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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계 최고의 독서가 알베르토 망구엘 | 독자 이야기 2011-06-0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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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 최성일의 기획리뷰
책이 뭘까? 대뜸 집이 뭐냐고 묻는 어느 건설회사 아파트 광고의 대답처럼 ‘쉼’일까? 책을 집에 비유하기도 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책에 대한 내 생각은 중용을 따른다. 내게 책은 편하지도 불편하지도 않다. 또 책은 아주 귀중하지도 매우 하찮지도 않다. 책을 향한 애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책이 정말 좋다고 드러내놓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물론 책이 고마운 건 사실이다.

취미가 직업이어서, 좋아하는 일을 맘껏 하게 되어 얼마나 행복하냐는 얘길 가끔 듣는다. 예전엔 1천 명 가운데 3명꼴로 자기가 하고픈 일을 한다는 사람들 안에 든 것이 마냥 흐뭇하기만 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글 쓰는 일이 과연 네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인지 어찌 아느냐는 우리 형님의 말씀을 듣고선, 출판평론이 내 달란트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취미는 취미일 때가 더 좋다. 나는 책만큼 야구를 좋아한다. 만일 내가 프로야구선수가 되었더라도 지금보다 더 행복할 것 같진 않다. 나는 야구를 보는 걸로 만족한다. 소설가 장정일은 “동사무소의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하고 오후 다섯 시에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 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 시까지 책을 읽는 것”이 어린 시절의 꿈이었다지만, 요즘은 하위직 공무원이 되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나는 그런 꿈을 꾸지 않았다. 다만, 책을 많이 모으고 싶었다. 내 책이 2천 권에 이를 즈음, 독서노트에 이런 글귀를 적었다. “책의 숲에서 나는 행복하다.” 이젠 이렇게 바꿔 말하련다. “책의 더미에서 나는 답답하다.” 책만 읽으면 고지식하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는 소릴 들었다. 분명한 것은 내가 지식가공업에 종사하고 있지 않다면, 지금보다 책을 덜 읽으리란 점이다. 나는 원고를 쓰기 위한 책을 읽기도 시간이 빠듯하다.

알베르토 망구엘은 굳이 세계적이라는 수식어를 안 붙여도 되는 대단한 독서가다. 『독서의 역사』(정명진 옮김, 세종서적, 2000)로 우리에게 알려진 그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 번역가이자 편집자다. 1985년 캐나다 시민이 된 그는 현재 ‘예술과 문학 기사(騎士)’ 작위를 받은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망구엘의 『독서일기』(강수정 옮김, 생각의나무, 2006)는 ‘다시 읽기’다. 그런데 나는 다시 읽기에 유감이 있다. 다시 읽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그걸 애써 내세우는 것은 눈꼴사납다. 두 번째든, 세 번째든, 아니 백 번째든 처음 읽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망구엘의 ‘다시 읽기’에 유감이 없는 것은, 예전에 읽은 책을 다시 읽으려는 그의 의도가 순수해 보여서일까?

“예전부터 좋아해온 몇몇 책들을 다시 읽어보기로 결심한 건 쉰세 번째 생일을 맞은 2년 전이었는데, 겹겹이 포개지고 복잡한 과거의 세계들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암담한 혼돈을 반영하는 듯한 모습에 또 한 번 깊은 인상을 받았다. 소설 속의 한 구절이 불현듯 어느 신문 기사에 통찰력을 제공하는가 하면, 이런저런 장면에서 반쯤 잊었던 일화가 떠오르고, 낱말 하나를 단초 삼아 긴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나는 그 순간들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결국 1년 동안 한 달에 한 권씩 다시 읽어서 “개인적인 일기와 일반적인 책의 중간쯤 되는 뭔가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망구엘은 “책을 읽음으로써 싹튼 생각과 성찰, 여행에서 받은 인상들, 친구들 또는 공사를 망라한 여러 가지 일의 짧은 스케치를 담은 한 권의 책”을 염두에 두고, 여러 분야를 두루 아울러서 다시 읽을 책의 목록을 짰다.

당연히, 예상대로, 망구엘은 한 달에 달랑 책 한 권만 이야기하진 않는다. 물론 그달치 책이 화제의 중심이긴 하나, “때때로 독서는 연결을 짓는, 명문 선집을 구성하는 작업”이라는 ‘덧글’을 실천한다. 나는 여기서 망구엘이 덧붙인 독서 격언을 응용해 보겠다. 명문 선집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고, 연결짓기에 국한한다.

2002? 6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찾은 망구엘은 동창생 실비아에게 어떤 얘길 듣는다. “어릴 적 동창인 실비아는 우리가 다니던 학교에 가면 군부에 살해된 학생들의 명판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내가 알 만한 이름도 몇 개 있을 거라고 덧붙인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축구, 그 빛과 그림자(개정증보판)』(유왕무 옮김, 예림기획, 2006)에서는 1978년 월드컵을 개최한 아르헨티나 군부의 잔학상을 고발한다. “비델라 장군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모누멘탈 스타디움에서의 개막식 때, 군인 행진곡에 맞추어 아벨란제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그곳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지점에는, 아르헨티나의 아우슈비츠라 할 수 있는, 고문과 학살의 중심지인 해군 기계 학교가 있었다. 그리고 수 킬로미터 저쪽에서는 비행기가 멀쩡히 산 사람들을 실어다가 바다 속에 생매장시키고 있었다.”

독서를 “편안하고 고독하며 느릿한 감각적인 행위”라고 여기는 망구엘은, 그 뭐라나, 스포일러에게 질색한다. “누가 책의 줄거리를 요약해주는 건 질색이다. 제목이나 장면, 인용구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좋지만, 줄거리 전체로 그러는 건 사양한다. 열혈 독자들, 표지의 홍보 문구, 문학의 역사와 교사들은 플롯을 누설함으로써 책을 읽는 데서 얻는 즐거움을 무참히 파괴한다.”

『독서의 역사』『독서일기』가 망구엘의 본업의 산물이라면, 『알베르토 망구엘의 나의 그림 읽기』(강미경 옮김, 세종서적, 2004)는 그의 취미의 소산인가? 망구엘은 책을 정독하듯이 꼼꼼하게 그림을 읽는다. 15세기 초반 활동한 네덜란드 화가 로베르 캉팽의 작품으로 알려진 <화열 가리개 앞의 동정녀와 아기 예수>에 대한 독해는 그 좋은 보기다. 망구엘은 퍼즐을 맞추듯 이 그림의 구성 요소들에 담긴 의미를 하나하나 풀어준다.

“우리는 그림 속에서 의미를 추측할 수 있는 몇 가지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두운 구석에 숨어 있는 등받이 없는 의자도 그 중 하나다. 지극히 평범하게 생긴 이 의자는 세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다. 이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현존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화열 가리개, 등받이 없는 의자, 긴 의자, 책과 같은 이미지는 마리아가 현실 속에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를 화폭에 담을 때, 그녀의 치마는 시대를 거치며 변천을 겪었으나, 한 가지 상징만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마리아가 하늘에 속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치마의 푸른 색깔이다. 독일 출신 화가 막스 에른스트의 1924년작 <세 명의 목격자. 앙드레 브르통, 폴 엘뤼아르, 화가 앞에서 아기 예수를 매질하는 성모 마리아>에서도 마리아는 붉은색 원피스 차림이지만, 푸른색 천으로 하반신을 감쌌다.

“어떤 점에서 모든 그림은 수수께끼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림마다 주제와 교훈과 줄거리와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화열 가리개 앞의 동정녀와 아기 예수>처럼 화폭에 그려진 그림과는 다른 혹은 재생된 이미지를 정확히 유추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그림은 흔치 않다.”

그렇기 때문인지 망구엘은 “예술가가 일부러 침묵으로 남겨둔 것은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세시대의 문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식문자가 알파벳을 강조함과 동시에 숨기는 것처럼”이라는 표현에서는 망구엘의 독서가로서의 면모가 드러나기도 한다.

『독서의 역사』는 내용이 풍부한 아주 매력적인 책이다. 망구엘은 이 책에서 그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맺은 인연을 소개한다. 16살이 되던 1964년, 망구엘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피그말리온 서점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는다. 서점에 들른 보르헤스에게 부탁을 받은 망구엘은 시력을 잃어가는 그에게 틈나는 대로 책을 읽어준다. 이 과정에서 망구엘은 보르헤스로부터 강한 문학적 영감을 받는다.

“보르헤스에게 글을 읽어 주는 일을 두고 나는 그저 하루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만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그 경험은 일종의 행복한 포로처럼 느끼게 했다.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보르헤스가 나에게 안겨 준 텍스트 그 자체였다기보다는(그들 중 상당수는 결국 나 자신도 사랑하는 작품이 되었지만), 광범위하면서도 전혀 막힘없이 해박하고, 매우 재미있고, 가끔은 잔인하지만 거의 언제나 무시할 수 없는 그의 논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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