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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대한민국치킨전> 저자 정은정의 닭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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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보다 등산 | 책을 읽자, 책을 팔자 2021-06-21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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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밥보다 등산

손민규 저
책밥상 | 2021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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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면 산에 안 가도 완봉을 한 느낌이다. 따뜻한 세르파와 함께 떠나는 등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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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 산은 내게 오지마라, 오지마라하네.'

-네네, 그러므닙쇼. 절대 안 갑니다. 걱정마세요!

이 노래 가사는 참으로 옳다. 성철 큰스님도 산은 산이요, 라고 하지 않았나? 이것은 굳이 등산까지 가야 하느냐, 라는 말씀으로 맘대로 해석하고 살았다. 나는 산보다는 산 입구에 있는 절이 좋고 절보다는 그 입구에서 막걸리 마시는 일을 좋아한다. 평지 걷기는 어느정도 자신이 있지만 오르락내리락 등산만큼은 자신이 없다.

그래도 20대 때는 일년에 산에 한두 번은 끌려다녔다. 끌려다녔다는 말이 맞다. 절은 산에 있는데 왜 신부님, 수녀님들은 산을 좋아하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그때 끌려다닌 산 중에 관악산과 설악산, 춘천 팔봉산이 있었다. 등산화도 없이 운동화에 면바지 입고 쭐래쭐래 끌려올려가곤 했다.

그러다 대구에 살 때, 무슨 결심이 섰는지 동네 뒷산에 좀 다녔다. 한참 혼자 다니다가 시들해졌다. 그것은 먼지가 너무 풀풀 날릴 정도로 매마른 산이 어느 순간 참 안돼보여서였다. 사람들이 얼마나 다녔는지 바닥은 다져졌고, 오르막 내리막하면서 나무 둥치를 집어서 배롱나무처럼 맨질맨질하여서 나라도 안 다니는 것이 지구를 구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조금 지겨워진 탓도 있었고 때마침 박사과정에 들어가서 바빠진 탓도 있었다.

2. <밥보다 등산>이라니!

등산은 본래 중턱 (가급적 초입)까지만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밥먹기 위해 가는 것 아니던가? 내게 등산이란 그런 것이다. 나는 아직도 손민규 MD(YES24 인문MD)를 '기자님'이라 부르는데, 처음 만난 인연이 '채널예스' 인터뷰 때문에 만나서 그렇다. 블로그나 가끔 올리는 페이스북 글을 통해 산을 좋아하는 줄은 알았지만 '등산에세이'까지 펴낼 정도로 사랑하는지 몰랐다.

책을 보자마자 나는 손기자님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도 수박맛바의 초록 부분을 좋아하시나요?'

표지 그림이 딱 수박맛바의 모양인데 초록색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사람들의 수박맛바의 빨간 부분보다 초록부분에 애착이 심하니 초록수박맛바를 출시했으나 의외로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유는 초록 부분은 그렇게 희소하게 존재했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에게 귀했던 것이었을 터. 이 에세이는 손민규 저자의 산에 대한 갈급이 더욱 도드라지는 에세이다. 직장생활과 육아(땡보와 꿀이)를 하면서 그에게 산은 수박맛바의 초록 부분과도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3. <밥보다 등산>은 부산에세이기도 하다. 부산 출신 (하긴 부산은 넓다. 정확히 말하면 영도 출신)의 한 사내가 남중 남고를 나와 부모님과 함께 첫등산을 한 후 부,'산'의 맛을 알아버린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에세이에는 저자의 부산 친구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모두 내가 20대때 신부님과 수녀님께 산에 끌려가듯, 기꺼이 '민규'에게 끌려가준 친구들의 이야기다. 입대와 연애(모솔이었다는 것을 굳이 강조하는 것은 땡보엄마 Y님에게 외치는 웅변과도 같..), 취업 문제 등 산적한 삶의 무게를 배낭에 짊어지고 올라가는 듯 하다. 결론적으로 10년 넘게 근속하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산에 가서 결혼하게 해달라던 Y분과는 결혼을 했고 귀여운 두 딸도 얻었다.

그래도 에세이 중간중간 지치는 대한민국 평균 직장인의 피로가 느껴지면서 애잔하기도 하다. 산이 저기에 있어서 올라간다는 등산가의 말도 사치. '산이 저기에 있어도 못 간다'가 2021년을 살아가는 보통의 직장인의 삶일 테니.

4. <밥보다 등산>은 인문서적 전문MD가 엄선한 책 소개가 있다. 새로 쏟아지는 책들을 읽고 소개하는 일이 직업인 저자가 등산을 부추기는 책들을 곳곳에 숨겨둔다. 특히 '산서'라 하는 장르(?)의 책들을 곳곳에 놓아 두어, 독서 에세이 장르라 해도 모자람이 없겠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괜히 내가 등산을 한듯한 느낌이 든다. 운동하는 동영상만 봐도 운동효과가 있다 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나도 언젠가는 지리산 종주를 하고 말겠다는 꿈을 꾸게 된다. 물론 나는 손민규 기자처럼 초코파이와 팩소주만 싸서 올라가진 않겠다. 나는 아무래도 '등산보다 밥'.

5. <밥보다 등산>, 산을 올라가는 등반은 생활과의 '동반'이었음을 알려준 에세이집. 몇 문장에서는 혼자서 많이 깔깔댔다.

* 한 가지 오류: 고등학교 종업식 날 새벽4시에 만나 농구하고 컵라면 먹자 해서 정말 순진빵하게 혼자 나간 손민규 학생.

"우리는 손지창이나 김민종이 아니었고 우리를 옆에서 지켜보던 심은하도 없었지만, 고3을 끝내기 전 마지막 승부를 벌이기로 했다(53)".

마지막 승부에는 김민종이 아니라 장동건!. 김민종 손지창은 1992년 '느낌'이라는 드라마에 출연. 그 지긋지긋한 '너만을 느끼며'가 둘이 부른 노래랍니다. 힉~

책, 문구: '밥보다 등산 또 오른 오르고 내일이 불안해 서른 해 등산 일기 손민규 지음 채방상'의 이미지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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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농가월령가 | 책을 읽자, 책을 팔자 2021-05-18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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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예로부터 이른 말이 농업의 근본이라

정학유 저/진경환 주해
민속원 |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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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농가월령가를 인용하려면 이 주해본으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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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해자인 진경환 교수가 이 책의 주해자로 나선 이유는,

고등학교만 졸업을 해도 농가월령가는 그래도 들어봤던 익숙한 조선후기 고전가사이지만, 의외로 과하게 풀어써서 본뜻과 달라진 주석본들이 많은 작품이기도 하여 텍스트 자체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이리저리 인용되고 오용되는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농가월령가>를 쓴 사람은 '정학유(1786-1855)'로 정약용의 둘째 아들이다. 이 주해본의 원서는 정학유의 생질(외조카)인 권경호가 단양으로 부임해 외삼촌의 작품을 필사해 집안 대대로 전하고자 하려는 뜻이었다. 책 끝에 부록으로 이 영인본이 전체 실려있다.

정학유는 벼슬에 나가지 못/않은 향반으로 살아갔다. 그 아버지인 정약용의 유배지 강진에서 큰아버지 정약전의 유배지인 흑산도에도 왔다갔다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향반이 이 농가월령가를 지은 것은 언뜻 권농의 자세와 마음, 실학정신이 모태가 되었을 수도 있겠으나, 주해자 진경환 선생님의 평가대로 이는 조선후기 농업의 실태를 잘 보여주기는 해도 결국 향촌의 양반인 정학유의 관점이 더 강하게 드러나는 텍스트다.

예전에 이 텍스트를 볼 때는 계절에 따라 뭘 심고 거두고 먹었는지에 대한 궁금함이었으나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글이 유순하고 태평성대를 전제한 것 같은 느낌. 조선말 유민들은 늘어나고 혁명의 기운이 웅얼웅얼 대던 때, '근면성실'하게 농사일에 매진하면 하늘도 감동하여 곡식내리고 '효제충신'의 정신이 대체 지금 초근목피의 농민들에게 무슨 소용이랴 싶어서 말이다.

사월령에 한 구절 보자면

"농량農糧(농사짓는 동안 먹을 양식)이 부족하니 환자還子(봄에 백성들에게 꾸어주고 가을에 이제 붙여 받는 환곡) 타 보태리라"

라는 대목에서 '환자' 즉 환곡이 그런 기능을 하기는커녕 조선후기 가렴주구의 근간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배워 알고 있으니 말이다.

주해자가 특별히 주목한 구절은 시월령에 "이런 일 자세 알면 왕세王稅를 거납拒納할까"이다. 정황은 이런저런 세금을 낼 상황이 아니게 되면 세금을 탕감하여 주지만 농민들이 이런 사정을 모르고 왕세를 거부하는 일을 벌이니 사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전형적인 양반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이 당시 농민은 세금의 압박을 벗어나기 위해 토지를 버리고 떠돌아다니는 유망을 선택하고 왕조에 타격이 심했던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는 해석을 보태주어 맥이 잡히는 듯 했다.

정학유'들'이 지키고자 했던 이상향, 실학이되 그것은 왕조 튼튼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일 뿐 엄청난 혁명사상은 아니었다는 것을 이 텍스트를 통해 알 것 같다.

"임금의 백성 되어 은덕으로 살아가니 거미 같은 우리 백성 무엇으로 갚아볼까" 정도의 사상이기도 하다.

2. 초파일이니 기념삼아 한 줄 적어보자면

"팔일에 현등함은 산촌에 불긴(不緊) 하나/느티떡 콩찌니는 제때의 별미로다"

초파일에 등을 다는 것이 산촌에는 꼭 필요하지 않으나 /느티떡과 콩찌니(콩을 넣어 만든 떡으로 절에서 만들어 먹는 떡)는 제때의 별미로다.

근 몇년 사찰음식 대유행이어서(먹는 사람보다 텔레비전으로 보는 유행) 느티떡과 꽁찌니를 텔레비전 다큐에서 본 적이 있어서 괜히 반가웠다.

여하튼 이렇게 세세하여 읽어나가는 재미와 지금의 습속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사과와 능금의 변화같은 것들. 찔레꽃은 그때도 가난의 상징이었군..하는.

아무리 양반층이었어도 그래도 세세하게 사물의 풍경을 눈에 담은 장학유의 꼼꼼함 덕분에 세시풍속과 계절에 맞춰 먹은 음식들의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좋은 텍스트다.

다만 때맞춰 무언가를 해먹고 조상을 섬길 수 있던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농민 자신보다는 땅을 가진 자들이었다는 것은 크게 안 변했다는 것.

그러니 함부로 여기에 있는 음식을 그대로 복원하여 마치 우리 조상대대로 누구나 이렇게 먹고 살았겠거니는 하지 말아야는데 지금의 한식은 어디에서 흘러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한심하기 그지없다. 서로 반성하고 감시할 일이다.

 

 

사진 설명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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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 | 책을 읽자, 책을 팔자 2021-05-07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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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

김혜영 저
후마니타스 | 2021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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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런 판' 이라며 그 누구도 희망을 걸지 않았던 미디어 노동 현장이 조금씩 더디게 변화해 가고 있는 것처럼, 한빛은 또 그렇게 빛으로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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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사놓고 펼쳐보지를 못했다. 바빠서라는 핑계도 있었지만 나는 지난 몇 달 죽음에 대해서 너무 많이 생각해 왔고, 죽음을 매일 겪고 있다 . 견디기 위해 하루의 절반은 흰소리로 채우며 살고 있어서 차마 펼쳐보기가 어려웠다.

사람은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다. 오히려 죽음은 옆이 겪는다. 죽은 사람은 끝이고 그 측근들이 감내해야 하는 마음을 나는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죽음의 정도나 결이 있다면 가슴에 묻는다는 자식의 죽음인 참척 앞에서 나머지 죽음들은 반 걸음 정도 물러나게 마련이다. 솔직히 나는 물러서고 싶지 않았으며 겸손해지고 싶지 않았다. 내가 겪는 죽음의 고통이 더 커야했고, 또 역으로 참척으로 지척을 위로받는 것도 옳지 않아 보였다.

'참척'과 '지척'의 죽음 정도로 죽음의 강도를 굳이 나눈다면 나는 지난 몇 년 지척의 죽음을 많이 겪었다. 그중 젊은 자식을 부지불식간에 잃은 처참한 장례도 측근의 이름으로 치른 적이 있다. 슬프다, 라는 말에 가둘 수 없는 가장 짜디짜고 쓰디쓴 말들을 농축한다면 바로 '참척'에 갖다 붙일 수 있을 테지.

이한빛 피디가 쓴 글들을 읽을 적이 있다. 백남기농민에 대한 기록을 정리하면서 공교롭게 백남기 농민과 서울대 장례식장을 위 아래로 나눠쓰고 있었던 인연, 이한빛 피디 앞으로 모아진 부의금과 장례물품을 백남기 농민의 빈소로 보내왔던 사연이 드라마틱했고 작가로서 욕심이 나기도 했다.

이한빛 피디의 아버지 이용관 선생님을 인터뷰하면서 '슬픔에 지지 않고' 굳세게 일어서려는 모습으로 그려놓았지만 이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이용관 선생님이 고통에 짓눌려 남긴 글귀들을 볼 때마다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이 책 이한빛 피디의 어머니 김혜영 선생님의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라는 책을 읽으니 더욱 그 서술이 부끄러워졌다. 부모는 슬픔을 이기기는커녕 슬픔이 신체적, 정신적 실체가 되어 아예 생에 착감겨 있다는 것을.

2016년 10월, 이한빛 피디가 떠났다. 드라마 <혼술남녀>가 종방을 한 직후였다. 그가 떠난 시점이 마음에 많이 걸렸다. 끝까지 지켜낸 그 성실함. 그래도 완수해야 한다는 그 책임감이 그를 더욱 사지로 몰아갔던 것은 아닐까. 조금 더 헐렁하게 살았더라면 적당히 눈감고 적당히 한눈만 뜨고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에는 그의 어머니 김혜영 선생님의 이런 끝없는 질문이 올라와있다. 강직한 교사 부모를 둔, 읽고 보고 쓰는 것이 곧 삶이어야 했던 그 강박을 부모가 심어준 것은 아닐까, 하는 후회가 고스란히 드러나서 읽는 내내 속으로 '아니에요. 잘 하셨어요. 대단하세요.'란 장단을 맞출 수 밖에 없었다.

연재 기간 중에 슬쩍슬쩍 몇 편은 보았지만 이렇게 책을 묶여져 나와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외람되지만 글 읽는 재미가 있어서다. 현직 교사이지만 부모로서의 삶은 때때로 괴리될 수밖에 없고 그에 대한 솔직함도 숨기지 않아, 입시생을 키워내고 있는 나의 고민이 들킨 듯 하여 흠칫 놀라기도 했다. 뭣보다 한빛, 한솔 형제의 귀여운(?) 어린 시절을 엿들을 수 있었서, 하지만 이 단란했던 가정이 겪어야 했던 파괴적 슬픔에 대해서, 그리고 멋도모르는 세상의 멸시와 측근들의 무람한 위로와 충고, 힐난에 대해서. 가감없이 드러난 이 기록들을 대하면서 한없이 슬펐고 부끄러웠다.

참화를 겪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어떻게 함께 해야 할 지를 가르쳐준 책이다. 그저 옆에서 조용히 앉아 고개를 끄덕이며 침묵할 것. 그런데 이미 나는 백남기 농민 기록을 남기면서 그 우를 범한 전과가 있고 그 송구함을 갚을 길이 없다.

'나무가 많이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볼 때마다 그리움이 같이 커진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이 한빛일까. 아니면 그와 공존하고 있다는 감각일까. 이제 세상에는 없으니, 내 안에 살아 있는 한빛이 더욱 귀하기만 하다." -이층집 (96)

미래의 손주들에게 나무 하나, 풀꽃 하나씩 알려주기 위해 충남 도고의 이층집에 미리 과일나무를 심었던 미래의 할머니 김혜영은 끝내 한빛 아이들의 할머니로는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 나무도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할 것이다. 슬픔과 그리움을 자양분 삼아 가장 빛나는 생명으로.

'원래 그런 판' 이라며 그 누구도 희망을 걸지 않았던 미디어 노동 현장이 조금씩 더디게 변화해 가고 있는 것처럼, 한빛은 또 그렇게 빛으로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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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할 수 없는 생 -기후정의의 문제 | 책을 읽자, 책을 팔자 2021-03-02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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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후정의

한재각 저
한티재 |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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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정의]그래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는 것이고, 여기에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눙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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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일매일의 날씨에는 분노하지만 '기후'문제에는 이 책의 표현대로 '기후침묵' 상태에 놓여 있다. 나도 그렇다. 나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것 중에 하낙 기후 문제이기도 하고 자포자기 하게 만드는 것도 기후문제다. 긴 장마나 감당 하기 어려운 2018년의 폭염(그해 결국 에어컨을 샀다), 그리고 매일매일의 미세먼지 스트레스다. 그리고 출산을 하는 것은 내 대에서 끝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을 하곤했다.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기후위기의 문제는 늘 비관적인 대화로 마무리가 된다. 아이들은 결혼시키지 말고, 혹여 결혼은 하더라도 출산은 신중하게 생각하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요 몇년 생산자 농민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위기의 말은 기후다. 모든 분야(학계, 출판계, 언론계 등등)에 걸쳐 기후위기는 자동생성기를 돌리듯 달려나오곤 한다.

2. 솔직히 그동안 그레타툰베리부터 인류세 논쟁, 먹거리 관련 (특히 축산관련)해서 글을 띄엄띄엄 읽었다. 꼼꼼하게 읽자니 우울이 폭발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해서 말이다. 그런데 피한다고 피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1년간의 코로나19의 경험으로 알았다. 인류에게 닥치는 문제인데 무슨 수로 피하겠는가.

여기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뚜렷한 계급화 현상에 대한 슬픔, 부실해지는 어린이와 노인들의 식사, 고독한 죽음과 생존의 위기 등등. 모든 우울의 언어를 다 갖다붙일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을 내 생애에서 목도 중이라는 충격에다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기후위기까지 보태지니 가끔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답답해서 눈물이 날 때가 있다.

3. 존경하는 연구자이자 환경운동가인 한재각 선생의  '기후정의'는 그래서 귀한 책이다. 기존의 수많은 환경. 생태. 특히 기후위기에 대한 서설들은 답답증을 증폭시키고,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죄구나,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나였다. 그런데 내겐 아이들이 있는데 꼭 이렇게 몰아세워야 하는 것인지, 사회과학서를 읽어도 야속했고 슬펐다.

하지만 '기후정의'는 낙관도 비관도 없이 (비관에 좀 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는 것이고, 여기에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눙치지 않는다.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값싼 화석연료에 기반해 산업을 일으키고 재별도 되고 부와 명예를 가져간 이들이 이제서야 '우리모두'에 가난한 이들을 호출하여 쑤셔넣으려는 작태를 꾸짖고 있다.

정의의 관점은 분명히 필요하다. 정의란 무엇인가? 내 수준에서는 적어도 심판이 따라야 하고 그에 응당하는 단죄가 있어야 한다. 분명 지금의 기후위기에는 불평등한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 그 비용을 자꾸 전가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삼성 이재용의 한남동 자택이 보통의 시민들보타 전기세가 150배가 나온다는 것에 눈에 번쩍 뜨였다. 송전탑은 밀양에 세워지고 그 단물은 한남동 저택에서 쪽쪽 빨아먹고 있구나 (나도 빨아먹지만 정말 아껴쓰느라 애는 쓴다).

4. 다시 한 번 애를 쓰고 싶어졌다. 경제적 불평등(=기후불평등)의 해소와 민주주의의 증진이 왜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지, 손수건을 쓰고 텀블러를 쓰는 일을 포함한 연대와 협력, 그리고 기후 싸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배운다. 읽고 조금 마음을 다독여서 포기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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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에는 진화의 역사가 있다 | 책을 읽자, 책을 팔자 2021-01-3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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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치킨에는 진화의 역사가 있다

가와카미 가즈토 저/김소연 역
문예출판사 | 202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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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은 알아도 닭은 몰랐던 우리 입에 넣어주는 '진화의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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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 위해 길러지는 고기를 '식육'이라 한다. 비대해져야 할 부분은 비대하게 (닭가슴살이나), 퇴화되어야 할 부분은 퇴화되게끔 (예를 들면 닭 종아리. 종아리라고 상상이나 해봤겠는가) 말이다.

'가금'으로 가장 먼저 길러진 닭이 그래도 새라는 것은 그 어떤 예외도 없이 '알'에서 난다는 것 . 닭과 인간의 공통된 숙명은 이족보행 동물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한동안 안 했던 스쿼트 100개를 한 이유는 닭과 사람 모두 하체가 견뎌야 할 생의 무게가 있다는 고통스러운 실체를 마주쳐야 했기 때문이다.

닭이 백색육이 된 것은 인간의 다이어트 식사를 보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금으로 길러지면서 날지 않기(못하기)때문에 미오글로빈을 근육에 저장해 비행 에너지로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조류학자인 가와카미 가즈토의 유머집착 문장 때문에 조류진화론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도 웃었다. 그래서 밑줄을 그어 놓은 문장들은 대체로 유머집 모음처럼 돼버리고 말았다.

예를 들면 '모래집(모래주머니)구이'를 설명하기 위한 이런 아재 문장.

" 진짜 치킨은 발치를 한다고 무서워 떨지 않는다. 닭을 비롯해 현생 조류는 이빨이 없으니 벌벌 떨 이유가 없다. 덕분에 녀석들은 슬금슬금 다가오는 사랑니의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될뿐더러, 양치를 할 필요도 없고, 안심살이 이에 낄 일도 없다. 정말 부럽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잃은 것이 바로 저작기능이다(179)."

한국보다 훨씬 세분화시켜서 닭요리(꼬치구이 형태로)를 즐기는 일본의 식문화에 기반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책이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나니 '통닭'을 사서 세밀하게 발라먹고 윙봉이 아닌 윙팁이 닭의 손가락이라는 것을, 닭모가지를 뜯어먹으면서 경추가 몇 개인지 자세히 세어 보고 싶어졌다.
연골까지 씹어먹도록 길러진 너희들의 짧은 생에도 미안해지고.

치킨은 알아도 닭은 몰랐던 우리 입에 넣어주는 '진화의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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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치킨이 된다 | 가끔 읽고 엄청 읽은 척하기 - 서평 2020-09-2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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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된 책을 받으니 질감이 따뜻하네요.
이 책에서는 요즘 만나기 힘들지만 그래도 아예 없지도 않은 치킨점 , '오케이치킨'의 사장님 부부와 라이더 지훈이가 나옵니다.
오케이치킨 상호를 지을 때 저는 '꼬민치킨'이라 정했었습니다. 편집자 보람쌤의 제안이 더 와닿아서 전격 상호변경. 꼬민은 '꼬꼬'의 앞 글자를 땄었고 치킨점의 이상향 같은 이미지를 구현한다는 차원에서 '꼬뮌'을 좀 비틀었던 건데 과한 욕심이었죠? ^^
라이더 지훈이는 스무 살 정도. 대학 진학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요리에 꿈이 좀 있기도 하고요. 어릴 때부터 워킹맘이자 싱글맘인 엄마를 돕는 성실한 캐릭터를 구현하고 싶었습니다. 다른건 모르겠고 그래도 <대한민국치킨전> 쓰면서 학원 가서 배운 레시피를 한 번 써먹을 수 있어서 좋고요. 무엇보다 치킨을 배달받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 정도... 그 정도.
라이더 지훈이가 치킨 배달을 하면서 만나는 에피소드는 대체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오케이치킨'의 모델로 삼은 치킨집이 우리 동네에 한 군데 있고 중랑구에 한 군데 있습니다. 한 군데는 바쁠 때는 배달대행을 쓰시지만 대체로 사장님(정수 씨)이 치킨을 만들고 배달을 직접 합니다. 여사장님(미자 씨)이 홀을 보고 총괄하고요. 치킨무를 직접 담그는 치킨점은 저 어릴 때 살던 동네에 있는데 임신을 해서 치킨무를 얻으러 온다는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아서요.
컴퓨터 파일로 작은언니도 '예쁘다' 하면서 보고 떠난 책입니다. 인쇄된 책을 보고 떠났으면 좋았겠지만 이제 그런 지상의 아쉬움은 나머지 삶과 생활로 벌충해 나갈까 합니다.
멀리 호주에서 작화작업을 하신 한승무 작가님, 작업을 제안해 주고 꼼꼼하게 리터칭을 해준 노란상상 박보람 쌤, 그리고 오케이치킨 사장님이자 노란상상 사장님인 양정수 사장님 고맙습니다.
치킨이 옵니다. 사람도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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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 만든 도시 서울 | 책을 읽자, 책을 팔자 2020-07-18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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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서울 탄생기

송은영 저
푸른역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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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 만든 도시 서울.
한국소설구절 따라가는 재미.
엄청난 분량이어서 속독으로 따라가고 있지만.
내게 서울은 끝내 동이 아니라 '망우리' 로 수렴되는 확장된-편입된 서울, 그래서 간신히 서울시민의 지위는 획득했으나 끝내 특별시민으로 살지 못하고 수도권의 언저리인 경기도로 밀린 가족사 자체이기도 하다.

-서울탄생기, 송은영, 푸른역사(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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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 책을 읽자, 책을 팔자 2020-01-25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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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굿바이,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노태맹 저
한티재 | 2019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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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낯설고 슬픈 죽음에 관한 에세이. 그러나 나는 지금 여기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해주는 글. 싸구려 위로가 넘치는 글들에 지친 이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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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 전 기형도 문학관에 다녀왔다. 광명시 소하동의 한 실업계(요즘은 특성화고라고 하지만 요설일 뿐인 것 같아서) 고등학교에서 버티는 것으로 소임을 다했다 여길 정도로 엉망인 강의를 마치고 말이다.

 

지금은 광명시 소하동이지만 여전히 이곳 사람들은 '소하리'라 부를 것이다. 오래도록 시흥 소재였고, 시흥은 지금 내가 사는 남양주와 서로 가장 끝이다. 조금만 걸어나가면 포구가 있었던 곳이고 갯벌을 메워 간척지로 논밭을 만든 곳이다.

 

광명에서 나는 짧게 살았다. 2000년에 엄마가 떠나고 이듬해 광명6동으로 이사를 나왔다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으로 오게 된 건 작은언니 신혼집이 광명 하안동이었기 때문이다. 2001년 늦봄부터 몇 달 살고 난 뒤 결혼을 해서 이곳을 떠났다. 경륜장이 들어서기 전 낮은 연립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낡고도 오래된 동네였다.

 

딱 한 번, 기형도의 생가를 찾아가 보려던 때가 있었다. 근처 소하리에서 오래도록 살았다던데 지도를 펼쳐보니 집에서 정말 멀지 않은 곳이긴 했다. 지금처럼 네비게이션이 있었다면 한 번은 찾아가 볼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집에서 엄마 기제사 한 번,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 두 번, 그리고 추석 명절까지 치르고 떠나왔다. 무언가 내게 가장 익숙한 음식이라면 제수마련 같은 것들. 죽은 자들을 위해 차리는 밥상은 살아있는 자들의 밥상을 차리는 일보다 쉬운 일이다. 그들은 먹는 입이 없는 검은 입들 뿐이므로.

 

광명은 기형도가 죽기 전까지 살았던 동네. 그 시만큼이나 음습한 곳이었고, 재개발을 둘러싸고 팽팽하게 폭력적인 곳이었다. 비평준화 지역의 입시는 중학교 때부터 광풍이었으며, 교복이 곧 모욕이었던 곳.

 

아버지는 그때 조선일보 신문지국에서 일을 하며 주말에만 들어왔고, 산림조합에 근무했던 오빠는 인천 옹진으로 출장을 자주 들어가야 해서 집에 들어오지 못할 때가 많았다. 긴 골목 끝에 자리 잡은 집에서 혼자 '어둡고 무서워' 애써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광명집까지 걸어들어가는 그 긴 골목은 빨려 들어가는 입속이었고 내 어깨에는 악착같은 검은 잎이 들러붙어 있었다.

 

3. '광명역세권휴먼시아단지'라는 다소 경박스러운 이름을 달고 있는 아파트 단지들을 지나, 기아자동차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남자들과 뒤섞여 마을버스를 타고 석수역까지 나왔다.

잠시 살았던 광명 6동은 휘황한 아파트단지로 변해서 그 집터도 찾기 힘들어졌다. 재개발 과정에서 딱지를 하나 거머쥔 오빠 내외는 철거싸움에 휘말려 한동안 친정은 들썩댔고, 결국에는 작은 승리랄지 기반이랄지. 그곳을 발판 삼아 아파트 평수를 조금씩 늘려나갔다.

광명을 생각하면 기형도가 늘 떠올랐고 한때는 그의 시를 통해 죽음에 몰입을 했던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아버지 무릎 위에 앉아 밥을 먹곤 했던 절대사랑의 염력과 무언가 옅은 책임감이 남았다. 그 책임감이란 것은 생에 대한 책임감이었다기보다는, 뭐랄까 생 혹은 죽음에 대한 자격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일종의 자격지심이었다. 막내로 살면서 내가 감당할 필요가 없었던, 유순한 '유년의 윗목'이 끝내 나를 살게 했다.

 

4. '죽어가는 자들은 치워지고 격리되어 살아 움직이는 이들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나는 그저 그들의 외마디 소리, 눈물, 아들 부르는 소리, 눈물, 멍한 눈길만을 지키는 고독의 감시자다. 그리고 이윽고 그들은 사라진다. - 죽어가는 자의 고독 (51)'.

 

자칭 '고독의 감시자' 노인요양병원 원장 노태맹 시인은 10여년 동안 700여명의 의학적 죽음을 선언했다고 적고 있다. <굿바이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은 노태맹 시인이 다시 쓰는 사망진단서 같기도 하다. 그 어떤 죽음도 단수로 오지 않으니까. 너무나 많은 생들을 끌어들이며 살지 않나. 기혼에 자식들도 여럿이라면 더더욱. 가족이자 친인척이었고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기록으로 나는 읽었다.

 

요양병원이란 곳에 살러 들어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죽으러 들어가는 자리일 테고, 아버지의 마지막도 결국 이런 요양병원에서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 살짝 아버지의 죽음을 대입해 보았다.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늘 불경스러운 일이기는 하다. 엄마 죽음 이전에 가장 가까웠던 죽음은 중학교 1학년 때 할머니의 장례였다. 아들도 많고 며느리도 많고 손주들도 많았던 할머니. 각 집안에 큰언니들까지만 입힌 그 하얀 상복이 입어보고 싶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상상이었는데 그 불경함에 대한 무거운 마음을 꽤 오래도록 이고 살았다.

 

나는 잘 알고 있다.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사람의 숨은 그렇게 한순간에 끊기지 않고 마지막에 얼마나 많은 애를 쓰는지, 온 생을 걸고 숨을 쉬려고 애를 쓰는지 말이다. 감기지 않는 눈을 얼마나 한참 덮고 있어야 하는지를 말이다.

 

안방 아랫목에서 모든 숨을 몰아쉬는 할아버지의 임종으로부터 어린 우리들을 격리시켰고, 아버지도 엄마도 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충격을 받았던 그때가 네 살이었다. 생의 첫 기억, 첫욕망 모두 죽음과 가까웠다는 것이 살면서 내내 불길하였고 불경하였다.

 

5. '생명/죽음에 대한 권리. 그러나 시골에서 노동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노인들에게 죽음은 너무 두렵고 무거운 것이다. 살려 달라고 나의 손과 의사 가운을 잡아 끄는 노인들에게 죽음에 대한 권리를 어떻게 주장하라고 말해야 하는가? 어쩌면 그들은 생명에 대한 권리조차도 제대로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 존엄하게 죽을 권리 (61)'

 

요즘 아픈 언니와 오히려 죽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엄마는 '손 쓰기가 힘든 상태'였고 그때 병원치료를 포기했던 일에 대해서도 직면하는 동시에 면직免職도 하자고 말이다. 20여 년 전 공공의료보험은 엉망이었고, 원발암을 찾아내는 일이 의미 없을 정도로 주요 장기에 퍼져있어 손 쓸 수 없었다고, 어쩌다 병원진단서를 들고 뛰어다녔던 나는 그 증거자가 되어 좀더 격하게 엄마의 상태를 열악하게 만드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지금은 아닐 수도 있으나 그때는 맞는 선택이었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모두 다 속내를 꺼내놓지는 않는다. 각자 돌아서서 의심하고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정말 그랬을까,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 완화치료라도 열심히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훨씬 더 큰 고통 속에 보내드린 것은 아닐까. 가족의 이름으로 한 사람의 생명권 혹은 죽음권을 쥐고 흔들 권리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 생각까지 미치면 나도 미칠 지경이 되곤 했다. 엄마의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 사람은 바로 나였으니까.

 

2002년 젖먹이 아이를 업고 춥고 밤이 길었던 토론토에서 집요하게 글을 썼다. 끝내 솔직할 수 없던 글이었다. 엄마에 대해서 썼으나 결국 엄마를 잃은 내가 불쌍해 견딜 수 없었던 글이다.

 

살고 싶었을, 그 누구보다 막막한 마음을 감추고 외롭고 무섭게 죽음을 견뎠던 엄마의 마지막을 나는 적을 수 있을까.

 

-이어서

      

6. 혼란이었을지 슬픔이었을지. 혼란한 슬픔 정도라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청소년도 아닌 그렇다고 어른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일 때, 엄마는 떠났고 형제들 제각각 견디느라 진이 빠지던 시기였다. 모든 것이 의미였고 모든 것이 무의미였다.

밖에서 노는 밥과 술이 맛있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부모에 대해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았고 묻지 않았으므로 그 여인은 내게 영원히 미스테리로 남았다. 아무것도 모르겠는 인생의 비밀만을 남겨둔 채.

 

딱 한 번 어리광을 부린 적이 있었다. 마석 집 앞 개울에 편지를 딱 한 번 수성 펜으로 편지를 써서 종이배로 접어 띄웠다. 비가 많이 쏟아지던 여름이었다. 멀리 가지 못하고 이내 흐물대다 젖은 편지는 장맛비에 흘러 멀리 떠났다. 그리고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 시를 한 편 쓰고 더 이상 문학 따위에 마음을 주지 않기로 했다.

 

종이배

 

당신 보낼 때

물로 띄운 기억 없는데

 

찾아 나서는 방법은

왜 물로만 남는지요

 

한 뼘 가닿지도 못하고

퉁퉁 불어터진 밥풀때기의 말들.

 

 

 

 

 

7. '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나는 내가 죽는다는 것을 안다 "고 말하는 것은 경험적 판단이라기보다는 그저 선험적 판단일 뿐이다. 나는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했고, 판단은 결코 내 사지를 절단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는 내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일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지성의 추론일 뿐이다. 추론은 결코 내 머리를 박살내지 않는다. 어느 누가 존재하지 않음이라는 무지막지한 폭력 앞에서 그렇게 쉽게 말을 내뱉는가. 가벼움, 두려움, 책을 덮고 병실로 올라간다. 어쩌면 죽음을 머리로만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현실적 폭력에 순응하는 것인지 모른다. 폭력에 의해 죽어간 사람들의 죽음을 머리로만 가볍게 받아들인다. 입으로만 경전을 읽고 있는 것과 같다. ' -굿바이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중.

 

'느닷없다'.

죽음을 아우르는 말 중에서 이 말만큼 마음을 후비는 말을 아직 나는 찾지 못했다. 짧은 투병(본인은 많이 고통스러우셨겠지만) 과정에서도 두려움과 기대감이 뒤섞인 눈망울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때 차라리, 정말 차라리 '느닷없이' , 예를 들어 교통사고처럼 떠난다면 본인은 덜 두렵고 덜 괴롭지 않을까, 라는 경박한 생각도 했었다.

하루하루 죽음으로 다가가는 고통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모든 인간은 죽음을 향해 간다는 경전 속에서나 접하는 말들이 죽음에 관한 그 무엇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누구나 죽지만 죽어서는 안 되는 '우리 엄마'가 죽었습니다.

 

이것만이 실체적 진실이었을 뿐이다.

 

'결정적으로 20대에 맞이한 어머니의 죽음이 지금의 길을 만들었다. 어머니는 이중 질곡에 놓인 삶을 살았다. 세계화된 농업체제 속에서 한국 농민인 동시에 가부장체제의 여성/농민이었다는 점이다. 나의 어머니는 정은정개인의 어머니인 단수이기도 했지만 어머니들인 복수의 존재이기도 했다. 내게 처음부터 거창한 사회학적 고민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 주변만 해도 어머니를 비롯해 숙모, 이모들이 여성농민의 이름으로, 하필이면 한국에살아가고 있었고 나는 오래도록 그/녀들의 삶을 지켜봐왔고 기록의 의무감을 지기로 했다.(...)

 

내 어머니의 죽음은 개인의 죽음인가, 아니면 사회적 죽음인가. 이 질문을 상중(喪中)에 끊임없이 던졌다. 그래서 모든 사적인 것은 사회적인 것이고, 모든 개인의 죽음은 역사의 흐름 속에 있다는 사회학의 정언에 가 닿는 계기가 그렇게 느닷없이 왔다'

-<질적연구자 좌충우돌기> , 한울(2018) 중에서

 

'느닷없이' 살아왔다. 그리도 단 한 번도 내 생에서 죽음을 떨쳐내지 못하고 살았다. 엄마가 떠나고, 이듬해부터 이모와 외삼촌이 비슷한 병으로 돌아가셨다. 언니가 젊은 나이에 암이란 병을 얻었다. 박사과정 입학 시험을 치르고 있던 그 시간에는 용산 참사가 났다. <대한민국치킨전>이란 책의 초고를 뽑고 있을 때는 '세월호'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따라다녔다. 그 기록이 막바지 탈고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작은아버지가 느닷없이 세상을 버렸으며 그 임종을 지켜보았다.

 

식구가 많으니 맞닥뜨릴 죽음도 많은 것이라 여기면서도 내내 슬펐다. 대체로 의연했으며 울 때는 울었고 장례식에서 의전을 챙겨야 할 일 있으면 능숙하게 해내면서 나이가 들어왔다.

 

8.

 

젖은 편지를 읽다

 

자귀나무 붉은 그늘 아래

늙은 소 묶어놓고 연못가

내 둥글게 구부리고 잠들었네

거친 세월이 가고

커다란 바위 같은 천둥 내 잠 속으로 떨어져 갈라지고

자귀나무 검은 그늘 아래 문득 잠깨었을 때

연못은 여린 짐승처럼 온몸 뒤틀며

붉은 자귀꽃 뱉어내고 있었네

늙은 소 어디론가 사라지고

자귀나무 붉은 그늘 아래

내 누구의 사랑도 아니었을 때

내 손에 젖은 편지 들려 있었네

검게 번져 읽을 수 없는

버릴 수 없는 젖은 편지 들려 있었네

 

- 노태맹

 

마석집 개울가에서 엄마에게 띄워보낸 젖은 편지는 이 시 때문이었다. 수성펜으로 조곤조곤 적어내려갔다. 당신이 보고 싶고 떠난 당신을 원망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 '검게 번져 읽을 수 없'도록. 차마 간직할 수도 '버릴 수 없는 젖은 편지를 들'고 비를 맞으며 많이 울었다. 어린 아이가 엄마의 치마춤을 끝내 놓지 못하고 말이다.

 

비를 맞은 자귀나무 꽃의 향기를 그때 알았다. 잎을 떨구고 돌콩을 품는 자귀나무의 보드라운 솜털을 보면서 블러셔 화장 붓을 떠올리기도 했다. '코티분' 하나로 버텨온 생, 붉은 생기 하나 덧대지 못한 퍼석한 엄마의 생이, 그리고 그 생을 기억하는 나의 가난하고 불쌍한 기억이, 늘 젖은 편지처럼, 수챗 구멍으로 흘러가 건져 먹지도 못할  불어 터진 밥풀때기처럼, 비로소 사랑을 잃고 쓴다. 

-

#굿바이마치오늘이마지막인것처럼, 노태맹 지음, 한티재(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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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대전 | 먹보요 술꾼이었다 2019-12-0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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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횡계, 횡성과 통혼권인 충북 북부 내륙에는 강원도에서 시집온 숙모들이 계셨다.
아버지가 '육령리 고모'라고 부르는 고모할머니는 강원도 육령리라는 곳으로 시집을 가셔서 그렇게 부르곤 했는데 우리 작은엄마가 횡성분이다.

배추에 양념을 차곡차곡 넣으면 뒤에 배추가 남는다. 그럼 마지막엔 그야말로 양념을 겉에만 바르듯 하는데 이걸로 만두를 주로 만들고 늦봄까지 먹는다.
혹은 처음부터 양념을 흐릿하게 만든다(소금, 고춧가루, 파, 마늘, 생강, 갓 정도) . 그리고 물을 흥건하게 해서 그냥 한 번 담갔다가 김칫광 가장 먼 곳에 묻어두기도 한다. 양념 무친 그릇을 물로 부시는 용도이기도 했다.

이걸 강원도에서 덤벙김치라고도 하고 덤부래기 김치라고도 하던데 아마 오래전 강원도에서 시집을 온 어떤 할머니와 숙모들 손으로 전해졌을 것 같다.
쓸 수 있는 젓갈이라고는 새우젓 하나 뿐인 충북 산간 내륙과 고춧가루가 귀물이었을 강원도의 중간 지점이 만난 그런 맛. 이제 나는 김장에 그 어떤 힘도 주지 않는다.

부족한 재료로 절묘하게 음식을 각 잡아서 만드셨던 외숙모가 자주 하시는 말씀이 마늘 너무 많이 넣으면 김치가 맛없어진다셔서 마늘도 최소로 쓴다. 적당히 속 넣고 버무린 것들부터 마지막에 고춧물 부어 담근 덤벙김치까지 일단 세트로 갖추었으니, 오라 겨울!

단단하고 달콤한 작은 무를 사돈 어르신께서 보내주셨다. 무쪽 많이 넣었다.
몸에 양기가 늘 부족하여 뿌리 채소에 손이 더 많이 갈 것이라며, 주역을 보시던 집안의 상노인 말씀이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그래서인가 나는 배추김치보다는 늘 무쪽에 손이 더 많이 가곤 한다.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

-남양주지옥분식통신
-2019 김장대전

 

 

이미지: 음식이미지: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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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출장기 (2) | 짧은 여행의 기록 - 푸른곰팡이를 찾아서 2019-10-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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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역전이라고 하기에는 원주역 사거리를 지나 한 블럭 뒤에 원주농협건물 뒤편에 자리잡은 '역전기계우동짜장'의 간판 불빛은 어쩐지 이 도시에서 내가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불빛같았다. 원주역에 내리면 이 집도 본격 영업을 하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위치로 보자면 역전우동 옆에 경기쌀집이 있고 그 옆에 철학원이 있다. 그리고 이 상가건물과 붙은 골목이 '희매촌'이다.

저녁 6시부터 영업을 시작해 새벽 6시까지 영업을 하는 이곳의 메뉴는 짜장면과 짜장밥, 우동, 돈가스, 즉석김밥이다. 돈가스가 6천 원인데 일본식 돈가스이고 나머지 메뉴는 4천 원. 김밥은 2천 원이다. 샷시로 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석대로 움직이는 집이었다. 선불로 값을 치르고 내가 먹을 단무지와 김치를 적당히 덜어오는데 한눈에 봐도 함부로 야적하지 않았구나 싶다. 단무지에도 신선도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까 모를까.

회전율이 좋아서인지 꾸미로 얹는 쑥갓도 싱싱하다. 이 집을 찍어서 들어오게 된 건 내 앞에 노인들 네 명이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 노인들 네 명이 오랜 단골처럼 들어가는 집은 먹을만하다는 일종의 지표다. 덜 부대끼는 음식이구나. 어느순간 짜장면과 짬뽕이 아니라 잔치국수를 사먹게 된 것은 식소다로 반죽된 면을 소화시키지 못해 애를 먹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감당할 수 없는 탄성의 음식들. 그래서 차라리 소금과 물로만 반죽한 소면을 삶은 잔치국수를 먹곤 한다.

이곳에서 오랜만에 짜장면을 사먹었다. 배달을 하지 않고 기계에서 뽑은 우동면과 같은 면을 쓰는 이곳의 짜장면이 그나마 근래 먹은 짜장면 중에서 순하게 감겼다.

4. "제 글의 8할은 짜장면 덕분이긴 합니다."

몇 주 연강을 하다 보면 강의 시작 전에 흰소리를 좀 해야 하고, 그럼 가장 만만한 도입은 결국 오늘 먹은 저녁 메뉴다. 글을 써서 상장을 받고 그럼 엄마가 천 원을 주곤 했는데 그게 짜장면 값이었다. 짜장면 한 그릇에 900원. 한 그릇 시켜주고 100원은 하드 하나 사 먹곤 했노라. 때로는 50원짜리 '깐돌이' 하드와 '신호등' 사탕을 사먹곤 했었다고. 그 재미로 글을 악착같이 쓰던 때가 있었다고. 그런데 이제 짜장면을 먹으려면 심호흡이 필요한 나이가 되어버렸다고 나보다 훨씬 더 윗 연배의 수강생들에게 주절거렸다.

5. <역전기계우동짜장면> 에서는 의외로 돈가스를 시키는 손님이 많다는 걸 알았다. 그 중 남자 손님들은 저 돈가스에 소주를 한 병 시켜 밥 삼아, 안주삼아 우물우물 씹는다. 그 사내를 보면서 고기를 씹는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몇 개 되지도 않는 메뉴에서 돈가스를 시켜 먹는 저 사내는 어쩌면 오늘 일당벌이가 시원찮았을 수도 있겠다 싶어졌다. 돈가스는 오늘의 마지막 자존심과도 같았을지도.

어느 날은 할머니 세 분이 들어왔는데 노인들은 꼭 짜장면을 시킨다는 걸 알았다. 할머니들은 짜장면을 좋아해! (나중에 농촌 5일장 가면 중국집에 가보시길. 할머니들 삼삼오오 드시는 메뉴는 짜장면) 내가 우동을 삼키는 날에는 트럭장수와 택시기사들이 시간 맞춰 들어왔다. 이들은 '짜장밥'을 시켰다. 면은 부대끼거나 금방 배가 꺼지거나. 앞으로 이어질 새벽 노동에 그래도 짜장밥만한 것도 없을 것 같다.

영업시간으로 봐서는 새벽에 손님이 들어차는 곳일 것 같다. 택시기사들이거나 희매촌을 들락댈 치들, 혹은 그 여인들.

5. 오늘 원주도서관 강의비가 들어왔다. 통장에 찍힌 숫자를 끝자리부터 세어 본다. 짜장면 값으로도 돈가스 값으로도 나눠보았다. 함민복 시인의 시 때문에 나도 이런 습관이 생겼다. 내 글은 대체 짜장면 몇 그릇인가. 어린 날의 글은 짜장면 한 그릇과 알사탕 세 개였는데 지금의 글과 말값은 대체 중량이란 걸 가지는 지 알수가 없다.

오묘하게 짜장면집 옆에는 됫박으로 쌀을 재어 팔았을 경기쌀집이 있다. 오래전 희매촌으로 흘러 들어와 저 쌀집을 보며 고향집 빈 쌀통을 떠올렸을 여인들아.

빛나거나 기쁘거나 아름답거나의 '희'. 이런 이름을 부러 붙여 놓은 모욕의 거리여. 오늘은 '희자매'들이 그래도 이 쌀집 옆에서 우동과 짜장면을 후룩 삼키면서 하루를 잘 삼켜넘겼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마지막 자존심과도 같은 돈가스를 꼼꼼하게 썰어 오물오물 삼키고 있을 시간.

6. 마지막 강의를 하던 날. 기차 시간까지는 오래 남았고 나는 이제 이 거리가 익숙하여 걸어도 되었지만 그 길을 걷지는 않았다. 지나가서는 안 되는, 바라보아서도 안 되는 불가촉의 거리를 택시로 질주해 지나쳐 왔다. 그렇게 한달 벌이가 끝났다.

-짧은 여행의 기록 (2019. 09-10)
-원주

 

이미지: 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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