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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동물농장 _ 조지 오웰 | 리뷰♥ 2021-09-28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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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동물농장

조지 오웰 저/도정일 역
민음사 | 200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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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부산 보수동 책방 골목을 두 번째로 찾았다. 나는 이미 몇 년 전에 혼자 다녀오고 매우 큰 실망을 했었지만, J가 가보고 싶다고 하여 약간의 망설임 끝에 다시 가보기로 했다. 창원의 영록서점 같은 분위기일 줄 알았던 그 역시 실망의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그러던 중에 우리에게 과제가 주어졌다. 이곳에서 <동물농장>을 구매하자. 마지막 서점에도 없으면 발길을 돌리자 했는데, 그곳에는 중고가 아닌 새 책으로 버젓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그 책을 20%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책을 구매한 지 어느덧 네 개의 계절이 지나 다시 여름이 도래했다. 언젠가 읽겠지 하고 생각했던 책이었는데, 그가 먼저 읽어보고 감상평을 이야기하는데 솔깃해서 나도 뒤따라 읽기 시작했다.

 

11. 인간은 우리의 진정한 적이자 유일한 적입니다. 인간을 몰아내기만 하면 우리의 굶주림과 고된 노동의 근본 원인은 영원히 제거될 것이오.

현명하고 자애롭고 위엄이 넘쳐 보이는 늙은 수퇘지 메이저의 말에, 동물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메이저가 죽고 난 뒤 새로운 지도자가 생겼고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동물들은 존즈를 몰아내는 것에 성공한다. 메이너 농장은 동물농장으로 바뀌면서 그들에게는 일곱 계명이 생기게 된다.

 

일곱 계명

1.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우유과 사과가 시발점이 되면서 이후의 동물들의 삶에는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농장은 그 자체로는 전보다 부유해졌으면서도 거기 사는 동물들은 하나도 더 잘살지 못하는 (물론 돼지와 개들은 빼고) 그런 농장이 된 것 같았다.

동물들은 분명 더 잘 살기 위해 그와 같은 방법을 택한 것일텐데, 그들은 더 ‘열심히’ 일을 해야만 했다. 결국 형태만 달라졌을뿐, 결과는 조삼모사였다. 어떤 형태든지간에(가정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지도자가 자신의 배를 채우는 데만 급급하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너무나도 뻔하게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많지 않다. 순응하거나 타협하거나 맞서거나. 당신이 속한 가정은, 기업은, 국가는 어떠한가요.

 

71. 뭐든 잘못된 일이 있으면 모두 <스노볼이 그랬다>가 되었다.

보자마자 포옥, 한숨이 나오는 대목이었다. 남 탓하기 좋아하는 대상들을 거울로 투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너,라고.

 

123.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인간에게서 돼지로, 다시 돼지에게서 인간으로 번걸아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를 중심으로 조금씩 그들에 맞춰 바뀌어있는 계명들은 결국 하나의 계명으로 축약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당신은 어떤 동물인가, 다른 동물인가.

 

책은 구소련인 러시아를 풍자하기 위해 쓰였지만, 나는 읽으며 북한을, 한국을, 내가 경험했던 우리 사회의 한 어두운 면들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어디에나 나폴레옹과 스노볼 같은 사람이 있고, 스퀼러 같은 사람이 있으며, 벤자민 같은 사람이, 뮤리엘 같은 사람이, 모지즈 같은 사람이, 클로버 같은 사람이, 복서 같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니까.

 

아마 누구나가 그랬겠지만, 복서가 나올 때마다 답답함과 안타까움과 측은함 등 여러 가지 마음들이 어지럽게 공존했다. 나는 복서가 되지 않기를 바랐고, 벤자민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성격이라면 나는 절대 복서도, 그렇다고 벤자민도 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뮤리엘이 되기를 바랐다. 선하고 착한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싶지는 않기에 니가 너무 몰라서 그런 거잖아.라고 감히 비난할 수는 없지만, 조금만 더 알아보려고 했더라면, 조금만 더 꾀를 내었다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는 없었다. 결국은 내가, 네가, 우리가 원하는 이상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행동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했다. 마음이 어지럽다.

 

이 책을 지금보다 훨씬, 더 어릴 때 읽어보았더라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라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여기에서 더 어릴 때라 함은, 사회생활을 하기 전인 10대의 나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내가 아는 청소년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내가 아는 청소년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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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시간의 궤적 _ 백수린 | 리뷰♥ 2021-09-28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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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여름의 빌라

백수린 저
문학동네 | 2020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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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흐트러지는 일요일이다. 아침에 마음을 붙잡고 싶어 책을 들었다. 또 이 이야기를 읽었다.

 

 

 

알고 지내던, 또 친하게 지내던 많은 사람들이 하나둘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명백하게 누구의 잘못이라 말할 수 없는 관계들이 깨어지는 것을 마냥 바라보며 붙잡을 용기도, 노력도 서로가 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우리 모두는, 언니와 나를 닮았다. 이전에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에 담겨있는 <한지와 영주>의 한지와 영주를 매우 깊이 좋아했다. 아주 천천히, 그 글들을 다 씹어서 소화시킬 수 있다면 그러고 싶을 만큼. 다른 단편으로 넘어가기 싫고 그럴 수 없을 만큼. 이번 백수린 작가의 《여름의 빌라》에 담긴 <시간의 궤적>이 그랬다. 시간의 텀을 두고 두 번을 읽었다. 어쩐지 읽을 때마다 나는 극심하게 외로워졌고, 그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가 황급하게 지워버리곤 했다.

 

 

 

 

 

16.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거나 모두가 안정을 찾아가는 시기에 그렇게 인생을 낭비하다가는 결국 낙오자가 될 거라고 말하지 않은 최초의 한국 사람이었고, 나는 그런 언니가 좋았다.

프랑스의 어학연수에서 만난 언니와 나는, 취향과 가치관이 꼭 맞았고 무엇보다 자국을 떠나 타국에 있다는 동질감이 그들을 친밀하게 했다. 어떤 이와 주고받는 말들은 아름다운 음악처럼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고, 대화를 나누는 존재들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세계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언니와 나는 낯선 세계에 꼭 그 둘만인 것처럼 우정을 나누었다. 하지만 내가 브리스와 결혼을 약속하면서 언니는 프랑스에 한시적으로 머물다 돌아갈 사람, 나는 여기에 남을 사람이라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겼고, 손쓸 수도 없이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다.

 

 

 

 

28. 나는 일주일에 세 번씩 운동화를 신고 나가 파리를 걸었고, 이따금씩 길을 잃었다는 느낌에 사로잡히면 거리에 서서 조용히 울었다.

타국은 아니지만 타지에서 느꼈던 내 감정이 이 한 줄로 요약되는 느낌이어서 나는 목이 메어왔다. 그 외로움은 실체는 없지만 너무나도 명확하기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문제 중 하나니까. 그 마음을 얼굴도 모르는 이들에게 털어놓았을 때 나는, ‘본인의 시간을 만드세요’라는 대답을 가장 많이 들었고, 그 외에도 ‘시간이 해결해 준다’거나 ‘어쩔 수 없지 않냐’라는 대답을 들었다. 당시에 나는 충분히 내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기에 얼마나 더 많은 내 시간을 만들어야 나는 덜 외로울 수 있을까, 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외로움을 감당하지 못하는 내가 등신처럼 느껴지는 날들이 이어졌고, 결국 나는 그런 마음들을 더 이상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어떤 대답들도 내게 와닿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대답들에 대해 ‘일리가 있구나’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말들을 아직도 정답이라 여기고 싶지 않은 것은, 발버둥치며 힘들어했던 날들을 단순히 그런 이유로 치부해버리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 시간들에 대해 꼭 필요했던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냥 그런 날도 있었다.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볼 뿐이다.

 

 

 

 

 

언니는 “네가 없었다면 나는 파리에서 정말 외로웠을 거야.”라고 말했고, 나는 소리 높여 동의했다지만,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부터 언니가 미웠다. ‘네가 없었다면’이라니 언니는 곧 떠날 사람이면서. 그러면 언니가 떠난 뒤의 나의 외로움은?...이라고 생각하자 그 외로움이 내 것인 양 나는 갈증이 일었다. 언니는 내가 힘들어하는 상황에 대해 거리낌 없이 조언해 주고 응원을 해주었지만, 적어도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언니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 부분에 대해 나는 자격지심을 가졌던 것도 같다. 아니, 이야기의 나가 아닌 이 책에 대한 감상을 쓰는 나는 그렇다. 언니의 다정함들이 의도와는 다르게 콕콕 찔러대어 나는 무기력해졌다.

 

 

 

 

 

18.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우리의 밤을 생각하면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습기였다. 세 달 남짓한 여름밤을 제외하면 거의 언제나 곧이라도 빗방울을 떨어뜨릴 것만 같은 대기가 얇고 부드러운 껍질처럼 우리를 감쌌고, 나는 그 안에서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꼈다. 골목들은 가로등의 따뜻한 불빛에 덮여 있었고, 도시의 오래된 건물은 나에게 영원을 떠올리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니를 그리워한다. 좋지 않게 끝난 관계가 있고, 물 흐르듯 끊긴 관계도 있다. 그 관계들이 그립다기보다 그때의 우리가 종종 그리울 때가 있다. 언니가 파리에 계속해서 남아있었대도 언니와 어떤 다른 이유로 관계가 깨어졌을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못한다. 지금의 인연들과 남은 시간이 얼마만큼인지 나는 알 수 없다. 그저 옆에 있어주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할 뿐이고, 놓치기 싫다면 붙잡아보기도 한다. 결국 놓이고 끊어진 것들에 대해 나는 다시 진한 아쉬움을 남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절들이 비록 미화의 감정일지라도, 그 시절들이 있기에 우리는 기꺼이 지금을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나를 살게 한 많은 시간들이, 마음에 고여있다기보다 담겨있다고 믿는다.

 

 

 

 

 

 

 

 

_책 속의 문장

 

17. “괜찮아요, 언니. 사람에겐 어쩔 수 없는 일도 있으니까요.”

 

 

18. “나는 용감한 게 아니야. 단지 그런 척하는 거지. 척을 하다 보면 그래지기도 하니까.”

 

 

23. “우리는 전부를 걸고 낯선 나라에서 인생을 새로 시작할 만큼 용기를 내본 적 이는 사람들이니까, 걱정 마.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스스로 원하는 걸 찾을 줄 아는 사람이야.”

 

 

36. “그건 나쁜 거 아닐까. 언니는 남의 가정을 망가뜨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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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인형의 집 _ 헨리크 입센 | 리뷰♥ 2021-09-28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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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형의 집

헨리크 입센 저/안미란 역
민음사 | 201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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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두두둥, 그날 저녁에 본 옛날 프로그램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에서 방영하던 편은 <인형의 집>이었다. 누군가를 질투하고 부러워해서 자신의 남편과 집을 똑같이 꾸민 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도서관에서 빌려온 <인형의 집>을 꺼냈다. 책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었기에 비슷한 내용이려나ㅡ싶은 생각뿐이었다.

 

14. 낭비꾼 새는 귀엽지. 하지만 돈이 아주 많이 들어. 이런 새를 키우는 게 남자에게 얼마나 돈이 드는 일인지.

노라, 그녀는 헬메르 토르발의 노래하는 종달새이자 다람쥐이자 낭비꾼이다. (과자 봉투를 숨기며) 빨리 빨리! 과자까지 금지시키는 모습을 포함해 여러 장면들을 보면서 자신에게 그녀를 예속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그녀는, 소유물ㅡ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느끼게 된다. 그때의 허탈함을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

 

노라는 몇 년 전에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을 할 때 필요한 돈을 크로그스타드에게 빌려야만 했다. 그것을 빌리려면 보증을 서야 했는데, 남편을 살려야했기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해서라도 그 돈을 손에 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서명도, 날짜도 위조했다는 것이 탄로났다. 이후에(현재) 크로그스타드가 있는 은행의 총재로 취임하게 된 남편은 그를 해임하려고 하고 그는 노라에게 해임을 막아달라 부탁을 하며, 막지 않으면 그 사건을 폭로하겠다고 한다.

14. 당신은 정말 딱한 아이야. 당신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 당신은 돈을 손에 넣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지. 하지만 돈이 생기면 그 돈은 바로 당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그 돈으로 뭘 했는지도 당신은 전혀 모르고. 그래, 당신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피가 그러니까. 그래, 그래, 노라, 이건 유전이야.

책을 깊게 읽을수록 헬메르가 노라를 바라보는 관점 중 하나인 이 부분에 대해,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이 부분은 너무나도 완벽하게 사실적이었으니까. 크로그스타드에게 빌린 돈에 대해서도 그동안 얼마나 갚아왔는지는 모르지만, 그 돈에 대해서도 갚아야 한다는 생각보다 자신의 비밀이 탄로 날까 하는 생각에 더 급급한 모습을 보면서 한때는 가까웠던, 하지만 영영 가까이 두고 싶지 않은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노라가 크로그스타드에게 돈을 빌린 걸 알고 헬메르는 길길이 화를 내지만, 곧이어 차용증을 돌려받게 되자 헬메르는 금세 노라를 용서하게 된다. 그 부분에 대해 노라는 회의를 느끼게 된다. 나는 그저 인형 아내,였구나 하고. 그녀는 자신에 대한 책임인 거룩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집을 나간다고 선언하게 된다. 돈을 빌려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서 노라는 말하지 않고 헬메르는 말하지 않는다. 편지나 차용증에 그 이유가 적혀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당신은 당신의 도리 그대로 나를 사랑했어. 통찰력이 부족해서 수단에 대해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뿐이지. 라고 말하는 헬메르의 말을 통해 간접적으로 편지에 쓰여있구나, 하고 짐작할 뿐)

 

책의 뒷부분에는, ‘근대극의 선구자 헨리크 입센이 ‘노라이즘’을 탄생시킨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이라고 쓰여있다. 하지만 과연 나는 이것이 헬메르 혹은 노라 어떤 한 사람만의 잘못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차용증서를 받았다고 하여 단박에 용서를 할 수 있는 헬메르도 우스운데, 그런 취급을 당했다고 하여 ‘너 때문에 빌린 거야’라는 말로 자신의 잘못은 전혀 없는 것인 양 타인의 돈을 빌린 것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그 돈을 갚아야 한다는 책무도 느끼지 못하면서 121. 당신이 아주 확실하게 모든 책임을 지고 “모두 내 잘못입니다.”라고 말할 줄 알았어요.라고 뻔뻔스럽게 말하던 노라의 말은 얼마나 허무맹랑한가. 정말 배우자를 위해 한 행동이라는 것도, 남편의 명예가 실추될까 봐 혹은 남편의 자존심이 상할까 봐 남편에게 말하지 않은 것도 모두 이해는 하지만 그것까지 감싸달라는 건 억지가 아닌가. 한 번의 사과라든지 변명은 했는가 말이다. 남편의 명예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생각이었던 노라라고 쓰여있는데 단추가 구멍에 들어가지 않는 것 같은 갑갑함을 느끼며 그녀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이 책에서 ‘굳이’ 페미니즘을 찾아야 한다면, 노라보다 크리스티네 쪽을 겨냥한다. 어머니와 동생들을 위해 사랑하지 않는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였지만 그와 사별하고 노라를 찾아와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23. 말로 표현할 수 없이 허전해. 나는 늘 누군가를 위해서 살아왔는데 이제 그 누군가가 없잖아. 그리고 크로그스타드에게 먼저 청혼하기도 하는 등,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크리스티네였다. 노라이즘에 대해서 나의 경제관념이 바뀌지 않는 이상 수긍할 수는 없다. 하지만 노라가 그곳을 떠나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것에 대해서는 행운을 빈다!

 

 

 

118. 나는 내가 우선적으로 당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라고 믿어요. 최소한, 그렇게 되려고 노력할 거예요.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말로 만족할 수 없고 책에 쓰여 있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어요. 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설명을 찾아야 해요.

 

118. 나의 거룩한 의무가 뭔가요?

- 그걸 내가 말해야 아나?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책임이 아닌가!

내게는 다른, 그만큼이나 거룩한 의무도 있어요.

-아니, 없어. 대체 무슨 의무지?

나 자신에 대한 책임이에요.

 

121.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명예를 희생하는 사람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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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긴긴밤 _ 루리 | 리뷰♥ 2021-09-28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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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긴긴밤

루리 글,그림
문학동네 | 2021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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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든과 앙가부, 치쿠와 펭귄을 기억하기 위해서 귀차니즘에게 휴전을 선언하고 쓴다.

 

노든이 극진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고 그들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 사람들은 노든에 대해 뭐든지 다 아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사실 그들이 노든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너의 말년은 어떠니,하고 노든에게 물어보지 않았잖아.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란 노든에게 선택의 날이 다가왔다. 갈팡질팡하다가 코끼리 고아원에 남겠다는 결정을 한 노든에게 할머니 코끼리는 “하지만 너에게는 궁금한 것들이 있잖아. 네 눈을 보면 알아. 지금 가지 않으면 영영 못 가. 직접 가서 그 답을 찾아내지 않으면 영영 모를 거야. 더 넓은 세상으로 가. 네가 떠나는 건 슬픈 일이지만 우리는 괜찮을 거야. 우리가 너를 만나서 다행이었던 것처럼, 바깥세상에 있을 또 다른 누군가도 너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될 거야.”라고 말하고 그 말에 힘을 얻은 노든은 바깥세상으로 나오기로 한다. 할머니 코끼리의 말과 다른 코끼리의 훌륭한 코끼리가 되었으니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다는 말이 노든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응원과 지지를 받았던, 그리고 보냈던 순간을 조용히 생각해 본다. 그의 두 번째 사회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4. 노든은 아내와 딸에 대해서는 항상 말을 아꼈다. 아내와 딸은 노든의 삶에서 가장 반짝이는 것이었고, 그 눈부신 반짝임에 대해 노든은 차마 함부로 입을 떼지 못했다.

노든도 가족을 이루었다. 그렇게 영원히 행복할 줄 알았지만 인간들에게 습격을 당하게 되면서 아내와 딸을 잃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노든은 동물원에 갇히게 되며 그곳에서 앙가부를 만난다. 하지만 삶이 송두리째 뽑혀버린 노든은 숨을 쉬는 매 순간 화가 나있고 인간들에 대한 복수심에 가득 차있어 낮에 동물원에 찾아오는 인간들을 사납게 노려보느라 여념이 없다. 악몽을 꾸는 노든에게 앙가부가 먼저 다가가고 둘은 친구가 된다. 노든은 복수를 하기 위해, 앙가부는 초원을 달리기 위해 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로 끝나고, 다시 계획을 세우고 남몰래 조금씩 실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든이 잠시 치료를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뿔이 잘려 나간 채 숨이 멎은 코뿔소를 발견한다. 나의 친구 앙가부. 노든의 복수심은 이전보다 더 차올랐다. 앙가부의 죽음에서 나는 멈춰버렸다. 꼭 그래야만 했나, 싶어서. 어디까지일까, 이 상실의 고통은.

 

상실감과 복수심에 차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던 날들에, ‘전쟁’이 터졌다. 어리둥절한 상태로 동물원을 빠져나오며 치쿠를 만났다. 치쿠는 입에 알이 담긴 양동이를 물고 있었다. 배려라고는 코끼리 눈곱만큼도 없이, 한참을 말 한마디 않고 걷다가, 느닷없이 자기 사정만 늘어놓고, 상대방의 생각은 한 번도 물어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바다를 찾아야 한다던 펭귄 치쿠. 치쿠는 노든을 ‘정어리 눈곱만 한 코뿔소’라고 불렀고, 노든은 치쿠를 ‘코끼리 코딱지만 한 펭귄’이라고 불렀다. 치쿠는 노든과 자신을, ‘우리’라고 불렀고 노든은 그것이 싫지 않았다. 함께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긴긴밤이 계속되었다. 그 긴긴밤은 언제까지 이어지는 걸까, 그들이 찾는 ‘바다’는 어디에 있는 걸까.

 

67. 그저 다시 모래를 떨고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가는 것이 노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노든은 옛날 기억에 사로잡힐 때마다 앞으로 걷고 또 걸었다. 노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노든의 상실감과 고통과 슬픔을 느낄 수 있던 문장들.

최근에 <아침의 피아노>를 필사하면서 “안개를 통과하는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그건 일상이다. 일상을 지켜야 한다. 일상이 길이다.”라는 문장과 마주했다. 일상을 지키는 힘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기도 하니까. 그 일상을 소중하게 지키고 실천하고 지내는 것이 가끔은 힘에 부칠 때가 있다. 힘들면 잠시 쉬어가도 된다는 걸 알면서도 쉬면 언제까지고 그렇게 쉬게 될까 봐, 다시 끙챠ㅡ 힘을 내 하던 일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까 나도, 노든도 그렇게 살아간다고, 또 살아낸다고.

 

치쿠의 말대로, 노든은 알을 지켜냈다. 새로운 펭귄이 태어난 것이다. 펭귄은 노든에게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둘은 서로를 의지하며 치쿠가 그렇게도 바라던 ‘바다’를 찾으러 나섰다. 노든은 펭귄에게 말하곤 했다. “이리 와, 안아줄게.” 그 어떤 말보다 다정하고 상냥한 말이다. 보는 내 입가에도 미소가 살짝 앉았다. 잘 익은 망고 열매 색 하늘 밑에서 그들은 그렇게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다. 그들이 왔다. (ㅡ)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 심정을,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나간 노든의 아내 마음을, 아직 죽지 않은 연인을 뒤로 하고 알을 데리고 도망쳐 나오던 치쿠의 심정을, 치쿠와 눈을 마주쳤던 윔보의 마음을, 혼자 탈출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던 앙가부의 마음을, 코끼리들과 작별을 결심하던 노든의 심정을, 나는 다 알 수 없고, 다 알 수 없을 것이다. 또, 앞으로도 알고 싶지 않다. 이보다 더 우스운 말은 없겠지만, 힘든 일들을 겪고 싶지 않다. 더 단단한 내가 되고 싶지도 않다. 아직까지는 이전보다 조금 더 이기적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 마음들을 알기에 알고 싶지 않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마음들을 하나씩 들여다본다. 그 어떤 마음도 내가 아니었던 적 없고, 그 어떤 마음도 내가 갖고 싶지 않았던 그 마음들을. 알게 모르게 내 마음들과 닮아있던 그 마음들을 말이다.

대상이 누가 되었든, ‘우리’는 언젠가 만날 수 있다. 그리곤 코와 부리를 맞대고 인사를 나누겠지, 매우 반갑게. ‘우리’의 재회를 응원한다.

주어진 생에 대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 평온한 마음에 대해, 가진 것들에 대한 감사함이 실체로 있을 것만 같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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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유원 _ 백온유 | 리뷰♥ 2021-07-2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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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유원

백온유 저
창비 | 2020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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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정 자매 12주기 추도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열일곱 살이었던 언니, 여섯 살이었던 나.

둘이 있던 집에 불이 났다. 언니는 나를 물에 적신 이불로 둘둘 감싸서 11층에서 던졌고, 지나가던 아저씨가 나를 받았다. 그렇게 나는 살았다. 하지만 나를 받으면서 아저씨는 오른쪽 다리뼈가 산산조각이 났다. 일 년 넘게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회복되지 못했고 그렇게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다.

 

 

 

14. 언니는 그래도 생일을 축하받고 떠났다. 그게 엄마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언니가 죽은 지 12년이 지났다. 언니의 생일과 기일은 사흘 간격이었기 때문에 생일만 챙긴다. 꾸준히 언니를 추모하러 오는 교회 사람들과 신아언니와 아저씨로 인해 한층 더 소란스러워진다. 스물아홉 살이 되었어야 하지만 여전히 열일곱 살로 남아있는 언니와 열여덟 살이 된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가져야 할지, 고마움을 가져야 할지 의문스러운 삶을 살고 있지만, 오늘은 그 생각이 더더욱 진해진다.

 

 

 

103. 내일 만나면 수현에게 조카가 생겼다고 얘기해야지. 아기 사진을 보여 줘야지. 나도 모르게 내일 얘기할 것들의 리스트를 정하고 있었다. 이런 게 처음이라 쑥스러웠다. 그 애의 반응이 기대됐다. 생생한 표정, 기분 나쁘지 않게 핀잔을 주는 그 애의 말투가.

 

옥상에 올라갔다가 수현을 만났다. 신수현.

그 애는 98. “다 아는 내용이고 뻔한 내용이니까 보는 거야. 치킨이랑 짜장면도 아는 맛이니까 먹는 것처럼.”이라고 말했다. 삶도 다 알고 뻔하니까 살아가는 걸까? 삶을 어떤 자세로, 어떤 표정을 지으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며 살아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는 단지, 엄마의 하나 남은 딸이자, 119. 언니가 선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품이다. 이미 끝난 언니의 삶을 연장시키며 보조하는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나는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것 같다. 그러면서도 106. 나는 조금도 내 삶을 양보하지 못했다. 그럴 자신이 없었다. 순발력이 있는 수현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렇다면 그 애는 어떻게든 답을 내려줄 것도 같다. 하지만 나는 최근에 수현에게 아저씨를 변호했다. 그게 내 마음이 그렇게 생각해서는 정말 아니었는데 그와는 별개로 내 혀는 제멋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수현에게 이런 것들을 말할 수는 없다. 24. 터무니없어. 나는 터무니없다는 말을 혼자서 계속 되뇌다가 터무니없다는 말의 뜻이 뭔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차라리 아저씨 다리가 정상으로 돌아왔더라면, 내게 상처가 있었더라면, 내가 살지 않았더라면, 언니가 날 던지지 않았더라면, 아파트에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한다. 133. 언니가 불길 속에서 견뎠을 공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나는 나를 알 수 없다. 나를 살린 언니와 아저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하지만, 나는 나를 살린 우리 언니가 싫고, 나는 나를 구해 준 아저씨를 증오한다.

 

 

 

191. “언니, 나는 율이가 좋아. 왜냐하면 내 지인 중에 우리 언니를 모르는 사람은 율이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안심하고 윤이를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이건, 내가 지금까지 마음 놓고 언니를 좋아한 적이 없다는 뜻도 되는 거야. 나는 맨날 불안했어. 언니가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보고 있다는 걸 아니까.”

“당분간 우리 보지 말자. 내가 자신감을 찾으면 언니 만나러 올게.”

 

197-198. “그때, 재가 너무 무거웠죠.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다리가 으스러진 거잖아요. 죄송해요. 제가 무거워서, 아저씨를 다치게 해서, 불행하게 해서.”

“너.....”

“그런데 아저씨가 지금 저한테 그래요. 아저씨가 너무 무거워서 감당하기가 힘들어요.”

 

신아언니에게, 그리고 아저씨에게 고백했다. 그 고백이 닿을 거라는 생각도, 닿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그것을 계기로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고 그저 내 안에 있던 말들을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198. 죄책감의 문제는 미안함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합병증처럼 번진다는 데에 있다. 자괴감, 자책감, 우울감. 나를 방어하기 위한 무의식은 나 자신에 대한 분노를 금세 타인에 대한 분노로 옮겨가게 했다. 그런 내가 너무 무거워서 휘청거릴 때마다 수현은 나를 부축해 주었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 보는 내가 아니라, 단지 나로 살고 싶어졌다. 223. 높은 곳에 서려면 언제나 용기가 필요했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새로운 시도는, 225. 어딘가의 바깥에서 드디어 안으로 들어온 느낌을 받았다. 수현의 덕분이었다. 나는 수현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지 않았지만, 수현이 무심한 듯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내게는 위안이 되었고,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218. 우리는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건강하게 자라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는 모두, 내가 될 것이었다.

 

 

 

 

- 오랜만에 성장소설을 읽었다. 이런 방식의 서평을 쓰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소설을 요약하다 보니, 내가 유원이 되었다. 유원을 위로해 주고 싶었는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의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 얼마나 잔혹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정말 나로 살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내 얘기를 하기가 싫어졌다. 타자는 이야기를 하면 그 힘듦과 고통, 상처가 조금은 나을 수 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명백하게 그들은 그들이었고, 나는 나였다. 가끔 나에 대해 말을 하면 할수록 보이지 않는 공간에 내가 갇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이렇게 먹어도 되나, 이렇게 웃어도 되나, 이렇게 즐거워도 되나, 수많은 이렇게...에서 나는 숨이 막혔다. 그래서, 굳이 나에 대해 말해도 되지 않아도 되는 사람에게 입을 다문다. 그 프레임에서 당당해진 유원이 멋있다.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멋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에서 나를 본다는 것은, 내 마음을 투명하게 비춰본다는 것은, 나를 다독이는 것은, 그게 얼마간의 기간이라 하더라도 희망적일 수 있다는 것은, 그렇게 또 하나의 용기가 마음에 생긴다는 것은, 순간순간, 시시때때로 매우 근사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덧_ 몇 해 전, 읽다가 시간이 다 되어 반납할 수밖에 없었던 내용을 짐작할 수 없는(아마 내용은 다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김숨 작가의 <너는 너로 살고 있니>라는 책 제목이 생각나기도 했다. 읽어봐야지라고 말하기에는,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책이 너무 많으니 우선 생각만 해본다, 생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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