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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원더보이

김연수 저
문학동네 | 2012년 02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네게는 고통받는 이들의 삶과 완벽하게 공감하는 능력이 있으니 이미 절반은 작가나 마찬가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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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세현에게.

 

인생의 언젠가는 부모님을 잃게 된다. 네게 소개해주고 싶은 소설 <원더보이>에서 주인공 김정훈은 열다섯이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떠나보내게 돼. 예기치않은 사고로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는 두가지의 양가적인 감정이 공존하는 일이 있어. 심하게 충격을 받는 한편(이건 너무 당연하겠지),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이며 세상의 다른 많은 이들도 이걸 겪었구나 라며 새삼 사람들을 존경하게 되는 마음이 생기거든 

 때는 아직 세현이가 태어나지도 않았을, 나 또한 국민학생이던 1984년인데 주인공은 열다섯살의 김정훈이란 아이야엄마 없이 아빠와 살고 있어서 조금 안타깝게 여겨지던 정훈이는 더더욱 슬프게도 아빠를 교통사고로 잃고 말아. 게다가 정훈이 보조석에 같이 있었고 정훈이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그런데 깨어보니 자기와 아빠가 세상에 큰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거야. 아빠가 운전하던 차 앞으로 갑자기 뛰어들어와 사고를 일으킨 사람이 바로 남파 간첩이었던 거야. 지금도 분단상황이지만 1980년대에는 간첩이 남한으로 넘어왔다 발각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 사건은 정보부 권 대령이라는 관리에 의해서 이용을 당하게 돼. , 교통사고는 우연이었는데 그게 아니라 정훈의 아빠가 애국애족의 마음으로 수상한 간첩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막았다는 거야. 간첩이 무엇인지 80년대 반공이 무언지 잘 모르겠는 세현이 생각에도 그건 좀 황당하지? 행여 정훈 아빠가 자기 목숨을 산화했다고 쳐도 아들까지 죽게할지 모르면서 간첩에게 돌진할 아빠가 어디 있겠어 

 

아빠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도, 갑자기 나타나 이래라 저래라 하는 권대령에 채 적응하지도 못했을 때 정훈은 신기한 현상을 몸으로 겪게 돼.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 생각이 들리는 상황인 거지. 그동안 내내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던 정훈이 청와대 대통령을 접견한 때에 갑자기 벌떡 일어난 이후 권대령은 정훈의 범상치 않은 기운을 알아채고 몇가지 테스트를 실행해. 그 결과 정훈은 타인의 속마음을 알아내는 능력, 말그대로 보통의 사람들은 갖고 있지 않은 초능력의 소유자, 원더보이로 밝혀지지. 아빠의 죽음까지 정치적으로 활용했던 권대령은 정훈의 초능력까지 사용하게 되는데 그건 바로 취조실에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읽어내라는 주문이었어. 아직도 세계 어떤 나라에선 고문이 자행되고 있는데 28년전의 우리나라에서 또한 애석하게도 그런 비인도적인 수사방법이 횡행했었거든. 젊은 형, 누나들이 잡혀와 온갖 고문을 당하는 동안 그들의 생각을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정훈에게는 상상도 못할 고통의 시간들이었지. 한편으로는 죽음의 순간을 예감하는 여러 사람들이 한결같이 자기 인생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고 있어서 정훈은 놀랐어그분들의 희생으로 지금의 나 또한 적어도 독재는 아닌 국가에 살고 있으나 감히 그 고통을 전부 이해하진 못하겠어. 한편으론, 힘과 권력이 무고한 사람들을 억누를 지라도 그들의 영혼만은 그 독재권력에 굴복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기도 하며 인간의 숭고한 인내력에 고개가 숙여졌단다.

 

사실 절망의 80년대를 본격적 소재로 다루면서 초능력을 끌어들인다는 게 가능할까? 라고 난 생각하며 앞부분을 읽어 나간 것도 맞아. 그렇지만 작가의 그러한 설정은 계속해서 집요할 정도로 주인공 소년의 초능력을 둘러싼 일화들을 유려하게 펼쳐 나가. 하지만 고문 피해자들의 생각들을 읽어야만 하는 정훈에게 특별한 능력은 자신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벅찬 수수께끼들이었어. 그 의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온통 뒤흔들게 되면서 참을수 없는 정훈은 연구소를 도망치듯 나오게 돼.

 소설에서 마치 1부가 끝난 듯 내가 원더보이처럼 파란만장한 체험을 한 듯 먹먹한 기분이 들 때쯤 <원더보이>의 제2막은 새로운 이들과의 만남으로 가벼운 듯 펼쳐진단다. 초능력자들의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뛰쳐나왔을 때 맞닥트린 현실은 어떻게보면 비정했어. 그래도 그 곳은 또 사람 사는 세상이었고 정훈은 오래전 알았던 선재 형을 통해 강토라는 이름의 독특한 분위기의 형을 알게 돼강토 형과 지내는 날들은 매일매일이 새로운 시작이었고 또 새로운 끝이며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것같았지.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어쩐지 점점 줄어들어 갈 즈음 정훈은 한단계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말하지 못하는 일이 하나쯤은 있다는 걸, ‘말하지 못한 그 마음을 이해받기란 무척 힘들다는 사실도 알게 된 거지. 그런데 자기에게 유독 다가와 위로를 건네는 강토 형과 어느날 기차 여행을 하다가 속깊은 그의 과거를 듣게 돼. 강토 형은 실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야. 정확히는 남장 여자였어. 그녀에겐 약혼자가 있었는데 시국의 문제로 정보부에 끌려갔다가 죽음을 맞게 되었던 거야. 이런 일은 믿기지 않지만 실제로 존재했었으니 세현이 너에게 가르쳐주기에 부끄러운 역사이기도 하구나.

자신의 슬픔 위에 강토 형/희선씨의 슬픔까지 얹어졌지만 정훈에게는 슬픔 더하기 슬픔이 위로가 되는 새로운 등식으로 다가왔어. 나는 이 부분에서 김연수의 따뜻한 정서를 물씬 느낄 수 있었어.

 

작년에 쎄시봉 열풍이 분 일이 있었잖아? 당대의 실력있는 뮤지션들이 모두 금지곡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유가 황당한 때도 많았다고 해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웃으면서도 씁쓸했어. 그때는 그렇게 심각하고 엄혹했던 거야. 정훈이 사환으로 취직한 도서출판 선사상의 사장인 재진 아저씨 또한 그런 맥락으로 직장에서 쫒겨났어. 살아있는 사람 얘기도 아닌 시체 이야기를 기사에서 기록했는데 윗분들(!)은 어떻게해서든 꼬투리를 잡아 신문사 기자인 그를 쫒아냈어참으로 치밀하고 치졸한 어두운 시기였어 

 

잠깐, 그런데 앞부분에서는 정훈의 초능력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는 갑자기 운동권의 후일담 이야기로 갑자기 넘어온 걸까워낙에 문장력 있는 소설가로 유명한 이의 작품을 읽다보니 읽는 순간에만큼은 개연성이라거나 앞뒤 문맥도 잊은채 빠져들게 되더라구. 홀림에서 빠져나와 정훈으로 돌아와보니 정훈의 초능력은 이제 사라지고 없었어! 세현이 너도 어쩌면 지금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졌는지 모르겠지만 그래 맞아, 정훈이는 강토형 아니 희선씨를 사랑하게 됐어자신의 슬픔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다가오고 함께 해준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한 것같아. “넌 나하고 있으면 돼.”남의 생각을 들을줄은 알아도 이해는 선뜻 하지 못했던 원더보이였지만 재능연구실에서의 끔찍한 경험을 반추하며 정훈은 강토의 아픔을 이해하게 된단다. 학교생활을 못하는 그를 위해 출판사 재진 아저씨가 책읽기를 도와주며 차츰 커가는 정훈은 서서히 잊었던 엄마의 존재를 그리워 해. 권대령에게서 빼앗듯 갖고 온 아빠의 수첩에서 감사하게도 엄마의 흔적과 소재를 알수 있는 실마리가 있었거든.

 

강토의 약혼자 이수형, 해직 기자 재진 아저씨, 화염병의 귀재 선재에 이르기까지 <원더보이>의 사람들은 어떻게보면 작가가 제시한 80년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들로 보였어. 개인적으로 나는 운동권 선배들을 통해, 청춘의 한 복판에서 고문으로 죽고, 독재정권 하에 분신으로 스러져간 수많은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들었던 세대였어. 그때는 가슴 아파했으나 내가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었기에 뭔가 거리감이 느껴지는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들이었지. 내가 이번에 <원더보이>를 통해 어떤 거창한 게 아니라 작은 한두가지의 이해력을 얻었다면 바로 그 부분에 대한 것일거야. 이게 그냥 내 20대 이전에 있던 나와는 무관한 젊은이들의 투쟁만은 아니었구나 하는. 그러면서 예전에 그다지 안 친 했던 80년대 학번의 까마득한 선배들의 눈동자가 2012년에 떠올랐다는 게 작은 기적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소설의 결말부에서 밝혀지는 정훈이 엄마의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었지. ‘이 아이가 자라날 1970년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는작가가 쓰지 않은, 쓰지 못한, 말하지 않은 그 너머의 것은 세현이 네 능력의 힘으로 한번 읽어보지 않겠니? 그리고 네가 뜻을 펼치게 될 2012년 이후는 지금과도 다른 더 이상의 약자의 눈물이 없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네가 겪었던 그 아픔 또한 몹시 쓰라리고 억울하고 수용하기 어려웠겠지만, 너 혼자만의 슬픔이 아니라는 걸 깨닫길 바라며 이 글을 띄운다.

 

헨델의 Ombra mai fu 를 들으며,

너의 슬픔을 이해하는 한 어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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