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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필론의 돼지」 | 소설 읽기 2020-02-20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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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필론의 돼지

이문열 저/제이미 챙 역
아시아 | 2013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정의를 저버린 자는 편안한 돼지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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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필론의 돼지」

 

 

 

굴욕의 시간

 

이문열은 「필론의 돼지」에서 폭력에 대응하는 인간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폭력은 언제나 강자가 약자를 대하는 과정에서 펼쳐진다. 강자들은 약자가 말을 듣지 않으면 폭력으로 무릎을 꿇리려고 한다. 강자들은 물론 처음부터 아주 강압적인 말을 사용한다. 대부분의 약자들은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하는 강자들에게 눌린다. 강자들의 폭력은 그러니까 이러한 말의 폭력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인 군용열차라는 공간이 바로 그런 상황을 정확히 보여준다. 제대병들을 싣고 달리는 기차 안에 검은 각반을 두른 현역 병사들이 밀어 닥친다. 술에 취해 고함을 지르는 그들은 하사와 그를 따르는 병사들로, 병역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한다. 겉으로는 유들유들 웃으며 술값을 보태달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강탈이나 다름없다. 아직은 군인인 제대병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검은 각반 하나가 째지는 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사이 나머지 서넛은 모자를 벗어 들고 객석을 순례하기 시작한다. 곧바로 욕설이 터져 나온다. 누군가 동전을 모자에 떨어뜨린 모양이다. 제대병 하나가 집단으로 구타를 당하고 있다. 사람들이 잠시 수런거렸지만 검은 각반들이 매섭게 눈을 뜨자 이내 조용해진다. 검은 각반들은 기껏해야 대여섯 명밖에 안 된다. 제대병들은 이보다 서너 배는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저항을 하지 않는다. 그저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불합리와 폭력에서 이제야 벗어났다고 생각한 주인공의 가슴에 은은한 분노의 불길이 타오른다. 하지만 그뿐이다. 주인공은 어서 헌병이나 열차 공안원이 와서 저들을 제지해주길 기다린다. 괜히 나서봤자 폭행이나 당할 게 뻔하지 않은가.

 

주인공 앞좌석에 앉은 홍도 헌병을 찾는다. 주인공은 갑자기 홍이 밉살스럽다. 자신도 나서지 않으면서 홍이 나서기를 기대한 것일까? 홍에 대한 증오는 이내 자기혐오로 돌아온다. 그럴 수밖에 없다. 홍을 욕한다는 것은 곧 자기를 욕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가. 드디어 앞줄에 앉은 제대병 하나가 참지 못하고 욕을 하며 일어난다. 선임자가 누구냐고 묻는 그를 향해 각반 하나가 잽싸게 주먹을 날린다. 제대병이 무슨 짓을 했는지 각반은 비명을 내지르며 주저앉는다. 동료가 당하자 다른 각반들은 주춤한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는 객실에 있는 제대병들 모두가 달려들 수 있다. 입구에서 술에 취한 채 관망만 하던 각반 하사 하나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끼어든다. 갑작스레 등장한 영웅은 자신이 얼마나 어려운 군대 생활을 했는지 이야기한다. 하사는 이런 영웅을 많이 다루어본 모양이다. 술이나 한 잔 하자며 영웅을 꼬인다.

 

영웅의 얼굴에 무언가를 계산하는 표정이 어린다. 그는 무엇을 계산했을까? 혼자서 각반들을 당해낼 수 있을지 계산했을까? 아니면, 제대병들이 자신을 도와 싸움을 할 것인지 생각했을까? 제대병들의 간절한 눈길을 외면하고 제대병은 하사를 따라 술을 마시러 간다. 영웅이 사라진 자리에서 각반들이 다시 설치기 시작한다. 돈을 주며 인상을 쓰는 주인공에게 홍은 그저 참으라고만 한다. 주인공은 그런 홍이 자꾸만 밉살맞다. 그예 3년 동안 정말 더러운 것만 배웠다고 한마디 내뱉는다. 홍은 피식 웃으며 자기나 주인공이나 돈을 준 건 마찬가지니까 너무 그러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홍에 대한 증오와 자신에 대한 혐오 사이에서 주인공은 묵묵히 목적지에 도착하기만 기다린다.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는 오지 않는 잠을 청한다. 굴욕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이다.

 

또 하나의 제대병이 내야 할 이유가 없다며 각반들의 요구를 거부한다. 얼굴이 창백하고 몸이 깡마른 제대병이다. 각반 하나가 주먹을 날린다. 제대병이 휘청댄다. 코피를 쏟으면서도 그는 일병 계급장을 단 각반을 향해 하극상이라고 외친다. 어느새 온 하사가 다시 그의 복부를 주먹으로 때린다. 제대병(병장)을 향해 명령이니 돈이나 내라고 외친다. 제대병은 부당한 명령은 거부할 수 있다고 외친다. 맞는 말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강자는 약자가 맞는 말을 하면 더욱 더 폭력을 사용한다. 논리로는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다른 제대병들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주인공처럼 암담한 마음으로 입구 쪽을 주시하고 있다. 헌병이나 공안원을 기다리는 것이다. 입구에서 뜻밖의 인물이 나타난다. 각반들에게 처음으로 저항한 영웅이 비참한 몰골로 두 명의 검은 각반에게 끌려 들어온다.

 

저항의 물결

 

달아올랐던 객차 안이 일순간 고요해진다. 징수가 다시 시작된다. 그런데 아까와는 무언가 분위기가 다르다. 깡마른 제대병이 일어나는 순간부터 모진 구타를 당해 쓰러지는 과정을 두 눈 뜨고 지켜본 사람들의 얼굴에 분노감이 치밀어 오른다. 구석에 앉아 있던 제대병 하나가 3년 동안 당한 것도 억울한데 끝나는 날까지 당할 것이냐고 소리를 치며 일어난다. 검은 각반들의 외침소리에 아랑곳없이 그는 백 명이 어떻게 다섯 명을 당해내지 못하느냐고 소리를 친다. 폭력에 눌려 있던 제대병들이 하나하나 호응한다. 제대병들은 양쪽 출입구를 봉쇄하고 각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특수 훈련을 받은 검은 각반들이 재빠르게 대처하며 빠져 나갈 길을 뚫는다. 하나는 소주병을 깨뜨려 휘두르고, 다른 하나는 열차 창문을 구둣발로 박살낸다. 칼처럼 생긴 유리 조각을 제대병들에게 휘두르는 각반도 있다. 기세등등하던 제대병들이 어쩔 수 없이 조금씩 길을 틔워준다.

 

주인공은 이 상황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다. 얼굴이 불그레하게 익은 홍 또한 싸움에는 참여하지 않은 채 가겠다면 보내주지 뭐 하러 저리 싸우느냐고 말한다. 각반들이 포위를 뚫고 빠져나갈 찰나, 한 제대병이 웃통을 벗어부치고 각반들의 앞길을 막아선다. 그는 자기를 찌르고 가라고 외친다. 몸 여기저기에 흉측한 자상이 나 있다. 각반 하나가 질린 얼굴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제대병은 무릎을 꿇고 빌라고 이야기한다. 칼을 버리는 순간 끝장이라는 것을 모를 각반들이 아니다. 각반 하나가 제대병에게 달려들어 칼을 휘두른다. 제대병의 몸에서 피가 흐른다. 각반들에 기세에 밀려 멈칫했던 제대병들이 다른 제대병의 몸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는 일제히 각반들에게 달려든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각반 넷이 쓰러지고, 각반 하나만이 절망적인 얼굴을 한 채 서 있다.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는 각반을 제대병들은 사정없이 발길로 차고 주먹으로 때린다. 주인공은 잔인한 린치로 변한 광경을 보며 순한 양처럼 당하고만 있던 제대병들 어디에 저런 광포함과 잔혹성이 숨겨져 있을까 생각한다. 그는 각반들이 폭력으로 제대병들의 돈을 갈취하는 것도 못 마땅하지만, 다수의 힘으로 소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 또한 못 마땅하다. 술을 마셔 얼굴이 불그레한 홍도 소동에 말려들지 않은 채 제자리에 앉아 있다. 주인공과 홍만이 소동에 끼어들지 않고 관망하고 있다. 제대병 가운데 한 사람이 각반의 팔을 담뱃불로 지진다. 검은 각반은 숨넘어가는 비명을 내지른다. 객차 안 곳곳에서 둔중한 신음과 함께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각반들이 여기저기서 성난 제대병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성을 회복한 누군가가 이제 진정들 하자고 외친다. 당신은 속도 없느냐는 외침이 이내 들리고, 이런 악종들은 아예 씨를 말려야 한다고 외치는 소리도 들린다. 제정신이 아닌 제대병들을 보며 주인공은 섬뜩한 상상에 빠진다. 만약 검은 각반들이 죽는다면? “이미 그곳을 지배하는 것은 눈먼 증오와 격앙된 감정이 있을 뿐, 대의는 없었다.”는 진술에 드러나는 대로, 주인공은 검은 각반들을 향한 제대병들의 폭력에는 대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누군가 이성을 찾자고 했지만 비난하는 소리만 되돌아왔다. 제대병들이 폭력을 당할 때 나서지 못한 것처럼, 제대병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지금 상황에서도 그는 그들을 만류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다. 그리고는 슬쩍 이 대의 없는 소동의 와중에서 주인공은 빠져나온다. 소동이 난 객차를 빠져나온 그가 다음 객차의 빈자리에 앉는 순간 한 떼의 헌병과 호송병이 달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잠자는 돼지

 

주인공은 막연한 우울감에 빠져 깊이 한숨을 내쉰다. 누군가 뒤에서 그런 그의 어깨를 친다. 홍이다. 머리카락이 바짝 서듯 송연한 기분이 든다. 홍은 시끄러운 건 질색이라며 주인공에게 소주병을 내민다. 그는 맥없이 병을 받는다. 화끈거리는 소주를 병째로 들이마시면서 주인공은 어느 책에선가 읽은 일화를 생각한다. 일화는 이렇다. 배를 타고 여행을 하던 필론이 큰 폭풍우를 만났다.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속에서 필론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떠올렸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배 선창에 돼지 한 마리가 사람들이 일으키는 소동과 상관없이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었다. 필론은 그 돼지의 흉내를 낼 밖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사실 돼지가 이런 상황에서 편안하게 잠을 잘 리 없다. 우화는 언제나 사실을 넘어선다. 돼지가 잠을 자는 것 말고 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그저 꿀꿀 비참한 소리만 더할 뿐이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돼지가 과연 비슷한 상황에 있는지 먼저 물을 수 있다. 폭풍우는 자연 재해다. 폭풍우에 해당되는 사건이 이 소설에서는 검은 각반들의 폭행과 이어진다. 폭풍우 상황에서 사람들은 그 무엇도 할 수 없다. 폭풍우가 빨리 그치거나, 아니면 빨리 죽음이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검은 각반들의 폭력은 다르다. 폭행을 당하는 약자들이 힘을 합치면 검은 각반들을 물리칠 수 있다. 주인공은 제대병들의 과잉 폭력을 문제 삼고 있다. 이성을 잃은 대중은 언제나 감정에 치우쳐 과도한 폭력에 이른다는 게 주인공의 생각이다. 이 소설에 표현된 사건만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전의(戰意)를 상실한 각반들에게 다수의 제대병들이 잔인한 폭력을 행사했으니까. 주인공은 폭풍우 속에서도 잠을 잔 돼지가 그들보다 더 현명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이 소설에서 돼지에 해당하는 인물은 홍과 주인공일 것이다. 홍은 애초부터 이런 상황에 끼어들 생각이 없고, 주인공은 마음과 행동 사이에서 끊임없는 갈등을 겪는다. 주인공은 생각이 없는 홍을 처음에는 무시하지만, 나중에는 그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돼지가 되어 폭풍우가 일어난 자리를 피한 것이다. 돼지에게는 그것이 잠이다. 잠에 빠지면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지 않겠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편하게 죽음을 맞는 이 돼지의 눈으로 보면, 검은 각반들이나 제대병들이나 자기들이 처한 본질을 전혀 보지 못하는 얼치기들이다. 제대병들은 폭력을 행사하는 악당을 잡은 정의로운 집단으로 자기들을 드높일지 모르지만, 그들 또한 이성을 잃은 점에서는 각반들과 다를 바가 없다. 돼지의 눈으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만큼 주인공은 인간의 이성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견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 소설을 지은 이문열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뭉친 집단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에둘러 드러낸다. 제대병들은 왜 정의를 실현하려고 하는가? 각반들에게 당한 게 분해서이다. 작가는 제대병들이 주창하는 정의가 분노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분노에서 자라난 정의가 제대병들을 끔찍한 폭력으로 내몬다. 이문열이 혁명을 옹호하지 않는 까닭은 여기에 있으리라. 아무리 정의로운 혁명도 결국에는 분노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그 분노는 언제나 지독한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그러느니 차라리 돼지와 같은 현자(賢者)가 되는 게 낫다고 그는 이야기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분노를 다스릴 줄 모르는 대중이 권력을 잡으면 사회는 피바다가 될 것이라는 작가의 이러한 주장을 여러분은 어떻게 판단하는가? 대중은 정말로 이리 어리석은가?

 

대중은 어리석지 않다

 

1980년에 광주 항쟁이 일어났다. 군부 독재 타도를 외치는 시민들을 향해 군인들은 총을 쏘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고,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 맨몸으로 권력에 맞선 시민들은 이리 허망하게 죽을 수 없어 총을 들었다. 군인들이 갖고 있는 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구식 총이었다. 구식 총을 들고 대드는 시민들의 함성이 무서웠는지 군인들은 시가지를 비우고 외곽으로 후퇴했다. ‘해방 광주가 들어선 것이다. 이문열의 생각대로라면 해방 광주는 피바다가 되어야 하고, 혼란의 극치를 이루어야 한다. 대중들이 지배하는 장소니까 말이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듯 해방 광주를 만든 시민들은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철저히 지켰다. 혼란에 빠지기는커녕 해방 광주는 사람들의 이성을 통해 적절히 통제되는 도시로 거듭났다. 대중들도 상황에 따라서는 이성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언뜻 인간의 자유를 표현한 듯싶은 이 작품에는 이렇게 대중을 바라보는 작가의 편견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제대병들이 힘을 합쳐 검은 각반들과 싸울 때, 주인공과 홍은 도망치기에 바빴다. 홍은 아예 생각을 하려고 하지 않았고, 주인공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자기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결국 그들은 제대병도 될 수 없었고, 현명한 돼지도 될 수 없었다. 현명한 돼지가 되려면 폭풍우라는 상황에 초연해야 한다. 그들은 상황에 초연한 게 아니라 어떻게든 그 상황에서 도피하려고 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상황에서는 사람들처럼 소리치느니 돼지처럼 잠을 자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지만, 검은 각반들의 폭력은 이와 전혀 다르다. 그에 저항하지 않으면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다. 대중을 통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 저항마저도 무위로 돌릴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 소설은 이문열이 왜 한국사회의 극우보수를 대변하는 인물이 되었는지 정확히 보여준다. 극우보수는 권력이 시민들에게 행하는 폭력은 정당하게 생각하면서도, 시민들이 권력에 저항하는 폭력에 대해서는 무조건 부정하는 자세를 취한다. 그들에게 권력의 폭력은 정당방위이고, 그에 대응한 시민들의 폭력은 범죄이다. 민중들이 일으킨 온갖 항쟁들을 그들은 그래서 빨갱이들의 선동이라고 아직도 주장한다. 그들은 민중들이 폭력을 행사한 그 장면만 부각시킬 뿐, 그런 폭력에 이른 과정은 전혀 따지려고 하지 않는다. 권력은 옳고 민중은 그르다. 어떤 경우에도 민중은 권력에 저항하면 안 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이 소설의 문맥을 따른다면, 집단이 폭력을 행사하면 반드시 이성을 잃는다는 게 그 이유이다. 이성을 잃은 권력이 막강한 무기로 민중을 살육하는 것은 그럼 무엇이 되는가?

 

주인공은 어떤 경우에도 돼지를 따르는 필론이 될 수 없다. 그는 분명 검은 각반들이 무서워 몸을 사렸다.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각반들을 욕한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는 그 욕을 현실로 표현했고, 누군가는 그 욕을 그대로 마음에 품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검은 각반을 대하는 방식대로 제대병들을 바라본다. 그는 돈을 주며 모욕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그가 왜 제대병과 합세하지 않았을까? 그는 모난 돌이 되기 싫은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사람들이 벌이는 소동 속으로 끼어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주인공처럼 행동하면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나서야 하고, 또 누군가를 그를 따라 소리를 질러야 한다. 이게 세상이다. 주인공은 이러한 세상 원리와는 담을 쌓는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세상을 힐끔거린다. 돼지를 지향하면서도 돼지가 되지 못하는 인물(나아가 작가)은 이렇게 탄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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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퍼디컴 저/안진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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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10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하는가?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는 영미권 명상분야 최고권위자로 인정받는 파란 눈의 스님 앤디 퍼디컴의 저서다. 그는 인생의 모든 해답이 나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걸아는 이들, 즉 명상법을 배우려는 이들을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10개 나라에서 출간된 이 책이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계기에는 빌 게이츠와 엠마 왓슨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내면의 답, 오직 나만의 길을 직시하고 싶어 했고 명상이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알고 있었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탁월한데, 저자 자신이 승려가 되고 명상을 수련하며 겪은 시행착오로 터득한 가장 쉽고 정확하게 명상할 수 있는 방법을 담았다. 


특히 빌 게이츠는 ‘내가 읽은 최고의 책 중 한 권’이라고 소개하며 누구든 내면의 나에게 더 집중할 것을 권했고, 「가디언(The Guardian)」은 복잡하지 않은 삶, 명료하게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이 읽어야 할 책, 「타임스(The Times)」는 최고의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거인들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소개하며 대중의 관심을 자극했다. 이 책은 10가지 명상법을 소개하는데 저자 특유의 재치와 웃음을 일으키는 스토리 전개로 자칫 따분할 수 있는 주제의 단점을 극복했다. 현재는 스님이 아닌, 일반인으로 명상앱을 개발해 활발한 구루(guru)로 활동 중인 저자는 책을 통해 독자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은 마지막으로 10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때를 기억하는가?’라고.


그 질문의 이면에는 우리 대부분이 하루 중 단 10분도 생각을 멈춘 적 없는 일종의 생각 중독 상태임을 자각시키려는 의도가 있다. 무의식이라고 생각한 순간조차 생각을 멈춘 적 없는,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는 결코 오직 ‘나만의 답’을 찾을 수 없는 가장 단순한 진리를 지적한 것이다. 소란스런 시간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진지하게 인생의 결정을 내리는 데 명상이 도움이 된다. 평소 명상의 필요성을 인지한 이들이라면 이 책에서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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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양승권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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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장자'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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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희,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소설 읽기 2020-02-18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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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뫼비우스의 띠/장마/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외

조세희,윤흥길 등저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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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이가 쏘아 올린 희망의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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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희,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난쟁이 아버지

 

난쟁이 아버지가 있다. 다섯 식구의 가장인 아버지.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31)에 나타나는 대로, 난쟁이 가족은 지옥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가난한 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는 부자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왜냐고?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돈이기 때문이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돈이 없으면 법의 보호 또한 받기 힘들다. 법을 제도라고 해도 좋다. 가진 자들이 제도를 만든다.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법을 피해 이익을 취한다. 학벌도 없고, 돈도 없는 난쟁이 아버지는 애초부터 이 사회의 변방으로 내쫓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난쟁이 가족은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에 산다. 낙원과 행복이라는 말이 붙은 장소에서 그들은 지옥보다 더 끔찍한 삶을 산다. 하루하루를 살기도 힘든데, 집을 비우라는 철거계고장까지 날아든다. 난쟁이 가족이 사는 땅이 개발된단다. 판자촌을 허문 자리에 아파트를 짓는단다. 어머니는 대문 기둥에 붙은 알루미늄 표찰을 떼어 보관한다. 철거민들마다 아파트에 입주할 입주권이 나오지만 이들은 돈이 없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개발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아파트를 짓는 기업의 이익을 위해 개발이 이루어진다. 자본은 가난한 자들을 고려하지 않는다. 자본의 목적은 오로지 자본을 증식하는 데만 있다. 돈이 돈을 낳는 사회에서 자본은 돈이 되지 않는 이들을 가차 없이 자본의 바깥으로 내쫓는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철거민들의 입주권을 사들인다.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입주권을 되팔아 이익을 남기기 위해서다. 그동안 수많은 정치인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그들은 선거철만 되면 난쟁이 아버지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판자촌 건물을 양성화시켜 주겠다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난쟁이 아버지가 찍은 사람들은 구청장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판자촌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증오했다. 그들은 거짓말쟁이였다. 그들은 엉뚱하게도 계획을 내세웠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계획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많은 계획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설혹 무엇을 이룬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고통을 알아주고 그 고통을 함께 져줄 사람이었다.”(42)

 

이 소설은 난쟁이 아버지를 둔 세 남매의 시선으로 가난한 이들이 감당해야 비참한 삶을 그리고 있다. 맏이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동네 사람들이 다니는 공장을 다니지 않으려고 한다. 공장에 다니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공부를 하는 것이다. 문제는 공부를 하려면 그만큼 돈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난쟁이 아버지는 채권매매, 칼 갈기, 고층건물 유리 닦기, 펌프 설치하기, 수도 고치기 등을 하며 어머니와 함께 살림을 꾸렸지만, 남은 것은 건강이 나빠진 것밖에는 없다. 그는 꼽추와 함께 서커스단에 들어가려고 하지만, 가족들의 반대로 이 일 또한 무산된다. 이후 아버지는 의욕을 상실한 채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삶에 지쳐서 그런 거라며 아버지 대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인쇄 공장에 나간다. 어머니가 이러는데 맏이가 어떻게 공부만 할 수 있을까?

 

맏이가 학교를 그만두자 동생들도 학교를 그만둔다. 공부도 먹고사는 일이 해결되어야 할 수 있는 법이다. 아무리 공부를 하고 싶어도 먹고사는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럴 수 없다. 맏이는 먹고살기 위해 공부를 포기하고 공장에 나간다.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이 가난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가난한 사람은 결코 게으를 수 없다. 게으르면 하루 한 끼를 먹는 것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런저런 일을 부지런히 한다. 그런데도 도통 돈이 모이지 않는다. 일은 많이 하는데 받는 돈은 적기 때문이다. 맏이가 왜 공장에 다니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한다고 하겠는가? 돈을 많이 주는 회사에 들어가려면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야 한다. 공부에 돈을 투자해야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나 할까?

 

이렇게 보면 난쟁이 아버지를 둔 아이들은 애초부터 돈을 벌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 가난은 아버지에서 아이들로 세습된다. 열심히 일할수록 더욱 더 가난해지는 이 모순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개천 건너 주택가에서 가정교사를 하는 지섭은 아버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만 사는 땅은 죽은 땅입니다.”(54) 사랑이 없는 욕망은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탐하는 자본을 빼어 닮았다. 자본의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은 스스로 자본의 욕망을 몸속 깊이 받아들인다. 자본의 속성을 내면화하지 않으면 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무한 경쟁 사회는 끊임없이 경쟁이 벌어지는 광장으로 사람들을 몰아넣는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면 피라미드의 끝으로 오를 수 있고, 경쟁에서 낙오하면 피라미드의 아래로 내려가거나, 아예 피라미드의 밖으로 내쫓길 수 있다. 사랑이 없는 욕망이 없이 어떻게 피라미드의 끝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지섭은 이 죽은 땅을 떠나 달나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달나라가 희망이라고? 지섭의 영향을 받은 아버지는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다. 그만큼 아버지는 이 사회에서는 어떤 희망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벽돌 공장의 높은 굴뚝으로 올라간 아버지는 그곳에서 종이비행기를 날린다. 아버지가 날린 종이비행기는 높디높게 날아올라 달나라로 가게 될까? 이것이 불가능한 환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런 환상에라도 의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세상을 난쟁이 아버지는 살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

 

이제는 둘째 아들 영호가 보는 세상이 그려진다. 맏이인 형이 보는 세상이나 동생인 영호가 보는 세상이나 다르지 않다. 영호는 지금 여동생인 영희를 찾고 있다. 영희를 마지막으로 목격했다는 주정뱅이는 비행접시가 영희를 데려갔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한다. 부동산 업자에게 돈을 받고 입주권을 파는 그날 영희는 사라졌다. 집을 떠나야 할 날이 왔는데도 영희는 돌아오지 않는다. 나쁜 일은 겹쳐서 오는 것인지, 영호는 공장에도 나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회사의 부당한 처사에 맞서 형을 비롯한 공원들과 더불어 싸울 계획을 세웠지만, 앞장을 선 형과 영호만 공장에서 쫓겨났다. 회사 사장은 형과 영호가 들어간 블랙리스트를 다른 회사로 돌렸다. 살 길을 아예 막아버린 것이다.

 

이들이 커다란 요구를 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공장 식탁에 간이 맞은 무말랭이가 오르기를 원했다. 회사 사장은 불황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시간이 갈수록 회사 규모를 더욱 더 키웠다. 공장 식탁에 오르는 무말랭이는 여전히 간이 맞지 않았고, 야간 작업수당도 많이 줄었다. 회사는 점점 커지는데 노동자들의 삶은 개선되지 않았다. 우리 공원들은 우리가 아는 것만큼밖에는 사물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도 땀으로 다진 기반을 잃고 싶어 하지 않았다. 회사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싫어했다. 공원들은 일만 했다.”(59)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공원들을 회사는 주저 없이 쫓아냈다. 한편으로 회사는 문제를 일으키는 공원들을 블랙리스트로 작성해 정보를 공유했다. 노동 말고는 달리 길이 없는 노동자들은 먹고살기 위해 생각하고 저항하는 길을 포기해야만 했다.

 

영호가 보기에 형은 생각이 깊었다.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도 항상 책을 읽었다. 일 이외의 다른 생각을 하는 공원을 회사는 싫어한다고 했다.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회사가 벌이는 일에 사사건건 참견을 하기 때문이다.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려 하고, 노동자들은 어떻게든 회사로부터 더 많은 월급을 받으려고 한다.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노조를 만든다. 노조의 힘이 커질수록 회사는 노동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 회사는 노동자들이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고 한다. 동시에 노동자들이 어울릴 수 있는 상황도 어떻게든 막으려고 한다. 사람들이 모여야 노조도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회사는 결국 형과 영호를 희생양 삼아 공원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보낸 셈이다.

 

난쟁이 가족은 입주권을 25만 원에 팔았다. 입주권을 산 사람은 부동산 업자였다. 25만 원에 사들인 입주권을 그는 이익을 덧붙여 다른 이들에게 되팔 것이었다. 돈이 돈을 낳는다. 돈 있는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번다는 말이다. 부동산 업자는 살 집이 필요해서 입주권을 사들이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 입주권은 곧 자본을 증식하는 도구와 같다. 입주권을 많이 모을수록 이익이 커지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개발이 되면 누군가는 삶터를 잃고, 누군가는 돈을 번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펼치는 게임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익을 얻을 수는 없다. 누군가 이익을 얻으려면 누군가는 손해를 봐야 한다. 부자가 손해를 볼 리는 없다. 손해는 늘 가난한 이들이 본다. 자본력이 딸리기 때문이다.

 

난쟁이 아버지는 여전히 지섭과 붙어 다닌다. 아버지는 달에 가서 천문대 일을 보기로 했단다. 지섭이 미국에 있는 존슨 우주 센터에 편지를 써 보냈단다. 자신을 미치광이 취급하는 영호를 향해 아버지는 미친 사람들이 세상을 이끈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점점 현실을 떠나 이상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그만큼 현실을 사는 게 힘들다는 얘기다. 아버지는 현실에 발을 딛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달나라를 꿈꾼다. 달나라는 현실과 관련이 없다. 아버지는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영호에게 쇠공을 쏘아 올리겠다는 말까지 한다. 쇠공을 하늘 높이 쏘아 올리려면 중력을 이겨야 한다. 중력에 갇힌 채 어떻게 달나라로 갈까?

 

아버지는 지섭이 쇠공을 달나라로 쏘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섭이 신이라도 되는 것일까? 철거를 하는 날 아침, 지섭이 쇠고기를 들고 난쟁이네 집에 들른다. 식구들이 모여 아침을 먹는데, 철거반원들이 몰려와 담을 부순다. 뿌연 먼지 사이로 밥을 먹는 사람들과 담을 부수는 사람들이 마주한다. 한쪽은 묵묵히 식사를 하고, 한쪽은 묵묵히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식사를 끝낸 가족들이 밖으로 짐을 옮긴다. 관리자에게 다가간 지섭이 주먹을 휘두른다. 쇠망치를 든 사람들이 지섭에게 달려든다. 순식간에 난쟁이 집은 아수라장이 된다.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지섭을 사람들이 끌고 간다. 아버지가 그 뒤를 따라 나선다. 어머니는 몸을 떨면서 울고 있다. 아버지는 과연 지섭을 따라 달나라로 갈 수 있을까?

 

아버지가 달나라로 가는 꿈을 꾸고 있다면, 형과 영호는 간이 맞는 무말랭이가 나오는 식탁을 꿈꾸고 있다. 아버지는 온몸을 내리누르는 현실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한다. 중력의 감옥을 탈출한 사람만이 달나라로 갈 수 있다. 형과 영호는 아버지보다 현실적인 꿈을 꾼다. 그들은 생명으로 태어난 이상, 현실의 중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중력에 매여 허덕이는 삶을 사는 것도 못마땅하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을 바꾸려고 했지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회사 바깥으로 내몰렸다. 바깥을 꿈꾸는 아버지나, 어떻게든 안에서 살아남으려는 형과 영호 모두 현실에 발을 딛지 못한다. 현실에 뿌리를 내리려면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들은 끊임없이 바깥을 상상하고 있다. 자본이 가장 싫어하는 일을 그들은 암묵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이 만든 완벽한 성채

 

난쟁이 가족은 한없이 무기력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입주권을 비싼 값으로 팔아 다른 삶터를 마련하는 일이다. 난쟁이 가족의 막내이자 외동딸인 영희의 시선으로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입주권을 파는 날 사라진 영희는 부동산 업자와 밤을 보냈다. 아버지의 재력을 등에 업은 스물아홉의 남자는 돈의 힘으로 열일곱 여자를 꼬인다. 정확히 말하면 입주권을 되찾으려는 생각에 영희 스스로 남자에게 다가간다. 남자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다. 말을 잘 들으라는 것. 남자는 왜 영희에게 관심을 가진 것일까? 예쁜 여자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돈으로 영희를 산다. 말을 잘 들으면 입주권 한 장 쯤 아무렇지 않게 돌려줄 수 있다. 이게 돈의 힘이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흥정을 해 오기도 한다.

 

영희는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사막으로 이어지는 지평선을 떠올린다. 어둘 녘에 모래 섞인 바람이 분다. 선 하나로 표시될 그 지평 끝에 내가 알몸으로 서 있다. 다리를 약간 벌리고 팔을 안으로 끌어들였다. 머리도 반쯤 숙여 나의 머리카락이 나의 가슴을 덮었다. 눈을 감고 열을 세면 나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78) 영희는 이 세계를 회색으로 표현한다. 죽음으로 덮인 세계이니,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피어나지 않는다. 입주권을 산 남자의 세계는 어떨까? 아무도 그에게 안돼요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사는 세계를 지배하는 왕이다. 영희가 지옥불보다 뜨거운 세상에 태어났다면, 남자는 편안하고 달콤하고 따뜻한 세상에 태어났다. 회색이 아닌 천연색의 세계.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계.

 

영희는 남자에게 몸을 주었고, 남자는 영희에게 입주권을 주었다. 부모와 오빠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영희는 해냈다. 그녀는 어리고 예쁜 여자였기 때문이다. 남자와 있는 동안 영희는 악몽을 꾸었다. 꿈속에서 어머니는 빨리 일어나 옷을 입으라고 외쳤다. 주인 서방과 잠자리를 함께했다가 사매질을 당한 증조할머니 동생 이야기도 했다. 영희가 자신은 그와 다르다고 외치자, 어머니는 어린 게 벌써부터 그것을 좋아한다며 힐난을 한다. 몸을 팔아 입주권을 되찾는 일이 도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걸 영희도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영희는 몸을 판다. 이 방법이 아니면 입주권을 찾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도덕 너머에 돈이 있다. 도덕을 넘지 않으면 영희는 손에 돈 한 푼 쥘 수 없다.

 

남자는 영희가 처한 상황을 적절히 이용한다. 그는 영희의 몸을 좋아할 뿐이다. 돈만 주면 그는 영희의 몸을 마음껏 탐할 수 있다.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므로 헤어지기도 쉽다. 영희는 돈을 원하고, 남자는 영희의 몸을 원한다. 영희의 몸을 돈으로 환산하는 순간, 남자는 도덕이니 하는 사회통념으로부터 멀찌감치 벗어날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돈이 도덕을 만든다. 남자가 영희에게 요구한 것은 안돼요라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말로 자신의 의지를 드러낸다. ‘안돼요라는 말은 곧 거부의지가 아닌가. 남자는 영희의 자유의지를 돈으로 구매한다. 참으로 신비로운 힘을 가진 돈이 아닌가. ‘이라는 기호에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사람들의 지독한 욕망을 이해할 만도 하다.

 

구청 주택과에서 입주 신청을 마친 영희는 아버지와 잘 아는 신애 아주머니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벽돌공장 굴뚝을 허무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벽돌공장 굴뚝에 올라가 종이비행기를 날렸다. 동시에 이 굴뚝은 아버지가 지섭과 함께 저 먼 하늘 위로 쇠공을 쏘아 올릴 곳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굴뚝 속으로 떨어져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영희의 뇌리에 헐린 집 앞에 서 있는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 몸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진다. 영희는 오빠들과 함께 까만 쇠공이 머리 위 하늘을 일직선으로 가르며 날아가는 장면을 본다. 벽돌공장 굴뚝 위에 선 아버지가 손을 흔들어 보인다. 환상이다. 입주권을 찾아왔는데 아버지는 이미 저 먼 곳으로 떠났다.

 

목 놓아 우는 영희를 큰오빠가 달랜다. 영희는 큰오빠에게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부르는 악당을 죽여 버리라고 외친다. 큰오빠가 그러겠다고 다짐한다. 물론 영희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상상이다. 영희는 아버지를 죽인 세상을 용서할 수 없다.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부르며 깔보는 세상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 아버지는 죽어서야 비로소 중력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났다. 스스로 쇠공이 되어 하늘 저 너머로 날아간 아버지가 서러워 영희는 세상을 향해 분노를 터뜨린다. 시간이 흐르면 세상에 대한 영희의 분노는 사그라질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영희는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이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사회를 우리는 살고 있다. 난쟁이 가족이 겪은 이 끔찍한 지옥도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펼쳐지고 있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아무 생각도 없이 오로지 일만 하려고 한다. 생각을 한다고 변할 세상이 아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속담을 사람들은 철석같이 믿고 있다. 모난 생각을 하면 피라미드 바깥으로 내쫓긴다. 자본은 그 누구도 허물지 못하는 완벽한 성채를 만들어, 자본의 뜻을 어기는 사람들을 성채 밖으로 몰아낸다. 성채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자본의 뜻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스스로 자본이 되어 자본 증식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난쟁이 가족보다 더한 비극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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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문의 전제 조건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애정이다. 수시로 입시제도가 바뀐다고 하지만 대학이 원하는 인재상은 변한 적이 없다. 학문적 논의가 축적된 다양한 개념어들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은 전공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을 입증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며, 이 책은 그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_박상민(강남대 교양교수부 교수)


배경지식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학생들로서는 당장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막막하고 딱딱한 지식의 문으로 들어서기 위한 흥미로운 입문서가 될 것이다. 

_신현정(명덕여고 교사)


책소개


입시 전문가가 콕 집어주는 대입 합격을 위한 필수 배경지식 어휘


대학 입시를 위한 주요 배경지식을 담은 어휘의 완결판. 검증된 입시 전문가가 학종 ·면접 · 수능 지문 경향을 철저 분석해 선별한 전공 분야별 실전 필수 어휘집이다. 전공 분야를 두루 아우른 배경지식이 요구되는 최근 입시 경향에 맞춰 9계열의 기본 학과 소개, 자신의 적성도 체크, 분야별  전공 어휘와 개념어를 엄선하여 소개하고 대학 기출 면접 ? 논술 문항까지 담았다. 그간 외부 지문, 학종, 면접 등 교과서 내 어휘만으로는 대처하기 힘든 부분들을 비교적 빠른 시간에 해결하기 위한 수험생들의 요구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이 책은 입시용 배경지식 어휘를 요구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빗발치는 요청으로 기획 ? 출간된 최초의 참고서다.


외부 지문과 배경지식이 대학을 결정한다


입시 전문가들은 최근 입시 정책과 경향을 살핀 결과, 특히 전 계열에 걸친 다양한 배경지식을 갖출 것을 학생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그로 인한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독서이고, 동시에 시사적 이슈에도 밝아야 함은 물론이다. 이것은 수년간에 걸친 지난한 노력과 시간 투자가 필요한 부분이다. ‘에듀플렉스 에듀케이션’ 총괄 상무를 역임하고, 오랜 시간 대치동과 목동에서 학습 전문가로서  스스로 하는 공부의 방법론과 가치를 전달해온  저자는  “마치 학생들의 게으른 품성 때문에 그 중요한 독서를 실천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을 질책하는 분위기에 항상 안타까움을 느껴왔다. 그러나 독서는 훈련을 통해 능숙해지는 고도의 지적 행위다. 앞선 경험에서 누적된 어휘력과 지식이 더 난이도 높은 독서를 가능하게 하는 단계적 학습인 것이다. 세간에 넘쳐나는 그 어떤 공부법도 가장 기본적인 어휘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기존의 출제 경향과 분석을 통해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필수 배경지식을 엄선한 책이지만, 이 책의 어휘들을 따라가다 보면 헨젤과 그레텔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흘려놓은 빵 조각을 따라가듯 대입에 꼭 필요한 배경지식 어휘의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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