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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저만치 혼자서

김훈 저
문학동네 | 2022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비루한 삶에도 온기를 느끼는 글에 감사하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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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님의 작품에서 '글'은 인간과 자연, 이념과 세계보다도 더 두드러진다. 마치 모든 세상의 위에 글이 존재하는 것만 같다. 생로병사의 인간은 무력하고, 자연은 자연 그대로 존재하며, 생각과 이념은 무엇하나 제대로 된 몫이 되질 못하는데, 글만이 추악함 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움과 무력감 속에 숨어있는 생동감을 담담히 서술한다. 김훈 작가님의 글은 단단하고 올곧지만 그만큼 마음을 후벼판다. 그분이 쓴 대부분의 글을 읽어왔고 또 좋아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마력의 실체가 나는 여전히 무엇인지 모르겠다. 작가님의 글을 읽는 경험은 그래서 고통이자 경이이다. 폐부를 찌르는 글의 살기에 놀라워하면서도 늘 마음을 덜컥 흔드는 경험은 언제나 김훈의 세계를 거르지 않는 이유이다.

 

  김훈 작가님의 글은 모순과 대조가 어울려 하나의 글로 합치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다. 달밤과 안개, 날벌레와 햇빛, 주근깨의 별자리와 칼자국 등의 빈 것과 가득찬 것, 죽음과 살아있음, 아름다움과 추함, 젊음과 늙음, 멀고 가까움, 사소한 것과 의미있는 것들의 모순된 조합이  글에 의해서 담담히 조합된다. 하지만  우리들의 삶은 이렇지도 저렇지도 않는 그저 생로병사의 자연의 일부일 뿐이며, 가치나 이념이 아닌 비루한 존재 그 자체로 살아진다. 그런데도 글은 오롯이 삶에서는 하나로 합쳐질 수 없는 모순을 하나의 문장 안에 끌어담아 이렇듯 슬프지만 아름다운 감정을 남긴다. 글은 삶보다 위에서 우리를 조명하기 때문에 모순을 안고 아름답고 슬플 수 있지만, 우리의 삶은 글처럼 그렇게 쉽게 '말해지지' 않는다. 말해지지 않음으로써 형용사와 부사가 없이 주어와 동사의 사실로 축조된 김훈의 글은 그저 우리가 사는 모습만을 그저 담담히 그린다. 말하여지지 않지만, 그려질 뿐이다.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노량진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영자>에서 처럼,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구준생들이 시험에서 풀어야 할 '검사, 판사, 도지사는 한자로 쓸때 일 사(事)자가 맞고 변호사, 계리사, 변리사, 회계사, 운전사는 선비 사(士)를 맞추는 문제'와도 같이 명분과 이유가 없는 답을 구하는 것과 같다. 작중의 영자가 말하듯 '그게 왜 이런 거지. 왜 이건 되고, 이건 안 되는 거지' 라는 질문에 그건 그냥 그렇게 외워야 하는 것이고,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렇듯 남쪽과 북쪽에 번갈아 짓밟히고 추방되어도 (명태와 고래), 공무원 시험 제도가 사람을 가두고 조롱해도 (영자), 몸이 탈나 병원에 드나들어 슬픔과 고통이 세월에 풍화되어도 (대장 내시경 검사), 죽음의 문턱에서 서로 기대면서 두려워하고 또 받아들여도 (저만치 혼자서), 호수공원 장기판에서 삶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어도 (저녁 내기 장기), 김훈 작가님이 쓴  글이 주는 힘은 온기와 의지와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 고통이 가득찬 자리에는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온기가 있고, 비루함을 받아들이는 자리에는 그것에 맞서려는 의지가 있고, 소멸되는 자리에는 아름다움이 대신한다. 삶은 허무와 상실과 소멸에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구체적인 존재와 현상이 이어진다. 그래서 김훈의 모든 이야기들이 마무리되는 곳, 거대한 문장의 숲이 끝나는 마침표마다 짙은 여운이 느껴지는 것 같다.  

 

  김훈 작가님은 <저만치 혼자서>를 발간한 뒤 어떤 인터뷰에서 '독자들이 책에만 매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책이라는 것은 글자이고, 글자라는 것은 간접적인 것이며 문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므로, 책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그 삶을 상대하는 방법과 인간과 세계를 직접적으로 대하는 통로를 찾아나가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 삶이 '글'이라는 것에 의해 더 아름답고 숭고해질 수 있다는 것을 성취해낸 김훈 작가님만이 할 수 있는 겸양의 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역설적으로 김훈 작가님의 이야기속에는 글이 삶의 가장 높은 지점에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여전히 연필로 글을 쓰고 기계를 다루실 줄 모르는 김훈 작가님은 여전히 몸의 쓰임과 손과 같이 실존하는 물질의 미덕을 믿기에, 글은 연필로 몸을 밀고 나가는 것 같은 손에 의해 쓰여진다고 하였다. 모든 세상의 가치 위에 있는 글은 결국 오늘 내가 직접 쓰는 몸과 실재하는 물질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늙고 비루하고 외로운 인간들이 분뇨와 생선 비린내와 디젤의 냄새에 어우지는 듯한 절제되고 간략히 베어진 문장들. 늘 김훈 작가님의 글을 보는 것은 폐부를 찌르듯 마음을 후벼파는 일이지만 글이 주는 여운을 느끼는 경험은 여전히 값지다. 아직 늙고 비루하고 외롭지 않은 상대적으로 복된 인간으로서 삶의 온기와 인간의 의지,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일에 감사하다. 

 

#예스24올해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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