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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0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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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용.(3) | 4. 고.소.용. 2012-10-05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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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는 특정 국가의 국내 정치상황과 관련이 없으므로,

    시리아, 리비아, 이집트를 비롯한 각국 정부당국자들께서는

    불필요한 오해를 삼가시기 바랍니다.

 

배명훈 단편소설

『총통각하』

 

 

 

고. 소. 용.

 

(고양이와 소와 용의 나라로부터)

 

 

<3회>

 

   

 

 휴가를 내고 그 여자를 만나러 날아갔었어. 내가 한 건 공존이 아니라 숭배였거든. 충격 없이 조용히 받아들인 게 아니라,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괜히 호들갑을 떨면서 충격으로 받아들였다는 거야. 그 사람을 만나고 연락을 하고 한 마디 한 마디 소식을 주고받고, 그 모든 것들이 나한테는 내 삶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릴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니까.

 

 

 뭐가 그렇게 좋았냐고? 몰라. 지금 생각하면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때는 정말 말 그대로 사건의 연속이었지. 매일매일. 사람이 사람 좋아하는 데 별다른 이유가 있겠나 싶긴 한데, 아마 잠들어 있는 소를 가운데에 두고 길 양편에 둘 다 거의 똑같은 폼으로 멍하니 서서 그 소가 꾸고 있을 꿈을 상상하고 있었던 장면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나한테는 꽤 경이로운 순간이었거든. 시바신의 마음에 닿은 것도 같았고 말이지.

 

 

 뭐 사실 따지고 보면 별일도 없었지. 그냥 이메일이 오가고, 가끔 사진을 주고받기도 하고. 그렇게 별것 아닌 일에도 나 혼자 어마어마한 의미를 부여해 가면서 거의 반년을 바보처럼 기다렸어. 다음 휴가를 받을 때까지. 그리고 결국 그 여자를 찾아갔지.

 

 

 그 나라는, 아무튼 재미있는 나라였어. 인구가 50만 명쯤 되는 작은 도시국가였는데, 자연물이라고는 그렇게 높지 않은 산이 다섯 개, 강이 하나, 조그만 호수가 두 개밖에 없는 소박하고 한적한 나라였어. 뭐 팔아서 그렇게 잘 사는지 모르겠는데 소득수준도 꽤 높고 말이야. 왜 그렇게 잘 사는 걸까, 그런 작은 나라들은? 뭐, 힘없는 도시국가들은 벌써 다른 데 다 흡수돼 버려서 잘 사는 데들만 살아남다보니 그래 보이는 걸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도심 구조가 좀 희한했는데, 그런 작은 나라들은 원래 주권을 인정받은 지방 영주의 영지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거든. 그런데 여기는 뭔가가 좀 이상했어. 도심 구조가 중세 타운 형태가 아니라 무슨 제국 중심부처럼 생겼지. 일단 구시가라는 게 딱히 없었어. 빽빽한 골목길로 이어진 구시가지가 아니라 아주 널찍한 광장이 옛 도시 구역 한가운데에 떡하니 들어서 있었거든. 그런 넓은 광장은 왕권을 상징해. 큰 도로들이 방사상으로 쭉쭉 뻗어 있고, 그 중심에 아주 넓은 광장이 들어서는 식으로 말이야. 보는 사람을 질리게 만들 만큼 압도적인 무언가를 연출하고 싶을 때 하는 짓인데, 이유야 어쨌든 쪼끄만 도시국가 치고는 옛 도시가 차지하는 영역이 엄청나게 컸어. 마치 무슨 제국의 수도라도 되는 것처럼.

 

 

“이 지도 이거 맞게 그린 거예요? 저게 다 구도심이라고 돼 있는데.”

 

 그 여자에게 물었어.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잠깐 나를 만나려고 시간을 내준 그 여자한테 말이야. 그게 맞대. 그래서 다시 물었지.

 

“그럼 사람 사는 데는 어디였어요? 옛날 주거지라고는 광장 주변에 조금 붙어 있는 게 단데.”
“다 거기 살았어요. 활주로 생각하시면 돼요. 가운데는 다 비워놓고 주변에 건물 몇 개 갖다 놓고 좁은 데 모여서 살잖아요, 사람들은.”

 

 

 그래, 그런 식이었어. 광장이 아니라 활주로였던 거야. 용이 혼자 사용하는 거대한 활주로. 그 나라는 말 그대로 용이 지배하는 나라였으니까.

 

 

 물론 정말로 그 나라 사람들이 용의 지배를 받는 건 아니었어. 사실 용은 보이지도 않았지. 나라를 다스리는 건 사람들이었어. 어느 나라 정치인이든 다 그렇듯 적당히 탐욕스럽고 적당히 뻔뻔스러운 정치인들이었지. 다만 이 나라 정치인들은 정당성을 얻는 방법이 좀 희한했어. 지배자인 용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었거든. 형식상.

 

 

 그게 뭐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야. 캐나다 같은 나라는 분명히 민주주의 국가지만 형식상으로는 아직도 영국 여왕의 지배를 받는 나라거든. 국가원수는 아직도 영국 총독으로 돼 있고 말이야. 그런데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잖아. 아무도 신경을 안 쓰니까.

 

 

 마찬가지였어. 그 여자의 나라도 실제로는 그냥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였는데, 형식적으로는 용의 대리인들이 지배하는 나라였지. 절대주권을 가진 용의 권한을 위임받은 일종의 신관들이 법률을 제정하고 세금을 걷고 전쟁을 선포하고 공무원들 월급을 챙겨줬다는 말이야. 형식상. 물론 국민들은 그런 거 별로 신경을 안 썼겠지. 그 여자도 그러더군.

 

“그냥 관광 상품인가보다 생각하고 있을 걸요, 정부 구조 같은 건.”

 

 

 응? 그래서 그 여자하고는 어떻게 됐냐고?

아니, 자네 지금까지 뭘 들었어. 이건 그 여자 이야기가 아니라 고양이 이야기라니까. 고양이와 소와 용에 관한 이야기라고. 뭐 그 여행도 그랬어. 그 여자하고는 마지막 날까지 거의 진전이 없었는데, 용에 관해서는 확실히 운이 좀 좋았거든. 좀 좋은 게 아니라 엄청 좋았지. 무슨 일이 있었냐고? 그 주 금요일에 용이 내려왔거든. 그 광장에.

 

 

 7년 만이라고 그러던가. 5년 전엔가 한번 북쪽 하늘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금방 다시 사라져버린 이후로는 처음 나타난 거라고 하더라고. 호텔 투숙객들이 아침부터 내내 떠들썩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 호텔 자리가 좀 명당자리였거든. 광장 바로 남쪽에 42층 높이로 솟아있는 엄청나게 전망 좋은 건물이었으니까. 물론 호텔 사람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어. 왜냐고? 말했잖아, 공존. 공존하는 생명체의 크기가 아무리 커도 충격을 받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가 딱 그 나라였을 거라고.

 

 

 일찌감치 아침 식사를 끝내고 광장으로 내려갔어. 용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서였지. 사람들이 바글바글 할 줄 알았는데 그 전날하고 별로 다를 게 없는 거야. 평일 아침답게 한산한 거리였지.

 

 

 용은 생각보다 온순했어. 한 40미터는 돼 보였는데, 어쩌면 50미터나 60미터였을지도 몰라. 눈으로만 봐서는 정확히 몇 미터쯤 되는지 알 방법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광장에 내려와 있는 내내 몸을 둥글게 말고 잠만 자고 있었으니, 허리를 곧게 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힘들었어. 나는 그곳 사람이 아니어서, 날아가는 용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눈을 감고 있었는데, 얼굴 표정이나 인상에서 위압감 같은 게 느껴지지는 않더라고. 세상의 지배자 치고는 꽤 인심 좋아 보이는 얼굴이었거든. 용이 보통 얼마나 사는지 모르겠는데, 최소한 중년은 넘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어. 몸매는 꽤 날렵해 보였지만, 그렇게 위엄 있고 근엄한 자태로 잠들 수 있는 생명체라면 이미 꽤 많은 일들을 겪은 게 틀림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 용의 일상을 짐작할 수는 없지만, 생명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운명에 관한 일들이 있지 않겠어? 연륜이란 건 그런 운명과 관련된 사건들이 쌓이고 쌓였을 때만 가질 수 있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는 용이나 우리나 비슷하지 않을까. 서로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는 거지. 뭐 딱히 내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하하.

 

 

 아무튼 어딘지 완만한 곡선 같은 게 잔뜩 엿보이는 그 붉은 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나는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어. 야생의 품위란 무엇일까, 그것과 반대되는 인간의 문명이란 도대체 또 어떤 걸까, 하는 생각들 말이야.

 

 

 긴 목을 지나, 거대한 날개가 달려 있는 등을 타고, 저 멀리까지 늘어져 있는 꼬리 끝까지 시선을 뻗곤 했지. 그러고는 역순으로 다시 머리까지 돌아오기도 하고. 용의 붉은색 피부에서 기품이 느껴졌는데, 색깔 자체는 그렇게 화려한 색상은 아니었어.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엄청 고급스러운 색이었거든. 그런 게 불을 뿜으면서 하늘을 누비면 그 위압감이 정말 굉장했을 거야. 그 아래 서 있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그냥 움츠러들었겠지. 사자나 곰도 마찬가지였을걸. 고래 정도나 정면에서 눈을 마주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잠들어 있는 용의 옆모습에서는 그 모든 강인함과 사나운 기세 혹은 위압감 같은 것들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어. 대신 다만 완만한 곡선으로 잘 마감된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가구 장식처럼 관절 하나하나 주름 하나하나에서 세련된 기품이 철철 넘쳐흘렀지.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

 

‘아, 저런 게 바로 연륜이구나. 멋지게 늙어간다는 건 바로 저렇게 늙는 걸 말하는 거구나!’

 

 

-<4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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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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