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나의 삼촌 브루스 리
http://blog.yes24.com/Bruce_Lee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천명관
천명관 연재소설 &apos나의 삼촌 브루스 리&apos! 매일 오전 열 시에 업데이트 됩니다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0월 스타지수 : 별55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작가 블로그
전체보기
알립니다
작가 레터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작가 천명관에 대해
일러스트레이터 이강훈
우리들의 이벤트
함께쓰는 블로그
중간 리뷰 올리기
태그
십만원 트위터보내기100당첨! 아이폰 연재시작 나의삼촌브루스리 어플 김인숙 브루스리 4회 천명관
2020 / 1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나의 친구
최근 댓글
책 잘 읽고 있습니다... 
빨간 바탕의 혀를 삐.. 
꿈보다 더 가혹한 현.. 
아... 일반사람들은 ..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 
새로운 글
오늘 7 | 전체 164014
2010-08-03 개설

전체보기
연재를 마치며 | 작가 레터 2011-06-13 09:59
http://blog.yes24.com/document/4369958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감사합니다.

  연재를 마치는 지금, 이 말 이외엔 다른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는군요.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소설이 끝날 즈음엔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와 있을지도 모를 거라는 말씀을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가을이 가고, 첫눈이 내리고 그렇게 시작해서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이 모두 지나고, 꽃이 피고, 꽃이 지고, 나뭇잎이 푸르러지는 여름의 문턱에서야 겨우 연재를 끝냈습니다. 예상치 못한 긴 여정에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집필을 하는 10개월 간 작업 공간을 여러 번 옮기게 되었습니다. 과수원 옆에 있는 동생의 사무실 한편에서 쓰기도 했고 늦가을엔 포천의 어느 산속 고시원에서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봄이 오면서 난생처음 노트북을 들고 집 근처 카페로 가서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회사원처럼 일정한 시간에 출근을 하듯 카페에 가서 언제나 똑같은 커피를 주문하곤 했지요.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말소리와 웃음소리 사이로 Laura Fygi의 ‘I Love You For Sentimental Reason’ 같은 달콤한 노래가 흘러나오기도 했습니다. 오후의 햇살은 따뜻했고 담배연기가 떠다니는 카페에서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자주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연재를 한다는 것은 작업실의 문을 열어놓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필을 해야 하는 것처럼 곤혹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창작과정을 모두 공개해야 하는 민망한 일이기도 한 한편, 수많은 오류들을 모두 드러내야 하는 부끄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재를 마치는 지금에서야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게 소중한 것은 이 소설이 아니라 소설을 쓰던 시간들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쓸쓸한 포천의 어느 산속 고시원에서 산책을 하며 노랗게 물들어가는 단풍잎을 바라보던 저녁시간과 창 넓은 카페에서 함께 한 그 많은 Coffee and Cigarette! 그리고 매일 아침 찾아와 원고를 읽고 댓글을 달며 이 소설과 함께해 주셨던 여러분들과의 시간이 저에겐 소설보다 더 값진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모두 지나갔으나 나는,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서 매우 달콤한 추억을 하나 더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빠른 시간 안에 원고를 다듬어 책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아마도 많은 부분을 손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류들을 바로잡고 이야기의 새로운 방향도 두루 검토할 것입니다. 특히 결말의 내용이 많이 바뀔 것 같습니다. 그 점에 대해 미리 양해를 부탁드리며 모두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굿바이, 브루스 리!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33)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8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14회 | 나의 삼촌 브루스 리 2011-01-25 10:00
http://blog.yes24.com/document/3056597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114.

 

  -어디 가서 차나 한잔 하지. 그러지 않아도 한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그날 삼촌은 토끼가 이끄는 대로 근처 다방으로 갔는데 카운터에 앉아 있는 여주인의 얼굴을 보고는 그만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 옛날 삼촌에게 순정을 바쳤던 첫사랑의 여자, 오순이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하고 자리에 앉아 있었던 거였다.
  -인사해, 내 마누라야.
  토끼의 말에 삼촌은 더욱 당황해 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엉거주춤, 고개만 까딱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입가에 있던 커다란 점이 보이지 않아 삼촌은 자신이 사람을 잘못 봤나 잠시 의심했지만 땅딸막한 키에 넙데데한 얼굴이 틀림없는 오순이었다. 토끼는 삼촌을 오순에게도 소개했다.
  -이쪽은 나랑 삼청교육대에서 같이 훈련을 받았던 동긴데 알고 보니까 한동네 사람이더라고.
  그러자 오순은 삼촌을 알아보았는지 어땠는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아, 네. 어서 오세요.
  토끼와 삼촌이 자리에 앉자 오순은 커피를 타기 위해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 다, 다, 다방을 그럼 직접……?
  -응, 이건 마누라가 맡아서 하는 거고 난 이 위층에서 따로 당구장을 하고 있어. 외진 데라 손님은 별로 없지만 대신에 세가 싸서 그냥 버티고 있는 거야.
  삼촌은 머리가 혼란스러워 그저 고개만 끄덕거렸는데 혼란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다방 문이 벌컥 열리고 한 사내아이가 토끼에게 달려왔다. 예닐곱 살쯤 되었을까? 새까만 얼굴에 개구지게 생긴 아이는 옆에 세워둔 목발을 냉큼 집어 질질 끌고 가며 노래를 부르듯 혼자 흥얼거렸다.
  -우리 아빤 찐따! 찐따는 병신, 병신은 쪼다, 쪼다는 무녀리, 무녀리는 바보…….
  아이를 발견한 삼촌은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몇 년 전 시장 통에서 오순이 업고 있던 모습을 목격했을 땐 포대기에 싸여 있어 겨우 머리만 볼 수 있었지만 어느새 아이는 학교에 들어가도 될 만큼 자라 있었다.
  -영수야, 그거 이리 가져와.
  영수? 저 아이가 그럼 그때 오순이 임신하고 있었던 바로 그 아이일까? 아이는 토끼의 말을 들은 체도 안 하고 목발을 질질 끌며 다방 안을 망아지처럼 뛰어다녔는데 까무잡잡한 얼굴에 작달막한 체형이 자신과 닮은꼴이었다. 그렇다면 토끼는 아직도 영수가 자신의 아이라고 알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오순은 여태 그 사실을 숨긴 셈인데 혹시 나중에라도 토끼가 자신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또 혹시 나중에 아이가 친부라며 자신을 찾아온다면? 아이를 바라보고 있던 삼촌은 온갖 복잡한 생각에 마음이 괴로워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이때, 오순이 손수 커피를 들고 자리로 다가와 삼촌 옆에 앉았다.
  -그러지 않아도 이이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토끼한테 내 얘기를 들었다고? 토끼는 나에 대해 과연 뭐라고 말을 했을까? 오순은 그 얘기를 듣고 그게 과연 나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커피가 입에 맞을지 모르겠네요. 크림 두 개, 설탕 두 개 넣었는데…….
  오순은 슬쩍, 삼촌의 허벅지에 손을 얹고 말했다. 이때 삼촌의 머릿속엔 퍼뜩 옛날 역전다방에서의 일이 스쳐갔다. 그때도 지금처럼 부드럽게 말했지…….
  -우리 아빤 찐따! 찐따는 병신, 병신은 쪼다, 쪼다는 무녀리, 무녀리는 바보…….
  잠시 밖으로 나갔던 영수가 다시 목발을 끌며 안으로 들어오자 오순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이누무새끼, 그거 당장 안 내려놔?
  오순은 소리를 질러놓고 민망한 듯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말씀들 나누세요.
  오순이 영수를 쫒아 자리를 뜨자 토끼가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마셔봐. 우리 마누라가 생긴 건 저래도 커피는 아주 맛있게 타거든.
  삼촌은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 잔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정말 커피에 크림과 설탕만 들어간 걸까? 만일 그게 아니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옛날처럼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건 아닐까? 어쩌면 이번엔 피를 토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힐끗 오순 쪽을 바라보니 오순이 아이의 머리통을 쥐어박다 삼촌과 눈이 마주치자 어서 커피를 마시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삼촌은 다시 커피 잔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그것이 마치 자신이 그동안 살아온 데에 대한 성적표처럼 느껴졌다. 긴 세월이 흘러 역전다방의 주인공들은 다시 한자리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제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마무리할 차례였다. 엎을 수도 없고 무를 수도 없는 잔이었다. 삼촌은 토끼와 오순을 번갈아 바라보다 뭔가 결심을 한 듯 잔을 들어 꿀꺽,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삼켰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5)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6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13회 | 나의 삼촌 브루스 리 2011-01-24 10:00
http://blog.yes24.com/document/3050307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113.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던 삼촌은 교육기간이 다 끝난 뒤에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교육을 마치자마자 근로봉사대로 끌려가 육 개월간 강제노역에 동원되었기 때문이었다. 그해 늦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삼촌은 근로봉사대에 소속되어 군부대 벙커작업이나 군사도로를 닦는 일에 투입되었는데 근로봉사대의 목적이 노역보다는 격리에 있다 보니 사정은 삼청교육대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대원들은 여전히 잔혹한 폭력과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고 그 과정에서 다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몸을 다쳐 병신이 되었다. 거기에 더해 영하 이십 도로 떨어지는 강원도 산골에서 겨울을 나느라 이번엔 팔한빙지옥의 끔찍한 추위와도 싸워야했다. 온종일 노역에 시달리느라 녹초가 된 몸을 털이 다 빠진 모포 하나에 의지해 밤새 이를 딱딱 부딪치며 애써 잠을 청하던 그 숱한 겨울밤들은 대원들의 몸과 마음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삼촌이 근로봉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반송장이 되어 있었다.
  삼촌은 동천 출신의 반송장들과 함께 군용트럭에 실려와 동천경찰서 마당에 내려섰다. 때는 이른 봄이어서 경찰서 담장을 따라 개나리가 한창 만발해 있었다. 그 찬란하고 생경한 봄날의 개화를 바라보는 대원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간의 혹독한 고생을 떠올리며 눈물이라도 흘렸을까?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무자비한 폭력과 배고픔, 숱한 모멸과 수치심을 견디느라 갈가리 찢겨진 자존심에 영혼은 바스러질 듯 메말라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훈련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었는데 삼촌을 교육대에 집어넣었던 서 형사가 삼촌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권도운. 잘 다녀왔나?
  잘 다녀왔냐고? 삼촌은 능글맞게 웃는 서형사의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다.
  -뭐, 달리 생각하지 말게. 어차피 누가 다녀왔어도 다녀와야 할 일이었으니까.
  서 형사도 삼청교육대의 실상에 대해 들었는지 미안한 표정으로 삼촌에게 담배를 한 대 권했다.
  -삼청교육대에 다녀온 사람들은 전과도 말소해 준다고 하니까 뭐, 홍역 한 번 앓은 셈 쳐.
전과를 말소해 준다는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게다가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사람 가운데 전과자가 아닌 사람이 무려 사십 퍼센트에 이르다보니 삼청교육대에 다녀온 이력은 경찰서와 동사무소에 배포, 전산으로 관리되어 범죄수사에 활용하는 등 오히려 멀쩡한 사람을 전과자로 만든 꼴이 되고 말았다. 삼촌도 물론 전과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홍역 한 번 앓은 셈 치라니!
  삼촌은 서 형사의 머리통을 깨부수고 싶을 만큼 살의를 느꼈지만 그저 아무 말 없이 담배연기만 폐 깊숙이 빨아들였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담배를 한 번도 피워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삼촌은 그때까지 담배를 한 번도 입에 대지 않았는데 그것은 무도인으로서 몸에 해로운 담배를 피우는 건 무책임한 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진 일을 겪고 난 뒤의 억울함과 답답함 때문이었을까? 삼촌은 서 형사가 건네준 담배를 자신도 모르게 무심코 받아 피웠는데 처음 피는 담배임에도 조금의 불편함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오래전 삼촌에게 버림 받은 오순이 토끼에게 처음 담배를 건네받아 피웠을 때처럼 터질 듯 답답한 가슴이 조금이나마 가라앉고 폐 깊숙이 채워지는 알 수 없는 충족감에 그날 이후 죽을 때까지 손에서 담배를 놓지 못했다. 삼청교육대를 나오자마자 또 다른 악마에게 발목이 잡힌 것이다.

 

  아버지는 반송장이 되어 돌아온 삼촌을 보고 억장이 무너지는 듯 마음이 아팠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땅이 꺼져라 한숨만 내쉬다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갔는데 저녁 무렵, 흑염소를 한 마리 사서 끌고 와 재종아저씨와 함께 뒤뜰에다 가마니를 깔고 흑염소를 잡았다. 몸이 상한 삼촌에게 먹이기 위해서였다. 엄마는 자식도 못 먹이는 귀한 흑염소를 먹인다며 나중에라도 은혜를 잊으면 안된다고 삼촌에게 잔뜩 생색을 내면서도 매일 정성껏 흑염소를 고아 삼촌의 방에 들이밀었다. 삼촌이 그렇게 집에서 몸을 추스르며 기력을 조금씩 회복해갈 무렵, 한 번은 읍내에 나갔다 길에서 우연히 토끼를 만난 적이 있었다.

  교육대 안에서 작은 봉기가 있던 그날, 다리에 총상을 입은 토끼는 국군병원으로 후송되어 끝내 다리를 절단해야 했지만 대신 근로봉사대로 끌려가는 것은 면할 수 있었다. 토끼가 계엄군에게 잡혀간 지 몇 주 만에 한쪽 다리를 잃은 채 집으로 돌아오자 오순을 포함한 가족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았지만 도치처럼 목숨을 잃지 않고 돌아온 것만 해도 다행이라면 다행한 일이었다. 삼촌이 읍내 극장 앞을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토끼가 길 건너편에서 삼촌을 발견하고 큰 소리로 삼촌을 불렀다.
  -야, 권도운!
  토끼는 목발을 짚고 뒤뚱거리며 걸어왔는데 왼쪽 다리가 없어 빈 바짓단만 허공중에 나풀거렸다.
  -언제 나왔냐?
  -두, 두, 두 달 전쯤에…….
  -너란 놈은 참 운도 좋구나. 그 빨간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옷을 입고 훈련을 받다 맞아뒈질 줄 알았는데…….
  그는 삐딱하게 말을 했지만 군대동기를 만난 듯 반가운 표정이었다.
  -다, 다리는?
  삼촌이 토끼의 목발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잘라냈지, 뭐. 평생 목발을 짚어야 되는 다리병신이지만 사용해 보니까 이것도 나쁘지 않아. 사람 다리보다 더 튼튼하고 부러져도 아프지도 않고 닳으면 새로 바꾸면 되고, 여러 모로 원래 다리보다 나아.
  토끼는 목발로 바닥을 툭툭 치며 짐짓 쾌활하게 웃어 보였지만 삼촌은 교육대 안에서의 일이 주마등처럼 떠올라 새삼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8)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6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12회 | 나의 삼촌 브루스 리 2011-01-21 10:00
http://blog.yes24.com/document/3034698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112.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동천은 거대한 변화를 맞이했다. 정권을 장악한 군사정부는 수도권에 인구가 과밀하게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동천 일대에 대규모 공업단지를 조성해 서울근교에 산재해 있는 중소기업과 화학, 섬유, 고무업종 등 부적격 공해업체를 이전하는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동천을 공단의 배후도시로 개발해 야산을 깎아내 도로를 뚫고 논밭을 밀어내 아파트를 세우는 등 조용하던 소읍에 산업화, 도시화의 거센 바람이 불어 닥쳤다.
  종태가 사람을 칼로 찌르고 상해죄로 5년형을 선고받은 것은 그의 나이 스물두 살 때의 일이었다. 당시 종태는 토끼파의 일원으로 동천의 패권을 노리는 라이벌 조직의 두목을 살해하려다 실패했다. 허파를 노리고 뒤에서 찌른 칼이 빗나간 것이다. 그는 다행히 살인미수죄가 아니라 상해죄로 처분 받았는데 이는 토끼가 뒤를 봐줘서 가능한 일이었다.
  토끼파의 보스는 물론 토끼였다. 그는 공단이 조성되기 전부터 동천에 자리를 잡고 있던 토박이 건달로 신군부 초창기에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절름발이가 되어 나왔지만 동천에 뭔가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그는 누구보다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가 절름발이라서 사람들은 처음에 ‘찐따’라고 놀렸지만 그는 진짜 찐따는 아니었다. 그는 ‘발전적 해체’라는 명분으로 지리멸렬하던 기존의 역전파를 없애고 자신을 중심으로 한 토끼파를 새로 주창하는 한편, 아는 동생의 아는 동생, 그리고 또 그 아는 동생들의 아는 동생들을 끌어 모아 조직을 재정비하는 한편, 에미가 창녀였거나 애비가 농약을 마시고 죽어, 늘 이 좆같은 세상 하늘과 땅이 붙어서 들들 맷돌질이나 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원한에 가득 차 상대의 등에 아무렇지도 않게 칼을 꽂아 넣을 수 있는 독기를 가진 뛰어난 인재를 등용하는 한편, 조만간 벌어질 전쟁에 대비해 회칼이나 쇠파이프, 야구방망이와 오토바이체인 등 인마살상용 장비를 갖추는 한편, 이 한 몸 동천을 위해 바친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는 강한 정신력 고취를 통해 한심한 논두렁 건달들을 일당백, 무시무시한 조직원으로 변모시키는 등 곧 다가올 새로운 미래에 대비했다.
  아니나 다를까, 공단에 업체들이 속속 입주하고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자, 서울과 인근 도시에 기반을 가지고 있던 조직폭력배들이 대거 동천으로 세력을 확장해 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술집과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뿐만 아니라 온갖 건설과 개발을 둘러싼 이권에 개입하면서 토끼파를 위협해 왔다. 이에 토끼는 회칼을 빼들고 이들과 맞서 싸웠다. 싸움은 무자비하고 격렬했다. 여러 명이 죽고 여러 명이 땅속에 파묻히고 여러 명이 병신이 되고 수많은 조직원들이 교도소에 가는 둥 동천의 패권을 둘러싼 전쟁은 무려 삼 년이나 계속되었다. 전쟁의 막바지에 토끼는 가장 위협적인 조직의 우두머리를 제거하기 위해 종태를 고용했다. 역 앞에서 신문을 팔던 종태가 자릿세를 요구하는 토끼파 조직원 대여섯 명을 광장 한복판에서 때려눕히자 그의 예사롭지 않은 강기를 알아보고 재빨리 조직원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종태가 비록 상대의 목을 따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것으로 전쟁은 막이 내렸다. 상대편 보스가 칼에 맞고 겁에 질려 동천바닥을 뜬 것이다. 그렇게 마침내 토끼는 삼 년 전쟁에서 승리하고 동천의 패권을 손에 넣었다. 이제 동천에서 그를 찐따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게 된 것이다.
  토끼가 동천을 손에 넣는 과정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기실, 토끼는 조직을 운영하는 능력은 뛰어났지만 그리 강단이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너무 조심성이 많아 과감한 결정을 내리는데 늘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곁엔 독극물의 여인, 오순이 있었다. 당시 토끼는 읍내에서 이 층짜리 건물을 임대해 다방과 당구장을 운영했는데 오순이 일층에 있는 다방을 맡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부부간의 정이 꽤나 도타왔던지 토끼는 늘 베갯머리에서 오순에게 시시콜콜 조직의 일을 털어놓았고 우유부단한 토끼에게 오순은 늘 단호하고 대범한 결정을 내려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끼가 망설일 때마다 오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예요.
  그리고 이에 대한 방법까지 제시해 주었다.
  -골치 아플 게 뭐 있어요? 내가 커피 한 잔 타서 먹이면 간단하게 끝나는 일인데…….
  그녀가 타주는 커피에 뭐가 들어 있었는지, 그래서 그 커피를 마시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 그렇게 만들어진 시체들이 공단 어디에 묻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암암리에 토끼파의 실세는 토끼가 아니라 그녀의 아내인 오순이란 소문이 나돌았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5)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7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11회 | 나의 삼촌 브루스 리 2011-01-20 10:00
http://blog.yes24.com/document/3029697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111.

 

철컹!

면회실 안으로 들어서자 등 뒤로 문이 닫혔다. 밖은 푹푹 찌는 오뉴월 한여름이었지만 좁은 면회실 안은 에어컨이라도 틀어놓은 듯 한기가 흘러나와 몸이 저절로 움츠러드는 기분이었다. 잠시 후, 뿌연 유리창 너머 면회실로 푸른 수의를 입은 종태가 들어섰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종태를 향해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뭐라고 인사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종태가 먼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앉아라. 오랜만이다.

자리에 앉아보니 유리창이 너무 뿌예서 상대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고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유리창 너머로 가슴에 새겨진 수인번호만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수의를 입은 종태의 생생한 얼굴과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나는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지내니?

-그래, 잘 지낸다. 넌 대학 다닌다며?

유리창 너머에서 종태가 짐짓 밝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뭐, 그냥…….

이 년 만에 만난 종태는 골격이 더 커진 듯 몸집이 두툼했고 목소리엔 예전 같지 않은 무게가 실려 있어 딴 사람인 듯 낯설게 느껴졌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이 년 전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입시에 떨어져 재수학원에 다니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었고 그는 기차역 앞 가판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신문과 잡지, 간단한 주전부리와 우유 등을 파는 가판이었다. 우리는 서로 마땅히 할 말이 없어 신발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열차가 출발할 시간이 다 되자 종태는 올라가는 길에 먹으라며 음료수와 과자를 봉지에 싸주었다. 나는 몇 번 사양을 하다 결국 받아들었는데 그때 나는 종태를 교도소에서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럼 이제 대학생이네. 원래 대학생은 이런 데 오면 안 되는데…….

-대학생은 무슨…… 밥은 잘 나오니?

-밥이야 뭐 주는 대로 먹는 거지. 먹을 만해.

5년…… 5년이면 내가 군대에 다녀와 대학을 졸업할 나이였다. 그때까지 종태는 여기서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가겠지.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대학생이면 미팅도 하고 그러겠네.

종태가 먼저 입을 열어 그가 오히려 나를 면회하는 꼴이었다.

-난 그런 거 안 해.

-왜?

-그냥…… 재미없어서.

-그럼 혹시 너 운동권이냐?

-운동권?

-그래. 만날 데모하고 그런 애들 있잖아.

-난 데모도 안 해.

-그럼 뭐해? 너도 네 형처럼 공부만 하냐?

-아니. 그냥…… 아무것도 안 해.

그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당시 나는 운 좋게 서울에 있는 사 년제 대학에 들어갔지만 캠퍼스를 무시로 배회하기만 했을 뿐, 미팅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데모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에 열중하는 것도 아니어서 나 자신도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고 있던 터였다.

-삼촌은 잘 있냐?

종태가 물었다.

-응. 잘 있어.

-결혼은?

-아직 안 했어. 요즘 충무로에서 영화 찍는다고 왔다 갔다 하는데 뭘 하는지 잘 모르겠어. 서울에 있어도 서로 얼굴을 자주 못 보니까.

-그럼 이제 진짜 배우네.

-뭐, 그냥 단역배우지. 삼촌 말로 으악새 배우라고 하더라.

-으악새 배우?

-응. 주인공이 한 대 때리면 으악! 하고 쓰러져서 으악새 배우래.

내 말에 종태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잠시 마주보며 웃었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종태를 쳐다보다 문득 입을 열었다.

-난…… 네가 이런 데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럼 이런 데 오는 놈은 따로 있냐?

-그건 아니지만…….

-생각해 봐라. 애비가 농약을 마시고 죽었는데 그 새끼가 교도소 말고 갈 데가 어디 있겠냐?

종태는 시니컬했다.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모습이어서 나는 종태가 내가 모르는 낯선 세계로 들어섰음을 확인하고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이때 입회를 하던 교도관이 면회가 끝났다는 것을 알리자 종태는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음에 또 올게.

나도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앞으로 굳이 면회 같은 거 올 거 없다. 대학생은 이런 데 드나들면 못써.

종태는 이미 우리가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을까?

그는 등을 돌려 면회실을 나갔다.

-종태야…….

나도 뭐라고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1) 트랙백(0)
이 포스트를 | 추천 6        
1 2 3 4 5 6 7 8 9 10
진행중인 이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