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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론 | 일고십 2019-11-3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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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신이 인간관계를 유지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우 선 순 위.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잘하자. 쓸데없는 관계 신경 쓰느라 소중한 사람 서운하게 만들지 말자. 즉 아내에게 충성하고 부모님께 효도하자. 이것만 기억해도 크게 후회할 일은 만들지 않는다.

 

2.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수정해야 할 부분을 찾아 저자가 이야기하는 원칙과 연관 지어 이야기 해보자.

 

  가장 부족하다고 느꼈던 점은 난 상대방의 이름은커녕 얼굴도 잘 기억 못한다. 미세한 장애가 아닐까 싶을 때가 있을 정도이다. 저자의 말처럼 얼굴과 이름을 기억한다면 더욱 좋은 관계들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더욱 주의를 기울여 노력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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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에서 | 일고십 2019-10-1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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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되는 인간이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다행히 독일은 지속적으로 그 사실들에 대해 사과하고, 잊지 않고 있지요. 그 중 가장 많은 회자 되는 부분은 바로 유대인 학살입니다. 수용소에서 일어난 일들이 많이 전해지면서 더욱 많은 공분을 사게 되었지요.

그런 유대인들은 왜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만 있었을까요? 물론 많은 이들이 탈출을 감행하기도 하고, 반기를 드는 이들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아우슈비츠도 2500명이나 있었다고 하는데) 어째서 수용적인 태도로 그런 부당한 대우를, 심지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그 상황을 묵묵히 감내했던 것일까요? 그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서 잘 지내는 것 혹은 삶을 내려놓는 것 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독실님 설명처럼 유대인들이 겪었던 역사적 시련의 영향이 있을 것이고.

반대로 생각해 그만큼 나치의 일련의 행위들이 명확한 목적과 철저한 계획 하에 철두철미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2. 저자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 누구든 삶을 살아야 할 이유를 알면 쉽게 그 삶을 끝내지 않으며, 희망을 갖고 살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 수감자의 내면적 자아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심리적, 육체적 요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감자의 자유의사에 따른 결정에 있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126)

- 포괄적인 삶의 의미가 아니라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 한 개인의 삶이 갖고 있는 고유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180)

특히 그 삶의 의미는 모든 생애와 사람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자신의 상황에 맞는 구체적인 형태여야 한다고도 강조하지요. 현재 당신의 삶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어떤 구체적인 의미가 당신을 여전히 살아 있게 하나요? 혹은, 당신은 살아 있습니까?

 

  삶의 목적은 바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함에 있다.

이렇게 말한다면 모순일까요. 여전히 고민하고 있고 조금씩 깨닫고 발견해 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저자도 말한 책임감이라는 의미가 더해졌습니다. "자식"이라는 막중한 책임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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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옥중 자서전 | 일고십 2019-08-27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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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많은 이들은 그저 자신의 삶을 살기 바빴습니다. 나라니, 의병이니 생각하기 보다 일단 내 한 목숨 부지하기가 힘들었죠. 그럼에도 대한국이라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고군분투한 이들이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가 이리 한국이라는 국적을 지니고 살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물론 그 당시 해외 정세가 그렇게 만들었기는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고 하지 않았느냐? 너는 속히 본국으로 돌아가 우선 네가 해야 할 다음과 같은 일을 행하도록 해라. 첫째는 교육의 발달이요. 둘째는 사회의 확장이요. 셋째는 민심의 단합이요. 넷째는 실력의 양성이다. (42)

만약 자신이 그 상황이었다면, 안중근 의사가 받은 이 네 가지 일 중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혹은 가장 우선시 되어 실천되었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배우고 싶은데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울 것 같습니다. 민중의 힘들 기르는데 교육만한 것이 있겠습니까.

 

2. 일제시대 때 많은 독립운동을 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그들은 큰 애국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한국 사람들은 조국도 모르고, 동족도 사랑하지 않으니, 어찌 외국을 도울리 있으며 다른 종족을 사랑할 리가 있겠는가? 이 같은 무익한 인종은 쓸모가 없다. (49)

하지만 현 시대에 있어서 한국 안에서도, 해외에서도 많은 이들에게는 애국심이란 가치는 없는 듯 합니다. 정부에 불만이 많아서, 사회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혹은 해외에 있기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들에게 해 준 게 없어서. 애국심은 여전히 필요한 가치일까요? 그리고 그 애국심을 키울 수 있는 방법도 있을까요?

 

  국가라는 단위의 조직을 원활히 유지하기 위해 일정정도의 애국심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에 의해 개인이 희생당하지 않도록 경계해야할 것입니다.

  애국심은 자연스럽게 생겨나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 강요할 수도, 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역사교육을 통해 뿌리와 정체성 알도록 하고, 우리의 전통과 문화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것이라는 것을 알도록 해 주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사상을 펼칩니다. 현 시국에 일본과 한국의 상황이 극단을 향해 달리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의 사상은 그 시기에만 가능했을까요? 아니면 그 시기에도, 현재에도 불가능할까요?

 

  대중의 지지가 없으면 집권을 할 수 없고, 대중들은 집단 이기주의에 빠지기 쉬운 상황에서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감히 평화를 말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 혹은 정당이 집권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국제적 분쟁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것이 집권하는데 훨씬 유리하겠죠. 특히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소위 우경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막기 힘든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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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일고십 2019-08-27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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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조는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는 일본군의 소식을 듣자마자 피란을 고민한다. 한양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으니, 그 중요하다는 종묘사직을 다 두고 떠났다. 그러면서 나라를 지키고, 그 성을 지킬 책임을 다른 장수들에게 떠맡긴다. 왕이 짊어져야 할 책임감을 뜻하지 않게 짊어지게 된 이들은 그렇게도 쉽게 내팽겨치고, 도망가고 말았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피란을 떠난 선조에게 있는가, 아니면 어쨌든 왕의 명령을 받은 장수들에게 있는가?

 

 당연히 왕과 장수 모두에게 있다. 그래서 이렇게 후손들에게까지 욕먹는 왕이 되고 장수들이 되었다. 하지만 힘든 상황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 한 장수들은 그 용기와 기개를 역사가 기억해줘야 할 것이다.

 

2. 명의 속국이었던 조선. 그리고 왜가 쳐들어오자마자 명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명이 하는 대로 해야 했다. 그리고 어떠한 지휘권도 통치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명이 하자는 대로 따라야 했으며, 심지어 왜와 협상을 할 때도 조선은 배제시킨다. 크게 유린당한 왜에게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렇게 주체성, 주도권은 타국에게 넘겨졌다. 그 나라에는 주체성이나 자주권이 있는가? 더 중요하게, 현재의 우리들은 자신의 주도권을 잘 지니고 있는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사라지지 않았는가?

 

  위기의 순간 강자에게 의지하는 것은 민족의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부끄러워하고 스스로의 힘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개인도 그러하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 주도권을 잃는 것은 비난할 수 없다. 그러나 거기에 안주하지는 말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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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글 바로쓰기 | 일고십 2019-08-0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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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는 지속적으로 말이 먼저이고, 글은 그런 말을 따라가야 하는 것이라 이야기 합니다.

- 말과 글, 이 두가지에서 말할 것도 없이 말이 먼저 있는 것이고 글은 말을 따라가는 것이다. 말이 으뜸이고 뿌리다. 그런데 거꾸로 글을 따라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261)

이런 일방 통행은 받아들일만한가요? 말이 글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글에서 나온 말은 제대로 된 말이라고 할 수 없을까요?

  상당부분 공감이 갑니다.

제대로 된 말이 아니다까지는 말할 수 없으나 말과 글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어려운 글같은 말보다 이해하기 쉬운 말같은 글이 바람직하다 생각됩니다.

 

2. 농민의 글쓰기를 강조하는 저자의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 농민들 가운데 글 쓰는 이가 없다는 말은 농촌에 문화가 없다는 뜻이고, 농촌이 다른 그 무엇에 예속되어 있다는 뜻이다. 농민의 넋이 어디로 가버렸다는 것이다. (365)

- 흙의 사상을 되찾고 흙의 문화를 지키고 키워가는 일에 농민들의 글쓰기는 이렇듯 절실하게 필요하다. (366)

저자는 90년대 초반에 돌아가셨습니다. 2019년 현재의 모습을 아마 상상도 하지 못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농민은 많이 줄었고, 말글을 파괴하는 것들이 더욱더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 때 글쓰기는 유용한 방법이 될까요? 여전히 글쓰기는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는 좋은 수단이 되어 줄 수 있을까요?

 

  농민이 민중의 상징이던 당시와 비교하여 학력 등 국민들의 지식수준은 상향평준화 되었으나 오히려 우리말, 우리글의 오염은 더욱 심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저도 지금 이렇게 짧은 글을 쓰면서 틀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조금 더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고심하는 것을 보면 글쓰기는 정말 좋은 수단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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