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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를 들어 본 적 있나요? | 문차일드 동화리뷰 2011-05-3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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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김려령 글/장경혜 그림
문학동네어린이 | 201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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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책으로 쓰면 대하소설 분량정도는 거뜬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요. 등단을 하고, 하지 않고의 (어마어마한) 차이를 제쳐두고서, 사람이라면 일생에 한 번 자신의 인생을 재료삼아 글을 지어야할 필요가 분명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마다의 인생에서의 도피와 도약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 중에서 얻어지는 부산물일 수도요. 내 인생을 돌아보기 전에 부모님의 삶을, 우리 시대를 진단하기 앞서 역사의 축적을 거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내 이야기를 원천으로 한 무수한 형태의 '대하소설'을 낳을 수 있는 것은 과연 어떤 기분일지, 미천한 능력은 생각지도 않은 채 욕심만 커져간 적이 있진 않은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은 심적 고백을 덩그러니 하나.

 

'문밖동네'에서 "내 가슴에 낙타가 산다"로 화려하게 등단한 동화작가 '오명랑'이라니, 과연 자신을 재료 삼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김려령 작가의 호방함에 감탄이 나와요. 수상작 이후 열심히 세상에 잊히는 수순에 빠져든 오작가는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고자 1개월 무료의 특전을 내걸며 '이야기 듣기 교실'을 만드는데, 오히려 세 명'이나'되는 아이들이 모였다는 게 놀랍습니다. '제목도 이상하고 더는 팔지도 않더라'며, 자신의 수상작을 문제 삼는 당돌함까지, 오작가는 과연 무사히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런지, 심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영어학원에 가는 것보다 여기가 그나마 나아서 왔다는 무한 꿀밤 유혹을 부르는 종원이, 부록쯤으로 엄마가 딸려 보낸 동생 소원이, 동화작가 지망생이라면서 오작가를 취재원 정도로 여기는게 아닌가싶은 나경이를 보면서 이야기교실의 은밀한 청강생인 독자들의 동정이 부풀어 오를 무렵.

 

이야기를 해부하고, 논술하고, 창작법을 가르치는 곳이 아닌 '듣는' 소소한 공간. 조선시대의 전기수 마냥 오작가의 이야기 들려주는 시간은, 이야기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시절에 약소하지만 우직한 울림을 갖기 시작합니다. '건널목 아저씨'라는 기이한 사내의 행적을 집에 가서 고하노라면 등짝이나 맞기 십상이었지만, 꼭 한 번 털어내야 하는 이야기, 너무나 간절히 그리워했던 이의 이야기, 상처이자 구원인 그 때 그 시절 이야기가 가진 힘은 점점 찬연해지기 시작합니다. 단순히 한 남자의 도시에서 보기 드문 의로운 행적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오작가의 온 가족이 등장하게 되는 것을 보면 이것이 일종의 고해성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야기교실의 공식적인, 그리고 보이지 않는 수강생들은 알아차릴 수 있게 되지요.

 

어쩌면 건널목 아저씨와의 해후를 위해 동화작가가 되었는지 모를 오작가는 스스로 그 이야기를 다듬어내기엔 차마 원석을 힘껏 내리쳐 가공을 거치는 일을 할 용기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너무나 오랫동안 고여 있던 이야기가 독처럼 자신을, 가족들을 좀먹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을 지도요. 여전히 동화작가보다 예비 사회부 기자처럼 보이는 나영이가 동화로 만들어보겠다는 포부가 그토록 반갑고 인상적이었던 이유 또한 이야기의 유구하고 생기 넘치는 원천을 신뢰할 수 있는 이들의 공감대 때문은 아닐까 해요. 인생을 재료삼아 문장을 짓고, 작품을 내고, 독자와 담을 허물어 가며 소통하는 이야기의 힘이 어느새 작은 교실을 충만히 채워나가는 것, 건널목 아저씨의, 그리고 오작가네 가족사는 어떤 동화로 자리 잡을 지, 먼 훗날의 문밖동네 수상작으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김려령 작가는 오명랑 작가를 통해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슬픔으로 가득한 인생일지라도 결국은 웃을 수 있는 것이라고. 떠들썩한 옛날 옛적의 장터에서 민초들을 한껏 끌어 모으고, 책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이야기의 열망을 실현시켜준 전기수처럼, 우리네도 저마다의 건널목 아저씨를 가졌다는 것, 분명 고요한 내면에 깊숙이 잠겨 나를 완성시킨 어떤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킬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도 작은 골방에서 가공되지 않은 채의 이야기 원석과 씨름하는 무수한 작가들이 있겠지요. 저마다의 인생을 재료 삼아 지어내는 이야기 안에 휘청대는 삶의 무게와 해학을 담아내려는 그들에게, 우리 또한 당신이 들려줄 이야기를 고대하고 있노라고 전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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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웃은 안녕하신가요? | 문차일드 그림책리뷰 2011-03-0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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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어제 저녁

백희나 글,그림
Storybowl(스토리보울) | 201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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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백희나 작가는 그림책의 영역이 벗어난 곳에서도 화제에 오르곤 했는데, 신작 <달 샤베트>로 누려야하는 당연한 찬사를 가린 것은 아니었다 해도, 굿 뉴스와 배드 뉴스를 오가는 행보는 독자가 보기에도 마음이 몹시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공전의 히트작 <구름빵>이 애니메이션화 되면서 다시금 불거진, 작품의 미디어믹스가 아무리 활발히 전개된다하더라도 정작 작가는 어떠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다는 현실이 새삼 화제가 되기도 했고, ‘달샤벳’이라는 걸그룹이 백작가의 반대를 존중하지 않고 이름만 살짝 변형해서 나오기까지. 그럴수록 작가의 1인출판사인 스토리보울과 신작들이 소중해져오는 기분,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응원해마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더운 여름밤, 달마저 녹여버리는 열대야 속에서 벌어지는 떠들썩하고 훈훈한 소동을 다루었던 <달 샤베트>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스토리보울에서 나온 또 다른 책 <<어제 저녁>>. 참으로 백희나 답기도 하고, 그를 짐작하는 것이 미안해지기도 한 이 새로운 선물 같은 책을 아끼고 아껴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몇 번이고 읽을 때마다 인상을 달리하는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동물이웃들이 벌이는 아주 소소한 일상의 한 컷 한 컷이 이다지도 따스한 반향을 일으키다니, 그의 손끝에서 피어난 빛 그림책의 세계관은 원숙미보다는 언제나 참신한 시도와 진정성으로 독자를 매혹시키는 것을 확인한다.
 
‘동글동글동글 구름~빵’의 홍비네 가족, 녹아버린 달을 샤베트로 만들어 주민들에게 나누어주던 늑대반장 아주머니네 아파트와 다른 점이 있다면 <<어제 저녁>>에는 포커스가 맞추어진 특정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등장하는 동물이 전부 자기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면서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구성은 ‘이웃’이라는 테마와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외출을 준비하는 얼룩말(프로필에 따르면 ‘피겨 스케이터를 꿈꾸는 발랄한 소녀’)은 단순히 표지의 이미지가 아니라 스토리의 일부로 존재하면서, 개성만점의 이웃들의 일상 속으로 보는 순간 초대받데 되었음을 이내 알게 된다. 양말 한 짝을 잊어버린 407호의 개 부부가 여차 저차해서 다시 양말을 찾게 된 이야기라고 요약해버릴 수도 있는 저녁 무렵의 소동을 이웃 모두의 관점으로 재구성해나갔을 때 완성된 퍼즐은 당신이 짐작한 그 이상일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얼룩말 소녀로 시작해 간지마저 생략하고 곧바로 중계되는 이 아파트에는 양말 한 짝을 잃어버리고 패닉에 빠지는 개 부부, 유난히 부수수해 보이는 양 아줌마, 여우, 언제나 배고픈 심약한 사냥꾼 여우, 8마리 아기 토끼들을 돌보는 오리 유모, 407호의 더부살이 주민 생쥐부인, 아기 토끼의 아버지로 밝혀지는 감기 걸린 흰토끼씨, 초콜릿 3단 머드 케이크를 배달 중인 까망고양이, 배고픈 여우친구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 산양이 벌이는 ‘타인의 삶’이 중계되는 듯하다가, 병풍 책처럼 접혀있어 전반의 마지막장이 후반의 첫 장과 연결되어있는 구성에 무릎을 탁 치면서 확인하게 되는 ‘반전’의 묘미란!스쳐지나갈 뿐인 무 존재로서의 이웃의 일상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펼쳐지고 친밀해지 수 있는지를 책 넘김을 달리해 역설해주는 기가 막힌 솜씨가 아닐 수 없다.
 
백지로 숨겨져 있는 날개부분을 펼치면 '유쾌한 아파트 주민들'의 프로필이 친절히 안내되어 있는가하면, <달 샤베트>에서도 볼 수 있었던 ‘엔딩 크레딧’을 다시 만날 수 있다. 곳곳에 숨겨진 다정한 배려와 위트가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하고 있는 덕분에 ‘지구의 내일을 위해 콩기름 인쇄를 했‘기 때문에 코팅되어 있지 않은 그림책의 표면에 지문이며 흔적이 무수히 남게 될 것을 예감한다. 양말 한 짝을 잃어버리고 되찾은 단순한 일상 안에 따뜻하고 보드라운 앙고라 스웨터를 닮은 위안을 담아낼 수 있다니, 어느새 ‘타인의 삶’이 아닌 우리로 묶이게 되는 포근한 연대에 대해 절로 생각해보게끔 만든다. 오리 유모가 아기 토끼들을 재우면서 읽어주던 ‘그 책’처럼, 이 책 또한 내가 사랑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가만가만 속닥속닥 읽어주고, 함께 들여다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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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어느 시공에 서서 | 문차일드 소설리뷰 2011-02-21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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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오수완 저
뿔(웅진문학에디션)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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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인지할 리 없는 어느 시공의 여러 갈래 평행 우주 가운데 이런 시대 하나쯤 존재하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까? 책의 시대가 종언을 맞은 책의 죽음과 책을 둘러싼 암투가 음지와 양지에서 횡행하는 시절. 책을 금서하고, 분서하고, 암거래를 위한 루트만이 활기를 띠고 있는 출판 시장이 붕괴한 후의 책 사냥꾼, 책 탐정, 책 강도 등이 등장해 한정된 수요를 위한 욕구를 위한 맞춤 매매가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는 그 시공에, 당신의 또 다른 자아는 과연 어떤 역할로 등장하게 될 지, 책을 탐하고 있는 작금의 당신이라면 순식간에 적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장서가, 애서가, 탐서가, 고서수집가, 출판관계자, 작가, 그리고 일반적인 독자의 또 다른 모습을 이 책에서 본다. 『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가 구축하고 있는 책의 시대는, 책을 꿈꾸고 탐하는 이들이 그리는 책으로 이루어진 우주의 음울한 자화상이다. 출판 시장이 붕괴하고 전국적인 규모의 분서시위가 개최될 예정인 책의 종말이 예견된 시대를 근근이 지탱하는 책 사냥꾼은 책을 구하고자 하는 이들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초월해 존재하는 자들이다. 이들이 구하고자 하는 책은 존재한 적이 없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책 속의 책으로 인용되는 활자와 기억 속에서 재생 가능하기에 추적하지 못할 것도 없는 미묘하긴 하지만 극한의 목적의식을 부여하기도 한다.

 

출판계가 몰락하고 나서 고서를 매매하는 가장 독보적인 단체인 미도당의 의뢰로 일선에서 물러나 헌책방에 은거해있던 반디가 책 사냥꾼으로 다시 나설 수밖에 없던 이유는 몇 안 되는 지인과 가족에게 가해질 보복 때문인지, 아무도 발굴해내지 못하는 존재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전설의 책을 찾아내고자 하는 본연의 소명 때문이진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다. 책 사냥꾼들은 존재하지 않는 책을 추적함으로써 책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그들의 뒤를 좇을 후계자들을 위해 회고록을 쓰는 소명을 부여받은 자들로, 책의 무덤가를 배회하는 하이에나의 이미지가 절로 그려지기도 한다.

 

책을 위한 책들의 방대한 계보 사이에서 뭔가 걸출한 족적을 남길 것 같은 기대감으로 출발한 탓인지, 책 사냥꾼 반디의 회한의 일대기는 한 없이 늘어지고 긴장감이 결여된 독서경험을 유발한다고 서글프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젠틀 매드니스'의 정점에 선 거장들의 그림자를 취합해 독자적인 책 모험담을 만나리라 예상했다면, 배신과 반전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일관되게 변죽만 울려대는 정교하고 영민해 보이지만, 위트와 해학이 결여된 독백을 견뎌내야 하는 고역과 마주하게 된 것이 아쉽기 그지없다.

 

미도당이 의뢰한 책이 단 한 권이 아니라 일련의 단서를 담고 있는 복수의 책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와중에 반디가 보호하고자 했던 지인들이 모두 연관인물로 밝혀지고, 배신과 음모가 얽혀 아무도 신뢰하지 않아야하는 책 사냥꾼의 수칙을 지키지 못했을 시의 폐해를 사무치게 겪어내는 과정은 하드보일드 추리물의 긴장감을 표출해야할 것만 같은데, 이 책이 걷는 노선은 절망과 회환으로 버무린 공허한 독백이 되어버린 것은, 결국은 책과의 소통에 매진하다가 발견하는 책에 갇혀버린 이들이 한 번쯤 겪게 되는 소름끼치는 자기발견일 수도 있다. 책에 미쳐있는 이들이 꿈꾸는 이상의 도서관이 책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담아내는 최종적인 시공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책을 탐하는 것은 특권이자 천형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을 깨닫게 되곤 함으로.

 

에코의 미로 속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양피지에 독을 칠하고 희생자를 기다리던 호르헤 수사가 있었고, 하루키의 도서관 괴담에는 지식을 축적시키고 그 뇌수를 빨아먹는 괴이쩍은 노인이 있었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이기도 하고, 저주받은 책들의 무덤이자 이상의 도서관이라 명명되기도 하는 그 시공에 대한 또 하나의 계보도인『책 사냥꾼을 위한 안내서』. 무는 추적과 배신의 소용돌이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거대한 비밀의 실체는 도서관 괴담류의 그리 신선하지 못한 재생이기는 하지만, 책의 미로 안에 들어설 수 있는 모험에 초대받고 싶지 아니한 의사 책 사냥꾼들이 어디 있을쏘냐. 책의 가장 충실한 추종자이자 적인 인간의 탐욕 앞에서 소실되어가는 미로 서가의 모습을 뒤로 하고, 또 다시 자신만의 서가를 채우려는 반디의 소소한 결심은 책의 죽음으로도 끊을 수 없는 또 다른 책의 시대를 예고한다. 그것이 꼭 충만한 생명력으로 가득한 활극으로 펼쳐지지 않는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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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면 돌아갈게 | 문차일드 소설리뷰 2011-02-0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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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모두 아름다운 아이들

최시한 저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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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는 구름그림자에 심취에 있다. 구름그림자가 무엇인지 설명하기란 그것에 일단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별로 없기에 풀어져 나올만한 이야기 거리는 되지 않는다. 대신 역시 쓸 때 없는 데에만 골몰하는 이상한 아이라는 평판만 공고해져간다. '철학자'라는 별명 또한 책 읽고, 시를 적는 선재의 취향을 폄하하는 조소가 깃든 낙인 같은 것이다. 정작 철학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선재에게 주변에서 들려주는 조언이란 철학을 하려면 일단 대학에 가라는 말뿐이다. 부모님을 잃고 자수성가해 선물가게를 꾸려가는 누나가 볼 때의 선재는 현실감각이 결여된 철딱서니 없는 동생일 뿐, 선재의 모든 일상을 관장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저돌적인 믿음을 관철할 여건이 충분하다고 믿는다.

 

1996년에 출간되어 알음알음 좋은 입소문을 타고 오랫동안 고요히 사랑받은 최시한의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은 단순히 대학입시만을 중요시하는 교육에 관해 반기를 드는 고교생의 일탈로 규정지을 수 없는 성장소설이다. 오히려 "햇빛 때문에……"라며 아무도 이해시킬 수 없는 읊조림으로 기억되는 뫼드소 같기도 하고, 외로운 호밀밭의 파수꾼 홀든처럼 세상과 겉돌며 한참을 어긋난 시공을 떠돌 것 같은 천형을 짊어진 위태로운 존재감을 가진 아이들의 사투가 인상적인. 선재의 일기나 선재의 주변 환경을 둘러싼 분투로 이루어진 연작소설은 정말로 구름그림자의 잔상처럼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애틋함이 서려있다.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에 등장하는 노동문제에 전향적인 성향의 국어선생님 '왜냐 선생님'은 선재나 윤수의 눈에 유일하게 다르게 비치는 어른이다. 말을 더듬고 수줍은 윤수가 선생님의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애를 쓰는 것과 비례해 학교는 입시 교육에서 벗어난 왜냐 선생님의 수업과 교육자로서의 자질을 인정하지 않는다. 고요히 고여 있는 것으로 보이던 윤수가 후에 바바리코트를 입고 등장해 소요를 일으키는 장은 혁명적으로 보이는 찰나와 더불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곧 경계 밖으로의 추방임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선재와 그 친구들이 무기정학을 받게 된 사건에 대해 우리는 정확히 들을 수가 없다. 그저 정체불명의 노인이 사는 외딴 집에서 그들만의 축제를 기획한 것 자체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는 선생님들의 규정에 따라 '반성문을 쓰는 시간'을 강요받아야할 뿐. 무엇을 반성할지 의문을 가지는 것 자체가 죄악인 상황에서 선재나 윤수, 경석이들의 사정은 아마 전과는 다르게, 영영 회복 불가능한 상처와 좌절로 아로새겨질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다름에 대한 뚜렷한 주관을 노출시켜 무리를 동요시키고, 이탈하려는 죄를 용서받기에는 너무나 경직되어 있는 소설 속의 시공이 딱히 90년대이기에 가능했던 이야기라고 어찌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섬에서 보낸 여름'을 끝으로 선재는 여름 한철을 보낸 바닷가 마을을 떠나 누나 곁으로 돌아갈 것이지만, 세상과 섞여들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타의에 의한 추방이든, 자의에 의한 망명이든 선재는 앞으로 구름 그림자에 대한 명상을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둘 것이다. 대안학교를 찾아 기숙사학원을 탈출한 윤수가 그곳에서는 안식을 얻을 수 있을지도 낙관만을 할 순 없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뇌하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던 아날로그보다 더욱 아날로그 같은 한 편의 명상록, 책장 사이사이에 가득한 멍자욱과 생채기가 쉬이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태풍이 지나면 현실로, 그러나 자신이 만들어낼 시의 세계로 돌아갈 선재의 다짐은 상처로 가득하기에 더욱 간절히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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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다, 그 섬, 그 순정 | 문차일드 소설리뷰 2011-01-3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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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저
문학동네 | 200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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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탕, 묵은지 고등어 지짐, 조기구이, 갈치조림. 요즘 식탁에 자주 올라오는 메뉴들이다. 얼큰한 국물도 일품이고, 살을 발라먹는 재미도 있다. 통통한 갈치조림을 발라먹을 때마다 "제주산 은갈치래. 역시"하는 어머니의 추임새도 빠지질 않는다. 냄비 속의 생선들이 모두 물 좋은 우리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이라는 생선코너의 아주머니의 말을 다 신뢰하지는 않지만, '제주산 은갈치'에 대한 품평은 한 끼 식사를 더 맛깔스럽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바다에 인접한 곳에서 살고 있지 않은지라 토막 난 생선을 보면서 바다를 음미하는 일이 한참은 멋쩍긴 하지만.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이 불어 일으킨 콩브레로의 기나긴 시간 여행처럼, 매콤하게 지져진 갈치 한 토막을 헤집으며 바다로 다다르곤 하는 비릿한 연상 작용의 끝자락에 한창훈의 소설집이 파닥인다. '바다의, 바다에 의한, 바다를 위한' 설을 한결같이 풀어내는 뚝심의 작가 한창훈의 『나는 여기가 좋다』의 첫 단편 '나는 여기가 좋다'에는 팔려버린 배로 마지막 밤낚시를 나선 황혼이혼을 앞둔 선장부부가 등장한다. 죽어버린 어장, 칠흑같이 어둔 밤, 더는 섬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육지행을 선언한 부인의 토악질, 그러다 건져 올린 갈치. 물론 찬으로 만나는 식탁 위의 갈치 토막과 평생을 바다 사람으로, 그 안 사람으로 살아온 회환을 나누는 갈치회로 먹는 소주상은 일상과 일상의 파탄이라는 아득한 격차가 존재하거늘.

 

김훈의 소설엔 헐값에 농지를 정리하고 도시로 흘러들어 일용노동자가 되어버리는 농민들이 등장하곤 한다. 그리고 그 농지를 사들이는 이들은 쇠락한 어촌 마을의 어장을 잃고, 배를 처분한 바다사람들이다. 섬사람들은 시절이라는 파도에 밀려 육지로 상륙한다 해도 쉬이 뿌리내릴 수 없는 상실감에 부유한다. 그렇지만 '천상 바다사람'으로 타고난 탓에 다시금 바다로, 섬으로 돌아오는 이들도 있으니, 시절을 역행해야하는 그들의 유영은 얼마나 힘겨울 것인가. 농치듯 주고받는 걸쭉한 욕설 안에 연민이며, 일고의 희망을 채워 넣은 탓인지 씁쓸하게 시작을 열었던 이 소설집은 바다에서 뿌리내리는 일에 묵직한 낚싯줄을 드리운다. '나는 여기가 좋다'의 선장을 외삼촌으로 둔 용이가 누군가가 폐선처리한 배를 건사하겠다고 선언하는 대목이 말미를 장식하는 '아버지와 아들'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는 끝의 시작이 된다.

 

다른 단편들과 자못 성격이 다른 '밤눈'과 '올 라인 네코'가 삽입되어 거센 풍랑 사이의 잔잔한 물길을 이루기도 하는데, 앞서의 이야기와는 달리 바닷가의 여자들이 등장한다. "시인들은 왜 시를 쓰나 몰라. 유행가가 있는디…… 먼 말이 필요 있다요. 무작정 좋은디, 유행가처럼 그냥 좋고, 더욱 좋고, 또 좋은디"(p.51-52)라는 '밤눈'의 마담의 육성은 그가 했던 외지의 유부남과의 사랑을 정의한다. '올 라인 네코'는 대대적인 성매매단속법 안에서 피어나는 티켓다방 아가씨 미정의 '성 매매가 아닌 사랑'을 그린 촌극으로 다소 돌출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마담과 미정의 사랑은 마치 바다를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이들이 무수히 실패하고 상처 입으면서도 스러지지 않는지에 대한 소품처럼 다가온다.

 

'아버지와 아들'의 용이를 제외하면 바다에 생을 붙잡힌 이들은 황혼을 맞을 준비를 하거나, 생의 끝자락에 다다른 이들이 대부분이다. 50대의 나이에 평생의 꿈이었던 큰 배를 처분해야하는 선장, 서른다섯 남편의 바다에서의 실종을 끌어안고 성실했지만 회한으로 가득한 생을 지나온 노파('바람이 전하는 말'), 참돔 양식장을 '병'으로 잃기 직전의 40대 마을청년회장 역만의 삼도 노인회 관광 가이드 역경기('삼도 노인회 제주 여행기'), 젊은 날의 스치는 인연으로 태어난 얼굴도 모르는 아들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유산으로 넘겨주려는 노인('가장 가벼운 생')등. 『나는 여기가 좋다』의 등장인물의 평균 연령은 노쇠하다는 인상이 짙다. 그럼에도 회환과 실패만이 남은 이들의 읊조림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맞서왔고, 맞이할 파고가 여전히 세차게 흐르고 있음을 짐작하기 때문이다. 바다는 노쇠할지언정 흐름을 멈추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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