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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게 만들고 웃게 하는, 친구 같은 책 | 기본 카테고리 2022-07-0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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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가랑잎에도 깔깔

김송은 저
꽃피는책 | 2022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울적할 때 읽으면, 웃게 만들 것이다. 중구난방일 때 읽으면, 울게 할 것이다. 웃게 만들고 울게 하는, 친구 같은 책을 만나, 오랜만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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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다, 그 기억력이. 보르헤스 소설의 주인공, ‘기억의 천재 푸네스를 떠올리게 할 만큼.

첫 에세이라는데, 애초 쓴 것이 아니라 흘러나온 것을 갈무리한 듯, 장면은 섬세하고, 인물은 싱싱하며, 사건은 생생하다. 소리면 소리, 냄새면 냄새, 감촉이면 감촉, 들리고, 나고, 쓸리는 듯하다. 그때 그 교실, 그 아이들, 그 사랑, 그 날뜀, 그 가난, 그 애틋함이 절로 되새겨진다. 에세이가 한 사람의 기억 말고는 다른 것이 아니기도 하니 이만큼 에세이에 어울리는 글도 없는 셈. 부럽다. 그 기억력이.

 

멋지다, 그 문장들이.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떠올리게 할 만큼.

첫 에세이라는데, 문장은 이미 절대 고수다. 묘사면 묘사, 서사면 서사, 거침이 없다.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시를 읽는 것 같기도 하다. 소설로 시작해 시로 끝맺기도 하고, 시로 시작해 소설로 끝맺기도 한다. 에세이가 곧 시적 산문이고, 에세이가 곧 플롯 없는 서사니 이만큼 에세이에 어울리는 글도 없는 셈. 부럽다. 그 문장이.

 

기쁘다, 오랜만에 가까이 두고 오래 읽을 책을 만나.

울적할 때 읽으면, 웃게 만들 것이다.

중구난방일 때 읽으면, 울게 할 것이다.

웃게 만들고 울게 하는, 친구 같은 책을 만나, 오랜만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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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을 읽다 | 기본 카테고리 2022-07-0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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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그녀를 그리다

박상천 저
나무발전소 | 2022년 05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한 번쯤 깊이 울고 싶다면, 울어 위로받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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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은 울음이다. 윗니로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꺼억꺼억이, 홀로 있어 맘껏인 엉엉이, 저도 모르게 한 줄 조용히 흘러 울음인지 눈물인지 분명치 않은 무음이 있다.

 

울음들은, 그렇게 있는 채, 우리에게 옮겨온다. 샤워 물줄기를 타고 오기도 하고, 능소화 꽃잎에 얹혀 오기도 하며, 찔레 가시에 묻어오기도 한다. 이불에, 휴대전화 주소록에, 김칫국물이 벤 도마와 그 위에 내리는 햇볕에, 커피 머신에, 이적과 김종서의 노래에, 맞지 않는 단추에, 쑥갓에, 양치 컵에, 담금술에, 그리고 발자국 소리에 숨어오기도 하고, 실려 오기도 하며, 터벅터벅 소리와 함께 걸어오기도 한다.

울음들은, 그렇게 듣노라면, 잃은 사람을 떠오르게 하고, 잃으면 안 되는 사람을 헤아리게 하며, 잃을 수 없는 사람을 부둥키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떠올리고, 헤아리고, 부둥키다 보면, 종국에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홀로 있어 맘껏인, 저도 모르게 한 줄 조용히 흘러 울음인지 눈물인지 분명치 않은 것이 듣는 이에게로 온다. 어떤 울음은 잠시, 어떤 울음은 좀 더 오래, 또 어떤 울음은 읽던 책을 덮게 할 만큼 꽤 오래.

 

다만 시인은 그렇게 울지 않는다. 그렇게 울지 않을 작정의 징표들을 한 권의 시집으로 묶었기에. 시 안에 그런 울음들을 몽땅 넣었기에. 홀로 몰래 다른 울음을 울고 있기에. 시인은 그 다른 울음은 가능한 한시로 들려주지 않겠다 했으나 울음이 어찌 맘대로 될까. 기다리다 보면, 정성을 다해 꺼억꺼억과 엉엉과 무음을 곁에 가까이 두고 오래 읽다 보면, 또 다른 울음들을 우리는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고 싶으나 시인은 사뭇 힘겨울 그런 만남을.

 

한 번쯤 깊이 울고 싶다면, 울어 위로받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시집이다. 잃으면 안 되는 사람을, 잃을 수 없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라면 더욱. 울음은 넘칠 테지만, 그만큼의 위로도 쏟아질 테니. 이를테면 이런.

 

그래도 이 막막한 시간 속 / 몇 벌의 옷으로. / 몇 개의 그릇으로, / 늘 거기 있는 당신,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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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죽음본능을 체험하고 있는 공포의 순간들 | 기본 카테고리 2011-06-3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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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죽음본능

제드 러벤펠드 저/박현주 역
현대문학 | 2011년 06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결국 삶과 죽음은 한끝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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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데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첫 번째는 억압이다. 죽음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잊는다.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양 행동한다. 우리 대부분은 평생 이렇게 산다.

두 번째는 첫 번째의 반대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항상 죽음을 마음에 새겨놓고 잊지 않는다. 오늘이 일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때 삶은 가장 큰 축복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수용이다. 죽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잃을 처지에 놓여도 초월적인 평정을 얻는다.

이 세가 전략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다 거짓말이라는 것.

적어도 공포만이 정직하다.”


이 첫 문장을 읽고 이 책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누구나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되길 원하며, 또 죽음의 공포 때문에 슬퍼한다.

9.11 테러 이후 테러, 전쟁에 대한 공포를 경험했고, 최근 일본 지진으로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원자력에 대한 공포까지 체험하고 있는 순간들이다.

1920년대 미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놀라운 사건들의 연속이 읽는 재미를 줄 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소설이면서도 사회적 시의성을 잘 포착한 작가의 지적 능력이 또한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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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자전거, 여행, 새롭거나 새로워지려고 하는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길 | 기본 카테고리 2006-07-1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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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두 바퀴로 유럽 지도를 그리다

김남용 글 사진
이가서 | 2006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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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거북스럽게, 좀 더 거창하게 말한다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오해 혹은 편견이다. 우리 스스로의 그것도 그렇고 사회가 우리에게 부과하는 그것도. 오해와 편견을 거부할 때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고, 그럴 때 비로소 나는 나를, 새로운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변화, 즉 노란 잠수함이 아닌 ‘노란 자전거’라는 거부의 상징 혹은 몸짓과 함께 자신을 찾고, 확인하고, 변화시켰던 과정의 기록이며, 또한 적어도 ‘김남용’이라는 작가에 대한 사회의 오해와 편견에 대한 거부를 가능케 했던, 다시 한번 거창하게 말하자면, 투쟁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을 ‘비전문 여행가’라 소개한다. 물론 이런 단어를 쓰진 않았지만. 나는 그게 좋았고, 그래서 좋았다. 그것 또한, 그것 자체가 거부 아닌가? 전문가라는 사람들 혹은 전문가 연하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여행에 관한 책을 비전문 여행가가 감히 가졌다는 것. 비전문 여행가로서 엄두를 낼 수 없었을 자신을 거부하고 비전문 여행가로서의 자신만의 여행의 기록을 남겼다는 것. 그래서 이 책은 두 바퀴로 그린 유럽 지도면서 동시에 두 바퀴와 함께 그린 변화와 거부의 지도다.
‘비전문 여행가’라는 소개가, 물론 단지 소개일 뿐인 것은 아니지만, 좋았던 더 현실적인 이유는 역시나 나의 취향 때문이었다. ‘여행은 그저......., 떠나는 것’이라는 믿음. 작가는 알고 떠나는 여행만이 확인과 느낌과 봄의 과정의 통해 열매를 얻을 수 있다고 했지만, 그저 떠나지 않으면, 준비된 것은 얻을 수 있되, 생생한 찰라라는 예상치 못한 열매들은 놓치고 말 것이라는 믿음. 하여 나는 좋았다. 그는 분석하지 않는다. 거창하지만 건조한 의미부여 또한 하지 않는다. 그저 달리고 그저 보고 그저 느낀다. 단지 달리지 않으면, 포기하면 후회할 것이라는, ‘네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까지 다해 본 거냐?’라는 다짐과 질책의 매와 함께, 말 없는 노란 자전거와 함께.
어찌 보면 모든 타인은 나 자신이며, 나는 모든 나를 동원해도 알 수 없는 타인이라 할 수 있다. 타인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그 발견을 통해 동화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고, 나는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야 나의 또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미지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만남만큼 중요한 경험은 없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여행은 풍경을 만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 풍경 속에 그 풍경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만의 독특한 삶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결국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대개의 건축물이나 예술작품이 인간의 풍경이듯, 자연의 풍경 또한 그것을 가꾸는 사람들의 마음과 몸짓이 그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풍경이, 자연이 사람들을 그렇게 가꾸어 놓았다고 해야 하겠지만.
어쨌거나, 그리하여 여행처럼 좋은 만남의 과정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에는 새로움이 있기 때문이며, 그 새로움 속에는 작가의 말처럼 ‘나눔의 지혜를 배우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만난 많은 사람들, 해리, 짐보 할아버지, 길잡이 하스와 그의 소녀 조카로부터 실비아, 윌리엄 교수, 폴 아저씨까지. 그들은 작가에게 나눔을 베풀었고, 나눔의 지혜를 알려주었으며, 나눌 수 있는 지혜와 나누기 위해 지닐 수 있는 마음의 지혜를 깨닫게 했다.
하지만 이 지혜는 흔히 우리가 지식을 쌓을 때 그런 것처럼 우리에게 고통이나 억압을 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얻는 과정에는 작가가 하스와 그의 조카로부터 느꼈던 것처럼 사람 사는 냄새, 사람 사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여행은 결국 너무 익숙해져서 이곳에서는 맡을 수 없는 ‘사람 사는 냄새’, 이곳에서는 요원한 ‘사람 사는 재미’를 얻는 즐거움을 느끼는 과정이 아닐까? 그래서 작가는 말한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여행’은 ‘동행’이어야 한다고. 그래야만 그 냄새를 함께 맡을 수 있고, 그럴 때 함께 재미를 얻을 수 있다고. 그래서 다시 가고 싶은 도시가 어디냐는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대답한다. “지긋지긋한 베니스요.” 지긋지긋함이 사람의 냄새와 재미를 주지 않았다면, 인간과 관계에 대한 진솔한 반성을 주지 않았다면, 그 험한 몸 고생 마음고생을 준 베니스에 왜 가고 싶을까, 다시.
그렇다. 결국 여행은 니스 해안의 3일이나 그린델발트의 하루만이 아닌, 그 모든 과정이 나에게의 선물이며, 나랑만 놀기이다. 그 선물과 놂 속에는 냄새와 재미가 있는 것이고. 그리고 이렇게 선물을 받은 나는 나와 놀 수 있었던 나는 새로운 나로 변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새로움은 새로움이기보다는 내 안에 있었던 어떤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이고.
여행은 새롭거나 새로워지려고 하는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길이다. 길일뿐이다. 그리고 이 새로움과 새로워지려 함은 가능의 영역에 대한 스스로의 두드림의 작업 혹은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작가가 ‘자전거 여행은 현실’이라고 했던 말이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어디 자전거 여행뿐이겠는가? 모든 여행은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또 다른 현실이며, 현실로 돌아오고자 하는, ‘돌아갈 수 있다는 행운’을 확인하는 작업, 과정인 것이다.
이 책은 게으른 나로서는 좀체 가능하지 않을 가능의 영역, 좀체 맡을 수 없을 냄새와 좀체 경험할 수 없을 재미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책이다. 나는 책을 읽었지만, 실은 나는 노란 자전거와 함께 유럽이라는 머언 곳을 여행한 것이다. 그래서 작가가 감동해마지 않았던 몇몇 풍경들 사진이 없어도 서운하지 않았고(특히 네델란드의 풍경은 정말 보고 싶었지만), 오히려 삶의 비루함과 삶의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해준 한 장의 폴 아저씨 사진이 더욱 고마웠을 뿐이다. 요요를 들고 미나인지 니나인지 이름은 확실치 않지만 사랑이라는 가능을 구하려고 했던 그 폴과 같은 폴 아저씨의 사진이.

여행을 하고 싶지만, 그렇게 삶이 ‘지겹고 무섭’지만, 그럴 수 없을 때, 이 책의 아무 곳이나 펴놓고, 잠시 심호흡을 한 후, 작가의 발걸음, 마음 걸음을 따라가기만 하면 나는, 우리는 훌륭한 한 편의 여행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그린델발트의 야영장 텐트 속에서 목을 밖으로 뺀 채 알프스의 높은 봉우리와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하늘을 보며 ‘여행’에 대해 생각했듯 그렇게 우리는 이 책과 만나면 될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그런 책이 되었다. 그러니 고맙다는 말 정도는 덧붙이는 것이 사람 사는 재미이고, 그래야 사람 사는 냄새가 진동을 하겠지?

[인상깊은구절]
그날 밤, 별빛이 모래알처럼, 햇살처럼 나를 어루만졌다. 그린델발트의 산과 하늘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별과 바람이 나늘 용서해 주었다. 좀 모르면 어떤가? 어떤 기준이나 사전 지식에도 얽매이지 않고 세상과 사람, 자연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되돌아보면 되는 것 아닌가? 행여 남이 아니고 나이면 어떤가? 그린델발트 하늘의 저 무수한 별들처럼 나 또한 우주를 구성하는 반짝이는 고귀한 별일진대, 그 별에 대해 생각한다고 하면 어떤가? 나를 바라보고, 나와 대화하고, 나에 대해 이야기하면 어떤가? 우리 사회에서 30세 먹도록 살면서 나 스스로와 대화한 적이 얼마나 되는가?
지겹고 무섭다고 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나와 이야기하기 위해 그 무엇도 아니고, 오직 나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나 자신과만 대화하기 위해 떠난다고 했다. 그리고 3개월 여행을 하면서도 그걸 잊고 있었다.
그린델발트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않기로 했다. 평소 같으면 1,900미터 이상의 고지나 4,000미터급 지점까지 하이킹에 도전했겠지만 그린델발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내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나랑만 놀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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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로드, 문명 간의 잊혀진 편지 | 기본 카테고리 2002-03-2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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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페이퍼 로드 (PAPER ROAD)

진순신 지음 / 조형균 옮김
예담 | 2002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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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로드, 우리는 그것을 '문명이 만나는 길, 혹은 문명 간의 편지'라고 이름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그것은 아쉽게도 잊혀진 길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 잊혀지는, 혹은 잊기로 한 마음의 길을 따라가버리는 한 시절의 편지와도 같이....

바람에 날리는, 무수한 발자국에 처음 발자국의 무게는 없음의 저 안쪽까지 가벼이 사라져버리는 모래의 길이라도 남을 수 있었다면, 우리는 사진 속에서라도 만날 수 있었을 그 오래 전의 길. 역사의 잊혀진 부분을 세심하고도 조심스럽게 그려내 온 작가 진순신이 우리와 함께 생각해보길, 상상해보길 권하는 것이 바로 이 길이 아닐까? 페이퍼로드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붙여 준 그 모래 날리는 길과 그 길을 걸었던 이름 없는 사람들을?

흔히 종이를 발견한 것은 채륜이며, 그것이 전해진 것은 고선지라는 고려인이 관련된 '탈라스 전투'라고 한다. 그가 본문을 통해 전하는 환관 채륜의 드라마틱한 삶, 고선지의 대서사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더욱 진실되게 만들어 준다. 그러나 역사는 기록된 것일 뿐, 때문에 실제 역사를 구성했던 수 많은 사람들은 역사 밖으로 사라지게 된다. 조금 확대를 해서 말한다면, 이즈음 가장 중요한 담론의 장을 형성하고 있는 '문명간의 충돌'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사상 때문이건 종교 때문이건,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이건 그러한 충돌이란 결국 삶의 실재가 어느 정도 삭제된 이데올로기 사이의 다툼일 뿐이며, 그 이데올로기를 유지하려는 권력 사이의 암투일 뿐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실크로드...)하지만 그 절묘함이 지나쳐 이 길로 운반된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이 빛을 잃어버린 것은 부득이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 길을 지나간 가장 중요한 것은 비단처럼 어떤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 깊은 곳과 관련된 것, 사상이나 신앙이라고 불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략)...그저 사상이나 신앙 외에 기술까지도 낙타 등에 싣고 동에서 서로 운반했던 사람들을 펜 끝으로 되살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작자 후기> 중에서

작가의 말대로 이 책에선 종이나 제지법과 같은 실제적인 페이퍼로드 위의 것들보다 잊혀진 사연, 잊혀진 사람들에 대한 추억이 더 아름답고 따뜻하게 그려진다. 이를테면 '표모'들의 삶을 묘사하는 부분이 그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가장 흥미 있는 부분이기도 했던 <종이 이전의 종이>에 그려진 '도서관 사건' '아나톨리아에서 일어난 페르몬가 왕조의 에우메네스 2세(기원전 197-159년 재위)는...(중략)...20만 권의 장서를 가진 대도서관을 세웠다. 따라서 엄청난 양의 파피루스가 필요했지만 이집트는 페르가몬으로 파피루스를 더 이상 수출하지 않았다. 이집트는 세계 최대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보다도 규모가 큰 도서관의 출현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에우메네스 2세는 파피루스보다 더 뛰어난 필사 재료를 개발하라고 가신들에게 명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양피지였다' 양피지가 도서관 때문에 탄생했다고?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윌리엄 수도사(장미의 이름)에게, 보르헤스에게 우주였던 그것, 푸코에게 글쓰기 자체였던 그것이 무언들 탄생시키지 못했겠는가?

잊혀진 문명 간의 편지인 '페이퍼로드'는 잊혀진 사람들의 따뜻하고 아름다운 기록으로 읽힌다. 이것은 작가의 힘이기도 하지만,그 탄생 이후 문명의 중심이 되어 온 종이 자체의 힘이기도 할 것이다. 아니 종이가 아니라 종이 속에 담겨진 잊혀진 사람들의 힘, 그 역사의 힘일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아나톨리아에서 일어난 페르몬가 왕조의 에우메네스 2세(기원전 197-159년 재위)는...(중략)...20만 권의 장서를 가진 대도서관을 세웠다. 따라서 엄청난 양의 파피루스가 필요했지만 이집트는 페르가몬으로 파피루스를 더 이상 수출하지 않았다. 이집트는 세계 최대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보다도 규모가 큰 도서관의 출현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에우메네스 2세는 파피루스보다 더 뛰어난 필사 재료를 개발하라고 가신들에게 명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양피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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