를 요약하면 인간의 성을 억압하면 억압할수록, 그 개인은 권력에 굴종적인 인간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권위주의적 성격이론이라고 합니다. p.152

세 번째 특징은 한국 사회가 권위주의 사회라는 것입니다. (p.156) ... 살인적인 경쟁은 승자 독식의 논리와 연결되어 권위주의 문화를 더욱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p.157

교육, 즉 에듀케이트라는 말은 밖으로(e-) 끌어낸다(duc-)’는 뜻입니다. ... 고유한 재능은 사람 안에 이미 다 들어 있고, 그걸 끌어내는 게 교육이지 지식을 쳐넣는것이 교육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가 한국에서 배운 교육은 사실 반교육에 가깝습니다. p.159

우리 한국인은 경쟁을 마치 정의의 유일한 기준인 양 절대시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정의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의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여기서 독일과 한국의 차이가 분명해집니다. 독일 사회는 그 구성원에게 최대한 많은 기회를 제공하려고 하는 반면, 한국 사회는 그 구성원에게 최소한의 기회마저 박탈하려고 합니다. p.165

한국 사회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자살 사회로 굳어진 것은 바로 한국 사회가 자기착취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사회적, 심리학적 구조를 정확히 투시해야 합니다. 사회적 문제를 개인적 문제로 부단히 전가하는 지배자들의 기만적인 논리를 내면화하고 신념화해서는 이 사회를 변혁할 수 없습니다. p.169

소외의 문제(p.176) ... ‘배제라기보다는 전복에 그 핵심이 있습니다.(p.177) ... 대상이나 현상이 본래는 의 필요에 의해서 생겨난 의 것이었는데, 이것이 점점 로부터 멀어져 낯설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 이제는 역으로 를 지배하고, ‘는 그것에 종속되는 전도 현상 p.178

여성해방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은 68혁명의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였는데, 이제야 한국에서 그런 현상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지요. p.181

유럽과 서구의 흐름을 보면 어느 사회에서나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더 진보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여성들이 어느 사회에서나 성적 억압과 사회적 억압, 즉 이중의 억압을 당해왔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남성에 비해 고통과 억압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저는 진보란 정치적 좌우 개념을 넘어서 보다 넓은 의미에서 고통과 억압에 대한 민감성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겪은 고통과 억압을 보다 민감하게 느끼는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 좌파라는 겁니다. 이에 반해 보수는 대개 고통과 억압보다 권력과 질서에 민감하지요. p.182

한국 사회에서 12년 동안 교육을 받고, 3년 동안 군대를 갔다 온 저 같은 남성이 정상적인 인간이 되는 게 가능한가? 제 경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p.186

지금까지 인권 감수성에서부터, 소비주의, 권위주의, 자기착취와 소외, 성도덕 문제에 이르기까지 68혁명의 부재가 한국 사회에 드리운 그늘들을 짚어보았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서구에서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깊이 있게 논의되고 실천적으로 극복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개념조차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비유컨대 한국 사회는 서구 사회가 50년 전에 졸업한 현대 초등학교를 아직도 마치지 못한 셈입니다. 그들과 반세기의 격차가 생겨난 것이지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젊은 세대가 제기하는 헬조선담론이나 꼰대담론은 바로 우리가 제대로 현대사회의 초등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 그럼 한국 사회는 왜 이런 지체된, ... ‘예외 국가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우리 사회가 거쳐온 독특한 역사적 경로 때문입니다. 식민 지배와 군정, 분단과 냉(p.188), 내전과 반공주의, 군사독재와 민주화라는 격변의 역사 속에서 생겨난, 대한민국만이 거쳐 온, 아주 독특한

역사적 경로가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분단체제는 지난 70년간 우리 사회를 아주 기형적인 사회로 만든 핵심적인 요인입니다. p.189

인류의 역사는 해방의 역사였고, 모든 해방은 자기해방이었습니다. p.215

독일의 가장 우파 정당이 한국의 가장 좌파 정당보다 더 좌파적인 것이 현실입니다. 그 정도로 한국의 정치 지형은 극단적으로 우경화되어 있습니다. p.229

한국은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는사회가 아니라, ‘수구와 보수가 과두 지배하는사회입니다. p.234

보수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동체입니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것이 보수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개인을 공동체보다 더 중시하는 쪽은 자유주의이지요. 그래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를 구분할 때 결정적 기준이 개인을 우선하느냐, 공동체를 우선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 보수가 공동체를 중시하기 때문에 바로 가장 근원적(p.235)인 공동체로서 민족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는 대부분 민족주의자인 거지요. ... 다음으로 보수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역사입니다. 전통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과거에서 배우려는 자세가 보수의 자세이지요. ... 또한 보수주의자들은 문화도 중시합니다. 세련된 언어를 쓰려고 노력하고, 품위와 품격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p.236

수구란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하여 외세와 손잡고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는 무리들입니다. p.237

고려대 김우창 명예교수는 한국 사회가 오만과 모멸의 구조로 되어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이 살벌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은 승자는 턱없이 오만하고, 패자는 너무나 깊은 모멸감을 내면화하고 살아간다는 것이지요. p.240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극단적으로 우경화된 정치지형을 가진 나라입니다. 지난 70년 동안 한국 정치는 보수와 진보가 경쟁을 한 것이 아니라, 수구와 보수가 권력을 분점해 왔습니다. 이것이 한국 사회가 오늘날 정치 민주화와 경제성장,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헬조선이 된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p.245

이 기형적인 국가, 이 부조리한 사회를 만든 것은 바로 남한과 북한의 냉전체제입니다. (p.262) ...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통일이 아니라 냉전체제 극복이라는 얘기입니다. p.263

독일 통일은 흡수 통일이라는 한국인의 잘못된 인식은 언제나 역사를 승자의 관점에서 보는 관성에서 나온 오류입니다. 현재 독일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정치 사회적 변화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오류의 수정이 필요합니다. ,,, 우리가 독일 통일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두 번째 사항은 독일 통일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었다는 주장입니다. p.293

동도의 몰락은 사회주의의 몰락이자, 낙관적 이난관의 몰락을 의미합니다. p.303

세 번째 오해는 독일이 우리와는 달리 통일 환경이 훨씬 우호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 사실 동독과 서독은 서로 통일을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습니다. p.305

한반도의 통일이란 지난 100년 동안 있었던 다양한 사회주의의 실험 중에서 가장 권위적인 사회주의 국가와, 지난 세기의 수많은 자본주의 사례 중에서 가장 약탈적인 자본주의 국가가 합쳐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통일은 고질적인 병을 앓고 있는 두 국가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 그래서 저는 한반도의 통일은(p.319) 남북이 자신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권위주의적 사회주의를 민주화하고, 동시에 남한의 약탈적 자본주의를 인간화하는 것이 통일의 사회적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p.320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통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분단체제를 해소하는 것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전제는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p.328) 안 된다는 공동의 인식입니다. p.329

우리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상상력이 너무도 빈약하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를 종속변수로 보는 태도도 바뀌어야 합니다. (p.344)리가 움직임으로써 새로운 상황을 창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바뀌는 상황에 무조건 적응하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새로운 상황을 만들고, 잘못된 상태를 바꿀 만한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실행에 옮길 용기와 비전이 없을 뿐입니다. p.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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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정재찬] 그래, 이것도 인생 | Memento 2020-05-0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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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정재찬 저
인플루엔셜 | 2020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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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음과 책, 시, 그리고 쓸데없는 단상들. 오랜만의 기분 좋은 연휴가 그렇게 저문다.(절대 책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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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휴는 왜 이렇게 졸린 지 모르겠다. 새해가 시작하고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날, 리뷰는커녕 책장 펼치기 어려웠던 시간들이었다. 틈틈이 노력했음에도,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때론 스스로 채찍질에 그만하면 되었음에도 무리하기도 했고, 은근한 압박 속에 속앓이도 했다. 그렇게 수개월, 간만의 여유시간에 드디어 읽고 싶었던 책을 펼쳐 들었다. 전작 <시를 잃은 그대에게>를 보며 펑펑 울고 다시 일어났던 기억을 떠올렸다. 힘겨운 삶의 터널 속, 이번에도 같은 기대 속에 페이지를 넘기건만 책을 읽는지 꿈을 꾸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순간이 계속되어 짜증이 벌컥 났다. 이건 전적으로 저자의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다. 책의 탓도 아니다, 지쳐버린 내 몸의 탓이다. 그렇게 크레마를 내 얼굴에 던지며 몇 번을 뒤척거리며 읽었다.

사실 시와 나는 그렇게 친하지 않다. 시는 나에게 늘 no.2. 시집을 간혹 사서 읽곤 하지만 딱히 선구안이 좋지 않다. 시를 대하는 내 태도는 마치 히트곡만 골라 듣는 사람과 같아서, 시집을 사는 일이 꺼려지기도 했다. 만약 산다 해도 시집 전권 1권을 통틀어 맘에 드는 시를 1개라도 찾으면 다행이었다. 더군다나 유명한 시인이 아니라면 좀처럼 시집을 집어 들기 어려웠다. 시와 친하지 않다보니 이름값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시인들의 언어는 수수께끼 같고, 글 속에 힌트는 없었다. 끈기 있게 시를 들여다보고, 내 삶을 비춰봐야 한다. 언제나 바쁘다는 핑계, 효율성이라는 변명, 피곤하다는 현실에 몇 권 되지도 않는 시집조차 구석 한 켠에서 먼지만 쌓이곤 했다.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은 그런 나에게 위로를 준다. 시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늘 어려운 언어들로만 시가 쓰이는 것이 아니며, 어떻게 시를 바라볼 수 있는지 실마리를 얻게 해 준다. 밥벌이, 돌봄, 건강, 배움, 사랑, 관계, 소유. 시는 이 모든, 우리가 인생 혹은 삶이라 부르는 모든 것을 관통하고 있다. 항상 시는 준비되어 있다. 다만 내가 관찰하고, 인내하고, 생각하는 것이 부족할 뿐이다. 시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시를 생각해야하고, 시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인생을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p.301)

세 번째로 크레마를 내 얼굴에 떨뜨린 순간. 벌떡 일어나 얼굴을 두드린다. 오늘 따라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살랑거린다. 사방은 조용하고, 공기는 깨끗하다. 오랜만의 여유. 비록 기대한 만큼의 독서는 못했지만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제대로 읽지 못했지만 책을 끼고 불편한 맘 없이 조는 것도 오랜만이구나 싶다. 그래 이렇게 읽고, 다시 또 읽고. 다시 못 읽으면 또 어떠랴. 길게 쓰지 못하면 어떠랴. 인생이란 게 원래 그런 게 아닐까. 졸음과 책, , 그리고 쓸데없는 단상들. 오랜만의 기분 좋은 연휴가 그렇게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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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고독하고 혼자 삽니다. 그래서 실은 직업이라는 형태로 나의 부족한 점들을 서로 메꿔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결핍된 그 무엇이 있을 거예요. 그걸 채워주기 위해서 누구는 재화를, 누구는 용역을 제공하고 교환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 직업의 본질이란, 이처럼 사람들이 모두 같이 살려고, 너도 살리려는 데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p.39) ... 서로의 이마에 손을 내밀고 그 손에 이마를 맡길 수 있는 존재들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게 우리 모든 업의 본질이 아닐까요. p.40

죽어라 일하는데 왜 나는 죽지도 않고 왜 일은 줄지도 않는가?” ... “일은 하면 할수록 늘기 때문이라고, 갓 취업해서 제대로 일할 줄 모르면 선임들이 격려해줄 때 하는 말이 그것 아닙니까. “괜찮아, 일은 하다 보면 늘어라고. , 정말 일은 늡니다.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느는게 아니라 정말 일은 늘면 늘지 줄어드는 법이 없습니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줄지 않는 것이 일입니다. 과로로 죽을 판인데, 과로하지 않으면 더 죽을 판으로 일이 넘쳐 어쩔 수 없이 과로라도 해서 일을 줄이려는데, 그러면 그새 일은 또 늘어나는 악순환인 겁니다. p.55

우리의 꿈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이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누구나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 무엇은 명사겠지요. 의사, 교사, 공무원, 회사원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 가령 명사 (p.64)는 정말 이삼십 대 안에 되든지 안 되든지가 결정이 납니다. 하지만 가령 형용사 존경스러운교사는 정년까지도, 아니 평생토록 이루기 힘듭니다. 생의 목표는 그런 게 되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어쩌면 존경스러운사람이 되는 게 내 인생의 꿈이고, ‘교사의사따위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들인지도 모릅니다. ... 그런 의미에서라면 시 같은, 아름다운, 낭만적인,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목표여야 하지 않을까요? p.65

일이냐, 삶이냐, 문제는 그 둘 간의 조화와 균형을 생가하지 않고 우리 인생을 일과 삶의 대립으로 간주하는 데 있습니다. 모든 것은 인생을 잘 살기 위한 것, (p.75)차피 일도 인생이고 삶도 인생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생을 사랑하는 자는 그 둘 중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으며 편애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p.76

미래의 교사가 되길 꿈꾸는 제자들에게 제가 해주(p.101)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육자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신념이 뭔지 아느냐고. 사람은 변한다는 믿음이다. 그걸 믿지 못하면서 사람을 가르치려드는 것은 위선이거나 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동시에 교육자가 꼭 갖고 있어야 할 지혜가 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교육은 훈육이 되기 일쑤다. 잘 변하지 않는 사람을 변하게 만들어야 하기에 교육은 힘들고 위대한 것이다. p.102

변할 때까지 지치지 않고 잔소리하는 것은 애정이 아니라 집착의 징표입니다. p.102

돌아보니 인생은 나를 돌봐준 이와 내가 돌볼 이로 이루어진 돌봄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p.139

쉰 넘어보니 딴 거 없습니다. 내 몸이 나입니다. 웰비잉하지 않으면 웰다잉도 없습니다. 돈 벌고 일하느라 애쓴 내 몸, 남들 위해 바친 내 몸, 내가 아니면 누가 돌보겠습니다. 잘 먹고 잘 살아야지. 이 말을 참 오랜만에 꺼내보는 나이인 겁니다. p.148

결심이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내 몸에는 너무 많은 관성이 들어 있습니다.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몸 구석구석에 살뜰히도 배어 있습니다. 그것과 싸워 이겨내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호락호락한 사람들입니다. p.150

산다는 것은 먹는다는 것이고 먹는다는 것은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시인은 식사법을 말한다면서 우리에게 사는 법을 강론하고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살기 위해 먹는다는 것은 매우 경건한 일입니다. 먹는 것처럼 산다는 것도 그러해야 합니다. ... 죽을 때까지 밥을 먹듯, 죽기까지 성실하게 사는 것, 그것이 인생입니다. p.161

당신이 먹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브리야샤바랭 p.162

예전보다 먹을거리가 풍요롭고 다양해진 것도 사실인 반면, 대중화되고 획일화된 경향도 그만큼 강해진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p.163) ... 대중문화의 풍요는 평등을 가져다 줬습니다. 누구나 같은 코카콜라를 마시고, 캠벨수프를 먹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평등한 권력의 추가 점점 기울어져가면서 획일화의 위험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대중문화의 양면성입니다. 풍요는 다양화를(p.164) 선물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코카콜라만이 아니라 다양한 청량음료를 만들어주었고, 다양한 스푸를 만들어주었죠. 그러나 그것들은 자기 생태계 내부의 다양화만 허락할 뿐, 골목식당과 집밥의 생태계를 위협합니다. p.165

맛은 추어이다. 맛을 느끼는 것은 혀끝이 아니라 가슴이다. 그러므로 절대적으로 훌륭한 맛이란 없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숫자와 동일하다. ?허영만, <식객> p.167

내가 잘 먹고 잘 살려면 내 몸만이 아니라 내 몸을 먹이는 이의 몸을 잘 지켜줘야 합니다. p.171

저는 긍정의 힘은 믿어도 긍정의 미신은 믿기 싫습니다. p.177

냄새란 지울 수 없는 것, 내 의지와 노력과 무관하게 환경으로 인해 그저 내 몸에 베어버리는 그런 것. 삼겹살집에서 회식하면 누구나 공평하게 냄새가 배는 법인 것을, 내 탓이 아니라 환경와 문화 탓인 것을, 마치 나의 잘못이나 결함이라도 되는 것처럼 취급당하고 차별당하는 것. 피부색이 달라서, 여자라서, 가난해서 선 밖으로 밀려나는 것. p.185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관대하라는 말도 스스로에게 너무 강요하게 되면 자신에게 가혹하고 타인에게 굴종하는 일이 되고 맙니다. p.186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찰리 채플린 p.203

목표가 이끄는 삶, 그래서 계획과 전략을 세우고, 매일 결심과 각오를 새로이 하며 사는 인생도 훌륭하지만, 그저 과정에 충실하고 결과에 감사한 삶이면 가히 족하고 남습니다. 어차피 희극도 있고 비극도 있는 삶, 긍정도 하고 부정도 하는 삶이지만, 내가 헛것에 빠지지 않고, 뭔가를 욕심낸 바람에 내 삶이나 주위 사람들을 희생하는 일도 없이, 기왕이면 선한 말, 칭찬하는 말 많이 베풀며 이냥저냥 살아가면 내 마음이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p.206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황지우 <늙어가는 아내에게> p.209

관찰은 창의성과 인성을 낳고, 그럴 때 창의성과 인성은 서로 배반하지 않습니다. 세렌디프의 왕자들 이야기를 기억해보십시오. 무엇보다도 그들은 관찰을 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관찰이란 세계의 숨겨진 질서, 감춰진 비밀을 바로 보는 일일 겁니다. p.228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절망한다. -이상 p.230

우리는 공부의 프로를 양성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아마추어를 야성상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p.242

심리학자 비고츠키의 용어를 빌리자면, 컴퓨터 게임의 과정은 아동의 실제 발달 수준에서 잠재적 발달 수준으로 건너가도록, 마치 건물 공사장의 임시 발판처럼 비계를 만들어주는 스캐폴딩과 유사한 겁니다. p.245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한준 p.246

세렌디피티란 뭔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행운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냥 우연에만 맡겨진 것도 아닙니다. 저들은 한결같이 자기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p.246) 분야에서 꾸준히 관찰하고 공부하고 숙련해온 아마추어 출신의 프로들입니다. 그렇게 축적된 능력이 어느 날 필요한 순간에 튀어나오는 겁니다. 마치 세렌디프의 왕자들처럼 말이지요. 세렌디피란 이름의 창의성, 그것은 사실 준비된 우연, 어쩌면 그런 이들에게 허여된 필연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p.247

감히 선학들과 비교하면서 나는 왜 정말 아는 게 하나도 없지, 언제 저렇게 되지 싶었고, 칸트나 헤겔처럼 철학사의 빛나는 성좌들을 보면 나는 왜 저 빛에 도달하지 못할까. 아니 평생 도달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과 좌절이 있었습니다. 실은 내 마음 속에 있던 그 빛들 덕분에 살아올 수 있었으면서 그땐 그걸 몰랐던 것입니다. 그저 그리움과 열병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다가 비로소 앵두가 익을 무렵이면 간신히 그리움도 견딜만해집니다. 여하튼 시간은 흐르고, 그 시간과 함께하다 보면, 누구나 결실을 맺을 수 있으니까요. 익는다는 건 그런 일입니다. 제법 넉넉해지고, 뒤돌아볼 줄 알게 되고, 지난날에 대한 긍정과 감사를 보내게 되는 겁니다. 앵두도 그리 되는 겁니다. 크지 않아도, 위대하지 않아도, 밤하늘의 성좌가 못 되어도, 우리 (p.256)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겁니다. 긴 시간 견디어 이루어낸 모든 앵두들에게 우리가 경의를 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p.257

사람들은 말합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듣기에 참 부러운 말입니다만, 살아보니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참 없습디다. (p.263) ... 그런데 그러던 사이, 생각이 바뀝니다. 뜻을 이루기 위해 길을 찾는 것도 훌륭하지만, 이 길에서 뜻을 찾는 것도 얼마나 아름다운 다운 일인가 하고 말이죠. 그 이후로 비로소 남들의 길이 아니라 내 안의 길에서 뜻을 찾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 그때부터 길은 조금씩 고분고분해집니다. 꽃으로 수를 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땀을 식혀주기도 합니다. p.264

세월은 안으로 새기고, 생각은 여전히 푸르른 희망으로 가득 찬 사람, 그리하여 내녀엔 더 울창해지는 사람. 그렇게 나이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어른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어른으로 계속 커가면 좋겠습니다. 늙음은 젊음의 반대말도 아니고, 젊음이 모자라거나 사라(p.268)진 상태도 아닙니다. 늙음은 젊음을 나이테처럼 감싸 안고 더욱 크고 푸른 나무가 되어 쉴 만한 그늘을 드리우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공부는 결코 멈춰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p.269

우리 얘기 좀 해라고 말하기 전까지 보내는 침묵의 시간이 자기의 주장을 더 강화할 논리를 준비하는 시간이어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태를 돌아보는 침묵과 인내의 시간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대화를 시작할 때는 시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시비를 덮은 자리에서 오로지 화해를 위한 이야기만 준비해가지고 나와야 하는 겁니다. p.296

우리에게 자유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구속을 택할 것인가 하는 자유뿐일 것입니다. p.298

사랑은 책임인 것입니다. 오랜 시간 생각하고 함께해온 그 사람을 책임지고, 그 사람에게 나를(p.303)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사랑이란 말입니다. 부당한 억압이나 고통스러운 책무가 아니라 아름다운 의무이자 권리인 것입니다. p.304

나로 하여금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사람들이다. 그리고 훌륭한 시를 읽을 때, 우리는 바로 그런 기분이 된다. -신형철 평론가 p.304

현대사회에서 사랑이란 늘 이상한 신화를 갖게 됩니다. 반드시 사랑에 성공해야 한다는 이상한 신화 말입니다. ... 사랑의 문제를 대상의 문제로 가정하고 있습니다. 즉 사랑은 누구에게나 자유롭고 쉬운 일인 데 비해, 사랑할 만하거나 사랑받을 만한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렵(p.317)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의 문화는 거래라는 과년ㅁ에 기초하고 있죠. 하여, 사랑은 자유이지만, 자기가 지닌 교환가치의 한계를 고려하면서 서로 시장에서 교환할 수 있는 최상의 대상을 찾아냈다고 느낄 때에만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비애가 성립하고 만 것입니다. 사랑할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p.318) ... 외부 조건들이 내가 원하는 삶을 계속 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게 하니까, 그러니까 당연히 선택지는 많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그래서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겁니다. p.319

어리석은 자는 한 평생 다하도록 현명한 이를 가까이 섬겨도 참다운 법을 깨닫지 못한다. 국자가 국 맛을 모르듯이. <법구경> p.329

이래서 SNS를 못 끊습니다. 기존의 미디어가 접근할 수 없거나 침묵해버린, 그렇다고 일일이 직접 가볼 수 없는 저 특별한 시공간의 정보와 경험들,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멋진 신세계를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직접 안아주기란 불가능하지만 그 대신 이렇게 공감을 하고 체온을 나누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하는 것, 우리로 하여금 그 세상의 모든 인싸가 되게 하는 것, 그것이 SNS의 순기능 아니겠습니까. p.344

선행은 의무와 강요에서가 아니라 공감과 소통에서 오고, 공감과 소통은 경험의 공유에서 옵니다. 하지만 경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인데 그나마 너무 짧아서 남의 인생, 다른 인생은 살아보지도 못하니까요. 간접 경험과 대리 경험이 소중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p.346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말하고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말합니다. 외로움은 견딜 수 없는, 극복하고 개선해야 할 상태이지만, 고독은 즐길 만한, 누리고 유지해야 할 기회이기도 한 것이죠. p.401

읽은 책은 읽어서 못 버리겠고, 읽지 않은 책은 읽지 않아서 못 버리겠다고 핑계 대며 살지만, 실은 그냥 지나온 시절 그대로 부여안고 버텨보려는 것뿐임을 제가 압니다. p.430

우리는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라 삶의 가장 평범한 일들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한 일만 챙기는 데도 바쁘다 보니 일상에 소흘히 대할 수밖에 없었다며 핑계대어 보지만, 결국 소중한 건 저 특별하지도 딱히 귀해 보이지도 않는 일상이었음을 인정하게 됩니다. p.448

인생이란, 요약하면, 살다가 죽는 것 아닐까요. p.462

애도는 상실에 대한 적절한 거리와 태도를 뜻합니다. p.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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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강원택] 결국은 시민의 생각만큼 간다 | Memento 2020-04-30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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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강원택 저
21세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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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화에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정치는 우리의 생각만큼 간다. “결국은 시민의 생각만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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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는 여러모로 큰 변화를 예고했다. 개인적인 관심사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실시였다.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서 얼마나 민의를 잘 반영하는지가 관건이다. 그러나 지난 투표들은 거대 두 정당들 싸움 속에 제3정당은커녕 건전한 논의조차 쉽지 않았다. 유권자에게는 선택의 폭이 없었고, 논쟁은 좌우, 선악의 이분법으로 나눴다. 도무지 싸울만한 거리가 아닌 일에 두 정당은 목숨을 걸고 싸웠고, 생산적인 논의보다는 비방과 비난 일색이었다. 정당은 국민과 정부를 잇는데 열심이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선거법 개정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제3지대의 등장을 기대하게 했다. 삼국지에서도 나오지 않는가.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 같이, 지금의 양당체제보다는 다당체제로 전환되어 솥발처럼 서서 서로 견제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위성정당이라는 희대의 꼼수는 선거법 개정을 무력화 시켰다. 관심에 비해 아는바가 너무 적지만, 21대 총선은 종국적으로 제3당은커녕, 한쪽의 대승리로 끝났다. 그놈이 그놈이듯, 결국 그놈들이 다 해먹었다.

이를 두고 엄청나게 많은 설전을 벌였다. 3당의 등장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국난 극복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주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3당의 등장을 위해 거대 양당은, 최소한 지각이 있는 한 쪽만이라도 위성정당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반대쪽은 권력에 눈이 어두운(p.233)” 곳이자 그래야 할 정당이니 만큼 적극적으로 제도를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한 쪽을 너무 이상적이라 비판했고, 반대쪽을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비판했다. 논쟁은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어쨌든 결판이 나는 게 선거다. 1표차라도 이기면 이기는 법이다. 누군가는 원하는 결과를, 누군가는 원치 않는 결과를 얻었지만 언제나 민심은 정치적 격변을 선거를 통해 예고(p.192)”한다. 누군가에게는 경고가, 누군가에게는 격려가, 누군가에게는 부채를 말했을 테다.

사람들은 정치를 우리와 같이 왕왕 토론을 벌인다. 개똥철학을 동원해서 자신만의 논리를 설파하는데 대부분 큰 싸움으로 번진다. 특히 명절에는 정치 얘기는 절대 하지 말라고 하지 않는가. 종교와 신념에는 타협이 없기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종교는 그렇다 해도 정치는 타협을 전제로 하지 않았던가. “서로 다른 입장을 갖는 집단끼리 타협과 양보에 의해 합의를 도출해내는 과정(p.122)”인데, 우리 주변의 삶에서나 TV에서나 정치판에서 타협의 과정을 보기가 힘들다. 타협 불가능한 이런 논의, 고민들이 무의미할까. 고민스럽다. 쉽사리 꺼내지도 못하고, 설혹 꺼낸다고 해도 큰 싸움을 각오해야하는 주제라면 굳이 얘기해야만 할까. 하지만 분명히 필요한 주제다. 늘 잊고 살지만 정치는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비록 지금은 개똥철학에 그치고, 싸움만 반복하지만 이런 싸움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우리 의식은 모두 정치적인 책임을 국가 권력에 미루고만 있는 상황이다. 결국 민주주의가 확립되고 공동체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민 개개인이 주어진 일정한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용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p.388)”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은 한국정치를 개략적으로 가장 균형 있게 배울 수 있는 책이다. 늘 정치는 이래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정치에 대해서 공부하지 않는다.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의하기를 두려워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변화의 방향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를 마련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고민이 필요하다. “변화의 방향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치가 걸어온 길 위에서 모색해볼 수 있는 것(p.396)”이기에. 정치 대화에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정치는 우리의 생각만큼 간다. 결국은 시민의 생각만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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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한 발짝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정치개혁이 요구되고 있으며, 그러한 새로운 변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우리 정치가 걸어온 길, 우리 정치제도가 갖는 특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에서 말하고 싶다. p.14

미국 대통령제가 이러한 특성(견제와 균형)을 기반으로 발명된 것이라면 내각제는 진화에 의해 오늘날의 특성을 갖추게 되었다. 즉 내각제는 역사적인 진화의 소산이다. p.54

다시 도입된 강력한 대통령제는 유신 체제, 그리고 전두환 정권의 제5공화국을 거치면서 더욱더 강화되어 갔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대단히 강력한 대통령제이긴 하지만 제헌헌법과 완전히 단절된 형태의 헌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큰 틀에서 혼합적인 특성은 유지하면서 대통령 개인의(p.80) 권한을 제도적으로 크게 강화했던 것이다. p.81

민주화 헌법이라 해도 대통령의 권한은 유신 이전보다 오히려 강화되었다. p.85

문제는 대통령 비서실의 비대화가 대통령의 업무 수행 능력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서실이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이 되고, 실제로 정책을 실행하고 추진해야 할 내각에 권한이 공유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각 부서가 실무를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정치적 권력을 청와대가 틀어쥐고 갈 가능성이 많(p.91)은 것이다. p.92

사실 우리나라의 대통령제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비서실, 내각, 집권당이 서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움직여야 한다. 혼합형 대통령제로 만들어졌고 그 특성이 계속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한국 대통령제에서 대통령과 집권당의 관계, 대통령과 내각, 곧 국무회의 간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 따라서 대통령을 중심으로 정부와 집권당이 상호 연계되고 비서실이 이러한 관계를 보조해주는 것이 한국형 대통령제의 작동 방식이었다. p.91

우리 정치가 근본적으로 강한 대통령제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집권당, 국무회의와(p.95) 같은 제도적으로 주어진 기구에 의존하지 않고 청와대 비서실과 같은 보다 사적인 조직에 통치를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p.96

권력을 가진 조직이 스스로 권력의 한계를 규정하고 이를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p.102)니다. 조직은 어디에서나 한번 생겨나면 관할 영역이나 권한을 확대시키고자 하는 경향을 갖는다. p.103

청와대로 기능과 권한을 집중시키려고 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제도, 기구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p.104) 행정적이고 기능적으로 움직여야 할 자리에 정무적으로 임명된 이들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움직인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p.105

우리나라 대통령은 임기 초반 제왕적 대통령으로 등장하지만 어느 순간 레임덕 대통령으로 바뀌고 만다. 더욱이 제왕적이라고 해도 권력기관이나 여론의 높은 지지에 힘입은 것일 뿐 실제 정책을 입법화하고 추진하는 데는 그렇게 강력한 권력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 일하는 것으로는 약하고 정치적으로는 강한 대통령제인 것이다. p.109

4년 중임이든 7년 단임이든 무슨 형태라고 해도 대통령제가 유지되는 한 이러한 문제로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날 수 없다. 즉 권력이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된 형태에서 벗어나야만 고질적인 한국 정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국가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발전, 갈등과 대립의 정치로부터의 탈피, 일반 시민들 간의 이념적, 정파적 분열의 극복. 이 모든 것을(p.119) 위해서는 대통령제로부터의 통치 형태를 바꿔야 한다. p.120

외국의 제도에 대한 그대로의 모방보다 임시정부 이래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우리 정부 형태의 특성에 대한 이해 속에서 바람직한 대안에 관한 모색이 필요하다. p.120

정치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갖는 집단끼리 타협과 양보에 의해 합의를 도출해내는 과정이다. 그래서 정치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을 촉진하는 기능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p.122

권한의 위임이 명확하지 않은 채 권력이 나눠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아무리 법으로 권한을 꼼꼼하게 정해둔다고 해도 권력의 세계에서는 그러한 경계를 얼마든지 뛰어넘을 수 있다. p.124

한국에서 선거는 어떤 상황에서도 중단된 일 없이 주기적으로 실시되어 왔으며 선거 과정이 공정하게 진행되지 못했던 권위주의 체제하에서도 국민의 뜻이 표출되는 공간으로 작동해왔다. 어쩌면 한국 정치사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대한 권력의 왜곡, 그리고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저항의 역사였다고 할 만큼 민주화 이전 한국 정치의 주요한 변화를 이끌어왔다. p.130

정치의 기능은 무엇일까? ... 가장 중요한 것은 질서유지다. 갈등과 다툼을 제도화해 사회를 안정적인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본다면 정치의 공간인 국회는 본질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장소다. (p.130) ... 우리의 삶이 법과 질서에 의해 평화롭게 영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p.131

한 사회의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었다고 할 때 이를 판단하는 중요한 조건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권력을 다투는 유일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느냐의 여부다. 즉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만이 권력을 차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자리잡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선거는 복수의 대안을 통해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가능하게 하며, 이는 민주주의를 공고화시킨다. p.135

김구가 제헌국회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잘한 결정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만약 김구를 비롯한 민족주의 세력이 참여했다면 제헌국회 내에서의 헌법 제정이나 반민족특별위원회 등 제헌국회 활동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로 크게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대중 대통령도 자신의 회고록에서 정치인은 최선이 어렵다면 차선이라도 추구해야 한다고 하면서 김구 선생이 제헌국회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아쉽다는 표현을 하(p.148)기도 했다. p.149

권위주의 체제에서의 선거가 결코 공정하고 자유롭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언제나 민심은 정치적 격변을 선거를 통해 예고했다. p.192

정치적 대표성을 특정 정당이 독점하는 지역주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선거제도의 개정은 우리의 정치를 한 단계 더 혁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p.220

국가 예산이 500조 원에 달한다. 국회의원을 늘려서 잘못 사용되거나 방만하게 지출된 예산을 1퍼센트만 찾아낼 수 있어도 그 금액이 5조 원이다. 국회의원 몇 명 늘리는 비요이 문제가 되지 않는 금액이다. p.224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하는 무당파의 비율이 높고 정당에 대한 불신도 크지만 건강한 정당정치는 민주주의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p.231

종종 정당을 두고 권력에만 눈이 어두워서라고 지적하지만, 권력에 눈이 어두운 곳이 바로 정당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즉 선거에서 공직을 얻음으로써 통치기구를 통제하려는 사람들이 모임이 곧 정당인 것이다. p.233

에드먼드 버크는 정당을 동일한 세계관 및 정치관을 공유한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정의했다. 정당이란 모두가 동의하는 특정한 원칙에 입각해 공동의 노력으로 국가적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결합된 사람들의 단체이며, 집권 후 어떠한 형태의 정치를 펼치겠다는 이데올로기가 전제되어 있다고 보았다. p.234

정당은 시민사회와 국가를 연계해주는 제도적으로 확립된 기구로, 정당이 원활하게 작동되어야 그 사회의 정치적 안정을 구현할 수 있게 된다. p.236

사회란 원래 불일치나 다양성으로 구성되며 합의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p.239

정당의 핵심 기능은 시민사회와 국가를 서로 연계해주는 데 있다. 우리 사회에서 거리 시위나 집(p.246), 청와대 국민 청원 등 직접적인 시민 정치 참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데, 자유로운 의사표현, 매개체를 거치지 않는 직접적인 국가와 시민의 소통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당정치가 제대로 연계 기능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p.246

권위주의 시대의 정당정치에서 집권당은 국가가 권력을 장악한 후 국가 주도로 위로부터 창당되며, 정치권력의 정통성을 사후에 인정받기 위한 도구적 성격을 띤다. 이때 정당은 정치적 지지 동원의 도구로, 창당 목적 자체가 독재자 개인의 권력을 유지 및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만큼 자생력이 부재하고 제도화 또한 결여되어 있기에, 권력자의 운명에 따라 권력 몰락 후에 함께 소멸하는 모습을 보였다. / 이때의 야당은 정권의 반대 세력을 동원해 권위주의 통치자에 대항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는 의미가 없었으며 정치적 투쟁을 위해서는 비의회적인방법을 통해 저항해야만 했다. (p.277) ... 당시의 정당정치는 사르토리가 말하는 패권 정당 체제였다. ... 그러나 이러한 비의회적관행은 민주화 이후 정치적 경쟁의 공정성이 확립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p.278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 정당정치의 변화를 보면 처음에는 지역주의 균열에 기초해 있다가, 2002년 이후 여기에 이념 대립을 얹고, 여기에 다시 세대 갈등을 얹은 뒤 지금은 계층 갈등까지 얹으려고 하고 있다. 이처럼 두 거대 정당은 갈등을 축적해가면서 이를 양극화하는 데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 p.295

이처럼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상황에서는 양극적 대립이 격화될 수밖에 없고, 하나의 갈등은 또 다른 갈등으로 비화되고 심지어 정치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일도 이념적, 정파적 대립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것이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사건이다. p.296

전문적인 역량을 가져야 하는 정치에서 경(p.300)험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참신함으로 평가받는 것은 옳지 않다. 정치적 혐오나 불신에 기반하여 기존의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모두 나쁘고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들은 선하다는 단순한 이분접적 사고는 오히려 무책임하고 나쁜 정치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p.301

정당정치의 약화는 이제 우리 정치를 포퓰리즘에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정당 정치가 정치인들을 검증하고 차기 지도자로 성장시키는 공간으로 기능해야 한다. p.301

정당정치의 경쟁성, 책임성, 반응성을 강화시켜 새로운 변화의 동력이 정치권 내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선거법 개정 논의도 같은 차원에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양당적 구도에서 다당적 구도로의 전환을 통해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정당 체제에서 벗어나 정치적 경쟁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정치를 기대할 수 있(p.305)는 방법이다. p.306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대한민국은 두 가지 중요한 가치를 정체성으로 갖게 되었다. 하나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반공 국가, 또 하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가치는 그 자체로 절대 모순될 수 없다. 반공의 목적이 바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왜 공산주의에 반대하느냐 하면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목적은 자(p.330)유 민주주의가 되고, 수단은 반공이 되는 것이다. / 그런데 실제로 이후에 전개됐던 한국 정치는 반공을 목적으로 삼아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것이다. ... 우리나라 민주화의 역사는 이처럼 왜곡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회복하고자 하는 저항의 역사였다. p.331

시민들이 4.19 혁명을 통해 정의롭지 못한 권력에 대해 정항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교육의 힘 덕분이었다. ... 4.19 혁명의 성공은 이(p.335)후 중요한 정치적 유산으로 뿌리내리게 되었다. ...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나라님이라도 법을 지키지 않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면 저항해야 하는 것이고 물러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p.336

한국의 민(p.354)주주의는 본질적으로 체제의 전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민주화 세력은 권위주의 세력에게 전면 항복을 요구할 정도로 강하지 않았고, 권위주의 세력 또한 민주화 세력의 요구를 전면 거부할 정도의 힘이 없었다. 양측의 힘이 일정한 균형점에 도달했을 때 두 세력은 정치적 경쟁 방식의 민주화, 즉 직선제 개헌으로 상징되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라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에 동의하게 된 것이다. p.355

6.29 선언과 함께 한국은 민주화의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권위주의 체제와 민주화 운동세력 간의 오랜 투쟁은 뚜렷한 승자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합의의 내용도 정치적 게임의 규칙에 대한 것이 전부였다. 그런 점에서 민주화 직후에는 향후 어떻게 정치가 전개되어 나갈 것인지, 민주적 공고화는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불확실성이 컸다. p.356

민주주의 국가 중에서 드물게 성공적으로 민주적 공고화를 이뤘다. 그 요인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무엇보다 당시 정국을 이끌었던 정치 지도자들에게 주목해야 할 것이다. ... 그들 스스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지만 이들의 정치적 선택과 경쟁은 민주적 공고화에 기여했다. 민주적 공고화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첫 번째 조건은, 정치적 경쟁 규칙에 대한 합의다. (p.357) ... 두 번째 조건은 정치적 분극화나 분절화의 억제다. 정치가 불안정해지는 여러 가지 요인 중 하나로 극단주의 정당들의 영향력 증대를 꼽을 수 있는데, 민주화 초기에서 좌파든 우파든 강경파가 득세하면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p.359) ... 김영삼, 김대중 모두 체제를 향한 구심적 경쟁을 이끌었으며, 극단주의 세력이 정치 질서를 불안하게 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 오히려 김영(p.361), 김대중은 이러한 급진파들을 모두 체제 내부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p.362) ...정당정치의 분절화를 억제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였다. 정당정치의 분절화, 즉 지나친 정당의 난립은 곧 정치적 불안정의 또 다른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민주화 직후 터져 나온 지역주의와 단순 다수제의 결합은 새로운 정당의 출현을 억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p.364) ... 권력의 공유는 민주적 공고화를 위한 세 번째 조건으로도 볼 수 있다. (p.365) ... 마지막 네 번째 요건은 과거사의 처리로, 모든 신생 민주주의 국가가 당면하는 가장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 즉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과오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다. p.366

민주와 초기에 군을 탈정치화시킬 수 있었던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김영삼 대통령 개인의 결단력이었다. (p.370) 두 번째는 군 내부의 갈등이라는 조직적 요인의 영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p.317) ... 세 번째 요인은 당시의 정치적 맥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바로 3당 합당 이후 정치적 변화다. 3당 합당에 따라 김영삼은 과거 군부 권위주의 체제의 정당이었던 민정당과 합당했다. 그리고 민자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하나회 등 정치화된 군의 입장에서도 김영삼은 더 이상 적이 아니었고, 김영삼의 당선을 돕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 된다. 김영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경쟁자인 김대중을 지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p.372

제도의 정치가 제 역할을 해서 거리의 정치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한다. p.375

거리의 정치는 문제 해결의 공간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공간이다. p.376

이제 국가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민주화로 시민사회가 활성화되었고 세계화로 한 국가가 감당하거나 통제하기 어려운 일도 많이 생겨났다. 이러한(p.380) 상황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 이제 국가는 예전처럼 효율적으로 움직이지도 않고 더 이상 전지전능하지도 않다. (p.381) ... 국가가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면 시민 각자가 제자리에서 할 수 있는 기여와 봉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p.385

공공의 영역에 속한 사람들, 국가 지도자들, 우리 사회에서 보다 많은 혜택을 입은 사람들부터 먼저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이들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공동체와 관련해 희생하고 책임을 지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p.386

이제 민주화 30년이 지나면서, 정치에도 다양한 형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시민사회도 상당히 강건해졌고, 제도적인 민주화도 과거와 비교할 때 튼튼히 확립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 의식은 모두 정치적인 책임을 국가 권력에 미루고만 있는 상황이다. / 결국 민주주의가 확립되고 공동체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민 개개인이 주어진 일정한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용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선거 정치에 참여하고 정치인들이 공약을 잘 이행하는지를 감시하는 것을 넘어,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공간 속에서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를 이제부터라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p.388

그래도 우리 정치사는 자유민주주의의 제 모습을 향해 꾸준히 걸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는 분명히 우리가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만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p.393

이른바 ‘87년 체제를 넘어서야 한다. p.394

중요한 것은 변화의 필요성뿐만 아니라 변화의 방향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를 마련하는 일이다. 변화의 방향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치가 걸어온 길 위에서 모색해볼 수 있는 것이다.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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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30 개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