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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있어요 | 기본 카테고리 2022-09-2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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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나는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있어요

임지이 저
빨간소금 | 202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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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 소개받는다는 건 참 기쁜 일이다. 더구나 잘(돈/권력/명예 말고 나이 들고 죽어가는 걸 평범하게 지켜볼 수 있는 삶. 그런 것) 살고 있는 이들에게 무언가를 소개받는다는 건 시간의 낭비를 줄이고 공감을 높이는 경우가 많아 대개 즐거운 기억으로 남게 된다.

얼마 전에는 '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란 단편집의 소개(책한테 책을 소개받다니? 조금 웃기지만 사실이다)를 받아 같은 작가의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이란 장편을 만나기도 했다. 읽는 내내 이웃에 대한 녹지 않는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이번에는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들', '배달의 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은 처음이라' 등 좋으면서도 잘 안 팔리는 책을 서슴없이 출판하는 <빨간소금> 출판사를 통해 임지이 작가의 '나는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있어요'라는 그림 에세이를 소개 받았다.

일단, 그림도 글도 재밌다.

책표지에 정체성을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그림책이다. 다시 말하면 작가는 그림과 텍스트를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 있다. 언젠가 친구들과 얘기하다 이런 생각을 밝힌 적이 있다.

'텍스트는 상상으로 거듭난다'

우리가 접한 수없이 많은 텍스트는 상상을 통해 독특한 자기만의 해석으로 각자의 기억에 자리매김하고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문장이 주는 느낌은, 같지만 같지 않았을 것이고 시는 저대로 사람 속에서 날뛰곤 했을 것이다. 임지이 작가의 그림 에세이 '나는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있어요' 또한 그랬다. 다른 것이 있다면 텍스트가 상상을 끌어낸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상상을 끄집어냈다는 것이랄까. 이 그림책을 통해 이미지가 상상을 저해할 것이란 내 선입관 또한 깔끔하게 깨지고 말았다. 텍스트를 잠시 멈춰두고 작가가 그린 자화상과 그녀의 몸동작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대부분 낄낄거릴 수 있었고 때론 공감하며 함께 슬퍼하기도 했다. '이미지는 감정에 바로 들이댄다'는 걸 경험할 수 있었다. 즐겁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책 제목 '나는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있어요'에서 보듯 작가는 자신의 지난 삶을 지금보다 좋았다고 표현하지 않고 있다. 월급을 타는 삶! 월.화.수.목.금이 있고 다시 돌아오는 월.화.수.목.금을 위해 토. 일을 쉬어야 하는 톱니바퀴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작가는 타의에 도움을 받은 자의로 반복되던 굴레에서 벗어났다.

회사를 잘리고 1주일 동안 8kg이 빠지기도 하고 동네 도서관을 출근하듯 다닌 후 작가는 재취업을 거부하고 '저녁이 있는 삶' 아니 '낮이 있는 삶'을 선택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있네'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저녁이 있는 삶'도 오지 않았는데 '낮이 있는 삶이라니'하고 말이다. 하지만 난 임지이 작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언젠가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 앉아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를 바라보다 하늘을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젠 새가 날아야 하늘을 보는구나' 20년도 더 지난 그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게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가장 평범한 것들로부터 소외되었다는 기분. 그래서 나는 내가 아닌 것 같고 주변의 모든 것이 낯설게 보였던 기억. 이런 느낌이 임지이 작가가 어떤 선택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아니었을까? 어렴풋이 추측해 보기도 했다.

'나는 더 좋은 곳으로 가고 있어요'를 보며 어떤 느낌이 들었냐고 내게 묻는다면 난 '선택의 행복'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굴곡진 삶을 살았던 내게 프리랜서로 사는 것에 대한 불안, 소득의 감소, 외부의 시선은 그다지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적자생존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능력 있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에게 하루하루는 버티기 힘든 정글의 삶임을 알기 때문이다. 내겐 비루한 일상을 유쾌하게 풀어낸 하루하루보다는 선택한다는 것! 선택을 위해 고민한다는 것! 그리고 결국엔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선택한다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 선택의 선물로 다가온 작가의 그림은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감동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많은 선택을 통해 우린 점점 더 진지하게 나를 다듬어 나에게 접근하고 있을 것이다.(물론 수행의 차원에서 '나는 없다'와는 다른 문제) 스스로 진지하게 물어보자. 나의 마지막 선택은 언제였는지? 아침 출근, 저녁 퇴근. 아이들의 진학, 직장의 승진 이런 것들이 스스로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우린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가 우리의 마지막 선택이었을까? 선택을 포기한 삶을 살았던 우리는 까마득히 멀리 사라져 버린 마지막 선택 이후에 어떤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일까?

선택 이후 그림으로 거듭난 작가의 재능뿐만 아니라 가난, 두려움, 무기력증 등 아팠던 시간 또한 선택이 가져온 선물이었을 것이다. 기쁘든 슬프든 살면서 느끼게 되는 모든 감정을 우린 피할 수 없고, 그런 감정을 겪으며 우린 그렇게 성장한다.

강말금 배우가 추천했다고 한다...

나도 추천한다. 임지이 작가가 그린 자화상을 통해 선택이 주는 원초적 기쁨을 느껴보시길 권해 본다. 그리고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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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 상회의 집사들 | 기본 카테고리 2022-06-22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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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오로라 상회의 집사들

이경란 저
은행나무 |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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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 다큐를 보는 느낌으로 이경란 작가의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을 읽었다. 5부작 다큐로 치자면 2부 정도까지 봤을까? 작중 '집사들'이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어깨를 툭툭치는 것 같아 오늘은 지하철로 출근하며 그들의 얘기를 마지막까지 읽기로 했다.

이경란 작가는 여러 단편에서 보여준 것처럼 사람과 관계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집사들'로 표현된 복수의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 보여줬다. 실업급여를 받으며 생활하는 실업자 민용,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연후, 학교를 휴학하고 2~3개의 알바를 뛰는 고단한 고학생 저커, 거기에 쉼없이 돌아가는 세상의 톱니바퀴에서 떨어져 나온 퇴직자 이안이 '집사들'로 등장한다. 인물 소개에서 보듯이 이들의 조합이 즐겁거나 흥이날 리 없다. 어쩌면 보는 것조차 답답하고 무거워 고개를 돌려야 맘이 편한 조합이라고 표현하는 게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작가가 굳이 '집사'라고 표현한 것처럼 무엇인가를 돌보고 있다. 고양이 유로일 수도 있고, 함께 생활하는 서로일 수도 있다. 그리고 결국엔(가장 중요하게) 스스로를 돌볼 수 있게 성장한다. 무언가를 돌본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래서인지 세상의 끝에 몰린 것 같은 이들의 공동체 생활이 마냥 어둡고 지쳐보이지 않았다.

길고양이 유로와 함께 각자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출발하게 된 이들의 색다른 동거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승자 독식의 경쟁사회를 살며 승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익숙한 우리. 승자가 되라고 강요하는 가족과 사회. 늘 타인의 성공 스토리에 익숙해져 자신을 주연이 아닌 조연. 아니 조연에도 못미치는 엑스트라 정도로 스스로의 좌표를 찍게 만드는 사회. '집사들'은 이런 현실을 함께 살고 있는 우리의 투사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며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떠올렸다고 한다. 가까운 가족 대신 낯선 인물과 동거하며 위로하고 위로받는 이야기라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오로라 상회의 집사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가족보다 트리나 폴러스의 나비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맹목적으로 산을 오르는 수많은 에벌레들. 올라가기만 하면 삶의 목적과 성취감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동료를 밟고 또 밟으며 올라간 꼭대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 그 때 올라가기를 거부했던 에벌레 친구가 고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나비로 성장한 모습. 내겐 나비로 성장하기 위해 고치로 몸을 감싸는 에벌레와 자전거로 대륙을 횡단하겠다는 저커가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꿈이라곤 오로지 어린시절 '닌자'가 유일했던 연후에게 똑딱이처럼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살아왔던 과거의 자신을 죽여달라고 청부하는 이안. 과거의 이안과 현실의 이안을 보며 상실감과 소외는 어쩌면 성공과 관계없이 우리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란 걸 느끼게 될 때, 이안 또한 낡은 LP판을 통해 변태를 준비한다. 연후의 목소리로 카카오 프로필 사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안의 회복과 성장도 저커 그리고 나비와 다르지 않았다.

고양이 집사에서 서로의 집사로, 서로의 집사에서 자기 삶의 집사로 성장해 가는 '집사들'의 모습은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승리하지 않는 삶을 택한다 하더라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자전거를 타고 중국 대륙을 횡단하는 저커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표현했던 '달달하고 쌉싸름한 천 삼백원어치의 맛'은 확실히 "일체의 욕망을 거세한 상태보다 확실히 짜릿한 맛이 있다"란 문장과 함께 저커의 삶의 변화를 미리 얘기한다.(정말 멋진 문장이다)천 삼백원어치의 맛을 통해 작가는 꿈을 강요당하고, 화려한 꿈과 미래의 내가 등치해야만 존중받는 세상에 자신을 맞출 필요는 없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정말 멋진 '맛'을 느껴보라고.

지하철에서 모두 읽지 못해 마지막 몇 페이지는 지하철 계단에 기대서 읽었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50대 중반의 남자가 지하철 계단에 기대 책읽는 모습!
(재미도 있다는 얘기를 이렇게 전달해 봅니다~ㅎ)

이경란 작가가 안내하는 '집사들'의 세계를 경험하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집사로 함께 성장해 보는 것도 멋진 일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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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 | 기본 카테고리 2022-04-15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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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

이경란 저
강 | 2021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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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매력에 끌려 단편을 종종 읽는 내게 우연히 이경란 작가의 '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를 읽을 기회가 왔다.

작품집 '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는 이경란 작가의 9개의 단편으로 엮여진 작품집이다. 책이 도착한 첫 날 5편의 작품을 읽었고, 지방 출장 길 열차 안에서 남은 작품 모두를 읽게 됐다.

9편 정도의 작품을 몰아서 읽다 보면 작중 화자 또는 상황의 섬세한 묘사를 통해 작가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내가 짐작하는 이경란 작가는 따뜻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작가는 이웃과 인간에 대한 자신의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꼬일대로 꼬인 불운한 인생사로 표현한다. 어떤 경우는 읽는 독자가 불편할 정도까지 손을 잡아 끌며 작품의 불운 속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화장실 한 구석의 역한 냄새, 방 한 귀퉁이에서 똥과 오물을 묻히고 입에 뭔가를 흘려 넣는 노인, 죽어가는 아내의 몸 위에 누워 몸을 부비는 남편... 책을 든 이상 독자라고 피해 갈 수 없다.

어떤 작품(빨간 치마를 입은 아이/연두)에서는 이야기의 서사가 연결되지 않지만 한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독자에 주는 감정의 연결선은 같게 느껴졌다.

꼬일대로 꼬여버린 작중 인물의 삶에 지쳐 '뭐야.. 삶이 꼭 이래야 되는 거야'란 느낌이 들 때쯤에야 비로소 가까운 곳에서 이들의 삶을 바라봤을 작가를 보게 된다. 그리고 최소한 작가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함께 든다. 작품을 구상하며 자판을 두드리며 어쩌면 작가도 작중 인물의 도피처를 만들고 싶었단 생각도 들었으리란 생각도 해본다.

시간이 되신다면, 이경란 작가의 작품을 통해 멜라닌 색소처럼 깊게 스며든 우리의 상처 속에서 역설의 치유를 느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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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나의 친구에게 | 기본 카테고리 2022-01-2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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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홍명교 저
빨간소금 | 2021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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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리석게 '지금도 활동가가 있어?'란 순진한 생각을 했다. 노동, 젠더, 성소수자, 환경, 동물 등 세상의 모든 불균형에 대한 강자의 의도적 지배가 사라지지 않은 한 약자의 소리를 대변하는 모든 이의 움직임이 '활동가'일 수밖에 없는 데도 말이다.

조금 부끄러웠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좋은 책이라 추천해서 읽었는데, 역시 좋은 책이었다. 읽는 내내 '균형의 추'란 문장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저자가 '균형의 추'였고, 사라진 중국 친구들이 세상을 떠 받치고 있는 '균형의 추'였다. 천안문 광장에서 두 팔을 들어 탱크를 막아선 시민이 생각난다. 우린 그런 '균형의 추'를 활동가 또는 혁명가 그도 아니면 이름 없이 사라져간 시민이라 부르기도 했다.

성장의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고, 성장의 성과물이 초법적으로 소수에게 집중되고 있는 중국 사회를 읽으며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우리 시대가 오버랩 되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거대한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강력한 강자들의 연대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갈라내지 않았다. 오히려 왜곡되고 패쇄된 사회주의(아니 전체주의 또는 '국가자본주의'란 표현이 어울릴 것같은)에서는 약자에 대한 폭력이 은밀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성장의 성과물은 소수에게 독점되고 있었다. 이런 그들 사회에 연약한 두 팔을 뻗어 한 번만이라도 멈춰서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라고 외쳤던 이들이 이 책의 저자와 사라진 중국친구들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젊은 활동가들은 우리 70~80년대처럼 경직되지 않았고 자유분방함 속에서도 목표와 방향성을 잃지 않았다. 그들의 건강한 에너지는 중국의 미래 아니 우리의 미래란 생각도 들었다. 굳이 우리의 미래까지 얘기한 이유는 중국으로 떠났던 저자의 의도 중 하나가 '연대'였기 때문이고, 중국 친구들 또한 '전태일 평전'을 읽으며 먼저 발생했던 한국의 노동운동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농민, 노동자의 국가권력임을 내세우는 중국정부가 우리보다 훨씬 강력하게 탈법적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것을 보며 참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중국에도 우리처럼 어용 노조(그들은 어용공회라 부른다)가 있고, 사측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직원의 출근을 막고, 깡패를 동원해 노동자를 구타한다. 물론 공안은 폭력 깡패를 잡지 않는다. 우리의 지난(아니 지금도) 80~90년대 대한민국이 데자뷰되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노동자만 연대와 공유를 통해 타국의 노동운동을 학습하는 게 아니라 자본가와 공권력도 만국이 연대해 지배와 탄압을 학습한다. 그들은 필연적 동지이자 강력한 톱니바퀴의 일원이다.

단지 노동운동만이 아니다. 젠더갈등, 여성인권 운동은 우리와 동시대를 고민하고 있다. 중국 친구들이 '82년 김지영'을 읽고 봄날의 벼락같이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성의 문제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인류가 접한 가장 오래되고 불평등한 권력관계이기에 그럴 것이다. 남성, 종교,국가가 개입해 여성을 죽음으로 내몰고 남성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는 건 어제의 일이 아니라 반드시 해결해야 할 오늘의 문제이다.

젊은 중국의 활동가들은 젠더갈등(대등해야 갈등이니, 사실은 갈등이 아니라 젠더 폭력이 맞다)을 대립과 파괴로 몰아가는 해결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얘기한다. 젊은 중국친구들의 얘기를 들으며 득표를 위해 남과여를 비정상적으로 갈라치기 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집단을 떠올리며 씁쓸함과 부끄러움 또한 감출 수 없었다.

마르크스의 동상을 수도 없이 마주치는 중국에서 벌어지는 노동자 탄압 그리고 반 마르크스주의~ 베이징대에 마르크스주의학회가 중국 국가권력의 감시와 암묵적 탄압을 받는다는 것이 믿어지는가? 어떻게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적이고 사회주의의 적이 되었는지 백골이 진토가 되었을 마르크스는 어떻게 생각할지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베이징대 중국 학생은 이렇게 말한다.
'마르크스는 시험에만 나온다. 그리고 너무 어려워 학점 따기가 힘들다!'
마르크스를 공부하는 이유가 학점을 따기 위함이고, 학점을 따고 마르크스 박물관에 가는 이유는 국가자본주의 정점에서 자본을 수탈할 수 있는 권력 핵심에 들어가기 위해서라고 한다.
바로 '공산당원'이 되기 위해...

젊은 친구들의 저항과 연대가 꼭 자본권력과 국가권력에 대한 직접적인 저항만이 아니었다는 것도 놀랍고 새로웠다. '706주거 공간'도 독특했다. 다른 관심과 전공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창의적 공간. 거주 공동체가 갖는 장점을 활용한 소통. 문학, 철학, 건축, 과학이 공존하는 거주공간의 다양성은 정말 부러웠다.(내가 벌써 오십대 중반이라니...ㅠㅠ 20~30대였으면 한 번쯤 꼭 살아보고 싶은 곳이다.)
다양성의 존중은 결국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는 토양이 될 것이다. 이들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이런 공간들이 자치와 협동조합의 형태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치솟을대로 치솟아 거주의 평화를 해치고, 삶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현실을 벗어나 소비문화와 고단한 삶에서 해방되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확대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작자의 얘기대로 서울의 청년주거정책보다 훨씬 성장한 문화주거공간이면서 궁극적으로 자본으로부터 자유를 꿈꾸는 공간이 되는 것을 기대해본다.

역사의 저울에 올라서 강자들의 강력한 연대와 감히 무게를 맞추려 하는 '작은 추'.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들은 언젠가 강자와 균형을 맞추는 '균형의 추'로 성장할 것이다. 난 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완성시키리라 믿고 있다. 또한 그들의 삶을 존중하고 그들의 가치에 연대의 박수를 보낸다.

30년 전, 인민의 사적욕구를 공산당의 교육과 지도로 극복할 수 있다는 공산당 선언을 다시 곱씹다 '봄날의 벼락같이' 개소리란 것을 깨달았던 순간이 떠오른다.

언제까지 한 쪽에서는 자본이 숫자 욕심으로, 다른 한 쪽에서는 생존의 칼날로 존재할지 정말 안타까울뿐이다.

'사라진 나의 중국친구에게' 좋은 책을 쓸 수 있는 삶을 살았던 작가, 그리고 좋은 책을 만드는 출판사에 경의를 표하며, 독자들이 돈 모아 술 사주거나, 세계일주라도 꼭 시켜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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