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블로그 | 랜덤블로그 쪽지
banny610님의 블로그
http://blog.yes24.com/banny610
리스트 | RSS
태그 & 테마링 | 방명록
banny610
banny610님의 블로그
프로필 쪽지 친구추가
10월 스타지수 : 별3,192
댓글알리미 비글 : 사용안함
전체보기
기본 카테고리
새책소개
나의 리뷰
기본 카테고리
도서
공연
나의 메모
기본 카테고리
태그
#중국어지금시작해 #왕심린 #중국어학습법 #드라마학습법 #컬처블룸 #동양북스 #서평단
2020 / 1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월별보기
나의 친구
기본그룹
최근 댓글
서평 감사합니다~^^ .. 
리뷰 잘 봤습니다. 
리뷰 잘 봤습니다. 
리뷰 잘 봤습니다. 
리뷰 잘 봤습니다. 
새로운 글
오늘 10 | 전체 6676
2019-08-09 개설

전체보기
중요한건 살아남는거다.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 도서 2020-01-02 09:26
테마링
http://blog.yes24.com/document/11955264복사Facebook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도서]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마리즈 콩데 저/정혜용 역
은행나무 | 2019년 1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위 상품을 구매하면, 리뷰등록자에게 상품판매대금의 3%가 적립됩니다. (상품당 최대 적립금액 1,000원) 애드온 2 안내

연말이어서인지 분위기에 휩쓸려서 책장이 잘 안넘어가는 시기에 읽은 책이다. 가볍게 읽으려고 잡았던 소설책에서 여성으로의 삶이 얼마나 많은 차별속에서 견뎌내야 하는 삶인지를 생각하게 됐던 시간이었다. 얼마전 많은 분란을 야기하면서 상영됐던 82년생 김지영으로서의 삶의 무게나 1600년대 바베이도스에서의 티투바의 삶의 무게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으로서 겪어야 하는 무게가 아니라 여자, 여성이라서 어쩔 수 없이 겪었어야 하는 차별이었다.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는 나로 태어나 티투바의 이름을 얻고 세일럼이 검은 마녀로 죽어야하만 했던 그 시설 가장 약자일 수 밖에 없었던 흑인 여성의 이야기다. 티투바는 잉태의 순간부터 그녀의 삶이 녹녹하지 않음을 예상하게 한다. 그녀는 바베이도스를 향해 항해중인 크라이스터 더 킹호의 갑판에서 열여섯 어린나이의 아베나가 영국인 선원으로부터 강간을 당하는 증오와 멸시의 행위로부터 태어난다.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받을 수 없는 어린 생명이 잉태되고 태어났지만 다행히 그녀를 사랑해줄 수 있는 양부 야오를 만나지만, 곧 이어 벌어진 그들을 소유물로 여기는 백인 주인의 범죄로 인해 어머니와 양부를 잃게 된다.

평화롭게 살고 있던 바베이도스로 쳐들어온 백인들에 의해 바베이도스 흑인들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린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살고 있는 그들을 소유물로 취급하면서 말이다. 티투바는 부모를 잃고 버려져서 운명처럼 노예의 신분을 벗어나고 마을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능력을 지닌 만 야야에게 길러지게 된다. 티투바는 만 야야로부터 어떠한 순간에도 살아남는게 가장 중요한 일임을 배우며, 사람을 해하지 않는 치유의 능력을 익히게 된다. 주변사람들로부터 '마녀'라 여기게 하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녀가 열네살이 되던해 만 야야가 세상을 떠나게 되지만, 그녀의 주위에는 살아서는 증오와 멸시로부터 탄생한 티투바를 거부하며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어린 엄마 아베나와 만 야야, 야오까지 항상 그녀를 사랑하는 그림자 셋이 그녀를 지켜주고 있다.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걸 용서해라! 이제 난 내 마음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단다. 널 절대 떠나지 않을 거야!" (p.23)

이대로 노예의 삶을 벗어나 백인으로 멀리 떨어져 치유하는 검은 마녀로 살았더라면 티투바의 삶은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존 인디언을 시작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사랑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만나기만 하면 모든 것을 버리고 불나방처럼 악마의 소굴 같은 백인들을 위한 노예의 삶으로 뛰어드는 티투바를 나 또한 티투바의 세명의 그림자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유를 버릴만큼 사랑이, 육체의 사랑이 의미있는 일이었을까 싶다.

진정한 사랑이라고 여겼던 존 인디언의 배신,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지만 티투바의 몸 역시 거부하지 않았던 유대인 코헨 다제베두, 자유를 꿈꾸며 반항하는 것 같았지만 실은 도망노예에 불과한 크리스토퍼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란을 꿈꾸는 어린 전사 이피게니까지 티투바는 이들게서 무엇을 찾고 꿈꾸었을까... 간통의 주홍글씨의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감옥에서 스스로 목을 매단 헤스터의 '사랑'이라는 말로 이 모든 것을 단정하기에는 티투바의 삶이 너무 고단하다.

"대체 왜 남자들이 줄줄이 내 침대로 들어오는 걸까? 이미 그 얘기를 해주지 않았나, 헤스터가! '넌 사랑을 너무 좋아해, 티투바!' 바로 거기에 내 존재의 균열이 자리한 건 아닌지, 내가 벗어나려고 애썼어야 하는 결함이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p.270)

티투바와 그녀의 남자들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지만, 이 소설의 중요한 관점은 '여성의 삶'이다. 흑인 여성, 노예로서의 티투바의 삶은 드러내놓고 삶의 고단함과 무기력함을 보여주고 있다면, 백인 남자의 대표적인 표본, 종교지도자로 등장하는 새뮤얼 패리스의 아내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엘리자베스 패리스의 삶 또한 안타깝다. 그녀 또한 문명의 세계를 가장한 그늘 아래서 어쩌면 흑인 노예보다 더한 예속적인 관계속에서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다. 새장속의 자유가 전부인것처럼 말이다. 같은 여자로서 가늘게 연결되어 있던 신뢰를 아무렇지도 않게 끊어 버리는 것은 속박된 삶속에서 어쩔 수 없는 당연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네가 몰라서 그래! 그이는 자기 옷도 벗지 않고 내 옷도 벗기지 않고 날 안아. 그저 급하게 그 추악한 행위를 끝내려고 들지." (p.73)

티투바의 삶을 고단하다고 여기기보다는 고단함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자의적인 선택에 의한 삶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편하게 쭉쭉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티투바를 비롯한 여성들의 삶을 엿보면서 누구 하나의 문제가 아닌 모든 여성의 문제일 수도 있는 '여성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티투바의 독립적인 삶을 남성을 선택하기 위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엮어간 점이었다. 티투바, 엘리자베스, 헤스터까지 등장하는 여성들의 관점을 남성을 선택하거나(티투바), 선택된 남성에 복종하거나(엘리자베스), 남자가 없는 세상을 꿈꾸거나(헤스터) 하는 등 '남성'과의 관계만을 중심으로 서사되는 것이 아쉽다. 어쩌면 '마녀'라는 색다르고 매력적인 관점을 중심으로 자신의 의지로 삶을 역어가는 자신의 삶의 독립적인 티투바를 그려냈다면 좀 더 매력적인 티투바의 삶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티투바는 독립적인 정신의 소유자이자 자신의 욕망을 주장하는 데 있어서 거침없이 당당하며,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끝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놓지 못한 인물이다." (p.289, 옮긴이의 말)

이 글이 좋으셨다면 SNS로 함께 공감해주세요.
댓글(1) 트랙백(0)
이 리뷰를 | 추천 2        
진행중인 이벤트
나의 북마크
이벤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