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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총구보다 강한 말의 결기 | 독서 2022-08-1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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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하얼빈

김훈 저
문학동네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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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이 곧 말이었던 안중근의 말의 결기에 대한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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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님의 세계에 이번에는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가 등장했다.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를 전후로 한 2주간의 이야기를 다룬 <하얼빈>은 하얼빈역에서의 사건에 이르기까지 안중근과 이토의 서술이 교차적으로 서술되며, 후반부에는 재판을 통해 밝혀진 안중근 의사의 결기를 다룬다. 김훈 작가님이 생각한 처음 책의 제목은 <하얼빈에서 만나자>였다고 한다. 이토 히로부미와 그를 제거하려는 안중근과 우덕순, 그리고 거사를 앞두고 가족을 보려는 안중근의 가족들이 하얼빈에서 만난다. 누가 먼저 오게 될지, 그리고 누구와 누구가 엇갈리게 될지, 그리고 거사는 성공하게 될지 실패하게 될지 당대의 인물들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  


이번에도 김훈 작가님의 작품관에서 보이는 세계에 대한 무력감 속 개개인의 실존에 대한 고민은 날카로운 문장 안에 밀도높게 배어져 있다. 임진왜란 때의 이순신, 병자호란때의 김상헌과 최명길, 유배지에서의 정약전처럼 안중근 역시 대한제국의 기울어져가는 운명 앞에 무력하지만, 살아있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끝없이 고민한다. 나라를 잃는 시대의 무게는 가족을 이루는 가장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인 개인을 누른다. 안중근은 슬퍼하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감지하고 대륙으로 눈을 옮긴다.



당시 대한제국의 무력감은 '물성'에 대한 무력감이기도 하다. 이토는 조선에 철도를 내어 중국과 러시아를 잇는 대륙의 길을 생각하지만, 당시 순종은 인륜과 법도의 길만을 따진다. 20세기 초의 역사는 물성이 만들어놓은 힘의 원리에 움직이는데, 물성을 모르는 조선의 왕실과 지식인들은 그저 무력할 뿐이었다. 이본의 이토는 철도가 만드는 힘의 언어를, 순종은 보이지 않는 관념의 언어를 말한다.


거대한 물성에 맞선 안중근에게 자신이 전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는 총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이토를 죽이는 것은 세상에 말을 전하는 것이며, 그 수단은 흔들리지 않는 총구로부터 나온다고 안중근은 믿었다. 이토를 죽이러 가기 전까지 안중근은 자신이 무엇을 제거하는지를 계속 규정하고자 한다. 거사를 앞둔 안중근의 머리속에는 이토에게 총을 겨누고 발사를 한다는 행위에 대한 단순성과 그 단순성을 집약할 명분의 언어밖에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안중근은 죄인으로 일본 사법부에 의해 재판을 받지만, 안중근의 언어는 사형을 당하는 그 순간까지 간결하고 분명하다. 안중근의 인생은 거사의 행위와 거사의 의미를 간결화하는데에만 집중한 것만 같다. 간결화된 명분의 의미는 그 무엇보다 강했고 일본 재판관들이 파고들고 넘나들 자리가 조금도 없었다. 일본은 안중근의 동기를 현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내 보이려고 했으나, 안중근은 끝까지 자신이 행한 거사의 정치적 동기를 지켜냈다.

 

안중근에게 총은 말이자, 말은 총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행위의 질문에 대한 안중근의 답변은 발사된 총알과 같이 분명했다. 안중근은 이토를 죽이는 이유를 세계에 발표하려는 수단으로 이토를 죽였다고 말한다. 안중근과 우덕순의 의거를 일본과 선진 문명에 대한 지식의 결핍으로 본 일본 재판정은 안중근의 말을 누르지 못했다. 칼날처럼 벼려낸 말의 힘은 숱한 관념과 감정을 물리친 안중근의 결기에서 나온다. 말이 핵심을 온전히 지켜내고 부가적인 것을 쳐낼때, 말은 총이 된다.

 

천주교 신자였던 안중근의 거사에 대해 당시 한국에 정착했던 뮈텔 주교는 안중근의 대의를 인정하지 않았고, 거사를 범죄로 인정했다. 하느님은 세속의 일에 관하여 대답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안중근은 죄업을 단죄하는 일이 인간의 땅 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뿐이라는 차가운 위안만을 깨닫고 생을 마감한다. 신앙에는 국경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람의 땅 위에는 국경이 존재했고, 국가가 하지 못한 책임을 온전히 한 개인이 지며 안중근은 여순 감옥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개인의 운명을 좌우한 것은 국가였지만, 국가는 그저 무너져내릴 뿐이었다.

 

어쩌면 인생의 운명이 국가에 의해 좌우되는 시대에 살지 않는 것만으로 우리는 크나큰 축복일지 모른다. 그러한 축복은 우리 전의 세대인 안중근을 비롯한 수없이 많은 분들의 희생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감사와 존경은 더 이상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언어가 아닌 살아있는 구체적인 언어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김훈이 남긴 안중근의 말이 이토의 몸을 겨눈 총이 되어 아직까지 생생하게 살아 있듯이.

 

불행하게도 안중근의 총과 말은 바로 이어지진 못했다. 안중근의 차남 안준생은 이후 이토 히로부미의 차남 이토 분키치를 만나 '이토의 명복을 빌며 사죄를 한다'며 일본인의 프로파간다에 이용되었다. 하지만 '일본이 지배하는 세상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당시 일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우리는 광복을 맞이했고 역사는 오롯이 진실한 말의 힘만을 기억한다. 옳은 것은 어찌됐든 시간이 걸릴지언정 올바르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김훈 작가는 안중근의 대의보다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하얼빈으로 향한 그의 몸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안중근의 대의는 역사가 힘주어 말하지 않더라도 그가 몸과 총과 입으로 다 말했고, 지금도 말하고 있는 것이므로. 우리의 현재는 총과 말을 궁극적으로 일치시킨 안중근의 희생에 수없이 빚지고 있다. 안중근의 총이 그의 말과 다르지 않듯, 말의 결기는 인생의 태도와 함께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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