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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변화시키는 이야기의 힘 | 도서리뷰 2009-11-01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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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1Q84 1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문학동네 | 2009년 08월

내용     편집/구성     구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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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야기의 힘

 

잠자리에 들기 전 나는 잠깐 짬을 내어 안뜰로 나가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둠 속에 휘영청 달이 떠 있다. 늘 그랬던 것처럼 하나의 달이다. , 안심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아직은 리틀 피플로부터 안전한 모양이구나. 어처구니없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1Q84를 읽고 난 뒤, 나도 모르게 이렇게 밤마다 달의 개수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기고 말았다. 이 소설에서 묘사된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란 한낱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상 공간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들은 너무나 사실적이고 압도적이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와는 전혀 무관한 그저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라고 쉽게 치부할 수는 없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이런 이야기의 힘은 제법 오랫동안(사람에 따라서는 평생 동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세계에 접목시켜본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무슨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는 이야기고 현실은 현실일 뿐이니까. 하지만 어느 때에 이르러서는 우리의 현실세계가 뭔가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이야기의 세계와 조금 닮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야기가 현실세계를 변화시켰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게 사실은 그 이야기를 접하고 우리가 변했기에 모르는 사이에 우리 스스로 이루어낸 변화인 것이다.

 

이야기의 힘은 이처럼 현실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역시 그러한 이야기들 중 하나로 여겨진다. 비록 이미 지나간 시간(1984)과 두 개의 달이 뜨는 환상 공간(1Q84)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 소설을 읽고 지구상의 수백 수천만 사람들이 매일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달을 쳐다본다면, 그건 정말 사소한 변화가 아닐 터이다. 전보다 엄청나게 많아진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아마도 달은 몸둘 바를 몰라 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말 또 하나의 달을 자기 옆에 만들어 그 시선의 뜨거움을 분산시키려고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달을 쳐다보고 있는 그 시간만큼 사람들은 자신과 세계와 우주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고, 그러한 시간들의 집적이 현실세계를 변화시키는(좋은 방향으로)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건 지나치게 순진한 믿음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뛰어난 이야기에는 현실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으며, 1Q84는 그러한 뛰어난 이야기들 중의 하나라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1Q84는 이러한 가능성으로서의 이야기의 힘을 주된 테마로 삼아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이 소설에서 수학강사이자 소설가 지망생으로 나오는 남자 주인공 덴고의 입을 통해서 표명되고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이야기의 힘(그는 역할이라고 부르고 있다)에 대한 믿음은 저자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믿음이며 동시에 소설을 읽는 독자인 나의 믿음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숲에서는 사물 간의 관련성이 제아무리 명백하게 묘사되어 있어도 명쾌한 해답이 주어지는 일은 없다. 그것이 수학과의 차이다. 이야기의 역할을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문제를 다른 형태로 바꿔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동의 질이나 방향성을 통해, 해답의 방식을 이야기 형식으로 암시해준다. 덴고는 그 암시를 손에 들고 현실세계로 돌아온다. 그 암시는 이해할 수 없는 주문(呪文)이 적힌 종이쪽지 같은 것이다. 때로 그것은 모순을 지니고 있어서 실제에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언젠가 나는 이 주문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가능성이 그의 마음을,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덥혀준다. (1380)

 

2. 두 개의 달을 본다는 의미

 

이처럼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이야기의 힘은 누구에게나 또 동일한 강도로 현실세계를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변환되지는 못한다. 이 소설에서도, 두 개의 달이 뜨는 변화된 현실세계, 1Q84년을 처음부터 뚜렷하게 의식하고 있는 사람은 여자 주인공인 아오마메, 그리고 이 소설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시발점이 된 <공기 번데기>라는 환상적인 내용의 이야기를 쓴(정확히 말하자면 구술한) 17세 여고생 후카에리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문학잡지사 편집자인 고마쓰의 주도하에 덴고는 비밀리에 그 이야기를 리라이팅을 해서 후카에리는 결국 신인상을 수상하게 되고 <공기 번데기> 6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오르게 되지만, 그 소설을 읽은 수 많은 사람들은 그 이야기 속에 묘사된 달이 두 개인 세계를 현실세계에서는 결코 알아차리지 못한다. 손수 리라이팅 작업을 한 덴고조차도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의 하늘에도 달이 두 개 떠있다는 사실을 아주 뒤늦게야 발견한다. 반면 아오마메의 경우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세계인 1984년은 어느 순간 마치 레일포인트가 전환되는 것처럼 선로가 변경되었으며, 하늘에 뜬 두 개의 달은 그렇게 변경된 세계인 1Q84년의 징표라는 것을, 후카에리의 소설을 읽기도 전에 이미 예민하게 눈치챈다.

 

이처럼 어떤 이야기가 지니고 있는 힘이 누구에게는 현실세계에까지 미치고 또 어떤 이에게는 그저 이야기 속에서만 머무르고 마는 이유는 뭘까? 또한 누구는 처음부터 그 힘을 예민하게 느껴서 현실세계가 변화된 것을 즉각적으로 눈치채고 또 어떤 사람은 나중에 가서야 그걸 깨닫게 되는 이유는 뭘까?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는 것이야말로 위에 인용한 쉽게 풀리지 않는 덴고의 주문을 푸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우선, 현실세계의 변화는 외부에서 주어진 이야기보다는 사람마다 제각기 나름대로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제 자신의 이야기가 보다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아오마메가 처음부터 현실세계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변화가 그녀가 청부살인을 하러 가는 때에 이루어졌으며, 그때 그녀는 오랫동안 간직해온 제 자신의 이야기에 깊이 몰두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고등학교 때 절친했던 친구인 다마키와 함께 레즈비언 비슷한 짓을 했던 에피소드인데, 그걸 기억하는 아오마메의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다마키는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했으며, 아오마메는 사랑하는 친구의 복수와 폭력적인 남자에 대한 응징의 차원에서 다마키의 남편을 은밀하게 살해했기 때문이다. , 죽은 옛 친구에 대한 추억은 아오마메가 킬러의 삶을 살아가게 된 계기가 된 이야기인 셈이다. 세 번째 살인을 저지르러 가는 길에서 느닷없이 떠오른 이 강렬한 추억이 아오마메의 몸과 마음을 흔들고 지나가는 사이에 현실세계는 1984년에서 1Q84년으로 감쪽같이 변경된다.

 

반면에, 덴고가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는 이야기라기보다는 하나의 장면이다. 외간남자에게 젖꼭지를 빨리고 있는 어머니와 그걸 바라보고 있는 한 살짜리 아기. 그 아기는 덴고 자신이다. 말하자면 덴고가 지니고 있는 최초의 기억인 셈인데, 어찌나 그 기억이 생생한지 덴고는 발작처럼 엄습하곤 하는 이 기묘한 기억 속의 낯선 남자가 혹시 자신의 생부가 아닐까 하는 의혹을 품게 된다. 그를 열 살 때까지 길러준 아버지는 NHK 수금원으로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자신과 닮은 점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날, 치매 요양소로 아버지를 방문한 덴고는 아버지와 주고받은 대화를 통해서 자신이 품고 있던 의혹이 거의 사실에 틀림이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돌아온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이 새로운 인간이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간직해온 제 자신의 이야기가 현실세계에서 그 의미를 획득하고 또 스스로 그 의미를 온전하게 이해했다고 해서 당장에 현실세계의 변화가 파악되는 것은 아니다. 그 확실한 징표인 하늘에 뜬 두 개의 달을 발견하는 일이란, 고립된 제 자신만의 이야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이야기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인간의 생명은 고독한 것이기는 하지만 고립된 것은 아니다. 그 생명은 어딘가의 또다른 생명과 이어져 있다. (2 443~444)

 

우리의 기억은 개인적인 기억과 집단적인 기억이 합쳐져 만들어지는 거야. 덴고는 말했다. 그 두 가지 기억은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지. 그리고 역사라는 건 집단의 기억을 말하는 거야. 그것을 빼앗으면, 혹은 고쳐 쓰면 우리는 정당한 인격을 유지할 수 없어. (1 544)

 

그렇다. 인간의 생명이 고독한 생명이지만 결코 고립된 것은 아니듯이, 우리 기억 속에 개인적인 기억이 있지만 집단적인 기억도 함께 존재하듯이, 내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타인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현실세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가장 강한 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타인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이야기의 의미를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늘에 떠오른 두 개의 달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덴고와 아오마메에게는 그렇게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이야기가 있었다. 열 살 때, 방과 후 교실에서 같은 반이었던 열 살짜리 말라깽이 소녀 아오마메가 다가와서 덴고의 손을 단단히 잡고 말없이 서 있었던 일. 단지 수십 초에 불과한 짧은 순간이었지만 이 일은 두 사람 모두에게 너무나 선명한 기억을 남긴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지만 그 짧은 순간에 몹시 소중한 뭔가를 서로 주고받았음을 나중에 가서야 깨닫는다. 덴고가 아오마메에게 준 것은 그의 사랑이었고(그래서 그는 살아오는 동안 아무도 사랑하지 못한다) 아오마메가 덴고에게 준 것은 그녀의 영혼이었다(그래서 그녀는 살인을 저지르고 나서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이 소중한 이야기(기억)의 의미를 해독하게 되자, 그들의 눈에는 비로소 하늘에 뜬 두 개의 달이 보이게 된 것이다.

 

3. 두 개의 달이 아니라 두 눈동자를

 

그렇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하늘에 뜬 두 개의 달이 아니라 그 두 개의 달을 마침내 보게 된 사람의 두 눈동자이어야 마땅하리라. 정말 중요한 것은 변화된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를 가능케 한 내 자신의 이야기 속에, 그리고 내가 타인과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이야기 속에 있을 터이니 말이다. 그래서 소설의 2권 마지막 장에서 서술되고 있는 덴고의 결연한 의지는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이 세계에 (혹은 그 세계에) 달이 한 개밖에 없건, 두 개가 있건 세 개가 있건, 결국 덴고라는 인간은 단 한 사람밖에 없다. 거기에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디에 있더라도 덴고는 덴고일 뿐이다. 고유의 문제를 안고 있고, 고유의 자질을 가진 한 명의 똑같은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 이야기의 포인트는 달에 있는 게 아니다. 나 자신에 있는 것이다. (2 585)

 

아오마메를 찾자, 덴고는 새삼 마음먹었다. 무슨 일이 있건, 그곳이 어떤 세계이건, 그리고 그녀가 누구이건. (2 597)

 

덴고가 오랫동안 손에 쥐고만 있던 이야기의 주문(呪文)은 드디어 풀렸다. 그리고 마치 대마왕으로부터 니나를 구출해내려고 심연 속으로 뛰어드는 이상한 나라의 폴처럼, 그는 그 주문을 들고 변화된 세계로 막 뛰어들고 있다. 과연 덴고는 달이 두 개 뜨는 1Q84년의 세계에서 그림자처럼 배회하는 유령이 된 아오마메를 구출해서 1984년의 세계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이어지는 3권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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