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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을 통해 자신을 내비치는 피아니스트 | 예술 2020-04-1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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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

임현정 저
페이스메이커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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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베토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한다는 뜻이 아니라 좋아하는 작곡가를 꼽을 때 우선순위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내게 베토벤은 자주 무겁게 들린다. 남들은 잘 이해하고 좋아하는 베토벤을 왜 나는 띄엄띄엄 좋아할까 하는 생각에 그에 대한 전기도 여럿 찾아 읽고 교향곡에서부터 성악곡까지 다양한 음반도 찾아 들었지만 여전히 바흐나 모차르트, 쇼스타코비치에 빠져들 듯 다가가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템페스트32번 중 2악장인 아리에타, 피아노 삼중주 7번 대공, 현악 4중주 중 몇 곡 등 좋아하는 곡이 없지 않지만 말이다.

  베토벤과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늘 컸다. 억지로 그러고 싶지는 않았는데 마침 연주자 관점에서 바라본 베토벤에 대한 책이 나왔다는 정보를 대하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서라면 나도 모르게 친 벽을 조금이라도 허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읽기에 도전하게 되었다.

 

  

 

임현정은 그의 이름을 알린 2012년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이하 베피소) 발매에 앞서 유투브에 올라온 몇 가지 영상을 보고 알게 되었다. 클래식 음악 사이트에는 오래 전개략 2009년경부터 그의 속주를 보여주는 영상이 올라오고 있었다. 시작은 죄르지 찌프라 Gyorgy Cziffra가 편곡한 림스키코르사코프 작곡의 왕벌의 비행 연주였다.

  임현정은 보통 한 연주자가 몇 곡씩 묶어 한 장 한 장 따로 발매한 연주들을 모아서 전집으로 펴내던 이전의 관행과는 달리 낱장 발매 없이 한 번에 베피소 32곡 전곡을 세트로 내어놓아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도대체 이 젊은이그는 1986년생이니 2011년 베토벤 전집 녹음 시 25살이었다의 연주가 어떻길래 당시의 메이저 음반사였던 EMI가 이런 파격을 행했을까 해서 말도 많았다. 나는 발매 당시에 얼른 이 세트를 구입해 모든 연주를 다 들어봤으며 이후에 있었던 그의 연주회에 가서 CD에 사인을 받기도 했다. 녹음 연주에 대한 느낌은 이 리뷰에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유투브에서 찾아보시기 바란다.) 단 악보와 일일이 비교해서 듣지 않았지만 그의 연주는 베토벤의 메트로놈 지시를 정확히 지켰다고 한다. 책 내용에도 베토벤의 템포, 메트로놈 얘기가 나온다.

  그의 연주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음반 발매 당시에 나온 기사 등을 읽고 그가 베토벤에 대해 꽤 깊이 연구했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로부터 또 시간이 흘렀으니 그의 베토벤 이해가 더 깊어졌으리라는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임현정은 베토벤의 긴 전기를 쓰지 않았으며 그의 모든 작품을 책 속에 등장시키지 않는다. 그의 전공 영역이라 할 수 있는 피아노 소나타 조차도 모든 곡을 다루지 않는다. 그저 베토벤이 살아낸 삶의 몇 가지 결정적 장면과 이런 삶을 통해 만들어낸 음악의 의미와 가치를 들려준다.

  임현정은 나처럼 베토벤을 멀게 느끼는 이들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다리를 놓아준다. 그의 의도는 프롤로그에서부터 드러난다. 베토벤의 가슴 안에서 뛰었던 심장과 지금 우리 안에서 뛰고 있는 심장은 다름이 없어서, 시간을 초월해 수백 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음악을 충분히 생생하게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다(P.9~10). 자신도 처음에는 베토벤을 엄격하게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의 병으로 인해 사고思考가 바뀌었음을 토로하고 자신이 먼저 받은 선물을 다른 이들에게도 나누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한다.

  책의 본문은 총 네 개의 장으로 구분되어있다. 첫 번째 장에서는 베토벤을 등장시키기 전에 클래식 음악이란 무엇인지 핵심을 찔러 설명하고 그것이 삶의 어려움조차 극복하게 하는 역할까지 하며 우리를 하나로 연결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베토벤 자신이 청력 상실 등 절망의 상태에서 음악을 통해 그런 상황을 넘어섰음을 그의 삶의 모습과 작품 세계를 통해 보여준다. 그런데 임현정은 베토벤을 설명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베토벤에게 투영한다. 이런 글쓰기가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는 점이 책의 장점이 된다. 베토벤만이 아니라 검은 옷의 마녀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임현정 자신도 좀 특별할 뿐으로 우리 중 하나라는 인상을 주며 친근하게 다가서게 한다.

  두 번째 장에서는 베토벤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운명과 어떻게 대담하게 맞섰는지 밝힌다. 평민이었던 그가 음악을 소비하는 계층이었던 귀족 계급에게 자신을 굽히는 대신에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작품 설명을 통해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장에서 임현정은 본인의 음악관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독창적인 해석이란 없다. 그저 뚜렷하게 전무후무한 진정성 있는 해석이 있을 뿐이다. (P.113) 그러면서 작곡가가 악보를 통해 표현한 세상을 연주자는 몸으로 표현하면 된다고 한다. 뒷장에서도 계속 이어지지만 임현정은 베토벤의 자유의지와 자신감, 개성을 강조한다.

  세 번째 장에서도 베토벤의 특성은 반복해서 강조된다. 사실 이 장에서는 베토벤의 템포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베토벤은 그의 곡마다 메트로놈 지시를 명확히 해서 자신이 원하는 템포를 알렸다. 하지만 베토벤의 템포 지시가 무시되고 느리게 연주되는 현상을 두고 임현정은 악단이 대규모화하면서 연주의 질을 맞추기 위해 속도가 느려졌다는 설을 지지한다. 그로 인해 베토벤의 의도가 왜곡되어 전달된다는 의견을 덧붙여서. 관현악에서는 시대악기 연주 단체가, 피아노 소나타 쪽에서는 임현정이 인 템포로 연주하는 데 이걸 기존의 연주와 비교하면 인 템포의 연주가 오히려 어색하게 들린다. 임현정의 주장을 무시할 이유는 없지만 인 템포가 아닌 연주의 가치를 낮추는 건 무조건 타당한지 어떤지 고민이 된다. 이런 고민과는 별개로 아다지오나 라르고 같은 템포 용어에 대한 설명은 생각을 깨이게 하고 그 동안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많이 풀어준다.

  마지막 네 번째 장은 거장이 된 베토벤조차 여전한 사회의 차별 앞에 가로막히는 상황을 보여준다. 자신은 위대한 음악을 만들어내고 사회는 개방되는 방향으로 바뀌었지만 만들어진 벽은 금방 없어지지 않는다. 그런 차별은 지금도 계속된다. 베토벤은 긴 투쟁을 통해 개인의 불행과 사회의 차별을 넘어 자신의 내면에 행복의 틀을 만든다. 임현정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에 담긴 메시지를 통해 그가 세상과 화해했다고 해석한다. 과연 그랬던가 하는 의문이 남지만 임현정은 그렇게 이해한다.

  각 장의 마지막에는 안녕, 베토벤이란 타이틀을 붙여 영화 속 쿠키 영상처럼 추가 정보를 준다. 베토벤의 불우한 유년기, 이루지 못한 사랑, 그의 제자들과 그의 죽음의 원인이 들어있다. 임현정이 얘기하려는 본류에서는 벗어나있지만 베토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을 추가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임현정은 참 맛깔나게 글을 쓴다. 어쩔 수 없이 비전공자에겐 어려울 수밖에 없는 내용이 들어있지만 대부분 쉽게 개념을 전달하는 글쓰기예를 들어 템포 델라마노와 템파 델라니마의 비교 설명를 통해 그 어려움의 단계를 낮춘다. 베토벤의 상황과 자신의 상황을 오버랩시켜서 베토벤을 우리 가까이 데려다 놓고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설정은 다른 책을 읽으면서 받았던 엄격하고 괴팍하며 독불장군 같은 베토벤의 인상을 한참 누그러트린다.

  음악의 순기능에 대한 생각도 뚜렷해서 그가 글과 연주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려는 가치에 대해 신뢰감이 생기기도 한다. 음악의 본질 자체는 이타적이라서 사람들을 위로하며 치유해주는 힘을 갖고 있다(P.40).

  곡의 세부를 설명하는 내용에서는 그 명징함이 곡에 대한 이해를 높여준다. 한 예로 전통적인 레치타티보와는 달리 피아노 페달의 도움을 받아 풍부한 울림으로 신비로운 음향을 만들어내며(P.14) 같은 설명이 그렇다. 봐도 잘 모르기는 하지만 악보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그런지 어떤지 악보를 열어보게도 한다. 왠지 그런 것 같다. 이처럼 나 같은 비전공자의 입장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들어보기 힘든 설명들이 자주 등장해서 해당 곡을 다시 들어보며 곡을 보다 깊이 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설명 모두에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는다. 가령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와 베토벤의 템페스트를 연결하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무지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두 작품은 연결 고리가 없다고 알고 있다. 게다가 나는 베토벤의 템페스트를 들을 때 그 악상에서 셰익스피어를 한 번도 떠올려본 적이 없다. 의도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많지는 않으나 이외에도 일부분 이처럼 동의하기 어려운 데가 있다.

  또 베토벤이 작곡가로서의 자아를 내세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의 사회상이 변화한 영향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베토벤의 깨인 의식이 전부인양 영웅시하는 글쓰기에도 약점이 있다. 베토벤이 모차르트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더라도 베토벤이 될 수 있었을까? 베토벤은 모차르트가 남긴 음악 유산을 이어받기도 했지만 모차르트가 넘어설 수 없었던 환경이 바뀐 혜택도 받았다는 게 일반적인 설명이지 않던가.

  동의하지 않는 내용에 대해 언급했지만 이것들이 전체 방향을 흐트러트리지는 않는다. 악보라는 객관화된 자료에 기초해서 베토벤이 전달하려고 한 메시지를 들려주면서 그의 삶 모두가 우리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임현정 자신의 얘기와 직조해서 펼쳐 놓기 때문이다. 전체를 놓고 보자면 책의 제목처럼 베토벤을 선물 받았다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든다. (베토벤을 깊이 연구한 평전으로는 얀 카이에르스가 쓴 베토벤을 추천한다.)

  책 안에는 설명하는 곡을 들을 수 있는 QR코드가 첨부되어있다. 임현정 본인의 유투브 계정에 담긴 곡으로 연결되는데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설명을 좀 더 상세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나는 QR코드 연결 대신에 그의 CD를 틀어가며 책을 읽었다.) 이 계정에 들어가면 책을 나누어 읽으면서 추가로 설명을 더 하고 방송에 참가한 이들과 소통하는 링크가 다수 있다. 실제 연주를 통해 알기 쉽게 알려주는 내용도 있어서 들어보니 도움이 된다. 참조하시기 바란다.

 

그런데 책 내용 중에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문단문장이 아니라 문단이다이 하나 들어있다. 지난 금요일(4/10) 출판사에 이 문단의 이상함에 대해 메일로 질문을 넣었는데 아직 답변을 듣지 못했다. 내 추측으로는 두 개의 문단이 편집 과정에서 섞였거나 글을 쓰면서 실수를 했다고 여겨진다. 내가 잘못 읽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출판사로부터 답을 받으면 그 내용을 덧붙이려고 한다. 어느 쪽의 어떤 내용인지 서평단으로 뽑히신 다른 분들께서도 확인해보시기 바란다. 지금 편집/구성에 매긴 별점은 이 오류와 기타 몇 가지 오타 등을 감안해서 정했다.

 -> 아직(4/18 현재) 출판사의 답이 없어서 미리 얘기하자면 192쪽의 첫 문단이 그렇다. 이 문단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5번의 2악장을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산책자의 멜랑콜리와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으로 표현한 무사태평한 새들의 지저귐이라는 표현으로 이 악장을 설명한다. 이 곡과 표제가 같은 교향곡 6번 '전원' 2악장의 내용과 뭔가 뒤섞인 설명이라 여겨진다. 피아노 소나타는 피아노 독주로서 다른 악기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고로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이 등장해서 새들의 지저귐을 나타낸 전원 교향곡 2악장을 들어보시기 바란다. 5분 40초경부터 이 악기들이 등장한다.

 

P.S. 임현정의 왕벌의 비행 연주가 놀랍다고 생각하신 분들은 죄르지 찌프라의 연주도 찾아서 들어보시기 바란다. 저 세상 연주란 게 이런 게 아닐까 싶은 경외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YES24 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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