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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낭비한 죄, 그것이 나의 죄목이었다.”는 어느 영화 대사를 떠올리게 한 소설 | Basic 2012-09-2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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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간을 파는 상점

김선영 저
자음과모음 | 2012년 04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제1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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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 아저씨는 훌륭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우리 각자의 이야기가 남아있으니 말이다. - <반지의 제왕>에서


 #들어가며

낭랑 18세의 백온조란 아이. 참 맹랑하고 기발한 여고생이다. 5년 전에 소방대원인 아빠를 사고로 떠나보내고나서 철이 들기 시작한 온조는 엄마를 조금이나마 돕고자 알바 전선에 뛰어든다. 누구나 그렇지만 남의 돈을 번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고 사회의 쓴맛을 톡톡히 경험한 그녀는 자기 사업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자신도 몇 년전에 아버지를 여의고나서야 어른이 되기 시작했는데 돌이켜보니 갈수록 철학적인 사람이 되고 있었다. <시간을 파는 상점>의 온조가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린 고등학생이지만 ‘시간’에 대해 또래 누구보다 깊은 사색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인터넷 카페에 야심차게 쇼핑몰을 개점한다. 옛날에 봉이 김선달이 물을 팔았었다는데, 백온조는 바쁜 현대인들에게 누구보다 시간이 소중하다는 점에서 착안해 새로운 틈새 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과연 장사가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의외로 외뢰인에게 쪽지와 메일이 오고 꾸준히 관심을 받으면서 온조는 이 가게의 필요성에 확신을 갖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길면서도 가장 짧은 것, 가장 빠르면서도 가장 느린 것, 가장 작게 나눌 수 있으면서도 가장 길게 늘일 수 있는 것, 가장 하찮은 것 같으면서도 가장 회한을 많이 남기는 것’, 시간. 물리적 의미의 크로노스와 주관적 관점의 카이로스, 두 가지 양면성은 <시간을 파는 상점>의 화두이자 커다란 주제의식이다.


시간이란 흐르는 것이지만 흘러가버린 시간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p.46)


의뢰인 강토를 통해 할아버지를 만나는 온조는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를 그분을 통해 깨닫게 된다. 인터넷도 핸드폰도 하지 않으신다는 할아버지는 온갖 기기에 둘러쌓여 광속도로 사는 요즘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런 현상들이 소외감을 부추긴다는 뼈 있는 말도 온조에게 한다. 심지어 현대 사람 대부분이 똑같은 성분의 약을 먹고 하나같이 취해 있는 것 같다고까지 하고 온조는 새겨 들으며 삶이란 시간의 내용일 거 같다고도 한다. 할머니의 죽음을 방관한 강토의 아빠에게 할아버지가 소송을 걸었고 두 사람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던 강토가 시간을 파는 상점 주인에게 할아버지를 만나달라고 했던 것임을 알게 된 온조는 그 가족에 연민의 마음을 느꼈다. 할아버지와의 시간에 대한 대화는 온조의 첫 의뢰인 ‘네곁에’를 통해 알게 된 같은 학교 학생의 아픔과 잇닿아 있었다.


<시간을 파는 상점> 등장 인물들의 서로 다른 사연들과 작가의 생각이 담긴 글들이 서서히 서로 연결되어 가는 점이 매력적이고 날 잡아 끄는 강한 흡인력이 있었다. 요즘 대중문화와 일반문학에서 어느샌가 사라져버린 평범한 청소년들의 삶, 그리고 학교에서의 일상과 자잘한 상황들이 핍진성이 있고 은근한 미소를 짓게 한다. 이 세대 마지막 로맨티스트이자 불곰이란 별명을 가진 생물 선생님이 올 봄에는 꽃향기와 꿀벌이 사라졌다며 아이들에게 한 말은 교훈적이고도 되새겨 봄직 했다. “꿀벌은 자연이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부 같지만 실은 그것이 자연 질서의 전부인 것이다. 왜냐? 그것으로 인해 전부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아주 견고하기 때문에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것이 오히려 어이없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환경을 사랑하는 교사 모임에 속한 ‘쌤’의 일갈은 그저 입시만을 위한 수업이 아닌 자못 의미심장한 것이었어서 <죽은 시인들의 사회>의 키팅 선생을 떠올렸다. 5년전에 돌아가신 아빠의 빈자리를 불곰샘이 대신하게 되었을 때 온조는 당황스럽고 어색했지만, 환경단체에서 일하는 온조 엄마와 소울 메이트가 될 가능성이 농후했기에 비로소 새로운 사랑의 탄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어느 한순간의 시간에 멈춰버리는 것은 아닐까? (p.124)


인터넷 상점을 계기로 만나게 된 파란만장한 사건들과 사람들을 통해 매일매일 성장통을 겪으며 자라가는 온조의 시간들이 벅차게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그랬는데, 까마득한 나의 열여덟살 때도 한편엔 성적 압박이 있었으나 친구들, 사랑한 음악과 영화들로 인해 웃기도 울기도 한 버라이어티한 고교시절이 있었는데 하며 과거를 회고했다.

가네샤의 시크한 지적대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시간 판매 상점은 분명 발칙하지만, 그 나이 때만이 기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아이디어이기도 했다. 넘치는 에너지와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갖고 있으며 서로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여고생들의 ‘오글거리는’ 직접 화법은 일견 낯설었지만 또래 문화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들어 유쾌했다. 여자고등학교 출신 필자의 주변엔 정말로 난주처럼 내 기분을 먼저 알아차리는 ‘촉이 정확한’ 아이가 있었고, 혜지처럼 다가가기 어려운 얼음공주이다 어느날 갑자기 친구가 되고 싶다고 고백(?)해 놀래키는 아이도 있었다. 우리 때는 한 반이 50명 정도 였는데 최근에는 많이 줄었으니 친구들의 관계가 어쩌면 더 돈독할 듯도 싶다. 진정성있는 관계를 가꾸어가는 주인공들의 태도는 미숙한 점이 많았던 나를 돌아보게 하고 지금의 어른들 사이에서도 지켜져야 할 것들이었다. 자기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오려는 혜지에게 온조가 처음에 강경하게 건넨 말이 예컨대 그랬다. “사람을 알아가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인 줄 아니? 그리고 너를 보여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알고 싶어해?”


순수한 청년의 직감만큼 이 세상에 정확한 게 없다고 난 생각한다. 경쟁적인 요즘 세상, 갈수록 복잡한 사회가 입시 교육 속 아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고 흔히 말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따스한 우정과 반짝이는 생각들이 실종된 것은 아닐 거다. 정이현-나중에 엄청난 반전 캐릭터인-에게 난주의 애정을 대신 전하며 카페에서 온조가 나눈 대화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에 대해서도 적확했다. “누가 그래? 너 폼 잡는 게 멋있다고. 그건 그 사람을 잘 몰랐을 때 잠깐 드는 거지, 정작 상대를 사로잡는 건, 그 사람의 솔직함을 봤을 때 아니야? 방금 전 너의 모습처럼 말이야.”


아이들은 사랑을 갈망하고 있단 걸 이 청소년소설을 읽으며 새삼 알 수 있었다. 자식을 좋은 대학 보내자고 끊임없이 닦달하고 ‘엄친아’와 비교하는 교육이 사랑이라 착각하는 부모 때문에 한 아이가 자살을 생각하는 상황은 이제 드문 일이 아니다. 할아버지와 아빠의 불화를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구르던 강토는 외톨이가 되어가다 가까스로 온조의 진심어린 행동에 의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시간을 파는 상점>의 절정은 정이현의 반 친구가 이현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메세지를 보내는 후반부 이야기였다. 지난 몇년동안 고등학생들이 각자만의 고통을 부여잡고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여러 끔찍한 방법으로 목숨을 포기한 뉴스들이 전해져 얼마나 가슴아팠던가. 잊고 있었는데 작년에 여학생 두 명이 왕따 사건과 관련해 옥상에서 뛰어내려 세상을 등진 일이 있었고 안타깝게도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터진 일이었다. 그리 멀지 않은 동이었을 뿐 아니라 나중에 알고 보니 필자 가족 중 한명의 친구의 딸이 사망자에 있었다고 해서 충격이었다. 그 여학생의 아빠는 경찰이셨다고 한다. 뉴스에서만 접하는 현실이라고 잊고 살기엔 나름대로 가까이에서 벌어진 일들이란 게 믿기지 않는다. 개개인의 비극을 막을 완벽한 방법은 사실상 있을 수 없지만, 꽃다운 학생들이 주변의 방치 속에 죽음을 선택하는 사태를 더 이상 우리 교육 시스템이 무력하게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이 든다.


# 마치며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김선영의 이 작품은 팍팍한 현재 동시대에 희망을 던지는 결말을 주어 점점 메말라가는 나같은 독자를 안도하게끔 했다. 소설의 엔딩이란 것이 어떤 텍스트나 논란의 여지와 아쉬움을 남길 수도 있단 걸 잘 안다. 소년이 극적으로 자신의 고민을 극복하는 설정이 냉정하게 따지면 비현실적일 만큼, 발생하는 실제는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아이들의 찬란한 생명력과 열정, 잠재돼 있는 이타심을 믿어보게끔 하는 것이 이와 같은 장르 문학의 가치이리라. <시간을 파는 상점>을 읽으며 온조, 난주, 이현, 강토와 함께 할수 있어 기뻤고 한국창작소설의 팬인 한 사람으로써 새로운 기대의 불씨를 되살리는 기회가 되었다. 청소년과 호흡하는 삶을 살려는 독자를 포함하여, 아이들의 생생한 삶이 듬뿍 담긴 글을 쓰려는 이들 모두에게 <시간을 파는 상점>이 전해주고 있는 전언(傳言) 한 가지를 책에서 옮겨와 본다.

네 절정은 지금이 아니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이 너의 절정이다.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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