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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수업 2부 | 기본 카테고리 2022-09-17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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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믿는 인간에 대하여

한동일 저
흐름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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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면 뭔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내게 있는 모양이다. 몇 년 전부터 리뷰를 쓰기 시작하면서 그런 강박은 더욱 심해졌고.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책의 진경을 맛보는 일에서는 거리가 멀어지고 거기서 내가 무엇을 얻어야할 지에 매진했다.

 

저자의 전작인 <라틴어 수업>을 읽으면서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화ㆍ사회제도ㆍ법ㆍ종교를 이해하는 수단으로서 라틴어의 실체를 살펴보고 싶었다. 하지만 기대만큼 새로 알게 된 것도 깨달은 것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세상에 어느 언어가 만만하겠으며 더구나 난해하기로 정평이 난 라틴어를 책 한 권으로 이해하려 든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래서 이번에는 저자가 말하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춰 읽기 시작했다. 생각을 바꾸고 나서야 비로소 저자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천주교 사제이기도 한 저자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죽어간 신의 모습과 부활에 관한 이야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지중해 지역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익숙한 이야기였고,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기독교를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이집트에서도 삼위일체 신을 숭배하고 최후의 심판과 인간의 불멸성을 믿었으며 성스러운 모자를 숭앙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자칫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그들의 설화를 차용했다는 말로 이해할 여지도 있어서 사제의 발언이라고 하기엔 놀랍다.

 

저자는 이어서 “신이 인간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신을 필요로 할 뿐”이라며 “불의한 자가 호의호식하고 정의로운 자가 억압과 핍박을 받는 현실 속에서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인간의 꿈이 번번이 미완으로 그칠 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천국과 지옥, 그리고 그 심판을 주관하는 신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이 말 또한 신과 그의 심판으로 이루어지는 천국과 지옥 또한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주장으로 비칠 수 있어 앞선 발언보다 더욱 놀랍다.

 

저자는 바티칸 변호사로서 가톨릭의 핵심에 머물면서 유럽 교회의 웅장함과 화려함 속에 종교적 거룩함 뿐 아니라 그에 못지않은, 아니 오히려 그보다 큰 인간의 세속적 야망이 들어있는 것을 읽어내며 과연 신을 예배하는 장소가 이토록 화려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을 던진다. 저자는 결국 인간의 세속적 야망이 종교적 본질과 종교적 거룩함을 넘어선다면 창조주이자 세상을 운영하는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보다 나을 것이 없고 성경의 모든 기록은 지역 설화와 아무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며칠 전 내로라하는 교회들이 모여 성가합창제를 벌인 영상을 보게 되었다. 합창단 수준이나 반주를 위한 오케스트라 규모가 어지간해서는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화려했다. 교회마다 행사를 위해 전력투구한 것이 여실히 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자리에 참석하는 것을 영예로 알고 최선을 다해 준비했을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무엇이 그런 내 생각을 바꾸어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영상을 보면서 그게 교회의 본질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왜 저런 열정과 자원을 저런 곳에 낭비하는지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자는 한 세기도 살지 못하는 인간이 밀라노 대성당을 5백년이나 걸려 지은 것을 풍자해 이탈리아에서는 ‘밀라노 대성당’이라는 말을 ‘끝이 보이지 않는 일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관용어’로 쓰인다고 소개한다. 이와 같이 웅장한 교회와 화려한 예배의식이 기독교문화의 우월성을 보여줄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교회의 본질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탄식하는 저자의 마음이 내 마음과 다르지 않다. 저자는 “수도복을 입었다고 수도자나 성직자가 되지 않는다. 종교는 평범한 사람에게 어떤 의미에서 사회적인 옷일 수 있다. 그러나 종교생활 자체가 그를 종교인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며 그 자신을 거룩하게 만들지도 않는다”고 오금을 박는다. 그러니 사회가 교회와 멀어지게 된 것은 교회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결과라는 저자의 지적은 참으로 옳다.

 

전대미문의 재난이 된 코로나는 사회의 모든 부분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비대면예배가 일상이 되면서 줄어든 교인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대로 회복해봐야 예전의 2/3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니 대면예배가 금지될 때 사활을 걸고 이에 맞선 교회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고 그들이 내세우는 ‘종교의 자유 억압’이라는 프레임을 벗겨낼 수 있는 뾰족한 대답도 찾기 어렵다.

 

종교의 자유에 대해 ‘바티칸에서 종교법을 전공한 바티칸 변호사’인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종교의 자유는 ‘신앙의 자유’와 ‘신앙실현의 자유’ 둘로 나뉜다. ‘신앙의 자유’는 절대적인 자유로서 신앙을 선택하거나 바꾸거나 포기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고 이에 더해 신앙을 갖지 않을 자유까지 포함한다. 반면 ‘신앙실현의 자유’는 상대적인 자유로서 종교의식, 종교교육, 종교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말한다. 다만 종교의 상대적인 자유는 다른 사람의 기본권이가 사회공동체 질서를 해치지 않는 조화로운 범위 안에서만 인정된다.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국민의 모든 자유는 필요한 경우 제한할 수 있는데 앞서 말한 절대적인 권리인 ‘신앙의 자유’를 제한한다기보다 ‘신앙실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칸트웰은 행인이 오가는 거리에서 가톨릭을 부정하는 주장을 담은 녹음테이프를 틀어 치안방해죄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았고 연방대법원까지 갔다. 판결에서 판사는 “수정헌법 제1조 ‘종교의 자유로운 행사’ 조항은 믿는 자유(freedom to believe)와 행동의 자유(freedom to act)라는 두 가지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믿는 자유는 절대적이지만 행동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전혀 그렇지 않다. 모름지기 행동은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규제의 대상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이것은 종교행사의 권리가 절대적이지 않음을 의미한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다룬 유럽의 헌법학 서적에서도 감염병 상황에서는 국가권력에 의해 종교행사를 일시적으로 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저자는 행간을 통해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부모와 가족의 존재가 고통이었다고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내비치고 있다. 저자는 한편으로는 그 문제가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 어려움에서 구해주시기를 기도했다고 고백한다.

 

“어쨌든 부모님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문제에 불평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가고 유학하던 중에도 내내 전장 속에 있는 것 같았지만 그때도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냉정하게 구분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사람이었다.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실은 내 마음과 달랐고 고통스러운 시기에 기댈 가족이 없다는 사실이 참 마음 아팠다. 그러나 부모님을 비롯해 마음먹고 행동하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속했다. 그 앞에서 나는 불평만 하는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자문하게 되었다. 그저 나의 일상을 살자, 불평과 탄식은 이 순간 내게 필요 없는 것이니 한숨과 함께 날려 보내자 하면서 그 탄식과 한숨이 기도가 되었다.”

 

살아가노라면 고통은 줄어들지 않고 우리는 그 괴로움을 줄이고자 삶의 대소사부터 존재론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두고 기도로 청한다. 하지만 저자는 기도에 앞서 자기가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 올바른 기도에서 벗어나게 된다면서,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묻고 성찰하기를 권면한다.

 

물론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막상 문제에 닥치게 되면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 막막할 때가 대부분이다. 아니,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모를 때도 허다하다. 그래도 기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럴 때 나는 기도부터 시작했다. 내 기도가 벽에 대고 떠드는 독백에 지나지 않는다면 모를까 들어줄 상대가 있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기도를 듣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중구난방인 기도조차 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주신다는 것을 나는 체험을 통해 수없이 확인했다.

 

저자는 책의 첫머리에서 기독교 유적지를 처음 보게 되었을 때 글과 사진으로만 보던 유적지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마음이 설렜지만 20년쯤 지난 후 다시 찾았을 때는 건물이나 과거의 자취가 아닌 현재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과 살아가는 모습, 일상에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본다는 것은 단지 그들의 삶을 제삼자의 위치에서 보는 게 아니라 그들 삶 속에 투영된 내 삶을 보는 일이며,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삶을 통해 내 삶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거나 풀길이 없는 문제를 내려놓는 힘을 얻기도 한다고 고백한다.

 

신산한 젊은 시절을 보낸 사제로서 그의 고백은 인간적으로 신학적으로 많은 울림을 준다. 이전과 같이 책에서 어떤 지식을 얻어내겠다고 생각했다면 많은 부분을 그저 흘려보냈을 것이다. 강의록을 책으로 풀어낸 것이라는데 마치 직접 강의를 듣는 것처럼 저자의 온기가 전해져 온다. 잔잔하고 따듯하게 풀어내려간 그의 글만으로도 그의 성품을 짐작할 만하다. 분노와 격동으로 풀어낼 이슈도 적지 않았는데 말이다.

 

내용 중에 하나 바로잡을 것이 있다.

 

저자는 중동이라는 말이 유럽의 시선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유럽의 관점에서 본 극동과 근동의 중간지역을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연구를 위해 그 지역에 한동안 머물면서 그런 관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으며 그러면서 이슬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슬람 달력이 음력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새해는 매해 달라지는데 이슬람은 대체로 8월에 새해를 맞는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슬람에서 사용하는 헤지라력은 일 년이 354일로 그레고리력보다 열하루가 적다. 음력도 일수가 적지만 윤달이라는 장치를 마련해 이를 바로잡는다. 그러나 헤지라력에는 그런 보정 장치가 없다. 그래서 매년 새해 첫 날인 무하람 1일은 매년 열하루씩 당겨진다. 내가 사우디에 부임한 2009년에는 무하람 1일이 12월 18일이었고 올해인 2022년에는 7월 30일이었다. 2042년이 되면 다시 12월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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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 기본 카테고리 2022-09-11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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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공저/이순희 역
생각연구소 | 2013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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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매우 가난하게 자랐다. 넉넉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끼니를 밥 먹듯 건너뛰었다. 그래서 나는 가난을 안다고, 굶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이해한다고, 다시 그런 가난이 닥쳐도 견뎌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난의 구체적인 모습을 맞닥뜨리면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 깨닫는다.

 

가난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저자는 경제학에서 ‘하루 1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상태’를 가난으로 분류한다고 말한다. 오래된 통계이기는 하지만 2005년 기준으로 세계인구의 13%인 8억6,500만 명이 이에 해당한단다. 4인 가족이라면 한 달에 120달러, 고공행진을 벌이는 달러 값을 감안해도 16만 원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그렇게까지 가난할까 싶지만, 사우디 청소 노동자 한 달 급여가 120달러였다. 컨설팅 하던 일 때문에 그들의 캠프를 보게 되었는데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었다. 입찰준비 하느라 빌렸던 버스의 기사는 그보다 훨씬 많은 500달러를 받기는 했지만, 그 중 50달러를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는 집에 보낸다고 했다. 출장기간동안 수고했다고 50달러를 쥐어주니 눈물을 글썽였다. 모두 가난한 주변국가에서 온 사람들이다. 물론 우리 주변에도 가난한 이들이 많다. 그래도 그 정도는 면하지 않았을까?

 

인도 가난한 마을에서 자라난 저자는 가난은 ‘단지 돈이 부족한 상태’에 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난은 인간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게 만들어 가난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가난은 아무리 총명한 사람도 교육 받지 못해 성장할 수 없게 만들고, 운동 소질이 뛰어난 사람도 영양 부족으로 실력을 보일 수 없게 만들고, 뛰어난 사업구상을 가지고도 창업자금이 없어서 시작도 하지 못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책을 선택한 것은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경제학에서는 가난을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의 결과라고 여기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니 그에 반하는 경제학자의 주장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제목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든 것은 모두 특별하거나 개인적인 것이었다. 말하자면 예외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예외적인 사례는 언제든 어디서든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게 마련이다. 제목이 뜻하는 바를 뒷받침할 사례라면 좀 더 일반적인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보다는 가난이 무엇이고 그들은 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설명하는데 거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책의 후반부에 가서야 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기업가로서의 자질을 타고났다. 가난한 사람은 기회를 잡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누구도 생각지 못한 참신한 발상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혁신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타고난 기업가라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신빙성이 없다고 결론짓는다. 결국 제목은 반어법인 셈이지만, 솔직히 말해 낚였다는 생각도 든다.

 

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저자는 경제학에서 빈곤에 대한 연구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많은 연구자들이 가난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가난의 문제가 더욱 악화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나마 경제학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빈곤에 대한 연구의 깊이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경제학자들의 가난의 주체로서 경험하지 못하고 객체로 이해하다 보니 가난을 그저 하나의 현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라며 유감을 표한다. 가난을 경험했다는 내 관점에 비추어 봐도 그렇기는 하겠다.

 

저자가 열거한 사례 따라가 보자.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살면서 생계를 책임진 남성이 병에 걸려 생계가 위태로워졌다. 어린아이들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여성들은 병약한 아기를 낳는다. 오로지 가난해서 어린아이들이 교육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나라가 초등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지만 결석률은 14~50%까지 차이를 보인다. 부실한 건강 때문이기도 하고 (케냐에서는 학교에 구충활동을 시행한 후 결석률이 낮아졌다) 아이들이 학교 가기 싫어하거나 부모가 그런 아이들을 억지로라도 학교에 보낼 마음조차 없기 때문인데, 부모로서는 어린아이들이 벌어오는 작은 소득조차 포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니 그렇다. 중등교육으로 가면 이런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중등학교는 학비도 들고 학교에 갈 10대가 어린아이보다 노동력이 크고 소득에 기여할 기회도 있어서 부모가 포기해야 하는 소득이나 취업경험의 가치가 어린아이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10년 후 자녀의 예상소득을 고려해 돈을 빌려서라도 교육을 시킬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가난한 부모는 자녀가 성인이 된 뒤에야 비용을 상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금 당장 비용이 발생하는 교육에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저자는 가난한 사람은 덜 가난한 사람에 비해 훨씬 위험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설령 같은 강도의 불운이 닥쳐도 그 파장은 더 크다고 말한다. 소비를 줄이는 것은 애초 소비 수준이 낮은 사람에게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평균적인 가정에서 소비를 줄여야 할 경우 휴대전화 사용시간을 줄이거나 고기를 덜 먹거나 아이를 등록금이 저렴한 학교에 보내는 방법을 쓸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필수적인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인도 어느 지방에서는 극빈층 가정 가운데 45%가 성인의 식사량을 줄여야 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불운으로 임금이나 소득이 감소하면 사람들은 일을 더 많이 하려 든다. 하지만 이런 반응은 오히려 문제를 키운다. 경기가 나쁠 때 가난한 노동자가 모두 일을 더 많이 하고 싶어 하면 경쟁이 심해져 임금이 하락한다.

 

저자가 열거한 사례 중 인도네시아에서는 한 사람이 중병에 걸리면 그 가정의 소비가 20% 감소했고, 필리핀에서는 주민 간의 연대가 위중한 질병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았는데 입원비나 치료비가 대체로 비싸서 작은 도움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위중한 질병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가난한 가정을 몰락으로 밀어 넣는다. 의료혜택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우리나라에서도 은퇴자들이 서민의 삶에서 빈민의 삶으로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가 위중한 질병이라고 하지 않은가.

 

가난한 사람은 채무불이행 우려 때문에 융자를 얻기도 어렵고 융자를 얻어도 높은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 대출금을 제대로 회수하려면 대출자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확인해야 하고 대출한 이후에도 계속 대출자를 주시해야 하는데, 이때 소요되는 비용은 대출금 규모에 비례하지 않을 뿐 아니라 대출금이 적을수록 소요비용은 상대적으로 커지고 결국 이율이 높아진다. 이율이 높아지면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다시 이율에 전가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며 이율이 폭발적으로 높아진다.

 

어떻게 하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가?

 

저자의 주장과 열거하는 사례를 따라가다 보면 가난을 벗어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처럼 보인다. 오죽하면 우리나라에서도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고 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불과 몇 십 년 만에 원조 받은 나라에서 원조국으로 탈바꿈했다. 그런 사례를 보면 원조가 선순환에 시동을 걸어 빈곤을 퇴치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한 사례라는 점을 감안하면 원조가 독자적인 해결을 막고 관련 기관을 부패로 몰아넣어 오히려 기반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동기부여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해할만 하다. 하지만 저자는 그 원조가 없었다면 재앙으로 이어져 괴멸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며 원조를 옹호한다.

 

저자는 교육을 제대로 받는 것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교육을 받지 않거나 교육의 질이 낮은 것은 부모의 관심 부족 때문이며 이는 현실적인 이득이나 수익이 낮기 때문이므로 실제로 교육이 주는 이득이 늘어나면 국가가 간섭하지 않아도 취학률은 높아진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젊은 여성을 고용하는 아웃소싱 콜센터가 들어선 이후 3년이 지나자 다섯 살부터 열한 살 사이의 여자아이 취학률이 5% 높아졌고 체중도 늘어났다. 부모들이 여자아이를 가르치는 것이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여자아이를 돌보는 데 전보다 많은 투자를 했다는 말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재학기간이 1년 늘어나면 임금이 약 8%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는데 이는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와 비슷하다고 한다. 수입의 증가로 이어지는 효과 뿐 아니라 말라위에서는 여자아이들이 학업을 지속한 덕분에 10대 임신율이 낮아졌고 케냐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결국 교육받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사업을 유치해 인력 수요를 늘이고 더불어 공급도 늘어나게 만들어야 된다는 것인데, 교육받은 노동력이 없는 지역에 과연 그런 사업장을 유치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인지 모르겠다. 내게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쟁으로 들린다.

 

저자는 인도의 거대 IT기업 인포시스가 자격이 없는 사람도 언제든 찾아와 능력을 테스트해볼 수 있도록 상설 테스트 센터를 마련한 사례를 인용하는데, 이곳에서는 교과서 암기능력이 아니라 사고력과 분석력에 초점을 둔 테스트를 진행해 결과가 좋은 사람은 일단 훈련생으로 발탁하고 훈련 성적이 좋으면 정식 직원으로 채용한다. 저자는 이 시스템을 교육체계의 허점 탓에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는다고 매우 긍정적으로 표현하지만 과연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에서 그 일을 감당할 업체가 나타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이런 의문에 대해 저자는 좋은 정치, 좋은 정책을 그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정치가 올바르면 좋은 정책은 저절로 출현하고 반대로 정치가 올바로 서지 않으면 좋은 정책을 입안해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부패는 빈곤의 덫이다. 빈곤은 부패를 낳고 부패는 빈곤을 낳는다는 말이다. 부패는 물론 단순한 직무유기도 엄청난 비효율을 낳는다. 교사와 간호사가 수시로 결근하는 상황에서 교육정책이나 의료정책이 제대로 실행될 수 없다. 과적차량을 운전하는 화물차 운전자에게 뇌물을 받고 눈을 감아주면 망가진 도로를 건설하느라 들은 수십억 달러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데 정치가 올바르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게 좋은 정치가 아닐까? 그러면 지금까지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나라는 정치가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인데, 그 올바르지 못한 정치는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저자는 1980년대 중국 사례를 인용하며 비록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아도 민주주의를 도입했을 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1980년대 초 중국 농촌지역에 마을 단위의 선거가 도입되었다. 초기에는 중국공산당이 후보를 직접 지명했기 때문에 대개는 별다른 변화 없이 공산당 지부가 지명한 서기들이 마을의 행정을 맡았다. 더구나 무기명 투표를 보장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투표함에 조작된 표가 투입되는 일도 있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절차상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개혁은 마을 대표의 책임감이 강화되는 등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마을 단위의 선거를 시작한 이후 마을 대표는 한 자녀 정책 증 주민의 반발이 큰 중앙정부 정책을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저자의 결론에 이르다 보니 허탈하기까지 하다. 교육과 정치를 정상화시키지 않고는 가난을 탈피할 수 없다는 말인데, 나는 가난을 탈피하는 일보다 교육과 정치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더욱 어려울 것 같아 보이니 말이다. 저자도 그런 결론이 미진했는지 아래와 같은 글을 덧붙였다만, 그것도 허망하기는 다르지 않다.

 

“현실적으로 정치적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거대한 문제에 대해 거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주변으로 눈을 돌리면 제도와 정책을 개선할 여지는 많다. 모든 사람이 각자 처한 상황 및 환경을 심사숙고하면 부패나 근무 태만 때문에 왜곡될 여지가 없는 좋은 정책과 제도를 설계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나지만 일단 자리를 잡아 탄력을 받으면 꾸준히 발전해 나간다. 이것이 바로 조용한 혁명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않는다.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그 방안이라는 것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로 여겨진다. 가난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왜 좀처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정도를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다. 사백 여 쪽에 달하는 책을 읽은 결과로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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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들을 떠나게 만들었는가 | 기본 카테고리 2022-09-02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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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교회를 떠나는 사람들

이혜성 저
북오븐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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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있었던 ‘공공신학과 한국교회’라는 특강에서 이 책 이야기를 들었다. 교회를 떠날 생각을 해본 일은 없지만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교회를 떠날 사람이 생기겠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그런 사람이 많다는 기사도 적지 않게 읽었다. 이 책의 내용 중 강의에서 인용된 ‘교회를 떠나는 이유’ 대부분도 그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기독교 출판사에서 오래 일해 온 저자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었으나 이미 교회를 떠난, 혹은 떠날 생각으로 잠시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여덟 사람을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해 책으로 엮었다. 인터뷰이로서 저자의 의도가 질문 내용에 녹아들어 있기는 하지만 저자는 인터뷰한 내용을 그대로 전할 뿐 거기에 대한 어떤 해석도 붙이지 않는다. 섣불리 자기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독자 스스로 의미를 찾게 만들었다는 것인데, 이 책을 찾아 읽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그런 저자의 해석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선택은 지혜로웠다.

 

최근 적지 않은 교회와 교인들의 행태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서 기독교는 이미 사회의 신뢰를 잃었다. 신뢰를 잃은 집단의 구성원들이 그 집단을 떠나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고 탓할 일도 아니며 오히려 당연한 결과이다. 어쩌면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모습은 교회가 안고 있는 빙산 같은 문제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인터뷰에 참여한 여덟 사람은 모두 모태 신앙인으로 그 중 다섯 사람이 목회자이거나 목회자의 가족이다. 물론 이 비율이 교회를 떠나는 이들의 구성을 대표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지 않은 목회자나 그 가족이 교회를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이런 현상이 비단 일부 교인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면에서 충격적이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하나같이 교회에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칭하는 목회자들을 보면서 ‘자유를 박탈당한 노예’  모습이 과연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인지 회의한다. 끊임없이 죄책감을 심어주는 설교에 피로를 느끼며 그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어 한다. 세상의 빛이 되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세상에 나가 빛으로 살기보다는 교회의 여러 프로그램에 묶어 두고 그것을 신실한 것으로 여기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급기야 교회가 사회인으로서 교인의 삶에는 무관심하고 교인을 단지 도구로 인식해 더 많은 몫을 감당해주기만 요구한다며 비난한다. 사람에게 선악까지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느꼈다면 그런 교인이 교회를 떠나는 건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교회가 여러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교인들의 더 많은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과 무관한 ‘부흥’이라는 그럴듯한 명목의 ‘성장’에 치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지치는 건 교인뿐이 아니다. 인터뷰에 응한 목회자들 모두 과중한 업무 때문에 가장 집중해야 할 성경 연구와 설교 준비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충을 토로하며, 그것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한다. 그런 상황에서 목회자의 자기 성숙이나 성찰을 기대하는 건 애당초 가당치 않은 일이다. 그러다 보니 세상을 막 사는 사람들이나 저지를 법한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는 목회자가 도처에 널려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이 책에서 인터뷰에 응한 사람의 과반이 목회자라는 게 놀랄 일은 아니다.

 

목회자가 자기 성숙과 자기 성찰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성장우선주의’ 때문에 목회자의 자질과 소양이 떨어졌다면, 그런 목회자가 교인의 반론을 허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반론을 감당할 역량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부끄러운 모습을 카리스마라는 허울로 가리려 든다. 목회자의 설교가 예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거기에 감정을 자극해 교인을 분위기에 몰입시키는 찬양이 거들고 나선다. 그러다 보니 교인이 예배 중에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인터뷰에 응한 몇몇은 이와 같은 목회자 중심의 예배가 아닌 예전이 강조된 예배를 경험하면서 비로소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성공회에 출석하거나 성공회 예배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데, 내가 오랫동안 출석하던 장로교회를 떠나 루터교회로 옮긴 데는 그런 영향도 적지 않았다.

 

오래 전에 교회는 시대를 앞서 갔다. 여성을 사회로 이끌어 낸 것도 교회였다. 그런데 지금 교회는 사회 어느 곳보다 여성을 차별한다. 여성의 희생을 바탕으로 교회 공동체가 유지되는데도 불구하고 여성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길 뿐 아니라 여성을 그저 출산의 도구쯤으로 여긴다. 그러면서도 여성에게는 아무런 권한을 주지 않는다. 여성 목회자에게는 보조적인 역할만 맡길 뿐이다. 여성 목회자가 외면 받는 상황에서 그런 보조적인 자리라도 얻기 위해서 목사 안수를 포기한다고 증언한 이도 있었다. 한국교회에서는 지금도 여성 목회자들이 목사 안수를 허용해달라고 청원하는 시대착오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와 같이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교회를 떠난 한 가지 이유라면 다른 한 편으로는 기독교 교리 자체에 대한 회의가 자리 잡고 있다. 성경의 폭력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이며,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기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며, 축자영감설이나 천지창조 기사를 있는 그대로 믿어야 할 것인지 수없이 고민했지만 결국은 답을 얻지 못해 교회를 떠난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매우 조심스럽게 과연 예수가 신의 아들로 이 땅에 온 역사적 존재인지, 예수가 유일한 구원자인지 회의하며 예수가 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내비친다.

 

나 역시 오랫동안 교인으로 살아오면서 수없이 그런 질문에 부딪쳤다. 다행히 그런 질문 때문에 신앙 자체가 흔들린 적은 없었고, 지금은 ‘성경은 역사서가 아니라 신앙고백서’라는 나름의 정리된 생각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지금은 정리됐지만 언제 어떤 질문이 또 다시 불거질지 모른다는 말이다. 나는 교리로 통칭되는 성경 자체에 대한 회의는 신앙을 건강하게 만드는 바람직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바람직한 과정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질문을 가능하게 만드는 관용의 정신과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안내자가 필수적인데, 그런 일을 감당할 준비가 된 교회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이 교회를 떠나게 된 이유로 여럿을 언급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이 그들이 교회를 떠나게 된 진정한 이유인지는 본인도 잘 모르는 건 아닐까 싶다. 모태신앙으로 살아온 이들이 한두 가지 이유로 교회를 떠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이런저런 이유가 쌓이고 어느 날 그것이 한계점을 넘기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떠난 건 아닐까, 그러다 보니 정작 자기가 교회를 떠날 결심을 하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는 건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의아한 게 하나 있다. 교회를 떠난 이유가 하나 같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이고, 교회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찾을 수 없다. 교회에서 있었던 ‘공공신학과 한국교회’ 특강에서 최경환 선생은 한국교회가 사회의 신뢰를 잃은 것은 사회가 교회에 기대하는 것과 교회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말하자면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았고 그래서 교회가 사회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인데, 왜 그런 고민은 이들이 말한 교회를 떠난 이유에 들지 않았을까? 그들 역시 그런 점도 이유가 되었을 테지만 피부에 와 닿는 이유부터 열거하다 보니 놓친 것이 아닐까 애써 합리화 해보지만, 아쉬운 마음까지 지워지는 건 아니다.

 

나는 자기 신앙으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폄훼하고 적대시하는 종교는 기독교 말고 본 일이 없다.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인들의 무례함에 늘 몸 둘 바를 모르고 살았다. 신앙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무례함이 혐오를 넘어 이제는 차별을 정당화하기에 이르렀다. 무슬림을, 난민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을 오히려 신실한 것으로 여긴다. 과연 그런 혐오와 차별이 여기에 그칠지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전에는 교회가 사회를 선도한다는 평가를 받았고 무엇보다 교인에게는 최소한의 도덕적 기대치가 있었다. 아내와 교제를 시작했을 때 아내는 교회 근처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그런 이유로 기독교인인 나를 (내 실상과는 관계없이) 후하게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것’일 뿐이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게 아닌지 모르겠다. 정말로 한국교회가 예로부터 지금까지 쭉 그런 모습이었다면,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도 기적이 아닌가. 진즉에 없어졌어야 할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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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길 | 기본 카테고리 2022-08-2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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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공공신학으로 가는 길

최경환 저
도서출판 100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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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공공신학과 한국교회라는 특강이 열렸다. 공공신학이라는 말이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미루어 짐작컨대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강의는 최근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공공신학이 한국교회에서 생겨난 독특한 신학인 것은 아니었다.

 

강의를 맡아 수고했던 저자는 한국교회가 대중의 신뢰를 잃은 것은 사회가 교회에 기대하는 것과 교회가 핵심가치로 여기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강의 말미에 누군가 사회에서 교회가 약자를 돕고 선을 베풀기를 기대하는 것을 이해하지만 그것이 꼭 교회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다. 말하자면 그것이 교회의 본질은 아니지 않느냐는 항변인 셈인데,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본질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저자의 대답이 몹시 궁금했다. 늘 들어오던 논리였고, 그것이 나를 옥죄어온 족쇄였기 때문이다. 답은 기대 이상으로 명쾌했다. 그것이 예수께서 이 땅에서 하신 일이고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자와 저자가 연구하고 있다는 공공신학에 관심이 생겼다. 저자가 쓴 책을 찾았고 꽤 긴 시간을 들여 읽기를 마쳤다. 안타깝게도 이 책은 내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공공신학에 대한 많은 신학자들의 담론을 소개하며 그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아울러 소개한다. 밑줄 친 부분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읽어봤지만 내게 그 내용을 따라갈 능력이 없다는 것만 확인했다. 그래서 저자가 소개하고 인용한 부분은 건너뛰고 이를 바탕으로 이끌어낸 저자의 주장에 초점을 맞췄다.

 

한국교회에서 신실한 사람으로 여기는 기준은 저자가 말한 대로 도적질 하지 않고,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힘을 다해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것만 해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저자는 그 모습을 자신을 갈등에서 보호하기 위해 거기까지를 한계로 설정함으로서 공공성을 임의로 포기했다고 비판한다. 다행히 그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조금씩 생겨나고는 있지만 아쉽게도 시민사회에서 복음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작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나 연구가 많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논의가 공공신학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한국교회의 현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90년대로 넘어오면서 교회는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했다. 교인이 줄어들고 사회에서 교회의 역할과 위상이 위축되었다. 불행하게도 교회는 그 원인을 외부에서 찾았다. 사회가 좌경화되면서 소수자들의 인권문제가 부각되고,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이 기승을 부리고, 이슬람과 종북세력이 득세하고, 그것이 교회의 위축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교회는 이와 같은 것을 물리쳐야 할 적으로 구체적으로 지명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만들어 갔다. 그 결과 교회는 공정 가치와 공적 영역에서 점점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대중의 수준과 의식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나 비상식적인 행동을 되풀이했으며, 급기야 사회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로 전락했고, 이와 같이 교회의 박탈감이 깊어지면서 발언의 강도는 더 높아졌다.”

 

저자는 이런 모습이 비단 한국교회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늘날 세계 기독교는 두 가지 생각으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데, 하나는 성경과 기독교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 사회 문화와 정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교회 안에서 새로운 대안을 만들고 기독교적 가치와 도덕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하나는 이보다는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밝힌다.

 

이 사회를 더욱 정의롭고 평화롭게 만드는 것이 기독교윤리의 가장 우선적인 과제라고 나는 확신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교회에서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할 과제는 진정한 의미에서 교회가 되는 것, 바로 섬기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 현실화하는 사람들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직접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교회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이야기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신실하게 살아내고 증언하는 것으로 사회를 섬긴다. 분열된 사회에 새로운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전략이나 계획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신실한 이야기를 살아내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진정한 교회가 된다는 것은 사회를 거부한다는 것이 아니고, 사회로부터 물러나라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교회가 사회를 섬기되 그 자신의 방식으로 섬겨야 한다는 뜻이다. 두려움이 아닌 신뢰가 삶을 지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공동체가 되는 방식으로 말이다.”

 

나는 저자가 진단한 것처럼 교회가 대중의 신뢰를 잃은 것이 사회가 교회에 기대하는 것과 교회가 핵심가치로 여기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라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그렇게 된 원인은 핵심가치가 잘못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강성호는 그의 저서 <한국 기독교 흑역사>에서 한국교회가 타락의 길을 걷게 된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1910년 전후로 조직을 정비하기 시작한 한국교회는 1920년대에 이르러 제도화의 길을 걷게 된다. 조직에는 대체로 두 가지 메커니즘이 작동하는데 하나는 조직의 자기 존속을 위한 유지 메커니즘이고 다른 하나는 조직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성취 메커니즘이다. 문제는 유지 메커니즘이 강해질수록 성취 메커니즘은 후퇴해 목적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수단이 목적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유지 메커니즘이 과잉되면서 제도화된 교회를 지키고 성장 확장하는데 온 힘을 다하게 된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조선총독부의 지배체제로 편입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교회 부흥이라는 유지 메커니즘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야할 성취 메커니즘을 앞서다 못해 괴멸시켜버렸다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약자를 돕고 선을 베푸는 것이 꼭 교회여야만 하느냐는 질문이 나오는 게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핵심가치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에서 교회 부흥으로 바뀐 것이다.

 

나는 평생 교인으로 살면서 남 못지않게 교회에 헌신했다고 생각했다. 십 수 년 한국교회를 떠나 있으면서 자신이 헌신했던 일을 돌아보니 그것은 교회의 본질과 무관한 것이었다. 강성호의 정의를 빌리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야할 성취 메커니즘을 잊고 교회 부흥이라는 유지 메커니즘에 매몰되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나서 귀국하면서 모교회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잘못을 깨달았으니 바로잡아야 하는데 모교회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고, 그렇다고 남은 시간을 그 일에 진을 뺄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기독교 고유의 전통과 신앙의 언어를 상실하면서까지 세상과 소통하고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사회의 언어로 번역된 복음이나 세속적인 언어로 전환된 증언을 굳이 기독교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묻는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리라.

 

저자가 꼬집은 대로 나는 교인으로 살면서 그 질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약자를 돕고 선을 베푸는 것이 꼭 교회여야만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이 궁금했다. 저자는 그에 대해 가부를 말하지 않고 단지 예수께서 이 땅에서 하신 일이고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라고만 말했다. 생각해보니 교회의 본질을 그보다 더 선명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민주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 다양성과 평등은 교회가 지향하는 가치와 상충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지적은 참으로 옳다. 저자는 그런데도 교회는 이런 가치를 증진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방해하는 집단이 되었다며 질타한다(고 읽었다). 모교회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또 다른 문턱이었다. 그러던 중에 교회가 차별금지법 반대를 선언했고, 그것으로 그 문턱을 수월하게 넘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저자를 교우로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저자가 공들여 소개한 공공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아쉽고 민망하다. 겨우 이해한 것을 정리하자면;

 

세계적으로 공공신학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이 공공신학을 정의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니 평신도인 내가 이해 못하는 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공공신학은 시대가 요청하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한 학문이다. 공공신학은 공적 삶 속에서 교회의 위치와 사회적 형식, 그리고 사회 속에서 교회의 역할을 주로 다룬다. 공공신학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라는 정치사회적 조건 속에서 교회가 공적 삶에 어떻게 관여하고 영향을 끼치는지를 연구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탐구한다. 무엇보다 교회가 다원화와 세속화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공적 삶을 형성해야 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공공신학은 시민들이 공적 토론이라는 방식을 통해 공론을 만드는 과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기구들을 향해 비판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고 궁극적으로는 공동선과 인간의 번영을 증진하려 한다. 이는 서구 민주주의가 이상형으로 상정한 합리적 의사소통을 전제하고 있다. 공공신학은 일반적으로 민주주의 가치와 이념을 증진하고 도모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나아가 민주주의가 추구하고 이루고자 하는 목적에 공조하고 의제를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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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속살 들여다 보기 | 기본 카테고리 2022-08-20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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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러니까, 영국

윤영호 저
두리반 | 2021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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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영국은 동화 속의 나라였다. 황금마차 타는 여왕이 계시고, 근위병 교대식이 열리는 왕궁과 해자로 둘러싸인 고성이 있고, 메리 포핀스가 우산 타고 날아다니는 곳이었다. 출장길에 몇 번 들르고 아내와 여행으로 며칠 머무르기는 했지만 겉으로 드러난 아주 작은 부분을 보았을 뿐이다. 아내와 런던 여행을 계획하면서 안내 책자를 외우다시피 했어도 거기에서 영국의 속살을 볼 수는 없었다. 잠깐 잠깐 업무로 만난 영국인들에게서 받은 느낌이라고는 생각보다 영국식 영어가 쉽지 않았다는 정도. 딱히 특징이라고 할 만한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윤영호 선생께서 페이스북에 올리는 <런던라이프>는 영국이 낯선 내게 영국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안내서가 되었다. 그냥 읽고 넘기기에는 아까운 글이라고 생각했는데 작년 여름에 책으로 나왔다. 아쉽게 전자책으로는 나오지 않아 이제야 읽게 되었다. 윤영호 선생께 언제 전자책이 나오느냐고 물어보니 시간이 좀 걸릴 거라면서 굳이 사우디까지 책을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사우디 형편에 언제 배달될지도 모르겠고 책을 그냥 받아보는 것도 예의가 아니어서 뜻만 감사히 받았다.

 

저자는 책을 발간하면서 제목을 <여왕은 위로하고 권력은 겸손하며 개인은 자유롭다>로 정할 생각이었다. 저자가 말한 대로 제목으로 쓰기엔 너무 길고 독자의 관심을 끌기도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왜 그런 제목을 생각했는지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것이 책의 골격이자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저자의 정의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카자흐스탄에서 법인을 운영했던 저자는 길을 걷는 개인에게 불시에 신분증을 요구하는 카자흐스탄이 있고, 신분증 자체가 없는 영국이 있으며, 그 사이 어딘가 우리나라가 있다는 말로 책을 시작한다. 그리고 영국에서 개인은 얼마나 자유로운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을 이어나간다.

 

읽다 보니 카자흐스탄과 영국의 중간 어디쯤 있다는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많은 카자흐스탄보다는 신분증이 아예 없다는 영국이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신분증 없이 투표할 수 있다니! 신분증 없이 투표할 수 있는 나라라니 관공서 출입할 때도 항공기 탑승할 때도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는 건 오히려 당연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민주주의의 발상지라는 영국에서 투표의 원칙을 깨고 대리투표를 허용한다는 점이다. 가족은 인원수에 관계없이 대리 투표할 수 있고, 가족이 아닌 경우는 두 명까지 대리 투표가 가능하다. 이해하기 몹시 어렵지만 굳이 이해하자면 이는 자유의 차원이 아니라 신뢰와 존중의 차원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 아닌가 한다.

 

저자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로 대표되는 영국의 복지국가 모델은 개인의 자유를 철저히 요구하는 대신 정부에 요구하는 것도 최소화하는 영국의 자유방임주의 정서에 배치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경제적 붕괴를 맞은 가정이 많아지면서 국민의료보험연금실업수당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해 영국은 명실 공히 복지국가로 올라선다. 세월이 흘러 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나자 대처 수상은 복지국가 모델이 영국의 자유방임주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노동자의 강력한 반대를 물리치고 이전의 상태로 돌려놓는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으려면 정부에 요구하지 말라는 것인데, 내가 아는 한 대처 수상은 시종일관 이런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민주주의의 중심에 영국의 마그나카르타와 휘그당토리당이 있었다. 지금은 보수당과 노동당 양대 정당이 영국 정치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저자는 이 둘 사이의 간격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왕당파 귀족과 상류층으로 구성된 토리당(보수당)과 의회파 평민으로 구성된 휘그당(자유민주당)이 경쟁하다가 20세기 들어서면서 휘그당이 소수당으로 전락하고 그 자리를 노동당이 채웠다는 것이다. 찾아보니 1900년에 창당된 노동당은 1920년이 되어서야 보수당과 함께 양당으로 자리 잡았다. 기나긴 영국 민주주의 역사로 보자면 신생정당인 셈이다. 그 사이에 우리나라는 주류 정당만 해도 수십 개에 이르는데 말이다.

 

영국인들이 정치인의 추문을 대하는 태도는 그저 엄격하다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딱히 법을 어긴 것도 아니고 사생활에 지나지 않는 일로 사임하는 걸 보면 엄격한 게 맞는데, 꼼짝없이 사임하겠구나 싶은데도 큰 문제가 되지 않고 넘어가는 걸 보면 기준이 뭔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저자는 거짓말보다는 위선을 더 큰 수치로 여기는 영국인의 특성을 전한다. “거짓말에는 좋은 거짓말 필요한 거짓말이 있지만 위선에는 좋은 위선도 필요한 위선도 없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렇게 까다로우니 대중의 눈에 나지 않으려면 권력이 겸손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겠다.

 

한동안 왕실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분위기가 바뀌었는지 그런 뉴스가 잘 보이지 않는다. 여왕을 왜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많은 영국인들이 사랑한다기보다는 보고 싶다던가, 왕실을 볼 때마다 왠지 자기 자신이 격조와 품격이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던가, 여왕과 왕실 때문에 국민이 통합되어있다고 대답한단다. 여왕이 없으면 외로울 것 같다거나, 여왕은 돈과 권력과 무례함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왕실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를 통틀어 저자는 여왕을 돈으로는 살 수 없고 가질 수도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영국인들의 이런 시선은 여왕이기 때문에 비롯된 것은 아닐까? 국왕이 남성이라면 격조품격보호를 느끼게 하는 대상으로는 어울리겠지만 사랑그리움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대상이라고 하기는 조금 어색하지 않은가? 저자도 요즘 들어 왕실 폐지 여론이 잦아든 것 같다고는 하는데, 여왕이 떠나고 찰스 황태자나 윌리엄 왕자가 즉위해도 그런 정서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내가 일하던 현지법인에 인도 직원이 가장 많았고 파키스탄 직원이 뒤를 이었다. 두 나라가 상극이어서 함께 일하면 안 된다는 상식을 이미 직원들을 같은 현장에 보내놓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다행히 큰 마찰은 없었다. 사우디에는 한때 인도 사람이 이백만 명이 넘기도 했다. 인도 사람이 일하고 있지 않은 분야가 없다는 말이다. 그들에게서 뭔가 협조 받을 일이 있을 때 인도 직원들을 통해 접촉하려했지만 생판 남인 내가 접촉하는 것만큼도 진전이 되지 않았다. 말하자면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인도 커뮤니티의 영향력은 규모와 어울리지 않을 만큼 작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파키스탄 사람들은 서로 간에 아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비단 중동에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저자는 인도 사람과 파키스탄 사람이 여러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한다. 인도 사람은 학업성적도 높고 소득도 높을 뿐 아니라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은 반면에 파키스탄 사람은 학업성적이나 소득이 인도 사람보다 크게 낮으며 소규모 자영업자가 많단다. 그리고 이 차이가 종교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한다.

 

파키스탄 사람은 무슬림으로 온전히 이슬람의 가르침을 따라 생활한다. 반면에 인도 종교인 힌두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삶의 형태에 가깝다. 파키스탄 사람은 무슬림 문화를 고수하려다 보니 영국 문화에 융화되지 않고, 자연히 자신들만의 네트워크에 갇혀 있다. 반면에 인도 사람은 힌두 문화를 갇혀 있지 않기 때문에 영국인들과 교류를 꺼리지 않으며, 그 결과 영국 문화에 쉽게 동화되고 영국 사회에 구성원으로 쉽게 녹아든다.”

 

이런 차이가 학업성적의 차이, 소득의 차이로 이어지는 건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고, 이런 격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벌어지면 벌어졌지 좁혀질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잘 알려진 것처럼 영국은 월드컵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네 팀이 출전한다. 영국은 축구의 모국이라는 이유로 국제축구연맹에서 네 지역 축구협회가 각각 가입하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것이 각 지역 간의 역사적 적대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그렇다면 네 지역은 서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적대적이라는 말이 아닌가. 하긴 스코틀랜드 독립 때문에 시끄럽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브렉시트 때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국경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고도 하더라마는.

 

영국에 가서 하고 싶은 일이 몇 가지 있다. 교외 한적한 고성에서 하룻밤 묵어봤으면 좋겠고, 하이드파크에 도시락 바구니 들고 가서 자리 펴놓고 느긋하게 책을 읽어보고 싶고, 무엇보다 런던의 음악을 즐기고 싶다. 런던에 갈 때 짧은 일정 속에서도 공연장을 빼놓지 않고 찾았다. 하지만 웨스트엔드 무대의 <미스 사이공>은 표가 없었고, 코벤트가든과 로열앨버트홀에서는 공연이 없었다. 언제 한 번 로열앨버트홀에서 열리는 프롬스 축제를 보러 가겠다고 벼르고는 있는데, 런던이 앞뒷집도 아니고. 그런데 이번 달 <월간 객석>에 실린 노먼 레브레히트 칼럼에서 올해 프롬스 축제가 마지막일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그 칼럼에서 BBC 방송 측은 프롬스 축제를 방영하는 BBC 4채널의 송출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BBC 산하 여섯 개 오케스트라에게 독자 생존 방안을 요구했다고 전하고 있었다. 프롬스 홈페이지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고 다른 곳에서도 딱히 그럴 사정을 짐작할 만한 기사도 찾지 못했다. 부디 무탈하게 잘 해결되기 바랄 뿐이다. (‘프롬스 축제에서는 로열앨버트홀에서 여름 8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최고 수준의 클래식 공연 무대가 펼쳐진다. 객석은 좌석 5,400석 입석 1,500석이며 관람료는 7천 원이다.)

 

국경을 마주한 나라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경우가 없단다. 비록 국경이 직접 맞닿아있는 건 아니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소문난 앙숙이다. 저자는 영국은 얄타회담과 포츠담회담에 참석하려는 드골을 끝내 저지했고, 프랑스는 영국이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하려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했다며 양국의 앙숙관계를 설명한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몇 나라의 독특함을 이렇게 표현한다.

 

천국에는 영국 경찰관과 프랑스 요리사와 독일 수리공이 있고, 지옥에는 독일 경찰관과 영국 요리사와 프랑스 수리공이 있다.”

 

영국에는 풍부한 콘텐츠와 자유가 있고, 프랑스에는 세련된 예술의 품격이 있으며, 독일에는 높은 삶의 질과 효율성이 있고, 이탈리아에는 감탄할만한 화려한 역사가 있다.”

 

유럽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듣고 보니 그럴 법도 하다. 그나저나 저자는 영국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속속들이 알고 있는지 읽으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치와 사회제도 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거의 백과사전식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정치와 사회제도는 저자의 전공분야이니 그렇다고 쳐도 관심만으로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그만큼 이해하고 있는지 놀랍다. 덕분에 편하게 앉아서 짧은 시간에 영국이 지닌 속살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저자의 <런던라이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 조만간 이의 속편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런데 저자가 이것이 영국이다할 만한 장면을 한두 컷 고른다면 어떤 게 될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 여기를 보지 않으면 영국을 보았다고 할 수 없다, 뭐 그런 곳이나 그런 모습? 그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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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증언 | 기본 카테고리 2022-08-17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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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윤영호,윤지영 저
'ㅁ'(미음) | 202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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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전한 다음에 태어나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평안도 안주에서 혈혈단신으로 내려오신 어머니 때문에, 그리고 1983년 6월 이산가족 찾기 첫날부터 외가 식구들을 찾으면서 이산가족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었다. 그렇기는 해도 직접 전쟁을 겪지 않았으니 전쟁에 대한 생각은 늘 피상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사우디에서 근무하던 2014년 일어난 예멘 전쟁은 올 4월에 휴전에 합의한 이래 아직도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몇 년은 대낮에 리야드 상공에서 미사일 격추되는 소리가 자주 들려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는 정도가 되었다. 전쟁터에 있었던 건 아니지만 전쟁 한복판에 있기는 한 것이다. 그러니 여느 한국인에 비해서는 전쟁에 예민한 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전쟁에 예민하게 만든 건 미사일 격추되는 모습이 아니라 신문에 여과 없이 실리는 적나라한 살육현장의 사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끔찍한 현장 사진을 있는 그대로 언론에 보도하지 않는다. 취지는 충분히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생각이 피상에 머무르는 게 아닌가 싶다. 예전에도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살육현장의 적나라한 사진을 보면서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비록 전쟁터에서는 떨어졌지만 전쟁 소식이 일상이 된 곳에 살았으니 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하는 자세가 여느 사람들과 같을 수 없었다. 전황을 챙겨보고 배경에 대한 분석 기사를 찾아 읽었다. 그러다 페이스북에서 윤영호 선생께서 올리는 우크라이나 소식을 만나게 되었다. 윤 선생께서 오랫동안 <런던라이프>라는 제목으로 페이스북에 올리는 ‘다방면에 걸친 영국의 모습’을 관심을 가지고 챙겨보고 있던 중이었다. 알고 보니 한국인으로서는 드물게 오랫동안 러시아어를 사용하며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국가에서 사업을 해오던 러시아 전문가였다.

 

그렇게 올린 글이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는 윤영호 선생께서 부인이신 윤지영 선생과 함께 우크라이나 여성 17명을 인터뷰한 내용이라고 알아듣고 전쟁의 고통과 전쟁에 대한 우크라이나인들의 생각을 날것으로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받아보니 인터뷰 대상에 피해당사자인 우크라이나 여성 뿐 아니라 그들을 돕는 다른 국가의 여성, 전쟁의 영향권 안에 있는 주변 국가의 여성, 그리고 러시아 여성까지 포함하고 있다. 두 분 저자께서 이들의 증언을 통해서, 아울러 러시아가 벌이는 선전선동의 허구를 지적하는 관련 인사들의 진술을 통해서 우크라이나인들이 겪는 고통 뿐 아니라 전쟁의 배경, 그리고 러시아의 논리와 주장이 얼마나 기만적인 것인지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쓸 때마다 매번 내용을 너무 많이 공개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저자와 출판사에 결례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부담이 있다. 사실 리뷰는 누구 보라고 쓴다기보다는 읽은 것을 잘 이해하고 가능하면 기억하기 쉽도록 정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중요한 내용은 빼놓지 않고 담으려고 한다. 아무튼 저자께서 이 책이 팔리는 것보다 읽히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고 밝혔으니 읽으면서 중요하게 여긴 부분을 편안한 마음으로 정리하고 느낌을 덧붙이려 한다.

 

전쟁의 고통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어머니에게서 피난 내려올 때 이야기를 들으면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이 어땠을까 싶은 생각에 마음이 아리다. 떠나는 자식도 발걸음이 쉬 떨어지지 않겠지만 보내는 부모 마음만큼이야 하겠나. 이 책의 주인공들이 집을 떠나올 때도 다르지 않다. 그저 자식을 안전한 곳으로 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만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임에도 별일 없을 거라며 다시 만나자는 말로 자식을 다독여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렇게 떠나온 곳이 낯선 곳일 때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이미 다녀간 곳이라고 해도 느낌은 같을 수가 없다. 미혼의 직장인 나탈리아는 런던에 여행 왔을 때 매 순간을 사진으로 남겼지만 난민으로 찾아와서는 한 달이 넘도록 단 한 장도 찍지 않았다고 한다. 외국에서 사는 사람을 ‘구명줄도 없이 허공을 걷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이도 있다는데, 여행객도 아니고 난민으로 찾은 외국에서의 삶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고단했겠나. 물론 난민이 되어도 살아지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리듬체조 선수였던 리디야처럼 아이폰을 손에 들고 고급 선글라스를 머리에 얹고 다니면서 안정적인 삶을 누리던 사람이 그 삶에 적응하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닐 것이고, 짐작할 수도 기대를 걸 것도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그들을 옥죄고 있을 것이다.

 

나탈리아는 직업센터에서 정부보조금을 받으러온 난민 취급을 받으면서 크게 낙심한다. 그것이 사실인 것을 머리로는 인정하지만 마음으로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변호사 지망생인 루드밀라는 자기가 얻을 수 있는 정규직 일자리는 가사도우미 정도라면서 과연 자기가 유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며 살 수 있을지 염려한다.

 

가족을 떠나보내고 남은 사람은 남은 사람대로 공포 속에서 지낸다. 루드밀라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사이렌은 대피하라는 신호였지만 그 자체로 공포였다고 말한다. 폭탄이 예고 없이 떨어지더라도 차라리 사이렌이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한다. 직장에서 휴식 시간에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했지만 전쟁이 시작된 후로 오히려 초조하게 커피를 마시는 것이 싫었다고도 한다. 내일을 알 수 없다는 초조함과 커피의 평온함이 가져오는 극명한 대조가 싫었기 때문이다.

 

이웃 국가의 조건 없는 도움

 

이들을 통해 접하는 이웃 국가들의 도움은 기대를 뛰어넘는다. 아니, 기대를 뛰어넘는 정도를 넘는다. 우리로서는 엄두도 내기 어려운 규모가 그저 놀랍다.

 

“폴란드 정부는 모든 난민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대중교통을 무료로 제공하고,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모든 지역에 지원센터가 있어 난민들은 그곳에서 밤을 보내며 필요한 옷과 음식을 얻는다. 영국은 영국 정부에서 메일로 보낸 특별입국허가서로 입국할 수 있다. 이후 6개월간 체류하면서 집과 직장을 찾고 정식 절차를 밟아서 3년짜리 비자를 받는다. 런던에 난민으로 도착한 나타샤는 영국 정부로부터 한 달에 200파운드를 받고 나타샤에게 집을 내어준 영국 여성 아만다는 생활지원비로 350파운드를 받는다. 주민이 난민에게 주택을 제공하겠다고 하면 영국 정부가 난민이 거주할 독립공간이 충분한지, 보안은 문제가 없는지, 집주인이 혼자 사는 남자는 아닌지, 난민의 노동력을 착취할 여지가 있는지, 집주인이 범죄기록이 있는지 확인해 이를 통과한 가정에만 난민을 배정한다. 절차가 워낙 까다로워 중도에 지원을 철회한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처음에는 무려 20만 가구나 신청했다. 라트비아는 지금까지 난민을 26,000명 받았다. 1/3은 라트비아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숙소를 제공하고 라트비아 정부는 나머지 숙소와 최저생계비를 지원하고, 대중교통도 무료로 제공한다.”

 

“리디아가 파리에 도착하자 모든 교통편이 무료였다. 파리-런던 유로스타도 무료였고 런던 안에서 교통편도 무료였다. 모든 사람이 친절해 불쾌함을 느끼지 않았다. 영국인은 거주지 증명이 있어야만 개설할 수 있는 인터넷 은행 계좌가 우크라이나인은 여권만으로 개설할 수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Help Ukraine를 검색하면 각 지역마다 우크라이나를 돕는 조직을 찾을 수 있다. 루드밀라는 자기를 받아준 영국 가족이 바르샤바-런던 항공권을 보내주기도 했다.”

 

이는 국가의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든 시민이 공감하고 협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우리에게 난민을 받아야 할 상황이 생긴다면 과연 어느 수준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난민이 생긴다면 그것은 북한 주민일 수밖에 없는데, 이들과는 달리 그들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고 늘 통일을 꿈꾸는 형제 아닌가. 당연히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 이상이 되어야 할 것인데, 나는 그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북한이 남한을 괴멸시키는데 굳이 무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고 그저 난민 십만 명만 내려 보내면 된다는 소리가 들릴까.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는 법이다. 이웃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왜 우크라이나인가?

 

저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NATO가 동쪽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겠다는 미국과 러시아 합의사항’의 실체를 파헤친 <Not One Inch>의 저자이자 미국의 정치학자인 ‘메리 엘리스 사로티’ 존스홉킨스대학 교수와 터키의 정치학자인 ‘아나르 소문쿨로’ 하제테페대학 교수를 인터뷰한다.

 

사로티 교수는 문제가 된 ‘Not One Inch’ 사안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990년 2월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이 독일 통일에 대해 논의한다. 베이커는 소련이 독일 통일에 동의하고 동독에서 물러나면 NATO는 동쪽으로 1인치도 확장하지 않겠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고르바초프는 좋은 생각이고 나중에 더 논의해보자고 반응한다. 이는 구두로든 문서로든 합의된 것도 아니고 어느 한쪽의 공식 문서로 남지도 않았다. 베이커는 돌아와 부시 대통령에게 설명하지만 부시는 일언지하에 거부한다. 부시는 필요하다면 유럽 안정을 위해 NATO가 독일을 넘어 확장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미국으로서는 소련에서 요청하지도 않은 것을 먼저 약속할 필요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푸틴이 주장하는 전쟁의 명분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문쿨로 교수는 러시아가 흑해에서 지중해로 진출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을 기울여왔고, 그 때문에 지중해 진출 관문인 보수포루스해협과 다르다넬스해협을 품고 있는 터키가 불안을 느껴 NATO에 가입했고, 정치적으로는 EU에 군사적으로는 NATO에 가깝게 있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압박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압박에 무릎을 꿇을 만큼 만만한 국가는 아니었다. 옛 소련 연방국가 중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다음으로 경제 규모가 크고 인구도 러시아 다음으로 많다. 우크라이나에 소련 군수산업시설의 1/3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만한 경제적 문화적 유인을 가지고 있지도 못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없다. 그러다 보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자국이 지향하고자 하는 미국이나 서구의 대안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서구와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러시아로서는 경쟁 대신 전쟁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뜻밖의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소련연방의 해체가 러시아의 의사와 무관하게, 아니 러시아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소문쿨로 교수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이유로 러시아가 소련연방의 해체를 주도했다고 말한다.

 

“러시아는 소련연방이었을 때 (지금은 다른 국가로 분리된) 저개발 지역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러시아인들이 더 이상 그런 역할을 원하지 않았다. 다른 지역들이 소련연방에 착취당했다고 생각하듯 러시아인들도 자기들이 소련연방에 착취당했다고 생각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는 결코 러시아와 다른 나라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같은 민족이고, 수백 년 동안 한 번도 다른 국가였던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터뷰에 참여한 모든 우크라이나인들과 주변 국가의 사람들도 이를 격렬하게 부정한다.

 

“러시아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과 친러세력은 분명히 따로 구분해야 한다. 러시아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돈바스 사람 중에 러시아와 가까워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크라이나인은 어느 언어를 사용하든 유럽을 동경했고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으며 유럽적 가치를 지향한다. 자신을 러시아인으로 여기고 러시아와 병합을 생각한 사람들 대부분은 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를 가진 노인들로 그 숫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다른 역사 다른 문화를 갖고 있다. 이제 러시아어를 사용하던 우크라이나인들은 대대적으로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 애널리스트 다리야 마르첸코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이고 러시아는 러시아일 뿐이다. 우리는 전혀 같지 않다. 같은 러시아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동일 문화권이라고는 할 수 없다. 소련 지역에서 러시아어는 세계 곳곳에서 쓰이는 영어와 마찬가지다. 영어를 제1언어로 사용한다고 서로 문화가 같은가?” - 갤러리 관장 리자 게르만

 

“우크라이나는 300년 동안 사실상 러시아의 식민지였다. 그 세월동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화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독립된 민족이 아니라 러시아 민족의 일부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이것이 300년 동안 지속되어온 프로파간다이다.” - 전직기자이자 저격수 올레나 빌로제르스카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는 별개로 존재하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동의어가 아니다. 서로 잘 이해하고 있는 각각 별개의 슬라브 민족 국가들인 것이다. 비슷한 뿌리와 고통의 역사가 있지만 그것은 역사일 뿐이다. 각 국민들은 자신들의 나아갈 방향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 벨라루스의 반전시위자 소피아 마로자바

 

“라트비아 인구 25%가 러시아계사람이고 러시아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30% 정도이다. 2012년 러시아어를 두 번째 공용어로 지적할 것인지 국민투표에 붙였지만 반대 75%로 부결됐다.” - 라트비아 올림피언 자네 스쿠지나

 

당사자와 주변국의 전쟁에 대한 시각

 

러시아의 침공을 정당화하는 것은 푸틴만이 아니었다. 우크라이나인과 친분이 있는 러시아인들도 기회가 될 때마다 푸틴을 옹호하고 푸틴의 논리를 되풀이했다.

 

“러시아 친구들은 내게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은 우크라이나 국민을 상대로 한 전쟁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국민을 파시즘과 네오나치즘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이라면서 왜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것을 러시아의 침공이라고 하느냐고 비난했다. 심지어 그들은 너희 때문에 우리가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며 오히려 우리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왜 우리 책임인가? 그들은 모두 20대 초반으로 뉴스만 보는 것이 아니라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도 본다. 그런데도 그런 주장을 서슴지 않는 걸 보면서 어쩌면 저 사회는 처음부터 열린사회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 변호사 지망생 루드밀라

 

그러나 우크라이나 주변의 벨라루스, 라트비아,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물론 러시아 사람마저도 한 목소리로 러시아 침공을 지지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증언하며 러시아 침공에 반대하지 못하는 자국 정부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린다. 이 전쟁으로 말미암아 러시아의 위협을 실감하거나 러시아에 대한 생각을 바꾼 이들도 있다.

 

“(러시아 침공에 동조하는) 벨라루스 여권은 일종의 낙인이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 벨라루스 여권으로 도움을 청할 수 없다. 나라 안에서는 안전하지 않고 나라 밖에서는 필요한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주변에서 러시아 침공에 동의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나처럼 자신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내세우다가 감옥에 갇힌 사람은 1,500명이 넘는다. 벨라루스 정부는 정부의 이익이 아닌 국민의 이익에 부합되도록 전쟁의 공범이 되기를 거부했어야 한다. 이에 대한 책임은 정부와 대통령 뿐 아니라 이런 정부를 선택하고 변화를 요구하지 않고 침묵했던 국민들 모두에게도 있다.” - 벨라루스 반전시위자 소피아

 

“우리 세대는 어머니 세대와 달리 러시아에 나쁜 감정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의 위협을 매우 가깝게 느끼게 되었다.” - 라트비아 올림피언 자네

 

“내 생활 반경 안에서 러시아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카자흐스탄인은 보지 못했다. 내 친구들은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거나 평화를 지지한다. 카자흐스탄 언론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크게 보도하지 않는다.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고 감정을 싣지 않고 객관적으로 보도한다. 올해 1월 카자흐스탄에서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일어났고 시위 중에 수백 명이 사망했다. 카자흐스탄은 공동안보조약기구에 평화유지군 파병을 요청했고 러시아는 병력을 보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게 고전하자 카자흐스탄에 파병을 요청하지만 카자흐스탄은 이를 거절한다. 공동안보조약기구는 외부 침략을 받거나 내부 소요가 발생했을 깨 공동 대응하는 것이지 회원국이 다른 나라를 침략했을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명분을 들었을 것이다.” - 카자흐스탄 글로벌기업 회사원 알리야

 

“런던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음악가 다섯 명이 모여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평화음악회를 러시아 문화센터인 푸쉬킨 하우스에서 열었다. 영국에 정착해 안정적인 삶을 살던 러시아인들은 위축되었고 전쟁을 일으킨 조국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 안나

 

예상과 달리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지쳐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러시아가 많은 사람을 죽이고 난민으로 만들면서까지 얻으려는 것이 돈바스라면 차라리 그곳을 떼어주고 다시 그들 얼굴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오고, 러시아는 결코 약속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러시아와 약속하는 것은 전혀 쓸모가 없다며 평화를 대가로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를 포기하는 것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설마 돈바스를 포기하자는 것이나 어떤 희생도 감수하자는 주장이 그들의 진심이기야 하겠는가. 더 이상 희생을 지켜볼 수 없다는 말이고, 내 나라 내 땅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자기 다짐이 아니겠는가.

 

러시아 국민의 책임

 

러시아가 국민의 동의를 얻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러시아 국민들의 찬반이 어느 정도인지 밝혀진 것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은 푸틴 결정에 대한 찬반에 관계없이 러시아 정부 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이 전쟁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많은 사람이 푸틴이라는 한 사람에게만 반인도적인 범죄에 대해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것은 심각할 뿐 아니라 의도된 잘못이다. 푸틴이 오랫동안 거짓말 하는 것을 방관하고 받아들이고 소비한 러시아 사회 전체에 잘못이 있다.” - 작가이자 정치인 마리아 마티오스

 

“함께 운동했던 러시아 체조선수가 전화로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고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 전쟁에 침묵하는 모든 사람들은 공범자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들과 이야기 나눌 일은 없을 것이다. 푸틴을 지지하는 사람과 침묵하는 사람은 모두 똑같다. 러시아 국민 대부분이 푸틴을 지지하든 그 안에 침묵하는 다수가 있든 내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 리듬체조 선수 리디아

 

“푸틴 독재 아래에서 러시아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지금 일어나는 전쟁은 2022년 2월에 시작된 것이 아니고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차지했던 2014년에 예고된 것인데, 그로부터 8년간 러시아 국민은 침묵했다. 그리고 푸틴 정권의 독재와 외부 침략에 관용을 베풀었다. 푸틴 혼자서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고 지금 푸틴을 만든 것은 러시아 국민이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지난 10년간 독재와 싸워 민주국가를 만들었다. 러시아 정부에 항의하지 않고 침묵한 모든 사람은 공범이다.” - 갤러리 관장 리자 게르만

 

러시아 국민에게는 뼈아픈 지적이자 비난이겠지만 그들도 나름 할 말이 있지 않겠나. 런던에서 반전 음악회를 연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 안나도 “많은 러시아 국민이 정부의 선전선동에 길들여져 러시아 정부를 옹호하거나 두려워서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침묵한다”며 곤혹스러운 입장을 밝힌다. 하지만 그조차도 지난 10여년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독재와 싸워 민주국가를 만드는 동안 러시아 국민들은 뭐했느냐는 지적에는 답변할 말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러시아 정부 뿐 아니라 러시아 전체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살피던 중에 매우 독특한 견해를 접하게 되었다. 푸틴의 주장이 러시아 문학의 흐름과 결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러시아 문학이 푸틴의 공범이라는 놀라운 주장을 펼치는 이도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에는 전쟁과 큰 힘에 대한 숭배, 외국인 혐오, 작은 나라 비하, 러시아 우월성에 대한 찬미가 녹아 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은 인간 중심의 문학이 아니라 제국 중심의 문학이다. 그 속에서 국가는 항상 개인보다 중요하다.” - 작가이자 정치인 마리아 마티오스

 

“러시아 문학은 푸틴의 공범이다. 러시아 문학은 국가로서 러시아가 가지는 제국주의적 야망이 중심이 되고 개인의 존엄과 자유와 책임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문학에도 크건 작건 식민주의적 관점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제국주의의 야망이 쇠퇴한 이후에는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일어났다. 하지만 러시아 문학은 그런 성찰 없이 여전히 국수주의적이고 이웃 국가에 대한 오만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소련 붕괴 이후 강력한 탈식민주의적 담론을 만들어낼 책임이 러시아 지식인에게 있었지만 그들은 어떤 공헌도 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전쟁에 대한 죄책감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뿐이다. 러시아 사회는 실질적으로 자율의 경험이 거의 없었다. 러시아 차르의 억압과 스탈린의 공포정치와 푸틴의 독재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사회는 가혹하고 부당하며 수직적이고 가부장적인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러시아는 죽을 때까지 자유를 위해 싸우는 대신 새 주인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했다. 결국 한 사회가 가져야 할 존엄성과 품격을 갖추지 못했다.” - 부록으로 실린 젊은 남성 작가 루브코 데레쉬

 

문학에 대한 소양이 없을 뿐 아니라 러시아 문학에 대해서는 백지나 다름없으니 내게 이를 판단할 만한 역량이 없다. 러시아 문학을 연구하고 계신 김희숙 선생께 견해를 부탁드려볼까 싶다.

 

마치며

 

인터뷰 대상 18명 중에 부록으로 실린 작가 루브코 데레쉬를 뺀 17명이 여성이고 그 중 8명이 우크라이나인이다. 하지만 성별이나 국가에 상관없이 하나같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고 있다. 인터뷰 중에 러시아를 지지하는 우크라이나인도 있다는 증언이 나오지만, 아쉽게도 직접 그런 의견을 밝힌 사람은 없다. 물론 이 책에 실린 견해가 압도적 다수일 것이며, 이 책이 우크라이나인의 고통을 생생하게 전하는 데 초점을 맞춘 만큼 이에 반하는 기사는 사족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의 시선이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책 첫머리에서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고심 끝에 제외했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인터뷰 대상자의 목소리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옮기겠다던 다짐이 무위로 돌아간 것을 무척 아쉬워한다. 데이터를 모으고 그것을 분석해 보고서로 만드는 것이 생업이었던 사람으로서 데이터를 배제하는 것은 늘 풀기 어려운 숙제였다. 객관성을 담보하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자가 밝힌 사례는 감정이 격해져서 옮기기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짐작컨대 책에 수록된 내용은 인터뷰 내용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저자 나름의 선별의 초점과 우선순위가 있었을 것이다.

 

잠깐 스쳐 지나가듯 언급된 내용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라트비아 올림피언인 자네 스쿠지나는 “독일이 국방비를 늘리고 군사력을 강화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언급한다. 나는 독일의 군비강화는 일본의 재무장 시도와 결이 다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런 발언이 무심히 넘어가지지 않는다.

 

기회가 닿는다면 저자 내외분께 이런저런 궁금증에 대한 의견을 구해볼까 싶다. 이 책이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의도에 용기를 너무 얻었는지 전례 없이 리뷰가 길어졌다. 논문 하나를 끝낸 기분이다. 그런데 끝까지 읽을 사람이 있기나 하려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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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문장가 김인선 | 기본 카테고리 2022-08-13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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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

김인선 저
메디치미디어 | 2019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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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지만 한 직장에 사십 년을 몸담을 수 있다는 건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그 정도면 평생 양지 바른 곳에서 산 축에 들지 않겠나. 그러니 그렇지 않은 삶을 산 사람들을 이해하는 건 피상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나와 다른 상황에 놓인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좋은 교육을 받고 수준 높은 잡지를 만들었지만, 사람 많고 시끄러운 곳을 싫어할 뿐 아니라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겼으며, 영감(inspiration)이 없다는 이유로 그런 회사를 금세 그만둔 사람이 있다. 마흔이 넘어 그 좋던 집안이 쫄딱 망해 경기도 산자락으로 옮겼지만 타고난 낙천가인지라 괴로운 생활에서도 나름 즐거움을 찾았다. 오페라 해설지 번역으로 푼돈을 벌고 온라인에서 필명으로 글을 썼다. 그러니 곤궁을 벗어나지 못했고, 이름을 얻지 못했고, 그렇게 무명인 채로 서둘러 세상을 떠났다.

 

어떻게 해서 이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의 글이 극히 일부 사람들에게만 알려졌지만, 그의 글을 알고 있는 모두가 그를 뛰어난 문장가로 인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어가면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화자이자 주인공인 그의 글은 일상을 담은 신변잡기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줄거리가 없으니 반전을 찾아볼 수도 없고, 문장이 특별히 빼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신산고초를 겪은 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가진 이들이, 재능 있는 사람이 그 재능을 펼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한 벗들이 그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그의 유고집을 낸 것이 아닌가 싶었다.

 

글 말미에 중학교 때 그를 만난 이후 곁에서 때로는 떨어져서 그를 지켜본 친구의 회고가 실렸다. 아마 유고집 출간을 주선한 이가 아닌가 싶다. 자기가 김인선을 기억할, 김인선에 대해 글을 쓸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글을 쓰노라고 했다.

 

영화평론가 김대현이 쓴 회고의 일부이다.

 

♣♣♣

 

<뿌리 깊은 나무>의 발행인이 한창기라는 인물이었고 우리 전통문화를 아끼고 사랑했던 그를 만나면서 그는 모든 면에서 크게 성장했다. 이 잡지사를 삼 년 정도 다녔는데 이 기간 동안 자신의 글을 완성하고 문체를 확립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난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의 대화의 절반은 여자였고 그의 머릿속 암흑물질의 절반도 여자였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그의 평생 주제였다. 그러나 탐구의 대상일 뿐 사랑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가 여신으로 떠받들던 여자의 시작은 이탈리아 가수 마리사 산니아였고, 그가 중국어를 공부한 것은 장만옥을 짝사랑해서였다. 그는 사랑 없이, 사랑을 느껴도 부정해버리고 섹스에만 몰두하는 극단적인 탐욕주의자였다. 그는 세속적인 모든 것을 경멸하면서도 섹스는 좋아했다. 섹스홀릭에 가까웠고 그는 그런 자신을 곤혹스러워하기도 하고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섹스를 관장하는 호르몬의 과다분비가 원인이었으리라고 잠정적으로 결론 내렸고 그에게 호르몬을 의심해보라고 말하기도 했으나 과학으로는 입증하지 못하고 가설로만 남았다.

 

그는 자신이 계몽주의자라고 자주 말했다. 대화 도중 지적 우월감에 교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야기가 재미있어 늘 들어줄만 했다. 화제는 어느 정도 시차를 두고 주기적으로 변했다. 그의 지적 호기심은 집요해서 한 번 관심을 가지거나 의문을 품으면 끝을 보아야 했다. 이제는 백과사전식 지식이 필요 없는 세상이라도 핀잔을 주곤 했는데도 그는 지식 자체보다도 그것을 깨우치면서 느끼는 기쁨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해 그 ‘깨우침의 기쁨’을 포기하지 못하고 평생 공부만 했다. 성 프란치스코는 그가 평생 가난을 택한 중요한 계기였으며 영감의 원천이었을 것이다. 그는 늘 후회하면서도 평생 가난한 쪽을 택했지만, 구도자와 같은 삶을 21세기 현대 한국에서 구현하는 일로 그가 얼마나 불화를 겪었을지 상상하기 싫다.

 

그는 인터넷사이트에 글을 올리면서 그곳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의 글 대부분은 이 시기 사오 년에 걸쳐 쓴 것이며, 이때 가장 왕성하게 글을 썼다. 그럼에도 글쓰기를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은 것은 글쓰기가 최종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글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거나 유명해지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사라져가는 것을 사랑했다. 활짝 핀 꽃보다 시들어 말라가는 꽃과 풀을 더 좋아했다. 소멸하는 것의 아름다움, 생명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며 그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그의 글은 깊이가 무궁하고 아름답다. 문체의 독창성은 글에 담긴 생각과 잘 반죽되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문장은 군더더기가 없어 버릴 것이 하나 없다. 표현은 정확하고 기발하며 활기가 있다.

 

이제 나는 우리 시대 최고의 문장가로 김인선을 꼽는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글쓴이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솔직한 글. 나는 이제야 김인선에 이르러 우리 시대의 문장이 완성되었다고 주장한다.

 

♣♣♣

 

김대현의 아주 절제된, 그러면서 행간마다 김인선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한 회고를 기억하며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로소 김인선의 삶과 문장과 해학으로 풀어낸 그의 신산한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글을 쓰는 시간보다는 써놓고 다듬고 덜어내는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린다. 없어도 뜻이 통하고 의도를 전달하는데 문제가 없는 부분은 망설이지 않고 들어낸다. 그렇게 들어낼 것을 다 들어내 글은 무엇보다 읽기가 편하다.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는 소리 내어 읽어보면 안다. 군더더기가 많은 글은 편하게 읽히지 않는다. 내 글 뿐 아니라 남의 글도 그런 기준으로 읽는다. 그렇게 다시 읽은 김인선의 문장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문득 김훈이 <칼의 노래> 첫 문장을 쓸 때 고민했다던 지점이 떠올랐다. <칼의 노래>는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한다. 김훈은 처음에 “꽃이 피었다”가 아니라 “꽃은 피었다”로 적었고, ‘은’이 ‘이’기 될 때까지 담배 한 갑을 태웠다고 했다.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시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시계를 진술한 세계인데, 자신은 사실만 가지런히 챙기는 문장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인선 역시 조사(助辭) 하나도 고민하고 골랐겠구나 싶었다.

 

그는 글 곳곳을 따뜻하고 아름다운, 그러나 이제는 잊힌 우리말로 채운다. 선뜻 쓰기 어려운 ‘놈’이나 ‘년’을 수시로 구사하는데도 글이 흉해지지도 않고 망가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신산한 삶으로 인한 고통과 횡포를 부리는 인간에 대한 적개심을 해학으로 풀어낸다. 그래서 독자가 거부감 없이 그의 적개심에 동조하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을 추어주는 김인선 모친의 한 마디에 으쓱해 선심 쓰듯 빈 땅을 빌려주는 ‘어깨 위에 돼지대가리를 얹은 놈’이나, 모친이 그 땅에 애써 가꾼 텃밭을 빼앗아 자기 식당 손님들이 쓸 족구장으로 만들어버린 ‘북어대가리’가 혹시 내 자신이 아닌지 돌아보게 만든다.

 

부족함 없이 자랐고 고급문화에 익숙했던 그는 버스에서 내려 일곱 시 넘으면 사람을 마주칠 일이 없는 길을 삼십 여분이나 걸어야 하는 곳에 살았다. 그래서 그의 글이 사람 사는 이야기보다는 풀이며 꽃이며 나무 이야기, 벌레와 산새와 산짐승 이야기로 가득 찬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김대현이 말한 대로 그의 글은 기발하고 활기가 있다. 그는 그가 겪는 우울증을 ‘아무래도 세상에 괜히 태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고름이 되어 해골 속에 가득 고이는 증상’으로 정의하고, 발병 원인도 밝혀지지 않고 쓸 만한 치료제도 개발되지 않은 이 병을 “산기슭에 문득 피어난 꽃, 어리 참새들이 지절대는 소리, 적막한 숲으로 비끼는 낙조, 저녁 빈산의 까마귀 소리, 비 오는 날 아침 오리 우짖는 소리, 달밤에 말랑말랑한 처자의 가슴, 공으로 생긴 현금 다발”로 치료한다. 그러면서 맨 뒤의 두 가지 처방이 단기처방으로는 최고이며, 싸구려 소주도 약간의 도움이 된다고 덧붙인다. 이렇게 자신을 주당으로 여기게 만들어놓은 그는 “지난밤에 소주를 무려 세 잔이나 마시는 만행을 저질렀다”며 이를 ‘기발하고 활기 있게’ 뒤집어버린다.

 

그렇기는 해도 자기 연민과 회한을 아주 떨쳐버리지는 못한다. “나는 사람이 많은 곳과 시끄러운 곳이 싫다. 서울에서 나올 때마다 감옥에서 탈출하는 기분이다. 저런 지랄 맞은 곳에서 태어나 사십 년을 산 나 자신이 신기하기만 하다.”며 자신이 겪은 신산한 삶을 에둘러 표현한다. 그리고 “아름답고 벅찬 순간을 생각할 때마다 한편으로는 아아 가엾은 우리 어머니! 이런 세상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골몰하는 또라이를 사람 만드시느라 그 애를 쓰다가 아무 보람 없이 돌아가셨구나” 하며 국외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자신을 돌아보고 울적해 한다.

 

그는 ‘오페라 해설지 번역’으로 푼돈을 벌었다. 그가 글에서 인용한 “음악에 대한 기호만큼 그 사람의 계급을 확인시켜주는 것도 없으며 자신의 교양과 지적 과시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도 없다.”는 부르디의 말처럼 푼돈을 벌게 만든 ‘오페라 해설지 번역’이 그의 출신 성분과 누렸던 사회적 계급을 짐작하게 만든다. 그런 문화적 배경이 있었으니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고집했을 것이다. (우리 때는 ‘서강대학교’라는 이름과 ‘철학과’라는 이름이 막연하지만 앞선 문화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그가 <뿌리 깊은 나무>에서 그의 인생으로서는 상당한 기간을 보낸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김대혀이 회고한 것처럼 김인선도 그 시절을 이렇게 기억한다.

 

“스물 몇 해 전에 이 양반 아래서 세 해쯤 월급을 탄 적이 있다. 사회란 곳이 내게는 예나 지금이나 지겹고 따분하기 짝이 없는 곳이지만, 이제 와서 보면 그래도 그때가 가장 당도가 높은 시절이었다.”

 

아, 내가 김인선을 알게 된 것은 동년배로 그와 함께 <뿌리 깊은 나무>에서 일한 어느 벗 때문이었구나.

 

김인선은 어느 시인을 기억하면서 이렇게 표현했다. “서점에 그의 유일한 시집이 나와 있다. 책값이 삼천 원이다. 삼천 원어치 시를 쓰고 갔구나.” 그의 유고를 모아 펴낸 이 책의 값은 일만 육천 원이다. 그렇다고 그가 일만 육천 원어치 글을 쓰고 갔다고 하지는 못하겠다. 일만 육천 원어치의 글이 보여준 그의 흔적은 ‘김인선의 삶’ 편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이 책을 읽었다고 김인선을 이해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있을 글 탈탈 털어 이 유고집을 마련했을 것이니 그를 이해할 수 있는 다른 근거를 찾을 수도 없을 것이고, 이름이 나지 않았으니 나중에라도 ‘김인선 연구’ 같은 성과로 그가 재발견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막연하게나마 그를 이해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두 번 읽어서 깨달은 그의 진가가 세 번 읽으면 더욱 빛을 발할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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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치 사상 연구 | 기본 카테고리 2022-08-10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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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박정희 평전

전인권 저
이학사 | 2006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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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일어나기 두 달 전에 국민학교에 입학했고 10.26 일어나던 해는 대학 졸업반이었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대통령이 누구인지 알았을 리 없으니 성인이 되도록 대통령은 박정희가 하는 건줄 알았다. 그 사이에 더 가난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하던 살림이 조금씩 나아졌다. 중학교 갈 때는 중학교 학비 낼만큼, 고등학교 갈 때는 고등학교 갈만큼 살림이 나아졌고, 급기야는 가정 형편상 꿈으로 여겼던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를 독재자라고 부르는데 거리낌도 없고 그를 추종하던 사람들마저도 독재를 인정하고 있지만, 당시 우리는 가정 형편이 나아진 것이 모두 대통령 덕분인 줄 알고 살았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빈곤을 탈출하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의 빛에만 머무르던 내 시선이 그의 그림자에까지 확대된 것이다.

 

평전

 

박정희 전기는 어린이용부터 소설까지 상당히 많이 발간되었지만 대부분은 그를 일방적으로 치켜세우거나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사람들이 쓴 것이어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게다가 긍정적인 전기든 부정적인 전기든 그 논지가 이미 알려진 것이다 보니 읽을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얼마 전 <평전>이라는 형태의 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읽을 만한 평전을 찾던 중에 이 책을 만났다. 젊은 정치학자가 박정희 연구를 필생의 업으로 삼고 박정희의 정치사상과 행동을 정치 전기학적 방법으로 조명한 최초의 작업이라는 소개 글에 관심이 끌렸다. 1957년생인 저자는 서울대 정치학과에서 박정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마흔여덟 살이던 2005년 암으로 타계하였다. 김대중과 이중섭에 대한 평전을 썼다. 이 책을 읽고 김대중에 대한 책을 읽어볼까 생각했지만 대통령 취임 이전에 발간된 것이라 김대중을 온전히 담지는 못했을 것이어서 생각을 접었다.

 

가난으로 얻은 외상과 그 영향

 

저자는 처음부터 박정희가 가난으로 얻은 두 가지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그것이 미친 영향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가난을 통해 겪은 ‘배고픔’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가난으로 인해 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얻은 ‘수치심’이었다. 실제로 박정희의 저서 <나의 소년시절>에 먹는 이야기가 상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그런 해석을 뒷받침 한다고 말한다. (이런 면에서 그는 왕족을 자임하는 이승만 대통령이나 권문세가의 후예인 윤보선 대통령과는 결이 다른 사람이었다.) 저자는 박정희에게 있어서 ‘배고픔’이 경제적 물질적 외상이었다면 ‘수치심’은 정신적 정치적 외상이었고, 여기에서 탈피하려는 각오와 그의 권력의지가 어우러진 것이 5.16으로 나타났으며, 훗날 ‘배고픔’은 ‘경제개발’로, ‘수치심’은 ‘자주자립’으로 이어졌다고 해석한다.

 

저자는 박정희는 가난하고 가부장적인 가정의 막내로 자라나면서 ‘심리적 고아’가 되었고, 이런 상태가 가족과 단절로 이어져 가족을 자기를 도와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짐으로 인식하게 되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다 보니 상하관계에는 익숙했지만 횡적인 관계에는 미숙해 상호 신뢰하고 존중하는 가까운 친구가 없었으며 협력해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한다는 개념도 박약했다는 것이다. 박정희가 훗날 부인 육영수를 만나면서 이런 고아 의식이 부분적으로 완화되었는데, 그러니 육영수 사후 정신적 위기를 맞고 몰락으로 이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장교로서의 능력과 태도

 

박정희는 남로당에 가입하여 좌익 활동을 한 전력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고 집행되기 직전에 백선엽의 선처로 풀려났다. 이후 육군본부에서 비공식 문관으로 일하다가 6.25가 일어나면서 육군에 복귀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박정희가 풀려난 것이 백선엽의 선처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데, 2022.07.16 조선일보에서 백선엽의 장녀 백남희가 이를 확인하였다.) 박정희가 남로당 전력이라는 결정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원만한 군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어떤 보직을 맡겨도 임무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판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는 체제정비가 필요한 신설부대 지휘관으로 여러 번 투입되었는데, 그의 뛰어난 능력과 계몽적 태도와 목표달성을 위한 합리적 행동방식과 아울러 공평과 청렴이 인정받은 것이다.

 

5.16

 

나는 그동안 5.16을 치밀하게 계획된 군사작전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5.16이 반공개적으로 추진된 쿠데타라고 말한다. 이미 여러 정보 채널에 노출되어 있었고 불과 3500명 미만의 소규모 부대가 출동했기 때문에 군사적 관점에서 보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쿠데타였지만 여러 상황적 요인에 의해 성공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밝힌 당시 상황은 다음과 같다.

 

박정희는 1961년 4월 10일 4.19 1주년을 계기로 쿠데타 계획의 개요를 쿠데타 진압의 총책임자인 장도영에게 설명했으며, 이 계획을 이한림 1군 사령관도 알고 있었고, 겸찰과 경찰의 수사망에도 올라 있었으며, 미군도 첩보를 입수하고 있었다. 장도영이 쿠데타에 대한 최초의 보고를 받고 병력 출동을 금지시키고 박정희 감시-미행을 지시했으며, 헌병감에게 6관구사령부에 집결 중인 쿠데타 지도자의 체포를 지시했다. 쿠데타가 발발한 직후 어느 누구도 쿠데타를 적극적으로 진압하려 들지 않았다.

 

이와 같은 상황을 바탕으로 저자는 쿠데타의 성공을 단지 몇몇 주동자의 치밀한 계획과 몇몇 책임자의 무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당장이라도 정변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고 그런 정변을 적지 않은 국민들이 오히려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5.16 당시 가난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내 아버지는 뭔가 세상이 뒤집혀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자연스럽게 군사정부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군사정부와 공화당에서 이어지는 보수당을 지지하셨다.

 

산업화의 빛과 그림자

 

박정희의 정책은 집권 초기 수입대체를 위한 경공업 육성에서 출발해 점차 중화학공업 육성으로 옮겨갔다. 그가 중화학공업 육성에 매달린 것은 경제적 차원에서 뿐 아니라 방위산업 육성을 위한 것이었다. 1970년대 초 주한미군 철수와 북한의 거듭되는 도발에 그렇지 않아도 늘 느껴오던 위기의식이 더 심화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화학공업은 저임금과 억압적인 노동정책을 기조로 하는 것이었으며 리스크 때문에 투자를 망설이는 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해 정부가 막대한 특혜를 주었다. 그러다 보니 과잉 중복 투자가 초래되고 부실화되면서 다시 한 번 특혜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중화학공업 정책으로 인해 재벌구조가 정착되고 국가와 자본의 관계가 역전되는 결과를 낳았다.

 

1977~1979년에는 총투자의 80%가 중화학공업에 집중되었다. 이와 같은 과도한 투자로 인해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고, 중화학공업에 지출된 대여금으로 국내 여신 규모가 과도하게 늘어나고, 중화학공업 집중으로 숙련공들의 부족이 심화되어 실질임금의 상승 압력이 가중되었다. 또한 이로 인해 국가가 중화학공업의 담보물로 전락했고, 여기에 1979년 제2차 석유파동으로 인한 인플레로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과 중산계층과 노동자까지 부담이 늘어났다. 특히 봉급생활자의 타격이 컸는데 그간 정치적 요구를 자제하던 이들이 점차 권위주의 정권으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했다. 또한 국가는 국가대로 외교적으로 고립되었다. 유신체제는 국제적으로 명백한 독재체제였기 때문에 국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었고 외교도 극단적으로 위축되었다.

 

저자는 박정희 리더십은 목표를 달성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목표는 상황에 맞춰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항상 초월적인 목표를 제시했고 거기에 대한 찬반토론은 불필요한 것으로 여겼다고 말한다. 목표를 정기적으로 수정 보완하는 장치를 마련했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그 목표를 기한 내에 달성하도록 하는 정책을 구사했으며,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강권을 발동하는데 주저함이 없었고, 가치와 절차를 무시하더라도 목표를 달성하는 게 최우선이었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권력 문제가 개재되지 않을 경우 인사 발탁은 능력 위주로 신속하게 처리했다. 군 출신이었지만 경제적 전문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부처에는 철저하게 민간인을 기용했으며, 자신이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도 민간인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박정희의 목표 지향적 리더십의 결과로 경제가 고도성장을 이루었고 대규모 관료조직이 효율적으로 움직였고 대량생산이 가능해졌지만, 원칙을 벗어난 그만의 리더십 때문에 한국 사회가 목표했던 수준에 이르렀을 때 안락한 복지사회가 건설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육강식이 난무하는 전쟁터로 변했다고 평가한다.

 

통치방식

 

박정희는 내부세력과 외부세력을 나누어 다스렸다. 내부세력인 쿠데타와 집권세력은 당근과 채찍, 분할과 견제 방식으로 다스리되 당근을 더 중요한 자원으로 사용했고, 외부세력인 야당과 국민은 계몽적 태도를 기본으로 유인과 억압을 병행하되 억압을 더 많이 사용했다. 저자는 이러한 통치방법을 사용한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여야와 국민을 초월한 군주라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박정희는 야당 지도자나 그 누구도 자신과 대등한 위치에 있다고 여긴 적이 없으며, 매 상황을 위기로 규정하며 국민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는 자기만이 시대의 임무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상대가 누구든 선생이 학생 다루듯 장교가 부하 다루듯 하는 태도를 취했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힘의 위력을 솔직하게 인정했고 힘이 부족한 것을 부끄러움으로 여겼다. 힘을 아무 때나 사용하지 않고 정확하게 자신의 반대자를 제거하거나 몇 가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사용했다. 대통령이 된 후로는 개인의 힘과 국가의 힘을 구분하지 않고 정권 유지를 위해 사용했다. 개인의 힘과 국가의 힘을 구분하려는 의식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의 사고방식과 정책을 정면에서 거스르고 자신이 추구해온 가치체계를 부정한 김대중을 박정희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는 추종자는 배려했으며 반대자는 탄압했고 중간층에 대해서는 반대자에 대한 탄압을 통해 공포를 조성하므로 복종이나 수동적 지지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스스로 권력을 확대하지는 않았다. 집권세력 내부의 항명이나 야당의 도전이 있을 때 이를 대응하는 과정에서 권력을 확대한 것이다. 그게 누구이든, 국회의 결정까지도, 자신의 뜻과 다른 것을 모두 항명으로 여겼고 그로 인해 생긴 정신적 상처나 훼손된 자존심을 치유하기 위한 방편으로 권력을 확대한 것이다. 특히 항명에 대한 반응은 거의 즉각적이고 과격했다.

 

남북대화

 

한국 정치사에 있어서 손꼽을 수 있는 굵직한 사건으로는 남북대화가 으뜸일 것이다. 남북대화를 성사시키고 후속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해 많은 지도자들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좀처럼 진전을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남북대화와 관련해 상대 정파를 국가반역자로, 반통일주의자로 몰아붙이며 파멸할 때까지 밀어붙이겠다는 극단적인 대립을 보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남북대화는 남북대화 그 자체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술수로 사용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저자는 박정희 당시 남북대화는 닉슨의 중국 방문으로 시작된 데탕트 외교정책의 일환으로 미국이 한국에게 북한과 대화할 것을 종용하면서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어떤 권고를 받았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일성이 미국과 중국의 화해를 적극 활용해 정국 변화를 꾀했다는 증거가 많다는 것이다. 저자는 북한은 군사모험주의로 국방력이 과대하게 강화되면서 경제발전이 심각하게 지체되었고, 더 이상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군사모험주의를 버리고 국제 해빙 무드에 편승해나갔다고 말한다. 따라서 7.4 남북공동성명은 남북한의 의사와 관계없이 추진된 미국과 중국 같은 강대국 화해에 대한 남북한 정권 공통의 능동적 대응방식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박정희가 이것을 정권 안정의 방편으로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애초부터 정권 안정을 목적으로 추진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정치사상

 

박정희는 지나간 역사는 시련과 고난으로 현재는 언제나 위기이자 긴급 상황으로 이해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비상한 각오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고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대통령의 직책 중 무엇보다 우선해 야할 일이 국가의 안전보장이다. 이 책임은 누구에게 위임할 수도 전가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적시에 강구해야 할 책임이 바로 대통령인 나의 일차적인 책임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실제로 1971년 12월 비상사태 선언이나 1972년 10월 유신이 단지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 추진한 것이라면 그렇게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었다. 1975년까지 임기가 보장된 만큼 천천히 상황을 보아가며 조치를 취해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박정희는 과장된 것이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든 안보위기를 과도하게 느끼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집권당에서조차 무리하게 생각하는 일련의 초강경 수단을 구사한 것이다. 저자는 안보에 대한 박정희의 위기의식은 과장된 기만술책이기는 했지만 자신마저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속아 넘어간 것이라고 판단한다.

 

저자는 박정희는 18년 집권하는 동안 정치사상과 패턴은 변한 것이 없었으며 오히려 시간이 경과하면서 그런 경향이 강화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의 정치사상은 심오한 철학적 사색보다는 생존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지적으로 깊이가 있다고 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그 근거로 박정희의 저서 5권은 모두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후기로 갈수록 더욱 폐쇄적인 방식으로 체계화되었다는 것을 든다. 박정희는 다른 이들의 견해를 귀담아 듣거나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저자는 박정희의 정치사상을 다음 일곱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단순하고 통일성이 있으며 상하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정치 공동체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거나 자신을 따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격의 없는 인간성을 베풀었다. 그래서 독재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인자한 정치가로 남을 수 있었다.

 

둘째, 강박적인 역사의식과 위기의식이 깔려 있었다. 그에게 현재는 언제나 긴급 상황이었으며 자신을 그런 긴급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했다.

 

셋째, 엘리트주의에 바탕을 둔 목표 지향적 지도자 중심 사상을 갖고 있었다. 모든 일은 지도자에게 달렸으며, 대중을 신뢰하기보다는 대중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정치가들을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지도자이며 자기만이 진정한 지도자라고 믿었다.

 

넷째, 쿠데타 초기부터 민주주의를 도구 이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서구사상이라고 생각했으며 그 서구사상에 대해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개인과 민족의 행복을 증진시키는데 기여할 수 없다면 상당 기간 유보할 수도 있는 여러 제도 중 하나로 이해했다.

 

다섯째, 어려서부터 힘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힘이 없을 때는 힘에 굴복했고 힘이 있을 때는 꺼리지 않고 힘을 사용했다.  그리고 그 힘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사용했다.

 

여섯째, 궁극적으로 국가주의 사상이었다.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기구의 힘을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민족을 개조하고 국민의 도리를 함양하기 위해 교육적 계몽적 태도를 취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국민교육헌장이다.

 

일곱째, 경제발전과 자주국방을 사상의 차원으로 격상시켰다.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발전이 필요하고 경제발전의 결과로 자주국방을 이루어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였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박정희가 개인이 전체 이익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을 윤리적으로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으며, 이는 개인의 자유를 국가주의의 하부 개념으로 생각한 것으로 해석한다. 말하자면 민주주의 원리보다 공동체 윤리가 우선한 것이다. 박정희는 개인은 국가나 가족 같은 공동체에 윤리적으로 종속된 존재이며 그런 윤리적 의무를 다할 때 개인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국가(大我)는 개인(小我)의 확대된 모습이며 국가로부터 독립된 개인은 인정하지 않았다. 소아는 대아를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것이고 나를 위하는 것이 국가를 위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국가주의적 세계관을 한시도 벗어난 적이 없다.

 

박정희를 위한 변명

 

1917년에 태어난 박정희는 스물아홉 살이던 1945년에 해방을 맞았고, 남로당 전력으로 위기에 처했다가 6.25가 일어나면서 우여곡절 끝에 육군에 복귀했다. 그리고 휴전으로부터 8년 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는 일제강점기에는 교사와 군인으로, 6.25와 휴전 이후에는 군인으로 지냈다. 말하자면 성장과정으로부터 쿠데타를 일으킬 때까지 단 한 해도 민주주의를 학습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런 이유 때문에 그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이해하지도 못했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은 것으로 평가한다. 일제강점기 교사와 군인의 경험 속에서 형성된 국가와 민족, 국가주의적 세계관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박정희를 비판하면서 이 점을 놓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세대를 지나온 사람은 모두 마찬가지였지만 그런 중에서도 민주주의를 구현하려 했던 사람은 있었다. 그러니 그런 세대를 지내왔다는 이유로, 민주주의를 몰랐다는 이유로 민주주의 방식으로 국가를 통치할 수 없었다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박정희처럼 민주주의 방식을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사회 전반에 정착할 때까지 그렇게 오래 시간이 걸린 게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는 저자가 평가하는 것처럼 반민주주의자 비민주주의자라기보다 몰(沒)민주주의자 무(無)민주주의자라고 보는 것이 옳지 않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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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선택이 아니다 | 기본 카테고리 2022-08-10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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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나종호 저
아몬드 | 202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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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언론에서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살 관련 기사 끝에 항상 “우울감이나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을 때 자살 예방 핫라인을 이용해 전문가 상담을 받으라”는 문구가 따라 붙는다. 자살이 사회문제가 될 만큼 증가했다는 반증이고 관련 보도로 인한 부정적 효과를 염려한 언론사 나름의 조치일 것이다. 그런데 “자살은 극단적 선택이 아니다”라는 글로 눈길을 끈 이가 있다. 뉴욕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했고 지금은 예일대 의대 정신의학과 조교수로 있는 나종호이다. 3년 전에 정신의학신문에 쓴 칼럼이었는데, 전문 분야의 신문에 올린 글이었음에도 널리 공유된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자살 생존자들은 대부분 자살 생각에 너무나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했다고 고백한다. 자살을 생각하는 순간 감당할 수 없는 절망감으로 이성이 마비되고 우울감과 불안감이 소용돌이처럼 몰아쳐서 자살로 밀려들어갔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선택지가 없어 죽음으로 밀려들어간 것인데, 그런 사람에게 선택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적절할 수 있냐는 것이다.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친 사람들은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할 것 같지만 저자는 뜻밖에도 그들이 오히려 살아있는 걸 안도한다고 말한다. 자살이 선택일 수 없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자살을 ‘선택’으로 표현하는 것이 ‘자살이 이기적인 것이라는 편견’을 강화한다고 염려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오히려 자신이 짐이 되는 것을 염려해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짐을 덜어주겠다는 생각으로 자살을 시도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자살이 선택일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로 자살 경향성이 우울증, 조울증, 경계성 성격장애 같은 정신질환자나 약물중독 환자에게서 가장 흔하게 나타난다는 사실, 특히 자살을 생각하는 것은 우울증 증상 중 하나라는 사실을 설명한다.

 

결국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정신질환에 좀 더 관심을 두어야만 한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통계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가진 미국인 절반 이상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 그런 경향은 특히 동양인에게서 높게 나타나는데, 이는 동양 문화권에서는 좀처럼 자기감정이나 정신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드러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와 함께 일하던 한 중년 의사는 동양계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가 가족 손에 끌려 정신과 응급실로 오면 무조건 입원부터 시키고 본다면서, 그것은 그들 대부분 버틸 만큼 버티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서야 병원을 찾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종에 대한 편견으로 여겨질 수 있는 표현이지만 저자는 오히려 그것을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통찰로 여긴다.

 

이러한 문화권에 따른 사고방식의 차이는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의 차이로 이어진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인은 18%가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반면 동양계 미국인은 그 비율이 미국인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8.8%에 불과하다. 물론 정신과 진료는 진찰보다는 대화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언어가 장벽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저자는 정신과 치료에 대한 뿌리 깊은 동양 특유의 낙인과 편견이 원인인 것으로 판단한다. 실제로 동양인 대다수는 정신과 약물처방을 극심하게 거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은 크게 대중의 부정적이고 차별적인 시선과 같은 사회적 낙인, 환자가 대중의 편견과 차별을 경험하면서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여기게 되는 내재적 낙인, 취업에 불이익을 주거나 정신건강 서비스에 예산을 적게 책정하는 것과 같은 제도적 낙인으로 나눌 수 있다. 저자는 형태가 어떻든 모든 형태의 낙인은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나 환자 가족이 치료를 미루거나 받지 않도록 만든다면서 이에 대한 근본적인 변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미국에서는 다행히 이런 현상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데 우리 사회는 아직 그런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미국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과 편견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기는 하지만 약물중독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은 여전하다고 한다. 저자는 대중들은 중독을 여전히 의지의 문제, 도덕성의 문제로 여긴다고 말한다. 흔히 약물중독 환자는 기분을 고양시키기 위해서 약물을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고통스러운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약물을 사용한다. 약물중독이란 몸이 약물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하이재킹(hijacking)으로 표현할 정도로 의지만으로 벗어나기가 힘들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약물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의지부족으로 여긴다. 저자는 당뇨병을 앓는 사람에게 의지로 이겨내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약물중독에 빠진 사람에게 의지로 이겨내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우울증을 앓게 되면 약물중독의 위험성이 두 배로 늘어난다고 말한다.

 

앞서 인용했듯이 우리 언론에서는 자살관련 기사 밑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라면서 연락처를 함께 적어 놓는다. 그게 도움이 될까 싶지만 저자는 어떤 조치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언젠가 정부에서 자살을 예방한다면서 번개탄 판매금지 조치를 내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지만 그것은 실제로 수많은 연구를 통해서 효과가 입증된 강력한 자살예방법이라고 한다. 또한 농약 판매를 까다롭게 하고나서 농촌 자살률이 현저하게 줄어들기도 했다.

 

저자에 따르면 자살하려는 사람이 자살 생각을 떠올리고 나서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평균 10분 정도 걸린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마음속에는 우울과 불안과 공포와 분노가 소용돌이친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는 10분만 견디면 자살의 유혹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자살하려는 사람이 전화를 끊지 못하게 만들어 살려낸 사례가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자살은 끔찍한 일이다. 남아있는 가족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뿐 아니라 자살을 왜 막지 못했냐는 주위의 물음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병으로 죽은 사람을 회고할 때는 그 사람의 살아 있을 때를 떠올리지만 자살한 사람은 그 사람의 삶 자체보다는 죽음에만 초점이 맞춰진다. 가족은 가족대로 떠나간 사람은 떠나간 사람대로 아픔을 겪는 것이다. 저자는 이들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아니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 모두가 그들의 아픔에 관심을 기울이고 공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동정’을 뜻하는 sympathy는 감정(pathy)을 함께(sym) 느끼는 것이지만, ‘공감’을 뜻하는 empathy는 감정을 타인의 안에(em) 들어가서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서 마치 그가 된 듯 느낄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공감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니 공감이란 함부로 입에 올릴 말은 아니다.

 

상대가 겪는 고통과 아픔을 자신이 겪었을 때 우리는 좀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공감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저자는 상대를 향해 마음이 열렸을 때 공감할 수 있고, 노력해서 공감의 폭을 넓힐 수도 있다고 말하며 그 예로 덴마크에서 시작된 사람 도서관(human library)을 소개한다. 이 도서관 역시 다른 도서관처럼 자유롭게 책을 빌리고 반납할 수 있는데, 다른 도서관과 달리 이곳에서는 책 대신 사람을 빌려준다고 한다. 여기에는 소수 인종으로부터 에이즈 환자, 이민자, 조현병 환자, 노숙자, 실직자, 트렌스젠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자원해서 참여한다. 그리고 이용자는 다양한 모습을 지닌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편견을 바로잡고 공감을 키워나간다.

 

저자는 책의 첫 머리에서 정신과 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대중의 낙인과 편견을 가장 효과적으로 줄이는 방법은 낙인이나 차별의 대상이 되는 집단 구성원을 직접 만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낙인과 편견을 줄이는 방법을 제안하는 것으로 자살의 원인과 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책을 시작한 것이다. 자살이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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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 | 기본 카테고리 2022-08-10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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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세상에서 가장 슬픈 청소년의 자살 실태 이야기

유규진 저
북랩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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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자살은 극단적 ‘선택’일 수 없다는 예일대 의대 정신의학과 나종호 조교수의 책을 읽었다. 그는 자살하려는 사람이 자살 생각을 떠올리고 나서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평균 10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10분만 견디면 자살의 유혹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 10분을 견디지 못할 경우 누군가 10분을 견디게 만들면 자살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이어서 그는 어떤 조치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언젠가 정부에서 자살을 예방한다면서 번개탄 판매금지 조치를 내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지만 그것은 실제로 수많은 연구를 통해서 효과가 입증된 강력한 자살예방법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농약 판매를 까다롭게 하고나서 농촌 자살률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도 했다.

 

공교롭게도 그 책을 읽는 중에 ‘SNS 자살예방감시단 단장’이라는 이에 대한 보도를 접했다.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을 하면서 퇴근 후에 고군분투하며 1인 시민단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가 지난 14년 동안 각종 SNS에 올라온 글 중에서 자살 징후를 포착해 구조한 이가 수천 명에 이른다. 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구조 활동을 벌였다는데, 대상을 청소년으로 한정한 것은 아니고 청소년의 SNS 사용빈도가 높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동안 그가 벌여온 구조 활동을 정리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청소년의 자살 실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구조 활동 내용과 활동을 해오면서 알게 된 자살 징후와 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실제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자살 징후를 보인다고 해서 모두가 자살을 시도하는 게 아니고, 그런 상황에서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할 경우 자칫 경찰력을 낭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기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공간에 자살 사이트가 상당수 운영되고 있으며, 개중에는 단속을 피해 해외 서버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자살 사이트에서는 자살 방법에 대한 정보를 얻고 동반 자살할 사람을 찾기도 한다.

 

저자는 자살 사이트뿐 아니라 각종 SNS에 접속해 자살 징후를 보이는 글을 찾는 것으로 구조작업을 시작한다. 계정명이나 대화명, 해시태그에서부터 자살 징후를 찾아내고 글의 내용이나 함께 올려놓은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서도 자살 징후 뿐 아니라 실행 가능성까지 판단한다. 글을 올리는 시간도 놓치지 않고 챙겨본다. 대체로 밤 10시에서 새벽 2시 사이에 올라오는 글이 많은데, 밝기 전에 모두 지우거나 비공개로 돌리기 때문에 누구도 그 사실을 인지할 수 없으며, 그래서 저자는 그 시간에도 잠들지 못한다.

 

이렇게 자살 의심자가 발견되면 그와 관련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그 의도를 파악한다. 사이버 친구가 많으면 실행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고, 해시태그를 많이 사용하면 자신의 계획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어 하는 것이고, 죽음에 대한 글을 과거부터 반복해서 올리면 실행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한다. 이런 방식으로 실행 가능성이 어느 정도 높은지 분류하고, 자살이 임박한 상황인지 실행 시기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인지 또는 자살 결심이 번복될 가능성이 있는지 판단한다. 그런 후에 댓글이나 메시지로 글을 올린 이와 접촉을 시작해 자살을 실행할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실행할 가능성이 높다면 그 시기가 임박한 것인지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지, 번복할 가능성은 없는지 살핀다. 실행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시기를 특정할 수 없다면 바로 신고하지 못한다. 경찰이 출동해도 징후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본인이 그런 일이 없다고 하면 달리 손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저자가 신고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제삼자가 직접 본 것도 아니면서 누군가 자살을 시도하려 한다고 신고했다면 누구든 그 진위 여부나 의도를 의심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경찰에서 저자를 이상하게 여겨 신원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저자 혼자 실질적으로 모든 일을 감당하고 있으면서도 ‘SNS 자살예방감시단’이라는 시민단체로 등록했다고 한다.

 

자살 징후를 보이는 이를 확인하면 저자가 즉각 그와 관련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자살이 임박한 상황에서 자신의 모든 흔적을 지워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그가 누구인지, 어디 사는지, 어떻게 연락을 취해야 할지 특정할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누군가 자살을 시도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 열 명 중 아홉 명은 어떤 형태로든 경고신호를 보낸다. 그렇다고 경고신호를 보내는 이들이 모두 자살을 실행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 죽는다는 내용의 글은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이 올라오는데, 저자는 그 중 상당수가 죽을 마음이 확고하지 않은 상태라고 말한다. 그래서 어떻게 죽을 준비를 했고, 어떤 도구를 준비했는지, 왜 자살하려 하는지, 언제 죽으려 하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경찰에 신고하고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차근차근 주변을 정리하는 사람은 실행에까지 시간이 있을 뿐 아니라 정리 과정에서 심리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고, 실행 가능성은 높은데 주변정리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실행이 임박한 것이므로 즉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저자는 자살을 실행하기 전에 이런저런 형태의 암시를 남기는 건 살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외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스로는 말 못할 사정이 있기 때문이니 대신 연락을 취해달라는 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대화부족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를 비롯한 가족과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그래서 친구에게 털어놓지만 그런 형편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친구는 그저 힘내라는 말만 하고 부모나 학교에 알리지 않는다. 학교나 부모에게 알리는 게 오히려 친구를 괴롭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으로서는 그런 형편에서 내일도 똑같은 일상을 맞는 것이 괴롭고, 그럴 바에야 하루라도 빨리 편안해지고 싶어 하는 것이다.

 

청소년이 자살을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로 학교폭력이나 가정폭력이 으뜸으로 꼽힌다. 가족 사이의 갈등이나, 학교나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거나, 부당한 차별대우가 뒤를 잇는다. 가난하다는 것도 이유에 들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다. 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학교마다 반드시 자살예방을 위한 상담실이 만들어져야 하고 사회에도 그런 상담 기관을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놀라운 것은 학교폭력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피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 역시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학교폭력예방법에 가해자 관리방안도 아울러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 모두가 그런 이들의 아픔에 관심을 기울이고 공감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앞서 인용한 나종호 예일대 의대 정신의학과의 저서에서도 저자는 ‘동정’을 뜻하는 sympathy는 감정(pathy)을 함께(sym) 느끼는 것이지만, ‘공감’을 뜻하는 empathy는 감정을 타인의 안에(em) 들어가서 느끼는 것이며, 그래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동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공감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저자인 유규진 단장의 기사를 소개한 어떤 이는 이 책은 그저 관심 있는 독자가 읽을 책에 그쳐서는 안 되고 자살상담 기관에 비치해놓고 상담가이드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럴 정도로 저자는 이 책에서 실제 경험한 사례를 중심으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내내 안타까웠던 것은 이제 마흔 넷인 저자가 지난 14년 동안 (서른이라는 이른 나이에 이 일을 시작했다) 급여가 수입의 전부인 상태에서 이 일을 온전히 사비로 꾸려왔으며 그로 인해 셋돈을 담보로 소액 대출을 받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저자의 이런 행동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최후의 10분을 견디게 만드는 매우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의 행동으로 살려낸 사람이 수천 명에 이른다지 않는가. 사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그야 말로 ‘사람을 갈아 넣어’ 급한 불을 꺼왔다. 하지만 그런 희생을 바탕으로 꾸려나가기에는 우리 사회가 이미 높은 수준에 올라서있지 않은가. 저자의 값있는 수고와 헌신이 저자의 생활을 염려하게 만들지 않게 되기를 희망한다.

 

글을 쓰고 나서 보니 저자의 신고가 어떻게 자살하려는 사람을 구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미진했다. 저자는 자살이 임박한 사람이 확인되는 대로 서울경찰청 112 상황실에 신고한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저자가 특정한 위치로 출동해 자살하려는 사람을 제지하고 가족에게 돌려보낸다. 저자의 헌신과 경찰의 노고가 수천의 목숨을 구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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