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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마메와 덴고, 그 두개의 달…… | 소설 2009-10-17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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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1Q84 1

무라카미 하루키 저/양윤옥 역
문학동네 | 2009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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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은 원래부터 두 개였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운동 삼아 걷는 산책로에 잠시 우두커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을이 깊어 더욱 색이 짙어진 밤하늘에는 둥그런 달 하나만이 홀로 떠 옅은 빛을 내고 있었다.

 

 

  “lunatic은 달에 의해, 즉 luna에 의해 일시적으로 정신을 빼앗긴 것, 19세기의 영국에서는 lunatic이라고 판정받은 사람은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그 죄를 한 등급 감해줬어. 그 사람의 책임이라기보다 달빛에 흘렸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법률이 실제로 존재했어. 즉 달이 인간의 정신을 어긋나게 한다는 걸 법률적으로도 인정했던 거야.”

 

 

  달은 해와 다르다. 달빛은 햇빛과 다르다. 해의 빛은 볕이라고 해도 달의 빛을 가리켜 달볕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볕은 뙤약볕이라는 말에서처럼 작열하는 뜨거움을 뜻한다. 그러나 달빛은 그런 초열(焦熱)의 뜨거움과는 거리가 멀다. 은은하고 부드러우며 고요하고 어슴푸레하다. 사물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개별화시키는 햇볕과 달리 달빛은 서로 어울리게 하고 녹아들게 한다. 달빛은 구별하는 빛이 아니라 융합하는 빛이다. 그래서일까. 뜨거운 햇볕 속에서는 망설이는 이야기들이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쉽게 나올 때가 있다.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여기는 구경거리의 세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꾸며낸 것
  하지만 네가 나를 믿어준다면
  모두 다 진짜가 될 거야

 


  소설 제일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이 구절은 작가의 말일까, 등장인물의 말일까? 어쨌든 이 말을 화두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정말 구경거리로 가득찬…… 하지만 너무 환상적이고 몽환적이기까지 해서 믿기 어려운, 알기 어려운 그런 이야기들. 하지만 내가 믿는다면 모두 다 진짜가 되겠지. 진귀하고 신기한 것들이 가득 차 있는 시장 장터 한 구석에 돗자리를 깔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입담꾼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흥미로운 기분으로…… 그렇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소설을 읽어나갔다. 달이 두 개가 뜨는 세상. 리틀 피플이 공기 번데기를 만드는 곳의 이야기를.

 


  “아, 그리고.” 운전기사는 룸미러를 보며 말했다.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게 있는데, 모든 일이 겉보기와는 다릅니다.” “이제부터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하려는 거예요. 그런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하고 나면 일상 풍경이, 뭐랄까,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겉모습에 속지 않도록 하세요. 현실은 언제나 단 하나뿐입니다.”

 


  수로고속도로 비상계단을 이용해 꽉 막힌 고속도로를 빠져나간 아오마메, 후카에리의 「공기 번데기」리라이팅 작업을 맡게 된 덴고……. 평소와는 조금 다른,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함으로써 두 사람은 낯선 세계로 들어선다. 밤하늘에는 두 개의 달이 비추고 리틀 피플이 공기 중에 보이지 않는 실을 이용해 커다란 번데기를 만드는 곳. 공간은 분명 이전과 같이 1984년인데 평상시의 1984년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이 뭔가 어긋나있다. 경찰의 제복과 권총이 새롭게 바뀌어있고 미소 공동의 월면기지 건설, NHK 수금원이 식칼로 대학생을 찌른 일, 모토스 호수에서 과격파와 자위대 특수부대 사이에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진 사건…… 꽤 떠들썩했기에 결코 놓쳤을 리가 없는 몇몇 사건들이 과거의 시간에 자리 잡고 있었다. 1984년 그녀 (혹은 그)가 살던 시간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던 새로운 사건들. 더 이상 그들이 있는 공간(혹은 시간)은 1984년이 아니다. 아무 것도 알 수 없고 기묘한 일들이 벌어지는 의문(Question)의 시간, 1Q84년일 뿐이다.

 

  17살 미소녀 작가 후카에리가 쓴 소설 「공기 번데기」의 내용이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 눈 먼 산양의 입 속에서 나온 리틀 피플이 공기 속에서 실을 뽑아내 번데기를 만들었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소녀의 형상(도터)을 만들어 하늘에 달이 두 개가 뜨게 만든 일들이 모두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세상.
  소설을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을 생각했다. 과연 그 세상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리플 피플은 누구이며 그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공기 번데기는 대체 무엇이며 왜 하늘에 달이 두 개가 뜬 것일까?
  몇 년 전 읽은 <해변의 카프카>가 그러했듯이 이번 소설 또한 하루키는 내게 많은 의문과 궁금증을 품게 했다. 그가 내 앞에 있다면 많은 것들을 질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정말 내 앞에 있다 해도 과연 그가 내 질문들에 성의껏 답을 해줬을까?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설명을 안 하면 그걸 모른다는 건, 아무리 설명해도 모르는 거야.” 어쩌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소설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다들 알겠지.

 


  “도터는 마더의 대리 역할을 해.”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리틀 퍼플이 말한다.
  “나는 두 사람으로 나뉘는 거야.” 소녀는 묻는다.
  “그런 게 아니야.” 테너 리틀 피플이 말한다. “너는 두 개로 나뉘지 않아. 너는 처음부터 끝까지 원래 그대로의 너야. 걱정할 거 없어. 도터는 어디까지나 마더의 마음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아. 그게 형태를 이룬 것이야.”

 

  “이 도터는 내 마음의 그림자로서 무슨 일을 해.”
  “퍼시버 역할을 해.”
  “퍼시버.”
  “지각하는 자.”
  “지각한 것을 리시버에게 전달해.”
  “도터는 우리의 통로가 될 거야.”

  “마더가 돌봐주지 않으면 도터는 완전하지 못해. 오래 살기 어려워져.”
  “도터를 잃으면 마더는 마음의 그림자를 잃어버리게 돼.”
  “마음의 그림자를 잃어버린 마더는 어떻게 돼.”
  “도터가 눈을 뜰 때, 하늘의 달이 두 개가 돼.”
  “두 개의 달이 마음의 그림자를 비추지.”
  “달이 두 개가 돼.”
  “그게 징표야. 하늘을 주의해서 자주 보는 게 좋아.”

 


  문학평론가 이와미야 게이코의 말처럼 <1Q84>는 간단히 줄거리를 요약할 수 없는 작품이다. 줄거리를 요약한다고 해서 내용을 쉽게 알거나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다. 그래서 나 또한 하루키의 생각을 완전하게는 꿰뚫어볼 수 없으나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공기 번데기와 리틀 피플, 두 개의 달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을 해보려 한다. 과연 세 가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알고 나면 모든 것이 정상적인 시간의 흐름처럼 하나로 이어져 정리될 것 같았다.

 


  하늘에는 달이 두 개 떠 있었다. 작은 달과 큰 달. 그것이 나란히 하늘에 떠 있다. 큰 쪽이 평소에 늘 보던 달이다. 보름달에 가깝고 노랗다. 하지만 그 곁에 또 하나, 다른 달이 있다. 눈에 익지 않은 모양의 달이다. 약간 일그러졌고 색깔도 엷은 이끼가 낀 것처럼 초록빛을 띠고 있다. 그것이 그녀의 시선이 포착한 것이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달은 하나가 더 생겨 두 개가 된 것일까, 아니면 그림자처럼 곁에 붙어있던 희미한 달 하나가 그 모습을 드러내 두 개가 된 것일까? 그러니까 없던 달이 하나 더 생긴 것일까, 원래 있던 것이 형상을 갖추고 드러난 것일까?

 


  선생님은 큰 힘과 깊은 지혜를 갖고 있어요. 하지만 리틀 피플도 거기에 지지 않게 깊은 지혜와 큰 힘을 갖고 있어요. 숲속에서는 조심하도록. 중요한 것은 숲속에 있고, 숲에는 리틀 피플이 있어요. 리틀 피플에게 해를 입지 않으려면 리틀 피플이 갖지 않은 것을 찾아내야 해요. 그렇게 하면 숲을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어요.

 


  어찌됐거나 달이 두 개가 된 것은 리틀 피플이 공기 번데기를 만들었고 거기서 도터가 깨어났기 때문이다. 후카에리의 말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숲속에 있고, 숲에는 리틀 피플이 있다 했다. 리틀 피플에게 해를 입지 않으려면 리틀 피플이 갖지 않은 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숲을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다.

 


  “리틀 피플은 정말로 있어요.”
  “정말로 있어?”
  “당신이나 나하고 똑같이.”
  “나나 너하고 똑같이.”
  “보려고 마음먹으면 당신에게도 보여요.”

 


  “만일 지금 우리 사회에 빅 브라더가 출현한다면 우리는 그 인물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겠지. ‘조심해라. 저자는 빅 브라더다!’ 하고. 다시 말해 실제 이 세계에는 더 이상 빅 브라더가 나설 자리는 없네. 그 대신 이 리틀 피플이라는 것이 등장했어. 상당히 흥미로운 언어적 대비라고 생각지 않나? 리틀 피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야. 그것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 그것조차 우리는 알지 못하지. 하지만 그건 분명하게 우리의 발밑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어.”

 


  보려고 하면 누구나 볼 수 있고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하게 우리의 발밑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존재……. 그것이 처음에는 ‘빅 브라더’라는 단어처럼 독재자, 파시즘, 전체주의 같은 개념이 아닐까 생각을 했지만 나는 그것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았다. 2권 325페이지에 인용된 카를 융의 사상에 비춰 보다 더 심리적으로, 개인적으로 리틀 피플과 공기 번데기, 두 개의 달을 해석한 것이다.

 


  “빛이 있는 곳에는 그림자가 없어서는 안 되고, 그림자가 있는 곳에는 빛이 없어서는 안 되지. 빛이 없는 그림자는 없고, 또한 그림자가 없는 빛은 없어. 카를 융은 어느 책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어. ‘그림자는 우리 인간이 전향적인 존재인 것과 똑같은 만큼 비뚤어진 존재이다. 우리가 선량하고 우수하며 완벽한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림자 쪽에서는 어둡고 비뚤어지고 파괴적으로 되어가려는 의지가 뚜렷해진다. 인간이 스스로의 용량을 뛰어넘어 완전해지고자 할 때, 그림자는 지옥에 내려가 악마가 된다. 왜냐하면 이 자연계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 이상의 존재가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 이하의 존재가 된다는 것과 똑같은 만큼의 깊은 죄악이기 때문이다.’”

 


  융은 인간의 정신구조를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누었다. 의식의 영역에는 자아(ego)와 페르소나(persona)가 있으며 무의식의 영역에는 마음(seele), 그림자(shadow), 자기(self)가 있다. 자아는 겉으로 드러난 의식의 영역을 통해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 내면세계와 소통하는 주체이며 페르소나는 외적 인격 즉 집단이 개인에게 준 역할 · 의무 · 약속 그 밖의 여러 행동 양식을 나타낸다. 쉽게 말해 가면인 셈이다. 무의식에 있는 영역인 마음은 남성의 경우는 아니마(anima), 여성의 경우는 아니무스(animus)로 나타나는데 이는 각각 남성이 갖고 있는 여성적 내적 인격과 여성이 갖고 있는 남성적 내적 인격을 가리킨다. 세상에 있는 어떤 남성과 여성도 모두 남성성 100% 여성성 100%로만 의식이 이루어진 사람은 없다. 남성은 무의식 깊은 곳에 자신도 모르는 아니마를 가지고 있으며 여성 또한 무의식 속에 아니무스를 가지고 있다. 의식하지 못하는 아주 깊은 곳에 있기 때문에 자아가 그것을 인식할 수 없을 뿐이다.
  외적 인격이 자아가 외계와 관계를 맺도록 하는 매개체라면 내적 인격은 자아로 하여금 무의식으로 눈을 돌리게 하는 중요한 교량의 역할을 한다. 그림자는 무의식의 어두운 측면, 열등하거나 의식에 의하여 억압된 영역을 가리키며, 자기는 자아와 무의식이 하나로 통합된 전체정신을 가리킨다. 따라서 융이 보는 ‘자기실현’이란 ‘자아’가 무의식의 밑바닥 중심 부분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소리를 듣고 그 지시를 받아 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자기’의 소리는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등의 무수한 무의식 층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어 ‘자아’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기’는 ‘자아’에게 꿈의 상징과 종교적 상징들을 통하여 그 소리를 전달하려 한다.

 

  쉽게 말해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의식이 우리의 의식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 융의 이론이다. 우리의 의식 중 우리나 인지하고 인식하고 있는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다. 그것을 자아라고 하며 그 자아는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쓰고 세계에 보여지는 것이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 속에는 보다 더 심연한 세계가 있다. 보다 더 많은 기억들이 있다. 그리고 그 기억은 보통 자아에 의해, 페르소나에 의해 억압당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평범한 여고생이 자유롭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부모의 뜻에 따라 모범생으로 사는 경우가 그것이다. 하지만 무의식은, 특히 그림자는 억압하고 억누를수록 더욱 짙어지고 난폭해진다. 우리의 자아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띠는 것이다. 참고 또 참으며 공부하던 여고생이 갑자기 반란을 일으키며 가출하거나 일탈행위를 했다면 그것은 최고조로 짙어진 그림자가 결국에는 폭발하고 만 것이리라.

 

  리틀 피플은 어쩌면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 자리한 자기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가리켜 선이라고, 그렇다고 악이라고도 할 수는 없지만 늘 우리의 자아와 함께 하며 분명히 존재하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전달하고 싶어한다. 지시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것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페르소나를 벗고 자아의 세계로 내려가 더 깊이, 무의식의 심연으로까지 내려가야 한다. 아니마와 아니무스, 그림자를 지나 가장 깊은 곳으로. 그곳이 숲속이고 바로 리틀 피플이 사는 곳이다. 우리의 무의식이 원하는 것을 가리켜 선하다고도 악하다고도 단정 지을 수는 없으니 또한 그들을 가리켜 선한 자라고도, 악한자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나 그들은 늘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지시하며 때로는 명령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것은 때로는 내 의지와 전혀 상관없는 것일 수도 있다. 내 자아를 건너 깊은 곳에서 보상작용으로 생긴, 보다 억압되고 짓눌려 난폭해진 의식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구절에서처럼 인간이 스스로의 용량을 뛰어넘어 완전해지고자 할 때, 그림자는 지옥에 내려가 악마가 될지도…….

 

  하늘에 있는 두 개의 달. 평소에 늘 보던 큰 달과 눈에 익지 않은 모양의, 약간 일그러졌고 색깔도 엷은 이끼가 낀 것처럼 초록색을 띠고 있는 작은 달……. 어쩌면 그런 의식의 분열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공기 중의 보이지 않는 실을 이용해 번데기를 만든 뒤 그곳에서 소녀, 혹은 소년과 똑같이 닮은 형상을 만든다. 리틀 피플은 그것을 도터라 칭하며 마더에게 잘 관리해야 한다고 직접 이야기 한다. 짙게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던 무의식의 심연이 모습을 가지고 직접 자기의 목소리를 자아(마더)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달은 처음부터 두 개였던 거다. 다만 그림자에 가리워져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었을 뿐…… 달은 처음부터 두 개였다. 의식과 무의식, 그 두 달이 온전한 하나를 이룰 때 1984년과 1Q84년은 온전한 한 세계가 될 것이며 후카에리에게도 초경이 비칠 것이다.(도터를 잃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월경이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월경을 온전한 여성(나아가 의식)의 상징으로 본다면 말이다.)
  아오마메와 덴고는 각각 서로를 연모하는 남녀로 보아도 되지만 융의 이론으로 볼 때 혹 의식과 무의식을 구성하는 동일한 인격은 아닐까 생각했다. 서로 만나지 못하는,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서로를 강렬하게 이끄는…… 그래서 1Q84년이라는 새로운 세계로 이끌려와도 결국 함께일 수 밖에 없는. 아오마메의 아니무스는 덴고이며 덴고의 아니마는 아오마메인 것이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서 있던 10살, 초등학교 교실 창문 너머로 보이던 낮달은 분명 하나였다.

 


  달이야, 하고 덴고는 생각했다.
  나는 그때 달을 보고 있었어. 그리고 아오마메도 역시 똑같은 달을 보고 있었다. 오후 세시 반의 아직 환한 하늘에 떠 있던, 잿빛을 띤 바윗덩어리. 과묵한 외톨이 위성. 두 사람은 나란히 그 달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달이 나를 아오마메가 있는 곳으로 인도해준다는 것일까.

 


  마지막에 덴고는 실제로 공기 번데기를 보게 된다. 소설 「공기 번데기」에서는 그것이 주인공 소녀의 분신이었지만 지금 덴고가 실제로 목격하고 있는 것은 덴고 그 자신의 공기 번데기다. 덴고는 직감적으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에게 행동이 요구되고 있다는 건 덴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어서서 번데기의 안쪽을 들여다볼 만한 용기를 도저히 끌어낼 수 없었다. 덴고는 두려웠다. 그 번데기 안에 있는 무언가가 내게 상처를 입힐지도 모른다. 내 인생을 크게 바꿔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덴고의 몸은 작은 스툴 위에서 도망칠 곳을 잃은 사람처럼 바짝 굳어버렸다. 그곳에 있는 것은 그에게 부모의 호적을 조사하지 못하게 하고, 혹은 아오마메의 행방을 찾아나서지 못하게 한 것과 똑같은 종류의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덴고는 결국 공기 번데기를 열었고 그곳에는 열 살의 아오마메가 잠들어 있었다. 덴고는 그녀의 작은 손에 자신의 커다란 손을 가만히 얹었고 온기를 느꼈다.

 


  이제부터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거야, 덴고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것이 어떤 구조를 가진 세계인지, 어떤 원리를 바탕으로 움직이는지, 그는 알지 못한다. 그곳에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려는지 예측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거기에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건 그는 달이 두 개 있는 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자신이 걸어야 할 길을 찾아낼 것이다. 이 온기를 잊지 않는다면, 이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3권이 과연 나올까? 그저 떠도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나온다면 대환영이지만 나오지 않는다 해도 서운함은 없다. “소설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일 뿐이다.” 인물의 목소리를 빌려 하루키가 말하지 않았는가. “설명을 안 하면 그걸 모른다는 건, 아무리 설명해도 모르는 거야.”라고도 말하지 않았는가.

 

  내 무의식 깊은 곳, 그 숲속에도 리틀 피플이 살고 있겠지. 그들은 내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오늘 저녁에 당장 베란다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봐야겠다. 달이 하나인지, 두 개인지.
  하루키가 마치 내게 묻고 있는 것만 같다. 당신은 지금 어느 시간대를 살고 있는가? 2009년이라 확신하는가? 혹 2Q09년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니 오늘밤은 꼭 밤하늘을 올려다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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