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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비록 유한하고 비루해도 | 독서 2022-10-2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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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저만치 혼자서

김훈 저
문학동네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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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루한 삶에도 온기를 느끼는 글에 감사하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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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님의 작품에서 '글'은 인간과 자연, 이념과 세계보다도 더 두드러진다. 마치 모든 세상의 위에 글이 존재하는 것만 같다. 생로병사의 인간은 무력하고, 자연은 자연 그대로 존재하며, 생각과 이념은 무엇하나 제대로 된 몫이 되질 못하는데, 글만이 추악함 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움과 무력감 속에 숨어있는 생동감을 담담히 서술한다. 김훈 작가님의 글은 단단하고 올곧지만 그만큼 마음을 후벼판다. 그분이 쓴 대부분의 글을 읽어왔고 또 좋아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마력의 실체가 나는 여전히 무엇인지 모르겠다. 작가님의 글을 읽는 경험은 그래서 고통이자 경이이다. 폐부를 찌르는 글의 살기에 놀라워하면서도 늘 마음을 덜컥 흔드는 경험은 언제나 김훈의 세계를 거르지 않는 이유이다.

 

  김훈 작가님의 글은 모순과 대조가 어울려 하나의 글로 합치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다. 달밤과 안개, 날벌레와 햇빛, 주근깨의 별자리와 칼자국 등의 빈 것과 가득찬 것, 죽음과 살아있음, 아름다움과 추함, 젊음과 늙음, 멀고 가까움, 사소한 것과 의미있는 것들의 모순된 조합이  글에 의해서 담담히 조합된다. 하지만  우리들의 삶은 이렇지도 저렇지도 않는 그저 생로병사의 자연의 일부일 뿐이며, 가치나 이념이 아닌 비루한 존재 그 자체로 살아진다. 그런데도 글은 오롯이 삶에서는 하나로 합쳐질 수 없는 모순을 하나의 문장 안에 끌어담아 이렇듯 슬프지만 아름다운 감정을 남긴다. 글은 삶보다 위에서 우리를 조명하기 때문에 모순을 안고 아름답고 슬플 수 있지만, 우리의 삶은 글처럼 그렇게 쉽게 '말해지지' 않는다. 말해지지 않음으로써 형용사와 부사가 없이 주어와 동사의 사실로 축조된 김훈의 글은 그저 우리가 사는 모습만을 그저 담담히 그린다. 말하여지지 않지만, 그려질 뿐이다.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노량진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영자>에서 처럼,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구준생들이 시험에서 풀어야 할 '검사, 판사, 도지사는 한자로 쓸때 일 사(事)자가 맞고 변호사, 계리사, 변리사, 회계사, 운전사는 선비 사(士)를 맞추는 문제'와도 같이 명분과 이유가 없는 답을 구하는 것과 같다. 작중의 영자가 말하듯 '그게 왜 이런 거지. 왜 이건 되고, 이건 안 되는 거지' 라는 질문에 그건 그냥 그렇게 외워야 하는 것이고,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렇듯 남쪽과 북쪽에 번갈아 짓밟히고 추방되어도 (명태와 고래), 공무원 시험 제도가 사람을 가두고 조롱해도 (영자), 몸이 탈나 병원에 드나들어 슬픔과 고통이 세월에 풍화되어도 (대장 내시경 검사), 죽음의 문턱에서 서로 기대면서 두려워하고 또 받아들여도 (저만치 혼자서), 호수공원 장기판에서 삶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어도 (저녁 내기 장기), 김훈 작가님이 쓴  글이 주는 힘은 온기와 의지와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 고통이 가득찬 자리에는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온기가 있고, 비루함을 받아들이는 자리에는 그것에 맞서려는 의지가 있고, 소멸되는 자리에는 아름다움이 대신한다. 삶은 허무와 상실과 소멸에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구체적인 존재와 현상이 이어진다. 그래서 김훈의 모든 이야기들이 마무리되는 곳, 거대한 문장의 숲이 끝나는 마침표마다 짙은 여운이 느껴지는 것 같다.  

 

  김훈 작가님은 <저만치 혼자서>를 발간한 뒤 어떤 인터뷰에서 '독자들이 책에만 매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책이라는 것은 글자이고, 글자라는 것은 간접적인 것이며 문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므로, 책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그 삶을 상대하는 방법과 인간과 세계를 직접적으로 대하는 통로를 찾아나가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 삶이 '글'이라는 것에 의해 더 아름답고 숭고해질 수 있다는 것을 성취해낸 김훈 작가님만이 할 수 있는 겸양의 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김훈 작가님의 이야기속에는 글이 삶의 가장 높은 지점에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여전히 연필로 글을 쓰고 기계를 다루실 줄 모르는 김훈 작가님은 여전히 몸의 쓰임과 손과 같이 실존하는 물질의 미덕을 믿기에, 글은 연필로 몸을 밀고 나가는 것 같은 손에 의해 쓰여진다고 하였다. 모든 세상의 가치 위에 있는 글은 결국 오늘 내가 직접 쓰는 몸과 실재하는 물질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늙고 비루하고 외로운 인간들이 분뇨와 생선 비린내와 디젤의 냄새에 어우지는 듯한 절제되고 간략히 베어진 문장들. 늘 김훈 작가님의 글을 보는 것은 폐부를 찌르듯 마음을 후벼파는 일이지만 글이 주는 여운을 느끼는 경험은 여전히 값지다. 아직 늙고 비루하고 외롭지 않은 상대적으로 복된 인간으로서 삶의 온기와 인간의 의지,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일에 감사하다. 

 

#예스24올해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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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것 하나에 네 개의 좋은 것을 | 독서 2022-09-2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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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부정성 편향

존 티어니,로이 F. 바우마이스터 저/정태연,신기원 역
에코리브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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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성 편향을 극복하여 긍정적인 태도와 철학으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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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우리는 늘 부정에 사로잡혀 있을까. 나쁜 것이 좋은 것보다 강력하다. 세상의 진리는 부정적인 것이 긍정적인 것을 압도하도록 설계했다. 부정적인 사건은 긍정적인 사건보다 훨씬 더 뚜렷하고, 세고, 지배적이고, 효과도 크다. 부정적인 비판은 긍정적인 칭송보다 더 현명해 보인다. 부정적인 뉴스는 긍정적인 뉴스보다 더 빨리 퍼진다. 부정적인 하나의 사건이 수많은 긍정적인 사건보다 개인과 집단의 존속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공든 탑은 늘 하나의 사소한 부정 이슈에 무너진다. 부정성 편향, 부정성 지배, 부정성 효과라 불리우는 것들은 인생의 견고한 법칙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정성 편향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가? 존 티어니의 <부정성 편향 (The Power of Bad)에서는 역설적으로 이러한 부정성 효과를 잘 활용하여 보다 긍정적인 인생의 미덕을 가꿔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나쁜 소식이 있어서 좋은 소식에 더 감사하게 되며, 나쁜 일은 우리를 더욱 현명하게 만들고, 나쁜 경험은 우리를 더욱 친절하고 사려깊게 한다는 것이다.

 

 <부정성 편향>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다뤄지는 개념이 바로 '4의 법칙'인데, 하나의 부정적인 것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최소 네 배의 긍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무리 우리가 부정성 편향에 사로잡혀 있긴 해도, 사람들은 보통 좋은 날 세 번에 나쁜 날 한 번을 경험한다. 일반적인 긍정성 비율은 3대 1이라는 것이다. 나쁜 날보다는 좋은 날의 비율이 3배가 많지만, 나쁜 일의 영향이 워낙 크기 때문에 나쁜 일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최소 부정 1 대 긍정 4 이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1대 3의 평형을 깨뜨리기 위한 '4의 법칙'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위기를 부추긴다. 우리는 있지도 않는 위험을 걱정하다보니 여전히 부정성 편향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지금은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던 것들이 사라지자, 우리는 인류가 처한 가설적 위험을 걱정하는데 시간을 더 보낸다. 본인을 넘어 다른 사람들이 죽는 것까지도 걱정한다. 공포를 파는 정치와 언론이 건재한 까닭이다. 위기는 곧 산업이다.

  

   위기에 대한 전문가들은 부족한 정확성을 자신감과 과장으로 채우고 그들의 말을 끝없이 인용하게 한다. '위기 산업'은 언론인과 정치인, 그들에게 무서운 예측을 계속해서 제공해주는 전문가들의 합작품이다. 언론인들은 자극적인 이야기를, 정치인들은 의제를, 전문가와 이익집단은 대중의 관심과 특권, 지원금을 먹고 산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디지털에서 잘못된 정보와 공포를 퍼뜨리고 그것을 불안하고 분노하는 것에 대한 분별력이다. 미래는 암울하지 않다. 사회에게도, 우리에게도,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다.

 

   보통 하나의 나쁜 것을 넘어서는데 네 개의 좋은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기하면 나쁜 사건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그대로 믿을 필요도 없다. 완벽을 추구하기보다 충분히 잘하면 된다. 비판의 영향력을 인식함으로써 비판을 발전적으로 받아들이고, 가르침을 얻으면 충분하다. 벌이 상에 비해 강력한지를 깨달으면 더 나은 부모나 관리자가 될 수 있다. 나쁜 뉴스와 정보와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섭취를 줄이는 다이어트를 벌이고, 뉴스나 피드에서도 나쁜 것 하나를 넘어 네 개 보다 많은 좋은 것들을 보면 된다. 집단은 부정성 효과의 영향을 받아도, 각자 한 명 한 명은 이를 넘어설 수 있고 사회의 이익이 되도록 만들 수 있다. 삶은 나아지고 문명은 발전하며, 나쁜 것은 강력하지만 좋은 것이 승리할 것이라 확신은 집단이 아닌 나 개인 스스로가 터득하면 된다.

 

 부정성 편향은 여전히 강력하다.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기쁨은 잠시이며, 고난과 역경은 우리 일상과 붙어 늘 함께 하는 것 같다. 우주와 존재를 만들어낸 신은 왜 이렇게 부정성 편향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만들었을까? 아주 가끔이라도 자신에게 찾아오는 행복을 감사히 여기라는 뜻이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가려 내고 싶으시다는 계시다. 계속 나태하지 않고 움직여야 하며, 집단에 휘둘리지 말고 나만의 삶을 사는 충만한 개인으로 존재하라는 의미다. 우리의 정서와 판단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마음 위에서 만족과 행복을 키운다. 한 때의 부정이 눈을 가린다면 이는 앞으로의 크고 깊은 긍정을 자라게 하기 위함이다. 긍정4 대 부정1이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스코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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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달콤씁쓸함을 받아들이기 | 독서 2022-09-2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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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터스위트

수전 케인 저/정미나 역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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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고 씁쓸한 인생에 대한 나름의 용기를 얻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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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달콤하고 씁쓸하다. 왜 그런지는 늘 이유를 알 수 없는 문제다. 왜 우리의 인생은 기쁨과 슬픔이 뒤섞여 있어야만 할까. 왜 인간의 감정을 만든 그 누군가는 기쁨만 주지 않고, 슬픔을 같이 주셨을까. 신기한 일은 기쁨 이면에 슬픔이 있고, 슬픔 이면에 기쁨이 있을 때 아름다움이 더 빛을 발한다는 점이다. 예술은 극단의 가치를 모아 모순을 통해 아름다움을 구현한다. 기쁨과 슬픔은 물론 밝음과 어둠, 빠르고 느림, 길고 짧음을 통해 우리는 달콤씁쓸함의 진리를 깨닫는다. 이럴 때 삶의 아름다움이 기쁨과 슬픔을 초월하는 감정에서 찾아온다. 

 

 

  수전 케인의 <비터 스위트 (Bittersweet)>는 불안한 세상을 관통하는 가장 위대할 수 있는 힘인 '달콤씁쓸함'의 감정을 깊게 파고든 책이다. 저자는 선과 연민, 연대와 협동 같은 인간의 긍정적인 측면이 원초적 기저의 감정인 슬픔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슬픔을 통해 갈망과 그리움과 같은 감정을 통해 긍정의 감정이 발현된다는 것이다. 슬픔이 있을 때 덧없는 시간에 대한 예리한 의식과 세상의 작은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호기심이 나온다. 무언가를 갈망하고, 가슴아프고 슬픈 상태의 성향은 삶이 영원하지 않으며, 그 찰나의 순간 사이에 숨어 있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통찰하는 즐거움을 불러온다. 

 

  슬픔은 곧 갈망을 부른다. 슬픔은 교감과 연민을 촉발시키고, 슬픔에서 기쁨을 전환하도록 한다. 생과 사와 같은 모든 인생의 진리는 언제나 항상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가 받은 고통은 창의성, 초월, 사랑으로 전환이 가능하고 이는 <비터 스위트>를 통해 수전 케인이 이 책에서 말하는 핵심 개념이기도 하다.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탈바꿈시키려는 힘은 예술적 표현의 기반이 된다. 창의성은 신비로운 힘을 통해 슬픔이나 갈망과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 해소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그 고통을 창의성의 제물로 삼으라고 한다. 특히 어려움과 복종과 강박, 우울증에 빠지게 된 일 등 고통받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 고통을 초월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저자인 수전 케인은 말한다. 글을 통해 나를 대신해서 표현하는 달콤씁쓸한 감정이 호소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나의 고통은 나의 관심사의 어두운 이면이다. 관심이 깊어 아픔이 깊은 것이다. 나의 관심사로 깊이 뛰어들면 그 고통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다고 한다. 고통이 얼마나 마음아픈 경험인지를 아는 나로서는 여러번 깨우쳐도 받아들이기 힘든 어려운 일이다. 잃은 사랑이나 이루지 못한 사랑 그대로 사랑을 '새롭게 바뀐 모습으로 인정하는 것'은 여전히 버거운 여정이다. 씁쓸함을 달콤함과 융합시키고 다시 온전함을 느끼려면 상처를 마주하고 고통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말한다. 고통에 마음을 여는 것이 곧 기쁨에 마음을 여는 것이다. 고통 속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가치 속에서 고통을 발견하는 것이 인생이다. 이렇듯 나의 관심은 내가 쉽게 상처받고 상처받아온 지점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시들지만, 나이가 들수록 지혜는 깊어진다. 저자 수전 케인은 노년층이 오히려 젊은 층보다 차분해지고 삶의 만족감이 커지며, 지혜가 늘어난다고 말한다. 노년층은 달콤씁쓸함의 핵심적인 개념인 '사무침'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현재에 머물기보다 미래에 관심을 갖지만, 나이가 들면 생활속의 일상과 현재의 순간에 더 '사무친' 감정을 쏟을 수 밖에 없다. 야망과 지위, 남들을 앞서가는 문제에 관심이 쏠리지 않고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을 사랑과 의미로 채우고 싶어한다. 산다는 것 자체를 음미하게 되는 것이다. 

 

  기쁨과 슬픔이 번갈아 찾아와도 변하지 않는 것은 그저 존재하는 나 자신이다. 모든 슬픔과 상실과 혼동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도, 또 앞으로도 여전히 본연의 나 그대로이다. 과거의 슬픔과 살망을 현재의 온전함으로 변화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한 일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이다. 나는 역경과 고통을 통해 성장하며 의미있는 삶을 만들 수 있다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지금의 이 고통이 시간을 딛고 변화하고 성장하는 나의 소중한 기반이 되기를 갈망한다. 고통은 쉽게 떨쳐지지 않겠지만 내면의 성찰에 대한 갈망은 여러 지식과 예술과 창의적인 영감을 접하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함께 하는 찰나의 순간에 대한 즐거움의 가치를 일깨웠다. 고통은 역시나 삶을 소중히 여기게 해 준다. 고통을 다른 무언가로 탈바꿈하기 위해 글을 많이 쓰게 된 것도 반가운 미덕이다. 수전 케인 역시 고통을 짊어지고 있다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글로 쏟아내는 방법을 추천했다. 

 

  고통은 생에 걸쳐 안개처럼 깔려있다 해도, 기쁨은 안개를 뚫고 나오는 빛줄기처럼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간혹 영감을 주는 때가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은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예술이다. 음악은 슬픔을 파고들지만 앞으로의 인생 어딘가에 있을 숭고할 지점을 찾아보게 만든다. 슬픔을 통해 아픔을 딛을 때 아름다움은 깊어진다. 아직 내가 만나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은 세상에 많이 남아있고, 앞으로 내가 발견해야 할 새로운 의미는 지나간 고통과 미련을 잠재울 수 있다고 믿는다. 아름다운 삶은 지금부터 나의 작은 일상의 순간과 함께 구현된다. 내가 이름붙이고 싶은 모든 것의 구현은 '지금'이라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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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의 세상에서 | 독서 2022-09-1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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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흑뢰성

요네자와 호노부 저/김선영 역
리드비(READbie) | 202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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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전략에 대한 모순을 파헤치는 역사 미스터리의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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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각종 미스터리 랭킹을 휩쓸며 발간을 기다려왔던 요네자와 호노부의 <흑뢰성>. 역시 기대했던 이상의 놀랄만한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는 작품으로 향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걸작의 반열에 들어갈 듯 하다. 일본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역사소설과 미스터리 장르의 재미를 너무나도 잘 배합한 이 작품은 무엇보다 전쟁과 인간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력이 곳곳에 배어있다는 점이 놀랍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고전부 시리즈나 소시민 시리즈, 베루프 시리즈는 물론 판타지, 본격 미스터리, 그리고 단편집에 이르기까지 한 작가가 썼다고는 볼 수 없을정도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하는데, 이번 <흑뢰성>에서는 장르적인 재미를 보장함은 물론 문학적인 성취까지 더했다.

 

  <흑뢰성>은 일본 전국 시대 1578년 겨울부터 1년간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당대의 무장이자 다이묘인 '아라키 무라시게'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당시의 패권을 눈앞에 둔 이는 그 유명한 '오다 노부나가'. 무라시게는 오다에게 반역을 일으키고 아리오카성에서 저항한다. 막강한 오다 세력과의 전투를 앞두고 성에서 오랜 저항을 이어가는 무라시게 앞에 천재적인 책사 '구로다 간베에'가 나타나 그를 설득하는데, 무라시게는 그를 죽이거나 돌려보내지 않고 간베에를 지하 감옥에 가둔다. 이후 성안에서 기괴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무라시게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지하 감옥에 있는 구로다 간베에를 찾아가 사건의 진상을 논의한다.

 

  아라키 무라시게는 오다 노부나가는 당대의 패권을 앞둔 거대한 적을 맞이하며 아리오카성에서 승산없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민심은 동요하고 장수들은 분열한다. 적과 내통하는 배반자가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아라키 무라시게는 지역의 유지라고 할 수 있는 이케다 가문의 정통성을 잇는 인물도 아니다. 그 역시 이전 주군을 배신하여 이전의 가문을 통합하여 주군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제레미 블랙의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에 따르면, 일본 전국시대의 전쟁사에서는 배신과 배반이 전쟁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아닌게 아니라 이 책에 나오는 전국시대 당시의 무사들의 주된 관심사가 어떻게 배반을 효과적으로 일으키고, 어떻게 우리편의 배신을 막는지에 대한 것이다. 아라키 무라시게는 아리오카성을 지키면서 외부의 큰 적과 싸우는 것보다 내부의 불안과 배반을 막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더 크게 느낀다.

 

  아리오카성에서 무라시게에게 항복을 권유하기 위해 나타난 당대의 천재적인 책사 구로다 간베에. 일본 전국시대에서 훗날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유명한 책사로 이름을 드높였던 인물이다. (영화 <한산>에서 윤제문이 맡았던 역할로, 한국인이 공감하기에는 어려운 인물인것도 사실이다) 무라시게는 그만이 생각했던 이유로 간베에를 지하 감옥에 가둔다. 도대체 무라시게는 간베에를 왜 죽이거나 돌려보내지 않고 지하 감옥에 가두었을까. 자신만의 '전략'으로 당대의 전략가를 감옥에 가둔 그 상황부터 그에 대한 인과가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전국시대, 모든 무사들에게는 자신들만의 전략이 존재한 시대였다. 오다 노부나가는 압도적인 세력으로 무참하게 많은 사람들을 죽여 나갔고, 많은 다이묘들이 극락왕생을 내걸고 전투를 부추겼으며, 어떤 이들은 때를 기다리고, 무라시게는 노부나가와는 다른 방향으로 자신만의 세력을 키우려고 했다. 모든 무사는 죽음으로써 존재했고, 죽음으로써 살고자 했고 가문을 남기려고 했다. 모든 것이 무사의 관점이었고 전쟁을 일으키는 장수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실제 싸움에 참여한 병사들과 백성들의 관점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들은 처절하게 싸움에 임하고 극락왕생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이라는 전국시대 당시의 말은 종교적인 힘을 통해 모든 나라의 백성들을 전쟁에 참여하도록 했다. 이 또한 무사들의 전략이었다. 전쟁은 전략과 전략이 넘치는 시기였다. 아리오카성이 존망의 위기에 처할 때마다 무라시게는 모든 전략을 짜내서 성을 지켜 왔다. 모두를 죽였던 노부나가와 달리, 죽이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평판을 높이고 소문을 퍼뜨려 이름을 알리고 아군을 늘이려 했던 무라시게는 그 역시 노부나가와는 다르지만 이름난 무사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략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이 책에 등장하는 무사들과 책사들의 전략은 마치 꿈을 꾼 듯 허망하게 묘사된다. 무라시게는 노부나가와는 차별화된 입장을 견지하기 위해, 간베에는 한 남자의 이름을 치욕에 빠뜨리기 위해 각자의 전략을 펼치지만, 그 결과는 성공하지 못한다. 전략은 부풀어진 허세이기도 했고, 헛된 욕망이기도 했다. 악인들의 그릇된 인과관계는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사람들은 희생될 뿐이었다.

 

 아무리 악이 만연했던 시대였어도, 근심 많은 세상에 저항할 방법은 인간다운 삶에 대한 갈망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불가사의한 전략에서는 무라시게에게 책략을 전달했던 간베에는, 결국 인생의 교훈은 거꾸로 무라시게를 통해 배운다. 신벌이나 주군의 벌보다 신하와 백성의 벌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는 진리는 전국시대를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유효하다. 역사의 교훈과 문학의 경고가 시대를 거쳐 반복되는데도 우리는 이러한 진리를 잊어버리고 건너뛰곤 한다.

 

  <흑뢰성>은 몰락해가는 성을 지키는 지도자의 딜레마를 다루는 인간 심리에 천착하면서도, 자신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불가능한 사건에 도전하는 추리 미스터리의 면모를 잃지 않으면서, 무엇보다 인간애라는 주제 의식에도 깊이 있는 질문을 던져주는 흔치 않은 명작이다. 아마 최근 각국의 미스터리 장르에서 이만한 성취를 안겨준 작품이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가장 빛나는 지점은 역사와 미스터리의 미덕인 '전략과 책략'이라는 것의 모순을 스스로 되묻고 있다는 점이다. 지략을 짜내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상위에 있어야 함을 역설적으로 이 역사 미스터리의 수작은 말한다. 전략은 허세가 아니라 명분이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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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총구보다 강한 말의 결기 | 독서 2022-08-1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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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하얼빈

김훈 저
문학동네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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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이 곧 말이었던 안중근의 말의 결기에 대한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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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님의 세계에 이번에는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가 등장했다.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를 전후로 한 2주간의 이야기를 다룬 <하얼빈>은 하얼빈역에서의 사건에 이르기까지 안중근과 이토의 서술이 교차적으로 서술되며, 후반부에는 재판을 통해 밝혀진 안중근 의사의 결기를 다룬다. 김훈 작가님이 생각한 처음 책의 제목은 <하얼빈에서 만나자>였다고 한다. 이토 히로부미와 그를 제거하려는 안중근과 우덕순, 그리고 거사를 앞두고 가족을 보려는 안중근의 가족들이 하얼빈에서 만난다. 누가 먼저 오게 될지, 그리고 누구와 누구가 엇갈리게 될지, 그리고 거사는 성공하게 될지 실패하게 될지 당대의 인물들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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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김훈 작가님의 작품관에서 보이는 세계에 대한 무력감 속 개개인의 실존에 대한 고민은 날카로운 문장 안에 밀도높게 배어져 있다. 임진왜란 때의 이순신, 병자호란때의 김상헌과 최명길, 유배지에서의 정약전처럼 안중근 역시 대한제국의 기울어져가는 운명 앞에 무력하지만, 살아있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끝없이 고민한다. 나라를 잃는 시대의 무게는 가족을 이루는 가장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개인을 누른다. 안중근은 슬퍼하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감지하고 대륙으로 눈을 옮긴다.



당시 대한제국의 무력감은 '물성'에 대한 무력감이기도 하다. 이토는 조선에 철도를 내어 중국과 러시아를 잇는 대륙의 길을 생각하지만, 당시 순종은 인륜과 법도의 길만을 따진다. 20세기 초의 역사는 물성이 만들어놓은 힘의 원리에 움직이는데, 물성을 모르는 조선의 왕실과 지식인들은 그저 무력할 뿐이었다. 이본의 이토는 철도가 만드는 힘의 언어를, 순종은 보이지 않는 관념의 언어를 말한다.


거대한 물성에 맞선 안중근에게 자신이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는 총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이토를 죽이는 것은 세상에 말을 전하는 것이며, 그 수단은 흔들리지 않는 총구로부터 나온다고 안중근은 믿었다. 이토를 죽이러 가기 전까지 안중근은 자신이 무엇을 제거하는지를 계속 규정하고자 한다. 거사를 앞둔 안중근의 머리속에는 이토에게 총을 겨누고 발사를 한다는 행위에 대한 단순성과 그 단순성을 집약할 명분의 언어밖에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안중근은 죄인으로 일본 사법부에 의해 재판을 받지만, 안중근의 언어는 사형을 당하는 그 순간까지 간결하고 분명하다. 안중근의 인생은 거사의 행위와 거사의 의미를 간결화하는데에만 집중한 것만 같다. 간결화된 명분의 의미는 그 무엇보다 강했고 일본 재판관들이 파고들고 넘나들 자리가 조금도 없었다. 일본은 안중근의 동기를 현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내 보이려고 했으나, 안중근은 끝까지 자신이 행한 거사의 정치적 동기를 지켜냈다.

 

안중근에게 총은 말이자, 말은 총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행위의 질문에 대한 안중근의 답변은 발사된 총알과 같이 분명했다. 안중근은 이토를 죽이는 이유를 세계에 발표하려는 수단으로 이토를 죽였다고 말한다. 안중근과 우덕순의 의거를 일본과 선진 문명에 대한 지식의 결핍으로 본 일본 재판정은 안중근의 말을 누르지 못했다. 칼날처럼 벼려낸 말의 힘은 숱한 관념과 감정을 물리친 안중근의 결기에서 나온다. 말이 핵심을 온전히 지켜내고 부가적인 것을 쳐낼때, 말은 총이 된다.

 

천주교 신자였던 안중근의 거사에 대해 당시 한국에 정착했던 뮈텔 주교는 안중근의 대의를 인정하지 않았고, 거사를 범죄로 인정했다. 하느님은 세속의 일에 관하여 대답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안중근은 죄업을 단죄하는 일이 인간의 땅 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뿐이라는 차가운 위안만을 깨닫고 생을 마감한다. 신앙에는 국경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람의 땅 위에는 국경이 존재했고, 국가가 하지 못한 책임을 온전히 한 개인이 지며 안중근은 여순 감옥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개인의 운명을 좌우한 것은 국가였지만, 국가는 그저 무너져내릴 뿐이었다.

 

어쩌면 인생의 운명이 국가에 의해 좌우되는 시대에 살지 않는 것만으로 우리는 크나큰 축복일지 모른다. 그러한 축복은 우리 전의 세대인 안중근을 비롯한 수없이 많은 분들의 희생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감사와 존경은 더 이상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언어가 아닌 살아있는 구체적인 언어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김훈이 남긴 안중근의 말이 이토의 몸을 겨눈 총이 되어 아직까지 생생하게 살아 있듯이.

 

불행하게도 안중근의 총과 말은 바로 이어지진 못했다. 안중근의 차남 안준생은 이후 이토 히로부미의 차남 이토 분키치를 만나 '이토의 명복을 빌며 사죄를 한다'며 일본인의 프로파간다에 이용되었다. 하지만 '일본이 지배하는 세상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당시 일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우리는 광복을 맞이했고 역사는 오롯이 진실한 말의 힘만을 기억한다. 옳은 것은 어찌됐든 시간이 걸릴지언정 올바르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김훈 작가는 안중근의 대의보다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하얼빈으로 향한 그의 몸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안중근의 대의는 역사가 힘주어 말하지 않더라도 그가 몸과 총과 입으로 다 말했고, 지금도 말하고 있는 것이므로. 우리의 현재는 총과 말을 궁극적으로 일치시킨 안중근의 희생에 수없이 빚지고 있다. 안중근의 총이 그의 말과 다르지 않듯, 말의 결기는 인생의 태도와 함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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