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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카잘스 그리고 첼로의 고독 | 예술 2018-11-13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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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찾아서

에릭 시블린 저/정지현 역/장혜리 감수
21세기북스 | 2017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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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밖에 없어서 내가 단 한명의 작곡가의 음반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다 버려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바흐를 택할 게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작곡가 별 연주회가 여러 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라면 그때도 역시 바흐의 작품을 선택하리라 확신한다. 바흐가 오페라 작품을 남겼다면 어떤 결과를 낳았을지 항상 궁금하지만 알다시피 그런 일은 없었고 지금 남아있는 작품들만으로도 내 희로애락의 동반자로서 차고 넘친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나 거의 모든 작곡가들이 작곡 영역에서 배제했던 첼로 독주곡(=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바이올린 독주곡(=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의 가치는 그 희소성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이 책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바흐가 작곡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다룬다. 책을 구입할 때 아주 가끔 책 내용에 대한 소개는 훌쩍 건너뛰고 제목만 보고 구입할 때가 있는데 이 책이 그 경우였다. 당연히 곡의 세부 내용-작곡 기법, 음표를 다룬 방식, 바흐의 작곡 의도 및 요청사항 등-을 설명하는 내용이 포함되어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내용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글쓴이가 평가하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이러한데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연주자가 숨을 곳은 아무 데도 없다. (P.207)' 실제 공연장에서 이 곡의 연주를 몇 번 듣고 봤던 경험으로 짐작해보자면 충분히 연습을 해서 기술적으로 완벽을 기해야 함과 동시에 절대 고독의 상황에 맞서 자신을 일으킬 수 있는 담대함을 갖추지 않으면 많은 사람 앞에서의 연주는 불가능하다고 보였다.  

 

책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라는 작품을 둘러싼 작곡가 바흐의 삶의 이야기와 첼리스트 카잘스의 삶의 이야기, 이 곡의 굴곡진 역사-악보를 중심으로 한-를 취급하면서 글쓴이의 곡 체험이 추가된다. 1번에서부터 6번까지의 여섯 곡마다 여섯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특징을 활용해서 서른여섯 개의 장으로 이야기 구조를 구분하고는 어떤 장에서는 바흐 이야기를 하고 어떤 장에서는 카잘스 이야기를 한다. 마치 호모포니 두 곡이 섞여서 진행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다 곡이 주제가 되면 둘이 또 섞여서 나오는 폴리포니처럼 보이기도 한다. 글쓴이가 원래 칼럼을 쓰던 사람이라서 그런지 군더더기를 줄인 글이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곡 자체를 세세하게 해체하고 분석하지 않지만 곡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상황을 전달하는 데에는 탁월하다.

  책의 내용을 세세하게 다룰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이 바흐와 카잘스라는 거인들을 큰 틀에서 이해하는 데 큰 무리가 없도록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은 언급하고자 한다.

  바흐와 카잘스의 사후 상황까지 상세히 설명하는 내용은 기대를 뛰어넘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기실 이 책의 주인공은 사람만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자체이기도 하므로 유한한 인간의 생명주기를 넘어서는 이야기가 전개됨은 당연한 결과이겠지만 말이다.

 

내가 바흐와 카잘스에게 끌리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보여준 저항 정신이다. 둘의 저항정신은 그 결이 많이 다르지만 주어진 체제 안에서 안주하지 않은 모습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본다. 자신들의 장점을 살린 저항 방법이라는 면에서도 그렇다. 카잘스야 파시즘에 반대해서 보였던 여러 가지 행동으로 워낙 유명하지만 바흐가 웬 저항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책에 나오는 바흐의 인생사를 살펴보고 그가 작품 속에 남긴 메시지를 읽다보면 그런 코드가 자연스럽게 읽혀진다.

 

사실 카잘스의 연주는 오랫동안 기피했었다. 그의 연주 음반을 구입했던 게 개략 20년 전이었는데 그 전에는 푸르니에나 빌스마, 토르틀리에 등의 연주로 이 곡을 감상했다. 열악하다고 알려졌던 음질, 시대악기 연주에 의한 접근과는 결이 다른 연주라는 세간의 평 등을 감안해던 결과였다. 그러다 죽기 전에 카잘스는 한번 들어봐야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의 연주를 듣기 시작했다. 최고의 연주인지 어떤지 내가 판단할 바는 못 되지만 이 곡을 듣는 사람이라면 안 들을 수는 없겠다는 평가를 한다.

  누구의 연주가 되었건 지치고 고단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온 늦은 저녁에 이 곡의 음반을 오디오에 올려놓고 듣는다면-BGM이라도 좋겠다- 위로를 받게 되지 않을까 한다.

 

P.S. 1 글쓴이는 프렐류드라는 명칭을 들으면 바흐가 떠오른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쇼팽의 프렐류드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24곡으로 구성된 쇼팽의 전주곡(=프렐류드)을 오롯이 듣는 즐거움도 꽤 큰 호사가 될 테다.

P.S. 2 책의 뒷부분에서 오타를 몇 가지 발견했는데 특히 곡명 오류는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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