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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의 바깥' - 이혜미 | 문학 2019-02-22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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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보라의 바깥

이혜미 저
창비 | 2011년 09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제목만큼 아름다운 시집이었어요.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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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들을 구경하다가 '보라의 바깥'이라는 제목이 너무 눈에 들어와서 주문한 시집입니다. 작가파일을 봤는데, 작가님이 19살 즈음 등단했다는 사실도 놀라워서 더 궁금해졌어요. 시들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특히 좋은 시마다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였는데, 너무 많아서 나중에는 붙일 자리가 없어질까 봐 걱정했습니다.

 

사랑에 관한 시들이 많은 것 같아요. 시를 해석하면서 읽는 편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시집을 읽어내리면서 '아픈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다른 시집들에 비해 '당신' 이나 '애인'이라는 말이 더 자주 나와서요. 그 마음을 섬세하고 서늘한 언어들로 포착한 것 같은 좋은 시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책을 읽을 때 너무 좋은 구절들이 나오면 포스트잇들에 옮겨 적은 뒤 노트에 붙여 모으고 있습니다. 그렇게 벌써 노트 한 권을 다 써 가는데, 이번에는 '보라의 바깥'으로도 한 면을 채우게 되었어요! 손으로 적어서 마음에 계속 남기고 싶었던 아름다운 구절들을 보여드릴게요!

 

 

*

' 광물의 조흔색을 흉내내며 당신의 살에 얼굴을 부비면, 나에게서 조난당한 탄흔들이 당신에게로 쏟아져내릴까요 이 문장을 더듬어볼 당신 눈동자를 떠올리면 심장의 뒤편이 수지류 수목들로 울창해집니다 흔적, 오직 흔적을 남기고 떠나기 위해 먼 나라의 기후들은 닫힌 당신의 창가에서 밤새 정처 없습니다 '

 

- '얼음편지' 중 -

*

 

개인적으로 이 시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구절 중 하나였어요. 조흔색은 광물이 가루가 되었을 때 나타나는 색인데, 그걸 흉내낸다는 건 어떤 감정일까요. '나에게서 조난당한 탄흔들이 당신에게로 쏟아져 내릴까요'에서 '탄흔'은 어쩐지 그녀의 슬픔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흔적이 남은 상처들이 조흔색이 되어 '당신'에게로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아, 그녀에게 '당신'은 사랑이자 의지처일까요? 그러나 먼 나라의 기후들이 그토록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당신의 창가는 닫혀 있습니다. 먼 나라의 기후들은 무언가를 흉내내 당신의 살에 얼굴을 부벼야 하는 그녀와 비슷한, 갈 곳 없는 존재인 것일까요.

 

 

 

 

'이제 누가 리라를 연주하지?'는 연인에게 느끼는 사랑을 너무너무 정확하게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좋아요.

*

너는 웃고

나는 쏟아져

하나의 음표가

순식간에 모든 악보를 지운다

 

- '이제 누가 리라를 연주하지?' 중 -

*

 

해석은 다 다르겠지만, '네'가 웃어서 나의 마음은 와르르 하늘로 떨어져 내리고, 당신이라는 음표 하나로 다른 모든 것들은 지워진다고 말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연심의 표현법이 사랑스러워서 좋습니다. '좀 더 투명한 쪽'은 어떤 곳일지 생각이 닿지 않습니다. 어쩌면 바쁜 '너'와 말하는 이의 사랑이 점점 희미해지는 곳은 아닐까 하고 추측을 해봐요.

 

 

 

 

*

잘자요, 당신의 미간에 입술을 묻으며 나는 간신히 서정에 가까워집니다

 

- '리샨' 중 -

*

 

사랑하는 사람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서정에 가까워지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이 시를 읽으면서는 다정하면서도 어딘가 서글픈 느낌이 들었어요. 우리는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할 수도 있는 걸까, 하고요. '비밀'을 가진 당신, 병든 신부, 피 흐르는 소리와 같은 시어들을 볼 때 상황은 검고 흐린 것 같습니다. 말하는 이의 상냥하고 모호한 감정이 온기를 품고 비에 젖어 저에게까지 도달하는 것만 같아요.

 

 

 

 

 

어두워 곧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아름다운 시들이었어요.

 

마지막으로 제목으로 쓰인 시인 '보라의 바깥'의 일부분입니다.

 

*

유리로 만든 베일을 쓰도 대기권을 바라본다 나는 이곳에 색을 짊어지러 온 사람, 얼음조각 속에 우연히 들어간 공기방울처럼 스스로 찬란할 수 있을까 관여할 수 없고, 무엇과도 연관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그것을 만져보는 순간, 세계는 투명하고 위태롭게 빛난다

 

이제야 나는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눈을 감고

몸 안을 떠다니는 흐린 점들을 바라본다

발밑으로 빛의 주검들이 흘러내렸다

 

 

 

- '보라의 바깥' 중 - 

*

 

'관여할 수 없고, 무엇과도 연관되지 않는 것들'은 어떤 것들일까요. 시인이 말하는 '그것'이 무엇인지 저는 알 수 없지만, 저도 그녀를 따라 '얼음조각 속에 우연히 들어간 공기방울'처럼 스스로 찬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에게는 '빛'이 어째서 흘러내리는 주검이 되었는지 이해하고 싶어요.

 

 

시인의 다음 시집인 '뜻밖의 바닐라'도 함께 주문했는데, 시가 어떻게 변했을지 너무 궁금해서 어서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 정도로 좋은 시집이었으니, 고민하시는 분들은 제 리뷰를 보시고 꼭 주문해 마음을 보라의 바깥으로 물들여 보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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