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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이 되라 | 나의 리뷰 2010-11-1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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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상상력

급변하는 경제 환경속에 창조적 사고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재편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역발상이 돋보이는 아이템들은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흔히들 이러한 창의적 아이디어는 스티브 잡스나 빌게이츠 등 극히 일부의 천재적 경영자들의 선천적 능력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창의성은 생각의 습관과 내재되어 있는 능력의 발견에 있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서 모두가 자신의 창의성을 캐어내기만 하면 창조적 오리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애절함’이 있어야 한다. 애절함은 깊은 관심과 사랑의 마음에서 파생된다. 목숨 다해 사랑하는 가운데 창조적 상상력이 발생된다. 모든 사물이 사람이 되어 감정을 느낀다. 사랑하면 누구나 시인이 되듯 상상력의 날개를 펼쳐 기존의 사실중심의 사고를 뛰어넘게 되는 것이다. 애절한 사랑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치들과의 연계 및 융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 때 다양한 관심과 맥락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 요소이다. 사랑의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는 그 대상의 아픔과 기쁨에 동참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이러한 예술적 감수성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공부가 인문학공부이다. 인문학 서적을 탐독하며 세상에 대한 풍성하고 깊이 있는 관찰력을 신장시켜 다양한 가치를 버무릴 수 있는 융합의 가능성을 가지게 한다.

 

 

지금 여기서 시작하라

누구나 가치 있는 인생을 살고자 한다. 자신의 업무에 담겨 있는 의미와 그 업무가 가지고 있는 인문학적 상상의 날개를 달게 되면 새로운 열정으로 삶의 모습이 바뀔 수 있다. 업무에 수반되는 반복되는 절차는 스스로의 상상력과 가능성을 잠식하는 주요요인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스스로 자극을 주는 사고의 습관이 필요하다. 업무를 새로운 관점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이를 위해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다양한 책들을 읽어 본다. 의미와 목적 그리고 창조성은 원래부터 있는 것이며 얼마나 발견하느냐의 문제이다. 이제 이 시간부터 새로운 도전을 시도해보자. 나의 업무를 전체 기업의 관점에서 평가해보고 늘 반복되는 일의 절차를 다른 방법과 절차로 해보는 것이다. 관련분야의 책 이외에도 음악, 영화 그리고 문학책들을 읽어보는 것이다. 창의적 사고는 오래된 생각의 관습에서 탈피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기존에 익숙한 틀을 벗어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일 수도 있으나 새롭고 풍성한 인생을 향한 즐겁고 신나는 모험이 아닌가. 그 신명나는 마음에서 바로 이 시대의 또 다른 오리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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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이정우 교수 인터뷰 | 독서칼럼 2010-05-1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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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 살기 어려운데 말까지 자극하니 민심 떠났다”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이정우 교수 인터뷰
“부동산 정책 의지는 있었지만 일관성 잃으면서 흔들”


글 정석구 선임기자 twin86@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출처 : <한겨레> 2008 01 16


그는 ‘패장’이다. 참여정부의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아 주요 경제정책을 총괄했지만 지난 대선에서 참여정부는 국민들로부터 가혹한 심판을 받았다.

대선 열풍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 연말, 서울 명동 은행회관의 뱅커스클럽에서 이정우 전 정책실장(경북대 교수)을 만나 참여정부 5년의 성과와 실패에 대한 솔직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의 어깨 너머로 그가 2년반 동안 땀과 열정을 바쳐 일했던 청와대가 한 눈에 들어왔다.




참여정부 연평균 4~5% 성장…전반적 경제실정 아니다
비정규직 해법 못찾아…전문가도 대안 제시없이 비판만


☞ 인위적 경기부양 안하고 이 정도면 잘해

이른바 ‘민주개혁세력’의 대선 참패 원인부터 얘기가 시작됐다. 경제 실정 때문에 국민들이 참여정부에 등을 돌린 게 아니냐는 의례적인 질문부터 던졌다. 그는 민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점을 솔직히 인정했다.

“민생 문제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일하는 사람들을 대략 3등분 하면 정규직 3분의 1, 비정규직 3분의 1, 자영업자 3분의 1이다. 이 가운데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등 3분의 2가 어렵다. 이들이 불만이고, 경제 파탄이라고 한다.

그러나 묘수가 별로 없었다. 인위적 경기부양이라는 마약요법을 쓰는 것이 제일 먼저 눈에 보이고 유혹받기 쉬운데, 참여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경제 전반이 실패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전반적인 경제 실정은 아니다. 참여정부에서 연 평균 4~5% 성장했다. 이를 실정이다, 파탄이다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다분히 과장돼 있고, 주류언론이 그렇게 도배를 했다. 거기에다 진보진영마저 가세해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거품이 꺼지고 있는 시기에 정권을 맡아서 인위적 경기부양 안 하고 이 정도 했으면 잘 한 거다. 서민들이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이제 자생적으로 경기가 회복 단계에 접어들었다. 시기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불운했고, 이명박 당선자는 행운아다.”

그는 그 책임을 과거 정부와 경제관료들에게 돌렸다.

“경제를 망쳤다고 하는데 경제를 망친 사람들은 과거 정부다. 그리고, 대통령을 유혹해서 거품경제로 길을 잘못 접어들게 한 일부 경제전문관료들의 책임이 크다. 그들은 재임 당시에는 잘한다고 칭송받고 물러났지만 그 결과 엄청난 거품만 키워놓았다. 참여정부에게 잘못이 있다면 경제관료들을 프로라고 보고 그 사람들에게 경제를 맡긴 잘못이 크다. 그게 지금의 파탄이라면 파탄을 가져온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민주개혁세력의 무능, 실패가 아니다.”

역시 국민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는 듯하다. 그가 말한 객관적인 경제지표 등은 사실이지만, 마음에 그리 와 닿지는 않는다. 국민들은 이런 거시지표나 변명을 듣고 싶어하는 게 아니고, 피부로 느끼는 삶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왜 이런 민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까.

☞ 이해 구하고 호소하며 해야 했는데…

“민생의 문제를 제대로 풀려면 먼저 자영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 장기계획을 가지고 구조 전환을 해야 한다. 역대 정부가 자기 책임을 방기하고 인기 위주로 그냥 덮어왔기 때문에 고질병이 됐다. 하루아침에 해결하려면 안된다. 10년 20년 걸린다. 옳은 방향을 잡고,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10개년 계획 잡고 가겠으니 참고 따라와 달라고 해야 했다. 그런 정부가 지금껏 없었고 참여정부도 그렇게 못했다. 근본적으로 접근해 풀어나가야지 역대 정부처럼 인기 영합적으로, 부동산 경기 이런 데 불을 질러서 해결하고 가서는 안 된다.

그걸 국민에게 알리고 이해를 구하고 그동안의 고통을 감수하자고 호소하면서 해야 한다. 그렇게 했으면 이렇게까지 민심이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걸 제대로 안 하고 오히려 자극적 발언이 계속 나왔다. 서민들이 살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고 말까지 자극을 하니 결정적으로 민심이 떠났다.”

☞ 비정규직 해법 제시하는 사람 못봤다

비정규직 문제도 참여정부에서 오히려 악화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한 잘못도 인정했다.

“청와대에 있는 동안 제일 답답했던 게 비정규직 문제였다. 여러 번 회의도 하고 전문가도 만나고 했는데 딱 답을 제시하는 사람을 잘 못봤다. 전부 진단하고, 비판은 하면서 대안 제시는 잘 못한다. 우리나라 지식인의 수준이 그런 단계다.

내가 답을 발견했으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했을 것이다. 답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노동부가 주도해 법을 만들고 있는데 내가 아니라고 하면서 이리 가자, 저리 가자 얘기하는 게 어려웠다. 답만 알았으면 나설 수 있었는데... 최고 전문가들한테 물었는데도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청와대를 나오면서도 답을 몰랐고, 지금도 답을 모르고 있다. 내 자신부터 뭔가 공부를 더 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지금과 같은 경제체제에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참여정부의 무능 때문에 안됐는지는 새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는지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새 정부는 성장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가능할까.

“간단치 않다. 절대로 안 된다. 비정규직 양극화는 성장으로 해결이 안 된다. 성장으로 해결 될 것 같으면 애당초 그런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부분에 있어서 앞으로 이 정부도 전혀 답이 없고, 문제의식조차 없기 때문에 굉장히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 이정우 교수

☞ 대통령의 다변은 문제였다

민심이 참여정부에 등을 돌린 것은 민생 문제와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잦은 말 실수 때문이다. 생활고로 축 처져 있는 국민들의 어깨를 다독거려주기는 커녕 오히려 가슴에 불을 질렀다.

“대통령의 다변은 문제였다. 나도 그렇게 본다. 노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게 2002년 8월이었다. 당시 대통령 후보로 지지율이 10%대로 바닥일 때였다. 그 때 대통령한테 초면에 실례되는 조언을 했다. 말 좀 조심해서 하시라고 조언했다. 처음 만난 대통령 후보한테 그런 말을 한 것은 굉장히 실례되는 말이었다. 그게 대통령에 대한 첫 조언이었는데 그 뒤로도 대통령은 말 실수를 많이 했다. 그 점이 참 많이 안타까웠다.”

그러면서도 그는 노 대통령을 적극 옹호했다.

“대통령 말을 직접 듣고 있으면 이해가 되고 옳은 말이 많다. 과거에는 대통령의 말이 조율이 돼서 나갔는데 지금은 그대로 나간다. 특히 주류언론들이 전체 맥락은 무시하고 말 실수 한 것만 부각시키다보니 부작용이 증폭됐다.

결국 말 때문에 이렇게까지 점수를 잃게 됐다. 그러나 미래는 낙관한다. 이런 것은 나중에 다 잊혀지고 용서될 것이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일을 얼마나 했느냐 정책을 어떻게 했느냐 그게 남는다. 말은 잊혀진다.”

하지만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 때문에 실제 이상으로 참여정부가 욕을 먹고 있는 측면도 있다. 그는 소통 장애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 현장 갔어야 했는데 쇼하는 것 싫어해

“소통의 문제가 분명히 있었다. 소통은 언론을 통해 하게 되는데, 주류언론과 대척점에 서면서 소통 통로가 왜곡됐다.

주류언론과의 불화까지는 잘 했다고 본다. 주류언론과의 유착관계 청산은 용기를 갖고 잘한 것이다. 다만 소통 장애가 온다는 걸 각오하고 그 대신 두 가지를 했어야 했다. 하나는 말조심, 다른 하나는 직접 소통을 위해 국민 속으로 많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두 가지를 제대로 못했다. 말조심 했어야 하고, 국민 속으로 직접 들어가 국민들과 만나고 현장에 갔어야 했는데 대통령이 그것을 내키지 않아 했다. 대통령은 쇼하는 것 싫어하는 성격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와서 악수하고 어루만져주길 원한다. 좀더 많은 시간을 국민들한테 가서 위로하고 어루만져 주었어야 했는데 그걸 못했다. 소통 장애를 가져온 큰 이유다.”

그는 이것이 대통령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정책을 제대로 해서 국민들을 잘 살도록 해야지 말로 때우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일부에서는 이것을 보고 노 대통령이 오만하다고 하지만 결코 오만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끄러워하고 겸손한 성격인데, 이것이 자칫 오만하게 비친다”고 덧붙였다.

민생 경제 실패와 국민과의 소통 장애, 이 두 가지가 참여정부 실패의 주요 원인이라는 게 이정우 전 정책실장의 진단이었다.

인터뷰 시작할 때 가져다 놓은 커피가 바닥을 보였다. 한 잔을 더 주문한 뒤 질문을 이어갔다.

‘코드’ 중요한데 참여정부 조각 개혁과 너무 안 맞았다
조율없이 양도세 중과유예 바언 나가…당정청 불협화음


☞ 노사 개혁은 실망, 교육 개혁은 미흡

“참여정부에 들어갈 때 뭘 의욕적으로 해보려고 했냐”는 개인적인 질문을 던졌다.

“하고 싶었던 게 세 가지였다. 부동산문제, 노사문제, 교육문제였다. 셋 다 소프트웨어 문제다. 소프트웨어를 바꾸는 게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들어가서 보니 부동산문제는 대통령이 관심이 높았고,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러나 노사개혁은 상당히 실망스럽고, 교육개혁은 한다고 했는데 뭔가 조금 부족한 그런 정도에서 끝났다. 그래서 그 세 가지 개혁이 다 제대로 됐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시작했을 때 의욕하고 비교하면 실망스럽고 자탄할 수밖에 없다.”

그는 부동산정책에 비교적 만족스럽다고 했는데, 일반 국민들의 인식과는 거리가 있는 게 아닌가. 참여정부 5년 간 10여 차례가 넘는 부동산대책을 발표했음에도 집값 폭등을 잡지 못했는데 성공한 정책이라니, 선뜻 수긍하기 힘들었다.

“2003년의 10·29 대책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일 정도로 강한 내용이었다. 그 뒤 일년간 집값이 떨어졌다. 한 일년은 성공했는데, 일년 뒤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부동산시장 안정 기조가 흔들리면서 다시 투기가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정책의 일관성을 상실한 게 아닌가 싶다.”

그가 말하는 ‘정책의 일관성 상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 참여정부 들어 경제성장률, 수출증가율 등 주요 거시경제지표는 비교적 양호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실질소득을 나타나는 국민총소득(GNI)과 소득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 등은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특히, 2005~2006년의 집값 폭등은 민심이 참여정부에 등을 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 당에서 딴소리 하니까, 관료들까지…

“부동산정책에 관한 한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는 역대 대통령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확고했는데, 당정청 간의 불협화음이 있었다. 당쪽에서 계속 다른 소리가 나왔고, 그것을 이어받아 관료들이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04년 11월께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발언이 문제가 됐다. 대부분의 중요한 정책은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조율해서 나갔는데 이 발언은 전혀 조율 없이 나갔다.

나는 연세대 강연에서 정부가 한번 한다고 국민과 약속한 것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며 원칙대로 (2005년 1월부터)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뒤 한 달 동안 계속 언론에선 키워서 싸움을 붙였다. 대통령도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언론에서 이걸로 한 달 동안 ‘부동산정책 엇박자’라며 흔들어댔다.

결국 흔들리는 것을 대통령이 원칙대로 가자고 가닥을 잡았지만 그 뒤부터 부동산정책이 일관성을 잃고 집값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 부총리가 왜 그런 발언을 했을까.

“경기를 살리려고 그랬을 것이다. 그 분은 계속 경기에 신경을 썼다. 부동산 붐이 일어나야 경기가 살아난다는 게 재경부 건교부 쪽 관료들이 오랜 경험을 통해 몸으로 터득한 불문율 비슷한 것이다. 역대 부총리들이 늘 그렇게 해서 재미를 봤다. 그것을 깬 게 참여정부였다.”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액이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올랐다가 다시 6억원으로 내려간 배경에도 관료들의 이런 인식이 작용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렇게 부동산정책이 흔들리면서 부동산값이 폭등했고, 그러다보니 양동이 물로 끌 수 있는 불을 나중에는 소방차가 여러 대 와서 겨우 끈 셈이 됐다.”

그는 2004년 7월 부동산정책 주무에서 밀려났다. 당시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하면서 부동산정책을 총괄하고 있었다.

“2004년 7월말 국무회의 석상에서 갑자기 대통령이 부동산정책을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에서 경제보좌관실로 넘기라고 말해서 충격을 받았다. 일하는 사람으로서 솔직히 좀 섭섭했다. 일년간 고생해왔는데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적으로 우선 그게 제일 먼저 든 느낌이었다.

또 하나는 이게 시장에 신호를 줄텐데, 걱정이 됐다. 그 뒤에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갔다. 조윤제 경제보좌관이 학자로서 원칙을 지키면서 잘했다. 그럼에도 그 뒤에 많은 혼선과 갈등이 있었고, 이것들이 시장에 나쁜 신호를 자꾸 주면서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흘렀다.”

그는 자신이 밀려난 이유에 대해 “아마 이정우 때문에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한다는 등의 소문들이 대통령에게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결국 관료와 여당의 입김 때문에 부동산정책이 표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 초기부터 이른바 개혁세력들이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 전 실장도 이런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 색깔이 다른 사람 섞어놓은 게 문제

“이른바 진보개혁 인사들이 정부에 좀 많이 들어가 팀웍을 맞추는 게 중요했다. 그게 개혁의 요체다. 일을 해보면 정말 코드란 게 중요하다고 느낀다. 코드 맞는 사람은 전화 한통으로 일분만 하면 끝난다. 코드 안 맞으면 10분, 20분 통화해도 평행선이다. 대화가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의 조각이 너무 개혁과 안 맞았다. 양쪽으로 색깔이 다른 사람을 섞어놓은 게 문제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노 대통령이 개혁 의지가 부족했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러 문제가 있는데 개혁 의지가 강했던 부분이 있고 약했던 부분이 있다. 전반적으로 봐서는 그만하면 개혁적이다. 비교적 원칙을 지키려고 했다. 인기에 초연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어야 된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의 개혁 의지에 대해 굉장히 박하게 평가하지만 대통령은 평가가 너무 박해서 억울할 거라고 생각한다. 말 한 마디, 정책 하나 이런 것 가지고 바로 낙제점을 주는데, 그게 진보지식인의 지나친 점이라고 본다. 노 대통령은 공과가 함께 있는데, 공이 과보다 훨씬 많은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현직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학자로서 객관적으로 봤을 때도 그렇다.”

하지만 인사는 잘못한 것 아니냐는 거듭된 물음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 잘못한 것은 맞다. 참여정부의 고위직을 지낸 사람들이 이명박 캠프에 줄을 서는데, 이런 기회주의자들을 기용한 것은 확실히 사람을 잘못 쓴 것이다.” 참여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던 윤진식씨와 금감위원장을 역임한 윤증현씨 등이 새 정부 인수위에 참여해 일하고 있다.

☞ 참여정부 성과 평가받을 날 올 것

이런 많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그는 참여정부가 국민들이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실패한 정부는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참여정부의 성과는 굉장히 많다. 부동산정책, 정부개혁 등등에서 정말 많은 일을 했다. 장기과제를 주로 많이 했기 때문에 효과가 천천히 나타날 것이다. 장기과제를 이렇게 많이 챙긴 대통령은 없었다. 나중에 평가받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는 비록 ‘패장’이지만 흐트러짐이 없이 여전히 꼿꼿했다.


이정우 교수는 누구?
참여정부 ‘핵심브레인’…집권초기 부동산대책 등 주도


» 대통령 자문기구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시절의 이정우 교수. 청와대 사진기자단,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인 이정우(58) 경북대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이던 2002년 8월께 노 후보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노 후보의 지지율은 10%대로 주변에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때였다.

노 대통령이 당선된 뒤 대통령직 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참여정부의 정책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초대 정책실장을 맡아 경제정책을 개혁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2003년 ‘10·29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만들면서 강력한 부동산 규제 정책을 주도했다. 그 결과 다음 해인 2004년에는 집값이 하락세를 보이기도 했다. 또, 인위적 경기부양 반대, 성장-분배 동시 추구론을 주장하며 참여정부 초기의 경제정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이 재계와 관료들의 견제를 받으면서 참여정부 출범 1년도 안 된 2004년 1월 정책실장에서 대통령 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으로 밀려났다. 그 해 7월에는 부동산정책에서도 손을 뗐다. 2005년 8월 정책기획위원장을 그만두면서 사실상 참여정부의 정책라인에서 비켜났다.

이 교수는 그 뒤에도 정책특보로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을 이어오다 2006년 11월 말 정책특보직을 물러나면서 참여정부와의 공식적인 관계를 정리했다. 이 교수는 이 과정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등 참여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참여정부의 기본 정책 방향을 옹호하는 등 참여정부에 관여했던 개혁성향 인사들의 좌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인수위 시절 ‘참여정부’라는 이름은 자신이 지은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노무현 당선자도 참여한 인수위 회의에서 ‘국민참여정부’라는 안이 올라왔는데, 자신이 ‘국민’을 빼고 ‘참여정부’라고 제안해 통과됐다는 것이다.


내오랜꿈 ---------------------------------------------------------------------------------

여러 번 언급했지만 이정우 선생이 노무현 정부에서 밀려난 순간 참여정부의 운명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사실 이정우 선생의 말은 거의 90% 정도는 맞는 말이다. 민노당을 비롯한 진보세력에서도 이정우 교수의 철학과 경험을 활용할 방안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정우 - 정태인"이라는 정책(경제) 라인은 쉽게 찾을 수 없는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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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정우의 [불평등의 경제학] | 독서칼럼 2010-05-1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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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오딧세이

<출처:프레시안www.pressian.com>

 

"당신도 성장 만능주의자? 정상 국가로 가자"

[화제의 책] 이정우의 <불평등의 경제학>

기사입력 2010-03-20 오전 9:12:28

 

 

1시간짜리 가장 행렬이 있다. 이 행렬에는 소득을 가진 모든 개인이 출연한다. 이 행렬의 특징은 출연하는 사람들의 키가 그 사람의 소득에 비례한다는 점이다. 평균 소득을 가진 사람은 성인의 평균 신장(약1.7미터)으로 이 행렬에 나타나고, 평균 이하의 사람은 그보다 작은 키로, 평균 소득 이상의 사람은 큰 키로 출연한다. 이 행렬은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맨 먼저 나타나는 사람은 땅 속에 머리를 파묻고 거꾸로 나타나는데 이 사람은
마이너스 소득을 가진 파산한 사업가다. 그 다음에 파트타임으로 몇 시간 일하는 주부, 신문 배달 소년 등이 출현한다. 노인, 실업자, 장사가 안 되는 가게 주인, 아무도 재주를 알아주지 않는 천재 화가 등 키가 1미터가 안 되는 이들이다. 그 다음에 1미터가 조금 넘는 청소부, 지하철 집표원 등 저임금 노동자들이 출현하는데 시간이 흘러도 키는 좀체 커지지 않는다.

평균 신장을 가진, 즉 평균 소득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48분이 지나서다. 평균 소득이 지나가고 나면 키는 급속도로 커진다. 마지막 6분을 남겨 두고, 소득 수준이 최고 10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데 이들은 2미터 가까운 키를 가진 교장, 대졸 사원 등이다. 그 후 키는 빠르게 상승하며, 그리 성공하지 못한
변호사, 대령, 국영기업의 기술자들의 키가 5미터 정도다. 마지막 1분을 남기고 8미터의 대학 교수가 등장하며, 대기업의 중역은 9미터, 고등법원 판사는 12미터다. 수입이 좋은 회계사, 의사, 변호사들이 출현하기 시작하는데 이들의 키는 거의 20미터다.

마지막 몇십 초는 정말로 굉장하 거인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주로 대기업 중역들이고 약간은 왕족이다. 행렬의 맨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람은 대기업 총수다. 아무도 그의 키를 모른다.

▲ <불평등의 경제학>(이정우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프레시안
이는 네덜란드 경제학자 얀 펜이 <소득 분배>라는 책에서 소득 불평등을 설명하기 위해 쓴 방법이다. 이런 가장 행렬이 한국에서 일어난다면 어떨까? 평균 소득을 가진 사람은 언제부터 출현할까? 아마도 행렬의 맨 마지막을 장식할 이건희 삼성그룹 전 회장의 키는 얼마나 될까?

불평등. 두 번의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경제의 더욱더 큰 화두가 됐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교수가 최근 <불평등의 경제학>(후마니타스 펴냄)을 냈다.

'성장 VS 분배' 논쟁에서 '무상 급식' 논쟁까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상 급식이 주요한 정치 쟁점이 됐다. "부잣집 아이들에게 공짜 점심을 줄만큼 여유로운 상태가 아니다"라는 한나라당의 주장과 "가난한 집 아이들도 부잣집 아이들과 똑같은 밥을 먹을 수 있게 하자"라는 야당과 시민단체들의 주장이 맞붙었다. 더 근본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복지를 세금을 내는 부자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시혜'로 인식하는 '잔여적 복지'냐, 세금을 내는 납세자들과 복지 정책의 수혜자를 일치시키자는 '보편적 복지'냐, 어느 쪽으로 갈 것이냐를 둘러싼 논쟁이다. 현재의 '잔여적 복지'를 '보편적 복지'로 전환하자는 것은 사회경제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간단치 않은 문제다.

이번 무상 급식을 보면서 7년 전 노무현 정부 초기 '성장 대 분배' 논쟁이 떠올랐다. 당시와 비교하면 어쨌든 '복지'가 전제에 깔린 것이라는 점에서 무상 급식 논쟁이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나 논쟁 구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잔여적 복지'는 복지 혜택을 최소화하자는 주장이라는 점에서 성장주의의 연속선상에 있다. 이정우 교수는 성장이 먼저냐, 분배가 먼저냐는 이분법적 대립 구도로 진행됐던 당시 논쟁의 한 가운데 섰고, <조선일보> 등 보수 세력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됐다. 이 교수는 결국 1년도 못돼 2003년 12월 정책실장에서 정책기획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2005년 7월 사임했다. 이 교수가 물러나면서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 '성장주의'로 돌아섰다.

이 책은 이 교수가 지난 1991년 출판했던 <소득분배론>의 개정증보판격이다. 경제적 불평등을 낳는 여러 요인들과 이를 해소하기 위한 분배 문제에 대한 다양한 이론과 실증적 검증을 담은 '교과서'에 가까운 책이다. 이 교수가 500쪽이 넘는 이 책에서 결과적으로 검증하고 싶은 것은 한국 사회를 사로 잡고 있는 '성장 만능주의'다.

"역대 정부가 성장률 극대화에 매진했고 조금만 성장률이 떨어져도 경제 장관을 문책, 경질하면서 성장률 제고를 독려해 왔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비교적 높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장률에 대한 감각 역시 기준이 매우 높은 편이다. 조금만 성장률이 낮아져도 대통령이 참지 못하고 국민도 참지 못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이런 국민적 조급성의 토대 위에서 '경제 위기', '국정 파탄' 같은 극단적 표현이 우리에게는 조금도 낯설지 않다. 그러나 외국의 관찰자들은 걸핏하면 찾아오는 한국 경제의 '위기론'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7퍼센트 성장'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이명박 정부의 탄생 역시 '성장 만능주의'가 가져온 결과다.

"정상 국가로 가자. 시간이 얼마 없다"

이 교수는 한국 경제의 불평등 문제가 이런 성장 만능주의의 소산으로 봤다. 성장 만능주의에 빠져 분배와 복지를 무시해왔다는 것이다. 그 일례로 정부 예산 중 경제 예산과 복지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을 들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복지 예산이 경제 예산보다 훨씬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보면 복지 예산이 55퍼센트 정도, 경제 예산이 10퍼센트 정도다. 이에 반해 한국은 오랫동안 경제 예산이 복지 예산을 압도해왔다. 이것이 뒤집어진 게 노무현 정부 때다. 이 교수는 "노무현 정부 초기에 복지 예산이 20퍼센트였는데, 임기말에는 28퍼센트로 높였다"며 "우리나라 예산 구조가 국제적 관점에서 볼 때 얼마나 기형적이었던가를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30퍼센트가 넘는 높은 자영업자 비중도 성장 만능주의의 결과로 꼽았다. 그는 다른 나라의 2~3배에 달하는 자영업자 비율에 대해 "복지 예산이 부족하니 교육, 보건, 보육, 복지 등에 일자리가 없고, 이런 일자리에서 일해야 할 사람들이 각자 살 길을 찾아 몰려간 곳이 자영업이다. 그리하여 식당, 빵집, 술집, 다방, 미장원, 이발소, 택시, 게임룸 등등 무수히 많은 자영업자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조가 돼 버렸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소위 공공 부문에서 일하는 사람이 전체 취업자 중 5퍼센트 밖에 안되는 데 스웨덴은 30퍼센트나 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저출산 문제를 꼽았다. 그는 "저출산은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나라에서 한창 일할 연령대 인구가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이 경제 성장에 치명적 장애 요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야말로 40년 성장 만능주의를 반성하고 정상적인 나라를 만들어야 할 때"라면서 "그동안 우리 머리를 지배해 온 '선성장 후분배'의 철학을 폐기하고 분배와 성장이 동행한다는 인식, 분배를 통한 성장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세계 보편적 인식을 가질 때"라고 주장했다. "양극화가 날로 심해지고 출산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게 이 교수가 우려하는 지점이다.

 


/전홍기혜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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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김수행 교수의 [청소년 위한 자본론]·[국부론] | 독서칼럼 2010-05-1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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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오딧세이
"무디스 믿지 마…세계 경제는 '공황' 상태!"

[화제의 책] 김수행 교수의 <청소년 위한 자본론>·<국부론>

기사입력 2010-04-17 오전 9:23:08

 

 

신자유주의에서는 부자는 부유해질수록 일을 열심히 하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해질수록 일을 많이 한다고 얘기한다. 이명박 정부도 이걸 믿고 있는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영국 대처 정부가 하던 정책을 따라하고 있다. 대처 수상이 1979년 당선되고 나서 제일 먼저 했던 것 중 하나가 노동조합을 잡는 것이다. 노조를 잡아 자본가들이 구조조정, 임금 삭감, 해고 등 모든 것을 맘대로 하겠다는 생각인데 이명박 정부도 지금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엊그제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우리나라 신용등급을 올렸다는 등 이명박 정부는 자꾸 경기가 좋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거짓말이다. 난 신용평가기관들을 안 믿는다.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터지기 직전까지도 잘한다고 하다가 터지고 나서 바로 신용등급을 내렸다. 그러면 끝이다."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전 서울대 교수)는 지난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고 본다. 마르크스 경제학자인 김 교수는 현재 세계경제가 '공황'에 빠졌다고 보고 있다. 일부 주류 경제학자와 언론에서는 1990년대 세계경제의 특징인 '골디락스(Goldilocks)'가 다시 도래했다는 낙관론까지 내놓고 있는 것과는 대비되는 분석이다. 골디락스는 경제가 너무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상태로 인플레이션(물가상승)없이 꾸준하게 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2007년 2학기를 끝으로 서울대에서 정년퇴임을 한 뒤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해온 김 교수가 2권의 책을 냈다. <청소년을 위한 국부론>(애덤 스미스 원저, 김수행 지음, 두리미디어 펴냄)과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카를 마르크스 원저, 김수행 지음, 두리미디어 펴냄). 김 교수는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두 권의 고전을 통해 이번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독해를 시도했다.

니들이 애덤 스미스를 알아?

▲ 김수행 교수는 15일 오후 출판사 '두리미디어'에서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 등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두리미디어 제공

2010년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에 대한 해석이 판이한 것은 무엇에 주목하느냐의 차이다. 누구의 삶을 기준으로 경기 회복을 판단할 것인가에 있어 김수행 교수는 '전국민의 부'에 주목한다. 그의 이런 시각은 부르주아 경제학의 시조로 여겨지는 애덤 스미스에 기반한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스미스를 자유방임주의자, 시장만능주의자로 인식하는데, 이는 철저한 오역이라는 게 김 교수의 해석이다. <국부론>을 통해 당시 영국의 중상주의를 비판했던 스미스가 내놓은 '국부'는 '전국민의 부'를 총칭하는 개념이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당시 중상주의 정책을 가장 공격을 많이 했다. 중상주의는 수출을 많이 해서 금은을 많이 갖고 있으면 그 나라가 부자라고 주장했다. 이런 정책을 통해 가장 많이 혜택을 보는 것은 큰 무역상들이나 일부 제조업자들이다. 아담 스미스는 이런 생각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금은이 많은 나라가 과연 부자냐. 그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예로 들어 이런 생각에 반기를 들었다. 당시 두 나라는 식민지 건설을 통해 금은이 화폐로 들어왔다. 화폐가 많아지니까 물가가 올랐다. 공산품과 농산물 값이 많이 오르니까 다른 나라에서 두 나라에 상품을 수출하기 시작했다. 결국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산업이 다 죽었다. 일부 무역상과 제조업자들은 큰 이익을 보았을지 모르지만 국민 전체가 잘 살지는 못했다.

스미스는 국부를 전 국민의 부라고 정의했다. 국민 전체의 부를 증가시키는 것은 금은이 아니고 그 나라에서 일년 동안 생산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이다. 그 나라의 토지와 노동이 만들어내는 연간 생산물이라고 다시 정의를 했다. 이런 관점에서 국부를 증진시키려면 노동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노동자 수가 증가시켜야 하고, 노동자 개개인이 숙련돼서 노동생산성이 올라야 한다고 봤다.

스미스는 이를 위해 특권층들의 특권을 없애라고 주장했다. 일부 상인들과 제조업자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수출증진정책과 수입억제정책을 쓰는 것을 비판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정부의 규제를 받지 않고 스스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이게 자유방임이다. 지금은 재벌들을 위해 규제완화를 하는 게 자유방임으로 이해하는데 특권층의 특권을 없애는 것이 애덤 스미스가 얘기한 자유방임이었다."


"MB정부 경제정책, 부자들 부만 늘려"

▲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 , 카를 마르크스 원저, 김수행 지음, 두리미디어 펴냄. ⓒ프레시안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전국민의 부'를 증진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김 교수는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 4대강 사업 등은 재정적자만 늘리면서 그 혜택은 특정 계층에게만 돌아간다.

"솔직히 이명박 정부 사람들이 국가경제가 뭔지 아는지 궁금하다. 모든 국민을 잘살게 해야지 왜 건설업자에만 몰아주나? 재정적자만 내면서 고용이 늘지도 않고 경제가 살지도 않고, 그런 일을 하고 있다."

지난해 2월 기준금리를 2.0%로 낮춘 뒤 14개월째 사상 최저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나는 지금 금리가 이렇게 낮은 것도 반대다. 지금 부자들은 은행에서 낮은 금리로 돈 빌려서 땅 사고, 아파트 사고 있다. 또 은행은 예금 금리는 낮춰 놓고 대출금리만 올려 이전에 손해 봤던 거 전부 메우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부동산 대폭락이나 인플레이션이 올 수도 있다."

"'돈 황제' 정주영을 뛰어넘은 이건희"

김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수출)대기업 중심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는 노조의 무력화를 통해 외국자본의 국내투자와 한국자본의 수출 증진을 촉진하는 게 목표다. 이를 통해 실제 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들은 이명박 정부 2년 동안 호조를 누렸지만, 투자와 고용은 늘리지 않았다. 김 교수는 앞서 수출 경쟁력을 늘리기 위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하고 하도급 업체를 쥐어짜는,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욱 착취함으로써 국내수요기반을 더욱 축소시키고 서민들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수출 증대와 서민 불행의 악순환에 대해 지적해왔다. 이 과정에서 재벌 대기업과 정권의 유착은 불가피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단독 사면 이후 경영 복귀는 예견된 일이었다.

"이건희 씨가 사면을 받은 뒤 '우리 모두가 정직해져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그 얘기를 듣고 참으로 기가 막혔다. 이건희 씨 옆에 가신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이 이건희 씨의 경영 복귀를 부추겼다고 한다. 이건희 씨는 삼성을 자기가 노력해서 만들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현재의 삼성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의 결과다. 그래서 이 사회의 것이다. 그런데 이건희 씨에겐 그런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또 한국의 반기업 정서를 언급하면서 다른 나라로 본사를 옮긴다는 협박도 가끔 한다. 내 생각엔 삼성이 다른 나라고 가면 망한다. 한국에 있으니까 그 많은 삼성 장학생들의 비호를 받아 남아 있는 것이다. 삼성이 한국에 있으면서 큰 인심이라고 쓰는 것처럼 하는데, 노조도 없는 대기업이 21세기 어느 나라에 있다고 생각하나. 예전에 정주영 현대 창업주를 '돈 황제'라고 비난한 소설이 있었는데 지금 보니까 이건희 씨가 더한 것 같다."


80년대 현대그룹 직원 출신인 백시종 씨는 <돈 황제(皇帝)>라는 소설을 펴냈다. 이 소설은 한 재벌 회장의 부정축재, 권력·언론과의 유착, 여자관계 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작품이었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연상시키는 책이다.

"자본주의를 제대로 알아야 해법을 찾는다"

결국 두 권의 책을 통해 김 교수가 하고 싶은 말은 "자본주의에 대해 제대로 알자"는 것이다.

"이번 미국발 세계경제위기에 대해 금융자본가들이 탐욕이 많다는 식으로 원인을 얘기하면 위기를 극복할 해답을 찾지 못한다. 자본주의경제는 인간들의 필요와 욕구를 직접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게 아니라 자본가 계급의 이윤 획득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 없이는 새로운 경제질서를 모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번 경제위기로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 읽기가 유행처럼 번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해법은 '전국민의 부'를 늘리는 것이며, 서민들의 쪼그라든 삶이 펴지지 않는 한 '공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게 김 교수의 진단이다.

김 교수는 올해 안으로 이번 세계 공황에 대한 책과 마르크스 경제학자로서 삶을 회고한 자서전도 낼 계획이다.

 


/전홍기혜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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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가 우리를 아는 만큼 우리는 그를 알지 못한다 - 한국을 연구하는 학자 브루스 커밍스 | 독서칼럼 2010-05-1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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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최성일의 기획리뷰
냉전은 열전만큼이나 무섭다. 나는 지금, 인천의 명산인 계양산 정상을 기준으로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의 대척점에서 살고 있는데, 이건 예전 같으면 엄두를 못낼 일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니까, 1978년 무렵이겠다. 무장 간첩이 계양산을 거쳐 북으로 되돌아가려 한다는 소식에 우리는 한동안 두려움에 벌벌 떨며 지냈다. 이런 푸념을 하면서. ‘간첩이 어디서 출몰했는가 몰라도, 하필 계양산이 그들의 귀환 루트에 포함될 게 뭐람.’

그 후 무장 간첩의 생사 여부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지만, 이 소동은 대단한 충격파를 몰고 왔다. 유년의 나에게 계양산은 적의 위협으로부터 나를 지켜 주는 마지노 선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등화관제 훈련을 상시적으로 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었다.

한편, 어머니가 검은색 천으로 만든 전등 씌우개를 보고는 이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도 했다. ‘아예, 전등을 끄는 게 상책이 아닐까?’ ‘불빛을 감춘다고 적성국의 전투기가 과연 목표물을 혼동할까?’ ‘아무리 전쟁 상황이어도 민간인 거주지에 설마 무차별 폭격을 가할까?’ 그로부터 10년 후, 신병 훈련소와 자대의 내무반에서 목격한 등화관제 시설은 내 어머니의 ‘작품’에 비해 엉성했다.

아무튼 지난 시절의 잣대를 들이대면,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1943- )는 영락없는 좌경 용공의 운동권 교수 학자다. 그러나 국내의 정통성을 결여한 집권 세력과 그 하수인이 부친 붉은색 꼬리표는 실제의 커밍스와 거리가 한참 멀다. 단지 “권력은 진실을 무시한다.” 커밍스의 저술 활동이 꼬리표 붙이기의 빌미가 됐으나, 이젠 오히려 그의 책들이 그런 책략의 어이없음을 입증한다. 커밍스의 작업을 못마땅히 여긴 국내 집권 세력은 그를 많이 오해한 듯 싶다.

최신 번역서인 『김정일 코드』(남성욱 옮김, 따뜻한손, 2005)만 해도 그렇다. 이 책은 커밍스가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사람임을 느끼게 한다. 나는 커밍스가 메이저리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우직한 팬임을 알고, 그가 좋아졌다. 인디언스는 어떤 팀인가? 1990년대 중반, 케니 로프턴, 짐 토미, 매니 라미레즈, 샌디와 로베르토 알로마 형제 등이 막강 타선을 이뤄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으나, 투수력의 열세로 준우승에 그친 후 이렇다 할 성적을 못 내고 있다. 커밍스는 젊었을 적에 3년간 클리블랜드에 있는 제철소에서 일하기도 했다.

이 책의 원제는 ‘북한- 또 다른 나라(North Korea: Another Country)’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본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의 『북조선』(돌베개)과 동류라고 하겠다. 하지만 책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하루키의 북한 탐구가 정공법으로 일관해 다소 딱딱하다면, 커밍스의 북한 연구서는 학문적 방법론을 견지하면서도 상대적으로 가볍고 부드러운 필치다. 이따금 마주치는 위트 넘친 익살맞은 문장들 덕분에 킥킥 웃곤 했다. “그러나 그의 뜻대로 되기 위해서는 비아그라 한 알이 필요했다.”

브루스 커밍스는 북한을 “혐오를 주는 만큼 매력적이며, 독특하고 기이한 만큼 만만치 않은 나라”로, “좋은 나라는 아니지만 이해 가능한 나라”로 표현한다. 나는 북한에 대한 혐오감은 없지만(무심한 편이다), 그렇다고 매력적이거나 좋은 나라로 생각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 북한의 만만찮은 측면 일부를 알게 되고, 북한을 좀더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 현대사의 진실 드러내기는 커밍스의 특기 중 하나다. 그는 최근작에서도 우리를 계몽한다. ‘가짜 김일성론’의 허구성 대해 색다른 각도로 접근한다. 2002년 커밍스는 일본을 연구하는 동년배의 학자에게 메모 한 장을 건네받았다. 메모지에는 그가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한 대학원생이, 김일성은 만주국에서 일본에 대항에 싸웠던 유명한 게릴라의 이름을 도용했다고 주장하더라는 내용이 씌어 있었다.

“그 학자는 이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믿으면서 나의 견해를 물었다. 나는 아마도 그 학생이 한국 출신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런 신화는 1945년 이래 주로- 만주국에서 -일본군에 복무하다 늳한 군대를 지휘하던 국군 장교들에 의해 널리 퍼졌다.”

얼마 전,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운동에 관해 질문을 받은 친일진상규명위원회 강만길 위원장이 “(김 전 주석이) 항일운동을 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독립운동으로 봐야 하고, 사회주의 등을 따지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라고 답했다가, ‘김일성을 독립투사로 미화한다’는 반발을 사는 곤욕을 치렀다(〈한겨레〉2005년 6월 4일자).

이 땅의 보수 진영이 아직도 이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도둑의 발 저림’이 풀리지 않아서일 것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신문을 통해 김일성을 추격해 살해하기 위해 일본이 고용한 한국인 배반자(Quisling. 나치스에 매국행위를 했다는 노르웨이 정치가의 이름)들과 김일성 사이의 갈등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1949년 소장으로 진급하여 38선에서 한국군을 지휘한 -김석원(金錫源) 대좌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일성이 지휘하는 동북항일연합군과 김석원 대좌를 앞세운 항일 빨치산 토벌대가 쫓고 쫓기는 장면은 서글프기 짝이 없다. 넌센스다. 그래서일까. 김석원처럼 만주군 장교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동북항일연합군 토벌 작전에는 가담하지 않았다고 한사코 부인한 것은. 또 이럴 걸 두고 정권에 정통성이 없다 하나 보다. 정통성 있는 정권이라도 집권 후의 악행과 과오, 그리고 실책이 면죄되는 건 아니지만.

『김정일 코드』에 드러난 한국전쟁의 숨겨진 면 몇 가지는 충격 그 자체다. 우선, 미군과 연합군을 형성한 국군의 전투 의지가 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튜 리지웨이 장군(주한 미 8군단장)은, 1951년 5월까지 남한 사람들은 10개 사단에 해당하는 장비를 전쟁터에 버렸다고 증언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을 경질한 것은 핵전쟁을 우려해서가 아니라 핵무기를 좀더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는 분석은 우리의 허를 찌른다. 그런데 가장 놀라운 것은 맥아더의 실로 과격한 전략 계획이다.

“나는 30에서 50개 정도의 원자폭탄을 투하하여…만주의 목을 끊었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압록강에 50만 국민당 군(중국의 장제스가 이끌던 군대)을 투입시킨 뒤 “우리 뒤쪽에- 동해에서 서해에 걸쳐 -방사능을 내뿜는 코발트 폭탄을 살포한다…코발트의 효력이 60년에서 120년이니까, 최소 60년 동안은 북한으로부터 어떠한 침략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인천 만국 공원(일명 자유 공원)에 맥아더의 동상을 우뚝 세워 놓은 것도 모자라 때때로 대한민국 경찰은 장군의 동상을 호위한다. 인천 어느 도서관 열람실 입구에는 맥아더의 ‘자녀를 위한 기도문’ 액자가 걸려 있다. 이만 하면 인천상륙작전의 은혜를 다 갚지 않았을까. 6. 25를 겪은 어르신들은 미국이 배급한 식량 덕택에 살아 남았다며 고마움을 표하지만, 미군의 폭격과 학살에 의해 민간인의 숱한 희생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나도 어렸을 적에 피부가 보라색으로 그을은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한국전 당시 미군의 네이팜탄으로 인한 화상의 흔적이었다니.

이 책은 북한 핵문제에 한 장을 할애하는데 이와 관련해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내용, 예컨대 핵무기의 확산 방지와 핵확산금지조약(NPT) 같은 것에 정확한 이해를 도모한다. “핵확산방지 체제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핵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는 핵보유국으로부터 위협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현행 NPT 조약은 1995년에 전반적인 재협의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일본이나 인도 같은 주요 국가들은 이 조약을 답갑게 여기지 않았다. 만약 북한이 단순히 핵무기만을 원했다면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처럼 애당초 NPT에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커밍스의 북한관은 복합적이다. 부연하면, “북한은 그야말로 이상하고, 쉽게 흥분하고, 시대착오적이며, 소심하지만 신랄한 국가다.” 그럼에도 커밍스는 북한이 안팎의 위협과 고장난 사회 시스템에 굴하지 않고 그럭저럭 체제를 존속하리라 전망한다. 또 “정부는 손길이 반드시 미쳐야 하는 곳은 외면하고, 능력이 미치는 곳부터 우선 돕고 있다”고 하면서도, 북한 지도부에 후한 점수를 준다.

“그들은 눈보라치는 허허벌판에서 도조(일본의 전쟁 범죄자, 도조 히데키- 인용자)의 총칼에 맞서서도 격렬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무슨 짓이라도 하려고 덤빈, 그리하여 악마의 얼굴을 그대로 닮은, 도조와 동일한 파시스트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한국전쟁의 기원(The Origins of the Korean War)』은 우리에게 커밍스의 이름을 각인시킨 그의 주저다. 『책이야기』(한겨레신문사)는 “이 책자가 담고 있는 수정주의적 시각이 하나의 충격적 가능성으로 확산됐다”고 전한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일부 미국 학자들의 관점에서 벗어나 “커밍스는 한국민의 불완전한 해방, 예속된 해방은 이미 한국전쟁의 기본적인 문제를 잉태하고 있었다고 주장, 문제를 복잡하게 했다”고 덧붙인다.

“한국인에게 해방은 좌절됐다”고 지적한 커밍스는 “한국전쟁은 그에 앞서 5년 동안 계속된 내부 투쟁의 공개판”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책이야기』는 그러한 근거로 커밍스가 미군정의 부일협력자 등용, 한국민의 사회적 개혁 욕구 완전 묵살, 미국의 필요에 따른 남한만의 정부 수립 추진, 신탁통치는 소련의 억지가 아니라 미국의 일관된 주장이었다는 점 등을 구체적인 자료와 논증을 통해 제시했다고 설명한다.

나는 이 책에서 비단 한국전쟁의 연원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 사회의 기원을 읽는다. 이를테면, 우리 사회에 팽배한 중앙집권적 관료주의는 식민지 국가 기구의 유산이다. 프랑스는 1937년 1천 7백만 베트남 인구를 통치하는데 행정 인원 2,920명과 정규군 10,776명을 배치했다. 여기에다 행정과 민방위 조직에 베트남 사람 38,000명을 채용했다.

반면, 같은 해에 일본은 2천 1백만 한국인을 다스리는데 일본인 246,000명이 공공 및 전문직에 종사하였고, 이와 유사하지만 종속적인 지위에 있는 한국인을 63,000명이나 채용했다. 또 1937년 한국에 거주한 일본인의 42퍼센트가 총독부 업무에 종사했다고 한다. 따라서 “한국 관료세력의 지나친 중앙집권화 추세의 책임은 일본에 있는 것이다.”

1980년대를 풍미한 사회과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이 책이 지금까지 읽히는 까닭은 이런 측면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그런데 한국어판에 좀 문제가 있다. 커밍스가 다른 저서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혔듯 이 책은 “해적판으로 또는 적당치 않게 번역”되었다. 『한국전쟁의 기원』은 1986년 두 종의 번역서가 한 달 보름 간격으로 거의 동시에 나왔다. 상․하 두 권으로 나눈 청사 판(김주환 옮김)은 출판사가 없어져 이젠 헌책방에서나 구할 수 있다.

현재 정상적으로 유통되는 일월서각 판(김자동 옮김)은 초판을 번각의 형태로 계속 찍는 탓에 인쇄 상태가 썩 좋지 않다. 오탈자와 오역도 바로 잡지 못하고 있다. 그 만큼 새로운 번역서의 출간이 절실하다 하겠다. 한국어판이 있는 『한국전쟁의 기원』은 두 권으로 완간된 이 책의 첫째 권(Liberation and the Emergence of Separate Regimes, 1945-1947)이다. 차제에 둘째 권(The Roaring of the Cataract, 1947-1950)도 번역되었으면 한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Korea's Place in the Sun)』(창비, 2001)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현대사다. 이 책의 출간 직후, 커밍스가 자신의 견해를 바꿨다는 논평이 잇따랐다. 커밍스는 이를 예상이라도 한 듯, 「서문과 감사의 글」에서 이런 얘길 한다. “나는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은 성장의 신호라는 원칙 아래, 여전히 나한테 옳게 보이는 해석을 유지할 권리와 내 예전 연구에 나왔을지도 모르는 견해를 수정할 권리를 행사했다.”

그런데 「한국어판을 내면서」에선 한국“전쟁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판단은 결코 바뀐 적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무엇보다도 1950년 6월에 전쟁이 시작된 것은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한국전쟁에 대한 내 책의 전체적 강조점은 내전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역사 속에서 자라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 학자가 안내하는 한국현대사의 굽이굽이도 흥미로우나, 내 주의를 더욱 끄는 대목은 「미국의 한인들」을 다룬 제9장이다. 나는 재미교포(또는 재미동포)라는 표현이 영 마땅치 않은데 커밍스는 그것의 대체어를 제시한다. “한국계 미국인”. 다시 말해 “그들은 단지 미국인일 뿐이다.” 그래도 그간 써온 표현을 일거에 내치는 건 도리가 아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을 두 개 범주로 나눌 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다. 한국인처럼 보이지만 한국어를 못하면 한국계 미국인이고, “영어를 배우지 않고 작은 ‘코리아타운’에 틀어박혀 산다”면 재미교포다.

제 9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한국계 미국인 전문가 계층”이 미국사회를 구성하는 소수민족의 비율보다는 훨씬 높게 부상하리라는 전망이다. “이 계층이 설령 아직 미국사회의 중심무대에 알려지지 않았다 해도 머잖아 그럴 날이 올 것이다.” 로드니 킹 사건의 장본인이 몰던 차가 현대자동차이고, LA 폭동에서 부각된 한국계 미국인과 흑인 사이의 갈등이 실제로는 한국계와 라틴계의 갈등이라는 지적은 처음 듣는 얘기다.

이 밖에도 브루스 커밍스가 공동 필자로 참여한 몇 권의 책에서 그의 글을 접할 수 있다. 『대학과 제국: 학문과 돈, 권력의 은밀한 거래』(한영옥 옮김, 당대, 2004)에는 커밍스가 미국의 국가안보정책이 대학의 학과․교재․학제 차원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을 톺아본 글이 실려 있다. 이 글 「경계의 해체: 냉전과 탈냉전 시대의 지역학과 국제학」을 마무리하는 인용문의 메시지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다음은 미국 역사학자 버나드 A. 드보토의 말이다.

“대학은…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캠퍼스에서는 그 어떤 책도, 그 어떤 표현도, 그 어떤 연구도, 그 어떤 견해도 자유롭다고. 대학은 정부와 그 밖의 모든 것에 비판적인 위치를 견지해 나가야 한다. 대학이 이러하지 못할 때, 머지않아 대학은 대학이 지녀야 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그들만의 세상- 아시아의 미군과 매매춘』(김윤아 옮김, 잉걸, 2003)에서는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 편의 해설을 맡았다. 이 글은 우리를 부끄럽고 가슴 아프게, 슬프고 우울하게 한다. 절판된 『분단전후의 현대사』(편집부 엮음, 일월서각, 1983)에도 커밍스의 글이 실려 있다. 『김정일 코드』와 『대학과 제국: 학문과 돈, 권력의 은밀한 거래』은 미국의 독립 출판사인 뉴 프레스를 통해 나왔다. 지난해 가을, 뉴 프레스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앙드레 쉬프랭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쉬프랭의 방한에 즈음해 그의 출판론 『열정의 편집』(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이 선을 보인 바 있다.

브루스 커밍스는 미국에 한국 관련 정보와 자료는 풍부하지만, 정작 한국과 한국인을 잘 아는 미국인은 아주 드물다고 개탄한다. 그러면 우리는 미국과 미국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우리 국민의 다수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미국을 지목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커밍스가 『김정일 코드』에서 묘사한 미군의 한국에 대한 인식도 숙지하자.

“미국 육군은 한국의 군사 기지들과 다양한 작전을 좋아한다. 요새화된 경계선 바로 건너에 있는 실제적이고 생생한 적을 향해 힘을 과시할 수 있는, 이 세계의 마지막 장소이기 때문이다. 군대를 동원하고 훈련하며, 가상전쟁을 실시하고, 장교들을 위해 현장경험을 습득시키고, 끊임없이 다음 전쟁을 수행할 시나리오를 짤 수 있는 곳이 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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