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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9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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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더라면. | 기본 카테고리 2019-03-11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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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캡틴 마블

애너 보든
미국 | 2019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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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십년동안 마블의 영화를 계속해서 보아온 평범한 팬들 중 한 사람이다.

 

마블 영화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본 두 번은 영화관에서 볼 생각을 하며, 케이블에서 재방영을 할 때마다 다 알면서도 틀어놓고,  놓쳤던 부분을 발견해내기도 한다.

 

그래서 2018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보고 난 후 적어도 2019년까지 살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는 생각을 했었다.

 

'맙소사, 영화 한 편 가지고 사는 이유까지 들먹이다니'

 

그렇게 말한다면 딱히 할말은 없지만 적어도 마블의 팬인 내겐 그랬다.

 

어쨌든, 캡틴 마블은 인피니티워가 끝남과 동시에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서 많은 논란거리를 낳았던 캐릭터였다.

 

페미니즘 논쟁도 논쟁이지만 닉퓨리의 마지막 대사에 대한 웃지못할 번역으로 인해 캡틴 마블이 닉퓨리의 어머니라고 한동안 회자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브리라슨의 스탠리 추모 사진이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캡틴 마블이 페미니즘 영화라는 이야기도 떠돌면서 이 영화는 개봉 전 마블 영화상 가장 최악의 기대 평점을 받기도 했다.

 

영화를 본 소감부터 이야기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캡틴 마블을 보면서 영화를 급하게 만든 것 같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무언가 스토리의 순서를 조금 더 세련되게 다듬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개인적으로 마블 영화의 힘은 '캐릭터'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대화할 때 그것이 같은 주제를 다룰지라도, 대화 상대가 낯선이인지, 매우 잘아는 사람인지에 따라 이야기를 나누는 깊이와 공유하는 감정은 다르다. 

 

마블 속 서로 다른 영화의 캐릭터들은 타노스라는 거대한 하나의 적을 대적하는 스토리에 엮여있으나 그들에 대해 우리는 십년이라는 충분한 시간에 걸쳐 알아왔고, 심지어 그루트라면 이상황에서 어떤 대사를 할지도 알만큼 친숙해져 있다.

 

그래서 만약 마블영화를 볼 때 한 명의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알지 못하면 모두가 한데 어우러진 영화에서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는 '즐거움'의 정도가 반감된다.

 

그런데 캡틴 마블은 그 캐릭터가 가진 능력치와 역사에 비해 너무 최근에 만들어져 아직은 어색한 기분이 강하다.

 

캡틴 마블의 탄생시기는 닉퓨리가 아직 젊었을 적이고, 테서렉트는 쉴드의 연구에 쓰이기도 전이며, 집행관 로난은 공무원(?)으로써 맡은 바 소임을 다하던 시기다.

 

그런데 그 캐릭터를 지금에와 다루고 관객에게는 엔드게임에서 기존의 캐릭터와 함께 받아들이기를 바란다는 건 어쩌면 마블의 실수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차라리 캡틴 마블이 인피니티워 전에 개봉했더라면 하는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물론 엔드게임에서 등장해야 할, 어찌보면 최종병기같기도 한 엄청난 위력의 소유자를 아무런 소개도 없이 생뚱맞게 갑자기 등장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캡틴 마블은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그러한 맥락을 이어가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처럼 느껴졌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캡틴 마블보다 콜슨 요원이나 로난(심지어 로난의 부하까지도)의 등장이 더 반가웠던 것 뿐이다.

 

신학기 새로 사겨야 할 낯선 짝꿍 대신 그 뒤에 잘 알고 지내던 애들이 앉아있고, 그 애들을 보며 서로 웃는 기분이랄까.

 

 

캡틴 마블이 시작될 때, 스탠리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기념 오프닝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의 상상력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울게도 하고, 기쁘게도 하고, 신나게도 할 수 있는가.

 

뿐만 아니라 그가 만든 세계로 인해 또 다른 수많은 창작자, 관계자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했고,

심지어 먼 타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 2019년도까지 또 살 이유가 생겼다고 생각하다니.

 

뭐, 어쨌든 지금에와 돌이켜보니 아직 결말을 알지 못한 채 진행되는 내 인생이라는 스토리 안에 또 다른 캐릭터가 등장할 것인지, 누가 멋지게 이별을 고할 것인지, 또 그들의 삶은 어떻게 이어져 나와 연관되었는지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래, 개봉을 기다리는 영화가 아니어도 내 삶은 이미 궁금증을 유발하는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였구나.

 

아쉬움은 남지만 시간이 난다면 한 번 더 보러 갈 계획이 있다.

자꾸보면 친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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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매우 재밌는 공연! | 기본 카테고리 2017-08-0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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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뮤지컬 캣츠 내한공연 (Musical CATS)

장르 : 뮤지컬       지역 : 서울
기간 : 2017년 07월 11일 ~ 2017년 09월 10일
장소 :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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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내가 번돈으로 본 뮤지컬. 그만큼 뜻깊었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훌륭한 퍼포먼스와 명성에 걸맞는 주옥같은 명곡들을 들을수 있어서 좋았다

단, 삼층에서 관람해 배우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전해지지 않아 아쉬웠음 스크린이 하나 더 있어서 배우들 얼굴까지 윗층까지 보였으면 하는 바램? ㅎ

또 열심히 일해서 다음에는 젤리클 석에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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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상실된 행복에 대한 그리움 | 기본 카테고리 2013-07-27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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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브로크백 마운틴

이안
미국 | 2018년 12월

영화     구매하기

영화 속 잭의 대사처럼 가끔씩 미치도록 그리운 사람은, 그 그리움만큼 미워질 때도 있다. 브로크백 마운틴이 내게 그런 영화였다. 어쩌다 한 번씩 이 영화를 다시 보고 나면 너무나 가슴이 아파 다시는 보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되기 때문이다. 동성애자가 아니라도 인생의 가장 처절한 때를 보내면서 사랑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영화를 보고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그들이 느꼈을 감정들을 가만히 앉아 떠올려본다. 나는 열아홉, 어른이 되기 전 무렵 살아가는 것에 대한 극도의 공포를 느꼈었던 것 같다. 이제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자유로움보다는 작고 나약한 나를 먼저 만났다. 세상이 넓고 거칠기보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나의 숨통을 조여 올 만큼 작고 답답한 상자 같았다. 그래서 세상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도 그만큼 내게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누군가 내 옆에서 손을 잡아주길 바랬다. 불안한 세상에서 혼자서 도망칠 힘도 없었기에 함께 도망쳐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베트남전쟁이라는 불안과 경제적 불안정이, 개인에게는 책임져야할 자신의 인생과 누군가의 인생들이 뒤엉켜 어디서도 만족과 안정을 얻을 수 없던 잭과 에니스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어있던 브로크백 마운틴에 머무르게 된다. 에니스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잭도 먹고 살 방편이 필요했다. 외롭고, 두려웠을 그들에게 브로크백 마운틴이 주는 평안함과 행복은 이전의 것과 전혀 달랐을 것이다. 태어나는 것도 본인 의지와 상관없지만, 세상에 내던져지는 것도 나의 의지와 아무런 상관없이 일어난다. 그런 세상에서 벗어나, 따뜻한 품으로 안을 수 있는 서로가 있다면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는 것이 조금은 행복할 것이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과도하게 무리해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안길 수 있고, 그와 대화할 수 있다면 피곤한 일상 속에서 느끼는 행복과 전혀 다른, 마치 눈물이 없다는 천국에서의 그것과 같지 않을까. 그리고 어느 누구라도 그러한 행복을 맛본다면 평생 그것을 찾아 헤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잭과 에니스 역시 브로크백을 떠나며 천국을 빼앗긴 죽은 영혼처럼 각자의 슬픔을 토한다. 차라리 천국을 보지 않았더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때론 모르는 것이 약이니까. 하지만 천국의 행복을 느낀 후 또 다시 세상으로 강제 추방을 당한 그들은 계속해서 어둠을 헤매고 서로를 그리워한다. 돌아온 현실은 브로크백을 다녀오기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지만 세상에 다시없을 행복을 느낀 그들에겐 반동효과처럼 현실의 느낌은 더욱더 차갑고, 외로우며 스스로는 무능하게만 여겨지게 된다. 게다가 애석하게도 그들에게는 서로의 성별이 같다는 한 가지 제약이 더 있었다. 그러므로 천국의 행복을 되찾는 것은 이제 완전히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관객들은 벌써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잭이 에니스의 이혼 소식을 듣고 반가워하는 표정을 보아도, 잭이 에니스와 지내기 위해 목장을 준비하려는 계획도, 쓸모없고 부질없는 처절한 몸부림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에니스는 어렸을 적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보게 된 어떤 남자의 죽음을 통해 이미 그들의 미래가 불가능함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비록 1년에 한 두 번이라도 그들만의 순수한 행복을 지키고 싶었고, 잭에게 끊임없이 견디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결국 불현듯 찾아온 잭의 죽음은 남겨진 에니스의 몫이 되었다. 잭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던 에니스에게 이제 브로크백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완전히 끊어졌다.

 ;

 ; 현재는 동성애를 인정하는 다양성이 보장되는 세상이지만 그들의 사랑을 진정으로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늘어나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잭과 에니스가 살던 시대보다 더 거친 세상에 살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더욱 정교하고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져 있다. 겉은 반짝이고 있으나 그 안은 누구도 알 수 없고, 내보이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브로크백 마운틴처럼 감내해야할 삶의 일상과 떨어져 지낼 수 있는 곳도 이제 점점 찾기가 어렵다. 어딜 가도 우리는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한 감시에 놓이게 된다. 잭과 에니스가 삶에 대한 무게에서 도망쳐 느낀 그 행복을 느껴볼 기회조차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

 ;  ;세대 간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나 스스로에 대해서는 그러한 행복을 잠깐이라도 맛볼 수 있었던 세대에 속해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어렸을 때에는 세상으로 도피가 가능한 장소도 있었고, 어렸기 때문에 포장도 안 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두려울 때 평생을 함께하자 약속했던 첫사랑도 있었다. 물론 그 행복을 잃고 나서 그 행복을 되찾기 위해 헤매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에니스처럼 그러한 행복을 되찾더라도 살아가는 평생 동안 그것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 ;

 ;  ; 세상이 정말 너무 빨리 변한다. 영화에서는 잭의 죽음으로 그들이 미칠 듯이 찾고 싶었던 행복은 영원히 상실되었지만,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세상이 끊임없이 매일매일 죽는다. 우리는 사랑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너무나 빠르게 변한다. 벗어날 곳도 없다. 그것을 대처하느라 사랑할 수 없게 되었고, 미치도록 그리워하는 그 행복은 영원히 상실되었다. 에니스가 셔츠를 곱게 포개어 혼자 맹세한 것으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기로 결심하듯 우리 역시 되찾고 싶은 젊은 날의 순수하고 행복했던 천국의 그 열병을 추억이란 보자기에 곱게 싼 후,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 것을 혼자서 맹세해야만 한다. 이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가슴 먹먹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혼자서 간직할 것을 맹세하고 깊숙이 넣어둔 그 행복이 마지막 장면 장롱 안 포개진 셔츠와 함께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난 후 한동안 떠오르는 그리움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럴 때면 잭의 말을 되뇌어본다.

' Wish I knew how to qui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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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처럼. | 기본 카테고리 2006-05-0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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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삶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저
민음사 | 1999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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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한가운데 이 책은 정말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지금의 나는 정처없이 방황할 것이오

목적도 없이 기계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것이오.

점차 생에 대해 무감각해질 것이고, 마비는 차츰차츰 골수까지 뻗쳐

내 몸음 금방 빳빳해지겠지요...」



니나에게선 배울 점과 배워선 안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니나의 모든것이 좋다.

그녀처럼 살고 싶은게 나의 소망이다.



그녀가 사랑을 놓치고 후회했지만 그것마저 나는 부럽게 보인다.



놓쳐도 상관없다.

사랑보다 그 사랑을 놓치고 남는 그 아련함이 더 길테니까..

어쩌면 그런 아련함들이 남아 생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것을

막아줄지도 모를일이다.



잠깐의 행복보다 영원한 슬픔이

생의 한가운데에서 마비를 막아줄 수 있을것 같다..







우리는 사실 영웅이 아니다.

다만 때론 그런척 해볼 뿐이다.

모두가 비겁하며 조금씩은 타산적이고
이기적이며 위대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는 선량한 동시에 사악하고, 영웅이면서 비겁하며
인색하면서도 관대하다는 것을,
모든 것이 상반된 듯하면서도
서로 밀접하게 어울려 있어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


그래 모두 다른 것 같지만 어쩌면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들 슬픔을 느끼고 행복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고

자신의 것을 챙기고, 남을 도와주며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 다들 모습이 조금 틀릴뿐이다.

내가 우울하다고 해서 지금 이순간 지구에서 나만 우울한 것이겠는가.. 어딘가 아주 멀리 어딘가에도 분명 나와 함께 우울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것이다. 모두의 심장이 지금 함께 뛰고 있는 것 처럼..

[인상깊은구절]
우울의 마비 된 사람은 결국 당신과 함께 일어서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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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이란 결론으로 치닫는 인생.. | 기본 카테고리 2006-05-03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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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데미안

헤르만 헤세 저/전영애 역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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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10대 생활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지난 시절들을 돌이켜 보면 나는 남들보다 심각한 사춘기를 겪었던 것 같다. 누구나 다 겪는 과정이지만 나에게 있어 나의 사춘기 시절은 혼자만의 고립 그 자체였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거나 남들보다 뒤쳐져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상태는 밤하늘에 떠있는 하나의 별 같았다. 많은 별들이 함께 어울려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몇 광년씩 떨어져 외롭게 존재한다는 사실처럼 언제나 아이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고 얘기하지만 나의 정신은 그들과 몇 광년씩 떨어진 곳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두 세계, 즉 양면성에 대한 질문을 해왔고, 나는 미래에 어떤 인간유형으로 살아가야하는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대중 매체를 통해 듣게 되는 성매매를 한 목사나, 자살하는 기독교인, 속세에 물든 스님, 그리고 평범한 사람의 우발적인 살인, 누구에게나 잠재되어 폭력성 등은 항상 일관된 모습으로 살기를 바라는 나에게 혼란을 가져다 주었고, 스스로조차 알고 있는 양면성에 대해 어느 곳에 나를 맞춰서 살아야하는가는 해답을 내리기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나의 꿈을 찾고 그것을 위해 살아간다는 것도 확신이 서지 않아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하는 것에 대해 답답해 하고 있었다. 결국 혼자서 답을 내리기 힘들다는 결정을 내리고 나는 주위 사람들을 찾아갔다. 처음으로 삶의 연륜이 많은 어른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조심스레 왜 사람은 하나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는 지 본능에 의한 것이라면 왜 그것을 억누르기가 힘든가? 등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어른들은 하나같이 지금 네 나이에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보다 공부가 우선이라고들 말했다. 어른들에게서 해답을 찾지 못한 나는 친구들에게 눈을 돌렸다. 그러나 또래들 역시 성적과 이성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아무 곳에서도 답을 내릴 수 없던 나는 점점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들게만 되었는데 고2겨울 무렵 최고조에 달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나는 그를 만나게 되었다. 데미안, 나는 그 이름만큼 목이 매여 불러본 이름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실망한 나는 책에서 답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날도 도서관 책장 사이를 이리저리 헤메고 있었다. 책장에 꽂힌 책 중 유독 삐죽이 튀어나온 데미안을 발견했다. 생각해보면 데미안은 고민에 빠져있던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것 같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데미안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에밀싱클레어는 설명이 필요 없는 사람. 바로 나였다. 그 역시 나처럼 두 세계의 사이에서 방황하며 인간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새로운 세계로 태어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결국 데미안은 나를 이끌어주고 있는 셈이었다. 데미안과의 대화는 정말 즐거웠다. 내가 찾고자 하는 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것을 따라 사는 생각만이 가치가 있어. 너의 허용된 세계는 세계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것을 넌 알았어. 그리고 두 번째 절반을 감추려고 했지. 넌 그걸 감추지 못할 거야! 누구도 안 돼. 한 번 생각하기를 시작하고 나면 말이야.”

나는 내 뒤통수가 뜨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실 그랬다. 처음 두 세계에 대한 생각을 했을 때 덮어두고 무시한 채 살아가려했지만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게 되었다. 아마 그때부터 나의 방황은 시작된 것 같다. 데미안은 나에게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동시에 지닌 “아랍삭스”라는 신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인간이라는 결정을 스스로 내렸다. 그리고 양면성에 대한 스스로에 답을 찾게 되었다. 내 안의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 어느 한곳에 나의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 두 세계 역시 나라는 하나의 세계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의 편에 서서 실천하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알에서 깨어나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데미안을 갈망하게 되었다. 현실에서도 어딘가에 나의 데미안이 존재할 것 만 같았다. 그리고 나의 주위 사람들과 데미안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왜 현실에 사람들은 생각의 층이 얇기만 한 것인지……. 어른들도, 공부를 잘하거나 마음이 착한 친구들도 모두 데미안을 찾고 있는 나의 눈에 가소롭게만 느껴졌고, 어느 곳에도 흥미를 붙이지 못했다. 그러면서 예전보다 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그런 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저녁시간 운동장을 거꾸로 걷다가, 무심코 서쪽하늘에 해가 지는 것을 올려보았다. 그 순간 나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뒤로 걸을수록 해는 서쪽에서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해보지 않고서 그 기적을 결코 맛볼 수 없다.] 어쨌든 내가 본 것은 분명 서쪽에서 뜨는 태양이었다. 아! 생각의 전환. 그 순간 나는 또 한 번의 깨달음을 얻었다. 데미안은 바로 내 자신이라는 사실. 아직 방황하는 싱클레어에 머물러 있어서 데미안을 그토록 찾았던 것이다., 싱클레어가 훗날 자신의 모습에서 데미안을 찾게 된 것처럼 나도 나의 모습에서 데미안을 찾아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찾은 해답이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나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내 가슴에서 말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나의 방황하던 시간을 나는 결코 헛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보지 않아도 학교 책상 위, 등하교길 가방 안에 항상 데미안을 넣어 다닌다. 나처럼 방황하는 이를 만나면 언제든지 그를 소개시켜 주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성장했다. 지금 나는 헤세의 데미안이 아닌 나의 데미안을 만들기 위해 늘 사고를 멈추지 않고, 지식습득[나는 공부를 지식습득이라고 한다.]에 힘쓰고 있다. 데미안은 이제 더 이상 찾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가끔씩 데미안을 함부로 지울 수 없는 첫사랑의 이름처럼 조용히 불러본다.



데.미.안.

[인상깊은구절]
나무는 죽은 것이 아니다. 기다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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