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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자루를 든 수행자 [죽은 자의 집 청소] | 기본 카테고리 2023-01-20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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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저
김영사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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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옥 작가의 '싸가지 없는 점주로 남으리'와 김완 작가의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었다.

두 책 모두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싸가지 없는 점주로 남으리'는 산자를 만난다는 것이고 '죽은 자의 집 청소'는 죽은 자(정확히는 죽은자의 흔적)를 만난다는 것이다.

산자와 만남에는 고만고만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화해가 있다. 자본이 만든 톱니바퀴를 최전선에서 돌리는 서비스 노동자의 애환을 유쾌하게 그려낸 게 '싸가지 없는 점주로 남으리'다. 고객과 불가근 불가원의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점주가 아슬아슬하게 고객과 거리를 늘였다 좁혔다 하는(작가 표현으론 오지랖이다) 걸 보는 재미가 있다. 꼭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에서 돈까밀로 신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럼 '빼뽀네 읍장'은 누구냐고? 빼뽀네처럼 일관성은 없지만 모든 고객이 빼뽀네 읍장이다. 다양한 얼굴로 매일매일 등장하는 고객은 오늘은 어떤 사건으로 신부님과 얘기거릴 만들까 작전을 꾸미는 것 같다. 작가가 유쾌한 글을 쓰는 역량이 있어 재밌게 술술 읽힌다.

'죽은 자의 집 청소'는 모든 갈등과 대립이 해소된 후, 마지막 남아있던 갈등의 흔적조차 지워버리는 일관된 노동을 얘기한다. 편의점의 서비스 노동자가 자본과 고객 사이에서 노동자의 자존감을 지키려 고군분투 한다면, 죽은 자의 집 청소에서 서비스 노동자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살았던 자의 모든 흔적을 지우는 수행에 가까운 노동을 얘기한다. 부처의 말씀을 옮긴 반야심경이 '불구부정'을 말하지만 어찌 범인이 더럽고 깨끗함과 불쾌함과 산뜻함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이러니 작가가 만난 현장은 청소용역에 가깝다가도 어느 순간 수행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20대 후반 어느 날 아침저녁 이를 닦을 때만이라도 내가 살다가 죽는 유한한 존재임을 기억하자라는 다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평범한 나는 안타깝게도 내가 그런 다짐을 했다는 걸 40대 후반 어느 술자리에서 다시 떠올렸다. 쉽지 않은 일이다. 어찌보면 작가는 힘들지만 노동이라는 신성한 옷을 입고 뚜벅뚜벅 무소의 뿔처럼 걷고 있는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작가는 살았던 이의 흔적을 치우기 전 늘 살았던 이를 떠올린다. 그리고 들리지 않는 독백을 때로는 대화같은 편지를 쓴다.

"당신이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 있었겠지만 당신은 많은 사랑을 받고 간 사람입니다"

그의 편지가 그에게 일을 맡긴 집주인에게는 들리지 않겠지만 고인은 잠시 동안이라도 그의 편지에 머물다 갔을 거라 믿는다. 독자 또한 그의 독백에 잠시 머물었을 것이다.

언젠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의 방을 비추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카메라 앵글에 잡힌 빈 방엔 아니러니하게도 모두 재벌의 제품으로 둘러쌓여 있다. TV, 냉장고, 노트북, 하물며 장판과 벽지까지도 말이다. 삶까지 버려야 했던 지독한 가난은 그렇게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편의점의 컵라면과 값싼 도시락이 작은 지하 셋방에 요금 독촉장이나 도시가스 차단 예고장으로 옮겨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연결이 삶과 죽음의 경계였다는 증거를 작가가 만난 현장은 증명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우리도 이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듯이 '싸가지 없는 점주로 남으리'와 '죽은 자의 집 청소'도 맞닿아 있다. 두분 작가의 글을 읽으며 다시금 살아 있음과 그렇지 않음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지난 몇 년 선택적으로 책읽기를 줄였었다. 무엇을 얻고 쌓기보다는 내 안의 조용함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 그런 시간을 가지면 좀더 겸손해지고 지혜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겸손은 가진 게 없으니 따로 노력할 필요가 없었고, 내안을 들여다보는 동안 지혜는 따라오지 않았다. 다시 책을 읽으며 읽고 싶다는 욕심이 다시 기승을 부린다.

모두들 행복한 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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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의 돈까밀로 '싸가지 없는 점주로 남으리' | 기본 카테고리 2023-01-20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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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싸가지 없는 점주로 남으리 : 쿨하고 소심한 편의점 사장님

박규옥 저
몽스북 | 202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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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옥 작가의 '싸가지 없는 점주로 남으리'와 김완 작가의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었다.

두 책 모두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싸가지 없는 점주로 남으리'는 산자를 만난다는 것이고 '죽은 자의 집 청소'는 죽은 자(정확히는 죽은자의 흔적)를 만난다는 것이다.

산자와 만남에는 고만고만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화해가 있다. 자본이 만든 톱니바퀴를 최전선에서 돌리는 서비스 노동자의 애환을 유쾌하게 그려낸 게 '싸가지 없는 점주로 남으리'다. 고객과 불가근 불가원의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점주가 아슬아슬하게 고객과 거리를 늘였다 좁혔다 하는(작가 표현으론 오지랖이다) 걸 보는 재미가 있다. 꼭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에서 돈까밀로 신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럼 '빼뽀네 읍장'은 누구냐고? 빼뽀네처럼 일관성은 없지만 모든 고객이 빼뽀네 읍장이다. 다양한 얼굴로 매일매일 등장하는 고객은 오늘은 어떤 사건으로 신부님과 얘기거릴 만들까 작전을 꾸미는 것 같다. 작가가 유쾌한 글을 쓰는 역량이 있어 재밌게 술술 읽힌다.

'죽은 자의 집 청소'는 모든 갈등과 대립이 해소된 후, 마지막 남아있던 갈등의 흔적조차 지워버리는 일관된 노동을 얘기한다. 편의점의 서비스 노동자가 자본과 고객 사이에서 노동자의 자존감을 지키려 고군분투 한다면, 죽은 자의 집 청소에서 서비스 노동자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살았던 자의 모든 흔적을 지우는 수행에 가까운 노동을 얘기한다. 부처의 말씀을 옮긴 반야심경이 '불구부정'을 말하지만 어찌 범인이 더럽고 깨끗함과 불쾌함과 산뜻함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이러니 작가가 만난 현장은 청소용역에 가깝다가도 어느 순간 수행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20대 후반 어느 날 아침저녁 이를 닦을 때만이라도 내가 살다가 죽는 유한한 존재임을 기억하자라는 다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평범한 나는 안타깝게도 내가 그런 다짐을 했다는 걸 40대 후반 어느 술자리에서 다시 떠올렸다. 쉽지 않은 일이다. 어찌보면 작가는 힘들지만 노동이라는 신성한 옷을 입고 뚜벅뚜벅 무소의 뿔처럼 걷고 있는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작가는 살았던 이의 흔적을 치우기 전 늘 살았던 이를 떠올린다. 그리고 들리지 않는 독백을 때로는 대화같은 편지를 쓴다.

"당신이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 있었겠지만 당신은 많은 사랑을 받고 간 사람입니다"

그의 편지가 그에게 일을 맡긴 집주인에게는 들리지 않겠지만 고인은 잠시 동안이라도 그의 편지에 머물다 갔을 거라 믿는다. 독자 또한 그의 독백에 잠시 머물었을 것이다.

언젠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의 방을 비추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카메라 앵글에 잡힌 빈 방엔 아니러니하게도 모두 재벌의 제품으로 둘러쌓여 있다. TV, 냉장고, 노트북, 하물며 장판과 벽지까지도 말이다. 삶까지 버려야 했던 지독한 가난은 그렇게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편의점의 컵라면과 값싼 도시락이 작은 지하 셋방에 요금 독촉장이나 도시가스 차단 예고장으로 옮겨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연결이 삶과 죽음의 경계였다는 증거를 작가가 만난 현장은 증명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우리도 이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듯이 '싸가지 없는 점주로 남으리'와 '죽은 자의 집 청소'도 맞닿아 있다. 두분 작가의 글을 읽으며 다시금 살아 있음과 그렇지 않음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되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지난 몇 년 선택적으로 책읽기를 줄였었다. 무엇을 얻고 쌓기보다는 내 안의 조용함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 그런 시간을 가지면 좀더 겸손해지고 지혜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겸손은 가진 게 없으니 따로 노력할 필요가 없었고, 내안을 들여다보는 동안 지혜는 따라오지 않았다. 다시 책을 읽으며 읽고 싶다는 욕심이 다시 기승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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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소설 '옥봉' | 기본 카테고리 2023-01-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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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옥봉

장정희 저
강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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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봉/장정희]

페친인 김완 선생님의 소개로 소설 한편을 읽었다. 조선시대 굴곡진 삶을 살았던 여성 '옥봉'의 일대기를 그린 장정희 작가의 소설이다. 한 인물의 삶을 쓰다 보니 제목도 주인공의 이름과 같은 '옥봉'이다.

동시대 이야기를 즐겨 읽던 내게 시대적 배경이 다른 소설이 잘 읽힐까 조금 걱정했지만 책을 펴보니 괜한 걱정이었다.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 이내 조선 중기의 삶을 살았던 여성 옥봉의 삶에 푹 빠졌고, 책을 덮고도 비운의 여성 옥봉에게서 쉽게 헤어나지 못했다.

왜일까? 그녀가 정실이 아닌 첩에게 태어난 서출이라서일까? 아니면 출생이 서러워 더 애달픈 그녀의 기구한 삶 때문일까? 정실에서 태어났다고 한들 봉건제 여성의 삶이 마냥 행복했을 리 없을 것이고, 기구한 걸로 따지자면 군역으로 아비를 잃었고 몸을 팔다 죽어간 어미를 둔 작중 기생 맹아의 삶이 더 기구했을 것이다.

독자인 내가 쉽게 소설 옥봉에서 헤어나지 못한 까닭은 이 소설이 쉽게 쓰여진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쉽게 쓰여진 소설은 없다. 하지만 동시대가 아닌 다른 시공간에 살았던 한 여성의 굴곡진 인생을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선 풍부한 상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실존했던 인물 '옥봉'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던 작가는 실존했던 그녀를 숨쉬는 인물로 살려내기 위해 엄청난 사료에서 옥봉의 흔적을 찾았을 것이다. 인물 옥봉만 그랬을까? 옥봉이 가출해 걸었던 조선의 난장을 묘사하기 위해서도 작가는 장터 앞에서 한참 쪼그려 앉아 있었을 것이다. 작중 생과 사의 복수를 펼치는 당시 사화를 사실감 있게 전달하기 위해 아마도 작가는 수십, 수백 번 도서관을 찾았을 것이다. 또한 수만 페이지의 사료와 수천 페이지의 출력본이 소설 이전의 자료로 작가의 책상을 덮었을 것이다. 책과 자료로 덮힌 책상에서 자료를 들여다보고 앉아 있었을 작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옥봉을 읽은 독자 누구나 느꼈던 대목일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옥봉'은 쓰기 전에 모두 쓰여진 책이다.

소설의 마지막 순간까지 옥봉은 내 안에서 살아 숨쉬며 나를 긴장시켰고 함께 울게 만들었다. 옥봉이 누군가 앞에서 시를 읊으면 혹시나 이 시로 그녀의 생이 다른 궤적으로 흐를까 노심초사했고, 그녀의 글에 세상을 풍자하는 얕은 은유라도 스며들면 거친 사화의 파도가 그녀에게 닥칠까 가슴이 쪼그라들곤 했다. 옥봉의 남편 조원도 나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이렇듯 소설은 옥봉을 비롯한 작중 인물 모두가 바로 오늘을 살고있는 것처럼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철저한 준비만큼 풍부하고 섬세한 묘사로 독자를 흡입했다. 내가 책을 덮고도 옥봉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던 이유였다.

소설은 도입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조선의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을 말하기 위해 작가는 이역만리 중국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왕의 명을 받고 황제를 알현하러 갔던 조선의 사신과 그 사신에게 아버지의 존함과 옥봉이라는 여류 시인에 대해 물어보는 중국의 고위 관료.

이렇게 옥봉의 이름은 조선의 사신과 책을 읽는 독자에게 처음 공개된다. 이 즈음부터 독자는 책 속으로 한 걸음 더 깊이 빠지게 된다. 왜 조선의 여류시인이 중국 관료의 입에서 등장하는지? 조선의 사신과 이 여인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런 궁금증으로 인해 독자는 서둘러 페이지를 넘겨 다음 장면을 만나러 가게 된다. 소설을 끌어가는 작가의 힘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오랜기간 사료를 분석하고 준비했던 작가의 노력과 이야기의 서사를 쥐락펴락 하는 작가의 소설적 재능이 결합해 소설의 진가가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한 여인의 삶, 스스로 이름을 지을 정도의 영민했던 아이의 삶이 여인의 삶이 되고 여인의 삶이 첩의 삶으로 점철되는 과정을 작가는 허구인지 사실인지 모를 정도로 가슴 저리게 묘사한다. 독자인 나 또한 작가의 문장에 깊이 빠져 그녀의 삶에 깊은 연민의 정을 느끼곤 했다.

이렇듯 소설은 옥봉을 비롯한 작중 인물이 오늘을 살고있는 것처럼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철저한 준비와 작가의 역량없이는 불가능한 전개이다.

봉건제 조선에서 정실의 자식이든 서출의 자식이든 여성의 삶은 녹녹치 않았겠지만, 첩으로 사는 삶은 출산과 같우 인간의 기본적 욕구조차 절제해야 했다. 시를 통해 존재의 결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옥봉은 결국 그녀가 가장 가까이 뒀던 문장에 의해 파국으로 치닫는다. 더욱이 그 파국의 문고리를 가장 사랑했던 남자가 열어야 했던 전개는 작가도 피하고 싶었던 서사였을 것이다.

장정희 작가가 옥봉이란 인물을 소설 속에 그리게 된 이유가 뭘까 곰곰히 생각해 보게되는 밤이다. 대단한 소설이고 대단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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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유물들 | 기본 카테고리 2023-01-0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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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유혹하는 유물들

박찬희 저/임지이 그림
빨간소금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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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유물들/박찬희]

며칠 전, '박찬희 박물관 연구소' 소장이 쓴 '유혹하는 유물들'을 주문했다. 오래 전 박찬희 소장이 설명하는 역사 탐방에서 풍부한 해설과 설명에 탄복했던 기억이 있어 망설이지 않고 주문을 했다. 박물관 큐레이터에서 역사 유물 작가로 변신한 박찬희 소장의 신간 '유혹하는 유물들' 역시 역사학자로서 그의 해박한 지식과 유물에 대한 깊이 있는 관람 태도가 엿보였다.

언젠가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고 사찰 여행을 했던 기억이 있다. 주로 오랜 친구, 조용한 친구와 함께였다. 여러 번 왔었던 같은 사찰이었지만 유홍준 선생의 설명을 들은 뒤 보는 느낌은 달랐다. 대들보도 단청도 서까래도 눈에 보이던 것이 가슴에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앞서 유흥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그랬듯 이책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유물을 소개한다. 교과서에 나오기도 했고, 신문이나 뉴스 때로는 박물관에서 직접 봤을 것 같은 유물들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유물을 다시 보면 사찰이 가슴에 내려앉은 것처럼 초상화가, 반가사유상이, 향로가 내 앞으로 성큼 다가서는 경험을 하게된다.

조선 선비 서직수의 초상화를 설명한 글도 새롭다. 한 사람의 초상화를 두 사람이 그렸다는 것에도 놀랐지만, 그림을 그린 이가 조선 최고의 화가 김홍도와 어진을 그렸던 이명기라는 사실도 새로웠다. 서직수의 초상화는 이명기가 얼굴을 그렸고 김홍도가 몸을 최대한 실사에 가깝게 그렸다. 박찬희 소장은 김홍도가 초상의 어깨 부분을 조금 수정한 것까지 자세히 알려준다. 그 얘기를 들으니, 멀찍이 떨어져 서직수의 초상화를 마뜩잖게 바라보고 섰을 시대의 화가 김홍도의 모습이 상상되기도 한다. 그제서야 평범하게 보였던 초상화가 성큼 내 앞으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두 점의 반가사유상, 감산사 미륵보살 입상, 감산사 아미타불 입상에서 박소장은 아래, 위, 좌, 우 다양한 시선으로 작품을 정성들여 바라본다.
아래에서 위로 볼 때 불상의 섬세함이 다르고, 옆에서 봤을 때 반가사유상은 더 풍부한 미소를 짓는다고 한다.

감산사 미륵보살 입상을 얘기하며 박소장은 '장인이 불상을 조각한 게 아니라, 원래부터 있던 불상을 돌에서 꺼낸 게 아닐까'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가 유물을 감상할 때 얼마나 깊이 유물과 하나가 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청자칠보무늬 향로'도 교과서나 여러 인쇄물에서 수없이 봤는데 향로를 토끼가 받치고 있다는 것을 박소장의 설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이렇듯 스쳐지날 수 있는 것들을 스쳐지나지 않게 해준다. 박찬희 소장은 '유물은 한눈에 진가를 보여주지 않는다. 멈추고 봐야 알려주고 낮추고 봐야 들려주고 돌면서 봐야 곁을 내준다'라고 말한다.

책 사이사이 삽화로 나오는 임지이 작가의 그림도 책을 보는 재미 중 하나다. 임지이 작가의 그림책을 봤을 때처럼 종종 킥킥거렸다. 85쪽 그림 설명에 주인공 잼잼이가 안 나오니 조금 서운할 정도였으니..임지이 작가의 재치를 보는 재미도 분명히 있다.

예전 작가의 안내로 박물관을 관람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천진한 미소. 성인이 된 한 남자가 어떻게 저렇게 천진스런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란 생각을 했었다. 책을 읽는 내내 그가 내 옆에서 천진스런 미소를 띠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유물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아는 만큼 보이지만 아는 만큼만 보면 손해다. 우린 어려운 문제를 풀 때 선생님의 도움을 받거나 해설서를 찾곤 한다. 그런데 유물이나 문화재를 관람하러 갈 때 왜 그냥 들여다보고 말까? 꼭 코끼리 냉장고에 넣기처럼 박물관을 방문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든다면 박찬희 소장의 유혹에 빠져 '유혹하는 유물들'들고 박물관을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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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다를 닮아서'를 읽고 | 기본 카테고리 2022-12-16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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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바다를 닮아서

반수연 저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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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다를 닮아서-

조금 일찍 퇴근해 쌀을 씻어 밥을 안쳤다. '쿠쿠가 맛있는 취사를 시작합니다'란 말을 들으며 반수연 작가의 '나는 바다를 닮아서' 산문집을 꺼내 식탁에 올렸다. 어제 낮부터 저녁까지 한번에 읽어버린 책이다. 작가의 이민 생활과 순탄치 않았던 어린 시절 기억을 얘기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일상에서 글줄기를 찾아내는 반수연 작가의 탁월한 관찰력에도 감탄했지만 에세이 전체를 받치고 있는 탄탄한 문장의 힘, 필력에도 많이 놀랐다.

먼저 문장이 짧으며 경쾌하고 단단하다. 작가의 탁월한 필력은 사소한 사건에도 독자를 킥킥거리게 만들거나 짠한 감정의 숲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톡톡 튀는 문장이 끌고가는 대로 끌려가다 보면(아니 끌려갈 수밖에 없는) 작가의 생각의 속도에 독자는 함께 공명하게 된다. 공명의 리듬을 타는 순간 웃고, 울고, 감탄하다 진한 아쉬움과 함께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내게 있어 공명의 순간은 불과 몇 페이지 읽지 않아서였다. 캐나다에서 고사리를 채취하는 작가를 따라가다 캐나다 경찰을 경계했고, 에잇! 그깟 벌금 내고 말지 호연지기를 실현했고, 결국엔 일체유심조 '거기 고사리가 있으니 나는 캘 뿐'까지 가게 됐다. 소제목 또한 능청스럽게 '번뇌의 숲'이다. 제목에 기가 눌려 약간 무겁게 접근했던 나의 순진함과 작가의 능청이 만나 그렇게 '나는 바다를 닮아서'와 공명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98년 아이를 데리고 남편과 캐나다로 이민을 간다.어디 이민이 쉬운 결정인가? 낯선 나라에서 한 가정이 뿌리 내린다는 건, 12월 추운 어느 날 장미 삽목을 하고 지켜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해가 없어도 안 되고, 온도가 떨어져도 안 되고 습도도 맞아야 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데 일은 해야 하고, 돈은 없는데 집은 구해야 하고, 무엇 하나 쉽지 않은 이민 생활을 작가는 담담하게가 아닌 두근거리게 얘기한다. 독자가 꼭 같은 환경을 맞딱뜨린 것처럼.

'나는 바다를 닮아서'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떠올렸다. 박완서 선생님의 글과 반수연 작가의 글이 주는 느낌이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년의 기억을 바탕에 둔 전개가 겹쳐서일 수도 있고 독자를 편하게 만드는 문장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장은 분명 다른 부분이 있었다. 반수연 작가의 문장은 단단하고 경쾌한 느낌이 있다.

왜 문장이 단단하다는 느낌을 받았을까? 단단하다는 것은 뭐고, 단단함이 어디서 왔을까? 궁금해졌다. 잠시 생각하며 글을 읽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작가의 성장 과정을 보며 이내 단단함의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시장통에서 가장 만만한 선술집 과부 어머니에게 행패를 부리는 취객을 향해 '고마 캭 죽이삔다'라고 강단있게 소리쳤던 어린 소녀, 언니 대신 전봇대 두꺼비집에 올라가 '얼굴에 말고 후레쉬 똑바로 비치라' 소리치며 퓨즈를 갈아 동네를 밝혔던 어린 작가의 강단이 문장을 단단해 보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작가의 삶도 함께 단단해졌을 것이다.

단단함이 주는 효과는 크다. 슬픔과 고단함조차도 단단한 언어는 경쾌하게 넘어선다.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지도 않고 이야기의 서사 또한 휘~ 다른 무대로 훌쩍 옮겨버린다.

어머니의 장례에서 큰언니의 기독교식 추모와 작은언니의 불교식 장례가 충돌할 때 '요즘은 하이브리드가 대세인가'란 단 한 문장으로 작가는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이야기 서사 또한 다른 삶을 살아왔을 언니, 오빠의 이별의 방식을 존중하고 더 나가 그들의 삶을 존중하는 흐름으로 이동한다.

아무도 웃지 않았다고 작가는 말했지만 단단한 이 한마디 이후 옮겨간 이야기의 서사는 언니, 오빠 뿐만 아니라 독자까지 따뜻하게 만들었다. 작가가 살아 온 힘이고 버텨 낸 힘이다.

삽목했던 장미가 뿌리를 내리고 몇 해 지나면 꽃을 피운다. 꽃은 해마다 핀다. 지난했던 작가의 가정도 꽃을 피웠다. 꽃은 엄마, 아빠보다 크고 화려해 가끔 낯설기도 하지만 낯선 땅에 뿌리를 깊게 박은 장미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바다를 닮아서'를 반쯤 읽다가 작가를 검색했고, 2/3 정도 읽었을 때 반수연 작가가 먼저 출간했다는 '통영'을 주문했다. 지금도 반수연 작가의 글과 공명하고 있으니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혼 초기,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 '조금만 지나면 좋아질 거야, 쫌만 참아 줘'란 말을 아내에게 자주했다. 그럴 때마다 말이란 '더 이상 곪지 말라고 툭 하고 던지는 최초의 항생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바다를 닮아서' 이야기 속에는 고단하고 힘든 이민 가족의 일상을 곪지 않게 지켜냈던 탄탄한 언어의 항생제가 가득 들어있다.

반수연 작가의 문장을 통해 고단한 일상을 지켰냈던 역설의 위트를 꼭! 경험해 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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