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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쓸모,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기본 카테고리 2021-07-2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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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야마구치 슈 저/김윤경 역
다산초당 | 2019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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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야마구치 슈는 기업을 컨설팅하는 직업에 종사한다.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적 사유를 경영론, 조직론 등에 접목시켰다. 그는 서문에 약간의 자기 자랑을 섞어서 자신이 철학 개념을 알게 되어 문제와 세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통찰력이 생겼음을 언급한다. 타인과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안목, 세밀하게 문제를 통찰할 수 있는 촉은 철학적 사유에 힘 입은 바가 크다는 것이다. 철학 개념은 세계를 추상한 결과이므로 대상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니체의 르상티망, 쿤의 패러다임, 사르트르의 앙가주망은 인간 심리나 행동의 특정 부분에 경계를 만들고 빛을 비춰주어 해명한다. 철학 공부는 분명 삶에 쓸모가 있을 것이다. 지식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그 어떤 학문적 지식에 쓸모가 없겠는가?

 

그런데 쓸모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여기에도 두 가지 상이한 관점이 존재한다. 하나는 실제적인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이론적인 측면이다. 야마구치 슈의 접근은 실제적이다. 니체가 말한 르상티망은 약자의 전도된 도덕을 추동하는 인간의 저열한 심리 기제이다. 약자가 강자에게 갖는 원한이 르상티망인데, 니체에 따르면 강자를 악으로, 약자를 선으로 전도시킴으로써 자기 존재를 정당화하려는 약자들의 책략 때문에 도덕이 탄생했고 강자를 억압하는 비겁한 문화가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인간에게 원한과 같은 심리가 보편적으로 작동하고 있으니, 마케팅이나 조직 운영에서 이를 감안하거나 이해하면서 방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한다. 인간은 원한을 갖기 쉬운 동물임을 알고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는 낫다. 그런 측면에서 책은 철학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에게 쓸모 있고 유용하다며 독자를 설득한다.

 

반면, 이론적 측면의 쓸모는 세속에서 볼 때 쓸모가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인간의 인식적 자유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니체가 쓴 『도덕의 계보학』을 읽고 실존의 한쪽이 무너지는 경험과 같은 것. 르상티망 개념에 비추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세계관이 지각변동을 일으키면서 한순간에 붕괴되는 듯한 경험.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득함 속에 여태까지 세상을, 자신을 잘못 알고 있었음을 통렬하게 깨닫는 경험. 아니, 도덕이라는 불변의 진리가 사실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우연의 산물임을, 적어도 권력의 작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시적 규범임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정신적 위기감. 그것은 테레사 수녀가 신의 목소리를 듣고 심장에 화살을 맞은 것 같은 법열과도 다르지 않은 고통이다. 인간은 그러한 체험으로 한차례 깨지고 새롭게 세계관을 구축하며 이전보다 자유로운 실존을 얻는다. 철학적 사유의 근본적인 쓸모는 바로 '자유'에 있다.

 

야마구치 슈의 책은 유쾌하고 재미있다. 개념 중심으로 챕터가 구성되어 있고 챕터의 길이는 짧다.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길이이다. 그러나 부담 없이 읽은 만큼 독자를 변화시키는 강도는 크지 않다. 다시 말해, 이 책을 읽었을 때, 천지가 진동하는 세계관의 충격을 경험하기는 어렵다.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개념을 언론에서 떠드는 유행의 변화 정도로 오해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사건은 지금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근본적인 토대 자체를 뒤흔드는 일이다. 전환기에 새로운 패러다임은 금기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를 테면, 오늘날 조선일보에 '김정은 만세!'를 싣는 용기와 같다. 아니, 지동설은 이보다 훨씬 더 신성모독적이었을 것이다. 토마스 쿤의 책을 읽어야만 패러디임 전환이 얼마나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인지, 정상과학이라고 지칭되는 패러다임에서 오류를 읽어내고 그 틈새를 벌려서 새로운 이론을 만들고 정착시키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한지를 알게 된다. 3쪽 정도로 간단히 요약할 성질이 아니다. 한 권을 3쪽으로 요령 있게 정리해주면 편하고, 그렇게 정리된 지식을 앵무새처럼 떠들면서 과시용으로 써먹기에는 좋다. 그러나 자신의 세계관을 갈아 뒤엎고 인식의 자유를 얻기에는 한계가 있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언급하는 철학 개념보다 심리학 개념에 더 눈이 간다. 책에는 다양한 심리학 실험이 소개되고 있다. 이미 『설득의 심리학』에서 소개되어 유명한 밀그램 실험이 눈에 띈다. 버튼을 눌러서 누군가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는 실험에 참가한 피험자는 상대방이 고통을 호소하고 기절에 이르기까지도 권위 있는 의사의 말에 따르면서 전기충격 버튼을 누른다. 경악을 금치 못할 이 실험에서 권위에 맹신하는 인간의 허점을 읽을 수 있다. 책임 소재가 애매해질 때,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지 않는다. 완전해 보이는 시각에 맹점이 존재하듯, 인간의 마음에도 맹점이 있다. 예상된 보상이 오히려 행동이나 성취를 저해할 수 있음을 밝힌 실험도 흥미롭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샘 글럭스버는 둔커가 고안한 촛불 실험을 재활용하여 해답을 창의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제시하고 대가를 지급하기로 약속했을 때와 약속하지 않았을 때를 비교했더니 대가를 지급하기로 약속했을 때 평균 3~4분 정도가 더 걸린다는 결과를 얻었다. 심리학 실험은 인간 심리에 대한 일반적 믿음을 공격한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존재이다.' 또는 '외적 보상이 강할수록 성취 수준도 높아질 것이다.'와 같은 믿음을 심리학은 과학적 실험을 통해 무너뜨린다. 회사를 경영하는 리더들은 심리학에 눈이 갈 수밖에 없다. 심리학에서 제시하는 결론을 염두에 두면서 조직을 개편하거나 이끌면 일반적으로 위험에 빠질 확률이 줄어들 테니까. 심리학이 밝혀낸 인간 일반의 특성은 조직론이나 일상적 의사소통에서 매우 유용하게 활용되기 쉬운 도구들이다.

 

허나, 이러한 심리학도 맹점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밀그램의 실험에서 모든 사람이 인간을 고문하는 실험을 수락하지는 않았다. 전기충격이 비인도적이라며 거부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심리학에서 도출하는 결론은 양적 연구나 통계와 같이 일반성이지 보편성은 아니다. 진정한 리더라면, 심리학처럼 인간을 대상화하거나 일반화해서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그는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유일하면서도 평등함을 잊지 않으며, 각자에게 주어진 몫을 맡기고 주는 공정함을 실현시키려 할 것이다. 그러나 평등성과 단일성의 모순을 온전하게 결합시키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둘의 모순 관계를 추상의 힘으로 직시하고, 근기 있게 실천하려는 의지를 철학이 준다. 철학이 삶의 무기라면 아마 이런 측면에서 작용할 것이다. 저자는 철학이라는 무기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철학의 진정한 쓸모는 무기의 칼끝을 상대가 아닌 자신에게 향하게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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