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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안 하고는 못 산다 [포드 v 페라리] | 기본 카테고리 2019-12-29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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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포드 V 페라리

제임스 맨골드
미국 | 2019년 12월

영화     구매하기

1.

작은 아들이 보라고 한 두번째 영화다. 아내랑 같이 볼 수밖에.

이런 영화는 아무나 못 만든다. 돈 없으면 만들지 못하는 영화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지 않으면 만들기 어렵겠다 싶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올해 만든 영화 <포드 v 페라리 Ford v Ferrari> 얘기다.

손에 땀을 쥐고 가슴을 졸이며 보다 보면 어느새 2시간 32분이 지나간다.

눈과 가슴으로 느끼면 되는 영화다. 별 다섯을 주지 않을 수 없다.


2.

영화 줄거리는 길지 않다. 짧다.

포드 자동차가  페라리 같이 레이싱 대회에서 우승하는 차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알리자는 것. 

매출이 자꾸 떨어지는 까닭을 묻는 포드 2세(트레이시 레트스)에게 마케팅팀을 이끌고 있던

리 아이아코카(존 번달)가 회사를 살리는 방안으로 올린 것.


1960년대 포드는 차를 많이 만들어 팔지만 페라리 같이 명차로 보이지 않는다. 

장인 포드 2세로선 열받는 일이다. 

"돈이 얼마가 들든 우승할 수 있는 차를 만들어!"


프랑스에서 열리는 레이싱 대회인 르망 24시에서 으뜸이 되려면, 두 가지를 갖춰야 한다.

첫째는 차다. 무엇보다 차를 잘 만들어야 한다.  

엔진 힘이 좋아야 하고, 브레이크도 잘 들어야 하며, 굽이길에서도 미끄러지지 않아야 한다.


둘째는 사람이다. 그 차를 모는 사람이 솜씨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차가 좋아도 스물 네 시간동안 빠르게 잘 몰지 않으면 허탕이다.


사장이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젠 그에 맞는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

먼저 르망 24시에 나가서 미국사람으로선 처음으로 1등을 한 캐롤 쉘비(맷 데이먼)한테 간다.

잘 달리는 차를 만들도록.


다음으로 차를 몰 사람을 찾는다. 

까칠하고 한 성깔 하는 사람이지만 켄 마일스(크리스천 베일)를 고를 수밖에.

포드 부사장 레오 비비(조쉬 루카스)는 켄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3.

차가 엄청나게 빨리 달리고, 그에 따라 카메라도 따라 가는 영화여서 보는 내내 박진감이 넘친다.

때로는 잘못 될까 싶어서 가슴을 졸이며 보았다. 


경기장을 따라 달리는 차들이 부딪히거나 굴러서 부서지는 모습이나

페라리를 몰던 반디니와 포드를 몰고 가는 켄이 스쳐 지나갈 때 서로를 쳐다보면서 짓는 표정 따위는

생생해서 마치 내가 차를 모는 듯하다.


게다가 이야기도 맛깔스럽다.

마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7인의 사무라이 Seven Samiri, 1954년>에서

사무라이를 사는 대목이나 나중에 산적들과 칼싸움을 벌이는 장면을 요즈음으로 옮겨놓은 듯하다.


거만하고 다른 사람들을 깔보기도 하는 포드 자동차 부사장 같은 이와 벌이는 일들은 고소하다. 

그런 부사장의 말을 듣는 척 하면서도 딴지를 걸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는 캐롤은 볼 수록 멋지다.

까칠해서 다른 사람들과 못 맞출 것 같으면서도 저를 알아주는 캐롤의 말에 때로는 고개숙이는 

켄의 모습도 흐뭇하게 보았다.

송곳 하나 안 들어갈 것 같은 포드 사장을 놀라게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장면도 볼 만하다.


각이 져서 딱딱 부러질 것 같은데 엉뚱하게 슬며시 굽이져서 가슴이 뭉클해지는 대목이나,

까칠하지만 좋아하는 일에 목숨을 거는 사내들 모습을 보면서 끝무렵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아쉬운 대목은 르망 경기장에서 캐롤이 페라리 팀의 스톱워치 하나를 슬쩍 갖고 오거나, 

너트 하나를 페라리 팀 쪽으로 던져놓아서 차에서 빠졌나 싶은 정비사들을 놀라게 하는 건,

어쩐지 제 솜씨로 우승한 사람답지 못하다. 아니, 감독이 잘못 했다. 

그런 꼼수는 잘 만든 영화의 값어치를 떨어뜨린다.


4.

회사 좋은 대로 하려는 포드자동차 사람들과 까칠한 켄을 엮느라 애를 먹는, 캐롤을 맡은 맷 데이먼. 

나무랄 데가 없는 연기 솜씨다. 가슴이 먹먹해서 말을 못 할 때 보는 나도 가슴이 아렸다. 


차를 모는 데는 따를 사람이 없고, 한 성깔 하는 탓에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켄 노릇의 

크리스천 베일은 누가 보면 카 레이서라 해도 될 만큼 차를 잘 몰았다. 

엄청나게 달려가거나 다른 차와 맞부딪힐 때는 대역을 썼겠지만 순간 순간의 표정은 정말 같았다.


차에 돈을 쏟아부은 탓에 국세청의 압류 딱지까지 맞은 켄이 다시 경주용 차를 몰지도 모른다고 

알았을 때, 켄을 태우고 길을 마구잡이로 달려가는 아내 몰리가  머리속에 많이 남는다. 아찔했다.


켄의 아들 피터가 많이 나오는데, 그 아버지를 뒤이어 카 레이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영화에서 캐롤과 켄을 찾아내서 일을 시키는 포드자동차의 리 아이아코카는 사장까지 지냈고,

그 뒤 미국 크라이슬러 자동차의 회장까지 지냈으나, 지난 7월에 세상을 떠났다. 

자신이 나온 이 영화를 보고 떠났을까? 아마도 못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선 빛깔이 좀 밋밋했다. 부사장보다 더 살릴 수도 있었을 텐데...


1966년 르망 24시 레이스를 뒷바탕으로 삼아 만든 이 영화는 

수 없이 찍고 요리조리 잘라 붙여서 만들었겠지만, 참 잘 찍고 잘 붙여 놓았다. 

'포드 대 페라리'가 아니라 '일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 대 얼굴만 세우려는 이'를 견줘서 보여준 영화다.

엄지를 척 올리지 않을 수 없다.


7,000 아르 피 엠에 이르러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켄이 노래(?)하는 소리가 귀에서 떠나지 않는다.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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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은 하늘이 살린다? [나이브스 아웃] | 기본 카테고리 2019-12-2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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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이브스 아웃

라이언 존슨
미국 | 2019년 12월

영화     구매하기

1. 

간만에 보는 영화다.

옛날에는 이레에 한 두 편은 보았는데, 요즈음은 해걸이를 할 때도 있다. 참...

작은 아들이 엄마랑 같이 보면 좋겠다고 하는 터라, 못 이기는 척 아내와 같이 보았다.


라이언 존슨 감독이 올해 만든 130분짜리  <나이브스 아웃 Knives Out>은 깔끔한 추리영화다.

<셜록 홈즈> 영화가 마음에 차지 않았던 나로서는 처음에는 별다를 게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자꾸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두 번 꼬인 타래를 푸는  맛을 보았다. 


2. 

추리소설 작가 할란 트롬비(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죽었다. 누군가 칼로 목을 그었다. 

게다가 태어난 날을 기리는 잔치 다음 날에.

얼른 보기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듯한데, 왜 그랬을까?

여든다섯 살이면 나이가 많지만 아직 글을 쓸 힘이 있고, 그가 도움을 줄 피붙이도 많이 있는데...


할란이 죽기 앞서까지 곁에 있었던 피붙이와 살붙이들은 모두 경찰 조사를 받는다. 

맏딸 미란다(제이미 리 커티스)는 스스로 사업을 꾸려가는 터라 아버지한테 기댈 게 없다고 한다.

미란다의 옆지기 리처드(돈 존슨)는 장인 어른한테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런 일로 장인을 죽일 까닭이 없다고.


할란의 글을 모아 책을 만드는 출판사를 꾸려가는 아들 월트(마이클 섀넌)는 영화나 텔리비전에 

판권을 팔면 돈이 되는데 아버지가 못하게 해서 속이 상하지만,  그게 아버지를 죽일 일은 아닌 듯.

일찍 하늘나라로 간 아들의 짝인 죠니(토니 콜렛)는 손녀 메그의 학비를 대준 시아버지인데 사이가 

좋았으면 좋았지 나쁠 까닭이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손자인 휴 랜섬 드라이스데일 (크리스 에반스)은 할란과 무슨 말끝에 일찍 집을 떠났으니 빼야 하고.


할란의 집에서 살림을 살아주는 도우미 프랜이나,

할란이 아프지 않게 챙기면서 말벗까지 되어준 간병인 마르타( 아나 디 아르마스)가 그랬을 리도 없다.


사업을 하라고 딸 미란다에게는 백만 달러를 주었고, 

아들 월트에게는 책을 펴낼 회사를 차려주었고,

며느리 죠니에게는 손녀인 메그의 학비를 챙겨주었을 만큼 피붙이들을 도운, 마음씨 좋은 할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아무런 까닭이 없을 듯한데, 그러면 누가 죽였을까?


3.

잔칫날 말다툼을 하고 일찍 집을 떠난 손자 랜섬일까?

딸에게 알려주기 앞서 먼저 밝히라고 말을 들은 사위 리처드일까?

아버지 출판사에서 손을 떼어야 할지도 모를 아들 월트일까?

서재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할란의 방에 올라간 며느리 죠니가 그랬을까?

설마 그날 저녁 늦게까지 할란과 바둑을 같이 두었고 거짓말을 하면 토하게 되는 간병인 마르타가?


이젠 주 경찰인 엘리어트 경사가 나서서 풀어야 한다.

누군가로부터 이 일을 풀어달라고 요청받은 블랑 탐정(다니엘 크레이그)도 같이 나섰다.

일어난 일을 의심없이 다 듣고 포물선을 그리듯 나아가면 끝무렵에 답이 앞에 나온다며

이곳 저곳을 쏘다니면서 풀어가는 탐정이 아마도 풀어내겠지.


6,000만 달러나 되는 재산을 가진 할란의 유언장이 알려지면서 피붙이는 더 이상 피가 진하지 않다.

서로 제 몫의 유산을 받으려고 잔머리를 굴린다. 이제껏 숨겨왔던 본디 모습을  드러낸다.


돈 앞에서 따뜻한 피붙이의 정이나 예의 바르고 반듯한 성인군자나 살가운 동무는 온데 간데 없고,

아귀 다툼만 벌어지리라...감독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온 집안이 다 그렇게 돈에 눈이 벌개진 것은 아니라는 듯, 한 사람은 다르게 보여준다.

잘 생긴 랜섬 혼자 제 어버이와 피붙이들에게 "똥이나 쳐먹어!" 해대면서...

그런데 마약이나 빨고 돈도 안 버는 녀석이 값비싼 차를 몰고 다니다가 갑자기 돈과 세상 일에서 

해탈한 듯하는 모습이라니...어리둥절.

  

4.

나쁜 짓을 한 이는 경찰이나 탐정이 찾아낼 것이고, 나는 영화를 즐기기만 하면 되는데, 

왜 자꾸 딴지를 걸고 싶어질까?


추리소설을 쓰면서 돈을 많이 벌고 이름이 난 할란이 아들과 딸을 잘못 키웠다고 나오는데,

지나치게 틀에 맞춘 얘기가 아닐까 싶다. 돈이 많은 집은 모두 콩가루 집안인가? 

아들과 딸로 모자라서 손자와 손녀도 모지리로 그린 감독의 생각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또 이제부터라도 돈을 주지 않으면 스스로 일어설 것이라고 믿는 대목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처음부터 할란에게 기대서 살도록 해놓고 이제와서 뿌리친다고 그 버릇이 사라질까?


어린 손자 제이콥이 뒷간에서 용두질 하다가 할란과 랜섬의 다툼을 엿듣게 된다는 대목도 

자극적인 것을 내세우는 할리우드영화답다는 생각이 든다.


간병인 마르타는 어느 나라 사람일까?

영화 속에서 누구는 우루과이, 누구는 브라질에서 왔다고 한다.


착한 사람은 나쁜 짓을 한 사람한테 해코지를 당해도 끝내는 살아남는다.

아마도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가슴을 졸이게 하려고 한 것이겠지만, 정말 그렇게 될까? 

까딱하면 제 목숨도 잃고, 돈도 빼앗길 판인데...


5.

블랑 탐정을 맡은 다니엘 크레이그는 아직 007의 때가 많이 묻어 있어서 그런지 

내 눈에는 탐정이라기보다는 힘 잘 쓰는 형사나 첩보원으로 보였다.


맏딸 미란다로 나온 제이미 리 커티스는 농익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끝무렵에 옆지기 리처드를 쳐다보는 눈길엔 사나운 불길이 보인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다. 

감독 양반, 그래도 되나요?


마르타를 맡은 아나 디 아르마스는 이 영화가 처음인 듯하다.

다리를 달달 떨 때나, 거짓말을 할 때마다 먹은 것을 다 올리는 모습은 마냥 귀엽다. 

우리 현대차인 i30(?)를 몰고 달아날 때는 무서움이 없는 아가씨 모습인데,

할란의 집 2층 테라스에서 '내 집, 내 규칙, 내 커피'라 쓰인 머그잔을 들고 마시는 모습은 

자못 철학적으로 보였다.


느끼하게 보이는 랜섬 노릇의 크리스 에반스는 왔다갔다 해서 짐작조차 못하게 한다.

유언장을 보고 난 뒤 마르타와 함께 나와 식당에서 얘기할 때 큰 그릇을 갖다놓는다. 

무엇에 쓰려고? 다시 생각해도 우습다.  


6.

각본까지 같이 쓴 감독은 <괴도 아르센 루팡>을 쓴 추리소설가 모리스 르블랑을 몹시 좋아하나 보다. 

탐정 이름을 '블랑'으로 지은 것을 보면. 

영화 속에서도 이름을 잘못 부를 때 '블랑'이라고 고쳐 알려주기까지 한다.


이 영화나 영국의 아가사 크리스티, 코난 도일, 프랑스의 모리스 르블랑이 쓴 추리소설을 보면,

마음에 안드는 대목이 있다. 보는 이나 읽는 이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그런 것이겠지만,

추리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경찰들은 모두 일을 잘 하지 못한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찾아내는 일을 하고 나라에서 달삯을 받는 이들이 오히려 멍청하거나 허당이다.

돈과 사람을 넉넉하게 쓸 수 있는 경찰은 뒷짐을 진 듯 찾지 못하고, 

홀몸인 탐정들이 어려운 일을 더 잘 풀어나간다. 


경찰보다 탐정이 한 수 위인 추리소설이나 추리영화. 나는 볼 때마다 늘 못마땅하다.

그래서 소설이고 영화다, 하면 더 할 말이 없지만. 


탐정이 풀어가는 게 아니라 제 할 일을 똑소리 나게 하는 경찰이 나오는  <히트  Heat, 1995년>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2007년> 같은 영화가 나한테는 더 당긴다.

바바리 코트를 입고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끈질기게 묻고 또 묻는 <형사 콜롬보>가 진짜 같고...


끝까지 보지 않으면 누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게 잘 짜놓은 얼개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연출 덕분에

잘 만든 영화이지만, 보고 나면 뭔가 허전하다. 속은 것은 없는데 어쩐지 속은 듯하다.

그래서 별은 넷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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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일자리를 얻으려면...[기생충] | 기본 카테고리 2019-06-05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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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기생충

봉준호
한국 | 2019년 05월

영화     구매하기

1.

바쁜 5월 뒤에 간만에 보는 영화다.

2019년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봉준호 감독의 131분짜리 영화 <기생충 PARASITE>.

언론에서 좋은 말들을 너무 많이 해서 나 같은 이가 더 해줄 말은 없을 듯하다.


2.

아는 이가 이 영화를 보고 '내 인생의 영화'라 했다. 

말을 옮긴 아내한테 그 사람은 좋은 영화를 좀 더 봐야겠다고 했다가 아내가 투덜대는 소리를 들었다. 

남의 인생에 왜 끼어드냐고. 


그렇지. 남의 '인생 영화'에 끼어들 까닭이 없지. 그건 오지랖일 뿐이지. 

그런데 왜 내가 남의 인생 영화에 타박을 했을까? 

이 영화가 나한테는 그렇게 썩 마음에 와닿지 않아서 해본 소리다.


<기생충>은 깔끔한 영화다. 게다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엉뚱한 일이 벌어진다. 

그 끝이 어떻게 흘러갈지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알기가 어렵다. 


<파고 Fargo, 1996년> <레이디 킬러 The Ladykillers, 2004년> 따위 영화에서 

조엘 코엔과 에단 코엔 감독은 나쁜 짓을 한 사람은 어떻게든 죽게 만들었다. 

일부러 죽이려고 한 게 아니지만 끝내 죽는다. 


그런데 <기생충>은 일어난 일의 까닭을 알 수 없는 구석이 보인다. 한결같지가 않다.

매끄럽게 나아가는 듯한데, 끝나고 생각해보면 왜 그랬지 하는 물음이 되살아난다.


3.

반지하에서 사는 김 기사(송강호)네는 못 사는 이다.

아내 충숙(장혜진)은 돈벌이가 없고, 아들 기우(최우식)나 딸 기정(박소담)도 일거리가 없어서 

집에서 빈둥댄다. 그래서 어떻게든 일자리를 얻고 돈을 벌려고 애쓰는 집이다.


잘 사는 집으로 박 사장(이선균)네가 나온다.

아내 연교(조여정)와 고2인 딸 다혜(정지소, 본이름 현승민), 아들 다송(정현준)은 

일하는 아줌마 국문광(이정은)까지 두고 모자람이 없는, 행복에 겨운 삶을 산다.


아이들로선 금수저와 흙수저로 견줄 만한 집이다. 

있는 집과 없는 집, 번듯하고 갖출 건 다 갖춘 집과 볼품 없고 지지리 궁상을 떠는 집.

그 속에서 사람들은 꿈을 꾼다. 금수저는 더 여유롭고 좋은 삶을, 흙수저는 '남들처럼' 사는 삶을.


4.

감독은 왜 잘못을 한 이들에게 죄값을 받도록 하지 않았을까?

못 살고 힘들게 살면 모든 게 다 용서가 되는 것일까?

흙수저가 저지르는 잘못은 세상이 그들에게 잘못한 것이니까 봐주는 것일까?

금수저는 무슨 잘못을 했기에 아픔을 안겨줄까? 


한 집에 한 사람씩 골라 죄값을 받았다고 둘러대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일이 꼬인 엉뚱한 집은 둘 다 죄값을 치른다.


"그래도 아내를 사랑하시죠?" 하는 김 기사의 말에 겸연쩍은 웃음으로 마무리를 한다고 해서,

김 기사가 반지하에 살아서 그런지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며 안 좋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게 죄가 될 리가 있을까? 돈을 많이 벌어서 잘 사는 게 무슨 잘못일까?

아무리 봐도 영화 속에서 잘못한 게 없어 보이는데 왜 죄값을 치루어야 하는지...

감독의 풀이가 영 마뜩찮다.


<기생충>은 하는 일 없이 남의 살점을 뜯어먹는 벌레들에게 붙이는 이름일 것이다.

김 기사나 그 아내는 하는 일로 봐서는 어디서든 돈을 벌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속이면서까지 한 집에 들러붙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과외 선생을 하게 되는 아들이나 딸은 돈이 되는 좋은 자리여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5.

농익어서 능청스런 모습을 보여주는 송강호는 더 말 할 것이 없고, 

기우의 친구 민혁으로 나와서 눈여겨 둔 사람을 믿고 맡기려는 박서준의 연기도 볼 만하다.

집에 있는 돌맹이를 기우네에 넘겨주고, 그 돌맹이가 영화 끝까지 움직이도록 한 감독의 속셈도 좋았다.

지하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영화에 없어서는 안되는 장치로 보인다.


영화를 본 다른 이들은 통통 튀면서 젊고 아름다운 아내 노릇을 깔끔하게 한 조여정을 높이 추켜세우지만,

나는 보는 이들에게 뭔가가 있을 듯하게 느껴지고 때로는 무섭기까지 하는 집안일 도우미 이정은의 모습이 더 끌렸다. 집을 떠날 때의 얼굴이나 비오는 날 현관 인터폰에 나오는 모습은 약방에 감초가 따로 없다.


아쉬운 건 영화 속에서 돋보이는 일을 했지만 그이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

영화 소개 안내문이나 다른 자료에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내가 못 찾았는지도 모른다.

칼을 들고 설친 그 사내의 이름을 알고 싶다. 


잘 짜놓은 극본에 맛깔스런 연기들 덕분에 매끄럽게 나아가는 영화가 되었다.

잘 꾸며놓은 영화에 작은 딴지를 걸어본다.

(1) 김 기사의 반지하 집에서 아내가 와이파이가 안 되면 카톡도 안 되고 문자도 안된다며 너스레를 떠는데, 와이파이와 문자는 맺어진 게 없다. 문자는 와이파이가 안 터져도 되지 않나?

(2) 김 기사의 이름이 기택이라고 나온다. 아들은 기우고, 딸은 기정이다. 우리나라에서 아버지 이름과 같은 돌림을 쓰는 집이 있을까? 기태-기우-기정으로 되기가 어렵다. 왜 그렇게 이름을 지었을까?


6.

우리네 삶은 우둘투둘하다. 그게 타고난 것일 수도 있고, 세상이 만든 것일 수도 있다.

마음속으로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세상을 보는 눈길이 다르다.


어떤 이는 '노오력' 하면 잘 살 수 있는 나라에서 태어났는데, 왜 '열심히' 살지 않느냐고 따진다.

흙수저로 태어났어도 '고시'나 '사업'을 통해서 잘 살게 되고 번듯한 일터를 잡았다고 내세우면서.


다른 이는 타고난 머리나 솜씨가 없는 이들이 밤낮없이 공부하고 일해도 살기가 빠듯한 것은 나라가 잘못이라고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건 어쩌다가, 아니 꿈속에서만 있을 수 있는 것이지, 같이 잘 살 수 있도록 나라에서 돈 많이 버는 사람한테서 세금을 더 거두고 그 돈으로 솜씨 없고 못 난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진다.  


영화 <기생충>은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까? 감독이 바라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했다. 그런데 감독은 어느 쪽도 눈길을 주지 않고, 없는 사람들에게는 "플랜이 없다. 아무 계획이 없는 게 계획이다"며 노자의 흉내만 낸다. 


언론에서는 <기생충>이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잘 나타내었다며 추켜세웠다. 어떤 모습?

돈을 많이 벌어서 잘 사는 사람은 크고 좋은 집에 살면서 아이들에게 과외 선생을 붙여서 더 잘 되게 하고, 

일자리도 없어서 못 사는 이들은 잘 사는 사람들에게 속이든 말든 빌붙어서 먹고살려고 한다는 모습?

글쎄다. 거기서 끝난다면, 어느 시대든 어떤 나라 집이든 있는 모습이 아닌가?


7.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나로서는 선뜻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감독이 앞서 만든 <괴물 THE HOST, 2006년>은 무엇이 문제인지 드러내서 펼쳐보였고, 

<설국열차 SNOWPIERCER, 2013년>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따스한 눈길로 희망을 풀어나갔고, 

<마더 MOTHER, 2009년>는 끝까지 일이 어떻게 풀려나갈지 알 수 없게 만들어서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기생충>은 연기나 편집은 나무랄 데가 없어 보이지만,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알맹이는 알쏭달쏭이다.

나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와 잘 맞지 않는 듯하다.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을 보면.


"같이 잘 살면 안 될까요?"

영화 안내문에 나오는 말이다. 글쎄,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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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이 볼만한 2차대전 영화...[덩케르크] | 기본 카테고리 2017-08-0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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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덩케르크

크리스토퍼 놀란
미국, 영국, 프랑스 | 2017년 07월

영화     구매하기

1.

간만에 영화를 보았다.

그래서일까, 마음마저 무디어졌는지 쉽게 들뜨지는 않았다.

돈 버는 일에 지친 뒤끝이라 그런지 모르겠다.

요즈음 많이 보는 <택시운전사>를 먼저 볼까 하다가 아직은 시간이 있어서 먼저 나온 영화를 보기로 했다.

 

<인셉션 Inception, 2010년>, <다크나이트 The Dark Knight, 2008년>,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년>...

앞날을 다룬 여러 영화에서 빼어난 솜씨를 보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을

다룬 영화는 어떨지 궁금했다. 106분짜리 영화 <덩케르케 Dunkirk, 2017년>도 남다르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별은 넷밖에 주지 않았다.

전투기들이 하늘에서 싸우는 공중전은 여느 영화에 견줄 수 없이 가슴을 졸이게 했고,

다시 만들기가 쉽지 않을 바닷가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이 남달랐지만, 어쩐지 내 마음에 덜 찼기 때문이다.

 

극장을 나서면서 내가 왜 이렇게 담담하게 영화를 보았을까 하며 다시 되돌아보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 1998년>를 볼 때와 같은

느낌은 없었다. 어쩌면 오래 두고 보면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그렇게 끌리지는 않았다.

 

적군에 둘러싸여 언제 죽을지, 사로잡힐지 모를 때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클 것이다.

그런 두려움과 살아서 돌아가려는 굳센 뜻을 담은 영화라 조금은 무겁게 보았다.

 

2.

영화는 1940년 5월에서 7월의 일로 프랑스 땅 덩케르크의 바닷가에서 영국과 프랑스, 벨기에 연합군이

도이칠란트 군대에 밀려 곧 바닷가로 쫓겨날 때를 그렸다.

이들이 바다에 빠져 죽지 않도록 하려면 배를 보내서 영국으로 데려와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도이칠란트 육군은 이들을 둘러싸고 밀어부치고 있었고, 바닷가에서 배를 타고 영국으로 가려고 하면

도이칠란트 전투기와 전폭기가 와서 이들을 싣고 갈 배를 부수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한 시간, 바다에서 하루, 바닷가에서 이레동안 일어난 일을 섞어서 보여준다.

하늘에선 전투기를 모는 세 사람의 얘기를,

바다에선 요트를 몰고 가는 한 집안 사람들이 겪는 모습을,

바닷가에선 배가 와서 빨리 데려가길 바라는 40만의 싸울아비들 얘기를 맛깔스럽게 버무렸다.

 

감독은 같이 싸우는 상대방을 보여주지 않는다.

도이칠란트 사람은 끝무렵에 보여줄 뿐 모습을 숨겼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는 꼭 있어야 할 몇 마디 말고는 말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누가 잘잘못을 했다거나 누가 잘 싸웠다는 걸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일까?

그런 싸움은 언제나 윗사람의 잘못일 뿐 싸움터에 나선 싸울무리들의 잘못은 아니기 때문일까?

 

죽고 죽이는 싸움터에서 잘잘못을 가린다는 건 별 뜻이 없다.

싸움터에 나서면 죽지 않으려면 죽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어떤 아름다운, 높은 뜻이 있을 리 없다.

오로지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나섰기 때문에 빠질 수 없다면 싸울 뿐이다.

 

감독이 어느 쪽을 두둔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우리편 이겨라" 하며 외치는 운동회와 총 들고 싸우는 싸움은 다르다.

 

몇몇 싸울무리들이 바닷가에 버려진 배를 찾아 밀물 때 타고 떠나려는 꼭지에서

같은 부대에서 싸웠기 때문에 전우애를 느끼고 같이 싸우지 않았던 사람은 남처럼 여기는 대목이나,

프랑스 싸울무리는 프랑스 배가 올 때 타고 가라면서 영국 배를 타지 못하게 말리는 대목도

사람들이 지닌 마음을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느 영화에서 나오듯이 싸움터에서 지나치게 아름다운 마음을 끌어낼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3.

아쉽다고 느낀 대목들도 더러 있었다.

바닷가에서 배를 타려고 줄지어 서있을 때, 전투기가 나타난다.

싸울무리들 가운데 몇몇은 하늘로 총을 쏘지만 거의 다 달아나거나 엎드리기에 바쁘다.

 

싸움하는 법이 달라졌을까?

내가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을 때 적의 전투기가 나타나면 모여서 하늘로 총을 쏘도록 배웠다.

이름하여 '대공사격'이다. 피할 데가 있으면 그리로 숨으면 되겠지만, 그런 데가 없으면 어쩔 수 없이

같이 싸워야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늘로 총을 쏘면 전투기도 때론 총에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열일곱의 앳된 나이로, 요트를 몰고 가는 도슨 아저씨를 따라 프랑스로 가는 조지가 나중에 신문에서

영웅으로 나온다. 어른들이 말리는 데도 호기심에서 요트를 탄 조지가 한 일이 과연 영웅으로 대접받을

일일까? 한국전쟁 때 낙동강변에서 북한군을 막느라 죽어간 어린 학도의용병들을 높이치는 것과 같은

일이긴 하지만, 나로선 글쎄다.

오히려 어린 아이들을 싸움터로 내몬 어른들이 뉘우치며 슬퍼해야 할 일이 아닐까?

 

유보트한테 공격을 받아 바다에 가라앉은 배에서 구해낸 싸울아비의 얘기도 곁다리인 듯하다.

아무리 제정신이 아닌 듯 보여주지만 그가 한 일은 어린 조지한테는 못할 짓이었는데, 그것 말고는

영화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다. 조지와 엮은 것이라 빼기가 어려웠겠지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대목이다.

 

싸울아비들을 배에 태워 보내려 애쓰는 볼튼 사령관(케네스 브래너)이 전투기들이 총을 쏘아대는데도

밖에서 서있거나 어슬렁거리는 모습은 싸움터를 조금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총알이나 포탄은 사령관이든 누구든 가리지 않는다. 피해가는 게 아니다. 죽을 생각이 아니면 그런 곳에

나와 서있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높디 높은 사령관이라면 싸움터에서도 꼭꼭 쳐박혀 있을 게 틀림없다.

 

요트에 나오는 도슨 아저씨(마크 라이런스)와 피터(톰 글린 카니), 조지(배리 케오간)와

전투기를 모는 파리어(톰 하디)와 콜린스(잭 로던),

바닷가에서 배를 타고 돌아오려고 애쓰는 토미(핀 화이트헤드)와 깁슨(아뉴린 바나드)이나,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은 그리 머리에 남지 않았다.

그들의 연기보다는 놓여진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영화를 끌고 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화에 나오는 <덩케르크>를 나오는 배우들은 '던커크'라 불렀다.

프랑스 말로 하면 영화 이름과 같을까? 궁금하다.

 

4.

바다를 건너서 프랑스 덩케르크까지 가는 길에서 전투기들이 싸우는 모습은 가장 멋졌다.

이 영화에서 한 꼭지만 남기라면 나는 이 꼭지를 꼽고 싶다.

전투기 한 대가 바다에 떨어져 조종사가 안 열리는 문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는 꼭지도 버리기 아깝다.

아슬아슬해서 손에 땀을 쥐게 하고 가슴을 멎게 했다. 잠깐이지만.

불이 붙은 바다와 물속으로 들어가 견디려는 이들의 모습도 잘 찍은 꼭지였다.

 

멋진 모습과 조금의 억지스런 꼭지가 같이 섞여서 나오지만,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이기 때문에 그런대로 보는 맛이 좋은 영화였다.

 

싸울무리들이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을 때, 영국에서 마중하는 이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반긴다.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온 일"이 으뜸이라는 것.

이 꼭지 하나 만으로도 각본까지 같이 쓴 감독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싸울 일이 없고 싸우지 않아도 다 같이 잘 사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도 핵무기와 대륙간탄도탄을 가진 북한과 사이좋게 지내는 날들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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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마을에서 생긴 일들...[맨체스터 바이 더 씨] | 기본 카테고리 2017-02-19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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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맨체스터 바이 더 씨

케네스 로너건
미국 | 2017년 02월

영화     구매하기

1.

앞뒤에서, 양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훌쩍이거나 어깨를 들썩인다.

나와 비슷한 나이거나 더 많은 사람들이 소리 없이 운다.

영화를 다 보고 영화관을 나서면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너그러워진다.

같은 눈인데도 보는 눈이 다르다.

영화 한 편이 주는 맛이 참 고약(?)하다.

2시간 17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몰랐다.

 

케네스 로너건 감독이 만든 <맨체스터 바이 더 씨 Manchester by the Sea, 2016년>를 보면서 생긴 일.

바닷가 마을(고을) 맨체스터에서 일어난 일들이 간만에 영화를 보게 된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꼬일 대로 꼬인 삶에도 한 줄기 따스한 햇살은 주겠지 싶은 마음을 송두리째 부셔버린다.

삶은 이다지도 어렵고 힘들기만 한지...

 

그렇지만 담담하게 풀어가고 억지로 짜맞추거나 섣부른 풀이를 하지 않는 감독의 솜씨에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이런 쪽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별 다섯을 주지 않을 수 없는 영화였다.

 

2.

보스턴에서 빌딩의 허드렛일을 하는 일꾼인 리 챈들러(케이시 에플렉)의 이즈음의 삶을 씨줄로 삼고,

보스턴에 오기 앞서 오래 살았던 바닷가 마을 맨체스터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날실로 삼아 영화는 나아간다.

 

보스턴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리한테 뜻밖의 소식이 온다.

맨체스터에 살며 배를 몰던 형 조 챈들러(카일 챈들러)가 죽었다는 것이다.

앞서부터 염통이 안 좋아서 오래 살기가 어렵다고 했지만, 이렇게 일찍 그런 날이 올 줄이야...

 

리는 차로 1시간 남짓을 달려간다.

영화는 이 때부터 옛날 맨체스터에 있었던 일과 이즈음의 일을 왔다갔다 하면서 보여준다. 

 

조가 죽었으니 아직 열일곱 살인 조카 패트릭 챈들러(루카스 헤지스)를 누가 돌보나?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는 어른이 곁에서 지켜봐 주어야 하는데, 조는 아우인 리가 맡길 바랐다.

혼자 사는 리는 펄쩍 뛰었지만 다른 길이 없다.

패트릭의 엄마는 집을 떠난 지 오래 되었고, 얼마 앞서 새로 살림을 차려서 멀리서 살고,

옛날부터 좀 모자란(?) 탓에 아들을 돌볼 사람이 못 된다.

그렇다고 멀리 떨어진 미네소타에 사는 리의 삼촌네에 맡길 수도 없고...

 

리는 패트릭과 함께 보스턴에서 살고자 한다.

일터가 그곳에 있고, 맨체스터는 더 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패트릭은 다르다.

배움터의 하키팀에서 선수로 뛰고 있으며, 저녁에는 밴드에서 노래를 하고,

아버지 조가 남긴 배를 팔고 싶지 않으며, 계집애를 둘이나 사귀고 있으니,

리를 따라 보스턴에 가고 싶지 않다. 그냥 맨체스터에 남고 싶다.

 

패트릭을 생각하면 리가 보스턴의 삶을 버리고 맨체스터에서 살아야 하고,

리를 생각하면 패트릭이 배움터를 옮기거나 다른 것들을 버려야 한다.

 

3.

리와 패트릭이 어디서 같이 사느냐?

어찌보면 쉬운 일이다.

 

아이가 어른을 따라서 살면 된다. 세상은 어른들 뜻대로 해왔고 하는 곳이기도 하니까.

게다가 아버지 조도 그렇게 하도록 해놓았다.

 

아니면 아이를 더 생각해서 리가 옮겨올 수도 있다.

보스턴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터라 맨체스터에서도 비슷한 허드렛일을 하면 살 수 있으니까.

 

그런데 감독은 일이 그렇게 쉽지 않음을 옛날 일들을 끄집어 내어서 하나씩 보여준다.

이 때부터 나와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울지 않으려 애쓰지만 가슴에서 그냥 나왔다. 조금씩 이어져 나오는 눈물은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영화가 끝날 때쯤 손수건을 꺼내서 닦았지만, 그 뒤에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삶은 누구한테도 고르지 않다. 제가 뜻한 대로 굴러가지도 않고...

리한테 벌어진 일들을 보면서 하느님은 왜 그리 모질게 리를 몰아부쳤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리가 뭘 얼마나 잘못 했다고!

 

나는 우리들을 내려다보면서 지켜보는 하느님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이 있다면 우리의 잘잘못을 가려줄텐데, 세상은 나쁜 놈도 떵떵거리며 살거나 쉽게 벌을 받지 않고,

착하고 바르게 산다고 좋은 일만 주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고 그저 어떤 일만 벌어질 따름이다.

그 일은 누구의 뜻이 아니라 그냥 일어난 일일 뿐이다. 그런 것을 운명이라고 하나.

내가 어떻게 해서 생기지 않는 일...

그 일이 생긴 다음에 그저 풀어가는 일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고...

 

4.

엉켜서 잘 풀리지 않는 삶에서 어렵게 버티며 살아가는 리의 모습을 보여준 케이시 에플렉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볼품이 없었을 것이다.

수염을 깎지 않은 덥수룩한 얼굴과 가슴에 쌓아둔 슬픔 탓에 웃음을 보이지 않는 얼굴만으로도,

아기자기한 연기는 없어도 선이 굵고 진한 느낌이 와닿았다.

 

아쉬운 대목은 영화속에서 홀몸인 리가 좋은 짝을 만났으면 했는데

감독은 아직 그럴 수는 없어 하며 쉽게 엮어주지 않은 대목이었다.

샌디의 엄마 질(헤더 번스)이 홀몸인 리를 마음에 들어해서 살살 작업(?)을 거는데도

리가 눈치는 긁었지만 마음을 열지 않고 살며시 뿌리치는 모습은 안쓰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했다.

 

조카 패트릭으로 나온 루카스 헤지스도 나름 잘 어울렸다.

케이시 에플렉의 농익은 연기에 뒤지지 않게 통통 튀는 싱싱한 맛을 보여주었다.

패트릭이 실비와 샌디를 사이에 두고 줄타기를 할 때나, 샌디를 어떻게 해보려고 애쓰지만

샌디의 엄마가 끈질기게 막는 바람에 쉽게 이룰 수 없는 꼭지들은 사랑스럽다.

 

그런데 리의 집에 불이 났을 때의 꼭지는 아리송하다.

가게에서 먹을 것을 사오다가 집에 불이 난 모습을 보았으면 빨리 달려와서 뛰어들거나 나서야 할텐데

웬일인지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미 끝나서 그렇다고 보기에는 리가 남의 일처럼 느끼는 모습이

어쩐지 낯이 설었다. 감독이 우리네와 다른 느낌으로 사는가?

 

5.

나한테는 리한테 쌀쌀맞고 차갑기 그지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감독이 서운하기 짝이 없었다.

저렇게까지 사람을 몰아부쳐야 하나...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가슴에 남는 영화가 되었다고 본다.

 

영화속에서 아내 랜디(미셸 윌리엄스)가 길에서 리한테 가슴이 미어지게 "당신을 정말 사랑해..." 할 때나,

맨체스터에서 살면 되지 않느냐며 따지는 패트릭한테 리가 "난 버틸 수가 없어..." 할 때는

감독이 뿌린 약(?) 때문에 내 눈 앞이 뿌옇게 바뀌었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쉽게 매듭짓지 않고 아프고 힘들지만 있는 그대로 흘러가게 만드는 감독이 마음에 들었다.

그 끝이 남들이 바라는 모습이 아니어도 섭섭하지 않았다. 싸구려 끝맺음보다는 훨씬 오래 남을 것이다.

보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감독의 솜씨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과 비슷한 듯하고,

내가 좋아하는 <비밀과 거짓말 Secrets & Lies, 1996년>의 마이크 리 감독과는 다르게 끝맺음을 하지만

둘 다 마음에 든다. 삶을 가볍게 다루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의 아픈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게 좋았다. 

 

<애널라이즈 디스 Analyze This, 1999년>나 <갱스 오브 뉴욕 Gangs of New York, 2002년> 같은 이름난

영화의 극본을 썼으니 글솜씨는 이미 알려졌으나, 이 감독이 만든 영화는 처음 보았다.

이 감독이 만든 영화 <유 캔 카운트 온 미 You Can Count on Me, 2000년>를 보진 못 했다.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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