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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섬]을 찾아서 | 그 등대 안의 사내 2009-06-0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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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일곱 살, <>을 만나다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다른 수많은 순간들의 퇴적 속에 깊이 묻혀 있다. 다른 순간들은 그 위로 헤아릴 수 없이 지나갔지만 섬뜩할 만큼 자취도 없다. 결정적 순간이 반드시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년기나 청년기 전체에 걸쳐 계속되면서 겉보기에는 더할 수 없이 평범할 뿐인 여러 해의 세월을 유별난 광채로 물들이기도 한다. 한 인간의 존재가 그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점진적일 수도 있다. 저 자신 속에 너무나도 깊이 꼭꼭 파묻혀 있어서 도무지 새벽빛이 찾아들 것 같지가 않아 보이는 어린아이들도 있다. 그래서 그들이 문득 壽衣를 밀어붙이며 나자레처럼 일어서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의외라는 듯 깜짝 놀란다. 그런데 사실은 그 수의란 다름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배내옷이었던 것이다. (29, 空의 매혹)

 

그리 길지 않은 내 마흔 다섯의 삶을 결정 지은 어느 한 순간을 지금 와서 기억해내기란 쉽지 않다. 아니, 지나온 내 삶에서 그런 순간이 과연 있기나 했을까 싶다. 그러나 위 인용문에서 한 순간한 권의 책으로 고쳐 읽는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나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아주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할 수 있다. 쟝 그르니에의 <>. 그렇다면, 내 일생을 결정 지은 한 순간은 쟝 그르니에의 <>을 처음으로 읽었던 어느 가을 날 저녁일지도 모르겠다.

 

그때 나는 열일곱 살이었다. 아래쪽으로는 분출구를 찾지 못한 테스토스테론이 어쩌지 못하고 위쪽으로 치밀고 올라와서, 하룻밤 사이에 마치 제주도의 오름처럼 내 얼굴에 새로운 등고선을 만들어 내곤 했던 여드름만이 일생일대의 근심거리였던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다. 불량해 보이려고 무던히도 애쓰던 선량한 친구 몇 놈과 함께 가끔씩 동네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맥주 파티를 열거나, 아니면 명동에 있는 단골 레스토랑의 어두운 조명 밑에서 뻐끔 담배를 피우곤 하던 조금 삐딱한 범생이었다.

 

<거의 30년이나 된 손때묻은 책치고는 멀쩡하다. 비닐 커버 덕택이다.>
 

헤세의 <데미안>을 일찌감치 졸업하고 까뮈의 <이방인>에게 새로이 경배를 드리고 있던 당시의 내게, 동네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쟝 그르니에의 <>은 전혀 낯선 이름이었다. 나는 그저 이색적인 정사각형의 판형과 세련된 장정 디자인에 시선이 끌려 무심코 책을 집어 들어 뒤적거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뒷표지 책 소개글에 내게는 너무나도 낯익은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당시 나의 우상이었던 알베르 까뮈였다. 호기심에 가득 차서 책을 펼친 나는, 까뮈가 이 책에 바친 유려하고 열렬한 서문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이 책을 사 들고 서점을 나서고 있었다. 이렇게, 까뮈를 징검다리 삼아 나는 쟝 그르니에의 <>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까뮈는 쟝 그르니에를 스승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리고 자신의 글쓰기가 이 위대한 스승에 대한 모방으로부터 출발했다고 고백하고 있지만, <>에 실린 쟝 그르니에의 산문들은 여러 면에서 까뮈의 글들과는 다르다. 둘 다 가볍고 투명한 향일성의 언어를 구사하고 있지만 그 강도와 각도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까뮈의 글들은 바로 머리 위에서 수직으로 내려 쪼이는 정오의 강렬한 햇살인 반면, 그르니에의 글들은 막 동이 터 오르는 아침 또는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저물녘에 만나게 되는 섬세한 결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햇살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런지 <>에 실린 쟝 그르니에의 글들에는 정오의 햇살로는 거의 드러내지 못하는 우리 삶의 그림자들이 곳곳에 나타나 있다. 이를테면, 행복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오만한 직업으로 삼고 있는 젊은 날의 까뮈(또는 내)가 미처 포착하지 못한 스러져가는 향기, 문득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환영, 덧없는 희망, 이루지 못하고 헛되이 잊혀진 꿈 등 말이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 삶에 있어서 보다 중요한 쪽은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는 쪽보다는 바로 그 반대 방향으로 슬그머니 몸을 숨기고 있는 이러한 그림자, 즉 삶의 가려진 쪽이 아닐까.

 

달은 우리에게 늘 똑 같은 한쪽 밖에는 보이는 법이 없다고 한다. 흔히들 짐작하는 것보다는 수가 많은 어떤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우리는 그들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서는 다만 추리적으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74, 케르겔렌 群島)

 

이렇게 해서 나는 삶에 대해 의혹을 품게 되었다. 확신해 마지 않던 미래에 대해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말하자면, 쟝 그르니에의 <>을 읽으면서 나는 비로소 내 오랜 배내옷을 벗게 된 것이다.

 

2. 스물네 살, 섬을 찾아 떠나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싹이 튼 이러한 의혹과 불안에도 불구하고, 나는 좌충우돌하면서도 나름대로 무난하게 대학을 마칠 수 있었다. 가끔씩 쟝 그르니에의 <>을 읽기는 했어도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그 치열했던 80년대!), 그 안에 오래 머무르지는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남들처럼 직장을 얻고 이어서 바로 군대를 갔다 오고(겨우 6개월 방위) 다시 복직해서 1년 정도 고달픈 샐러리맨 생활을 경험하고 나니, 그때서야 갈증이 밀려왔다.

 

섬들을 생각할 때면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은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난바다의 시원한 공기며 사방이 수평선으로 자유스럽게 터진 바다를 섬 말고 어디서 만날 수 있으며 육체적 황홀을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섬 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섬에 가면 <격리된다(isolé)> - (Ile)의 語源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 혹은 <혼자뿐인> 한 인간. 섬들, 혹은 <혼자씩일 뿐인> 인간들. (100, ‘復活의 섬’)

 

그래, 섬으로 가자. 어느 쪽을 바라보더라도 막히는 데 없이 하늘 끝까지 확 트인, 그래서 오히려 숨이 막히는 섬으로 가자. 그렇게 해서 간택이 된 나의 첫 여름 휴가지는 소매물도. 통영시(당시에는 충무시였다)에서 통통배를 타고 두 시간이나 더 가야 나오는 외딴 섬, 이골이 난 바다낚시꾼들이나 이따금씩 드나든다는 작은 섬 소매물도로 향하는 나의 배낭에는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집 몇 권과 쟝 그르니에의 <>이 들어 있었다. 그저 나 혼자서 막막한 바다나 하루 종일 바라보면서, 간간이 책이나 읽으면서, 어줍잖은 시나 몇 줄 끄적이면서, 사나흘 보내다가 올 생각이었다.

 

<소매물도 등대섬의 아찔한 절벽 위에서 우연히 만난 고교 선배와 함께 담배를 피우다.>
 

하지만 나의 계획은, 도착 첫날 민박집에서 만난 동숙인과 함께 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서로 족보를 따지기 시작하면서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내 고등학교 선배이자 대학교 선배(전공한 학과는 달랐다)임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마추어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와 그의 동행들과 함께 사흘을 보내게 되었다. 가져간 책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들과 함께 수영을 하고, 함께 등대섬을 오르고, 텅 빈 분교의 운동장에서 함께 시소를 타고, 밤 바닷가에서 무수한 별들을 향해 함께 랜턴 불빛을 쏘아 보냈다. 내가 기대했던 평온한 고적함은 없었지만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다.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선배를 위하여 똥폼을 잡아보다. 선배는 이 사진에 '아도니스의 탄생'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그런데 그렇게 나름 야무진 여름 휴가를 다녀왔는데도 내 안의 목마름은 가시지 않았다. 몸은 사무실에 있었지만 내 마음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한없이 미루고 있었다. 도리가 없었다. 사표를 냈다. 그리고 며칠 후 퇴직금을 챙겨 다시 여행을 떠났다. 이번에는 소매물도 뿐만 아니라 보길도, 제주도까지 이어지는 섬 순례였다. 쟝 그르니에의 <>이 동행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에는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섬에서 <>을 읽을 수 있었다. 소매물도 등대섬의 절벽 위에 우뚝 서서, 보길도 예송리의 검은 몽돌밭에 누워서, 제주도 함덕 해수욕장의 현무암 갯바위에 앉아서. 무엇이 나를 이렇게 섬으로, 아니 <>으로 이끌었던 것일까?

 

따라서, 인간이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통과해 가야 하는 저 엄청난 고독들 속에는 어떤 특별히 중요한 장소들과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 장소, 그 순간에 우리가 바라본 어떤 고장의 풍경은, 마치 위대한 음악가가 평범한 악기를 탄주하여 그 악기의 위력을 자기 자신에게 문자 그대로 <계시하여> 보이듯이, 우리들 영혼을 뒤흔들어 놓는다. 이 엉뚱한 인식(reconnaissance)이야말로 모든 인식 중에서도 가장 참된 것이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즉 잊었던 친구를 만나서 깜짝 놀라듯이 어떤 낯설은 도시를 앞에 두고 깜짝 놀랄 때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다. (80~81, 幸運의 섬들)

 

그렇다. 스물네 살 청춘은 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쟝 그르니에가 몇 차례나 경험했던 계시의 순간들, 제로에서 무한으로 옮겨가는 그 충만한 순간들을 나는 단 한번 만이라도 경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한 순간들은 필경 고독을 통하여 그 모습을 드러낼 터이니, 섬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스물네 살, 홀로 떠난 섬의 순례 여행길에서 나는 그런 계시의 순간을 만나지 못했다. 섬들은 나를 받아들였으되, 내게 그 내밀한 속까지 열어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다시 찾은 소매물도에서 나는 온전히 혼자일 수 있었으나 간절히 원했던 '계시의 순간'은 끝내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사실, 쟝 그르니에의 <> 역시, 쉽게 읽히는 듯 하면서도 그 전모를 쉽사리 우리에게 다 드러내 보이지는 않는다. 이 책 속에서 정말로 다 말해버린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고 지적한 까뮈의 말처럼, 이 책에서 가장 긴 글이자 가장 쉽게 읽히는 글인 고양이 물루조차도 그르니에가 말하고 있는 것 이상의 것을 텍스트 너머의 침묵 속에 감추고 있다. 아끼고 사랑했던 한 마리 고양이의 죽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자의식 가득한 그 작은 짐승의 삶이 우리 인간의 삶과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르니에는 예민한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 삶에도 그렇게 여백을 남겨놓을 수 있는 여유가 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바쁜 일상의 틈에 잠깐 머무르다 가는 침묵 속에서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긴 여운을 들을 수 있고, 또 그 여운에 가슴 깊이 느꺼울 수 있는 여유가 우리에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아마도 또 다른 섬이 필요할 터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3. 서른일곱 살, 섬에서 살게 되다

 

나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만나는 데 실패한 내게 결혼은 손쉬운 선택이었다. 오랫동안 사귄 동갑내기 애인과 결혼한 때가 스물여섯 살. 이후 십 년 동안은 사회에서는 바쁜 직장인으로서, 집에서는 한 여인의 남편이자 어린 딸아이의 아비로서, 또한 양가 어른들에게는 아들이자 사위로서, 오로지 생활을 도모하는 데 바쳐졌다.

 

물론 간간히 느껴지는 갈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어서, 그때마다 나는 아내와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남해도, 돌산도, 거문도, 백도, 완도, 진도, 안면도, 선유도 등으로 이어지는 섬의 순례를 계속했다. 어느 해인가는 소매물도를 다시 다녀오기도 했다. 제주도를 다시 찾았을 때는 해안도로 일주만으로는 모자라 마라도와 우도에까지 다녀오고 나서야 직성이 풀렸다. 하지만 그 여행들은 오랜 목마름을 잠깐 속이는 것에 불과한, 말 그대로 휴가에 불과한 것일 뿐이었다. 나는 어느덧 그 여행길에 쟝 그르니에의 <>을 더 이상 챙겨가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밀레니엄 버그로 조마조마한 가운데서도 새로운 천 년이라고 지구촌이 온통 떠들썩하던 2000 1, 나의 섬 순례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결혼 10주년 기념 여행지로,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아내와 함께 내가 간택한 곳은 새 천 년의 햇살이 가장 먼저 비춘다는 남반구의 작은 섬나라 뉴질랜드. 우리는 떠들썩한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 현지 교민에게 직접 의뢰하여 우리 가족끼리 오붓하게 다니는 자유여행 형식으로 뉴질랜드 남섬과 북섬을 보름 동안 다녀오게 되었다.

 

<푸르른 자연 속에 깃들어 있는 도시, 남반구의 작은 섬나라 뉴질랜드는 내가 꿈꾸던 이상향과 가장 근접한 곳이었다.>
 

뉴질랜드는 나에겐 신천지였다. 과연 항간에 떠도는 말대로 지상의 낙원이었다. 여행을 다녀와서 이민을 결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복잡한 이민수속 과정을 내가 직접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손수 밟고 마침내 영주권을 받아서 우리가 다시 뉴질랜드 땅을 밟은 것은 2001 4. 내 나이 서른 일곱 살이었다. 관광객이 아니라 이제는 이 작고 평화로운 섬나라의 주민이 되어 살게 된 것이다. 쟝 그르니에의 <>이 내게 다시 찾아 든 것은 그 때였다.

 

혼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설은 도시에 도착하는 공상을 나는 몇번씩이나 해보았었다. 그리하여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아보았으면 싶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65, 케르겔렌 群島)

 

우리의 새로운 터전이 된 이 작은 섬나라에서는 나는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것을 내보일 필요가 전혀 없었다. 누구도 그러한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 말이다. 남루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겸허하게 살고는 싶었기에, 나는 넓고 푸르고 깨끗한 자연환경 이상으로 이곳 현지인들의 이러한 무관심이 마음에 들었다.

 

<섬나라 뉴질랜드에는 섬들이 많다. 그러나 그 많은 섬들 중에서, 내가 이곳에서 다시 발견한 쟝그르니에의 '섬'만한 것이 어디 있으랴.> 
 

그렇지만 비밀이라면?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사는 곳을 옮겨야만 했을 정도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무슨 대단한 <비밀>이 내게도 있었단 말인가? 이 물음 앞에서 나는 오랫동안 서성거렸다. 내게 이루지 못한 욕망은 있었어도 성취한, 그래서 숨겨야만 하는(왜냐하면 숨기는 것이 성취한 것을 온전히 간직하는 방법이 되고, 마침내 나중에 드러나게 될 때에도 숨긴 것일수록 더욱 빛이 나는 법이니까) 비밀은 없다는 사실을 나는 뼈아프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나는 새롭게 내 비밀을 만들어야만 했고, 예전에 내가 이루지 못했던 욕망이 그 출발점이 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것은 항상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살고, 언젠가는 시인이 되자는 꿈이었다. 이렇듯, 쟝 그르니에의 <>은 내 안에서 오래 잠자고 있던 욕망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까뮈 역시 <>을 처음으로 읽던 스무 살 무렵에 작가로서의 길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으니,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이들도 <>이 지니고 있는 문학적 향취가 얼마나 대단한 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단순히 섬세한 감성과 유려한 언어로 직조한 아름다운 문장들로 가득한 그 흔하디 흔한 산문집으로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다. 쟝 그르니에가 이 책에서 추구한 것은 감각의 섬세함을 넘어서는 정신의 깊이이며 언어의 유려함을 뛰어넘는 인식의 명징함이다. 이 책이 산문집이라기보다 철학적 에세이로 불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상상의 印度 라는 제목 아래 묶여져 있는 일련의 글들이 그 대표적인 본보기가 되겠지만, 이러한 경향은 다른 글들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알제이에서 보낸 2 6, 나는 바다를 구경하려고 변두리 아랍인들 동네꼭대기로 올라가고 있었다. 엄청난 정적…… 그렇다. 날씨가 나빴는데도 엄청난 정적이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저 깃발을 보아라, 하고 入門하려는 제자에게 티베트의 僧은 말한다. 펄럭이는 것은 그 깃발인가 바람인가?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 그것은 깃발도 아니고 바람도 아닙니다. 그것은 정신입니다. (130, 사라져버린 날들)

 

이러한 문체는 섬으로 치자면, 물 위로 드러나 있는 땅덩어리보다는 물 아래 잠겨 있는 섬의 뿌리 쪽에 더 관심을 두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을 터인데, 과연 책의 앞 표지에 보면, 하얀 섬의 뿌리가 가느다랗게 몇 줄로 드러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도 바다 한가운데가 아니라 푸른 하늘 허공 중에. 까뮈는 이를 두고 <>은 우리들이 자연스럽게 발 딛고 있는 땅으로부터 뿌리를 뽑아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온 것이었다. 이리하여 우리는 文化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라고 이 책의 서문에 적고 있다.

 

문화(文化)라니? 나는 감히 내 글쓰기가 거기까지 나아갈 꿈은 꾸지도 않는다. 다만 내 정신의 깊이, 내 인식의 명징함이 적어도 내 글을 읽는 몇몇 독자의 공감은 충분히 끌어낼 수 있을 정도의 글들을, 그런 시들을 오래도록, 바라건대는 내 죽음에 이르는 날까지, 쓰고 또 쓰고 싶을 뿐이다.

 

, 열일곱에 처음 만나 다도해와 서해의 섬들을 떠돌다가 스무 해 뒤에는 남반구의 작은 섬나라 뉴질랜드까지 흘러와서 지금까지도 마흔이 넘은 사내의 비밀을 키워주는 밑거름이 되고 있는 내 인생의 책, 쟝 그르니에의 <>이여! 그대가 그토록 일찍 내 배내옷을 벗겨주었으니, 나는 내 무덤까지 그대를 들고 가서 기꺼이 나의 수의로 삼아주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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