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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창조를 위해 진실을 잃은 자들 | 상처와 풍경 2016-08-0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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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맘브루

R. H. 모레노 두란 저/송병선 역
문학동네 | 2015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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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창조를 위해 진실을 잃은 자들

 

                      “애국심은 사악한 자의 미덕이다.”
 -오스카 와일드


 

   정부는 한국전쟁 당시 참전한 UN군들을 ‘자유의 십자군’으로 칭송하고 매년 이들의 희생을 기념한다. 이 ‘자유의 십자군’ 중에 남미의 작은 국가-콜롬비아-가 섞여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자는 많지 않다. 콜롬비아는 남미 국가들 중에서 한국전에 참전한 유일한 국가였다.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도 ‘콜롬비아 데일리’의 기자로 한국에 파견된 바 있다)

 

   콜롬비아 작가 R.H.모레노 두란의 소설 『맘브루』의 주인공은 한국에서 전사한 아버지의 흔적을 추적하는 역사학자 비나스코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참전했던 콜롬비아 병사들을 만나 그들의 증언을 수집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병사들은 자유를 수호한 영웅들과는 거리가 멀다. 당시 콜롬비아의 젊은이들은 무능한 극우독재정권 아래서 극심한 빈곤과 실업에 시달리고 있었다. 문맹인 시골뜨기, 가난한 소작농과 뱃사람, 파산 직전의 공장 노동자, 학비가 없는 대학생들, 다시 말해서 더는 잃을 게 없는 콜롬비아의 청년들은 ‘미국인들과 정부의 약속’을 믿고 한국전에 지원한다. 그들은 대부분 귀국한 이후에 먹고 살 토대를 마련하는 평범한 꿈을 지닌 자들이었지만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의 이름으로 자유를 위해 투쟁하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 가는”(21쪽) 현실을 서서히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유가 범죄인데 머나먼 아시아 국가로 가 자유를 위해 죽으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아무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신병이 그런 것까지 이해할 필요는 없었지요.” (54쪽)

 

크기변환_ma1.jpg

    그들은 1951년, 미군이 제공한 프리깃함을 타고 부산에 입항한다. 적응 훈련을 마친 후 그들은 지루하고 참혹한 ‘고지전’에 투입된다. 중공군과 이름 모를 고지를 두고 소모전을 치루면서 그들은 점차 자신들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중공군의 ‘만세공격’(인해전술)에 시달리면서 겨우 고지를 점령하면 뒤늦게 미군들이 훈장과 담배, 껌을 산더미처럼 나눠준 다음 자기들의 공으로 가로채는 일이 반복되었다. 게다가 심각한 불구가 되지 않는 이상 살아남은 고참병들은 신병들을 교육해야 된다는 명목으로 교체되지 못한다. 그들은 휴전 협정이 조인되기 전까지 유리한 고지들을 선점하려고 전개되었던 전투의 소모품이었다. 그들의 유일한 위안은 포르노 잡지와 음담패설, 그리고 휴가를 받아 요코하마의 사창가에서 급료를 탕진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귀국한 병사가 장학금을 받고 미국의 대학에 진학했다거나 조국에 돌아가 긍지를 느끼며 잘 살아간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다.

 

   사건을 직접 경험하고 지켜본 사람들이 보기에 이곳에서 전쟁의 경과를 기록한 대부분의 소식은 거짓이었다는 겁니다. 알다시피 언론은 재갈이 물려 있었고, 거의 모든 뉴스와 보도기사는 구태의연하고 부패한 애국주의로 인해 왜곡되고 부풀려져 발표되기 일쑤였거든요. 우리 역사에서 그때처럼 허세 넘치는 형용사를 많이 사용하고, 공허하기 그지없는 수사법을 자랑한 적은 없었다고 생각해요.” (290쪽)

 

   한국전에서 전사한 비나스코의 아버지는 미국의회의 무공훈장까지 받은 콜롬비아의 ‘국가적 영웅’이었다. 그런데 왜 그의 아들은 거기에 자긍심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참전병사들의 목소리를 수집하면서 과거 독재정권의 무모한 파병결정이었다고 비판하는가. 콜롬비아의 고위 관료들과 한국전 경력을 발판으로 장군이 된 군인들은 참전병사들의 경험담을 수집하는 비나스코의 활동을 불편하게 여긴다. 한국전 참전용사 협회장인 카르데냐스 장군은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토로한다. “왜 그렇게 더러운 것들을 휘저으려고 하지? 그냥 있는 그대로, 참으로 애국적이고 투명하게 놔두는 게 어때?”

 

크기변환_ma2.jpg

 

   그럼에도 비나스코는 계속 증언을 수집하면서 다성적이고 감정적인 증언들을 비교하면서 ‘언어와 기억의 퍼즐’을 맞춰나간다. 비나스코는 “회상의 열기, 사건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의 목소리, 즉 각각의 새로운 정보에서 증식되고 커지며, 각자의 정체성을 지닌 다중이 되는 ‘나’를 모두 존중”(357쪽)하고 싶은 열망을 버리지 않는다. 참전병사들의 증언이 중첩되고 누적되면서 ‘명예로운 전쟁’에 묻혀던 진실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처음에는 파병 전에 기착한 하와이의 술집과 사창가에서의 질펀한 향연을 얘기하던 병사들은 회상에 몰입하면서 격하게 털어놓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영웅이 아니라 무지한 희생자였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을 고통스러워한다.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미국의 압력과 매카시 상원의원의 히스테리 앞에 순순히 바지를 내리며 스스로 명예를 잃어버린 건 우리나라뿐이었습니다. 오직 우리나라만이 제1파견대로 천 명이 넘는 염병할 놈들을 징병한 국가였단 말입니다. 우리가 한국에 관해 뭘 알고 있었을까요? 아무것도 몰랐어요. (……) 무조건 복종하는 통역사는 괴로워하는 목소리로 그들을 빨갱이, 빨갱이 개자식들, 빨갱이 살인자라고 칭했지요. 회고록엔 이런 이야기 따위 전혀 적혀 있지 않지만, 역사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쓴다는 걸 선생도 잘 알 거요.”(167쪽)     
  
   실제로 전쟁을 겪은 자들의 삶은 처절하게 파괴되었지만 공식적인 역사에는 ‘상징투쟁’과 ‘숫자’만이 난무한다. 비나스코는 아버지가 아군 사이에서 벌어진 오인 접전의 와중에 전사했으며 시신조차 유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낙담하지 않는다. (빈 관으로 치러진 아버지의 장례식은 ‘기억’을 삭제한 ‘공식역사’의 앙상함을 의미한다) 가장 생생하고 현실성 있는 기록은 영광을 창조하는 국가의 기록이 아니라 전쟁이 끝나고 실업자로 전락하여 콜롬비아의 거리와 마을을 배회하던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크기변환_ma3.jpg

    『맘브루』에 기록된 풍경과 병사들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국적과 이름, 배경만 바꾼다면 그대로 우리의 자화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미국인들과 정부의 약속’을 믿고 한국으로 간 콜롬비아 청년들의 모습은 베트남으로 향했던 한국군 병사들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 한국전과 베트남전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 어리석은 군사작전으로 인한 황당한 피해의 진실을 누군가 조사하거나 밝혀내면 그것을 국가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도전으로 간주하는 것도 흡사하다. 매년 여름이면 호국행사가 벌어지고 애국심을 강조하는 영화들이 흥행몰이를 하지만 그 풍경은 어딘가 공허하다. 개인의 기억과 목소리를 제거한 ‘자랑스러운 역사’에서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순국선열과 참전한 외국 병사들의 희생은 당연히 기억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영웅을 만들고 증오를 양산하는 것은 희생자들을 위한 진정한 애도가 아니라 위정자들이 벌이는 안보 퍼포먼스에 불과하다.    


 부기) 매년 이른바 ‘국뽕’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올해는 <인천상륙작전>이 개봉했다. ‘국뽕’ 계열의 영화들에 내재된 화법은 이렇다. “지금 우리가 이정도로 살고 있는 것은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닥치고) 그들을 기억하고 조국을 자랑스러워하라.”

 

   여기에 딴지를 걸거나 감동하지 않는 자들은 애국심이 결여되었거나 ‘자랑스러운 조국’을 부정하는 자로 낙인찍힌다. 공중파 방송과 종편 방송에서는 ‘종북주의자’들과 ‘회의론자’들이 넘친다고 우려한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에게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줘야 한단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홍보하는 것처럼 지금-여기의 대한민국은 수많은 선열들이 지켜낸 자랑스럽기만 국가인가. 온갖 부정(심지어 국방비까지 빼돌린다)을 자행하여 편법으로 재산을 축적하고 국민들을 개돼지로 여기는 자들이 말하는 ‘국가’와 군대를 다녀오고, 제대로 세금을 내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평범한 사람들이 말하는 ‘국가’는 과연 같은 공동체인가. 참고로 공식적인 역사를 신봉하는 자들이 좋아하는 ‘숫자’로 말하자면, 매년 자살하는 한국 젊은이의 숫자는 한국전에서 전사한 콜롬비아 병사들의 숫자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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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미터 -허연 | 기억과 풍경 2016-02-18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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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가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 화면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넘어서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된다

 

밀랍 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 굳어버리기를 몇 번. 괄호 몇 개를

없애기 위해 인수분해를 하듯,

한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 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

가득 피어 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다.

 

                                                      - 허연, <오십 미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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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는 해설이 필요하지 않은 시가 있다. 산문이나 일기와도 구별이 되지 않는다. 

 평범한 비유조차도 체험을 통과하면서 아프게 다가온다. 


 이수역에서 영화를 본 날이면, 늘 흑석동을 거쳐서 상도동까지 걸어오곤 한다.

 현충원 앞이나 이수 교차로를 지날 때면 늘 담배를 물게 된다. 

 잊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노란색 연습장에 숱하게 시를 적어서 건네주던 날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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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세계는 갑자기 붕괴되는 경향이 있다 | 기억과 풍경 2015-08-26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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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예스24 블로그 축제 - 힘든 순간 나를 위로해준 책ㆍ음악ㆍ영화 공연 참여

모든 세계는 갑자기 붕괴되는 경향이 있다

-1990년대, 나의 성장기와 신해철의 음악

 

 

“1988년 겨울, 대학가요제가 열렸다.

<그대에게>의 강렬한 인트로 음향과 우승팀이 발표되자

펄쩍 뛰면서 좋아하던 신해철과 멤버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것이 신해철과의 첫 만남이었다.“

 

 

1. Intro

 

 

1988년 여름, 세상은 소란스러웠다. 올림픽을 앞둔 거리에는 태극기와 꽃들이 넘쳐났고 TV와 레코드 가게에서는 코리아나의 노래가 쉬지 않고 나왔다. 올림픽의 위력은 대단했다. 당시 11살이었던 국민학교 학생인 나조차도 코리아나의 노래를 지겹도록 듣고 불러야 했으니까. 한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획득할 때마다 온갖 인간승리의 사연들이 회자되었고 학교에서는 애국심을 강조하는 각종 웅변대회와 그림대회가 열렸다. 호돌이(88올림픽 마스코트)는 공책, 지우개, 연필, , 티셔츠 어디에나 박혀 있었다. 올림픽 기간 내내 탁구, 유도, 양궁, 배드민턴, 핸드볼, 축구 경기가 방송되었고, 운동장은 공을 튕기고 던지는 아이들로 붐볐다. 10월이 되자마자 성화는 꺼졌다. 축제는 짧았다. 떠들썩하게 준비했던 축제가 그토록 빨리 끝나다니. TV는 다시 재미없어졌고, 날씨가 서늘해지면서 운동의 열기는 빠르게 식었다. 축제가 끝난 뒤의 적막이 싫었던 아이들은 다시 몰두할 것을 찾아다녔다.

 

 

 소망은 의외로 빨리 충족되었다. TV에서는 올림픽 경기보다 더 대단한 장면이 나왔다. 교도소를 탈출한 범죄자들이 가정집을 점거하고 인질극을 벌이고 있었다. 주택을 에워싼 경찰들과 권총을 들고 악을 쓰는 탈옥범들, 경찰 헬기의 진동 소리와 특공대의 투입. 아이들의 흥미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특히 지강헌이 악을 쓰면서 외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신문은 연일 기사를 토해냈고 한자가 가득한 신문을 읽기 위해 한자공부를 시작했다. 신문은 TV보다 더 상세했다. 채널을 돌리면 금방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TV와는 달리 신문은 거의 모든 기사가 비슷한 톤을 지니고 있었다. 죄를 지은 자가 울분을 품고 탈옥할 정도로 세상은 엉망이라는 사실, 세상 어딘가에는 불만에 가득한 자들이 넘친다는 사실이 섬뜩했다. 탁구공, 축구공, 농구공, 배구공이 통통 튀는 사이로 아이들은 인질극 흉내를 내면서 놀았다.

 

 

 인질극의 여파가 가시기도 전에 TV는 다시 이상한 장면들을 내보냈다. TV에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없이 질의응답과 고성이 오갔다. 증인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묻는 자는 더욱 집요하게 캐물었으며 질의는 처음부터 반복되었다. ‘5공청문회였다. 대중목욕탕, 복덕방, 전자제품점, 음식점 어디서나 어른들은 TV를 보면서 혀를 찼다. 저런 인간들은 잡아가야 한다, 천하에 몹쓸 인간이다, 온갖 말들이 난무했다. 선생님에게 물었으나 대답해주지 않았다. 아마도 11살짜리 아이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으리라.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북한이 금강산댐을 무너뜨리면 서울이 물바다가 된다는 어른들의 호들갑이 거짓말이라는 사실과 교실에 걸린 대머리 대통령이 투표로 뽑힌 지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구라를 쳐도 왜 어른들과 대머리 대통령은 사과조차 하지 않는 걸까. ‘반공웅변대회반공포스터대회는 계속 열렸다. 웅변대회에 나가 상 받은 친구가 더 이상 부럽지 않았다. 포스터를 그리라고 하면 킬킬거리며 총을 든 빨간 도깨비를 대충 그렸다. 차오르는 거부감의 정체를 설명할 언어를 지니지 못했지만, 정말 재미없었다. 차라리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

 

 학기말이 되면 학예회가 열렸다. 나와 친구들은 ‘5공청문회를 패러디했다. ‘아무리 물어도 엉뚱한 대답만 나오는 청문회라는 주제로 단막극을 올렸다.노사분규현장에서 다친 사람들이 소송을 걸었지만 책임자들이 회피해서 결국 다친 사람들만 불쌍하게 된다는 서사를 바탕에 깔았다. TV에서 본대로 노동자 역할을 맡은 학생은 붉은 띠를 두르고 오른팔을 흔들면서 실감나게 연기했다. 아이들은 어른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자신들도 대강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 왜 어른들은 범죄자를 동정하고, 청문회에 나온 자들에게 치를 떠는가. 어른들은 뭔가 감추고 있으며, 세상은 그리 밝지 않다는 사실을, 당시의 아이들은 어른들의 예상보다 빨리 깨달았다. 올림픽과 인질극과 청문회라는 이질적인 기억들은 세상이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뒤섞인 곳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상가마다 들어선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 봤던 영화들은 1980년대 한국이라는 곳이 얼마나 촌스러운가를 알려준 은밀한 스승이었다.

 

 

 1988년 겨울, 대학가요제가 열렸다. 당시 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에서 입상한 가수들은 곧 인기 가수가 되곤 했다. 나는 형과 우승팀을 맞추는 내기를 하면서 대학가요제를 지켜봤다. 짐작대로 신해철이 이끄는 무한궤도가 우승을 차지했다. <그대에게>의 강렬한 인트로 음향과 우승팀이 발표되자 펄쩍 뛰면서 좋아하던 신해철과 멤버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참가번호가 마지막이라서 같은 곡이 연속해서 두 번 열창되었다. 덕분에 그들의 노래는 시청자들에게 더 빨리 흡수되었다. 더구나 그들이 서울대, 연세대, 서강대에 재학 중인 명문대 학생들이라는 사실은 큰 화제가 되었다. 그것은 연예인을 딴따라로 폄하하던 촌스러운 1980년대의 정서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실이기도 했다. 기타와 드럼을 치면서 노래하고 즐겨도 명문대 재학생이라면 뭔가 다르게 보는 그런 시대였으니까. 그것이 신해철과의 첫 만남이었다.

 

 

 

2. 1989-1991

 

 1989년에 접어들자 작은 취미가 생겼다. FM 라디오 청취였다.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이승철),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양수경), <향기로운 추억>(박학기),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조정현)과 같은 가요와 최신 팝송들이 적절한 사연과 함께 흘러나오는 FM방송은 순식간에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TV보다 매혹적이었다. 이문세가 진행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청취하면 자정이 가까워졌고, 주파수를 돌리며 음악을 듣다가 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내게 대중가요의 가사들은 대략 두 부류로 파악되었다. 그러니까 <얄미운 사람>(김지애)이나 <짝사랑>(주현미)처럼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직접적으로 토로하거나 사랑=빗물’, ‘사랑=유리와 같이 가벼운 은유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

 

 여름에는 1988년 대학가요제 우승팀인 무한궤도의 첫 앨범이 나왔다. 앨범에는 동그란 원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무한궤도 노래는 직설적인 가사와 가벼운 은유가 대부분이었던 다른 대중가요와는 달랐다. 타이틀곡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세상이 변해갈 때 같이 닮아가는 내 모습”, 그러니까 시간변화를 애틋하게 읊조리다가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는가라는 질문으로 마무리되는 곡이었다. 한편 첫사랑과의 재회를 노래한 <여름이야기>는 슬픔을 경쾌하게 말하는 기묘한 역설을 가르쳐줬고, <조금 더 가까이><거리에 서면>은 평범한 일상을 잠식한 감정이 노래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줬다. LP판 뒤에는 멤버들의 이력이 써 있었다. 신해철. 서강대 철학과 3학년 재학 중. 막연히 생각했다. 철학과를 다니면 이런 고상한(?) 가사를 쓰는구나. ‘철학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인지한 것은 바로 신해철 덕분이었다. 조갑경, 장혜리, 이지연, 이상은, 이상우, 박남정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친구들 중에서 무한궤도를 아는 애는 드물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형과 누나가 있는 아이들만 무한궤도의 존재를 더러 알고 있을 뿐이었다. 무한궤도나 동물원, 들국화 등의 그룹을 안다는 것은 음악을 잘 안다는 보증수표와도 같았다.

 

 무한궤도는 곧 해체되었고 1990년 여름 신해철의 1집 앨범이 나왔다. 그해 여름을 1집 앨범의 모든 곡을 외울 정도로 들으면서 보냈다. 무한궤도 시절과는 달리 단독 1집 앨범의 곡들은 보편적인 노래들이 많았다.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너무 어려워>, <고백>, <아직도 나를 원하나요> 같은 노래들은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었고 <인생이란 이름의 꿈>, <연극 속으로>는 무한궤도 시절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와 비슷하게 철학적인 노래였다. 13살이 느낀 철학이란 사랑=빗물이라는 비유보다는 인생=연극이라는 비유가 더 멋지다는 수준에 머물렀을 뿐이지만 말이다. 아직 서태지가 등장하기 전이었던 1990, <안녕>은 획기적인 노래였다. <안녕>은 자신을 떠난 여자를 아쉬워하는 내용이 아니라 여자에게 충고하는 가사를 담고 있었다. 떠나는 여자에게 충고하는 부분은 영어랩으로 처리되었다. 영어 가사 일색인 요즘에는 흔하지만 신해철이 시도한 영어랩은 당시에는 보기 드문 실험이었다. 신해철의 1집 앨범은 발라드와 랩, 강한 비트의 곡, 흐느적거리는 곡들이 적절히 배치되었고, 볼 것이 흔치 않았던 1990년대 초입에 많은 청소년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1년 뒤 19913월에는 신해철의 2집 앨범이 나왔다. 신해철 2집은 중학교에 진학해서 처음 구입한 앨범이었다. 2집에는 1집의 <안녕> 보다 훨씬 세련된 영어 랩이 시도된 <재즈카페>철학적인 고민이 담긴 가사가 돋보이는 <나에게 쓰는 편지>, <50년 후의 내 모습>, <길 위에서>가 수록되었고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의 계보를 잇는 발라드 <내 마음 깊은 곳의 너>가 첫 번째 히트곡이 되었다. 신해철 1, 2집과 함께 015B 1, 신승훈 1집과 윤상 1, 이승환 1, 2, 윤종신 1집 테이프는 필수품이었다. 마음에 드는 곡들로 자신만의 앨범을 만들어 소장하기도 했다. 잘 편집된 테이프는 학급 내에서 몇 바퀴를 돌았다.

 

3. 1991-1992

 

 중학교에 진학한 1991, 세상은 1988년보다 더 소란스러웠다. 신해철, 015B, 윤종신, 이승환의 앨범이 새롭게 발표되었고 어느 때보다 들을 것이 풍부했다. 여전히 세상은 소란스러웠고 누구도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서울대 앞 헌책방에 문제집을 사러갔다가 골목길에서 흰 운동화를 신고 헬멧을 쓴 사람들에게 얻어맞는 대학생들을 보았다. 곤봉으로 피가 튀도록 얻어맞을 정도의 잘못은 무엇일까. 더구나 맞는 이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어른들의 말을 누구보다 잘 들었을 서울대 학생들이었다. 신문은 연일 시위 현장 사진으로 도배가 되었고 서울 시내에서 대학생이 분신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죽을 정도로 절박한 것이란 과연 무엇인가. 선생님들과 어른들은 여전히 말을 아꼈다. 그리고 다시 덧붙이는 말. “(벌써) 그런 거 관심 갖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장관은 밀가루와 계란을 뒤집어썼고, 학생들의 분신은 계속됐다. 대학에 다니는 형이나 누나가 있는 친구들을 통해서 중학교에도 죽음과 시위에 관한 소문이 돌았다. 사회 선생님에게 물었으나 그냥 공부나 해라는 말이 반복되었다. 김지하의 사설과 강경대의 죽음에 대해서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단지 어른들의 공부지상주의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모른다는 말에 대한 반감이 늘어갔다. 1991년 겨울 소비에트 연합이 붕괴되었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어느 추운 나라의 얘기에 불과했다. 그보다는 SBS의 개국이 더 화제였다. SBS는 경험있는 PD가 부족한 탓에 영화와 쇼프로그램의 편성비중이 높았다. 금요일부터 영화를 틀어줬고 가수들이 나오는 오락방송이 많았다. 1992년이 되자 서태지를 필두로 많은 가수들이 등장했다. 김건모, 김원준, 김종서, 신성우, 하수빈, 이소라, 김현철, 강지훈 등 신인가수들의 음악을 제때 챙겨 듣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워크맨과 CD 플레이어를 갖고 다니면서 듣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나 역시 이어폰을 꽂고, 공테이프에 노래를 편집했다. 영어단어를 외우고, 기계적으로 수학문제를 풀면서 서서히 선생님들과 어른들에게 질문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질문할수록 문제아가 되거나 공부하라는 잔소리만 들어야 했으니까. 반면 내면에서는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의 가사처럼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질문은 지워지지않았다. 사춘기에 접어든 것이다. 왜 대학생(어른)이 되어야 하는가. 애써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왜 그토록 얻어맞고 잡혀가는가.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세상의 소란과는 상관없이 행복하게 살게 되는가. 그렇다면 행복은 과연 무엇인가.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았으므로 자의적으로 답을 찾았다. 노래가사를 세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얘기에는 이미 질려 있었으므로 상처받은 자들의 반항적이고 회의적인 언어들을 더 빨리 흡수했다.

 

 장정일의 시집과 소설을 읽기 시작했고 이상문학상 수상소설집을 펼쳤으며 세로쓰기로 표기된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을 읽기 시작했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와 조지 오웰의 <1984>,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199210, 마광수 교수는 야한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중학교 2학년이 보기에도 그것은 어른들의 이중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즐기는 <즐거운 사라>의 여주인공 사라가 끝내 반성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마광수 교수가 공소된 이유였다. 그해 여름 개봉한 <원초적 본능>이 극장가에서 롱런하는 중이었고 일본 배우 미야자와 리에의 누드사진집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는데, 대학교수가 쓴 야한 소설이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이 정말 이상했다. 영화와 누드사진집을 보는 어른들과 소설을 처벌하는 어른들은 다른 부류의 인간들인가. 어른들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졌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저런 이중적인 태도를 지니게 된다는 사실과 동일한 의미로 다가왔다.

 

 내면에 쌓이는 물음표와는 상관없이 강남의 중학교에서는 여전히 성적명문대가 주된 화두였고, ‘그것을 추구해야 되는지는 누구도 답해주지 않았다. 사춘기 시절의 회의와 신해철의 노래는 적절하게 맞물렸다. 어른이 되면서 느끼는 회의가 담긴 <나에게 쓰는 편지>의 가사는 희미한 복음과도 같았다.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 있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난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넌 아직도 너의 길을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이어지는 랩 부분을 들으면서, 어른들이 강조하는 성공행복이 얼마나 기만적인가를 먼저 발견한 선배의 말을 듣는 것 같았다.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 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스스로에게 보낸 편지 형식으로 적힌 이 노래는 많은 청소년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했다. 특히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다는 가사의 반향은 컸다. 사람들은 어차피 죽음이라는 평등한 목적지를 향해가고 있는데, 치열한 경쟁과 공부를 강요하는 어른들이 한심하지 않느냐고, 10살 많은 똑똑한 형이 대신 비꼬아주는 것 같았다.

 

 신해철은 그렇게 삐딱하게 세상과 어른들을 비아냥거리면서도 보편적인 순정을 담은 곡들도 꾸준히 불렀다. 그룹 넥스트(N.EX.T)를 결성하고 발표한 1집에 수록된 <인형의 기사><슬픈 표정하지 말아요><내 마음 깊은 곳의 너>의 계보를 잇는 순정파노래였다. 신해철의 노래에는 기존의 가치에 대한 부정과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 공존했다. 독설과 회의와 순정의 불안한 공존. 사춘기 청소년들은 열광했다. 한 사람을 향한 순정과, 기만적인 세계에 물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는 미묘한 역설. 그것이야말로 신해철과 넥스트의 굳건한 팬이 된 중요한 이유였다.

 

 

4. 1993-1997

 

 중학교 3학년인 1993년부터 갓 스무 살이 된 1997년까지의 기억은 붕괴의 이미지로 점철되어 있다. 드라마와 쇼는 흥미를 더해갔고, 경제는 호황이었다. TV에서는 새로운 모델의 자동차 광고가 끊이지 않았고 주식이 올랐고 땅값이 치솟았다. 하지만 경제 호황은 중학교 3학년에게 딴 세상의 일이었다. 잡히는 대로 문학책을 읽었으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니까. 비행기가 추락하고 서해에서 배가 가라앉았지만 어차피 이 세상은 혼돈의 도가니라는 체념을 내면화했기에 놀랍지 않았다. 좋아하는 가수들의 테이프를 착실하게 모았고, FM에서 나오는 팝송 가사를 해석하면서 시간을 죽였다. 그리고 당시 짝사랑하던 재수생 누나에게 교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해주는 것만이 삶의 유일한 낙이었다. 1993년은 유일하게 수능이 두 번 시행된 해였다. 여름의 1차 수능에서 일찌감치 좋은 성적을 받은 그녀는 다음 해 명문대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1994, 대학이라는 곳은 고등학생이 범접할 수 없는 꿈과 낭만의 공간처럼 여겨졌다. 짧게 깎은 머리와 교복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그녀가 대학에 진학한 이후 우리는 거의 마주치지 못했다. 시작도 못하고 응답을 요구할 어떤 말도 건네지 못한 채 그녀와 멀어졌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나는 습관적인 상실감에 젖었고 그럴수록 활자의 세계로 도피하거나 피아노를 치는 시간이 늘어갔다.

 

 1994년에 넥스트는 2집 앨범을 발표했다. <이중인격자>, <Dreamer>에는 여전히 삐딱하게 세상과 어른들을 조롱하는 가사가 담겨 있었다. 수록곡 중에서 특히 <날아라, 병아리>국민학교 시절 좌판에서 100~300원에 파는 병아리를 구입했다가 죽어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본 경험이 있는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병아리를 애도하는 이 곡은 1994년 가을에 이르자 사람을 추모하는 장송곡으로 바뀌었다. 집에서 가까운 한강다리 중 하나였던 성수대교가 붕괴되고 학생들이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한 학생들의 가방 안에도 워크맨과 테이프가 들어 있었으리라. 자율학습 시간에 라디오를 들으면서 모두들 웅성거렸다. 넥스트 앨범을 듣던 친구 하나가 씨발 이 노래, 오늘 따라 더럽게 슬프다고 중얼거렸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국민학교 시절 잠시 키우다가 죽은 병아리와 붕괴된 다리가 동시에 떠오르곤 한다.

 

눈물이 마를 무렵 희미하게 알 수 있었지

나 역시 세상에 머무르는 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할 말을 알 순 없었지만

어린 나에게 죽음을 가르쳐주었네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너의 조그만 무덤가엔

올해도 꽃은 피는지

굿바이 얄리, 이젠 아픔 없는 곳에서

하늘을 날고 있을까

굿바이 얄리, 언젠가 다음 세상에도

내 친구로 태어나줘.

 

 사람을 납치해서 죽이고 인육을 먹는 행위로 충격을 준 지존파사건과 함께 성수대교의 붕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딘가 망가졌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부실공사로 붕괴된 성수대교는 시작에 불과했다. 겨울에는 아현동에서 도시가스가 폭발했다. 그리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956, 삼풍백화점이 붕괴됐다. 그때 나는 독서실에 앉아 수학문제를 풀면서 신해철이 프로듀싱을 맡아 화제가 되었던 (역시 대학가요제 출신인) ‘전람회의 테이프를 듣고 있었다. 기말고사가 며칠 남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휴게실의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진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구나. 탄식이 절로 흘렀다.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쇼핑을 하다가 매몰된 풍경은 오랫동안 악몽으로 남았고 그 시기를 통과하던 청소년들의 뇌리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주입된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구호가 자연스럽게 휘발되었다.

 

 고3을 목전에 둔 겨울방학에는 서지원과 김광석이 자살했고 돌연 서태지가 은퇴했다. 알 수 없는 허탈감이 엄습했으나 세상은 그대로였다. 3이 되자 자정까지 자율적이지 않은 자율학습이 이어졌다. 어떤 식으로든 견뎌 닭장 같은 고등학교를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지속되었다. 물론 고3시절에도 끊임없이 세상은 시끄러웠다. 여름 방학 무렵 8.15 통일 축전이 열린 연세대학교에서 수천 명의 학생들이 연행되고 학교 건물이 부서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연세대 출신인 담임 선생님은 자율학습 감독 중 신문을 읽으며 혀를 찼다. 대학에 가서 시위하고 난리쳐봤자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공부만 열심히 해라. 이제 3개월만 버티면 자율학습에서 해방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만히 있으라는 강요는 지겹도록 반복된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능문제를 풀었다. 신문을 보면서 19915월을 떠올렸다. 그때도 신촌 대학가는 최루탄 가스 범벅이었다. 5년이 지났지만, 중학생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세상은 위험했고, 학생은 무력한 존재였다.

 

5. 1997~

 

 그리고 스무 살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은 각기 다른 대학과 재수학원으로, 더러는 외국으로 흩어졌다. 졸업 선물로 넥스트의 싱글앨범을 받았다. 졸업과 동시에 미국으로 유학을 갈 예정인 친구가 건네 준 그 앨범에는 <Here, I stand for you><Arirang>, 2곡이 실려 있었다. 그 앨범이 내가 소장한 신해철의 마지막 앨범이다. 스무 살 이후에도 이어폰을 꽂고 신해철의 노래를 들을 때가 많았지만 그의 풍자나 비판에 더 이상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았다. 1997년에 스무 살을 맞이한 청춘들은 ,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를 당연히 얻을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노력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치기로 가득했으므로 역설적으로 아무 것도 되고 싶지 않았다. 술과 담배를 배웠고, 당구를 치기 시작했다. 세상은 혼란스럽고 왜 사는지는 몰랐지만 우리는 젊다는 사실을 유일한 긍지로 삼았다.

 

 패기로 무장한 스무 살은 금방 지나갔다. 아니, 세상에 의해 진압을 당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그 해 12IMF 구제금융 위기가 터졌고, 1997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들은 20대 초반의 청춘을 즐기기도 전에 뿔뿔이 흩어졌다. 대학의 낭만은 사라졌고 군대로 도피하는 친구들과 선배들이 늘어갔다. 신자유주의, 신지식인, 비정규직(노동유연화), 정리해고와 같은 낯선 단어들이 넘쳐났고 선배들은 졸업을 유예했다. 우리는, 지금 대학에서는 아주 익숙한 풍경을 목격한 첫 세대였다. 부모님이 기업에 다니거나 사업을 벌이지 않은 덕분에 삶의 벼랑에 몰리는 불운은 면했지만 그 시절 일주일 간격으로 도피성 입대를 앞둔 선배와 친구들을 환송하는 자리를 지키면서 알지 못할 분노를 느꼈다.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었다. 어른들의 바람대로 열심히 공부했고 일탈하지 않았다.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았다. 청춘을 2년씩이나 차압하는 군대에도 끌려갈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계속 암담하기만 할까. 허술하게 다리와 백화점을 만든 것도, 경제를 잘못 굴린 것도, 모두 기성세대일진대 피해는 발언권이 없는 학생들과 경제적 약자들이 먼저 감당해야 된다니. 어딘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열심히 살라는 충고가 공허하게 들렸다.

 

 우리 세대는 20대 내내 각종 아르바이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학은 빠르게 취업학원으로 변해갔고 실용이 모든 가치의 척도로 변하는 과정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우리는 20대를 보내야 했다. IMF로 가세가 기울어 2학년부터 군장학생을 신청한 친구는 졸업과 동시에 무려 6년이 넘게 강원도의 오지에서 장교로 복무했다. 서른이 넘어서 만난 친구는 피식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제대했더니 나의 20대가 끝나 있더라.” 그렇게 대학시절을 버티고 대부분의 친구들은 기업에 들어가거나 사업을 시작했다. 어느 세대나 피할 수 없는 상처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집단적인 기억을 공유하면서 뭉칠 기회조차 박탈당한 세대였다. 그 사실을 곱씹으며 서른 살을 맞이했다.

 

 20대에는 중고등학교 시절처럼 신해철의 음악을 빠짐없이 듣고 외우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신해철이 진행하는 MBC 라디오 <고스트스테이션>을 가끔 들을 때마다 저 형, 여전하네?” 라고 중얼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100분토론><무릎팍도사>에 출연해 개인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것을 보면서 격하게 공감하기도 했다. 살이 붙고 배가 나오고 이마가 더 넓어진 신해철을 보면서 시간의 흐름을 감지했다. 그를 좋아하던 10대 소년도 30대가 되었으니까.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을 청취할 때마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를 깨달았다. 방송이 끝나면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 수고했어.”

 

6. 2014.10.27~

 

 신해철은 486세대이면서도 꽉 막힌 기성세대의 태도를 답습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486세대는 민주화와 탈권위주의를 외쳤던 청춘 시절을 훈장 삼아 기득권을 쟁취하고, 40-50대가 되자 권위적인 꼰대로 변해갔다. 그들은 강한 자에게 아부했고 청년들에게는 강압적인 충고를 일삼았다. 그러나 신해철에게서는 그런 이중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고재열 기자의 지적처럼 신해철은 구세대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맨 앞에 섰던 가수였으며 “486세대가 불합리한 과거와의 단절을 위해 싸울 때 그의 눈은 미래를 향해있었고, “그의 관심은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세상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쉽게 세상에 투항하거나 타락하지 않는다. 얼핏 급진적으로 들리는 경우도 많았지만 신해철의 노래와 방송에서 그가 뱉은 말들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건전했다. (그랬기에 꼰대들이 더욱 싫어했을지도 모른다) 가끔씩 라디오와 TV에서 신해철의 솔직한 발언들이 화제가 될 때마다 나의 청소년기를 장악한 그의 노래들이 하나씩 스쳐갔다. ‘그래, 형 말이 맞아. 형의 태도를 문제 삼는 인간들이 더 구려. 룸살롱을 드나들고 야한 영화를 보고 침을 흘리면서도, 문학의 도덕성과 건전한 사회를 떠벌리던 위선적인 어른들을, 나는 아직 기억하거든.’

 

 그렇게 우리는 함께 세월을 견뎌낼 거라고 믿었다. 60-70년대 학번들이 양희은, 김민기, 정태춘, 윤형주를 보고 미소를 짓듯이 나도 반백이 된 신해철이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1990년대 나의 우상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20141027일 그는 어이없게도 의료사고로 사망했다. 의료사고를 둘러싼 갑론을박을 보면서도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추모하는 글이 모니터를 가득 채웠지만 신해철의 죽음을 인정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서랍을 열고 먼지가 쌓인 그의 테이프와 CD를 꺼냈다. 개인적인 일면식조차 없었지만 아주 오랜 친구나 선배가 떠난 것만 같았다. 낡은 테이프는 여전히 잘 돌아갔다. 날마다 그의 목소리를 들었던 시절이 스쳐갔다. <안녕>의 영어 랩이 자연스럽게 입에 붙었다. 내 입술은 여전히 그의 노래에 익숙했다. 가사들이 마치 유언처럼 읽혔다. “눈물이 마를 무렵 희미하게 알 수 있었지/ 나 역시 세상에 머무르는 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날아라 병아리)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이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회 없노라고. 그대여”(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모든 세계는 갑자기 붕괴되는 경향이 있다. 다리와 백화점이 무너졌고 가스관이 폭발했다. 청춘을 만끽해야 할 나이에 어떤 대학생들은 스스로 자기 몸에 불을 붙였다. ·고등학교 시절과 대학시절, 졸업은 느닷없이 다가왔다. 맹세를 거듭했던 사랑도 한순간의 오해로 은폐된 균열이 드러나곤 했다. 요컨대 변하지 않는 것과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인간은 변치 않음을 동경하며 상실을 아파한다. 어쩌면 그것은 불안을 덜고 싶은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인간은 자기만의 우상을 만든다. 사춘기 시절 내게 신해철은 어른들이 망친 세상을 비웃는 반항의 아이콘으로, 20대에는 세상과 치열하게 맞선 든든한 선배로 다가왔다.

  

사람들은 그를 통해서 변치 않는 것의 가치를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변해가도 마왕은 마왕이기를. 마왕은 늙거나 죽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신해철도 두 아이의 평범한 아버지였으며 자신의 한계와 미래를 두려워했던 인간이었다. 다만 그는 불합리에 맞서 자유행복의 의미를 물으면서 멈추지 않고 노래했을 뿐이다. 요즘도 신해철의 음악을 들을 때면 우리가 더 젊었던 어느 시기를 떠올린다. 쉽게 붕괴되는 세계를 두려워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시기를. 신해철의 노래는 1990년대와 내 성장기의 배경음악이었다. 누군가의 의지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이 우연을 기꺼이 사랑한다. 고마워, 해철이 형. 당신의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아직 단 한번의 후회도 느껴본 적은 없어.”

 

부기) 이 글을 쓰는 기간에 견고하리라고 믿었던 또 하나의 세계가 붕괴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 익숙한 반복이라고 눙칠 나이가 되었건만 슬픔은 늘 낯설고 버겁다. 나는 지금 혜화동의 술집 <도어즈>에서 넥스트의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를 듣고 있다. 그는 세월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나를 위로해주지만 내가 그에게 줄 것은 이 글이 전부다. 큰 빚을 진 기분이다. 다음 곡도 해철이 형의 노래를 신청할 것이다. 떠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도, 그가 대신 써준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그 노래의 가사를 여기에 적는다.

 

난 바보처럼 요즘 세상에도

운명이라는 말을 믿어

그저 지쳐서 필요로 만나고

생활을 위해 살기는 싫어

하지만 익숙해진 이 고독과 똑같은 일상도

한 해 또 한 해 지날수록 더욱 힘들어

등불을 들고 여기 서 있을게

먼 곳에서라도 나를 찾아와

인파 속에 날 지나칠 때

단 한 번만 내 눈을 바라봐

난 너를 알아볼 수 있어 단 한 순간에

Cause here I stand for you

난 나를 지켜가겠어

언젠간 만날 너를 위해

세상과 싸워나가며 너의 자릴 마련하겠어

하지만 기다림에 늙고 지쳐 쓰러지지 않게

어서 나타나줘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 이 낱말들을 난 아직 믿습니다.

- <Here, I stand for you> (1997.2)

 

신해철 1집 -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대영에이브이 | 2001년 01월

 

신해철 2집 - 서곡


대영에이브이 | 1995년 07월

 

넥스트 (N.EX.T) 1집 - Home


대영에이브이 | 2001년 02월

 

넥스트 (N.EX.T) - The Return Of N.EX.T Part1


대영에이브이 | 1994년 05월

 

넥스트 (N.EX.T) - The Return Of NEXT Part 2


대영에이브이 | 1995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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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몸의 일기 | 기묘한 울림 2015-08-0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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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유물론적인 기록. 욕망, 사랑, 영혼을 담은 육신이 천천히 소멸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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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모리 | 기묘한 울림 2014-12-22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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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암스테르담

이언 매큐언 저/박경희 역
미디어2.0(media2.0) | 200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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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홍상수 감독의 영화 《우리 선희》(2013)는 한 여자를 둘러싼 세 남자의 엇갈린 욕망이 그 여자에 대한 ‘평가’로 변질되는 과정을 응시한다. 선희(정유미)의 동기이자 영화감독으로 갓 데뷔한 문수(이선균), 선배인 영화감독 재학(정재영), 대학 영화과의 최교수(김상중)는 모두 머뭇거리면서도 집요하게 선희의 주변을 맴돈다. 마침내 세 사람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품었던 욕망을 외면하면서 각자 선희를 ‘평가’한다. 선희는 말야…… 착하고, 지적이고, 고집이 세고, 사회성에 문제가 있지만 오히려 그것이 매력적이고, 가끔 도발적이고……. 남자들은 텅 빈 웃음을 지으면서 함께 걷는다. 홍상수는 욕망에 휘둘리는 수컷들의 언어와 행동을 카메라에 담지만, 결코 끝까지 가지 않는다. 다만 지식인들의 기만적인 언행들이 충돌하면서 생기는 우스운 풍경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나열할 따름이다. 씁쓸한 웃음이 가득한 홍상수의 영화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의 영화에서 웃음을 제거하고 수컷들의 사소하면서도 절실한 욕망을 집요하게 추적한다면, 과연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이내 한 소설이 떠올랐다. 1998년 부커상을 수상한 이언 매큐언의 소설 『암스테르담』(박경희 옮김, media 2.0, 2007)이다.

 


 2.


 한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몰리 레인. 아름답고 지적인 그녀는 평생 다양한 남자들과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겼다. 많은 남자들이 그녀의 곁을 맴돌며 구애를 했지만 그녀는 한 남자에게 안주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결혼을 한 뒤에도 여러 남자들과 연애를 했다. 남편마저도 그녀를 차지하지 못해 안달해야 했다. 몰리는 알츠하이머에 걸리기 직전까지 현직 외무장관 가머니의 정부이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알츠하이머에 걸린 몰리는 몇 년에 걸쳐서 기억을 상실하다가 초라하게 죽는다. 『암스테르담』의 도입부는 바로 그녀, 몰리 레인의 장례식으로 시작된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다양한 남자들이 모인다. 특히 몰리가 대학 신입생 시절에 사귀었던 작곡가 클레이브, 대학 졸업 후 몰리가 잡지사 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사귀었던 신문사 편집장 버넌은 몰리와 헤어진 이후에도 줄곧 그녀의 친구로 지냈던 막역한 사이였다. 클레이브와 버넌을 보면서 오랜 세월 동안 질투심에 휩싸였던 몰리의 남편 조지는 장례식장에서도 클레이브와 버넌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조지는 다른 남자들과 스스럼없이 만나는 아내 몰리를, 그녀가 병에 걸린 다음에야 비로소 홀로 소유하게 되었다. ‘몰리의 남자들’이 모여들면서 장례식에는 이상한 긴장감이 형성된다.

 

   “정신만 온전했다면 그렇게 가느니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사람이지…….” 버넌 핼리데이가 말했다. 그는 1974년 파리에서 1년간 몰리와 살았다. 버넌은 첫 직장인 로이터통신에 다녔고 몰리는 ‘보그’지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던 무렵이었다. 
   “뇌사로도 모자라 조지의 감옥에 갇혀버리다니.” 클라이브가 말했다. 우중충했으나 돈은 많았던 출판업자 조지는 몰리의 절대적인 신봉자였다. 몰리는 늘 조지를 홀대하면서도 희한하게 그의 곁을 떠나지는 않았다. 클라이브와 버넌은 조지가 서있는 입구를 흘낏 쳐다보았다. 조지는 문밖에서 조문객들에게 애도 인사를 받고 있었다. 몰리의 죽음은 그를 평소의 모멸감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 (14~15쪽)



   남자들은 서로 모욕을 주고받으면서 생전의 몰리와 자신이 제일 가까웠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자 한다. 클레이브는 외무장관 가머니의 보수적인 정책을 비꼬고, 가머니는 클레이브에게 귓속말로 모욕(“마지막으로 만난 날, 몰리가 그러더군. 네가 발기불능이라고. 전부터 늘 그랬다며.”)적인 말을 내뱉는다. 조지는 죽은 다음에야 온전히 자신의 차지가 된 몰리에 대한 독점욕을 과시하면서 연적(?)들에게 보복하려고 혈안이 된다. 버넌은 자신이 혐오하는 보수주의자이며 몰리와의 소중한 추억을 훼손한 가다머를 몰락시킬 계획을 짠다. 몰리의 화려했던 연애는 그녀가 죽자마자 음탕한 풍문과 인정투쟁, 보복으로 변질된다. 몰리의 남자들은 서로를 옭아매면서 파멸을 향해 나아간다.



3.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 뒤 신문사 버넌은 몰리의 남편 조지로부터 엄청난 자료를 얻는다. 외무장관 가머니가 여성의 옷을 입고 찍은 적나라한 사진을 손에 넣은 것이다. 버넌은 가머니를 외무장관직에서 끌어내릴 절호의 기회로 여기면서 클레이브에게 달려간다. 클레이브는 밀레니엄을 기념할 교향곡을 작곡에 몰두하는 중이었다. 그에게 밀레니엄 교향곡은 영원히 기억되는 음악가가 될 수 있는 일생일대의 승부수이기도 하다. 물론 이 작업에는 엄청난 집중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몰리의 죽음과 버넌의 요구로 인하여 클레이브는 평정심이 잃어버린다. 가머니의 충격적인 사진을 신문에 실어서 보수적이고 도덕적인 이미지를 지닌 가머니를 정계에서 끌어내리자는 버넌에게, 클레이브는 이렇게 외친다.


   “우리는 가머니를 좋아할 수 없지만 몰리는 그를 좋아했어. 가머니는 몰리를 믿었고 몰리는 그의 믿음을 높이 산 거야. 이 문제는 그들 사이의 개인적인 문제라고. 이 사진은 몰리의 것이고 나와도 자네나 자네의 독자들하고도 아무 상관이 없어. 몰리는 자네의 이런 행동을 경멸했을 거야. 솔직히, 자넨 몰리를 배신하고 있어.”(94쪽)
 
  클레이브는 몰리가 남긴 사진을 비열하게 이용하려는 버넌을 몰아세우면서 짐짓 도덕적인 자세를 취하지만, 클레이브 역시 속물에 불과하다. 며칠 후 음악적 영감을 얻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 시골에서, 클레이브는 도움을 요청하는 어느 여자의 비명을 외면한다. 만약 여자를 돕는다면, 그녀와 다투고 있는 남자와 싸우게 될지도 모르고,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거나 증언하는 등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당시 클레이브의 머리에는 한창 교향곡의 악상이 떠오르고 있었다. 클레이브는 여자의 비명을 외면하면서 악보를 적어 나간다. 정작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만족할 정도로 작업을 마친 클레이브는 버넌과 화해하려고 전화를 하는 와중에 자신이 목격한 여자에 관한 얘기를 꺼낸다. 버넌은 신문의 사회면에서 여자가 악명 높은 강간범에게 살해당했다는 기사를 보고, 클레이브가 목격자임을 직감한다. 버넌은 범죄를 목격했지만 외면했다는 사실을 경찰에게 자백하라고 클레이브를 협박하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클레이브는 자신의 통쾌한 복수를 유일하게 반대하지 않았는가! 그들의 도덕과 우정은 허망하게 무너진다. 
 


   가머니의 여장사진을 게재한 버넌의 신문은 엄청난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버넌은 편집장 연임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가머니의 부인 닥터 로즈의 현명한 대처로 상황은 하루 만에 역전된다. 닥터 로즈는 불치병에 시달리는 환자를 돌보는 자신의 다큐멘터리를 내보내고 남편의 실수를 용서하는 발언을 하는 등 시청자들의 감성을 사로잡는다. 외무장관의 변태적인 면모를 규탄하던 여론은 순식간에 흑색선전을 내보낸 신문사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고 책임자인 버넌은 하루 만에 해고당하고 만다. 클레이브는 경찰서를 드나드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교향곡을 겨우 완성한다.

 

   클레이브와 버넌은 교향곡의 리허설이 열리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재회한다. 암스테르담에서 두 사람은 모두 극도의 절망감에 휩싸인다. 클레이브의 교향곡은 완전히 실패작임이 드러났고 흑색선전의 대명사가 된 버넌은 이제 재기조차 꿈꿀 수 없는 상태다. 두 사람은 술을 마시면서 그들은 사랑했던 몰리의 환상과 마주하지만, 몰리는 팔꿈치의 짧은 통증과 함께 사라진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안락사가 전면 허용된 국가인 네덜란드에서, 그들은 효율적으로 안락사 처리된다. 클라이브와 버넌이 가장 자유로운 도시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예속되고 고통스러운 상태로 죽는다.(그들은 서로의 술잔에 독약을 탔으며, 네덜란드 의사들은 그들의 고통을 간단하게 덜어준다) 가머니도 이미지의 추락으로 인하여 정치생명이 끝장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몰리의 남편 조지의 치밀한 ‘반격’이었음이 드러난다.


  이른 봄의 첫 잔디 깎는 기계 소리를 귓결로 들으며 조지의 생각은 엉뚱하게 기분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가머니는 넘어졌고 거짓말쟁이 부인이 기자회견에서 그의 외도를 부인함으로써 마누라 손아귀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버넌은 갔다. 클라이브도. 몰리의 옛 애인들과의 전쟁을 통틀어 보면 성과가 그리 나쁘지 않다. 지금이야말로 몰리의 추도식을 고려해볼 만한 적기인지 모른다. (204쪽)



4.


 이언 매큐언은 욕망의 엇갈림과 충돌을 (홍상수처럼) 분절시키지 않고 끝까지 간다. 이 짧고 강렬한 소설에 대해서 세세하게 언급한 것은 짙은 기시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암스테르담』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모티프를 차용한 장면이 많다.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있는 것을 상상하며 분노를 축적하는 남자의 모습은 ‘오셀로’와 닮았고, 사진을 폭로하다가 파멸을 맞이하는 버넌의 모습은 마녀의 유혹에 넘어간 ‘맥베스’와 흡사하다. 독약을 주고받는 장면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패러디다. 또한 버넌과 클라이브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몰리의 환영은 ‘햄릿’의 서두에 등장하는 유령을 연상케 한다. 그렇지만 굳이 셰익스피어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암스테르담』의 인물들은 인간의 이면을 섬뜩하게 드러낸다. 타인의 죽음을 자신의 허영을 충족하는 기회로 이용하는 버넌과 조지, 가머니의 모습과 도덕적인 태도로 버넌을 공격하면서도, 정작 바로 앞의 위기에 처한 사람은 외면하는 클레이브의 모습은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셰익스피어가 ‘전형적인 인간’을 주로 다룬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우리는 『암스테르담』을 읽고 나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우리는 수많은 ‘클레이브’와 ‘버넌’, ‘가머니’와 ‘조지’가 아우성치는 세계에서 살아간다고 말이다. 특히 한국의 정치인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대개 『암스테르담』의 네 인물 중 한 명의 속성을 뚜렷하게 지니고 있다.(물론 네 인물들의 면모를 두루 갖춘 자들도 더러 있다) 상대의 약점이 담긴 ‘자료’을 건넬 시기를 계산하는 자(조지)와 그것을 신나게 폭로하다가 몰락하는 자(버넌), 변태적이고 기만적이지만 가족과 재력을 믿고 버티는 자(가머니), 갈등을 조정하는 포즈를 취하면서 양비론식 ‘물타기’로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자(클레이브). 최근 ‘찌라시 문서’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전을 보면 누가 어떤 인물에 대입되는지 가늠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몰리’는? 네 남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소유하고자 했던 그녀, ‘몰리’는 ‘기억’을 의미한다. 이 소설은 몰리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몰리의 환영과 만난 두 사람의 죽음으로 끝난다. 소설 속의 남자들이 서로 파멸을 기획하는 곳은 (망각과 회상의 장소인) 장례식장이다. 여기서 몰리가 앓던 병이 ‘기억’이 파괴되는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자명한 사실을 망각하면서부터 타락하는 존재이지 않았던가. 클레이브와 버넌은 죽음의 문턱에서야 그 진실을 깨닫는다. 그러니까 맥베스와 햄릿과 오셀로처럼. 셰익스피어와 『암스테르담』을 관통하면서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전달되는 한 마디는 바로 이것이다. “메멘토모리.”(“죽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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