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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는 없다 우리의 현실은 1Q84 이다. | 기본 카테고리 2009-11-0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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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1Q84 1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문학동네 | 2009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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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는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이다.  그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를 통해서 많은 독자층을 확보했고 그 이후 발표된 작품들로 하루키만의 독특한 문학적 세계를  만들어 왔다. 내가 읽어본 하루키의 작품은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상실의 시대』와  『댄스 댄스 댄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해변의 카프카』, 『스푸트니크의 연인』 정도에 불과하고 지금은 제목만 기억날 뿐 내용은 기억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하루키 작품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열성팬들처럼 그의 작품을 모두 찾아서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하며 사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문학적 세계에 대한 이해력은 보통 사람들이 아는 수준을 결코 넘지 못 한다. 하루키 작품에 무조건적인 찬양을 보내는 열혈 독자가 아닌 그냥 책읽기를 좋아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1Q84』를 읽은 후 느낀점을 써내려 가겠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국내 작가들의 신작이 나오면 그들이 이전 작품에서 쏟아 냈던 이야기와 문체가 그리워 누구보다도 서둘러 책을 사게 된다. 반면에 무라카미 하루키를 포함해서 외국 작가들의 신작은 일단 책 구매를 멈칫하게 된다. 내가 멈칫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없어서도 아니고 순전히 번역의 질을 모르기 때문이다. 모든 언론들이 갖가지 미사여구를 붙여 극찬을 하더라도 번역이 엉망이면 읽기를 포기하고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길 기도한다. 이러한 나의 마음은 대부분의 독자들도 마찬가질거라 믿는다. 번역이란 작업이 창작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함부로 욕할 수 없지만 번역 프로그램을 돌린듯한 괴상한 문장으로 한 페이지를 읽기가 힘들 때면 장인 정신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최소한의 정성마저 없다는 생각에 순간 짜증이 울컥하면서 육두문자의 욕지거리가 나온다. 번역이 엉망이라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한다면 엄청난 선인세비를 주고 『1Q84』의 판권을 사온 출판사는 분명히 큰 손실을 당할 게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에 마케팅뿐만 아니라 번역에도 엄청난 공을 들였으리라 생각된다.  역시나 『1Q84』를 읽는 동안 문장이 이상해서 중간에 맥이 끊기는 일 없이 하루키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몰입할 수 있었다. 나처럼 번역이 이상하면 어쩌지 하는 고민 따위는 휴지통에 과감히 버려도 될 듯싶다.

 

 소설의 제목이 무척 특이해서 간혹 아이큐84로 읽는 사람들이 있다. 『1Q84』에서 Q 는 Question 의 첫자이다.  『1Q84』는 하루키가 밝혔듯이 조지 오웰의 미래 소설 『1984』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소설이다. 1984, 1Q84를 일본어로 읽으면 발음이 같다고 한다. 숫자 9의 발음이 きゅう(큐우)로 영문 Q의 발음과 비슷해서 생기는 언어적 유희일 수 도 있지만 하루키가 소설속의 시간적 배경인 1984년의 세계와 1Q84년의 세계가 동일하지만 다른 세계라는 점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제목임이다. 조지 오웰의 『1984』는 빅 브라더가 통치하는 전체주의가 극도화된 사회로 가정하고 쓴 디스토피아 소설이자 미래 소설이라면 하루키의 『1Q84』는  두 남녀의 숙명적이고 슬픈 사랑의 이야기인 동시에 윤리적 혼돈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정체성을 반추시켜 주는 과거 소설이다

 

『1Q84』 에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있어야 제대로 읽히는 작품인지 도 모른다. 그렇다고 지레짐작 겁먹을 필요없다.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게 쓰는 것은 들숨과 날숨을 자연스럽게 교차시키는 숨쉬기 운동만큼이나 쉬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루키의 능력은 어려운 이야기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재미와 흥미를 부각시키고 그 안에 감쪽같이 어려운 이야기를 숨겨 놓는 것이다. 숨겨 놓은 진실을 찾은 독자는 보물 찾기의 선물을 받겠지만 못 찾더라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재미와 흥미로 충분히 하루키의 작품에 대한 만족감으로 충만해진다. 특히 『1Q84』는 달이 두 개 뜨는 1Q84 의 세계가 존재하는 이야기의 소재가 너무 흥미진진해서 심오한 철학적 사고 없이도 내용 자체에 몰입할 수 있다. 독자들이 쉽게 몰입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1Q84』의 독특한 이야기 진행 방식에 있다.

 

각 장이 작중 여남 주인공 아오마메(여)와 덴고(남)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온다. 아오마메의 이야기가 나오면 다음 장은 덴고의 이야기가 나오는 식으로 서로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듯 번갈아 나오면서 전체 이야기가 부드럽게 진행된다. 처음에는 아무런 관련없는 인물들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장을 거듭할수록 두 주인공 사이의 숨겨진 비밀들이 첫날밤 부끄럼 가득한 새색시처럼 조금씩 밝혀지면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마치 장소만 틀리고 동일 시간대를 공유한 주인공의 모습은 두 대의 카메라 앵글에 담은 영화와 같다. 아오마메의 이야기가 궁금하지만 바로 알 수  없고 덴고의 이야기를 읽어야 다음 이야기를 알 수 있다. 반대로 덴고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도 아오마메의 이야기를 읽어야 다음 이야기를 알 수 있다. 이러한 구성은 마치 결정적이고 중요한 장면에서 아쉽게 끝내고서 다음 회를 기다리게 만드는 드라마처럼 독자들이 그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전광석화의 속도로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마술같은 힘이 있다.

 

『1Q84』의 제목만큼이나 많은 물음이 필요한 작품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면 비슷한 맥락의 무언가 있을 거라는 판단이 우선하는 건 당연하다. 『1984』는 작가 살던 당시 소련의 스탈린 독재를 비판한 소설이라면 『1Q84』 은 참혹하고 끔찍한 사건으로 점철된 현대 사회를 환타지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그린 소설정도로 매락을 짚을 수 있다. 『1Q84』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과거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겠지만 그들을 낱낱이 살펴보면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과 달리 고독하고 슬픈 과거를 안고서 현실을 살아가는 슬픈 영혼들이다. 서로 감당할 수 있는 무게만 다를뿐 우리들 중에 상처받지 않은 영혼이 있는지 묻고 싶다.

 

 

"노부인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성폭행의 흔적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어요. 그것도 수없이 반복된 흔적이에요. 외음부와 질에는 심하게 찢긴 상처들이 있고, 자궁 내부에도 상처가 있었어요. 미처 성숙하지 않은 조그만 자궁에 성인 남성의 딱딱한 성기가 삽입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로 인해 난자의 착상부가 심하게 파열되었습니다. 성장하더라도 임신은 불가능할 거라고 의사는 진단하고 있어요.' "

 

 

초경이 시작도 안한 어린 소녀 쓰바사의 망가진 몸상태를 설명한 부분을 읽으면 누구나 깜짝 놀랄 것이다. 최근에 인터넷을 뜨겁게 했던 나영이 사건의 보도와 전혀 다를 바 없기때문이다. 소설 속에서나 있을 법한 잔혹하고 비인륜적인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게 현실이다. 아오마메가 들어간 1Q84 의 세계는 리틀 피플, 공기 번데기, 퍼시버와 리시버, 마더와 도터, 두 개의 달이란 환타지적인 요소를 삭제하고 보면 현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이율배반적으로 하루키가 만든 1Q84 세계가 현실이고 1984 는 우리가 꿈꾸는 비현실적인 유토피아인지 모른다. 결국 1984 세계와 1Q84 세계의 경계선이 애매모호해진다. 암살을 사주하던 노부인이 세상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믿는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의 믿음에 따라서 현실은 1984의 세계가 될 수 도 있고 1Q84 의 세계가 될 수 도 있다.

 
 

하고픈 얘기는 많지만 마지막으로 새로운 여자 주인공의 탄생을 말하고 싶다. 「아이스픽」와 「살인」이란 단어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80년대 남성들의 가슴을 므흣하게 만들었던 섹시 스타 샤론스톤 주연의 『원초적 본능』이다. 이제는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과 더불어 『1Q84』 의 여자 주인공 아오마메가 떠오를 듯 싶다. 샤프한 정장을 차려입은 상냥하고 유능한 비지니스우먼의 모습에 상대를 유혹하기 위해 가슴골을 살짝 보여주는 섹시미까지 겸비한 주인공 아오마메는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한 모습 이면엔 죽어 마땅한 남자들을 죽이는 냉정한 암살자의 모습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호텔바에서 머리가 헤싱헤싱한 중년 남자를 유혹하여 질펀하고 농밀한 섹스를 즐기는 모습이 공존한다. 그녀는 결코 돈을 목적으로 하거나 개인 원한으로 사람을 죽이는 그런 싸구려 암살자가 아니다.  그녀의 암살 대상은 일반적으로 '죽어 마땅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나쁜 남자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죽어 마땅한 사람'의 기준은 다분히 주관적인 요소일 수 밖에 없지만 힘없는 여자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성폭행하는 남자들이다. 그런 남자들에게 접근해 그녀의 타고난 손감각으로 목덜미에 위치한 사점을 찾아 그녀가 고안한 아이스픽으로 슬며시 찌르면 피 한방울없이 저세상으로 보낸다. 너무나 깔끔하게 죽기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살을 의심하기는 커녕 심장 마비등의 돌연사쯤으로 처리하게 되는 완벽한 암살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당당히 자신의 죽음을 선택한 그녀는 분명 우리들에게 사랑의 힘을 보여준 것이 틀림없다. 암살자라는 윤리적인 측면을 떠나서 앞으로 오래 기억될 여자 주인공이 될 것 같다.

 

1Q84 의 세계로 넘어가는 아오마메에게 택시 기사가 "겉모습에 속지 않도록 하세요. 현실이라는 건 언제나 단 하나 뿐입니다."라는 충고를 한다. 그 충고는 비현실적인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충고로 받아들여도 좋다. 겉모습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중심이 있어야 하는데 그 해답은 번뇌의 수레바퀴에서 찾을 수 있다. 

 

 

"티베트의 번뇌의 수레바퀴 같아, 수레바퀴가 회전하면 바퀴 테두리 쪽에 있는 가치나 감정은 오르락 내리락해. 빛나가기도 하고 어둠에 잠기기도 하고, 하지만 참된 사랑은 바퀴 축에 붙어서 항상 그 자리 그대로야"

 

 

오늘 밤 두둥실 떠있는 달을 보면 내가 속한 현실이 2009 세계인지 200Q 세계인지 알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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