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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최인훈, 광장을 찾아서 | 일.고.십 생각나눔 2018-08-0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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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광장/구운몽

최인훈 저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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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데올로기'와 '사랑'이 라는 심해의 숨은 바위에 걸려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by 1973년 서문, 이명준의 진혼을 위하여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은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by. 1961년 서문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광장', 그에 이르는 수많은 골목을 몸의 길을 따라, 마음의 길을 따라 걸어간 그의 발자취 속에서, '힘에 부치는 운명'에 그저 자신을 내어줄 수 밖에 없었던 한 인간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사는 것처럼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광장을 찾아 헤매이다, 결국은 자신의 밀실로부터 자신을 가둬버린 그의 운명의 부르짖음은, 결국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심연의 바닷속에 머물러버린다. 풍문의 역사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며, 허울뿐인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민'의 모습을 찾아헤매는 그의 발자취는 역사의 상흔 위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푸른 광장을 향한 그의 발돋움은 그를 진정한 자유의 광장으로 데려다주었을까.

 

'삶이 시들해졌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는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다만 탈인즉 자기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저도 모른다는 것이고, 자기 둘레의 삶이 제가 찾는 것이 아니라는 낌새만은 분명히 맡고 있다는 게 사실이다. ' (p.38)

 

'자기 삶이 어떤 나무에서 익을 대로 익은 끝에, 곱다랗게 자리 잡고 있던 가지에서 뚝 떨어지기 앞선 얼마 동안, 새로운 움직임을 마련하는 숨결이, 아무래도 본인에게 새어나게 마련이다. '(P.85)

 

 

'사는 것조차' 사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은 나날들, '젊고 가난한 철부지 책벌레' 명준에게 남한의 삶은 그랬다. 사기와 약탈, 탐욕과 배신으로 물들어버린 텅빈 광장, '개인만 있고 국민은 없는', 밀실만이 살찌어지고 있는, 죽어있는 광장 속에서 그저 '몸의 움직임'만이 존재했다. '자유'의 이름을 앞세워 포장된 자본주의의 이기심에 염증느끼며, 어떠한 광장에도 마음을 내어주지 않았다. 철학 뒤에 양심을 숨겨놓은 채, 외로움이 만들어낸 사랑이란 그림자를 더듬으며 허무한 외로움을 달랬다.  

 

단조로웠던 명준의 삶이 핏빛 빛깔로 물들게 된 것은, 기관총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광장을 지키기위해 내달렸던 아버지의 그림자였다. 혁명도, 이념도, 사상도 허용되지 않는 껍데기 뿐인 자유와 반공이데올로기의 억압 속에서 처참히 자신을 무너뜨리는 운명을 보고 나서야, 혁명의 핏빛이 그의 마음에 불길로 번져들었다. 그는 새로운 빛이 필요했다. 빛 뒤에 숨은 컴컴한 어둠은 보지 못한 채, 그렇게 새로운 광장으로, 그의 아버지처럼 마음의 길을 따라 내달렸다.  

 

'신명이 아니고 신명 난 흉내였다. 혁명이 아니고 혁명의 흉내였다. 흥이 아니고 흥이 난 흉내였다. 믿음이 아니고 믿음의 소문뿐이었다. 월북한지 반년이 지난 이듬해 봄, 명준은 호랑이굴에 스스로 걸어 들어온 저를 저주하면서, 이제 나는 무얼해야 하나? 하숙집 천장을 노려보고 있다.' (P.124)

 

그를 기다리고 있던 만주의 붉은 울렁임은 그의 심장을 타들게 하지 못했다. 그가 상상했던 붉은 혁명의 깃발은 광장 어디에도 놓여있지 않았다. 그곳은 그저 '인민'의 가면을 쓴 '제가 낸 신명이 아니라, 무쇠 같은 멍에가 다스리는'(p.178) 그런 곳이었다. 그 속에서 그는 깍아내려져야 했으며, 자기 자신을 내어버리고 나서야, 그들이 만들어낸 굴레에 간신히 몸을 붙일 수 있었다. 그 어느 한쪽으로도 물들지 않는, 물들 수 없는 칙칙한 회색 낯빛을 한 채, 그렇게 회색 '광장'에서 벗어나 두 팔 안의 작은 '밀실'로 숨어들었다. 그 어떤 '이념과 사상의 탯줄로부터 자유로운' 그녀와 함께, 그가 만든 '한 뼘의 작은 광장'에 머무는 것, 그가 회색 광장에서 숨쉴 수 있는 유일한 몸부림이었다. 

 

'이 사람들, 이 친구들이 내 동진가. 하긴 같은 배를 탔다는 것뿐, 처음부터 우리에겐 뚜렷한, 함께 설 광장이 없었던 게 아니냐.(p.107) 

 

'사람마다 다르게 마련된 몸의 길, 마음의 길, 무리의 길. 대일 언덕 없는 난파꾼은 항구를 잊어버리기로 하고 물결 따라 나선다.' (P.185)

 

'모습 없는 죽음의 그림자와 맞서서 지내야 하는 나날'(p.163) 속에서 그녀와 그는 다시금 그들만의 밀실에서 서로를 보듬었다. 자유와 혁명의 총부리 끝이 서로를 겨누는 핏빛 광장에서 뿌리 뽑힌 채, 그들만의 동굴로 숨어들었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끊어짐 속에서, 돛대를 잃고 난파된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때 묻지 않은 광장'으로의 발걸음 뿐이었다. 그 어느 광장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한 채, 사랑도 이념도 없는 낯선, 새로운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환상 없는 삶'에 묻히기 위해서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중립국행'이었다.

 

'그는 지금, 부채의 사북자리에 서 있다. 삶의 광장은 좁아지다 못해 끝내 그의 두 발바닥이 차지하는 넓이가 되고 말았다.' (P.200) 

 

'그녀들이 마음껏 날아다니는 광장을 명준은 처음 알아본다. 부채꼴 사북까지 뒷걸음질 친 그는 지금 핑그르 뒤로 돌아선다. 제 정신이 든 눈에 비친 푸른 광장이 거기 있다. ' (P.200)

 

끊임없이 뒤따랐던 두 갈매기의 어스름을 눈치채고 나서야, 제 마음의 길을 터놓아주고 나서야, 그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광장을 발견한다. 발 디딜 틈도 내어주지 않은 채, 뱃간 한 켠으로 그를 몰아세운 공허한 광장으로부터 벗어나, 그는 푸른 광장으로 자신의 몸을 맡겼다. 환상없는 삶보다는, 제 두팔 안의 작은 광장에 고스란히 담을 수 있는, 무엇하나라도 있을 희망을 찾아 또다른 광장 속으로 깊이 파묻혀버렸다. 영영 돌아올 수 없는 심연의 푸른 광장 속으로.

 

보이지 않는 사상이 만들어 낸 두 집단의 갈라짐, 허울뿐인 사상의 일렁임은 그 어느 광장에서도 올곧이 자리를 잡지 못한 듯하다. 겉만 번지르르한 이념이란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한 몸이 나뉘어져, 제 살을 뜯으며 삶을 옥죄어 온다. 옥죄어 오는 삶 앞에 한낱 인간은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시기와 배신, 약탈과 증오가 제 자신을 지키는 몸부림이 되어버린, 그저 삶 앞에 무기력하게 자신을 내어줄 수 밖에 없었다.

 

명준의 삶으로부터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는 위대한 혁명가는 아니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불의와 싸우기보단, 때론 제 나름대로의 '요령'을 통해 삶에 순응하기도 했다.  어떠한 위대한 가르침과 존경을 주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이 꿈꾸는 이상을 찾아(그것이 풍문이었을지라도) 현장을 헤매이다 결국은, 죽은 광장으로부터 벗어나, '사랑'이라는 밀실로 숨어버렸다. 우리는 광장을 찾아 끊임없이 헤매이다 길을 잃고 방황하듯, 서둘러 자신을 밀실로 내친 그를 나약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그는 그저 다그쳐오는 운명에 힘없이 자신의 몸을 내던져야했던,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일 뿐이었다.

 

우리는 그의 삶의 모습을 통해 당시의 역사적 현장을 느끼며, 과거 혹은 현재의 우리네 모습을 본다. 그때의 광장으로부터 자리잡은 지금의 광장, 우리는 지금 수많은 광장에서 제 몸을 지탱하기 위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미 각자의 밀실안에 제 몸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명준이 찾고자 했던 푸른 광장을 우리는 여전히 찾아헤매이는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 ' 인용어구

<담고 싶은 문장>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쫓아가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비치는 단단함 속에 젖어가면서 살 수 있는 삶. 명준이 찾는 삶이다. ' (p.40)

 

'사람이란 어느 때까지는, 세상일의, 말하자면 가장 껍데기만을 허술히 보고 지내는 것이며, 자기와 둘레 사이에 아무 티격태격도 없는, 달걀 속 노른자위같이 사는 무렵이 그나마 좋을 때라 할까.' (p.41)

 

"사는 것처럼 사는 법이 좀 없을까요?"

"자넨 아직 패를 많이 가지고 있지 않나?"

"패라니요?"

"왜, 미스를 할 적마다 패 하나씩 뺴앗기는 놀이 있잖아. 자넨 아직 한 판도 안 했단 말일세. 아니, 내가 잘 못 알았나?"  (p.59)

 

"인간은 그 자신의 밀실에서만은 살 수 없어요. 그는 광장과 이어져 있어요. '(p.60)

 

"이런 광장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가진 느낌이란 불신뿐입니다. 그들이 가장 아끼는 건 자기의 방, 밀실 뿐입니다. 개인만 있고 국민은 없습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광장은 비어 있습니다. "

"그 텅 빈 광장으로 시민을 모으는 나팔수는 될 수 없을까?"

"자신이 없어요, 폭군들이 너무 강하니깐."

"자네도 밀실 가꾸기에만 힘쓰겠다는."

"그 속에서 충분히 준비가 끝나면."  (p.63)

 

 

'고요한 무너짐. 그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쓸 손도 없었거니와 귀찮기도 해서, 그저 심란하면서 꼼짝하기 싫은 몸을 일으킬 염을 내지 않았다. 실은 무서워서, 그토록 질려버린 것이다.' (P.85)

 

'나한테도 영웅의 삶을 살고, 영웅의 죽음을 죽을 수 있는 씨앗이 파묻혀 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다만, 이 검은 해가 비치는 어두운 광장에서는 피어날 수 없는 씨앗인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런 광장으로 시민들을 불러내는 나팔수가 바로. ' (P.86)

 

'그는 때 묻지 않은 새로운 광장으로 가는 것이라고 들떴다. ' (P.121)

 

'손끝을 맞잡아봤다. 두 팔이 만든 둥근 공간. 사람 하나가 들어가면 메워질 그 공간이, 마침내 그가 이른 마지막 광장인 듯 했다.' (P.135)

 

'물살의 움직임이 이쪽의 마음을 끌어당겨 그의 마음도 바다가 되어, 거기 물거품을 일으키면서, 물이랑을 파헤친다.물결과 마음의 사이는, 차츰 가까워진다. 끝내 그의 몸과 물결은 하나가 된다.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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